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252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Dying with Jesus, by Death Reckoned Mine)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3.28|조회수199 목록 댓글 2

찬송가 묵상 #252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Dying with Jesus, by Death Reckoned Mine)

 

찬양곡: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영어제목: Dying with Jesus, by Death Reckoned Mine
작사자: 다니엘 웹스터 휘틀 (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작곡자: 메이 휘틀 무디 (May Whittle Moody, 1870-1960)
찬송곡조(Hymn Tune): MOMENT BY MOMENT
찬송가사:
1.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 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4.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https://youtu.be/W7gcJKKkVzY

 

[찬송 묵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이 찬송이 한국찬송가에 소개된 것은 장로교와 감리교 합동 찬송집 <찬숑가, 1908>였는데, 이후 1983년 <통일찬송가>가 발간되기 전까지는 ‘Moment by moment’를 ‘시시때때로’라고 번역하여 불렀었다.
이러던 것이 <통일 찬송가, 1983> 발행하면서 가사를 수정되어 ‘언제나’로 고쳐 지금의 <21세기 새찬송가>에서도 그대로 채택하여 부르고 있다.
어느 번역이 더 적합한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필자는 ‘시시때때로’가 어릴 때부터 불러왔던 것이어선지 더 애착이 간다.
그리고 작사의 배경에 나타난 상황으로도 ‘언제나’라는 시각보다는 ‘시시때때로’라는 시각의 개념이 더 와 닿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찬송시의 원본은 5절로 되어있는데 미국교회에서와 한국교회 모두 원문의 2절은 생략하고 4절로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작사자가 이 찬송의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후렴의 한국 번역 가사도 조금 아쉬움을 가진다.
한글 가사는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 영광의 그 날에 이르도록 /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로 번역되어 있다.
이 내용을 원문과 비교하면 너무 의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원문과 비교해 보자.
“Moment by moment I’m kept in Hs love;
Moment by moment I’ve life from above;
Looking to Jesus till glory doth shine;
Moment by moment, O Lord, I am thine.”
(시시때때로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시시때때로 나는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네.
영광이 빛날 때까지 예수를 바라보오니
시시때때로 오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 찬송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0) 말씀의 내용으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더불어 살고 있음은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온전히 우리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의 찬송이다.
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이기에 시시때때로 주님의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주님과 함께 거한다는 신앙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갈 때, 슬픔을 당해 낙심하고 있을 어느 때에라도 주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을 때가 없기에 매 순간마다 주님의 돌보심과 보호 아래 있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앓아누웠을 때나 괴롭고 기쁜 일이 있을 모든 경우에라도 동일한 마음으로 함께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들이 어떤 환경과 처지에 거할지라도 늘 동행하시며 함께하신다는 내용의 힘과 위로가 되는 찬송이다.

 
https://youtu.be/ZpnChXfhaR4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다니엘 웹스터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다니엘 휘틀은 1840년 매사추세츠주 치코피 폴스. (Chicopee Falls, Massachusetts)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존경했던 정치가인 다니엘 웹스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가족 중에는 다른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그들은 모두 뉴잉글랜드를 떠나 서부 주로 시카고에 정착한 젊은이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휘틀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이 바로 언제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추측하기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는 아마도 아직 어렸을 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휘틀은 은행원으로 Wells Fargo Bank에 취업을 하였다.
어느 날 밤 은행에서 야간 당직원으로 일하던 중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나는 지하 금고실로 들어가서 가장 조용한 곳의 고요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도록 내 생명을 그분께 바쳤습니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그의 삶의 방식에서 나타난 특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휘틀은 조용히 혼자 하나님과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한다.

 

그는 곧 그곳에서 가장 큰 태버내클 주일학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가 장차 그의 아내가 될 여인인 애비 핸슨 양을 만난 것은 태버내클 주일학교에서의 일을 통해서였다.
1861년에 휘틀은 일리노이 제72보병대에 합류하여 B중대에 중위로 입대했지만 1862년이 되어서야 연대가 남부로 명령을 받았고 그가 떠나기 전날 밤인 8월 22일 그와 미스 핸슨은 조용히 결혼했다.
휘틀은 전쟁 기간동안 복무했으며, 하워드 장군의 보좌관이 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소령’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그 직함은 그의 이름과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
전쟁 중에 휘틀은 오른팔을 잃고 전쟁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병원에서 상처를 회복한 그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신약성경을 발견했다.
비록 그 말씀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만 그는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누군가가 그를 깨우면서 죽어가는 병사가 그에게 기도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휘틀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당신이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휘틀은 가기로 동의했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청년의 침대 옆에서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소년의 손을 잡았습니다.
몇 마디의 짧은 말로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께 나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나는 바로 그곳에서 그분이 나를 용서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 소년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하는 동안 그는 조용해졌고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고 일어났을 때 그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의 괴로운 얼굴에는 평안의 빛이 깃들었고, 그를 사용하여 나를 구세주께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그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하고 용서를 받도록 인도하셨음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를 천국에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휘틀이 빅스버그에서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 D.L. 무디를 처음 만났다.

