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연재소설 및 에세이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36 - 앙카라 성채 관광

작성자무심거사|작성시간20.01.02|조회수90 목록 댓글 0

8/5 (

 

어제 병산은 혼자서 앙카라 시내 관광을 나섰지만, 중요한 관광지를 방문하지는 않고 오늘 우리와 함께 관광할 계획이었다. 오늘 우리는 박물관, 성채, 그리고 6.26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한국공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제일 먼저 병산의 치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지난 토요일에 갔었던 보건소를 1 km를 걸어서 다시 찾아갔다. 우리는 9시에 도착했는데, 보건소는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터키 사람은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다. 직원 한 사람이 병산을 데리고 기다란 줄을 무시하고 신속히 진료를 안내해 주었다. 역시 진료비는 무료이었고 약 처방전을 받아 나오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 치과 의사도 에르진잔에서와 똑같은 처방전을 써 주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치료는 한국에 돌아간 후에 받아야할 것 같다.


<그림36> 병산과 친절한 치과 의사

 

보건소를 나와 순례단 4명은 지하철을 타고서 아나탈리아 문명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앙카라 성벽 외곽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은 15세기에는 원래 지붕이 달린 바자르(: 시장을 말함)로 사용되었는데, 아타튀르크에 의해서 터키 최고의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아나톨리아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코스에서 유래하였는데 해가 뜨는 곳, 즉 동방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요건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문명 지역이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 기원전 8000년에 시작된 아나톨리아의 문명만 살펴보더라도 인류 역사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히타이트 시대, 후류기아 시대, 우랄투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히타이트 유물 중 귀중한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히타이트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는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에 관해서는 별 흥미가 없기 때문에 건성으로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구경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오다가 우리는 우연히 영어를 잘하는 터키 여성을 만났다. 이 여성(이름이 Songül Düger)은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문화 해설사로서 탈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여성이 병산과 대화를 하던 중에 왜 이슬람 지도자는 만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병산은 여러 가지로 노력을 했지만 아직 이슬람 지도자를 소개받지 못했다면서 그녀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기실 병산은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 이슬람 사원(수니파)과 이란 대사관(시아파)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지만, ‘인샬라가 작용하지 않았는지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잘 아는 이슬람 지도자를 소개하겠노라고 적극적으로 제안하였다. 추후에 전자우편으로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웬지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림36> 터키 문화해설사와 함께

 

그런데, 병산이 그녀를 만나게 된 사건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사건은 고사성어를 빌려 말하면 천우신조이고, 이슬람식으로는 인샬라이고, 불교식으로는 연기법이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우리는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로 달리 표현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관점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는 어느 한 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박물관 가까이에 있는 앙카라 성채를 방문하였다. 다움백과사전에서는 앙카라 성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앙카라의 언덕 위에 있는 앙카라 성채는 앙카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최초 갈라티아인들이 만들었고 로마, 비잔틴, 셀주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복원되었다.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내부 성벽은 아랍의 침공을 막기 위해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이고 외부 성벽은 9세기에 세워졌다. 현재 성문, 성벽, 탑이 남아 있는데 성벽 안에는 오스만 투르크 시대의 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신시가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앙카라 성채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우리는 정원이 매우 아름다운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날씨가 덥지 않았고, 정원에 식탁이 놓여 있어서 우리는 야외에서 점심을 먹었다. 병산이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에 나는 화장실을 이용하느라고 실내로 갔다. 간 김에 주인장에게 실크로드 유인물을 주면서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로마까지 가는 순례단이라고 간단히 설명을 했다. 우리는 야외에서 근사한 점심을 마치고 기분 좋게 나오는데, 주인장은 내가 준 유인물을 벌써 식당 벽에 붙여 놓았다. 터키 사람은 어디서나 감동적일 정도로 친절하기만 하다.

 

<그림36> 식당 주인이 벽에 붙인 실크로드 유인물


우리는 성문을 지나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많은 관광객과 어울려서 계단을 여러 번 오르고 굉장히 높은 성채로 올라갔다. 성채에서는 앙카라 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전망이 매우 좋았다. 나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앙카라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셀피 아닌 사진도 찍었다.


<그림36> 앙카라 성채 중심부


<그림36> 앙카라 성채에 선 필자


<그림36> 성채에서 바라본 앙카라 시가지 

 

성채 구경을 마치고 다음 목표지는 한국공원이다. 터키군은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 때 UN군으로 참전하였는데, 참전한 군인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공원의 이름이 한국공원이다. 앙카라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은 꼭 한번 가보아야 하는 곳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한국공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앙카라 기차역 근처에 있는 한국 공원은 서울시와 앙카라시의 자매 결연을 계기로 197311월에 조성되었다. 아담한 공원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는 한국식 6각 정자가 있는데 관리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공원 중앙에는 한국 전쟁 참전 터키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높이 9m, 4층의 탑은 석가탑 모양과 많이 닮아 있다. 탑 아래에는 한국 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이름과 출생년도, 사망 일자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앙카라 성채에서 한국공원까지 3km를 걸어가기로 했다. 번화한 시가지를 가로 질러 가는데, 흥미로운 것은 거리에서 터키 국기를 파는 사람을 여러 번 보았다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터키 국기를 한 다발 들고 보도에 서서 국기를 판다. 터키 사람들은 거리에서 국기를 많이 사는가 보다. 거리에서 국기를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터키 사람들의 애국심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