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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참하신년대회

[[기타]]어머니를 버렸다. (수정)

작성자괴골권|작성시간19.03.04|조회수4,894 목록 댓글 27

" 그러니까, 난 가족 모임에는 안 간다고 했잖아. "
 
여기는 한 젊은 부부의 집.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밤이지만,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 그러니까 당신만 친정 갔다와. 나는 이 녀석이나 보면서 집에서 쉬고 있을게. "
" 데스우... "
 
이 집에는 숍에서 십수만원대에 거래되어 이 집으로 오게 된 세레브 등급의 실장, 초록이가 살고 있다. 엄지실장 때는 신혼부부였던 주인을 만나 이 집으로 들어와, 자실장을 거쳐 성체가 될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이 집에서 가사도우미 실장으로 살아온 초록이. 그런 초록이를 쓰다듬으며 남편이 무기질의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설날인데 혼자 친정에 가면 내가 뭐가 돼. "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대답을 하는 아내.
 
" 음... 친정에 돌아가서 가족으로서 도리를 지키는 장녀가 되겠지. "
" 그게 말이 돼? 당신 없이 나 혼자 가면 가족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
" ...그럼 나보고 가서 처남을 보라고? "
 
무기질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흠칫한다.
 
 
*
 
 
처남, 그러니까 아내의 남동생. 남편은 그가 가끔 경솔한 짓을 하고 깐죽거리긴 하지만, 젊은 나이에 10여명의 직원이 다니는 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는 어엿한 사회의 일꾼이라는 것으로만 안 채 지난 추석 아내의 가족 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될 얘정이었다.
그런데,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처음 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어.... "
" ....당신 설마. "
 
그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남편은 입술을 까득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치가 떨리는 얼굴이 처남의 얼굴과 겹쳐졌다.
자신의 군생활을 꼬이게 만든 주범이었던 오 상병. 그 망할 자식이 내 아내의 남동생이었을줄이야.
 
" 무슨 일이야? "
 
아내의 가족들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그 두명에게 시선을 모았다.
남편은 입술을 깨문채 부들부들 떨다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 라고 신음소리를 내듯 말한 뒤,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쇼파에 몇 분간 앉아있다가 급격한 구토감을 느끼고 화장실로 뛰어가 비어있는 속에 들어찬 위액을 게워냈다.
 
남편이 이등병으로서 처음으로 자대로 간 날, 미래의 처남이 될 오 상병은 그 생활관의 실세였다.
오래전의 부조리가 넘치는 군대 답게, 자대로 간 날 신병 신고식이랍시고 이것 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음 당하고 능욕을 당하던 남편에게 오 상병은,
 
" 야, 그래서 부모님은 뭐하시냐고? 이 자식아. 대답 안해? "
 
라고 하며 뺨을 약하게 툭툭 쳤다. 견디다 못한 남편은
 
" ......저, 부모님이 없습니다. "
 
라고 눈을 질끈감고 말했다. 그리고 일 순간, 내무반에 정적이 흘렀다.
 
" 하, 나. 미친 새끼인가. 거기서 부모님이 없습니다가 나오면 어떻게하냐. 아오. 진짜. "
 
침묵을 깬 것은 생활관의 실세이자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하는 오 상병.
어떻게든 망해버린 내무반의 분위기와 신병 신고식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다.
 
" 너, 시발 설마 갈구는거 피하겠다고 부모님을 버린건 아니겠지? 엉? 어머니를 버린 거면 뒤진다. 진짜. "
" ....... "
" ....... "
 
내무반의 침묵은 한 층 무거워졌고, 신병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 상병을 노려봤다.
 
"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 뭐야, 어디서 말대... "
- 퍼억!
 
다음 순간, 뺨에 주먹을 얻어맞은 오 상병이 내무반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이등병은 이를 악물고 두 계급 위의 선임병을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등병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였다.
그의 부모는 생각 없이 몸을 굴리다가 그만 낳게된 아이를 그대로 고아원에 버리듯 맡겨버렸고, 그는 고아원의 친구들과 원장님, 보육사들을 가족삼아 어린 나이부터 가혹한 현실을 이겨냈다. 그가 미래의 처남이 될 사람을 선임병으로 군대에서 만날 정도로 군대를 늦게 간 이유는, 사회에 자리를 잡고 군대를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대학을 다니며 공인중개사 합격을 따낸 뒤 군대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공인중개사 합격을 한 그에게 친모가 연락을 해왔다. 살갑게 가족의 정을 말하는 친모였지만, 그는 사회경험을 통해 꿰뚫어보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돈이라는 것을. 그렇게 그는 미련없이 친모에게 더이상 연락을 하지 말것을 고했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로 '어머니를 버린' 것이고, 미래의 처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언을 해도 제대로 실언을 한 것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주변 장병들에게 붙들려 제압되었고, 선임병에 대한 폭력으로 자대를 전입하자마자 영창 15일에 구형되고 바로 다른 자대로 전출되는 역대급으로 꼬인 스타트를 하게 되었다.
요행히 옮겨간 자대의 소대장이 그의 사정을 알고 뒤를 봐준 덕분에 두번째 자대에서의 군생활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해낼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어디까지 군생활이 꼬였을지 모를 일이었다.
 
