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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논다매

너 논 다 맸어? 너 쫌 논다매?

작성자또다른세상|작성시간15.03.29|조회수190 목록 댓글 1

작은책 1월호에 실린 글이다. 

살아가는이야기(우리동네 이야기) 라는 꼭지인데... 원고청탁받고 뭔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뭐...

논다매라는 울 희양산마을의 자랑꺼리가 있기에... 

글을 쓰는게 어렵당~ 에휴.. 

암튼... 여기에 올린다. 



작은책 2015년 1월호


너 논 다 맸어? 너 쫌 논다매?

장기호(문경/희양산 자락에서 우렁쌀을 짓는 농부)


이곳에서 살며 평생 하고 싶은 문답은 이런 것이다.

() 다 매었어?”

!”,“너희 쫌 논다매?”

!” “그럼 함께 놀아볼까?”

좋지!”

 

올해 8월에 2회 논다매행사를 했다. ‘논다매라는 제목은 논 다매고(급한 농사일 다 해두고) 좀 놀아본 사람들이 신나게 놀자는 뜻이다. 이번에는 마을사람들, 밥상이웃(도시소비자) , 귀농인 등 300여명이 모여 신나는 잔치를 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가을걷이잔치, 쉼표같은, 단오잔치 등 여러 형태로 매년 잔치마당을 해왔지만, 지난 2012년 제1회 논다매 행사를 하면서, 격년제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논다매가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각종 소모임 활동 이라는 일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일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문화적 욕구들을 모아서 문화소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한 것은 아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배우고, 가르쳐 주는 식이다. 드럼반의 경우에는 읍내 고등학교에서 밴드활동을 하는 귀농인의 아들이 어른들에게 드럼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씩 만들어진 풍물패, 탈춤반, 기타반, 농민밴드, 아이들로 구성된 천재미술반 등이 발표회를 한 것이 1논다매의 시작이다. 이후에, 농봉기산악회, 여행학교, 서예반, 민화반, 우쿠렐레반 꽤나 많은 소모임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소모임이 현재 모두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째 계속되는 떼춤반 같은 소모임도 있지만, 소모임발표회만 하고 해산한 드럼반. 겨울에만 모이는 산악회. 외부초청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풍물패. 등 활동의 수준은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렇다고 별 문제 삼거나 실망하는 사람도 없다. 좀 바쁘면 쉬기도 하고,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소모임으로 슬쩍 건너가거나, 하고 싶은 소모임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식이니, 발표회의 수준도 사실은 매우 서툴고 미숙하다. 미루어둔 숙제를 하듯이 발표회 일주일 전쯤에는 하던 농사일도 작파하고 모여서 벼락치기 연습을 한다. 이런 이유로 사실 격년으로 각 집의 고추 수확량(8월이 고추 집중 관리, 수확의 시기)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하지만, 즐겁다.

 

2회 논다매에는 소모임 발표회 이외에 특별한 준비를 더했다. 이른바 옛날 사진전. 동네 어르신들의 옛날 사진첩을 꺼내온 것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옛날 결혼사진이나 어릴(젊을 때)때 사진을 보여 달라고 청하고, 함께 보면서 옛이야기를 들었다. 60여 년 전 초등학교 졸업장부터, 갓 쓰고, 족두리 올리고 결혼하는 사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자랑하는 할머니의 처녀 때 사진. 등등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고, 젊을 때는 내가 예뻤지 하면서 수줍게 웃으시기도 한다. 귀농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로만 만나니, 이분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평생을 이곳에서 농사만 지으시면서 살아오신 삶의 흐름에 나도 함께 놓여 진 듯 묘한 기분이었다.

그 긴 이야기들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에는 본인 사진을 보러 오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도시로 내보낸 자식, 손주까지 불러와서 북적북적 성황을 이루었다. 신나는 일이다.

 

귀농이 유행(?)이다시피 한 요즘, 귀농인 들과 마을 토박이(어르신)와의 갈등이 많다 또는 귀농인 들은 따로 섬처럼 산다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온다.

이곳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20034월에 문경 가은의 희양산자락으로 들어왔으니, 벌써 11년이 넘어간다. 당시에는 귀농가구가 4~5집 이었다. 귀농하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이 시골에 뭐해 먹을 게 있다고 들어와요?’ 이다. 어르신들은 뼈 빠지게 농사지어 자식들 도시로 내보내는 게 삶의 목표이셨는데, 오히려 거꾸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혹 자신들 등쳐먹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친환경농법을 한답시고 논과 밭에 피 며 잡초로 칠갑을 해놓으니, 동네 어르신들이 귀농자를 보는 눈이 어떠했겠는가?

해결방법은 궂은 일 앞장서서 하기’, ‘일손 부족한 이웃집에 무조건 달려가기뿐이었다. 우리 집 들깨 털 시간은 없어도, 이웃집 어르신네 나락 옮기는 일을 먼저 했다. 옆집 할머니네 보일러 수리하러 먼저 달려가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네에 일꾼 하나 생겨서 좋다는 분위기가 차츰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나보다도 먼저 귀농한 형들은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나는 그 형들의 그늘에서 그래도 편하게 자리 잡은 편이다.)

그 사이 친환경 우렁이 농사법도 자리를 잡아, 일반 관행 농사보다 훨씬 잡초 없는 깨끗한 농사라는 게 확인되기 시작한다. 수확량도 비슷하며 게다가 좀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2005년 귀농가구 5, 동네 어르신 11가구가 모여서 희양산우렁쌀작목반을 만들게 된다. 지내오면서, 3분은 돌아가셨고, 7분은 연로하셔서 농사를 내려놓으시기도 하셨지만, 또 함께 하시기로 한 분들도 늘어나 지금은 33가구가 유기농쌀을 생산하고 있다.

 

이웃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는 여러 공감과 전제가 필요한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공감,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는 신뢰,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등이 아닐까?

올 겨울에는 할머니들하고 풍물 강습을 하기로 했다. 다섯 분의 할머니가 언제부터 시작 하냐고 재촉하신다. 80이 다 되신 할머니들이 풍물을 얼마나 치겠는가? 그저 함께 모여서 50을 바라보는 젊은 풍물선생하나 불러놓고, 옛이야기, 동네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 시간이 평생을 묻어둔 을 풀어내고, 굿거리 장단으로 보듬어 가는 일상의 한 구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할머니들이 2년 뒤 제3회 논다매에서 풍물 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때까지 살아계시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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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피아노의숲 | 작성시간 15.03.29 편하게 잘 풀어 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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