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두루마리 창작대회

[짬피-스크] 탁아에서 시작되는 짬피생활

작성자레훼에에|작성시간22.01.22|조회수1,915 목록 댓글 10

모두 오랜만인 레후!!

대회가 계속 밀리면서 대회 참여를 위해 스크 썼던 것도 잊었던 레후ㅠㅜ

더 늦기 전에 대회 참여하는 레휑!!

스크는 고뢰 오네챠가 지원해준 레후~~.

 

 

 

~~~~~~~~~~~~~~~

 

“후으, 춥다. 아, 돌아가기 싫어.”

 

입가에 남은 담배 연기를 후우- 길게 뿜어낸 김병장이 손가락을 튕겨 담뱃불을 떨어뜨렸다.

전역까지 아직 3개월가량 남았지만, 해안초소의 감옥같은 생활을 참지 못하고 이르게 써버린 말년휴가.

당장 사회로 돌아가 술을 퍼마시고 게임을 할 때는 자기 것만 같았던 시간은, 마치 방금 내뱉은 담배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칼바람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 씨X것.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냐...”

 

한숨을 푹 내뱉은 김병장은 터덜터덜, 언 땅 위를 걸어 초소가 있는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버스정거장으로부터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찬바람을 해치며 산을 오르는 길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었다.

 

빨리 들어가기 싫어서 중간중간 담배를 태우던 김병장은 문득 인근에 있던 눈이 뽀드득 밟히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직 복귀 시간까지는 30분 정도 남았다지만,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에게 걸린다면 좋은 소리를 들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담뱃불을 끄고 몸가짐을 고쳐잡던 김병장은 긴장된 눈빛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을 헤치고 나온 것은 소초장도, 부소조장도, 심지어 인간도 아닌 존재였다.

 

[데... 데뎃...?!]

 

[테츄?! 테츄 테치치!!]

 

봉제 인형만한 크기에, 태생적으로 입고 나와 몸과 함께 자라며 일생을 입게 되는 초록색 옷. 그리고 A자 모양으로 생겨 다물어지지 않는 언청이 입과, 성장시기에 따라 변성기를 거치며, 특정 어미를 반복해서 짖는 생물.

 

그 존재들은 실장석이었다.

 

“아... 이 씨x, 깜짝이야! 아! 저 개 같은 것들 때문에 내 돛대를 씨X!”

 

순식간에 표정이 굳은 김병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성큼성큼, 실장석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실장석이라는 존재는 다 자란다고 해봤자 겨우 40CM정도 되는 생물.

 

특이하게 벌레로 분류되어, ‘세계에서 평균 개체가 가장 큰 벌레’로 불리우는 녀석이니만큼, 혐오감은 들지언정 맹수를 마주하는 공포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을 보고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던 김병장은, 자신이 다가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엎드려 절하는, 일명 ‘도게자’ 자세를 취하는 성체실장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뭐냐? 갑자기 큰절(도게자)? 너 일부러 내게 접근한 거냐?”

 

[데, 데엣, 데엣! 데스, 데스! 데에에엥! 데에에엥!]

 

뭐라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성체실장의 울음소리.

그러나 실장석은 유일하게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생물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만큼, 그들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링갈’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요즘에는 핸드폰에 시계 기능처럼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는 기능이었기에, 김병장은 호기심을 느끼며 핸드폰에서 링갈 기능을 켜고 다시 실장석에게 말을 걸었다.

 

“뭐냐, 너?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말 해봐.”

 

[데에엥!! 와타시타치를 죽이지 말아주시는 데에엥!! 와타시타치 나쁜 짓 하나도 한 것 없는 산실장인 데에에엥!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거 같아 산 아래로 내려가던 중이었던 데스!!]

 

[테에...! 닝겐상, 제발 살려주는 테치... 얼어 죽을 것 같은 테츄...!]

 

링갈을 켜자마자 순식간에 올라가는 텍스트.

내용을 읽어보니 이 친실장과 자실장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산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산실장 일가였다고 했다.

 

월동준비를 제대로 못 한 탓에 추위와 배고픔을 못 이겨 산 아래로 내려가 도시에 숨어들려던 차에 자신과 마주치게 된 것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김병장은 김이 탁 빠지는 것을 느끼며, 순순히 두 모녀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몇 걸음 비켜주었다.

 

그러나 김병장이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훤히 비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실장은 무슨 생각인지 멍한 표정으로 데에- 거리며 김병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츄우우우...! 마마, 어서 내려가는 테치...! 좀 있다가 해씨가 없어지면 더 추워서 내려가지 못하는 테츄...!]

 

