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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산행/여행 후기

인도 네팔 배낭여행기(6).... 7대불가사의라 불리우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작성자왕뿅망치|작성시간22.04.18|조회수48 목록 댓글 0

아그라는 야무나강(江) 우안(右岸)에 있는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델리 남동쪽 200km 지점에 있는 도시로 동쪽에는

 갠지스강 유역의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고, 북쪽은 야무나강 연안을 따라 델리를 거쳐 펀자브 지방의 평야에 연

속되어 있다. 무굴 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길 때까지 1564~1658년 약 1세기 동안 무굴제국의 수도였었다.

시내와 근교에는 무굴 제국시대 최고 전성기의 건축 ·미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붉은색 사암으로

 성벽을 쌓은 광대한 아그라성(城)과 이슬람건축의 대표작인 타지마할이 널리 알려져 있는 도시이다.

그렇지만 아그라는 무굴제국의 수도였지만 무굴제국이 멸망하면서 지금은 관광지로만 유명하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쟈한을 폐위시킨 아우랑제부왕은 무굴제국의 영토를 가장 많이 확장했지만 선왕들과는 달리

 타종교를 탄압하는 바람에 반란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쇠약해져서 결국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도를 가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바라나시와 아그라를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두 도시는 인도를 가

려고 하는 전 세계 사람에게 특별한 도시이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가에서 화장을 하는 곳이고 아고라는 타지마할 묘가 있는 곳이다.

 

아그라는 야무나 강을 끼고 있는 도시로 타지마할 영묘도 야무나 강변에 세워져 있다.

타지마할이 만들어진 것은 1653년 샤 자한 때인데, 샤 자한은 17세기 초 재위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샤 자한

의 뜻은 세계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당시 제국의 국력은 악바르 대제와 자한기르의 뒤를 이어 영토를 확장하

여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때였다고 한다.

   

타지마할...인터넷에서 우리가 갔을 때는 안개가 엷게 끼어 있었다.

타지마할 건너편에 있는 장방형은 블랙마할을 지으려고 했다는 곳이라고 한다.

 

애처가였던 샤 자한은 세 번째 황후를 가장 사랑하여 전쟁터에도 같이 다닐 정도로 사랑하였는데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자녀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버리자 비통에 잠기게 되고, 그로 인한 실의를 장엄하기 짝이 없는 묘역을 

조성함으로써 해소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곧장 제국 전역에서 막대한 세금과 인력을 징발해 당시까지 쌓아올

려진 인도 건축 예술의 총화를 집중하도록 지시하여 타지마할을 건축하도로 했다고 한다.

 

 22년 동안 2만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고 이 건물의 건축책임자는 페르시아의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로 페르시

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기술자와 장인들을 초빙했고, 건축자재인 붉은 사암은 국내에서 조달하였지만 수많

은 건축자내는 이웃한 미얀마는 물론이고 멀리 중국과 오스만 제국, 심지어 이집트에서까지 수송되었다고 한다.

 

그러게 되자 재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결국 국력이 소진되었으며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1658년 그의 세 번

째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아그라의 요새의 탑에 가두어 버렸다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지은 타지마할 묘를 보면서 1666년 쓸쓸히 죽어갔다고 하며 죽어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옆

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이 여러가지 모습의 타지하말


위대한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을 현대인의 눈으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절대왕권을 가지고 있는 왕이 

결정하던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에 보았던 파테푸르 시크리 라는 수도를 건설할 때 처음부터 식수문제가 있었지만 왕자를 낳게 해 주었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국력을 들여서 수도를 옮겨서 결국 14년 밖에 있지 못하고 다시 아그라로 돌아온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피라미드나 자금성 등 오늘날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는 이런 건물들은 요즈음 같으면 지을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죽은 부인을 위해서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미친 짓이지만 그 미친 사람 덕에 화려한 예술품을 보게 되니 그런

 광기를 감사라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이 타지마할에서 가까운 곳으로 아침 일찍 걸어서 타지마할를 걸어서 타지마할로 가는데 일행

 중에는 아침식사 전에 이미 타지마할에 산책을 다녀 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곳도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찍 가야 줄을 덜 서게 되고 또 오늘 오후에 

무굴제국의 왕궁이었던 아그라성을 보고 밤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일찍

 서두르게 되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으지고 들어가는 호텔....우리가 자이푸르에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와서 묵었던 호텔로 타지마

할에 가깝게 있다.

호텔에서부터 걸어가고 있는 일행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관광객들을 타지마할까지 태우는 꽃마차

이스트 게이트


타지마할은 장방형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관광객들은 동문과 서문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으나 남문으로는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문(Eastgate)으로 들어가서 그레이트게이트(Greatgate Darwaza-irauza)로

 불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동문은 파테푸르시크리에서 보았던 개선문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규모는 작게 생겼다. 조금 걸어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그레이트게이트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든다.

이스트게이트를 통과하면 그레이트 게이트가 보인다.

그레이트 게이트...보는이들을 압도한다.. 

 

그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정말 익숙하지만 꿈에서나 볼 것 같은 비현실적인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저절

로 탄성이 질러지게 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어서 건물이 선명하지 않고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앞에는 300미터나 되는 물이 고여 있는 분수가 건물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건물이 물에 비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일단 감탄을 하고 나면 미친 듯이(?) 사진들을 찍기 시작하는데 핸드폰부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까지 갖가지의 

사진을 찍는다.

