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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며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5.10|조회수33 목록 댓글 0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며

1.
아주 오래 전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선배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김 목사, 은퇴식 하고 다음 날 일어났더니 갈 데가 없어’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고 할아버지(죄송) 그걸 그 날 아시면 어떡하누?....’

은퇴식하고 다음 날 일어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는데 미리미리 준비했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2.
은퇴 후 시무하던 교회에 그 어떤 자리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섭섭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미리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해 놓았었기 때문이었다.

3.
큰 손녀 민희는 두 돌 채 되기 전에 애비 따라 미국엘 갔었다.
미국 가기 전 일 년 반 정도를 우리 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떠났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속으로 ‘민희야 할아버지 간다아’를 외치며 다녔다.
미국으로 떠날 날자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심란하였다.
도저히 민희가 떠나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마음 준비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정말 민희가 공항 출입국장으로 들어갈 때 난 울지 않았다.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미리미리 마음 다잡고 준비하고 기도했더니 그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4.
막내 손자 선욱이랑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내가 먼저 가든
아내가 먼저 가든
혼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껀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5.
아내보다 내가 먼저 갈 확률이 높지만
그게 최고지만
인생은 늘 내 맘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잘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재수 없어서
아내가 먼저 하나님 나라 갈 경우를 대비해 마음 준비도 하고
혼자사는 연습과 훈련도 하곤 한다.

태국 치앙마이에 혼자가서 한 달도 살아보고 두 달도 살아보곤 한다.
밥해 먹고 사는 건 그닥 어렵지 않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을 연습한다.
쉽지 않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6.
그래도 이제까지 잘 살아왔는데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겨우 겨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생각한다.

겨울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7.
겨울 숲길을 가면서도 외롭지 않을
가슴에 묻은 그 별 하나, 고운 별 하나
내게도 있어서
인생의 겨울 길에 들어선 내 삶도 끝까지
외롭지 않기를
불행하지 않기를
아름답기를 소원한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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