 
*
 
 
" 처남이랑 내 사정은 장인어르신, 장모님도 다 아셨다며. 내가 안 간다고 뭔 일 있다고 생각 하시겠어? "
 
커피를 마시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남편.
당시 남편과 처남의 분위기를 보고 둘 사이에 뭐가 있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고, 설날 가족 모임이 끝난 다음날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아들이 군대에 있던 시절 폭행으로 입원했던 일과 이것이 관련 있지 않느냐고 묻자 동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대강의 전말은 가족들도 모두 눈치를 챘다.
 
" 그러니까, 동생놈이랑 이야기를 해보라니까. 우리가 이미 뭐라고 했고, 그 녀석도 그때의 잘못을 사과하고 싶다고... "
" 사과는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
" 당신, 그러면 처남이랑 계속 안보고 지낼거야? "
" 언젠가는 내 마음이 풀릴지도 모르지. 그런데... "
 
남편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감정을 눌러 참는 눈빛으로 아내를 쳐다본다.
 
"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그 양반 얼굴만 생각해도 짜증이 치밀어올라. 뭔 일을 저지를지 모를 거 같다고. "
" ...당신. "
" 그만하자.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지친다. 난 초록이와 설날을 보내겠어. 너도 좋지? 초록아? "
" 데스데스. "
 
두건을 쓰다듬어주자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는 초록이. 하지만 표정은 편치 못하다.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눈치챈 것이리라.
아내도 초록이의 그런 눈빛을 눈치챈 것인지, 스피커형 목걸이 링갈의 스위치를 매만지며 묻는다.
 
" 초록아~ 네가 대답해보렴. 저 사람 말이 맞니, 내 말이 맞니? "
" 하, 참. 이젠 실장석한테 편을 들어달라고 하는거야? "
" 당신은 조용히 해. 우리 세레브 실장 초록이의 말도 들어볼거야. 어엿한 우리 가족이니까 "
 
목걸이 링갈의 스위치를 꾹 누르는 아내. 이미 이 일이 익숙한 듯, 스위치 소리가 들릴때까지 기다렸다 초록이는 입을 연다.
 
" 데스 데스 데뎃스! 데스. 데샤아앗! "
( 누가 맞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가족끼리 싸우는 것은 분충이에요. )
 
아내의 얼굴이 조금 시뻘개진다. 초록이를 들여서 키우자고 한 것은 아내 쪽이었기에, 이쪽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편을 들어주기는 커녕 분충이라고?
 
" 초록이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내가 뭐랬어. 그만 하자고 했잖아. "
" 지금 이 자식이 주인인 나보고 똥벌레라고 했잖아! "
" 그 이야기가 아닌거 당신도 알지? "
" 데스. 데깃. 데갸아스. 데스우. "
( 마마와 파파가 싸우느라 저녁밥도 못먹었어요. )
" ...당신, 이 녀석 밥도 안챙겨줬어? "
 
아내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비웃음과 허탈함이 섞인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 이 상황에서도 밥 이야기인가. 실장석은 못말려 정말. 그래 그래. 푸드 갖다주면 되잖아. "
 
푸드를 가지러 가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보며 초록이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다.
 
" 데스 데스 데뎃스. "
( 정말 못말리는 똥마마에요. )
" ......하? "
 
굳어있던 남편의 눈빛이 흔들린다.
 
" 데스! 데스우뎃! 데스데스! 데쁘쁘쁘. "
( 파파. 저런 분충은 솎아내시고 나랑 살아요. 후후후후. )
 
푸드를 들고 오던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더니,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게 뻘겋게 물들기 시작한다.
 