애가 타는 듯 자실장이 친실장을 재촉하지만 친실장은 이제 대놓고 김병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탐색하듯 눈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안 그래도 놀란 것 때문에 기분이 더러운데,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친실장의 모습에 김병장의 눈썹이 꿈틀였다.

 

“야, 안 내려가고 뭐하냐. 쟤 말대로 니들 해 지고 저까지 걸어가려면 얼어 뒤져. 가려면 빨리 가야지.”

 

[데... 데뎃... 와타시타치를 걱정하는 것까지... 확실한 데스...]

 

“?”

 

뜬금없이 흘러나온 혼잣말이 링갈에 찍히는 것을 보며 김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씩 불안한 기분이 들 때, 친실장이 각오를 한 듯 갑자기 넙죽, 다시 한 번 도개자를 하며 김병장 앞에 엎드렸다.

 

[닝겐상! 아니, 닝겐사마!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는 데스!!]

 

“어, 안돼.”

 

[데뎃?!]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거절부터 하는 김병장의 말에 친실장이 당황하며 땅에 붙였던 고개를 들었다. 김병장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였다.

 

“지금 꼬라지를 보아하니 먹을 것을 달라거나 키워달라는 것일텐데, 지금 난 먹을 것도 없고, 너희를 키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거든.”

 

[데, 뎃!!]

 

마치 독심술이라도 한 것 마냥 자신이 하려던 말을 정확하게 짚어낸 김병장의 말에 친실장이 새된 소리를 내었다.

 

[데에에엥, 안 되는 데스. 이미 늦은 데스. 이 상태라면 분명 가는 도중에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한 데스. 데에엥, 데에에에에엥!]

 

친실장은 투명한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꺽꺽 울기 시작하였다. 김병장이 슬쩍 옆을 보니, 친실장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듯 어서 내려가자던 자실장이 무릎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친실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 마마, 무, 무슨 말인테치? 여기서 조금 더 가고 나무에서 쉬면...]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얼어 죽는 데스!!! 죽는 데에에엥!!]

 

자실장의 말은 더 크게 높여 우는 친실장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묻혔다. 그 모습에 정말로 엄청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자실장이 [테칫?!]하며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를 잡는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친실장이 허겁지겁 자실장에게 달려가 품에 끌어안았다.

 

[오로로로로롱!! 와타시의 마지막 자의 위석이!! 와타시의 자가 죽기 일보 직전인 데스!!! 오로로로롱!! 닝겐상이 도와주면 살 수 있지만 닝겐상이 안 도와주면 자가 죽는 데스!! 오로로로롱!! 닝겐상이 와타시의 마지막 자를 죽이는 데스으으으!!]

 

“...?”

 

가만히 두 모녀의 모습을 보고있던 김병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 닝겐이 날 말하는 거냐?”

 

[데에에에엥!! 모른 척 마는 데스!!! 닝겐상이 도와주면 자가 살 수 있는 데스!! 제발 살려주는 데에에엥!!! 죽이지 마는 오로로롱!!]

 

아니, 이 새끼가?

 

안 그래도 심란한 상태의 김병장은 친실장이 놀라운 논리로 자신을 매도하자 이마에는 굵은 힘줄을 세웠다. 분노로 이를 악물자 힘줄이 당기며 도드라진 것이다.

 

막 걸음을 떼어 친실장을 단숨에 밟아버리려던 김병장은 친실장 품에서 녹색과 적색의 눈물을 흘리며 테에엥 테에엥 울고 있는 자실장을 보고는 심호흡을 하며 겨우 분노를 억눌렀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고, 날짜를 확인한 김병장은 곧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갑자기 히쭉, 웃으며 친실장에게 다가갔다.

 

“그래, 알았다. 내가 살려줄게. 하지만 지금은 너희를 데려갈 수 없어. 나중에 너희를 키울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해. 대신 밥은 줄 수 있으니까, 내가 말한 곳에서 기다릴 수 있어?”

 

[데, 데엣?! 왜 못 데려가는 데스!! 밖은 추운데스!!]

 

“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그럴 상황이 안돼. 대신 맛있는 밥은 줄 수 있으니,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을 거야.”

 

[데이... 집도 없는 거지 똥닝겐이었던 데스... 하필 지나가는 닝겐중에 이런 똥닌겐 밖에 없다니, 와타시는 운도 지지리도 없는 데스...]

 

혼잣말로 한다고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그 내용은 김병장의 최신 핸드폰 음성인식에 고스란히 담겨 착실하게 텍스트로 번역되었다.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고 뭐고 그냥 깔끔하게 밟아 죽이고 가버릴까 고민하던 김병장에게, 희망이 생겨 겨우 정신을 차린 자실장이 친실장의 품에서 내려와 도게자를 하였다.

 

[가, 감사한 테치. 그것으로도 충분, 아니, 과분한 테치. 정말 감사한 테치, 닝겐사마.]

 

