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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묵상

찬송가 묵상 #257 내 평생에 가는 길 (It is Well with My Soul.)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17|조회수236 목록 댓글 5

찬송가 묵상 #257
내 평생에 가는 길
(It is Well with My Soul)

 

찬양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영어제목: It is Well with My Soul.
작사자: 호레시오 게이츠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
작곡자: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
찬송곡조(Hymn Tune): VILLE DU HAVRE
찬송가사: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3.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4.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https://youtu.be/yZOiad41Gx4

[찬송 묵상]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시편 23:6)

 

이 찬송은 엄청난 불행을 당한 사람이 불행의 와중에서 지은 승리의 찬송이다.
아들과 재산과 네 딸을 잇달아 잃은 슬픔 속에서 작사자가 가지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슬픔 중에 평안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작사자는 네 딸이 사고를 당해 죽은 해역을 지날 때 하나님께 밤새 절규했다고 한다.
그 결과 평안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무언가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사자인 스패포드의 삶을 살펴보면 구약의 욥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고난이 겹쳐 있었다.
밤새 울부짖는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어떻게 경험했을까?
아마도 부르짖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을 보시며 가슴을 찢고 우셨던 하나님 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을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패포드는 자신이 겪은 비참한 상황에서도 ‘내 무력한 상태를 그리스도가 알고 계시며 주의 보혈이 내 영혼을 위하여 흘렸다’는 이 복된 확신을 붙들었는 것이 그의 승리요 축복이 되었으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10에서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네 자식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이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그 아이들을 삼킨 그 바다 위를 지나가는 아버지의 비통한 마음을 무엇에다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비통한 심정으로 밤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은 결과로 얻어진 평안이니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욥의 고백을 기억한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依賴)하리니”(욥기 13:5)
스패포드의 고백의 기록도 동일하다.
“내게 어떤 희생이 올지라도 주를 의지하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스패포드 부부가 서로 만났을 때 부인이 한 말에서 우리는 승리자의 귀한 믿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나는 내 아이들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지요.”
병중에나 건강 중에서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고국에서나 해외에서, 육지에서나 바다에서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주관하시면 언제나 순응하겠다는 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리라.

​스패포드 부부의 네 딸은 대서양 한복판에서, 작곡자 블리스 부부는 오하이오주의 기차 추락 사고로 아쉬타불라 강물 속에 불탄 재로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갔다.
그러나 비극으로 시작하여 비극으로 끝나는 동안 탄생한 이 찬송은 성도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많은 고난 속에서 충성된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힘있게 부르는 ‘내 영혼 편하다’ 이 찬송가는 오늘도 많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아가는 승리의 영적인 힘, 평안을 얻게하는 찬송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이처럼 이 찬송은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종종 삶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싶을 때 간증의 찬송으로 사용하면 좋은 찬송이다..

 

이 찬송이 우리나라 찬송가에 처음 채택된 것은 <신편 찬송가, 1935>인데 그때의 번역 가사가 지금까지 그대로 불리고 있다. ​
이 찬송은 우리 찬송가와 동일하게 미국찬송가에서도 4절까지 많이 부르고 있는데, 원문 6절이 4절로 되어 있다.
가사와 함께 뛰어난 선율의 고요한 흐름 때문에 애창하는 찬송가가 되었으며, 원곡에 화음을 붙여 중창곡으로 널리 애송되는 찬송가가 되었다.

