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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신선 만나러 가세.

작성자주상|작성시간14.01.28|조회수28 목록 댓글 0
 
전자랜드 정기휴무일은 21일이고  
20일날 저녁에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렸고
서울에도 눈이 제법 내렸으니 강원도로 달려가고 싶은 간절하다.

하지만 이젠 용기도 없어져
오가는 길이 무서워 망설여지고
같이 갈 동무를 물색했으나 모두가 미첬느냐고 하며
저승을 함께 가자는 뜻으로 들렸는지 난색이 표한다.

퇴근하며 윤채네 할바이
[갱상도에는 할배를 낮추어 부르는 말임]한테
도봉산에 설경이 좋을 것이라며 의견을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달리 방도가 없고
도봉산엘 제대로 올라보지 못했으니 안내할 동무를 구했다.

[동무란 말도?
내 어릴 때는 아이들의 친구를 일컽는
정다운 말이었고 어른들 사이에는 친구라고 불렀는데
니북에서 사용하니 어색한 단어가 되었고 없어지고 말았다.]

산을 좋아하지만 서울을 둘러싼 산이라곤
불암산 수락산과 관악산 외에는 올라보지 못했다.

느긋한 아침 열시에 도봉산 입구에서 만나자하고
점심은 무얼 준비할까 물으니 대충 전과 막걸리 한통으로 때우고
내려오면 되지 무슨 거창한 걸 준비하느냐며 가소롭다는 투다.

경관좋은 산에 앉아서 온 사방을 둘러보며
맛난 것을 나누어 먹는 재미도 좋으련만 괜히 무안해진다.















































어느 곳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먹거리가 좋다.

전철입구에서 김밥이라도 두어줄 사올까 하다가
그냥 왔더니 조금 섭섭하고 많은 사람이 등산복차림으로 내리고
모두 도봉산에 오르는 분들인 모양이고 대부분이 나보다 연로해 보인다.











































눈이 그리 많이 쌓이지 않아 실망이지만
처음 오르는 산이니 진지하게 임하고 어떤 경관이 펼처질까 자못 궁금하고...















































산을 오를수록 눈이 많아지는 게
조금 기대를 해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고
이런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새하얗게 맺혀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이쪽저쪽 사진을 찍다보니 내 발걸음이 너무 늦다.

윤채네 할바이는 그런 천천히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주며 묵묵히 산을 오르는데 나는 왜 이리 숨이 찬지 모르겠다.

산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지고
다리의 힘은 갈수록 빠지는 게 운동부족 탓이 확실하다.

하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으니 아랫배만 볼록 나오고
엉덩이는 점점 쫄아들고 바짓가랭이도 점점 넓어진다.
















































급경사진 너럭 바위가 나오고
소나무마다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며
일기예보에는 맑을 것이라 했는데 미세먼지인지 하늘이 뿌옇기만하다.
















































이미 부지런한 사람들은 산을 넘어온 것인지
간식을 먹고 있고 멀리 보이는 산들이 검은 걸로 보아
새하얀 상고대는 없는 게 확실해 보이니 기운이 빠진다.

행여 이뿐 아가씨가 있는지 눈여겨 보아도
모두가 나보다 연세가 많은신 노인분들이고 날씬해 보이며
몸도 가볍게 산을 다람쥐같이 잘도 타고 다니신다.ㅋㅋㅋ

윤채네할바이 눈초리가 나를 매섭고 째려보고
이런 말했다고 집에가면 볼록배 아줌마께 얻어 터질지 모르겠다.





































후와!!!! 우리집에서도 빤히 보이는
웅장한 봉우리가 바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제일 좌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신신대라 하니
저곳에 가면 신선을 만날 수가 있는 게 분명하렸다.

오늘은 마침내 신선의 낮짝을 대할 수가 있을 것 같고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워도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냐고 따져 봐야겠다.






































거대한 바위 절벽 틈새에 큰 낙락장송 한그루가
외로이 서서 가지를 옆으로 늘어 뜨리고 상념에 잠겨 있다.