[데엣! 장녀! 품위 떨어지게 지금 이게 무슨 망신인 데스?! 당장 일어서는 데스야!!]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은 기억도 못 하고, 인간에게 당연히 받을 것만 저울질 하고 있던 친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자실장은 나무랐다.

 

그런 자실장의 행동이 자신의 목숨을 살린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친실장은 자실장을 한참 혼내었다. 그 때문이에 둘은 자신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김병장의 입이 씨익, 섬뜩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날 새벽.

해안경비병인 김병장은 자신과 동반입대하여 같이 온 친구이자 동기인 나병장과 함께 경비를 서기 위해 초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흐아아아암... 아니, 미친놈아. 복귀 전에 약 처먹고 왔냐? 왜 갑자기 안 하던 지랄을 하고 그래, 하기는. 이 PT박스는 또 왜 들고 오고.”

 

“아 닥치고 따라와 봐. 우리 이제 휴가 나갈 껀덕지도 없고, 남은 시간 존나 심심할 거 아냐. 괜히 애들이나 괴롭히지 마라고 내가 선물 하나 준비했지.”

 

철책정밀점검 업무 때문에 철조망을 몇 번 쥐어뜯듯이 흔들며 초소로 걸어가는 도중, 김병장이 돌연 한 지점에서 멈춰 서서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나병장이 이건 또 무슨 뻘짓인가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테츄테츄] [데스데스] 소리가 나더니 두 실장석이 김병장을 향해 달려왔다.

 

“뭐, 뭐야! 실장석 아냐?”

 

“ㅋㅋㅋ그러게 내가 군말 없이 따라오라고 했지? 너 실장석 좋아하잖아. 그 뭐냐... 학살파라고 하던가?”

 

“아니 병신아, 그건 실장석 보는 족족 쳐 죽이려고 안달이 난 미친놈이고. 난 굳이 따지자면 관찰이 좀 더 짙은 애호파야.”

 

“아 뭐래 병신아. 무슨 역할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이름을 다 정하고 그러냐. 원래 실장석 좋아하면 다 그러냐?”

 

“아니, 실장석 좋아하는 건 애호파, 애오파고 싫어하는 게 학살파, 학대파, 그 외에는 관찰파, 실용파 무관심파...”

 

“그놈의 파파파. 안물안궁이니까 설명 그만하고 걍 닥치고 오세요. 가지고 놀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

 

“그래, 이 무관심파 놈아.”

 

말은 틱틱거렸지만 그건 오랜 친구이니 편해서 그런 것이고, 이런 외진 곳에서는 보기 힘든, 또 군내 반입이 불가한 실장석을 오랜만에 본 나병장의 목소리는 죽마고우인 김병장이 느끼기에도 부드러워져 있었다.

 

[데힉, 데힉, 또, 똥닌겐, 데힉, 바, 밥은 어디인, 데힉, 데스!]

 

[테힉, 테휴, 닝겐, 사마, 테휴, 춥지만, 계속, 테히, 기다린, 테휴우, 테치!]

 

친실장의 싸가지없는 말에 순간 얼굴을 굳혔던 나병장은 뒤이어 말하는 자실장의 말에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아, 자실장 귀엽네. 들실장 치고는 되게 양충인 거 같고. 너 이런 애를 어디서 데려왔냐?”

 

“지들이 얼어 뒤지기 싫다고 도시 가는 중이라며 내려오던데? 그러다가 저 큰 놈이 막 키워달라고 하고.”

 

“산에서? 그럼 산실장이야? 우와! 산실장은 처음본다! 확실히 산실장 애들이 양충비율이 높긴 하나보네. 근데 산실장 애들이 겨울나기를 실패했다고...? 그건 좀 이상한데...”

 

“뭔, 들실장, 산실장. 산과 들에서 뛰노는 토끼냐? 벌레 새끼는 그냥 벌레 새끼지.”

 

“뭐?! 야, 산실장은... 아니다. 됐다.”

 

양충, 분충, 산실장, 들실장과 같은 분류를 무시하고 싸그리 싸잡아 ‘벌레 새끼’로 요약해버리는 김병장의 행동에 순간 욱한 나병장이었으나, 이내 설명할 가치도 없다는 듯 투덜거리며 입을 닫았다. 어차피 무관심파에게는 설명을 한다고 해도 들을 생각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얘들을 어떻게 하려고?”

 

“부대 반입은 안 되니, 어디 숨어서 살게 하고 근무 나올 때마다 밥 좀 주려고. 전역까지 할 일도 없는데 심심하잖아. 솔직히 별  생각 없이 걍 해보는 거야. 이러다가 귀찮다 싶으면 걍 그만두고.”

 

“이런, 실장맘 같은 새끼.”

 

“뭐?!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닌가?”

 

자신을 ‘어설프게 챙겨주는 척 하면서 정작 책임감이나 사명감은 없이 언제든 그만 둘 준비를 마치고 있는’ 실장맘으로 비유한 것에 욱하려던 김병장은 머쓱해 하며 어깨를 들어 올렸다.

 

“하여튼, 딴 놈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너랑 나만 알고 있자고. 괜히 아는 사람 많아지면 분명 찌르는 새끼 나온다.”

 

“하긴... 너 하는 짓을 보니 애호파인 애 하나만 껴 있어도 ㅈ될 거 같긴 하네.”

 

김병장의 말에 동의하듯, 나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나누는 대화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도 모르는 친실장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지만.

 

[똥닌겐타치이이이!! 무슨 대화가 그리 긴 데스까?! 우마우마는 어디있는 데스아!! 뱃가죽이 등에 붙기 직전인 데스아!!]

 

[테에... 마마,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테치...]

 

“아아, 기다려라. 느그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엄청난 맛의 음식을 준비해주지.”

 

김병장이 잔뜩 실장들을 기대하게 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음식. 그것은 PX(군대에 있는 편의점이라 생각하면 됩니다.)에서 사먹다가 남은 치킨너겟 몇 점과 퉁퉁 불은 라면의 면발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오는 동안 체온을 받아 열이 오른 것인지, 훈훈하게 데워진 음식에서는 작게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데, 데스우우웅! 우마우마인 데스우! 우마우마!!]

 

