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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황 서천불동(西千佛洞) & 한장성 투어

작성자파워맨|작성시간14.07.29|조회수33 목록 댓글 0

▣ 돈황 서천불동(西千佛洞) & 한장성 투어

 

○여행일:2014. 6. 15

 

○서천불동 간략 소개

 

 감숙성(甘肃省) 돈황시(敦煌市)에서 35km 정도에 위치한 석굴로, 명사산(鸣沙山)

서쪽 끝에 위치하며 막고굴(莫高窟) 서쪽으로 당하(党河) 하곡(河谷) 서쪽 강기슭

절벽에 있어 서천불동(西千佛洞)으로 불리고 있다.


서천불동(西千佛洞)의 창건연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막고굴(莫高窟)보다 조금

빠르거나 적어도 동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천불동은 비록 규모가 작으나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근래 들어 붕괴직전의 절벽과 동굴에 대한 전면적인 수선과 보강을 실시하고

효과적으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

총 17개중 현재 10개의 동굴이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서천불동(西千佛洞)은 막고굴(莫高窟)의 일부로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다만 아쉬운점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관람해야 했으며,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외관만

촬영 하였다. 

 

○ 한장성(漢長城)

 

한장성은 한나라 무제 때 축조한 만리장성으로,명대에 산해관에서 가욕관까지

새롭게 쌓은 만리장성 보다 무려 1,500년 앞서 축조한 성이다.

비록 그 규모에서는 북경에 있는 만리장성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고고학자들에게 이 '한장성이야말로 만리장성의 원형'이라고 귀하게 대접받는다.  

한장성은 당나라 때까지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2,0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듯, 아직도 건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사진에 보듯 흉노족을 막기에는 높지 않고 다소 약해 보인다. 

왜 이렇게 쌓았을까?

 

첫째는 말이 뛰어 넘지 못하는 높이이다.

한나라 때는주로 말을 타고 싸움을 했기 때문에, 말이 넘지 못할 높이만 쌓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흉노족의 가장 주요한 식량은 양이다.

이들이 전투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천 마리의 양떼를 데리고 이동한다. 

이 장성을 쌓아 놓으니 양들이 넘어 가지를 못해 보급차단이 된다.  

 

○ 옥문관( 玉門關 )

 

 한 무제 원정(元鼎)연간에 수축된 것으로 한장성내에 있었다.
서역 지방의 옥석(玉石)이 이곳을 경유하여 내지로 수입되었기에 얻어진 명칭이다.

오늘의 세관정도의 업무를 수행했던 곳으로 보면 될것 같다.

 

★ 특히 광활한 이지역은 사막내지 불모지역으로 태양광설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설치되어 있었고 향후에도 그시설은 더욱 확장 될것으로 보여진다.  

 

○ 관련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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