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메일 보관함

재미낭 시 한편 소개합니다.

작성자JIN O (SDT)|작성시간23.12.04|조회수56 목록 댓글 0

재미난 시 한 편 소개합니다.

 

충남고교 여교사 이정록

시인이 슨 "정말"이란 시

인데,

남편과 일찍 사별(死別)한

슬픔을

역설적이고,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읽다보면 마음이 짠~ 해지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정  말"  이정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애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야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 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아랫도리로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수욱~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초조루증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니었나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아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 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얀반이었지...

 

<조정현 評>

 

[이정록 시집 '정말' 중에서]

 

[이정록(1964~), 충남 홍성

태생 시인, 고교 여교사

 

이 시 참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1연에서는 일찍 저세상으로

간 신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성격이 참 급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일찍

가시는 분들은

뭔지 모르게 급하게 서두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2연은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오토바이에 맞선녀를

번쩍 안아서 태웠을까요.

 

오토바이에 태웠으니

남정네의 등에 여자의 가슴이

스치면서

젊은 혈기에 확 불을 싸지른

같습니다.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을까요.

그것도 바야흐로 봄날인데

말입니다.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후다닥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다 비명 한 번에

벌써 끝장이 났다니까"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남편)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첫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정말 한 순간에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마는

순간이 2연에서 펼쳐지는데

1 영에서의

슬픔의 정조는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읽는

내내 웃음이 삐죽삐죽 새

나오게 만드는

서사시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마지막 3연은 더 절창입니다.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 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얼마나 빨리 끝났으면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절묘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가

나옵니다.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단박에 바꿔 칠 수

있는 걸까요?

거의 마술처럼 슬픔과 웃음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웃음 미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워낙 첫 행사를 빨리 끝내신

양반이라서

바람 한 번 피울  여력이

없으셨겠지요.

그런데 가정용도 안

되었으니, 어떻게

상업용이 되었겠냐는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정말 날랜

양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빨리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내공으로 가득 찬 시인의 넉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접한 최고의 時

였습니다.

 

"첨언"

외설과 예술에 대한 조정현의

정의

 

예술 : 작품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외설 : 작품을 보면

육신이 뿌듯해 짐.

 

내 남편은 번개 섹스자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