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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의 필독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주식투자 스승들 챕터.2

작성자R=VP 부자|작성시간21.08.26|조회수338 목록 댓글 8

 

 

 

                타고난 바겐헌터



  존 템플턴은 1912년 미국 테네시주 윈체스터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다. 그는 어릴 적부터 검소하고 근면하며 낙천 적인 사람이

었다. 템플턴의 아버지 하비 템플턴은 변호사였는데 변호사와 사업을 병행

했다. 그는 그의 형처럼 예일대에 입학했다. 존 템플턴은 예일대 경제학과를

거의 수석에 가까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

에서 로즈 장학금으로 법학을 공부 했다. 템플턴이 대학 2학년 때인 1931년

대공황 시기에    아버지가 단 돈 1달러도 지원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대학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템플턴은 포커 게임에 아주 뛰어났는데 포커 게임을 연구해 포커 게임으로

학비의 25%를 벌고 나머지는 장학금과 일을 해서 벌었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35개국을 돌아볼 생각으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경비의 반은 포커

게임으로 딴 돈이다. 유럽 전역, 중동, 인도,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돌아

봤다. 이것은 교육의 장이었다. 템 플턴이 글로벌 투자자가 된 것은 바로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템플턴은 어머니 벨라 템플턴으로부터

여행의 중요성을 배웠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던 사람이

없었던 20 세기 초 해외주식 투자에 나선 배경에는 바로 그의 여행 경험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템플턴과 그의 아내 주디스는 1937년 결혼 했다. 두 사람은 세 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아내 주디스는 1951년 모터바이크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템플

턴은 돈을 벌면 저축을 하고 항상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는 저축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평생 동안의 생활습관 중 하 나는 싼 것을 찾아서

사는 것이었다. 템플턴은 아내와 둘이서 아주 싼 것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싼

것을 찾아다녔다. 이 부부는 그야말로 싼 것, 즉 바겐세일을 하는 것을 사는

바겐헌터였다. 그들은 가구없는 뉴욕 아파트에 이사 와서 아주 싼 가구를

찾아다녔다. 이 젊은 부부아파트 가구를 사는데 25달러를 썼다. 그것은 2006

년 가치 로 351달러였다. 200달러짜리 침대 겸용 소파를 5달러에  샀다. 템플

턴 부부가 싼 물건을 사러 다니는것은 전세계에 싼 주식을 찾으러 다닌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바겐헌팅은 그들의 생활 습관이었고 나중에

는 템플턴의 아주 핵심적인 투자전략이 됐다.템플턴은 1938년 월스트리트에서

투자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세 계에서 가장 크고성공적인 국제 투자 펀드를

만들려고 했다. 템플턴은 1954년 뮤추얼 펀드계에 들어갔다. 그는 뮤추얼 펀드

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템플턴 그로스 펀드Templeton Growth Fund 를 설립

했다. 템플턴 그로스 펀드 클래스 A Templeton Growth Fund Class A에 초기인

1954년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1992년에는 이것은 200만 달러가 됐다. 이

시점에서 그는 템플턴 펀드 계열사를 프랭 그룹Franklin Group 에 매각했다.                                                                          

  이것은 증시에서 지리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증시에서 저 가의 주식을 매수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안전하 게 미국 내에서만 투자할 수도

있다. 하지만 S&P 500에 투자했다면 1만 달러로 10만 935달러밖에 수익을 올리

지 못했을 것이다.                                                     

                                   

  템플턴은 글로벌로 다양화된 뮤추얼 펀드를 가장 먼저 사용함으로써 억만 장자

됐다. 그의 템플그로스 펀드는 1960년 중반에 가장 먼저 일본에 투자한

펀드다. 그는 주식 거래에서 기술적 분석을 거부하고 기본적 분석을 선호했다.

그의 투자관과 전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였고 극단적으로는 국가, 산업,

기업이 최저의 상황 즉 바닥일 때 고르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극단적인 비관

주의의 순간'이라고 불렀다. 템플턴은 '군중을 피하라', '거리가 피로 물들 때 사라'

는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가격이 높을 때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템플턴은 재정적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종교와 인간의 본성어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템플턴은 단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운 일을 하면서

성공한다는 철학을 가졌다. 그는 위대한 자선사 업가로 인류애를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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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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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그랑뻬르 | 작성시간 22.02.04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복희 | 작성시간 22.03.01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전랑이 | 작성시간 22.07.16 쌀사비팔 쌀사비팔 쌀사비팔~
  • 작성자한마디로 나야 | 작성시간 22.09.10 감사합니다
  • 작성자세인 | 작성시간 23.08.17 뮤추얼 펀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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