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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산행/여행 후기

인도 네팔 배낭여행(12)....인도에서 네팔로...석가의 탄생지 룸비니의 유적지...이쉽게도 인도와 네팔은 불교국가가 아니다.

작성자왕뿅망치|작성시간22.04.26|조회수86 목록 댓글 0

인도의 국경을 넘어 네팔로 들어오면 인도 국민이나 네팔의 국민들이 다 가난해 가난해 보지이만 도로나 주변의 건물들을 보게 되면 국력의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당연히 네팔의 도로나 주변의 건물이 낡아있다.

네팔은 아시아에서 꼴찌에서 몇 번째 갈 정도로 가장 가난한 나라여서 전기도 시간제로 들어오는 나라이다.

우리가 갈 때는 1월로 그곳도 절기로는 겨울이기 때문에 저녁에는 쌀쌀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지고 간 침낭을 침대위에다 놓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야 한다.

 

인도의 소나울리와 같이 붙어 있는 네팔의 국경도시 벨라히야..

 

네팔의 국경에서 룸비니로 들어가는 길은 잠간으로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룸비니는 도시는 고사하고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룸비니의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큰 담장으로 둘러쳐저 있고 나무들도 울창하여 안을 볼 수

가 없지만 주변은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까마귀만 날아다니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저녁에 잠을 그냥 자기가 뭣해서 걸어서 룸비니 게이트 앞에 있는 가게로 걸어가 봤지만 염주와 같은 불교 기념품과 용품을 파

는 곳이 몇 군데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벨라히야에서 룸비니로 가는 도중의 모습..해가 질 무렵이라서 더 적적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 중...이 차로 네팔의 포카라로 포카라에서 카드만두로 이동을 한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숙소의 옥상에서 본 들판

룸비니 정문이 있는 쪽 담장..건물이 보이는 쪽에 정문이 있다.

옥상에서 보이는 동쪽..주변이 다 이렇게 생겼다.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지는 지금부터 2559년 전으로 전세계의 불교신자들의 마음의 고향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네팔도

힌두교도가 81%가 되고 불교는 11% 이슬람이 4%라고 하니 네팔의 국교는  힌두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 역시 사르나트처럼 세계 불교인들의 순례지요 관광지의 성격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네팔이 불교국가 였더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곳을 성역(聖域)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곳이 석가의 탄생지로 확인이 된 것은 1895년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가 이곳에서 석주 하나를 발견하여 그 석주

가 아쇼카왕의 석주로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였다고 하더라도 불교는 그 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가서 국교화가 된 나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석가의 탄생지가 잊혀지게 된 것은 불교가 힌두교나 이슬람으로부터 배척을 당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페허를 만들고 땅

속에 묻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흔적이 이렇게 사라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말살이 되는 것처럼 그 지역에서 패배한 종교는 흔적이 말살되는 것이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

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석가의 탄생지로 밝혀지면서 발굴을 하게 되고 룸비니의 석가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으로 등제되었다고 한다.

 

  룸비니 경내

 

숙소에서 걸어서 룸비니 정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에서 아쇼카왕의 석주와 석가가 탄생한 자리 위에 세워진 마야 데비 템플이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걸어들어간다.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려보니 장방형으로 된 경내가 무척이나 넓다.

아쇼카왕 석주 근처에는 동남아의 불교국가들과 개인 순례자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기도를 하거나 단체로 설명을 듣거나 하면

서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들어가는 정문...정문 아치 위에 있는 상징물을 보게 되면 네팔의 불교는 티벳불교의 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러가는데 이런 연못도 있고

이런 길을 한 참 걸어서 들어간다.

사찰의 담장에 걸려 있는 타르쵸...룽다가 아니다.

 

우리는 순례를 위해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면서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들러 볼 시간이 없어서 중요

한 부분들만 주마간산 식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여기도 아쇼카왕의 석주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 있는 석주는 석주 위의 사자상만 없을 뿐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마찬가지로 아쇼카왕의 석주를 보고 부처님의 탄생지

를 확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여기가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라면 주변에 불교유적지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유네스코에

서 주변의 불교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보리수나무들이 많으며 보리수나무에는 손바닥한 천에 불경을 적은 타르초라고 불리는 깃발

들이 만국기처럼 달려있고 사람들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법을 듣는다.

 

석가가 태어난 곳이라는 자리는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사람들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거기에는 부처님이 첫 발자욱을 걸었다는 자욱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순례객이 아닌 관광객들인 우리들에게는 그 건물이 개

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불교신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불교신자들이 아닌 사람들로 그런 발자욱

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신기한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다.

 

아쇼카 왕의 석주와 마야 데비 템플

타르초가 걸려 있는 보리수 나무와 구룡연못이 연못에서 태어난 석가를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보리수 나무 밑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인 승려들(?)...참고로 타르쵸와 룽다는 경문을 프린트 하여 바람의 힘으로 경문을 전파

하는 목적은 같으나 룽다는 장대에 세워서 깃발처럼 달아놓은 것을 룽다라고 한다.

기념진을 찍는 승려들

마야 데비 테플로 내부에는 석가가 탄생한 장소와 발자국이 있는데 내부는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아쇼카왕의 석주...순례를 온 사람이 기념품을 걸어 놓았다.

 

 

룸비니 경내는 돌아보는데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다.

그리고 올림픽 공원에 있는 것처럼 영원히 꺼지지 않는 평화를 기원하는 불도 있고 경내 안인지 밖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르

나트처럼 각 나라에서 지은 사찰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지은 절이 대성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가보지 못

했고 테벳불교에서 지은 사찰이 가깝게 있어서 거기만 들렀는데 거기에는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

음이 아팠다.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불

그 불이 세워지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설명서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명상을 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이 걷거나...

30여개국에서 지을 절들이 있는 지역...가장 가가운 곳에 있는 절...네팔의 카드만두에 있는 보디나트와  같은 절

걸어서는 다 돌아볼 수도 없고 오늘 포카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이 사찰에는 남자 아이들과 여자아이들도 보인다.

 

 

티벳이나 네팔 같은 곳에는 경작지가 없기 때문에 장자가 아닌 차자는 절에 가서 스님이 되어야 했다.

차자가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게 되면 나누어줄 토지가 없기 때문에 차남은 스님의 길을 걷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고 그들을 보게 되면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생을 믿지 않지만 티벳의 절에 있는 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 저들은 전생에 무슨 사연이 있어서 강제로 비구의 길을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시간여 남짓 둘러보고 아는 스님이 있어서 스님에게 드릴 염주와 작은 불상을 사고 10시 경에 봉고와 같은 미니버스를 타고

다음 여행지인 포카라로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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