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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뒷이야기 '장미의 이름'

작성자이준호|작성시간19.08.13|조회수152 목록 댓글 2

스코틀랜드출신 헐리우드스타 숀 코넬리 정말 멋지다 007 그 이상이다.


그가 주연한 영화중 '장미의 이름'이란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추리소설형식의 영화이다.


그는 어느 수도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범을 쫒던 중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지 않았다는 수도원 원로의 믿음이 사실은 거짓을


우상화했다는 주장이 틀리다는 고대도서관의 책들이 발견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 책을 발견한 수도사들은 연쇄살인하고 자신도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장서들과 함께 불속으로 사라지며 끝나는 영화였다.


고3시절 담임은 스키부대장교출신이었다.   우리집이 잘살고 내가 독자고 공부도 별로라 고2때부터 협박을하다 고3때도 담임으로 부


임해 학년초에 부모님을 어느 음식점으로 부른다 저녁에 담임을 만나고 온 부모님 겁에 질리셨다 눈이 360도 돌아가는 무서운 사람이


라고 그 후 고액과외를 1년간했고 그 댓가로 대입원서 써주었다.


학년초에 난 학교도서관 사용하려고 신청해놨는데 담임 그걸 보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먹은게 있으니까 생색내려고 새치기를 시켜


주었다. 어느날 내가 나중에 신청했는데 자기보다 먼저 도서관 배정받은걸 안 친구가 몇대친다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벙어리냉가슴


만 앓았다.


대학때 호프집에서 그 친구 우연히 만났는데 고3때 담임 자기가 존경하는 분이라 찾아뵙고 왔단다. 만일 이 친구가 그 뒷면을 모두 봤


다면 그래도 찾아갔을까


신화적 힘뒤에 기능적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모르게해야 한다.


이것이 발각되면 신화적 힘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나는 역사를 말하기 위해 위의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조선,성서,한일간의 관계까지 세밀히 파악해보면 답이 나올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세계사란 승자의 자화자찬,자기변명을 집대성한 것 아니던가


나치주의를 설계한 요제프 괴벨스의 말 두 개만 인용해보겠다.


'대중은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으면 넘어온다','대중에게 거짓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면 나중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바로전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꽃피웠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영국등 여러곳에서 그런 주장이 있었지만 루터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까지 라틴어로만 쓰여졌던 성서를 독


일어로 번역해 필사가 아닌 금속인쇄술로 찍어내 대중에거 널리 읽혔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칭기스칸도 히틀러보다 더 잔인했지만 그 당시엔 인본주의란 인식이 없었기에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고대 아테네에선 투표를 성인남성만했다 불공평했다 비평하지만 그 당시엔 아이나 여성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


다 우리도 '방정환'선생님이 어린이란 개념을 도입하기 전까진 그런 개념이 없지 않았던가


지금의 시각으로만 고대민주주의를 해석하니 그들은 편협함으로 그리스민주주의에 자신있게 돌을 던졌던 것이다.


조선도 역성혁명을 이루었다고 이성계 훌륭한 왕이라 배웠다.


그는 단지 고대의 전두환일뿐인것을 전두환이 600년전에 태어났으면 전씨왕조를 여는것이고 이성계가 600년후에 태어났으면 살인마


가 되는것 아니던가


조선의 왕들은 본국에서 파견한 총독이 아닌 헤롯왕같이 현지인으로 나라를 다스리게했던 중국의 지방정부였을 뿐이다. 그래서 독립


문이 세워졌고 강화도조약1조에선 조선은 독립국이라 명문화하지 않았던가 물론 일본이 조선을 먹으려는 수작이었다해도 사실은 사


실이다.


조선은 그저 뒤를 봐주는 댓가로 국권을 중국에게 넘겨준 지금의 조선족자치주에 외교권과 군사권이 더해진 중국의 일개 지방정부였


을 뿐이다.


노태우가 집권했을때 12.12를 신문으로 변명했고 이성계의 역모를 교과서로 변명한게 다른점일 뿐이다.


다모의 이서진 너무 멋있고 다모의 종사관 충신이다 역당들이 제주도를 넘겨주었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그가 섬기는 임금의 조상은 요


동을 넘겨주고 나라이름을 지어달라고 사정하지 않았던가 요즘 친미정권이 세계에 많지만 그 어떤 나라도 나라이름 지어달라고 애걸


하진 않는다 고대에도 호프집의 그 친구나 다모의 종사관 마찬가지로 테레사 수녀 같은 성자들도 우리주변엔 많다 "종교는 통치계급


이 하위계급을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히로히토도 패전후 그랬고 밀림에서 잡힌 잉카의 마지막 황제인 아타우 알파도 사형당하기 전에 그랬다 "나는 신이 아니다"


칭기스칸의 아들 우구데이가 말한다 영화 트로이에서 신하가 말한다 '신탁을 받았다'고 고대엔 신탁 중세엔 입소문 현대엔 방송대담


이나 신문,영화등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하며 정권을 유지해 나간다.


