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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진실 / 이만석목사

작성자이병천|작성시간15.04.04|조회수677 목록 댓글 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진실

 

이만석목사

(한국이란인교회/4HIM대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어느 편의 입장에서 말하느냐에 따라서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팔레스타인 아랍 원주민들이 고대로부터 살아온 땅인데,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유리방황하던 유대인들이 갑자기 몰려 들어와서 ‘여기는 하나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우리 땅’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에 중동의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대충만 살펴보더라도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인식이 없으면 중동 문제에 대한 시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중동의 아랍 방송들은 수시로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설교를 방영하는가 하면, 유치원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유대인을 죽이거나 그들과 싸우다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도록(꾸란 9:11) 교육하고 있다. 아흐마디 네저드 전 이란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중동 및 세계 평화를 위해서 유대인들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아랍인이나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설교나 강연을 너무 자주 들어서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이다.

 

팔레스타인 기구와 UNRWA(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구호사업기구)에서 말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정의를 보면 “그 지역을 평소의 거주지로 하는 주민으로서 1948년 전쟁 직전 최소한 2년을 그곳에 거주하였던 자, 그리고 그 자손들”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즉 팔레스타인 난민들이란 고대로부터 그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최소한 2년 정도 살다가 떠난 아랍인들의 자녀들까지 난민으로 인정하고 지원해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 성경의 블레셋(Philistine) 족속은 주전 600년경에 역사에서 사라졌으며(렘47:1~7), 그 땅은 주민이 거의 없어서 거의 버려져있던 황무지였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1880년부터 1914년까지 통계에 의하면 약 71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53개 마을은 오직 유대인들만 사는 마을이었고, 아랍인들만 사는 마을이 9개,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섞여 사는 마을이 8개였다. 이 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정착하여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그 땅의 원주민들이었다.

 

1880년대에 러시아에서 시작된 유대인들에 대한 포그롬(pogrom:조직적인 폭력)이 유럽으로 번져가자 유대인들은 피난처를 찾아서 데오도르 헤르첼(Theodor Herzl)이 조직화한 시오니즘 운동에 의해 옛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은 그 땅에 와서 대부분 해외에 살고 있는 명목상의 지주들을 찾아가 비싼 값을 치르고 그 황무지들을 매입했다. 1900년대 초부터 그 곳을 개간하여 키부츠라는 공동농장을 이루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 땅이 비옥해지자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아랍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그곳에 와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핍박이 심해지자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이 필요했던 유대인들은 1917년 당시 영국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밸푸어에게 요청하여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것이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다. 영국이 밸푸어 선언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독립국가로 보장했던 팔레스타인은 현제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요단강 서편뿐만 아니라 요단강 동편에 있는 지금의 요르단 전체를 포함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밸푸어 선언은 파리 평화회의(1919)에서도 재차 확인되었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전쟁에 대한 책임, 영토조정, 전후 평화 유지를 위한 조치” 문제로 모였던 회의였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밸푸어 선언의 내용은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 후 터키가 지배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맥마흔(당시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 판무관) 선언(1915)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그러자 영국 정부에 의해 임명된 무프티(이슬람 고위 성직자) 하즈 아민 알 후세이니는 아랍인들을 선동하여 유대인 공동체에 포그롬(조직적 폭력)을 가하고 페다인(Fedayeen:살인부대)을 풀어 유대인들을 학살하도록 하여 팔레스나인에 유대인들의 지배를 절대로 허락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심을 전 세계에 알리도록 하였다.

팔레스타인 지역 아랍인들의 과격한 폭동에 놀란 영국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1922년 요단강 동편은 아랍인들의 거주지로 주고 요단강 서편은 유대인들의 거주지로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자신들의 권리로 인정된 땅의 77%를 떼어주는 제안이었지만, 안전하게 정착할 국제적으로 공인된 땅이 급히 필요했던 유대인들은 이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게 23%도 줄 수 없다며 거부하였고 유대인들의 독립을 끈질기게 방해하였다.

무프티 후세이니는 2차 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를 만나 유대인 핍박에 대한 동의와 협조를 구하였고 아랍 국가들이 이에 합세하였다. 그는 또 당시 팔레스타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의 처칠에게 편지를 보내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금하도록 협조를 구하였다.

나치와 유럽의 핍박을 피해 팔레스타인에 이주하려던 유대인들은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그대로 유럽에 머물 수밖에 없어 나치의 제물이 되었으며, 팔레스타인에 입항하려던 약 7만 명의 유대인들이 영국인들의 총에 맞아 숨지거나 강제 송환당하거나 사이프러스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결국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유럽에 거주하던 900여만의 유대인들 중 약 600만 명이 학살당했던 참사는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인류 최악의 역사적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이유 없는 핍박을 당하며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게다가 유대인들에 대해 비우호적인 클레멘트 애틀리가 영국 수상이 되면서 유대인들의 도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무기를 휴대한 것이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였고, 유대인 저항군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공개처형하는가 하면, 아랍인들의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취임 1년 만인 1946년에 트랜스요르단 지역을 넘겨주어 요르단이 국가로 탄생되었다. 그래도 아랍인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폭동을 일으키자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겼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에서 아랍지역과 유대인 지역을 분리해서 독립시키자는 안건이 찬성 33표 반대 13표로 가결되었다. 그 내용은 요단 서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게 하되 그 중에서 가자(Gaza)지역과 요르단 서안(West bank)지역을 떼어서 아랍인에게 주자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것마저 수용했으나,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며 즉각 반기를 들고 폭력시위를 감행했다. 그들은 이미 아랍인들을 위한 국가로 요르단의 독립을 승인받은 상태였다.