[테치이, 닝겐사마, 정말 감사한 테츄, 감사한 테치이.]

 

확연하게 대비되는 두 실장석의 반응만큼, 그들을 바라보는 김병장과 나병장의 반응 역시 확연히 갈렸다. 김병장이 친실장의 시건방진 반응에 살짝 짜증이 난 표정을 지었다면, 나병장은 자실장의 눈물을 흘리며 도게자를 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배 많이 고프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나병장이 빙긋 웃으며 슬며시 자실장은 손으로 안고 윗 주머니에 넣었다. 갑작스러운 나병장의 행동에 자실장은 깜짝 놀랐지만, 자신에게 밥을 주려는 닝겐이 나쁠 리 없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병장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우마우마! 우마우... 데뎃?! 어디를 가는 데스? 뎃!! 삼녀!! 와타시의 자를 내려주는 데스!!]

 

“이 아이가 삼녀구나? 빨리 가서 밥 먹으려면 어서 움직여야지. 친실장, 넌 어미니까 충분히 혼자 따라올 수 있지?”

 

[그게 무슨 운치같은 소리인 데스아아!! 와타시도 안고 가라는 데스!!]

 

“아, 진짜 시끄럽게. 밥 안 준다? 이거 버려?!”

 

나병장의 행동을 촌극 바라보듯 어이없게 보던 김병장이 자꾸 늦어지는 걸음에 짜증을 내며 자신이 가져온 음식물을 멀리 던지려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투명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따라오던 친실장의 눈물색이 돌연 적록색으로 변했다.

 

[아, 안 되는 데스우우우!! 버리면 다메인 데샤아아아!!!]

 

“그러면 조용히 닥치고 따라와. 갈 길 머니까.”

 

김병장은 주머니에 넣은 자실장과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나병장을 어이없다는 듯 보고는 친실장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 앞서 발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김병장과 자실장과 대화하는 나병장, 그리고 꽝꽝 언 땅을 맨발로 달리면서도 두 인간의 보폭을 따라잡으려 피눈물을 펑펑 흘리는 친실장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근무교대 때 친실장과 자실장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고, 후임들과 근무교대를 마친 두 병장은 초소로 두 실장석들을 데리고 왔다. 근처에 굴러다니는 적당한 플라스틱 판에 가져온 음식을 쏟아붓자, 두 실장석은 환호성을 질렀다.

 

[데스우우우웅!! 데챱데챱데챱!! 데뎃!! 우마우마!! 우마우마 데스으으!!]

 

초소까지 인간의 보폭을 따라오느라 머리와 발이 꽝꽝얼고 콧물을 훌쩍이던 친실장은 바로 얼굴을 음식에 파묻고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허겁지겁 음식을 씹어 삼켰다.

 

자신의 셋째인 삼녀가 밥을 먹던 말던 자신의 몸보신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참으로 실장석 다운 모습이었다.

 

반면, 나병장의 윗주머니에서 내려온 자실장은 김병장과 나병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먼저 올렸다.

 

[저, 정말 감사한 테치, 닝겐사마타치. 와타치도 밥을 먹고 싶은데 먹어도 되는 테츄까?]

 

“와, 세상에. 밥을 먹기 전에 감사 인사를 하는 실장석이라니!! 진짜 너무 귀엽다.”

 

“어휴, 아주 지랄났네. 그리 귀엽냐?”

 

“어, 진심 겁나 귀여워. 자실장아, 어서 가서 밥 먹어.”


 

 

친실장과 자실장은 김병장과 나병장의 숨김 아래 안전한 집과 규칙적인 식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미 말년휴가까지 다 써서 남은 시간이 많던 두 병장은 개인정비시간 때마다 굳이 초소로 가는 길까지 나가 두 실장석을 보기도 하고, 간식을 주기도 하였다.

 

비록 점점 실장석이 있는 곳까지 가기 귀찮아진 김병장이 주기적으로 두 실장에게 식당가 쪽으로 오라고 시킨 이후 밥 한끼를 먹기 위해 먼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병사들이 남긴 잔반을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에 자실장은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잘 먹고 편히 지낸 친실장과 자실장은 처음의 빼빼 말랐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살이 오동통 오르고 피부와 두피에는 윤기가 흘렀다.

 

아침에 받아 온기가 많이 사라진 핫팩 두 개를 가지런히 펼쳐 침대처럼 누워 빈둥거리는 친실장과 최대한 그에 가까이 다가가 다 낡은 손목시계만 바라보며 테에에 거리던 자실장의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어 있었다.

 

[테츄츄! 마마, 밥 시간이 된 테치!! 닝겐사마가 주고 간 네모네모씨가 이렇게 된 테치!!]

 

다 낡고 헤진 시계가 [18:00]을 띄우자 추운 곳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자실장이 덩실덩실 실장석 특유의 실장댄스를 추며 좋아하였다.

 

나병장이 자실장과 함께 쓰라고 준 핫팩을 혼자 독식하며 뜨끈하게 몸을 지지고 있던 친실장은 돌연 데칫!!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쓸모없는 똥노예인 데스우. 세레브하고 고귀한 와타시의 식사는 제대로 코앞까지 배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데스까?! 어딜 오라가라인지 마음에 안 드는 데스.]

 

[테에... 하지만 닝겐사마가 후와후와한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주는 테치. 너무 미워하지 마는 테츄~...]

 