 

다음은 휘틀이 직접 말한 사건이다.
“어떤 종류의 큰 집회가 태버내클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비록 나는 피를 흘리고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여전히 허약했지만 약간의 도움으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움과 부끄러움, 약함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섰다.
강한 목소리가 외쳤다.
‘그에게 세 번의 환호를 보내라, 얘들아.’
그리고 그들은 의지로 주어졌습니다.
파란 군복을 입은 부상병이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 친절한 생각과 그 울려퍼지는 환호가 얼마나 내 피를 흘렸는지,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리고 '그에게 세 번의 환호를 보내라'고 외친 사람은 드와이트 L. 무디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 순간부터 나에게 그의 우정이 의미하는 바였습니다.
전체 상황, 즉 젊은 군인의 당혹감, 친절한 도움의 필요성 등을 자극하고, 격려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는 그때에도 타고난 지도자였습니다.
그에게 세 번의 환호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환호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휘틀은 엘진워치컴퍼니(Elgin Watch Company)에 입사했는데, 그가 사업을 포기하고 전도자가 된 것은 이미 전도 활동을 하고 있던 DL 무디의 영향이 컸다.
그는 항상 복음 가수를 데리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첫 번째 사람은 끔찍한 Ashtabula 재난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필립 블리스(Philip Bliss)였다.
전쟁이 끝난 후 휘틀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Elgin Watch Company의 재무 담당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10년도 채 안 되어 전도 현장에 들어섰다.
이 기간동안 그는 음악가 Phillip Bliss 및 James McGranahan과 함께 작업했다.
그의 딸 메이 무디(May Moody)도 그의 가사 일부에 작곡을 하였다.

 

휘틀은 1875년에 ‘Christ is All’"이라는 첫 번째 찬송을 썼다.
그는 음악을 설정하기 위해 그것을 블리스에게 주었고 열차 사고로 블리스의 죽음 이후 그 가사는 그의 논문에서 발견되었고 나중에 휘틀의 노래 동반자로 블리스를 계승한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에 의해 음악으로 설정되었다.
그의 초기 찬송 중 더 많은 수는 맥그라나한(McGranahan)이 작곡했다.
그의 절묘한 음악은 복음 찬송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고 있다.
휘틀의 거의 모든 작품은 ‘El Natha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의 후기 찬송가 중 일부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이들 중 대부분의 음악은 그의 딸인 메이 휘틀(May Whittle Moody)이 작곡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 찬송도 딸인 메이가 작곡한 것이다.

 

휘틀은 자신의 찬송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결코 메시지가 없는 찬송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의미 없는 읊조리는 찬송에 불과한 찬송이 너무 많습니다.
선을 행하려면 찬송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하십시오."
휘틀은 또한 복음 찬송의 존엄성은 재료뿐 아니라 구성면에서도 그가 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으며, 박자나 리듬의 어떤 규칙도 무시하지 않았다.
휘틀은 오래된 교회 찬송을 크게 존경했고 그것을 모든 찬송가 작가들의 표준으로 여겼다.
그는 약 200곡의 찬송을 작곡했는데, 무디는 “내 생각에는 휘틀 소령이 금세기 최고의 찬송가를 쓴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니엘 휘틀은 1901년 3월 4일 매사추세츠주 노스필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https://youtu.be/TNLg2D5ryug

 

작곡자: 메이 휘틀 무디(May Whittle Moody, 1870-1960)
메이 휘틀은 1870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쿡카운티(Chicago, Cook County, Illinois)에서 다니엘 휘틀의 딸로 태어났다.
메이는 매사추세츠의 노스필드 스쿨(Northfield School : DL Moody가 설립)에 다녔으며, 후에 오하이오주 오벌린에 있는 오벌린 칼리지에 다녔다.
그 후 그녀는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원(1890-91)에 다녔다.
그녀는 가수, 오르간 연주자, 작곡가, 찬송가 편집자가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드와이트 L 무디의 전도 활동을 도왔다.
1894년에 그녀는 무디의 아들인 William Revell Moody와 결혼하여 아이린, 드와이트, 베아트리체, 버지니아의 네 자녀를 두었다.
메이와 그녀의 남편은 매사추세츠주 노스필드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그녀의 남편은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를 이끌었다.
그녀는 집에 오르간이 있었고, 아버지의 찬송가 가사에 필요한 몇 곡을 작곡하여 아버지와 협력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그녀의 아버지 다니엘이 그들과 함께 살았다.
메이는 1963년 매사추세츠주 이스트 노스필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https://youtu.be/tDmoIErLjXs


https://youtu.be/b7b0cf_kM8c

 

찬송곡조(Hymn Tune): MOMENT BY MOMENT
이 찬송곡 <Moment by Moment>의 작곡자 메이 휘틀 무디는 작사자인 휘틀의 딸로서 무디 선생의 아들 윌 무디(Will R. Moody)와 결혼했다.
작곡자의 첫 이름이 대부분 May로 되어있으나 어떤 기록에는 Mary로 된 곳도 있다.
dl 곡은 1893년에 비글로메인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으며, 메이는 자신의 오르간으로 이 찬송을 작곡하였다.​

 
https://youtu.be/zskZFAqQ4Bk

 