 
https://youtu.be/7oCN8mu8FCA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호레시오 게이츠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
스패포드는 1828년 미국 뉴욕주의 노드트로이(Northtroy)에서 내어났다.
법률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되어 1856년 뉴욕에서 시카고로 이주해서 개업했으며 성공한 변호사로 활동했다.
스패포드는 변호사이자 대형 로펌의 수석 파트너였다.
한편으로 린드(Lind)와 시카고의대에서 법의학을 강의하기도 했고 시카고장로교회의 평신도로 충성스럽게 봉직하기도 했다.
1861년 스패포드는 시카고에서 노르웨이 스타방 에르 출신의 안나 라르센과 결혼했다.
스패포드는 전도자 무디(Dwight L. Moody)의 지지자이자 친구였다.
스패포드는 1871년 봄 시카고 북부 부동산에 투자했으나 1871년 10월 시카고 대화재로 도시가 잿더미가 되어 스패포드가 투자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는 상심한 아내와 네 딸과 같이 유럽으로 위로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으나 공교롭게도 화재로 인하여 자신이 봉사하고 법정 관리를 맡은 무디교회도 불타버리고 말아 이것의 잔무처리로 가족만 떠나보내게 되었다.
1873년 11월 15일, 프랑스 초호화 여객선 빌 드 아브르(Ville de Havre)호는 뉴욕항을 예정대로 출발했다.
일주일쯤 항해하다가 22일 새벽 2시 모든 선객들이 잠들어 있는 시각에 영국의 철선 록키안(Lochearn)호와 정면충돌하여 30분만에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226명의 희생자를 낸 후 구조된 승객들은 웨일즈에 도착했는데 스파포드의 가족은 부인만 살고 나머지 네 자녀는 고스란히 수장되고 말았다.
연속적인 재난에 망연자실한 스패포드였지만 곧 신앙으로 이를 이겨냈다.
오히려 위로하러 온 친지들을 위로하며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It is well with my soul)”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스패포드는 유일한 한편의 찬송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이다.
이후 스패포드는 아내인 애니(Anna)에게서 Horatio Goertner(1875년 11월 16일), Bertha Hedges(1878년 3월 24일), Grace(1881년 1월 18일)의 세 자녀를 더 낳았다.
1880년 그들의 아들 호레이쇼마져 4세의 나이에 성홍열로 죽고 말았다.
이것까지 스패포드는 믿음으로 이겨냈다.
마치 욥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스패포드의 신앙적 태도를 일부 주변에서는 위선으로 보고 비난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정신병자처럼 여기기도 했다.
이 마지막 비극은 Spafford가 물질적 성공에서 벗어나 평생의 영적 순례를 향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 일에 마음이 상한 스패포드는 아내와 나머지 가족을 이끌고 1881년 예루살렘으로 아예 이주해 버렸고 1881년 8월, 스패포드 가족은 예루살렘에다 성인 13명과 어린이 3명으로 구성된 그룹의 일원으로 예루살렘에 정착하여 미국인 거류지(American colony)를 만들어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장로교를 떠나 집에서 기도회를 열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메시아닉 종파는 미국 언론에 의해 "이기는 자"라고 불렸다.
말년에 이르러 지나친 신비적 믿음 때문에 스스로 <메시아>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고생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지나친 열망에 사로잡힌 생활을 하다가 1888년 59세의 나이로 말라리아로 예루살렘 거주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 묘지에 안장되었다.

 
https://youtu.be/1GuBc6F7auA

 