유엔의 강대국들이 개입을 망설이는 동안 유대인들은 일방적으로 맹공격을 당했고, 전쟁을 위해서 해외에 있던 유대인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나 영국 위임통치 정부는 해외 유대인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아랍인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돕고 있는 영국인들과도 싸워야 했다.

 

이 전쟁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계속 싸우면서 마침내 아랍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독립 선언한 바로 그 다음날 아랍 5개국 연합군(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이 “순식간에 끝내버리는 대량학살”을 호언하며 이스라엘을 총공격했다. 그러나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전쟁은 예상을 뒤엎고 이스랑레의 승리로 끝났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었다.

 

결국 이라크를 제외한 아랍 국가들은 1949년 휴전협정에 서명하였고, 이스라엘의 독립은 1949년 5월 11일 59개국이 모였던 유엔 총회에서 승인되었다.

 

이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력은 페다인이라는 테러부대를 통해 이스라엘 접경 도시를 공격하여 1949~56년 동안 1,30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요르단 및 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석유 공급로인 티란 해협을 봉쇄하며 1956년 대대적인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이집트를 공격하여 3천명의 이집트 군인을 사살하고 대승을 거뒀는데, 이것이 2차 중동전쟁이다.

 

그 후 1965~66년, 이스라엘이 사막을 농지로 개간하면서 요단강물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며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키부츠 마을에 총격을 가하였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하여 시리아 전투기 6대를 격추시켰다. 이에 시리아는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집트는 이라크와 동맹을 맺고 시나이 사막에 대군을 파견하였다.

나세르는 67년 5월 15일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외치며 전쟁을 준비했다. 중동의 맹추 이집트가 2차 중동전 패배 후 10년 동안 준비해 왔던 전쟁이기게 승리는 확실해 보였고,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비교할 수 없이 약했다. 그러나 6월 5일 이스라엘은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출격 대기 중이던 이집트 전투기 300대를 모두 폭파시켰고, 요르단과 시리아 국경에 근접한 이라크 공군지지들을 폭파하였다. 아랍 연합군은 1만 8천명의 사상자가 났고 5,600명이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세 나라 연합군 장비의 70%가 파괴되었다(이스라엘군 776명 사망, 2,600명 부상)

이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골란 고원을 얻었는데 이는 유엔에서 인정한 이스라엘 영토의 3배에 해당하는 넓이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6일 전쟁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1948년과 1967년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랍 지도자들이 방송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아랍인들에게 도피하라고 적극 권고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을 몰살시키고 나면 다시 들어와 살게 해 줄 테니 무차별 공격에 방해되지 않도록 잠시 피해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이 그 땅에 계속 머물면 유대인들과 똑같이 대우하며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많은 아랍인들이 전쟁이 두려워 그 땅을 떠났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대부분은 유대인 군인들을 보지도 못하고 떠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몰살될 거라던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그 때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100만 명 이상의 아랍인들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땅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삶의 근거지를 버리고 떠난 것은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들 뿐만은 아니었다. 아랍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 역시 자기들이 터 잡고 살던 아랍인 주거지를 떠나야 했다. 중요한 것은 1948년 전쟁 때 팔레스타인을 떠난 아랍인들은 53만 명이었고 1967년 전쟁 때는 18만 명이었지만, 아랍지역에서 강제 추방된 유대인들의 숫자는 그보다 많은 82만 명이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난민들은 대부분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손으로 이스라엘 땅에 넘어왔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영접하고 정착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아랍국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난 아랍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아랍 고위공동체(Arab Higher Committee)는 팔레스타인 부근 아랍 국가들의 국경을 봉쇄하고 그들의 입국을 저지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난민이 된 것이다. 이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이라고 불린다. 이스라엘은 떠나간 아랍인들의 동결된 은행계좌를 열어주었고 잃어버린 부동산에 대해서는 이미 보상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아랍세계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전혀 보상하지 않았다.

 

아랍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동정을 얻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사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요르단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독립했으며,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이나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영토문제라면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22개 아랍국에서 얼마든지 이들의 정착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난민들의 복지 문제라면 넘쳐나는 오일달러의 극히 일부만 투자해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돕지 않는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을 품도록 이용하고 있다.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유대인들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 싸우라고 부추기며 이스라엘과 사우다 죽는 것은 순교이며 이는 무슬림으로서 최대의 영광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랍인들이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근본적 이유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를 독립한 것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하디스에 7세기부터 이미 유대인들을 저주하라고 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꾸란 98:6, 꾸란 5:51)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처: JESUS ARMY 2015. 4. 통권 제57호(pp.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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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poongwoon.tistory.com/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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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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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행복동 작성시간 15.04.04 샬롬!
    그렇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출현을 저지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때가 되면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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