[데기아아!!! 정말 머저리 똥분충 자인 데스!! 어딜 감히 마마에게 말대꾸를 하는 데스까?! 오랜만에 뒤지게 쳐맞고 싶은 데스까?!]

 

친실장이 얼굴을 잔뜩 일그리며 데샤아아, 실장석 특유의 위협소리를 내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밉보여서 밥을 안 줄까 봐 두 병장 앞에서는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

 

그러나 자실장에게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가족끼리만 있을 때는 매일같이 본 마마의 무서운 모습이었다.

 

[테, 테에에... 자, 잘못한 테치, 마마. 정말 잘못한 테츄. 이따이이따이 하지 말아주시는 테에에엥...]

 

친실장의 모습에 잔뜩 겁먹은 자실장이 몸을 움츠리며 색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그러나 자실장의 애원에도 이미 기분이 상한 친실장은 옷깃을 밀어 올리며 팔을 걷고 자실장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퍼억!

 

[테헤에엑...!]

 

복부에 주먹을 맞고 날아간 자실장이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그러나 이미 오랜 경험으로 몸에 녹아있던 폭력의 기억은 자실장의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다시금 친실장 앞에 무릎꿇게 하였다,

 

[얼굴은 가리는 데스. 자비로운 와타시가 얼굴은 봐주는 데스. 그리고 똥노예에게 일러바치면 어디 한 번 두고보는 데스요? 장녀와 차녀처럼 마마에게 맞은, 아니, 훈육 받은 걸 장로에게 일러바쳐서 또 마마를 쫒겨나게 해보는 데스요? 그래서 마마가 오마에까지 슬픈 일을 하게 만들어보는 데스요?!!]

 

[치, 치이이... 절대, 절대 안 그러는 테치... 마마... 제발 봐주는... 테겍!]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던 자실장은 친실장의 드롭킥에 가슴을 맞고 다시 날아가 PT박스 테두리까지 날아가 부딪히고 철푸덕,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충격이 훨씬 큰지 테게겍, 입에서 피와 살점을 토했다.

 

[엄살부리지 마는 데스. 마마가 메로메로된 똥닌겐으로 보이는 데스까? 매일같이 마마의 똥노예에게 우마우마 얻어먹으니 몸도 튼튼할 것인 데스네? 잘 된 데스. 움직이니 몸이 좀 후와후와 해지는 데스. 밥 먹기 전에 교육 좀 받는 데스요.]

 

[테, 테에엥...! 마마, 제발...!]

 

들썩들썩 움직이는 PT박스 속에서, 친실장의 데프프픗 거리는, 우월감과 즐거움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자실장의 테에엥 거리는 비명이 하모니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친실장은 경악한 눈으로 PT박스를 바라보며 가져온 간식을 떨어뜨린 나병장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

“야, 너 오늘 왜이리 저기압이냐? 원래 벌레새끼들 만나러 갈 때마다 좋아하고 그랬잖아. 그러고 보니 너 아까 걔네 밥 줄 때도 없더라? 평소에는 밥 먹는 모습 귀엽다며 좋아하더니만.”

 

초소경계 근무를 위해 나란히 걸어가던 김병장이 나병장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나병장은 뭔가 문제라도 있는 듯,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 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왜 말을 씹고 지랄이지?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평소 서글서글한 나병장이니만큼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김병장도 입을 다물고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둘이 실장일가가 살고 있는 PT박스에 반 정도 다 와 갔을 때,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나병장이 입을 열었다.

 

“야, 김병장아. 나 부탁 하나 있는데. 들어 줄 수 있냐?”

 

“...나 돈 없다?”

 

“...그거 말고 미친놈아.”

 

김병장의 농담 섞인 대답에 굳어있던 나병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나병장의 모습을 확인한 김병장은 나병장을 따라 피식 웃었다.

 

“그래, 뭔데? 무슨 일 있냐?”

 

“...너, 혹시 친실장 학대할 수 있겠어?”

 

“엥? 뭐?”

 

김병장의 황당해 하는 모습에 나병장은 자신이 숨기고 있었던 일을 실토하였다. 김병장 몰래 안 쓰는 보급받은 수건, 양말을 보온재로 가져다주고 그러고도 모자라 사비를 털어 매일같이 핫팩을 사다 뎁혀주고 있었었다.

 

사실 김병장은 몰랐으나, 실정석에게 아무런 물건도 없이 PT박스 하나 달랑 던져주며 영하 10도는 우습게 떨어지는 한국의 겨울을 지내라는 것은 그냥 서서히 동사하다 뒤지라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나, 같이 핫팩을 사다 주거나 보온재로 쓸만한 것을 챙겨주는 등의 귀찮은 일을 하자고 하면 안 그래도 실장석에게 애착이 없는 김병장이 실장석들을 죽일 게 뻔히 보였던 나병장은 그냥 자기 혼자 고생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실장석을 위해 각박한 군대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짧은 개인정비시간과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핫팩을 2개씩 챙겨주었다는 나병장에 대한 김병장의 감상은 심플하였다.

 

“미친 또라이 병신 새끼.”

 

