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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천년왕국 이야기 1 - 김규항

작성자다른세상| 작성시간11.04.10| 조회수31|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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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2 이글의 전제조건이 있을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적어도 한반도 이남에서는)는 인간개조가 완성된 나라이다!'라는 것. 4천8백만 국민이 인민화(사회정치적 각성)을 이루었을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마르크스가 환생하셨나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다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4.13 사회주의적 각성이라 함은 승자독식의 자본의 시대에 노예처럼 비굴하게 무릅끓지 않는 인간임을 스스로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적 각성이 매우 부족한 수준의 사회임이 분명합니다. 군사독재의 시대를 지나 자본독재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이 기본을 갖추고 살기 위하여,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하며 행복해지기 위하여 사회주의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환생해야 이러한 각성이 완성되는 건 아니겠죠. 더구나 마르크스의 인간존중 사상은 그의 사후에 단 한순간도 소멸된 적이 없었죠
  • 답댓글 작성자 다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4.13 흔희 90년대 소련연방공화국의 해체를 마르크스의 사상의 소멸로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그건 아주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소련에서 시행된 정치경제 체제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스탈린 1인 독재체제 시대가 말해주듯이 마르크스의 사상에 반하는 것이었죠. 이 지구상에 사회주의를 진정하게 실현한 나라가 아직 없는데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표방)과 해체를 사회주의의 소멸로 해석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4 사회주의적 각성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회정치적 각성이라는 말을 썼구요. 사회정치적 각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현을 뜻합니다. 그 발현을 이룬 사람을 우리는 흔히 '인민'이라는 용어로 부르지요. 제가 위에 댓글을 단 이유는 이런 논란들이 현실에서는 매우 부적절 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정의. 진리. 같은 좋은 것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좋은 것들을 애써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집단들이 있고, 그로인해 부를 축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의 논쟁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생활속에서 만들어 갈때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 작성자 다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4.15 앗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각성이나 사회정치적 각성이나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민들레님이 생활 속에서 만들어 깔때 의미가 있다고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이 가는군요. 그런데 궁금한 건, 김규항의 글이 현실에서는 매우 부적절 하다고 생각하신다고 한 바,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답글을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5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전세계 수많은 사회변혁운동가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절망(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이 단어를 쓴 이유는 허무주의와 아나키즘을 염두하고 썼습니다.)을 주었습니다. 사회변혁운동의 혁명적인 이론(틀)을 제시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한 답을 내 놓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제시한 틀이 그럴듯해 보였던 것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저역시도 계급투쟁론을 신봉했던 한 사람이었구요. 세상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되어지는한 계급투쟁론은 의미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5 세상사람들의 대부분은 계급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 부루조아니 프롤레타리아니 하는 단어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선혁명 후사회개조 및 인간개조를 외치고 일어선 사람이 레닌이었습니다. 그 뒤로 아시다시피 스탈린이 이었지요. 둘다 모두 국가사회주의자들입니다. 이와 반대로 개인의 각성을 통해 공동체(인터네셔널)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이 트로츠키 였구요. 결국 숙청당하지요. 국가사회주의는 소련의 붕괴로 망합니다. 왜일까요? 마르크스의 이론이 잘못되어서? 이론과 현실은 차이가 있습니다.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5 첫 댓글에 말씀드렸다 시피, 김규항씨의 말씀은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인민화 되었다는 가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라이겁니다. 제 생각은 현실에서, 일상 생활에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출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개조가 아닌... 그것을 위한(주체의 확립) 투쟁이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혁명(불교 용어인 돈오점수로 이해해 주시기를-일반적 의미의 혁명이 아닙니다.)이어야 합니다.
  • 작성자 18송이민들레 작성시간11.04.15 김규항씨의 역사인식과 판단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머리아픈 단어들 써가며, 머리아픈 이야기 보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주기 보다, 좀 더 좋은 이야기,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채워가자는 거죠. 글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를 아무리 구분하고 적대시킨다 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는 다른거죠. 위키리크스의 대표가 그러더군요. 세상의 음모론은 없었다. 다만 상식이하의 인간들이 권력을 휘두를 뿐이다. 라고.... 그런 것들을 좁혀가자는 거죠..
  • 답댓글 작성자 다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4.17 김규항의 윗글은 작금의 사회진보의 상황을 온전하게 성찰하게 하는 글이라 봅니다. 다만 같은 글을 보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글을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본가와 노동자가 적대적이라는 건, 재론의 가치가 없는 것인데 이를 정반대의 입장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노사협조주의자들을 노예근성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가장 현실적인 사람으로 옹호하는 사람도 있지요. 상식이라는 건 사람들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르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 다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4.17 중요한 건 서로 다른 정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며 토론하고 소통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한쪽이 다수라는 이유로 무조건 흡수통합 하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평정하는 건 공정한 사회가 아니겠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절차조차 무시하고 나라를 통째로 말아 먹으며 현재진행형으로 막나가는 최악의 정권, 이명박 정권이 통치하는 이 땅의 오롯한 풍경이 바로 그렇지요. 우리에겐 민주주의의 절차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내용이 필요하지요. 정치적 민주주의도 필요하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엠비정권의 이나라에는 아무 것도 없네요. 정치적민주주의도, 경제적 민주주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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