'파이스'란 단어가 있다 성서원전엔 창문에서 떨어진 유두고를 파이스라는 한 단어로 묘사되었는데 이 말은 대개 '아이'를 의미한다


고대엔 창틀이 꽤 넓어 잘 수도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었기에 오랜 역사를 가진 사상들을 취합했고 출처가 다양한 영적지혜를 모아 그들만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관된 교의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교리를 통합하는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대주교 유세비우스는 269~340년까지 산 콘스탄티누스황제시절의 사람이었다.


호메로스의 '데카메론'도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말고 알려진바 없는 유랑시인으로 혹자는 호메로스의 서사문학이 오래전부터 구전되


었던 전쟁과 영웅에 관한 전승 혹은 여러민족의 전통신화를 한데 묶어놓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그림형제는 동화속에 나올법한 젊은이들이 아닌 괴팅겐 대학의 비교언어학 석학이었고 그들이 독일에 내


려오는 구전설화를 취합해 만든 동화다.


영국의 매니저 브롬스토거는 동유럽을 다니며 무서운 이야기를 취합해 현대의 '늑대인간','드라큘라'등을 탄생시켰다.


구약성서도 사실은 그리스,이집트,메소포타미아등 주변의 여러민족신화를 차용,편집한 것이었다. 고로 아랍이나 유대인은 같은 셈족


으로 '야훼'란 사막의 열받은 유목민 부족장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동서양 사이의 길이 트여 카라반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문물교류가 활발하게 일어


나고 있었고 여기를 통과한 사람중에 예수도 포함된다. 신약성서는 법화경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예수가 불법수행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영취산산상수훈은 나중에 갈릴리 산상수훈으로 재편집되고 [마리아 수태고지]는 [마야왕비


의 탁타영몽도]가 원본이다.


신구약편집부분 몇개만 예로 들어보자 로마인들이 열렬히 숭배하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 12월25일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의 원본은 헤스페리데스정원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의 금단의 과일과 뱀이야기


홍수설화는 수메르의 에리두창세기의 '지우수드라의 홍수설화'가 길가메쉬 서사시의'우트나피쉬팀의 홍수설화'로 다시 구약성서 창


세기의'노아의 홍수설화'로 재탄생된다.


모세의 탄생이야기는 사르곤1세의 이야기를 베낀것이고


모세십계명은 태양신 아톤이 아크나톤에게 내린 18계명이 편집된 것이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은 [마등가녀경]의 '우물가의 마탕가여인'이 원전


[상웅부경전] 마귀가 석가를 여자와 권세와 음식으로 유혹하였다.


[누가복음4:1] 사탄이 예수를 여자와 권세와 음식으로 시험하였다.


붓다의 제자 사리불이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던중 붓다에 의해 확신을 다시하고 끝까지 물위를 걸어건너갔다[본생경 무쌍품]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믿음이 약해 물에 빠지는 것을 예수가 건져주었다 [마태복은 14장25절]


수메르의 마루둑이 조로아스터에 이르러 미트리 로마와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 인도의 마이에트라 토번국(현 티벳)을 거쳐 중국


으로가 미륵으로 변하고 청년예수가 14~29세까지 인도와 토번에서 수행후 근동에 가서 만든 신앙이 메시아신앙 대주교 유세비우


스에 의해 편집되어 니케아공회에서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인하여 국가에서 밀어줌 요즘도 조그만 기업을 국가에서 밀어주면


대기업이 되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함무라비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탈리온이라는 보복법이었다.


헨리포터는 현실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에 반기를 든 환타지소설이고


삼국지는 주변민족에게 중화민족주의를 은근히 심어주기 위해 원명교체기에 만든것으로 삼국지연의는 '도원결의'부터 허구이니 뒤에


는 얼마나 허구겠는가 현실에 기반을 둔 고대에 쓰여진 환타지 소설.


구약성경도 메소포타미아,고대이집트,시리아,고대그리스등 주변의 선진민족의 신화를 모방하여 히브리식으로 편집한 현실에 기반을


둔 환타지일 뿐인데 우리는 고대에 쓰여진 건 진짜라고 막연히 믿어버린다.


[삼국지연의]에서 '연의'라는 말은 작가가 비단 스토리를 제멋대로 전개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불편한 진실도 있다.


정사에도 유언비어가 기록되는 일이 있으니 말이다.


삼국지나 성경도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첨삭이 일어나고 삼국지는 나관중에 의해 성경은 콘스탄티누스황제시절 유세비우스에 의해


크게 환타지하게 변했고 우리는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 받아들인다.