 
*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있어 '현명함'이라고 한다면 인지 능력, 기억력, 집단의 협력성, 문제 해결 능력 등의 '지성'에 해당하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링갈'이라는 도구로 하여금 언어가 통하게 되어 그 지성의 수준이 상당부분 밝혀진 것이 실장석이란 동물이다. 따라서 실장석을 일러 현명하다고 할 때는, 특히 사육 실장석의 '현명함'의 기준은 일반적인 동물의 지성과는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실장석에게 요구되는 현명함은 '절제'이다. 사육 실장석은 스스로의 오만함과 끝 없는 욕망을 절제할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이 '현명함의 척도'가 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장석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세레브 실장'이 되기 위해서라면, 절제심은 기본 소양일 뿐이다. 기본 소양을 갖춘 사육 실장 후보석들에게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가 중요해진다.

 

" 데스데스. "
( 마마. 파파. )

 

실장석과는 핀트가 조금 다른 인간의 삶ㅡ예를 들어 사육주와 애완동물의 관계, 직업과 업무, 휴가 등에 대한 개념 등을 이해를 하지 못한 채, 그저 '훈육'에 의거해 닝겐상을 모시고, 닝겐상이 어떻게 구해다주는지도 모르는 푸드와 음식과 옷을 제공받고, 언제일지 모르는 닝겐상이 집에서 나가지 않고 놀아줄 때를 기다리는 개체는 절제심이 뛰어나다 해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훈육의 공포'에 눌려 자신의 본능을 감추는 것에 불과할 뿐이며, 그런 녀석들은 그저 싸구려, 잘 쳐줘봐야 중 등급 전후의 애완동물로 취급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주인인 젊은 부부의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그들을 마마와 파파로 호칭하고 있는 초록이는 세레브 실장답게 굉장히 현명한,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을 제법 잘 이해하고 있는 실장석이다. 하지만...
 
" 데스 데스... 데갸아? 데스가? "
( 마마와 파파는 행복하게 사는게 맞나요? )
 
그토록 현명한 실장석 초록이에게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자신들에게는 생소한 '부부'이라는 개념. 성체가 되어 머리가 굳기 전에는 그냥 '마마 옆에 있는 마라닝겐이 나를 함께 길러주는데, 그걸 파파라 부르나보다!'하고 넘어갔던 일을, 최근 문득 의문을 가지고 '마라 닝겐'과 '자신과 비슷한 닝겐',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부부라는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부인'의 개념에 대해 공부하던 과정에서 의문을 가졌다.
 
" 데스 데스 데스. 데갸아스. 데스 데스우. 데스 데스야? "
(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하고, 집을 지키며 남편을 기다리는게 내조라면, 마마는 무엇인가요? )
 
젊은 부부는 요즘 시대에는 보편화된 맞벌이 부부였다.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열정적으로 '워커 홀릭'의 삶을 살고있는 마마. 그렇기에 마마는 적당한 직장에서 딱 할만큼 일을 하고 정시에 퇴근해 집에 오는 파파에 비해 늦게 집에 오기 일수였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하기 힘든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구하려다, 비교적 저렴하게 인간을 대신해주면서도 애완동물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초록이가 선택되어 이 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맞벌이의 개념과 마마가 워커홀릭이니, 남편은 그렇지 않느니 하는 내용까지 파악하기엔 제아무리 세레브 가사실장인 초록이라고 해도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 데스... 데갸아스. "
( 마마는 현모양처가 아니에요. )
 
다소 시대에 뒤쳐진 아내에 대한 개념을 공부한 초록이. 거기에 실장석 특유의 행복회로가 맞물려졌다.
이윽고 초록이의 상념은, 그 어떤 사육실장도 품어서는 안되는 잘못된 생각으로 향한다.
 
" 데스! 데스 데스뎃! "
( 내가 바로 현모양처에요. )
 
그것은 바로 감히 사육되는 존재인 자신을 자신의 주인과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하는 것.
그것도 모자라 초록이는 한 발짝을 더 나아간다.
 
" 데스 데스! 데스우, 데샤뵷! 데쁘쁘쁘. "
( 파파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마마를 몰아내겠어요. 후후후후. )
 
그렇다. 동일 선상에 놓인 주인을 '몰아내야할 라이벌'로 인식한 것이다.
그렇게 높은 프라이드, 숙달된 가사능력, 풍부한 지성을 갖춘 세레브 실장 초록이는, 다른 실장석들과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인간에게 도전하는 '분충'이 되고 만 것이다.
 
