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유족 자료실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작성자사무처|작성시간14.11.30|조회수634 목록 댓글 0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뼈 동굴’ 미스터리, 50년 괴담의 진실 -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경산 안경공장 학살사건한국 전쟁 기간 중에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주민 증언에 따르면 학살은 1950년 7월 20일 경 부터 9월 20일 경까지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 광산에는 수평 갱도와 수직 갱도가 있어 이곳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 뿐 아니라, 인근 대원골에서도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사건의 피해자는 크게 대구형무소부산형무소 수감자와 보도연맹원의 두 부류로 나뉜다. 1960년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제4대 국회 양민학살 특위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형무소 재소자 1402명이 7월에 학살되었다고 한다. 또,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 기록된 1404명 중 1172명의 명단이 부산형무소 재소자 명단에 나오지 않아 이 사람들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당시, 경산, 청도, 영천, 창녕, 밀양 등의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직후 검속되었고, 이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유족들에 따르면 대부분 좌익 사상이나 반공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부역자나 농민이었다.

정부 추산 2,000여 명, 유가족 추산 3,500여 명이 학살당했다.

사후 처리

갱도는 폐쇄된 상태로 있었으나,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고, 2006년 4월 25일 정부 주도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 11월 17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군·경에 의한 집단 학살이라고 판정했다. 또한 전체 희생자 수는 1,800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희생자의 수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과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상태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후 수습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수습된 유해는 유족회가 마련한 컨테이너 안에 방치되어 있다.

 

경북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 광산에는 수평 갱도와 수직 갱도가 있어 이곳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 뿐 아니라, 인근 대원골에서도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사건의 피해자는 크게 대구형무소부산형무소 수감자와 보도연맹원의 두 부류로 나뉜다. 1960년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제4대 국회 양민학살 특위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형무소 재소자 1402명이 7월에 학살되었다고 한다. 또, 대구형무소에서 부산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 기록된 1404명 중 1172명의 명단이 부산형무소 재소자 명단에 나오지 않아 이 사람들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당시, 경산, 청도, 영천, 창녕, 밀양 등의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직후 검속되었고, 이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유족들에 따르면 대부분 좌익 사상이나 반공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부역자나 농민이었다.

정부 추산 2,000여 명, 유가족 추산 3,500여 명이 학살당했다.

사후 처리

갱도는 폐쇄된 상태로 있었으나,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되고, 2006년 4월 25일 정부 주도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 11월 17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군·경에 의한 집단 학살이라고 판정했다. 또한 전체 희생자 수는 1,800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희생자의 수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과 대구형무소에 미결 또는 기결상태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라고 덧붙였다.하지만 이후 수습작업이 진행되지 않아 수습된 유해는 유족회가 마련한 컨테이너 안에 방치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심령스팟으로 유명했던 경산 안경공장,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심령스팟이 아닌

보도연맹 학살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정부주도로 2005년부터 유해발굴을 시작합니다.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유해들.jpg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유해들.




“수직 동굴 저 위쪽에서 6·25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줄줄이 묶은 채 총으로 쏴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수직 동굴 높이가 50m 정도인데 시체로 가득 차 더는 못 떨어뜨리게 되니까 나중에는 골짜기 이곳저곳에 시체들을 묻었다고 해요. 동굴에서 기관총 탄피나 수류탄 흔적도 발견됐어요. 산 채로 떨어진 사람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던 모양이에요.”

 

경산코발트광산사건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당시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2,500여명과


경산, 청도, 대구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3,500여명의 민간인들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사살되 폐광속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 때 학살로 1년내내 냇가에 핏물이 흘렀다고 함 

 
원본 크기로 보시려면 그림을 클릭하세요.