그 중에 반드시 한 번씩 찍는 사진이 타지마할 지붕을 손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과 타지마할을 들고 있

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다. 

 

   그레이트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타지마할...안개 속에 있어서 더 몽환적이다.

이렇게 꼭대기를 집고 있는 사진을 한 번씩은 찍는다...같이 간 일행

 

사진을 찍고 나면 분수를 따란 있는 길을 따라 타지마할로 가서 외부를 구경하고 내부를 구경하러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대리석 관이 놓여 있는데 실재로 그 안에 시신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고 빈관

이라고 하며 시신은 지하에 따로 묻혀 있다고 한다.

타지마할은 영묘(靈廟)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인 셈인데 그 내부의 장식들이나 내부를 꾸며 놓은 것

도 이름답지만 건물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이기 때문에 내부를 둘러보고는 영묘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대리석으로 건축된 타지마할 영묘의 입구...그 정교함과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

타지마할에서 본 그레이트게이트...낮에는 분수가 나오기 때문에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영묘 내부로 들어가는 문...신발을 벗고 헝겊으로 된 신발주머니를 신고 들어간다.

40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에 새겨진 문양들...내부가 다 이렇게 장식되어 있다. 

대리석에 다른 색깔의 돌로 상감되어 있는 장식들....이런 문양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문양들이 있는데  화려한 책자를 만들어서 판매한다.


영묘 안에 있는 샤 자한과 뭄타즈의 석관..시신은 다른 데 있다


영묘주변으로 가면 뒤편에 야무나 강이 보이고 타지마할이 야무나 강변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야무나 강 

건너 편에 타지마할과 같은 크기 정도의 건축터가 보이는데 그곳이 흰색의 타지마할과 대비되는 블랙타지마할을

 지으려 했다는 곳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지으려 하다가 아들에게 폐위를 당했다고 하기도 한다.

 

타지마할 네 귀퉁이에는 첨탑이 있는데 이 첨탑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 장난삼아 첨탑을 미는 사진을 찍는다.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서 회랑을 통해서 다시 그레이트게이트로 나오게 되는데 여

러 각도에서 타지마할을 보게 되는데 그레이트 게이트를 나올 때까지 다른 곳은 보지 않고 타지마할 쪽으로 고개

를 돌리고 나오게 된다.

타지마할 우편에 있는 건물

이 강이 야무나 강이고 건너편에 블랙마할을 지으려고 했던 터가 있다고 한다....그런데 야무나 강의 수량이 줄어들

면서 타지마할을 지탱하고 있는 침목이 말라서 건물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한다.

우측에서 본 타지마할

타지마할 경내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바닥의 모자이크

외부나 내부 어디에나 모든 건물은 이렇게 장식이 되어 있다.

 이렇게 첨탑을 미는 사진을 모든 사람들이 다 찍는다...모델이 되어준 일행

담장이 이런 회랑으로 되어 있다.

그레이트게이트와 연결된 회랑


그레이트게이트를 나서기 전에 다시 한 번 찍은 타지마할...아직도 안개가 다 걷히지 않았다.



그레이트 게이트의 천정의 기하학적 무늬

회랑들

그레이트 게이트와 밖의 경내

구경을 온 인도의 여학생들

 

타지마할은 죄우대칭으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고 아침과 저녁 시간마다 다른 분위기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레이트 게이트를 나오면 동문이나 서문 또는 남문으로 나오게 되는데 우리는 들어갔던 동문으로 다시 나와서, 

남문 밖에 있는 배낭여행자가 몰리는 골목으로 가서 골목 구경하고 점심을 사먹기로 하였다.

 

타지마할 주변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된 거리가 있는데 관광객들로 넘쳐 나며 각 

나라의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들도 다양하며 물론 한국 사람들을 위한 라면부터 없는 것이 없다.

전 세계의 배낭객들이 다 몰려오는 곳이니 당연히 전 세계의 음식이 다 있을 수밖에 없는데기대를 할 정도는 당연

히 아니다. 


여행자 거리

어깨를 부딫치면서 걸어가야 한다.

 

구경도 각자 알아서 하고 점심도 각자 알아서 사서 먹기 때문에 약속시간까지 약속장소에 모이면 된다. 대부분이

 한국 음식을 사먹었는데 그래도 검증된 것이 라면이기 때문에 라면을 사먹었다.


음식점 간판들




앞에 보이는 문이 남대문인 셈이다.,,문 밖부터 이런 북새통이다.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면 이동을 할 때 정해진 차량으로 이동을 하지만 배낭여행을 하게 되면 이동할 때마다 릭샤

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고 또 탈 때마다 흥정을 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

흥정을 하지 않으면 소위 바가지를 많이 쓰게 되는데 그 사람들의 행색을 보면 요금을 깎기 위해서 흥정을 하는 것

이 미안하다.

일행이 13명으로 한꺼번에 움직이려면 오토릭샤 3대가 필요한데 한 사람만 흥정을 하면 된다.

....

타지마할을 직접 보게 되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고 왜 세계문화유산이 되며 세계7대 불가

사의에 해당 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레이트게이트

타지마할

타지마할과 야무나강

여행자거리로 들어가는 입구

여행자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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