작곡자: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
필립 폴 블리스는 펜실베니아주 클리어필드 카운티 할리우드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매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던 아이작 블리스(Isaac Bliss)였고, 그의 어머니는 Lydia Doolittle이었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노래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었다.
그의 여동생은 가스펠 가수, 가수, 작곡가 및 복음전도자인 메리 엘리자베스 윌슨(Mary Elizabeth Willson) 이었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블리스의 가족은 1844년에 오하이오주 킨스먼으로 이주한 후 1847년에 펜실베니아로 돌아와 크로포드 카운티의 에스피빌에 먼저 정착했고 1년 후 티오가 카운티에 정착했다.
블리스는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웠다.
10살 때 가족 부양을 위해 야채를 팔던 블리스는 처음으로 피아노를 들었다.
11세에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는 목재 캠프와 제재소에서 일했다.
일하는 동안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불규칙적으로 학교에 다녔다.
1857년 블리스는 노래를 가르쳤던 JG 타우너(JG Towner)를 만났다.
타우너는 블리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첫 번째 정식 음성 훈련을 제공했다.
그는 또한 그를 음악교사가 되도록 설득한 William B. Bradbury를 만났다.
그의 첫 번째 음악 작품은 플루트 가격으로 판매되었으며, 1858년에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로마 아카데미에 임명되었다.
1858년 로마에서 블리스는 루시(Lucy J. Young)를 만났고, 그는 1859년에 결혼했다.
그녀는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재능개발을 격려했다.
그녀는 장로교인이었고 블리스는 그녀의 교회에 등록하였다.
22세에 불리스는 순회 음악 교사가 되었다.
1864년에 블리스는 시카고로 이사했다.
시카고로 가 음악가 Dr. George F. Root에게 고용되면서 주일학교를 위해 곡을 쓰게 된다.
감리교 신자였던 그는 제1회중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감리교 주일학교 선교사가 되었다.
이런 배경 덕분에 그의 복음성가들은 많은 어려운 이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게 되었고, 영어권 국가 대부분에서 그의 복음성가들은 폭넓은 인기가 있는데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그랬다.
블리스는 시카고의 유명한 설교자인 DL 무디의 인정받는 친구였다.
노골적인 노예폐지론자인 그는 미국 남북전쟁 동안 중위로 복무했다.
스패포드의 시에 곡을 붙여 이 천송의 진가(眞價)를 높이기 위함인지 이 성가곡이 작곡된 지 1개월 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그 감격이 생생한 때에 또 하나의 큰 희생이 뒤따랐다.
즉 1876년 12월 29일 금요일 오후 블리스씨 부부가 두 아이들을 모친에게 맡겨 놓고 뉴욕주 버팔로(Buffalo)에서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새 집회가 연속적으로 열리기로 계획되어 있었고, 블라스는 찬송 인도와 독창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날 밤 8시 기차가 오하이오주 아쉬타불라(Ashtabula)에 다다랐을 때 산골짜기를 횡단하는 교량이 무너져 기관차와 7량의 객차가 그만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강으로 곤두박질하고 말았다.
기관차가 강물 속으로 내던져지면서 불은 큰 화재로 강물 위는 뒤범벅이 되었다.
죽음을 겨우 모면한 사람들은 무너진 교량의 들보나 비틀어진 목재에 깔려 꼼짝못하고 불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160명의 승객 중 생존자는 겨우 14명뿐이었고 59명의 시체만이 신원이 확인 되었을 뿐 나머지는 생사조차 알 길이 없이 실종되었다.
생존자 중의 하나가 말하기를 블리스씨는 겨우 차창을 부수고 나왔으나 그의 아내가 화물에 깔려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 구하고자 곁으로 돌아가 둘이 같이 불어 닥치는 화염에 휩싸여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3일간 그의 친구들이 사고 현장에 머물면서 그들의 시신을 찾으려 하였으나 재속에서 여러 뭉치의 물품과 강 밑에서 보따리 몇 개를 끌어 올렸을 뿐 블리스씨 부부의 시체나 그의 소유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세상에 묘가 없다.

 
https://youtu.be/cM4vBsBPbPE

 

찬송곡조(Hymn Tune): VILLE DU HAVRE
이 찬송곡 IT IS WELL(原題 : VILLE DE HAVRE)는 블리스가 1876년에 곡을 붙여 생키와 같이 펴낸 <복음찬송가(Gospel Hymns)>에 수록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블리스는 피해를 입은 선박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곡을 비르 두 하베르(Ville Du Haver, 피난의 마을)라고 불렀다.
블리스도 재난을 당한 열차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내를 구하려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영영 나오지 못한 비애의 음악가로서 이 찬송곡을 작곡했다니 우연은 아닌 것 같다.

 
https://youtu.be/UAchmvHSbFA


https://youtu.be/v8_hnSxj9Xk

 

