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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정인 정인이

작성자달돌|작성시간21.01.11|조회수99 목록 댓글 0

 

어두컴컴한 공기가 눈을 짓누른다

잠을 깼으나 일어나기를 거부한다

 

방긋방긋 뭉게구름 일듯

뽀얗게 피어나는 정인의 미소

뭐예요? 쫑긋 귀를 세우고 돌아보는

아가의 눈망울이 폐부를 찔러온다

 

어린이집에서 홀로 우두커니 앉아

무심히 고개를 돌려보는 정인이

가슴이 아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수목장을 찾았다

 

추모객의 선물을 모아둔 상자 위에

고 정인

너무 야박하다, 제 명을 다하고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 사람인 양 쓰여있는 3글자가 눈을 찌른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지만, 16개월 아기가 왜 이 추운 겨울날 땅속에 들어가야 했는지 이해할 길 없어

가슴이 먹먹하다

 

불현듯 두 가지 지난 일이 머리를 스친다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 여동생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쳤던 일,

자지러지는 동생의 울음소리에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채었다, 얼마나 세게 때렸던지 볼록하게 혹이 올라와

있었다, '저 놈은 깡패새끼여' 천방둑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내가 막 성인이

되고서 막내 외숙모가 '야 그땐 니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동생들이 꼼짝도 않고 니 눈치만 보고 앉았는데......그때의 니 모습

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란 외삼촌이 결혼을 하겠다고 처음으로 외숙모와 함께 인사를 왔던 시기이다, 한번 성깔나면

누구도 말리지 못했던, 나는 못되도 보통 못된 놈이 아니었다

동생의 머리에 난 혹이 마음을 쑤셔 산에 올라가 딸기를 따와 동생에게 내밀었던 ,

두고두고 죄책감을 심어주었던 일

 

또 하나는 2년전, 삼척 장호원에 잠시 머무르던 시기, 바다를 끼고 도는 길을 따라 산책하는데

소방관이 숨을 헐떡이며 우르르 몰려와 '목에 상처난 개를 못봤냐' 묻는다, 보기에도 섬뜩한, 목을 타고

헐벗겨진 가죽에서 피떡지가 눌러붙은, 사람을 보면 줄행랑 치던, 아마도 죽음의 막다른 지경에서 탈출한 개같아 보였다

민원이 빗발치는데 도저히 잡히지 않는다며 한숨이다

뒤이어 다달은 소방관 일행 가운데 젊은 사람이 나를 보자 '안녕하세요' 아는 체 한다, 으례 하는 인사거니

건성으로 받아 넘기는데 '저 모르세요 어저께 우리 딸을 안아주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 꼬맹이의 아빠다

 

어제, 해상공원에서 엄마 아빠의 집중된 시선 앞으로 아장아장 걷는 여아가 하도 이뻐 삐죽이 지켜보았더니,

아기가 마치 아빠를 만난양 두 팔을 내밀고 활짝 웃으며 내게로 달려온다, 부모의 허락도 없이 아이를 덮석

안아 올렸다, 솜사탕같은 손을 꼬물거리며 내 품에서 웃는 아이, 생명의 묵직한 감동이 밀려온다

'씩씩하고 지혜롭게 커거라' 간절한 바램을 담아 아이에게 건네주며 머리에 가볍게 입마춤을 했다

그 모양이 싫지 않은지 아기의 엄마 아빠가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며 서 있던 일

 

생전의 이 병철 선생은 출근길에 서울역을 지나쳤던 모양이다, 당시는 이촌향도,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가던 때였다, 솥이며 이불보따리를 이고 지고 역에서 내리면 새벽부터 기다리던 지게꾼이 짐을 받아 나르고

품삭을 받았다, 여명이 부스스 깨어날 즈음, 지게꾼들은 포장마차에 모여 국수를 말아 먹으며 아침 허기를 달랜다

'차 좀 세우게' 그 모습을 한 참을 지켜보던 선생이 '저게 사람 사는건데...........' 혼자말을 중얼거리며 출근 하였다 한다

'생명의 힘, 그 아름다움' 이병철 선생이 지켜본 것은 그것이리라,

살아보고자 새벽부터 종종치는 살이들, 삶을 향한 생명의 힘을 어느 누가 거스르랴, 두려움마저 불러오는 생명의 질주는

엄격하고 거룩해서 우린 그 앞에 서면 옷깃을 여미고 몸을 사린다,

발버둥쳐서라도 기어이 불을 댕기고 마는 '살이를 내달리는 생명의 뜨거움 -그 무거운 사명' 앞에서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고개를 숙인다, '생명에의 경배'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가 지닌 덕목이자 자격이었던 것이다

 

정인아

개도 죽음 앞에서 제 가죽을 벗겨내면서 까지 도망치며 살고자 하는데, 넌 어찌하여 위탁모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천진난만하게 웃었니? 왜 '아파요 무서워요'살려달라 떼쓰며 울지 않았어?