“...에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야기는 그 뒤였다. 사실 나병장은 오늘 몇 달 가까이 취사장 뒤편에서 버려진 짬밥만 먹는 실장석들이 가여워, 얼마 없는 돈으로 PX에서 저녁 짬밥대신 먹일 생각으로 초콜렛과 과자 등 실장석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서 몰래 찾아갔었다. 그러나 몰래  PT박스 사이로 들여다 본 둘의 생활은 나병장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같이 쓰라고 하나씩 사준 핫팩 두 개는 모두 친실장이 쓰고 있었고, 자실장은 간신히 그 근처에서 버려지는 온기를 나눠받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아직 채 크지도 못한, 체격 차이도 엄청난 자실장이 친실장에게 후드려 맞고 있던 것이었다.

 

참고로 친실장의 경우에는 40CM가 조금 안 되었고, 자실장은 아직 크는 중이었기에 둘의 체격 차이는 아파트의 소화기와 레뜨비 캔커피 정도의 차이였다. 그 말을 다 들은 김병장은 이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큰 벌레, 아니, 친실장이란 녀석을 괴롭혀달라?”

 

“어... 사실 너한테 부탁하면 싫어할 거 같아서 내가 하려고 했거든. 근데,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건 못 할 거 같아. 일단 피만 보면 속이 미식거리고, 뭔가 생물을 괴롭힌다는게... 꺼림칙 해.”

 

“휴, 잘됐네. 그래, 그럼 그래 줄게.”

 

“그치? 역시 힘들... 어?”

 

‘저런 큰 벌레는 만지기도 싫어’라고 하며 거절할 줄 알았던 김병장이 흔쾌히 받아들이자 나병장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병장을 바라보았다. 김병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니가 고해성사 하니까 나도 솔직히 말하는데, 난 저 벌레새끼들 별로 귀엽지 않아. 귀찮아서 그냥 죽이거나 쫒아내고 끝낼까 생각한 적도 많고. 근데 니가 좋아해서 그냥 둔 거지. 그리고, 작은 벌레, 아니, 자실장은 그냥저냥 괜찮은데, 그 어미벌레는 내가 봐도 개빡치더라고. 니가 싫어할까봐 참았는데, 솔직히 진심 개패고 싶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어.”

 

김병장의 솔직한 말에, 자신의 고백을 들은 김병장처럼 나병장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대파냐?”

 

“그러는지는. 아주 그냥 그, 뭐냐, 애호파구만.”

 

잠시 말을 멈춘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데갸아아아-!! 손씨가! 와타시의 섬섬옥수가아아-!!]

 

“아이 썅, 데갸데갸 시끄러 죽겠네. 죽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데히이이익!! 아, 아닌 데스!! 잘못한 데에에엥!!]

 

“이런 씹, 잘못하면 군생활, 아니 참생 끝나? 어? 이제 저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은 거야? 참생 끝내고 싶은 거야?”

 

[데, 데에에엥!! 데에에에엥!]

 



친실장은 꽝꽝 언 땅에서 풀을 뽑아 깊게 베여 피가 철철 나는 손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용납할 생각이 없다는 듯, 김병장의 군화가 날아와 친실장의 언청이 입을 가격하였다.


[데규보옷!!! 갸아아-!!]

 

“쉬지? 편하지? 손 안 움직이지? 어디 하나 터져봐야 움직이지? 그래, 터져보다. 일단 다리부터 시작할까?”

 

[데갸우아, 갸아아악!!]

 

정말 다리를 터뜨릴 듯 지그시 밟는 김병장의 발에 친실장은 비명을 높게 지르면서도 몸에 새겨진 습관대로 풀을 잡아 뜯었다. 다시 한 번 손에 깊게 상처를 내는 풀이었지만, 이미 풀에 베여 나오는 고통은 발을 밟힌 고통에 잊힌 상태였다.

 

[테엥... 마마아...]

 

“왜? 아직도 마마가 걱정되는 거야?”

 

나병장에 윗주머니에 넣어진 자실장, 아니, 이제는 나병장에 의해 ‘미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육실장 미도리는 눈가에 눈물을 송골송골 맺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 눈물방울이 투명한 것이, 진심으로, 혹은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나병장은 그 모습조차도 귀엽다는 듯이 앞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줬다.

 

“괜찮아, 괜찮아. 베인 손은 곧 나을 거니까. 저렇게 아파 보여도, 절대 죽지는 않을 거야.”

 

[테에... 알겠는 테치 주인사마...]

 

“착하기도 하지. 별사탕, 아, 이러면 못알아 듣는구나. 콘페이토 먹을래?”

 

[테에! 주시면 정말 감사히 맛있게 먹는 테치!!]

 

미도리의 대답에 입꼬리가 귀에 걸린 나병장이 건빵주머니에 챙겨온 건빵에 같이 들어있는 별사탕, 콘페이토를 꺼내어 미도리에게 건네주었다. 실장석이 꿈에도 바라는 3대 음식, 스테이크, 콘페이토, 스시 중 하나인 콘페이토를 받은 미도리는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올린 뒤 작은 귀를 팔랑이며 행복하게 콘페이토를 혀로 핥았다.

 

[테츄우우웅~ 아마아마한 테츙♥]

 

[데에에에!! 저 똥분충이 마마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콘페이토를 쳐먹고 있는 데샤아아아!! 죽여버리는 데스!! 죽여버리는... 데규복!!]

 

“어, 그래. 죽자. 오늘 맞아 죽자, 벌레 새끼야?”

 

경계근무용으로 들고 온 대검을 꺼낸 김병장이 푹푹, 친실장의 팔을 난도질했다. 그러자 더욱 째지는 소리로 친실장이 소리높여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이런 생활이 고정된 지 어언 한 달 째. 처음의 짧은 2주의 달콤했던 시간 이후부터, 친실장은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하루하루 이어나가며 핫팩도 없이 추운 PT박스에 홀로 살며 실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친실장이 미도리를 해꼬지 할 수 있었기에, 이렇게 잠깐 보는 시간이 아닐 때는 나병장이 따로 부대 근처에 숨겨둔 곳에 미도리를 혼자 남겨두고는 하였다.

 

도대에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자신에게 메로메로되어 총구라도 핥게 해 달라고 부탁할 것 같았던 똥닌겐들이 왜 저 멍청하고 못생긴 자만 편애하는가.

 