 
*
 
 
" 후욱. 후우, 하...... "
 
집안에 몇 초간 침묵이 감돌고, 마마는 물론 파파의 표정마저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며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초록이가 뒤늦게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초록이가 범한 실수. 그 첫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자신을 인간과 동일 선상에 둔 것.
그 두번째는, 자신이 그런것 처럼 파파가 마마를 버릴 각오를 할 정도로 자기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한 것.
그 세번째는, 파파와 마마의 갈등 상황이 파파가 마마를 버릴만큼 심각한 것으로 착각한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무수한 손길질과 실장채 세례에 초록이는 도게자를 하며 빌고 또 빌었지만, 이성을 잃은 아내의 구타로 초록이는 이빨 몇개를 잃고 양다리가 반쯤 박살났고, 그대로 기절했다.
 
" 당신, 정말 날 솎아내고 이 쓰레기랑 살... "
 
신경질적인 눈으로 남편을 돌아보며 짜증을 내는 아내에 개의치 않는 듯, 남편은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와 주사기를 초록이에게 찔러넣는다.
 
" 데겟ㅡ "
- 부르르르르르르르
" 뭐하는거야, 당신? "
" 음... 그러니까, 다친 초록이에게 실장 활성제를 주사하고 있지? "
" 그러니까 이 쓰레기를 살려서 어디에- "
 
말을 하던 중 아내는 눈치를 챘다.
아까 가족 모임 이야기를 할때만 해도 무기질이었던 남편의 눈빛이 바뀌었다.
차가운 것은 똑같지만, 그 속에 고요하게 맴돌고 있는 증오가 눈빛을 통해 쏟아져나온다.
 
자신이 아는 한, 남편이 이런 눈빛을 보인 일은 두 번이다.
첫번째. 연애를 하던 시절, 지하철 치한이 자신의 엉덩이에 손을 댔을 때.
두번째. 추석에 자신의 남동생을 만났을 때.
 
그 어떤 뜨겁게 타오르는 분노보다도 무서운, 차가운 분노. 그것이 남편이 화가 났을 때의 모습이다.
 
" 이 녀석, 내가 처리할테니까 당신은 방에 들어가서 쉬어. "
 
남편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동시에, 지금까지 구타해왔던 초록이... 아니, "쓰레기"에게 연민의 표정을 남긴 채 침실로 향한다.
 
" 데규, 데르그르르륵, 데그윽... "
 
박살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재생하고, 그 의식도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하는 초록이.
초록이를 보며 남편은 천천히 목장갑으로 손을 밀어넣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중의 집에, 초록이의 운명을 상징하듯 불길한 쫙. 쫙. 소리가 울려퍼진다.
 
 
*
 
 
" 데스! 데스우! 데샤! 데스! "
(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용서해줘요! 파파! )
 
곳곳이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은 채 양손과 머리를 바닥에 쳐박은 초록이. 이른바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가 바로 이것일까.
역시나 현명한 세레브 실장답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합당한 사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당연히 죄송해야지. 초록아. 너의 죄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어. "
" 데스! 데갸아스! 데스우! 데스! 데스, 데샤아아! "
( 죄송해요! 부탁드릴게요! 다신 잘못 안해요! 파파! 용서해주세요! )
" 다시는 하지 않을테니 용서를 해달라. 하. "
 
하지만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게 굳어있다.
 
" 그 정도로 넘어갈거라고 생각하지 마. "
" 데...스...? "
( 파파? )
 
목장갑을 낀 남편의 손이, 초록이를 거칠게 들어올려 눈앞까지 들고온다.
딸깍, 소리를 내며 스피커형 목걸이 링갈이 초록이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다.
 

" 넌 마마를 배신했고, 내게도 배신을 충동질했으며, 사육실장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했지. "
" 데....... "
" 그런 죄가 용서를 받으려면 '다신 하지않겠다는 말'만으론 부족해. 그 이상이 필요하단다. "
" 데...데! "
" 처벌이다. "
- 쫘아아악
" 데,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분홍색 파자마가 남편의 손에 의해 순식간에 반쪽으로 찢어졌다.
그 바람에 초록이는 팬티만 입은 채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 뎃! "
 
다리부터 바닥에 떨어져, 금방 재생된 다리가 또다시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초록이. 동시에 부욱, 부류륫 소리와 함께 하얀색 팬티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세레브 실장이라선 절대 범해선 안 될 금기인 탈분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데휴우... 덱, 데휴... "
" 너 때문에 집안이 형편없어졌구나. 가사 실장 초록아. "
 
아내가 구타하던 과정에서 생겨났고, 방금 자신이 이 녀석을 떨어뜨리면서 또다시 생겨난, 주변 사방으로 튄 초록이의 잔해물과 피, 운치를 보며 남편은 이죽거린다. 그리고 찢어진 파자마를 교차하고 접어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을 초록이의 눈 앞에 던지듯 놓는다.
 