[찬송 배경]
187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참석하였다.
그 회의가 끝나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 안 있으면 뉴욕항을 출발하는 프랑스 여객선 ‘비르 두 아베르(S. S. Ville du Havre) 호를 타려고 서둘고 있었다.
1873년 11월 15일 예정대로 그 여객선은 출발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이 찬송가의 작시자 호레시오 게이츠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의 부인과 네 딸 애니(Annie, 12세), 매기(Maggie, 7세), 베시(Bessie, 4세) 그리고 16개원이 된 타네타(Tanetta가 타고 있었다.
사실은 스패포드 교수도 같이 가기로 하였었으나 얼마 전 시카고의 대화재로 그의 모든 재산이 소실될 때 그가 회계 집사요, 주일 학교 교사로 받들던 무디 교회도 소실되어 교회 건물 재건과 자기 사업의 뒷정리 및 지불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도저히 같이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부인의 건강 회복은 그에게 충격을 준 그 복잡한 환경을 떠나는 것이라는 가정의사의 권고를 생각할 때 도저히 연기할 수가 없었고, 더욱이 당시 가장 호화선으로 알려진 여객선에 많은 크리스찬들과 동행하게 되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수일 내로 그들의 뒤를 따라 가서 프랑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지 출발 바로 직전에 배에 올라와서 그들의 선실을 선수(船首)쪽으로 옮겨주고 굳바이 키스를 하고 내려갔다.
기쁨이 가득한 승객들을 태운 배는 1주 동안 순항하다가 11월 22일 새벽 2시 많은 사람들이 다 꿈나라로 가 있는 동안에 영국의 철갑선 록키안(Lochearn)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그토록 호화스럽던 여객선은 기울기 시작하더니 30분도 못 되어 226명의 목숨을 실은 채 가라앉고 말았다.
배가 침몰하기 전 스패포드 부인은 그 수라장 속에서 네 아이를 이끌고 갑판 위로 올라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사랑하는 네 아이들의 목숨을 건져 주소서! 그러나 그들이 죽는 것이 당신의 뜻이옵거든 우리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게 하소서...”
간절한 기도를 정신없이 드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그 와중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배와 더불어 물속에 잠겼고, 스패포드 부인은 실신하여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익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록키안호의 구명정이 구조하였다.
9일 후인 12월 1일 록키안호에 의해 구조된 생존자들은 웨일즈(Wales)의 카디프(Cardiff)에 도착하였다.
스패포드 부인은 시카고에 있는 남편에게 ’혼자만 구조되었음(Saved alone)‘이란 전보를 보냈다.
그의 전 재산을 휩쓸어간 큰 시험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더 큰 시험이 꼬리를 물고 몰아닥쳤으니 잠시 그는 정신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의 전 재산을 잃었을 때는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같이 당한 것이므로 이해가 되고 참을 수 있었으나 그 재난이 스패포드 자신의 신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밀어닥쳤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제 프랑스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되었고 다시는 사랑하는 그 애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교회 가까운 친구들은 이 비보(悲報)를 듣고 달려와 그를 위로하였다.
이 때 그는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I am so glad to trust the Lord when it will cost me something)” 라고 하며 위로하러 온 교우들에게 답했다.
그는 네 아이를 잃고 허둥대고 있을 부인을 생각하며 곧 그를 데리러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12월 초 그가 가장 빠른 선편으로 영국으로 가는데 어느 날 그가 타고 가던 배의 선장이 스패포드를 그의 선실로 초대했다.
거기서 선장은 “지금 우리는 당신의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그 위를 통과하는 중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스패포드는 자기의 선실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씨름이 시작되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기에게 어찌하여 그토록 큰 시련을 주느냐고 따졌다.
그 많은 재산을 다 쓸어가고 무엇이 부족하여 사랑하는 네 아이들마저 데려가느냐고 따졌다.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찌 그리도 가혹한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심한 갈등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밤이 되도록 울부짖었다.
해답을 얻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울부짖는 순간 네 아이의 환상은 활동사진을 보는 듯 차례로 지나갔다.
그의 마음에는 심한 폭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밤 자정이 훨씬 넘도록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심한 폭풍이 잔잔해지는 순간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평화가 그를 감싸 안았다.
주위가 지극히 고요하면 아주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이 지극히 잔잔하면 하나님이 속삭이는 작은 음성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한 시로 응답해 주셨으니 그 시가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내 영혼 편하다(It is well with my soul)‘인 것이다.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billows roll -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평화가 강같이 내 길에 따를 때나
슬픔이 파도처럼 굽이칠 때
내 운명이 무엇이든 간에 주께서 내게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주셨도다.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그때 마침 무디와 생키(Ira David Sankey)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Edinburgh)에서 대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스패포드의 비보를 듣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리버풀(Liverpool)로 찾아갔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리니 나의 영혼이 편하다(It is well: The will of God be done!)”라는 말을 듣고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 해 스패포드 부부가 시카고로 돌아왔을 때 오랫동안 믿음의 벗이었던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블리스는 그토록 엄청난 배경을 가진 이 가사 내용에 크게 감동되어 곧 곡을 붙여 1876년 생키와 블리스가 공동 편찬한 <복음 찬미 집 (Gospel Hymns)> 제2권에 처음 수록하였고 같은 해 12월 어느 금요일 페어웰 홀(Farewell Hall)에서 1000명이 넘는 많은 목회자들이 모인 가운데 블리스 씨의 독창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https://youtu.be/rhaTIu_k4w0