불경도 사실은 그 시대의 여러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것이라지 않는가


공자와 제갈량의 이미지도 사실은 동이족 관자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 아니던가


KBS김원장기자가 라디오프로그램에서 한말씀 하셨다"


"사기꾼들 TV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어설프지 않아요"


현재 인도의 고대사도 불교서적에 많이 의존한다고 한다 남아있는 자료가 희박해서 성경도 양서임에는 틀림없다 수많은 세월동안 현


실에 기반을 두고 썼기에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근거를 품고 있으니까


성서에 따르면 유다,사마리아 두 왕국도 차츰 소원해졌고 나중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세계곳곳에서 영어를 쓴다 영어도 토착화되어 영국영어나 미국영어와는 다른 지역색을 띄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경우 이 영어들은 중국어의 방언들처럼 상호 소통마저 불가능해진다. 나이지리아의 피진영어 인도식영어 같은 것들은 각각


의 주류문화로 편입되면서 분화의 길을 계속 걸어가 언젠가는 라틴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여러 로맨스언어들처럼 유관성은 높지만


확고한 독자성을 가진 언어로 갈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같은 로맨스어(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제국내의 각지에서 라틴어가 지방적으로 분화 변천하여 이루어진 근대어의 총칭)와는 달리 영어에서 파생한 언어들은 그 사회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쓰거나 특정한 언어집단끼리의 의사소통에만 주로 쓰일 것이다.


그럼 우리의 실정을 예로 들어보자


고구려,백제,신라 ,가야는 상당한 방언차이가 있었으나 대화는 가능했다.


오늘날 일본표준어는 불과 100여년전 에도(도쿄)에 살던 이에야스장군 직속무사들이의 말을 중심으로 문교부가 만들고 NHK가 보급


시킨 인공언어이다.

경상도,전라도 지역민은 북한보다도 일본의 교토를 중심으로 근기지방의 사람에 가깝게 또한 일본 근기(서쪽)지역인은 열도 동북지


역보다 남한인에 더 가깝다 7세기까지 일본의 유일한 문자인 만요가나는 사실 백제식 이두이다.


772년에 쓰인 문헌에는 아스카문명의 인구중 80~90%가 백제인이라는 기록이 있다.


백강전투이후 한국어는 신라어 중심으로 일본어는 백제어 중심으로 발달해갔다.


6세기 중엽 왜의 사신이 백제여인과 대화한 기록이 {일본서기}에 남아 있다.


신라와 왜 사이에 실질적인 통역이 등장하는 것은 백강전투후 50년이 지난 8세기중반의 일이다.


신라와 일본 수제들은 엘리트코스인 당의 과거에 응시했다. 그러나 큰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은 아무리 노력해도 신라에 견줄 수 없었


다. 신라출신의 유학승 중에 고승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혜초나 지장보살로 숭상받은 신라왕자 김규각등이 있다. 신라인의 과거합격자


수는 최치원을 포함한 과거합격자에 관한 비율은 90인데 비해 같은 기간 일본은 1명이었다.


이는 당나라 음운이 신라와 일본에 끼친 영향의 밀도 비율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니 차라리 일본식이면 어떠냐! 당시 최고의 학자 스가하라는 일본식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자 외쳤다.


이후 일본은 한문의 일본화를 적극 추진하여 종전과 같이 백제식으로 읽고 해석하는 일에 집중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사고는 크게 변치 않았다. 그후 1200년이 지나 명치유신이후 한나라 한을 서양의 양으로 바꾸고 '화혼양재'로


대치하였다.


일본인이 영어를 배울 때도 옛날 한문 학습법처럼 발음교육을 무시했다. 해방후 한국의 대부분의 영어선생님은 일본식 영어교육을 받


았으므로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해석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일본식 영어학습법으로 가르쳐왔다.


그런데 한일은 왜 자꾸 감정싸움을 할까


고대에는 손으로 일일이 베꼐쓰는 필사로 책을 만들었기에 지금처럼 책이 많지않았다 지도자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내용의 책을


모아서 불태웠고 그 책에 쓰여진 역사적 사실은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인류는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의 문화의 뿌리와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문화만 경험하고 감상한다고


교류가 깊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태고시대 일본에는 신사가 없었다.


5~8세기 야마토조정이 중앙집권국가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선주민들이 믿는 뭇신들과 연결을 지어야했기에 자신들의 통치수단으로


신사를 통해 신과 집권층을 연결시켜나갔던 것이다.


지금도 60만 군인의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이걸 다른 부분으로 전용할 경우 한국의교육,문화,복지사업은 눈부시게 향상될 것이다.