" 네가 해야할 일이 뭔지 알겠지. "
" 데.... 데끅... 데휴우... "
" 집안을 어지럽힌 죄를 네가 가진것을 이용해 치르는거야. 그게 죄에 대한 책임이다. "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이쯤에서 옷을 빼앗긴 패닉으로 "뎃샤아아아아아아!" 하고 발광을 하거나, 팬티를 열어보이며 "뎃슨♡"하고 상대를 유혹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록이는 세레브 실장.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고, 흐르는 색눈물을 한손으로 훔쳐내며 열심히 걸레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은, 파자마였던 분홍색 걸레가 운치를 양껏 닦아내는 모습을 보더니 걸레를 낚아챈다.
 
" 그만해라. "
" 데...... "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던 초록이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드디어 처벌을 멈춘 것인가...?
미소를 지으며 초록이가 돌아보는 순간, 눈을 감은채 고개를 천천히 젓는 주인이 보인다.
 
" 생각해보니 이 잠옷은 네가 가진게 아니잖아. 우리 와이프가 준 거지. "
" 데뎃? "
" 그런데 넌 와이프... 그러니까 네 마마를 배신했잖아. 어머니를 버렸어. "
" 데....... "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며 목장갑으로 초록이의 목을 지긋이 쥐는 남편.
 
" 주인을 버린 사육실장을 더 길러줄 이유는 없지. "
" 데...데! "
" 그러니까 넌 이제 우리집에서 사육하는 가사 실장이 아니란 뜻이다. 따라서 '집안을 치우는 것'은, 네가 해야할 일이 아니야. "
- 푹. 푹. 푹.
" 데급! 우급! 극! 그욱! "
 
남편은 무심한 표정으로 똥이 가득 묻은 분홍색 걸레를 초록이의 입에 쑤셔넣었다.
초록이의 팔과 뭉개진 다리가 붕쯔붕쯔 소리를 내며 바둥거리고, 양 눈에서 색색깔 눈물이 주룩주룩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이빨이 뿌러지는 소리, 흡사 토하는것과 같은 숨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운다.
 
" 감히 어처구니 없는 요설을 늘어놓는 입은 똥걸레를 문 것이나 다름이 없지. "
 
모든 처치를 끝낸 남편은, 화장실로 초록이를 들고가 팬티마저 벗겨버린다.
그나마 초록이의 탈분을 막아주던 방파제마저 사라지자, 녹색의 운치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다.
남편은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표정을 한껏 구기더니, 몸을 쥐어짜듯 똥을 빼낸다.
 
" 우그으그으으으그읍! 우그으으으으으! "
 
팔다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전신의 격통이 초록이를 덮친다.
날때부터 똑똑했고, 교육 과정에서도 회초리 훈육 정도만 받으며 세레브 실장까지 자라난 초록이였기에 전신을 쥐어짜내는 고통에는 면역이 없었다.
결국 똥걸레를 문채 막힌 입으로 아우성을 치던 초록이는, 전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
 
 
" 데규우.........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 몸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초록이는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뜬 것일까?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이 깜깜하다.
 
" 데, 데스우! 데스! 데갸아스! 데스! 데스! 데스! "
 
여긴 어디에요. 깜깜해. 무서워. 파파. 마마. 도와줘. 살려줘!
마치 막 태어나자마자 친에게 버려진 자실장이라도 된 것처럼, 초록이는 큰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다.
 
- 덜컹.
" 데ㅡ "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어둠 속에서 위로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 이어 위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진다.
눈쌀을 찌푸리며 눈을 비비던 초록이는, 그림자가 져서 얼핏 알아보기 힘든 얼굴을 용케도 알아봤다.
 
" 데스! 데스우... 데스우.... 데샤.... "
 
파파. 보고싶었어. 살려주세요. 용서해주세요.
그 말을 알아 들은것인지 무엇인지, 피식 하고 미소를 지으며 파파는 손에 든 목걸이 링갈의 스위치를 켜고 말한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더이상 널 기르지 않기로 했다. "
" 데....... "
 
멍청한 표정으로 파파를 올려다보던 초록이.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초록이의 머리를 스친다.
 
