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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야기 9 - 4대강과 텃밭경영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13.04.16|조회수422 목록 댓글 0

텃밭이야기 9 - 4대강과 텃밭경영

 

때는 또다시 1996년과 1997년 사이.
경기도의 요청으로 학교를 잠시 휴직하고 도청에 파견나가서 경기도장기계획 수립과 도시계획자문을 해주던 필자는 그 기획실장으로부터 '경부운하구상'이라는 문건을 건네 받았다. 세종대에서 접수한 문건인데, 검토후 자문을 해달라는 부탁이다. 보니까 물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구상안이다. 선입견없이 진지하게 검토하였다.

물류전문가들과 토목/환경전문가들과 함께 한달에 걸쳐 검토하였는데 한주두주가 지나면서 실현불가능한 구상안이라는게 드러났다. 강으로 물류를 나르면 시간비용과 환적(갈아싣기)비용 때문에 경제성이 없고, 환경파괴가 너무 심한데다 먹는 물 수질악화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될 사업이라고 판정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후, 이명박대통령후보가 한반도대운하란 구상으로 들고 나왔다.

필자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타당성이 없는 사업이란게 드러났는데도, 강행하는 국토파괴의 무모함에 대해 분노가 일기도 했고, 그 주변세력이 이를 강행하고자 하는 다른 이유가 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당선되어 2008년초부터 운하를 강행하자 이에 대응하여 봄에 운하반대교수모임이 출범하였는데, 필자는 여기에 참여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략 정리해보면,
2008년 03월 운하반대교수모임 2,466명 서명 기자회견
2009년 09월 대한하천학회 창립
2009년 10월 4대강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 구성 및 4대강별 소송추진
2010년 09월 우리강 가치체험 333프로젝트 추진 (2011년 8월까지)

관계교수들과의 초기모임에서, 옛날에 알아챈 운하사업의 허구성을 이야기했더니 정책위원장을 떠맡게 되었다. 맡으니 일을 안할 수 없다. 하다 보니 '결'이 나서 자나깨나 4대강 저지시킬 궁리만 하게 되었다.  강의외에는 몽땅 쏟아부었다. 

그로부터 국제세미나를 치렀고, 4대강저지 국민소송단을 조직하는 일을 주도했는데, 보수논객 이상돈교수(중앙대)와도 친분을 쌓았다. 그를 공동소송단장으로 모셔온 것이 필자였다. 대한하천학회는 박창근교수와 함께 창설해서 박교수를 부회장으로 추대하고 필자는 상임이사를 맡아서 숱한 세미나와 살림을 도맡아 했다.

2010년 가을부터는 시민들이 직접 우리강의 가치를 체험하게끔 1년동안 1만명을 333대의 버스에 태워보내는 333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이때 초기에 많은 도움을 준 분이 환경재단의 최열대표였다. 말이 1만명이지 엄청난 작업이었다. 전국의 4대강반대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1만명을 넘겼다. 전국각지에서 쇄도한 인파들이 SOS 동영상도 만들었다. (이 게시판 맨아래에 동영상이 있다.)

3년동안 돈도 어지간히 모금했다. 4억이상 모금해서 인건비 없이 거의 경비로만 지출했으니 얼마나 일을 많이 했겠는가?

 

필자는 텃밭 개간할 때부터 의외로 자신이 상당히 끈기가 있는 편이라는 점을 느끼고 있었는데, 4대강저지하면서 하도 열심히 하니까 운하반대교수모임의 간부들로부터 '영원한 청춘'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수년간 국정원과 경찰 정보계의 사찰은 기본이었으니 맷집도 좋은 편이다. 필자의 몰랐던 자질을 새삼 발견했다고 할까.

학교이름도 어지간히 떨쳤다.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았는데,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개인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반대하는 용기가 있다는 의미의  '수원대 교수' 라는 말은 늘 따라다녔으니까..  어느 졸업생이 "이런 교수님 때문에 수원대 출신이라는 것이 뿌듯하다"는 말이 SNS에서 떠돌 때 필자는 보람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수원대 교수님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교협의 공동대표인 이상훈교수님은 운하반대교수모임의 간부이자 대한하천학회 자문위원으로 함께 일했을뿐 아니라 4대강 국민소송의 법정증인으로도 활동하셨다. 배재흠교수님은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4대강저지활동에 열중하자 자연히 농장관리가 소홀해졌다. 이때 필자를 도와 농장경영을 해주신 분이 박영재 선생이다. 특히 2010년 2011년 에는 농장의 텃밭농사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아지고, 텃밭교육과 농장관리에 많은 전문성이 요구되었는데, 박영재선생이 안 계셨다면 교육과 관리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재선생은 농장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하였다. 더우기 2011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생태농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농장에도 관여하면서 수원대 일을 도왔다.)

 

안쓰러운 필자는 그저 필자가 소장으로 있는 수원대 국토미래연구소의 비상임연구원으로 임명하면서, "앞으로 텃밭의 유효성이 알려지고 수원대에서 텃밭농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시기가 오면 중요한 역할을 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립서비스만 할 따름이었다. 그러한 소박한 바램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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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4대강저지활동에 관련된  보도기사들을 일별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분인가가 4대강반대 교수모임의 활동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다고 해서

주요사건만 정리해서 관계기사를 모아 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운하반대교수모임

대한하천학회

우리강 가치체험 333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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