그리고 자신을 왜 이렇게 괴롭히는가.

 

그 모든 고민과 고통에 절여진 친실장이 다시금 절규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던 그때. 어디선가 다급하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아주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분명 사람의 발걸음 소리였다. 이 시간에, 이런 산골짜기로, 초소를 향해 달려온다? 이건 무조건 군대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이 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군인은 무조건 간부급이었다.

 

“뭐, 뭐야!! 김병장!! 누가 오는 거 같아!!”

 

“진정해!! 일단 너 무조건 암구호 물어!!”

 

김병장과 나병장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것을 본 친실장은 이때다 싶었는지 최대한 높은 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실장 살려 데스-!! 여기 똥닌겐이 와타시를 죽이려 하는 데스-!!! 우주의 보배인 와타시를 당장 구해내는 데샤아아아-!!! 여기인 데스-!! 여기 데스-!!!]

 

“이런 썅.”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판단한 김병장은 친실장의 입을 막고 눈을 부릅 떴다. 비록 벌레라고는 하지만, 지금 하려는 짓은 자신 안의 무언가를 파괴해야만 하는 행위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인지, 드물게 김병장의 행동에 머뭇거림이 깃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달려오는 발걸음이 거의 50M내라고 판단 될 정도로 가까워지자, 김병장은 망설음을 털어버리고 선택을 내렸다.

 

뿌드드드드드!!

 

[덱...?! 데구루부부붓!!]

 

돌연 자신의 목을 세게 움켜잡는 김병장의 행동의 친실장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리고 김병장의 눈을 들여다 본 순간, 친실장의 온몸에서 파도가 일 듯 소름이 올라왔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눈빛.

 

산에 있는 실장마을에서 쫒겨나기 전, 몇 번 있었던 멧돼지, 매, 그리고 고양이의 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섬뜩하고 위험한 감각. 그것은 살기(殺氣)였다.

 

[자, 잠...!! 잘못...!! 살려...!! 닝겐사마...!]

 

“늦었어. 새꺄. 잘가라.”

 

김병장은 친실장을 누르고 있던 다리에 힘을 주고, 목을 쥔 손에 힘을 유지한 채 마치 데드리프트를 하듯 허리를 일으켰다. 뿌드드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가 나며,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던 무가 뽑히듯, 친실장의 목이 뽑혔다.

 

[...!]

 

뭍에 나온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자신의 분리된 몸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는 표정을 짓는 친실장. 그런 친실장의 눈에서 적록으로 흐르던 눈물의 색이 점점 짙어지며 검어졌다.

 

탁탁탁탁탁!

 

“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지척까지 가까워진 발소리에 나병장이 철컥, 총으로 어둠을 겨누며 경고하였다.

 

“야, 나병장!! 너 뭐해!! 총 내려 새끼야!! 나야, 나!!”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김병장과 나병장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저 목소리는 분명 이곳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초소장이었다. 나병장이 기가 꺾여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자, 정신을 차린 김병장이 나섰다.

 

“정지!! 움직이면 쏜다! 실장!! 실장!!”

 

김병장이 암구호를 묻자, 어둠 속에서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허?’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희 방금 그거 무슨 소리야!! 뭐 하고 있는 거야!!”

 

“움직이면 쏜다!! 실장!!”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암구호를 묻자 적막이 깔렸다. 그리고, 김병장과 나병장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옥.”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비록 미친 척하고 FM대로 암구호를 물은 김병장이었으나, 그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분위기 탔다고 해도 그렇지 초소장의 말을 씹고 암구호를 계속 묻다니.

 

비록 배운대로, FM으로 행동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초소에서는 사실상 가장 높은 초소장에게 개긴 것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를 꽉 문 김병장이 손전등을 켜 앞을 비스듬이 비추었다. 최소한 눈뽕까지 넣어서 더 초소장을 긁지는 말자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손전등을 비추었을 때.

 

초소장보다 한 발 앞서 서있던 사람의 계급장이 반짝였다.

 

손전등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두 개의 별.

 

“...추, 충성!!!”


김병장과 나병장이 산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경례하였다.