사건 57년 후(1950년에 사건발생)


수직굴(폐광)에서 매장된 유해가 수평굴의 한쪽 부분으로 쏟아져 나온 상태로 


토사와 함께 묻혀있는 160여구 이상의 유해들을 발굴


 


직접적인 학살의 증거로 보이는 실탄 5점과 탄피, M1 18정, 칼빈 22정을 비롯해 


희생자들의 손목을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군용 선줄 등이 발굴

 

한편 민간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무신(신발), 단추, 천 조각, 고무줄,  허리띠(버클포함), 도장 등의 


유품도 대량 발굴


 

수평굴에서는 박봉우(朴奉羽)라는 이름이 새겨진 목도장이 도장집과 함께 발굴


단추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아닌 일반 민간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고 


여성용 단추도 발굴돼 상당수의 여성 피해자도 포함


 



< 수직굴(폐광) 모습 >

 

여러 사람을 군용전화선줄로 묶어 몇 사람을 쏴서 수직으로 파인 폐광으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사람을 학살 


 

한국전쟁 당시 북한 군인이 총을 겨누며 밥을 내어오라고 시켰는데 밥을 줬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오해받은 무고한 시민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코발트광산과 인근 대원골 등에서 약 3,50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
 

 

학살한 것은 놀랍게도 한국 육군본부 정보국 CIC(지구, 파견대), 한국 경찰(정보수사과, 사찰계)

 

뼈동굴의 실체는 결국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끔찍한 정치적 학살(빨갱이로 내몰린)이었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고무신 등을 주며 현혹 해놓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입한 사람들을 


좌익단체라고 치부하며 유사시 반정부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며 무자비로 죽였다.

 

 역사 바로 알기--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대학살

 

'그것이알고싶다' 경산코발트광산 대학살, 김상중 분노 "과오 사죄하고 책임져야"

 

'그것이 알고싶다' 뼈동굴 미스터리의 실체는 끔찍한 학살이었다.

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는 뼈동굴 미스터리에 대해 파헤쳤다.

경상북도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 광산 뼈동굴의 실체는 '빨갱이'로 오해받은 무고한 시민들이 정부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끔찍한 정치적 학살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좌익인사의 교화및 정화를 한다며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때 학살된 민간인들은 좌익세력도 아닌 글을 읽을 줄조차 모르는 농민들이거나, 고무신 등 혜택을 준다고 해서 가입한 이들, 또 인민군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목숨을 구하고자 밥을 해줬던 이들이 경찰에게 다시 위협받고 죄를 면해줄테니 가입하라고 종용했기 때문에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 경산코발트광산, 그것이 알고싶다

경산코발트광산, 그것이 알고싶다

그러나 어느날 경찰(정보수사과, 사찰계)과 육군본부 정보국 CIC(지구, 파견대)은 그들을 매일같이 코발트 광산에 데려가 무자비로 학살했다. 유사시 반정부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며 무자비로 죽였다. 여기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아직 뼈가 다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유골에는 아직 살점들이 남아있었기 때문.

한 전문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면 저 사람이 내일 사람 죽일 것 같다고 오늘 데려다가 죽이면 자신이 안전해질거라고 생각하는 아주 무서운 생각이다"라고 했다.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총뿌리를 국민에게 향했다.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 방법도 처참했다. 학살 방법도 끔찍했다. 모두의 손과 몸을 묶게 하고 총을 쏴서 수직굴로 떨어져 내리면 덩달아 묶여있는 사람들이 함께 떨어져 내려갔고 이후 마구잡이로 굴에 총을 쏴댔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처사가 아니었다. 또한 가족이 살해당했음에도 '빨갱이'로 매도돼 오히려 억울하다고조차 말할 수 없었고 피해를 입은 유족들이었다.

50년이 지나서야 국가기관은 군경에 의해 이같은 끔찍한 학살을 불법적으로 자행했다고 인정했고, 위령사업을 하라고 권고를 했다. 그렇다면 남겨진 유해에 대해서도 안장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방기하고 있어 유족들이 직접 발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MC 김상중은 이같은 상황에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 왜 과오를 사죄하고 책임져야 할 국가에서 방관하고 있나.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발밑에 역사를 묻고 눈을 감고 살아야 하나. 우리에게 묻고 있다"라며 분노했다.

또한 "국방부 유해 발굴 사업은 법에 의해 영구 추진할 수 있다. 비극적 전쟁에서 국가기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한테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중은 "한국전쟁사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백 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 계획은 한 건 도 없다. 이래도 괜찮은 거냐. 말하지 않는다고, 눈을 감아 외면한다고 진실이 밝혀지는 건 아니다"라며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