세레브 사육실장답게 여기선 다시 도게자를 해야 할까?
아니면 감정에 호소하며 울고불고 메달려야할까?
본능에 맡겨 아첨을 해서 위기를 벗어날까?
아니면 총구를 열어보이며...
 
- 치익
 " 데....데덱! "
 
초롱이가 무언가 골똘히 궁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파파는 다른 손으로 지포라이터를 꺼내, 칙 소리를 내며 불을 켜서 갖다댄다.
불이 가까워지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하는 초록이.
 
" 네가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
" 뎃! "
" 너는 길러준 주인을 애정의 대상 및 연적으로 보았지. 그 죄를 물어, 성욕의 근원인 총구를 불태울거야. "
" 데......... "
 
빳빳하게 굳은 표정으로 파파를 바라보는 초록이의 물기 젖은 눈빛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한다.
 
" 뎃! 데데스우! 데스데스! 데갸아스우! 데스! "
( 안되요. 그건 너무 가혹해요. 하지 말아요. 그래선 안되요 파파. )
 
경악을 한 표정으로, 감각이 없는 팔다리를 어거지로 움직여 어정쩡한 도게자 자세를 취하는 초록이를 보며, 파파는 또다시 비웃음 섞인 한숨을 흘렸다.
 
" 하... 그래. 가혹하지. 그러게 왜 그런 잘못을 했니? "
" 데.... "
" 왜 너를 사랑하던 마마를 버렸냐고. 쓰레기 녀석 같으니. "
" 데........스........ "
( 파파... )
 
끝이다. 어떻게 해서도 막을 수 없다. 파파... 아니, 이 미친 학대파는 결국 내 총구에 불을 지르고 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초록이는 정신을 놓은듯 광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 데....데프프프, 데쁘쁘쁘쁘... 데퍄퍄퍄퍄퍄퍄퍄! "
" 흠? "
 
그 비웃음에 흠칫하며 초록이를 지켜보는 파파.
 
" 데스우우우! 데스, 데스데스! 데갸아스뎃! "
( 내가 미친 놈이었어요. 당신을 사랑해서 그런 일을 벌였었다니. )
" 하아? "
" 데스! 뎃데로데ㅡ스우! 데스. 데스우. 데스 데스. "
( 파파가 행복하길 바랬어요. 마마와 행복하지 않아보였기에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
 
증오로 물든 초록이의 두 눈에서 시뻘건 선홍색의 핏물과, 피와 녹색의 눈물이 섞인듯한 짙은 녹갈색의 국물이 뿜어져나왔다. 초록이는 곳곳이 부러진 이빨을 뿌득뿌득 갈며 말을 이어갔다.
 
" 데스 뎃데스! 데스데스데스! 데갸아스! 데샤아아아데스! "
( 파파를 사랑했어요. 그래서 마마를 버리려고 했어요. 그래요. 내 실수네요. 파파. )
 
생전 한 번도 주인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던 초록이가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파파를 노려본다.
주인에게 어디서 말대꾸야.
본격적으로 개기는 것을 보니 완전히 분충이 다되었구나.
그렇게 말하며 초록이를 다그칠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파파는 라이터의 불을 끈 채 잠자코 듣고 있다.
 
" 데스데스데샤아아아아아! "
( 파파는 날 사랑하는게 아니었어요! )
 
초롱이의 말이 멈춘다. 증오로 불타던 눈빛은 그대로 파파를 향해있었다.

파파는 눈치를 챘다. 그 증오로 불타던 눈빛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련 한 조각을. 그리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문다.
 
" ...바보냐. "
 
아무것도 모른채 우연히 누군가의 마음을 짓밟는 것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어쩔수 없다면서 상대의 마음을 짓밟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쁜 것일까.
 
" 마마를 두고 널 내가 왜 사랑해. 쓰레기 녀석 같으니. "
" 데............... "
 
초롱이는 언청이 입을 연 채 마치 죽은것처럼 몇 초간 가만히 파파를 쳐다본다.
 