 ~~~~~~~

“미친 새끼들. 니들 이게 어떤 일인 줄 알고나 있냐? 어?”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김병장과 나병장 앞에 앉은 소초장이 탕탕, 책상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둘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열중 쉬어 자세로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굳어있을 뿐이었다.

 

“사단장님이 조용히 넘어가주셔서 망정이!! 사단장님께 눈뽕을 넣어?! 이건 나도 어떻게 커버 쳐 줄 수 있는 게 아냐, 미친 놈들아!”

 

초소장의 말에 김병장과 나병장의 얼굴이 스르르 파랗게 질렸다. 솔직히 이제 전역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영창을 보내기야 하겠냐마는, 혹시라는 게 있기에 둘은 잔뜩 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경계는 잘 서서 다행이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실장석 하나 잡은 것도 잘 했고. 거기에 초소 환경정리로 풀까지 뽑았고.”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임마. 솔직히 니들 말년 휴가 빨리 써서 어지간히 뺀질거리겠구나 걱정했는데, 근무도 잘 섰고, 시키지도 않은 환경정리도 잘 했고, 졸지 않고 실장석 같이 작은 생물의 침입도 잡고... 솔직히 놀랐다.” 

 

초소장의 목소리가 마치 봄에 눈 녹듯 부드러워지자 김병장과 나병장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둘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 것을 보며 피식 웃은 초소장이 팔락팔락, 서류를 넘기더니 김병장과 나병장의 서류를 펼쳤다. 

 

  

 

“앞으로 20일만 있으면 전역이네? 그런데 부대에 있지는 못하겠다.” 

 

  

 

“자, 잘못 들었습니다...?” 

 

  

 

김병장이 설마설마 하는 표정으로 애타는 듯 소초장을 바라보았다. 소초장은 김병장과 나병장을 번갈아보더니, 피식 웃었다. 

 

  

 

“사단장님께서 너희 둘 다 기특하다고 포상휴가 내려주셨다. 각자 9박 10일 씩.” 

 

  

 

예상치도 못한 말에 두 병장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줄 수 있는 휴가가 3박 4일이니까. 둘 다 13박 14일 다녀오면 되겠네. 마침 휴가자도 없어서 내일 바로 떠나면 되고.” 

 

  

 

“초, 초, 초, 초소장님...?” 

 

  

 

“잘했다. 이쁜 새끼들아.” 

 

  

 

초소장이 더 이상 숨기지 못하겠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20일 후, 아침. 

 

  

 

전 날 후임들에게 화려한 이별식을 당한 김병장과 나병장이 비틀거리며 생활관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아침 체력단련을 하고 있어야 할 후임들은 마치 레드카펫 양 옆에 서있는 보디가드처럼 두 병장을 향해 진열하여 있었다. 

 

  

 

“전역하는 김병장님과 나병장님에 대하여- 경례!” 

 

  

 

“““““““““““충!!!!!!!!”””””””””””””” 

 

  

 

“““““““““““성!!!!!!!!”””””””””””””” 

 

  

 

산이 떠나갈 정도의 큰 목소리의 경례. 

 

그것은 김병장과 나병장에 대한 예우이자 부러움의 비명이자, 축복의 환호였다. 

 

  

 

괜히 코끝이 매워진 김병장은 쓰윽, 손가락으로 인중을 훑고는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며 하이파이브를 하며 레토나에 탔다. 

 

  

 

그러나 후임들과 인사를 깔끔하게 끝내고 레토나에 탄 김병장과는 달리, 나병장은 인사를 마친 후 레토나에 올라타기 직전 한 곳을 슬픈 눈동자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끝에 있는 것은 작고 동그랗게 올라와 있는 흙더미. 그 흙더미는 친실장이 죽던 날, 큰 목소리로 사단장에게 경계하는 두 병장의 목소리에 놀라 파킨사 해버린 미도리의 무덤이었다. 

 

  

 

“야, 뭐해! 빨리 타!! 국밥 때리러 가게!!” 

 

  

 

이미 미도리에 대한 것은 포상휴가를 받은 후부터 깔끔하게 뇌리에서 지워버린 김병장이 호쾌하게 외쳤다. 잠시 그를 야속하게 노려보던 나병장이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미도리. 콘페이토 별에서도 착하게 살아가렴.” 

 

  

 

“뭐? 뭐라는 거야, 우리는 국밥집 갈 건데.” 

 

  

 

“그래그래, 이 무관심파야. 가자, 가.” 

 

  

 

전역이라는 사실에 잔뜩 신이 난 김병장의 모습을 미워할 수 없던 나병장이 허탈하게 웃으며 레토나에 올라탔다. 레토나가 둘을 사회로 수송하는 그 시간. 긴 겨울동안 나무 위에 쌓여있다가 녹은 눈 한 방울리 톡, 미도리의 무덤 위로 떨어졌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레훼에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22 삽화는 고뢰 오네챠가 제공해준 레후!!
    세레브한 삽화인 레휑~!
  • 작성자한강적 | 작성시간 22.01.22 분충 친실장은 무덤을 가질 자격도 없는 데스
  • 작성자ajk321 | 작성시간 22.01.24 사단장상 앞에서 FM으로 경계 데스? 저 자들에게 당장 콘페이토를 내리는 데스!
  • 작성자토시아키형귀화하면이름(도상기)됨 | 작성시간 22.01.25 레훼에에에엥ㅠ 미도리 오네챠 넘무 슬픈 레후! 불쌍한 레후!!
  • 작성자탈룰라전용 | 작성시간 22.02.15 큰소리만 버텼다면 애호파의 사육실장이 될수 있었을텐데..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