[찬송가 작사 배경]
시카고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을 때, 런던의 평신도 설교자인 헨리 발리(Henry Varley)가 휘틀 목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헨리 발리는 찬송가에 대해 언급하다가 호크(A. S. Hawks)가 지은 찬송시 ‘매시간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I need Thee every hour : 우리말 찬송가 ‘주 음성 외에는’)의 가사를 혹평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나는 주님을 매시간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매순간(every moment)마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휘틀은 대단한 영감을 순간적으로 받게 되었고 펜을 들어 ‘매순간마다’(Moment by Moment)라는 후렴 부분을 적어 나갔다.

 

Moment by moment I’m kept in Hs love;
Moment by moment I’ve life from above;
Looking to Jesus till glory doth shine;
Moment by moment, O Lord, I am thine.
시시때때로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시시때때로 나는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네.
영광이 빛날 때까지 예수를 바라보오니
시시때때로 오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휘틀은 조금 후에 4행시 5절로 되어있는 이 찬송 원고를 생키에게 가져오면서, 고급 종이에 500장을 인쇄하여 그의 친구들에게 배포하면 가사와 악보 모두에 대한 저작권을 생키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후에 윌리엄 무디(Will R. Moody)와 결혼한 그의 딸 메이가 이 찬송시에 찬송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생키는 그 찬송을 영국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도 워싱턴에서와 같은 날 저작권이 보호되었다.
영국에서는 이 찬송이 큰 인기를 끌었다.
남아프리카의 유명한 앤드류 머레이 목사의 손에 넘어간 후 런던을 방문한 그는 이 찬송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으로 채택했다.
1년 후 머레이는 노스필드를 방문했고, 교회에서 남성들을 위한 모임을 갖는 동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찬송인지 알고 싶었고, 생키가 그것을 낭송했을 때 나는 생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사님, 그 찬송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500야드 떨어진 곳에서 쓰여졌습니다’”
수년 동안 머레이 목사(Dr. Murray)는 그의 아내에게 거의 모든 모임에서 이 찬송을 부르게 했다.

 
https://youtu.be/fSTJAEelGT8

​[가사 영어원문]
Dying with Jesus, by Death Reckoned Mine
 
1
Dying with Jesus, by death reckoned mine;
Living with Jesus, a new life divine;
Looking to Jesus till glory doth shine,
Moment by moment, O Lord, I am Thine.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나의 죽음으로 지불되었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 거룩한 새 생명이네.
영광이 빛날 때까지 예수를 바라보니
시시때때로, 오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Refrain:
Moment by moment I’m kept in Hs love;
Moment by moment I’ve life from above;
Looking to Jesus till glory doth shine;
Moment by moment, O Lord, I am Thine.
시시때때로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시시때때로 나는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네.
영광이 빛날 때까지 예수를 바라보오니
시시때때로 오 주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2
Never a battle with wrong for the right,
Never a contest that He doth not fight;
Lifting above us His banner so white;
Moment by moment I’m kept in His sight.
옳은 것을 위해 부정하게 싸우는 일은 결코 없으며,
주님이 싸우지 않는 경쟁은 결코 없네.
하얀 주의 군기가 우리 위에 높이 들리우니
시시때때로 나는 주의 시야에 머물게 되네.

 

3.
Never a trial that He is not there,
Never a burden that He doth not bear,
Never a sorrow that He doth not share,
Moment by moment, I’m under His care.
주님이 계시지 않는 시련이 결코 없으며
주님이 감당하지 않는 짐이 결코 없도다.
주님이 나누지 않는 슬픔이 결코 없으니
시시때때로 나는 주님의 돌보심을 받네.

 

4
Never a heartache and never a groan,
Never a teardrop and never a moan;
Never a danger but there on the throne,
Moment by moment He thinks of His own.
가슴 아픈 일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신음도 없네.
보좌에 앉아 계시기에 결코 위험하지 않네.
시시때때로 주님은 주의 일을 생각하시네.

 

5
Never a weakness that He doth not feel,
Never a sickness that He cannot heal;
Moment by moment, in woe or in weal,
Jesus, my Savior, abides with me still.
주께서 느끼시지 않는 약함이 결코 없으며
주께서 고치실 수 없는 병도 결코 없네.
시시때때로 비통할 때나 행복할 때
내 구주 예수는 여전히 나와 함께 거하시네.
 
https://youtu.be/l6EhnCSIku4


https://youtu.be/AX8UCy95Ka4


https://youtu.be/Dv0XCW4FbME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29 KPM이정건: 아멘 🙏
    고난주간에 걸맞는 귀한 찬양입니다..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30 서은경: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지같은 저를 위해
    내가 죽을때 까지
    지키신다는💦
    이 엄줌하고
    고귀한 말씀을
    주시니
    몸둘 바를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