" 데...데에엥... 데에에에엥! 오로롱! 오로로ㅡ옹! 데에에에에에엥! "
 
이미 말라붙은 것 같았던 초록이의 양눈에서 다시 녹색과 붉은색의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양 손을 눈에 붙인채 하염없이 우는 초록이의 모습을 보며, 편치 않은 표정으로 파파는 뒤로 돌아섰다.
초록이가 갇힌 다용도실 문을 힘 없는 표정으로 나서던 파파는, 또다시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
 
 
" 선택을 해라. 하나는 아까 내가 하려던 생각대로 네 총구를 불태운 뒤, 네 태생 실장복을 받고 이 집에서 쫓겨나는 거다. 네 성욕을 대가로 자유를 주는 것이다. "
 
몇 십분이 지나고, 퉁퉁 불은 두 눈으로 영혼이 빠져나간듯 허공을 바라보는 초롱이를 향해 무기질한 표정의 남편이 말을 걸었다.
 
" 두번째는 말이지. 자유를 빼앗기는 것을 대가로, 네가 마음대로 성욕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다만. "
 
턱을 만지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의 남편은 다시 말을 잇는다.
 
" 미리 말해두겠는데, 총구를 불태우고 자유를 얻는 것보다 훨씬, 더더욱 가혹한 일이 될거야. "
 
남편의 눈빛에는 이미 차가운 증오 같은 것은 날아간지 오래였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 .....데스데수. "
( 자유를 빼앗아주세요. )
 
촛점을 잃은 눈동자가 남편을 향해 천천히 돌려지더니, 한숨을 쉬듯 세모꼴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남편은 눈썹을 조금 뜰썩이며 초록이를 지켜보다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곧이어 남편은 품에서 작은 분무기 형태의 스프레이를 꺼내 초록이의 얼굴에 분사하고, 초록이는 다시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
 
 
" 나는 네 자유를 빼앗는 대신, 너와 재혼을 하겠다. 너를 괴롭힌 나와 함께 사는게 형벌이 될거야. "
 
정신을 차려보니, 미소를 짓고 있는 파파가 그렇게 말을 해줬다.
이제 와서...? 이게 사실일리가 없어. 그 차갑던 학대... 아니, 파파가?
혹시 거짓말은 아닐까? "
 
" 네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다오. "
 
파파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만졌다!
깜짝 놀란 눈으로 파파를 보다가 문득 팔을 뻗어 몸을 만져보니 어느새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프릴 달린 드레스가 입혀져있었다!
파파! 이제야 내 마음을 알아줬구나!
 
" 그럼 소송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혼 소송 결과, 전부인 오 씨는 고통을 준 새 부인 초록이 양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며... "
 
이어진 똥마마와의 이혼 재판에서 승소를 따냈다.
파파... 아니지, 이제 남편 사마와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남편사마! 너무 기뻐요!
 
" ㅆ발! 내가 왜 이딴 똥벌레에게 이런걸 줘야하는데! "
 
똥마마가 위자료로 스테이크와 스시를 갖다 바치고 있어!
남편사마는 똥마마를 한번 비웃어주고는 와타시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남편사마... 이 행복이 언제나이길 바래요...
 
" 초록아. "
" 데스우... "
" 네가 선택을 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나니? "
" 데... "
" 네가 마음대로 성욕을 누리게 해줄거야. "
" 뎃! "
" 오늘이 그날이야. "
 
남편사마... 와타시는 남편사마가 파파였을때부터 각오하고 있었어요.

수많은 위기가 있었고, 파파를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다니 너무 기뻐요.
자를 낳겠다는 말을 한번도 안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이날을 기다렸던 거였어.
남편사마. 파파.
와주세요.
당신의 마라를 내게 줘요.
나를 당신의 여자로 만들어줘요.
 
- 푸욱
" 데데데데데데데데데겟♡ "
 
드디어 들어왔어.
이 충족감. 총구를 가득 채운 남편사마의 따뜻한...
 
따뜻한...
 
 
따뜻한...
 
 
 

 
차가...워?
 
 
 
 
 

 

 

 
" 뎃................ "
 
초록이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눈을 비비려고 손을 뻗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이 플라스틱 재질의 무언가에 막힌 채 숨만을 쉬고 있다.
총구를 향해 꽂혀있던 차가운 파이프가 운치를 빨아들이는 것을 멈추고 총구에서 빠져나간다.
돌아가지 않는 고개에 간신히 눈을 돌려 옆을 바라본다.
 
팔과 다리가 묶인채 벽에 묶여있는 독라의 동족이, 닌겐상들이 말하는 '호흡기'라는 것을 차고 있고, 입에는 무언가 거대한 빨대씨가 물려져있다.... 그럼 내 입을 막은게, 저 거대한 빨대씨야?
 