아마 신선이 이런 소나무에 걸터 앉아서
젓대로 멋진 음악 한자락 불며 쉬는 장소가 아닐까 한다.




신선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올바르게 초연하게 살아가면 신선이 될 게다.

그 신선같던 친구가 몇달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얘기를 며칠전에 들어 문상도 못해서 몹시 섭섭하다.

내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다르게 살아가니
크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친구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도 없고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곱상하게 생긴 친구의 집은
작은 한옥이었지만 방이 여러개 있었고그 집을 방문하면
옷도 곱게 차려 입은 어머니가 항상 밝은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차를  내오셨고
방마다 책상이 놓여 있고 방금 책을 읽고 있다가 일어난 듯
책이 펼처져 있었으며 행복이 가득 넘칠 것 같은 집이 있었다.

그 친구의 식구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 같았었고
친구의 아버지를 대하면 약간은 근엄한 것 같았지만
아들 친구를 대하는 얼굴에는 애정과 미소가 넘처났었다.

차려온 음식도 맛이 있었지만 양이 적었고
차맛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우리집 같이 편하지가 않았었다.

그런 집인데도 나는 왠지 몸둘바를 모르겠고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아마도 친구의 얼굴이 밝지 못했고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어서 그랬던가 아닌가 짐작을 한다.

친구의 형과 누나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고
명문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고 그의 형님들을
대할때면 언제나 씩씩했지만 친구와 나를 약간은 무시하는 듯했었다.

툭하면 "숙제는 다했냐? 오늘은 책좀 읽었냐?" 하는
식이었고 그 말의 저변에는 항상 멸시가 깔려 있었다.

어머니께서 차려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만 나오면 해방이 되었고 몸이 날아갈듯 기분이 좋았었다.

항상 주눅이 들어 지내던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잊혀지고 말았다.

마흔이 넘어 포목장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연락을 해서 만났더니 형님 한분은 돌아 가셨고
누나와 다른 형들은 미국과 독일로 이민을 가셨고
국내에 자기 혼자 남아서 부모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간다고 했다.

오랫만에 만났더니 대단히 반가웠고
그동안 고생이 심했는지 곱상하던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겼고 곡차 한잔 기울이며 그 동안의 안위를 물었었다.

일찍 장사에 뛰어 들었다가 여러번 망하고
부모의 가산도 탕진을 했었고 빚도 많이 졌지만 
남의 돈 한푼도 안떼어 먹고 지금은 거의 갚았다고 하며
이젠 돈 벌일만 남았다고 하며 부인과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다고 했었다.

어릴때 주눅들어 둘이서 골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얘기며 완고하고 엄청 답답한 집이었고
공부를 못했으니 집에서는 언제나 외톨이로 지냈었단다.

서서히 곡차의 취기가 더해지니
형님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기억과
자식들이 잘 나면 모두 해외에서 자신들만 편하게
살아가며 애써서 키워놓은 부모는 버린다며 언성을 높이고 서운해 했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조카들을 그렇게 그리워해도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잘 살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는지 국내에 잘 나오지 않는다며
이젠 조카들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이기 까지 했었다.

그리고 얼굴이 불콰해져서 헤어졌고
당시에 40대였고 서로가 바쁘다 보니 또 잊혀진 친구가 되었다.

이 얘기를 전해준 친구가
그때 오랫만에 나를 만났을때 곡차를 얻어 먹고
갚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나누었다고 했었단다..

아주 내성적이었고 마음이 여린 친구였지만
어느 누구에게 조금의 페도 끼치지 못하고 작은 빚이라도
꼭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친구가 신선같아 보였는데...

친구가 그리울땐 째깍 불러다가
곡차라도 한번 더 나누었더라면 덜 서운 했을 것 같다.

하늘에서 잘 지내거라
인생이 그리 긴 게 아니고 모두가 머지 않아 만날 수 있을 게다.

도봉산엔 신선대라는 게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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