그 당시 2~3만을 파병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지원을 했지만 백강전투가 패배로 끝났기에 남는게 없었고 국민의 원성을 감당할 수 없


었기에 본국(백제)과의 연을 끊기 위해 천지천황은 본국과 연결시켜주는 책은 모두 불태우라 명했다.


예로 잉카나 아즈텍을 정복한 코르테스나 피사로등도 이단이라해 원주민의 책을 모두 불태웠고 그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내실


은 주나라 봉건제도가 야기한 지방분권의 폐해를 인식한 진시황은 통일후 각종제도의 통일에 착수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른바 "세상의 모든 책은 동일한 문자를 사용한다"고 하는 문자통일정책이었다. 승상이었던 이사는 진


나라 문자와 합치하지 않는 문자로 쓰인 책은 모두 파기했다고 기록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분서사건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왜 한국에 감정이 많고 자꾸 역사를 왜곡하려할까


어느 심리학자의 이론 하나만 인용해보자.


여러개의 선을 보여주고 마음속으로 길이를 짐작하게했다.


첫번째 집단은 짐작한 수치를 종이에 적고 서명해 실험자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공개하도록 했다. 이 집단은 기


존 결정과 모순되는 새로운 증거의 영향을 거부하고 기존결정을 고수하려했다.


이 집단을 가장 완고한 집단으로 이끈 것도 바로 공개적인 입장표명이었다.


두번째 집단은 짐작한 수치를 금방 썼다가 지울 수 있는 매질패드에 몰래 적었다가 누가 보기전에 얼른 지움으로써 기존결정과 모순


되는 새로운 증거의 영향을 거부하는 기존 결정을 고수하려했다.


세번째 집단은 아예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없이 집작한 수치를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도록했다 기존선택을 가장 쉽게 포기한 집


단은 자신의 판단내용을 적지 않은 집단이었다. 금방 새로운 정보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앞서 '옳다'고 생각했던 결정은 쉽게 번복했


다.


사람들은 일단 어떤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일본은 역사에서 국가적 충격을 받은 사건이 세 번 있었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백강전투 두번은 가마쿠라정권을 몰락시킨 여.몽연합


군 세번은 러일전쟁의 승리


만약 남부지방에 태풍이와 수재민이 많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수재의연금 보


내야지','그 사람들 고생이 많겠네'그러지 않을까 그럼 북한에서 쳐들어와 속초가 점령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우린 누워서 TV를


시청할 정신이 있을까 여몽연합군은 일본에겐 국가적 재앙이었다.


야마토는 고대한국어이고 일본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분석해보자.


야마는 고대어로 산,높은,하늘,신령한 이란 뜻이고 토는 터, 땅,아래,마을이란 뜻이다 즉 하늘밑 신령한 마을, 즉 경북 '고령'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일본도 '태양이 뜨는 땅' 누가 본이 어디냐 그러면 어느지방 어디라 그러지 북위 몇도의 바다위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즉 본은 땅이


다.


한반도에서 봤을때만 성립되는 말이지 일본에서 봤을땐 태양이 뜨는 땅이라는 표현은 하와이나 가능한 표현인 것이다.


세번째 러일전쟁을 이겼다 하지만 배상금은 못 받았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스튜어디스의 1시간의 서비스를 위해 다른 직원 100시간의 노고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전쟁에서 군인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전문가들의 말로는 그 당시 탄약이 부족하여 군인이 탄약노릇을하며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고하니 국력이 얼마나 많이 소진되었겠는



2차대전후 소련에 대한 전쟁보상금으로 일본은 포로들을 시베리아에 그대로 놔두는 결정을했고 십자군전쟁후 남성노동력이 현저히


줄자 우리집안의 노동력을 너희집안에 준다는 의미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결혼식때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입장해 신랑에게


넘겨주는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노동력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일본도 심리학의 첫번째 보기인 자기주장을 말과 행동으로 수도 없이 관철했으니 설혹 한일이동족이란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손 치더라도 끝까지 부인할 것이며 그렇게하고 있다. 현 자민당도 전신이 2차대전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내각의


후신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망언이 만개할 수 밖에 다 이유가 있다.


탈레반 세력이 간다라미술의 대표격인 바미얀 불상을 우상이라하여 로켓포로 완전히 파괴한다.


멋진 모양내기나 경제성을 우선시하는 건축가에게서 좋은 기운을 가진 건축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사 이제 승자의 자화자찬, 자기변명이 아닌 상생의 길을 기록하는 시기로 접어들갈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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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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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agul3031 | 작성시간 20.08.19 원작은 움베로토 에코 의 '장미의 이름'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각본해 영화로 탄생되었죠!

    저는 책과 영화를 다 보았습니다. 썩 괜찮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호메로 의 <데카메론>이 아니라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준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01 아 그렇군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앞으론 좀차분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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