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에서 오랫 동안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는 “왜 착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데, 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는가 라는 질문은 기독교 신학자들을 괴롭히는 난제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목사님들은 대부분 구약성서의 <욥기>를 인용하여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욥은 의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불행을 당한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욥이 기르던 모든 소와 양과 낙타가 죽고 가축을 돌보던 일꾼들도 죽는다. 욥의 자녀들도 잔치집 지붕이 무너져 모두 죽는다. 그리고 욥은 심한 피부병에 걸리게 된다. 왜 의인이었던 욥에게 이러한 고통이 찾아 왔는가 라는 친구의 질문에 대해서 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선한 사람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답은 새로운 것은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속담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라, 고진감래(苦盡甘來), 비온 땅이 굳어진다, 그리고 No pain, no gain. 등등. 즉 고난이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더욱 단련되고, 우리의 인생은 더욱 풍요롭게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수원대 사태와 관련하여 내가 욥기를 떠올린 것은 이유가 있다. 계약직 교수님들 중에서 어떤 분은 “왜 내가 하필 수원대에 지원하여 이처럼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가”라는 원망스러운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분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싶다. “저도 모릅니다.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느 교협 회원이 어버이날에 아버님을 방문하고 쓴 글을 읽고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러한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내면 좋은 세상이 꼭 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서로 손잡고 웃으면서, 행복한 수원대 교수로서 열심히 일해 봅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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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생21 작성시간 13.05.13 맞습니다.
도전과 시행착오의 과정없이는 어떠한 성취도 없겠지요.
쉽게 이루어지는 성공은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
어렵게 이루어질수록 단단하고 오래갑니다. -
작성자힘내자 작성시간 13.05.14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성경의 욥기까지 씨알을 이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등장하셔서 우릴 도우신다고 더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저흰 이젠 그 시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등장하실 때입니다.
당신께서 우릴 업고 가시며 공의의 모습을 보이실 때가 이때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모든 시련에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으니, 이젠 그 길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