그 순간은 도저히 감추기 힘든 기쁨이었니?

방송에 나와 케익을 앞에 두고 행복을 꾸며대는 양모가 내민 손을 아주 잠시 흠칫 놀라와 하던 네가

다시 표정을 바꾸어 촛불을 끄려는 듯 손을 내밀어 흔들던 것은 무엇이었어? 그 옹알이는 무엇이었어?

인간의 가증스런 위선에 대한 놀라움?

아니야, 아가들은 가증함을 몰라

정말일까? 슬픈 엄마 기쁜 엄마 화난 엄마 아픈 엄마........

엄마의 어떤 표정도 다 알아보는 아기들인데.........

그 순간이나마 행복했음을,

한 순간 찾아온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너의 천진스런 몸부림이었어?

 

한 생명의 스러짐에 깊은 허탈감은 커녕, 조금의 미안함이나 안타까움도 묻어나지 않는 네 양부의 변명을 듣노라면,

그 속에서 오직 견뎌냄으로 생을 이어가야 했던 너의 하루 하루가 얼마나 끔찍했을지 소름이 끼쳐오더구나

난 용기가 없어 '뼈가 몇군데나 골절되었네, 췌장이 끊어졌네' 이런 말을 두번 입에 담지 못하겠어

 

어린이 집에서 왜 멀뚱히 고개를 돌렸니?

우두커니, 멀뚱히 -이건 어린이에겐 없는 단어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나 지음직한 달관한 얼굴-이제 생명의 출발점에서 겨우 몇걸음 뗀,

돌을 갓지난 16개월 아기가 어떻게 그런 얼굴을 한단 말이야?

성장의 충동이 흔들어대는 생명의 진동으로 한시라도 멈추지 않고 , 웃고 뒹굴고 쫑알대며 소란스러워야 할

아기가 어떻게 홀로 우두커니 앉아 무심한 시선을 건낸단 말이야?

 

외로웠어?

기댈 곳 없는 아가의 자포자기였어? 누구도 아픔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깊은 절망?

두려웠어?

여기를 벗어나면 다시 닥치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엄마 아빠라는 사람의 얼굴 얼굴 얼굴들이?

기다림이었어?

그래도 이 지옥을 벗어나는 길이 저기쯤 있지 않을까?

나를 데리고 도망쳐 줄 이가 지금 뛰어오진 않을까-마지막 희망같은 것이었어?

아니면,

이 세상 소풍 끝나고 돌아가야 할 곳이 저어기 어디쯤인가 가늠하고 있었어?

그래서 마지막 풍경을 담고 있었니?

아니야 그건 아닐거야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 고문을 어찌 감당하라고,,,,,,,,,,,,,

그도 아니면,

'생은 고통이야' 온몸으로 실어나르는 성자의 깨우침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과 부처라는 자는 얼마나 가련하고 야속하단 말인가

 

아픔을 아프다고 말하면 (울면) 안되는,

울음을 삼켜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네가 ,

아기의 유일한 언어인 투정과 칭얼거림을 잃고

언어가 사라진 , 몸에서 젖내조차 다 씻겨지지 않은 아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우두커니 멀뚱히 무심히'이것뿐이었어?

 

나는 말을 삼키고 지난 날의 못남을 속죄했다

분풀이로 마구 돌을 던졌던 나의 잔임함과

~척 했던 나의 위선을 참회했다

위선이 감추지 못할 인간의 속성이라면

착한 척 해야 하는 그때만이라도 솔직하게 나의 위선을 인정함으로써

성실해지기를 다짐해 본다

 

초쿄파이와 우유를 정인의 무덤위에 올려놓고

하얀 눈 위에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하느님 부처님 부디

이 어린 천사를 외면하지 마시고 거두어 주소서'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수목장에선

'얘들아 안녕, 우리 같이 놀아'하듯 맑은 아이들의 동요가 끊이지않고 눈 위를 뛰어 다녔다

그곳에서나마 정인이는 배고프지 않고

친구들이랑 손잡고 맘껏 뒹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인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모두 잊어줘, 너를 살뜰히 아껴주던 위탁모의 손뼉을 기억해줘

어린이집 선생님의 따듯한 품을 잊지 말아줘

그래고 그 기억에 딱 좋은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다시 와 주기를 간절히 바래'

 

한시간 가량 정인이 곁을 어슬렁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울긋불긋 아가의 얼굴같이 동그란 해다 떠오른다 10여년을 입에 대지 않던 담배를 물었다

'감정 과잉' 이 또한 위선인게야 , 자신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담담히 해보려 하지만 가슴 속에서

불뚝 불뚝 솟구치는 저 붉은 해가 감당되지 않아 연거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제 글에 마침표가 없는 건 이것이 정인이에게 마지막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기를 간절히 염원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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