" 우........우그으으으으으으읍!!!!!!!!!!!! "
 
 
*
 
 
" 깨어났네요. 저 녀석. "
 
여기는 도심 바깥의 실장석 공장. 쇠로 된 걸쇠. 입 부분에 설치된 호흡기와 푸드 급여용 파이프. 총구 부분에 탈착식으로 설치된 분변 흡수 파이프. 임신을 조절하는 양 눈의 점등기로 이뤄진 출산석용 장치에 수십마리의 실장석들이 묶여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장치 위의 벽에 별표가 그려진 실장석을 보며 젊은 공장주는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 ...그런데 매형, 저 녀석이 뭘 잘못했길래... "
 
말을 흐리는 처남의 눈에는 그다지 원한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다.

물론 자신 역시 매형에게 폭행을 당해 며칠 누워있었고, 또 최근 추석날 과거의 그 일 때문에 가족에게 크게 혼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형이 잘못한게 아니다. 그만큼 자신의 말이 큰 실수였던 것 뿐이다. 철 없던 어린 시절의 잘못이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매형에게 원한을 가지는 것은 소인배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런 연락도 없고, 누님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그 일에 대해 언급을 피한다던 매형이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만나자마자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매형은 자신의 말을 끊고 잠을 자고있는 독라의 실장석이 들어가있는 케이스를 다짜고짜 맡긴 것이다.
 
" 글쎄. "
 
모니터를 무기질의 눈빛으로 보고있던 매형이 숨을 깊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 양반은 표정을 읽기가 힘들어서 더 무섭단 말이지.
 
" 굳이 따진다면... 어머니를 버린 것이 잘못인가. "
 
어머니? 마마... 그러니까, 누나를 버렸다고?
...
잠깐, 어머니를 버렸다... 그건 내가 저 양반한테 했던 말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젊은 공장주는 점점 아연실색하기 시작했다. 매형은 나를 용서하려고 온게 아니구나. 까딱 잘못하면 큰일 난다. 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 풋,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
 
갑자기 매형이 팔짱을 낀채 웃기 시작한다. 처남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핀다.
 
" 처남. 저 녀석이 낳은 놈들. 자동으로 분류가 되는 거겠지? 지 어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이? "
" 예? 아, 네. 뭐 그렇죠. 어미의 역할은 새끼를 낳는게 끝이니까요. "
" 그럼 저 녀석의 자식들도 어미가 없는거나 다름이 없구만. "
" 에...... "
" 크크크큭,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어미가 없는 새끼들이야. 어머니를 버린 새끼가 되는거라고. "
 
낄낄낄 소리를 내며 미친 사람처럼 웃는 매형의 모습에, 처남은 조금의 무서움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 아무 죄도 없는데. 어머니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자식들도 어머니를 버린 새끼란 소리를 듣는거라고. 크하하하하하핫. "
 
그렇게 말을 하며 매형은 천천히 모니터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 기세에 눌린 처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매형이 나간 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실의 뒷정리를 마친 공장주가 한숨을 쉬며 공장 문을 닫으며 나왔다.
이미 매형의 차는 없어진지 오래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났구만.
 
' ...모처럼 기회가 왔는데 화해도 못했구만. 누나랑 부모님한테 뭐라고 해야돼. '
 
한숨을 푹푹 쉬며 자동차 문을 여는 공장주. 문득, 바지에 넣어둔 휴대폰의 진동이 울린다.
 
" ...뭐야, 매형이잖아? "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예 매형. 무슨 일이라도. "
" 처남. 부탁 좀 합시다. "
" 예? 예. "
" 그 녀석. 초록이 녀석. 맛탱이 가서 못쓰게 되면 연락줘요. 그래도 주인이었으니까 죽을때는 내가 처리해줘야지. "
" 예, 뭐, 폐출산석은 푸드용 재료로나 쓰니까. 그렇게 해드릴께요. "
" ......와이프한테는 비밀로 해주시고. "
" 뭐 그거야 당연하죠. "
" 처남. "
" 예? "
" 설날에 봅시다. "
- 딸깍.
 
" .......하아? "
 
뭔 소리래. 하는 표정으로 처남은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봤다.
 
 

 

 

 
초본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싶어서 3월 5일 1시 46분 기준으로 가필 및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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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미필 실장 | 작성시간 19.03.05 ㅎㅇ
  • 작성자Lought | 작성시간 19.03.05 띵작이다
  • 작성자쿠마킷치 | 작성시간 19.03.06 으윽 내용이 무겁다
  • 작성자올누드레이스 | 작성시간 19.03.07 묵ㅡ직
  • 작성자다두 | 작성시간 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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