[가사 영어원문]
It is Well with My Soul.
1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강 같은 평화가 나의 길에 찾아올 때나
바다의 큰 파도같은 슬픔들이 몰려올 때도
나의 운명이 어떠할지라도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셨네.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Refrain (may be sung after final stanza only):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2
Though Satan should buffet, though trials should come,
Let this blest assurance control:
That Christ has regarded my helpless estate,
And has shed his own blood for my soul.
비록 사탄이 희롱하고, 시련이 닥쳐와도
그리스도가 나의 무력한 상태를 보시고
내 영혼을 위해 주님 자신이 보혈을 흘리셨다는 .
이 축복받은 확신이 주관케 하소서.

 

3
My sin oh, the bliss of this glorious thought!
My sin, not in part, but the whole,
Is nailed to the cross, and I bear it no more;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O my soul!
내 죄, 오 이 영광스러운 생각의 축복이
내 죄의 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 죄를 나는 더 이상 품지 않게 되네.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을 찬양하라. 오, 내 영혼아!

 

4
For me, be it Christ, be it Christ hence to live:
If Jordan above me shall roll,
No pang shall be mine, for in death as in life,
Thou wilt whisper Thy peace to my soul.
요단이 내 위에 흘러가도
나를 위해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든지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에도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리니
주님이 내 영혼에 주님의 평화를 속삭이심이라.

 

5
But Lord, 'tis for Thee, for Thy coming we wait,
The sky, not the grave, is our goal;
Oh, trump of the angel! Oh, voice of the Lord!
Blessed hope, blessed rest of my soul.
그러나 주님, 우리의 목표는 무덤이 아니라 하늘이기에
우리는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나이다.
오, 천사의 나팔이여! 오, 주님의 음성이여!
내 영혼의 복된 희망이며, 복된 죽음이라.

 

6
And Lord, haste the day when the faith shall be sight,
The clouds be rolled back as a scroll;
The trump shall resound, and the Lord shall descend,
Even so, it is well with my soul.
주님, 믿음이 나타날 그때 그날을 서두르소서.
두루마리처럼 구름을 접으시고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 주님이 강림하시리니
“그럴지라도” 내 영혼은 평안해.

https://youtu.be/bOag79MdXBg


https://youtu.be/TpktC3rRZc4


https://youtu.be/HyJuyJuJz-s


https://youtu.be/RsZ1I32qlDM



https://youtu.be/krf7N7rRIV4


https://youtu.be/VbNm_Kdez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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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최정미: 아 진정한 평안은 이런 형언할 수 없는 시련을 거쳐 오는 거군요
  • 답댓글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이런 상황도 하나의 경우이라 생각되네요.
    다른 찬송작가의 경우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경우도 있구요.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홍석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리 자세히 조사하고 연구하셨다니, 경의를 표합니다!^*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김양규: 은혜론 곡 묵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소서
  •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8 서은경: 아멘 아멘 아멘
    .
    내 인생곡이라
    할 정도로
    좋아하는 찬송시

    그 옛날 젊은 시절 함께한 모교회 성가대가
    그립네예
    이제 나이가 그래서인지...ㅎ
    옛날이...💦
    근데 되돌아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도
    기쁘고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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