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작스크립트/ 단편

세계의 실장석 - 유럽

작성자동네코알라|작성시간24.05.03|조회수305 목록 댓글 1

실장석이란 생물은 근본적으로 일본에서 기원했다.

물론 탄생 과정이나 상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눈에 띄었고 온갖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스며들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혹자는 비밀 연구소에서 탄생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야생에 숨어살다가 인간의 거주지가 넓어지며 접촉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의 이러한 실장석의 기원에 대한 여러 얘기와는 별개로 일본외 국가에서 실장석이 유입된 계기나 과정은 제법 상세히 밝혀져 있었다.

 

일본 다음으로 실장석이 유명하고 개체수도 많은 국가로는 바로 옆의 대한민국을 꼽는다.

한때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아래 신음하던 이 나라는 당연하게도 여러 경로로 실장석이 들어왔으며 당연히도 일본과 같이 애호파와 학대파, 애오파와 관찰파가 공존하는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유럽의 실장석은 굉장히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유럽으로 유입된 과정에 있었는데 유럽에 처음 들어온 실장석은 1차세계대전 당시 유럽으로 파견된 일본 간호사가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에서도 드물던 애호파이던 간호사는 유럽에 파견되기 전부터 실장석의 인식 개선과 사육화에 의욕적이었는데 한창 참호에서 구르며 피폐해진 군인들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실장석을 반려동물로써 안겨준다면 이들의 망가진 정신을 치유해줄 수 있을거라 굳게 믿으며 일본내의 의욕적인 애호, 애오파들과 힘을 합쳐 백여마리 가량의 실장석을 들여온것이 시작이었다.

 

다만 그 결과물은 처참했는데 당시 수송선으로는 아시아 끝자락의 열도에서 유럽까지 오는데만 수개월에 링갈도 훈육법도 없이 애호, 애오파들이 골라 보낸 실장석의 수준이란건 뻔할 뻔자였기 때문이었다.

 

출발할때만 하더라도 나름 귀염성 있던 자실장, 엄지실장들은 수개월간의 항해동안 애호파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잘먹고 잘싸며 살도 투실투실 오르고 목청도 시끄러운 중실장, 성체실장이 되어있었고 그렇잖아도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와 적에 대한 증오 속에서 살아가던 군인들 사이에 '올리기'가 완료된 분충들을 던져놓으면 결과야 뻔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시끄럽게 짖어대고 그렇잖아도 부족한 식량을 탐하며 뻑하면 위협과 투분을 해대 군인들의 스트레스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로 위치가 발각되어 독일군의 포격과 돌격대의 습격에 백수십의 병사를 잃은 연합국 총사령부는 이내 모든 전선의 실장석을 수거하고 일본으로부터 실장석의 유입을 틀어막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범한 생존력과 번식력을 가진 실장석은 그 열악한 참호속에서도 수천으로 불어나 있었고 이는 곧 연합국에 있어 골치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이 때 등장하여 실장석의 새로운 사용방법을 전한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시 런던의 한 대학교에 모종의 이유로 파견을 나왔다가 전쟁으로 발이 묶였던 일본의 토시아키 교수로 그는 곧 일본에서 일부 학대파와 관찰파에 의해 발견된 실장석의 새로운 사용법인 '식실장(食 装)'을 제시했다.

 

이른바 욕심과 식탐이 넘치고 할 줄 아는거라곤 없으며 인간을 깔보는 짓소세키란 생물은 우수한 번식력으로 개체수가 넘쳐나며 역한 냄새가 나는 분대만 제거하고 강한 향신료로 냄새를 잘 덮고 요리한다면 성체 한마리로도 성인남성 두엇이 배부르게 먹을 양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초기 연합군은 당연히 이런 더럽고 시끄러운 괴생물체를 식용으로  쓴다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점 전선에서의 불만이 팽배하고 식량사정이 악화하자 시범적으로 만들어 본 실장석 요리가 제법 괜찮다는걸 인지하자 곧 전선에서 수거된 실장석들은 특별 사육용 공장에 밀어넣어져 식용으로써 다시금 전선에 뿌려지게 되었다.

 

물론 시범식 당시 프랑스나 일본 등지의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와 전선에서 병사들이 별다른 향신료도 없이 야메로 만든 요리가 같을수는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건 당대 연합군의 식량사정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연합군 이상으로 식량사정이 처참한 독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리 만무, 이윽고 여러 경로로 유출된 실장석은 독일에까지 그 서식지를 넓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가 실장석의 존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전쟁 당시 급한 식량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불려놓은 머릿수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되려 문젯거리가 되버린 경우였다.

 

어느세 유럽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한 실장석의 존재에 유럽인들은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애당초 애호파와 애오파가 어느정도 형성되고 실장석도 야생에 충분히 자리잡은 일본 열도, 한반도, 만주의 상황과는 달랐다.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던 실장석의 존재는 유럽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전선에서 실장석의 분충성에 데이고 냄새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실장취가 풍기는 죽이라기엔 묽고 스튜라기엔 질은 무언가를 먹던 군인들이 가장 먼저 실장석을 배척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기어코 사회로 기어나온 실장석들이 뒷골목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쓰레기통을 뒤져대고 사방을 운치투성이로 만들며 농촌의 작물을 서리하고 마당을 더럽히는 덕에 온 유럽에는 애호파도 애오파도 자리잡을 틈이 없이 사람들은 실장석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먼저 얻어버렸다.

 

결과는 뻔했다.

이윽고 시작된 실장석 사냥에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과도기에 머물렀던 실장석들이 우수수 쓸려나갔다.

도로리도 코로리도 없었다.

최루가스나 온갖 날붙이 총검따위가 동원되었다.

숲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시 곳곳에 퍼져 사회를 막 형성하던 실장성들로썬 버텨낼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도시로 풀려난 모든 실장석을 박멸한 유럽에서는 아예 실장석을 철저히 박멸하거나 대서양, 북해 등지에 의 무인도나 인공섬에 남은 실장석을 몰아넣었다.

 

이러한 과정은 시대를 거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체 식량으로써 잠시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관적으로 이어졌다.

그 덕에 지금 와서 유럽에선 실장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유럽에서 실장석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경우가 다반사이며 그나마 가장 우호적인 경우고 식재료로써의 실장석이었다.

외국에서 실장석이 유입되는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을뿐더러 철저한 검사의 대상이며 자칫 실장석을 유입하다가 발각될 경우 극심한 외교적 불이익은 물론이고 해당 국가에 대한 입국금지 처분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다수의 유럽국가들러부터 페르소나 논 그라타( Persona non grata)로 지정될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유럽은 식당을 제외하곤 실장석을 찾아볼 수 없는 청정한 곳이며 지금와서는 실장석에 지친 여러 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반영구콘페이토 | 작성시간 24.05.04 흥미로운 현실적 설정인데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