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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면 소식

수필 : 빈집

작성자松谷(송곡)|작성시간22.12.28|조회수98 목록 댓글 0

<수필 한 편>  

 

   제 목 : 빈집     

  

​                                            송곡. 作.

 

 ​새벽이다. 조간신문을 펼쳐 드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친구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다. 얼마 전에 고향에 갔을 때 건강이 많이 안좋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인생사 삶의 무거운 굴레를 내려놓았나 보다.

 

 내 고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산골동네다. 옛날에는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버렸다. 이제는 겨우 마을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그마저도 대부분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집집이 자식을 여러 명 두었지만 하나같이 직장문제, 아이들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키고 못난 자식이 고향에서 부모 공양한다고 했던가? 집집마다 잘난 자식들뿐인가 보다. 고향에서 부모 모시고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자식들이 객지에 살면서 부모를 모시려고 사정을 해도 도시 생활은 갑갑해서 싫다며 한사코 거부한다. 평생을 살아온 정든 땅을 쉽사리 떠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그보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자식들이 직장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모시고 살기도 쉽지가 않다. 

 

 조상은 흩어놓고 자손은 모여서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예전에는 명당을 찾아 여기저기 산소를 쓰다 보니 조상은 흩어질 수밖에 없다. 농사가 생활 전부이던 시절 서로 도와가며 일손을 덜 수 있게 일가 친지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은 당연했을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옛말처럼 했다가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 옛날에 명당이라고 써놓은 산소는 대부분 깊은 산중에 있어 요즘은 자손들이 찾기가 쉽지 않다.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니던 산길이 잡목이 우거져서 산짐승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이니 까딱하다가는 산소마저 잃어버린다. 이제는 좌청룡 우백호가 명당이 아니라 차길이 뚫려있는 좌도로 우도로가 명당이다. 조상은 모아놓고 자손은 흩어져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가족묘다, 봉안묘다, 하면서 곳곳에 흩어졌던 산소를 한곳으로 모으지 않는가? 요즘같은 산업화 사회에서는 집성촌을 이루며 일가친지들이 모여 살다가는 빌어먹기 딱이다. 농사도 대부분 기계화되었으며 소규모로 농사지어서는 먹고 살기도 어렵다. 모두가 직장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니 노인들만이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8남매, 9남매 집도 수두룩했고 12남매 집도 있었다. 오죽하면 5남매인 우리집을 두고 자식이 적어 외롭다고 했을까? 한집에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형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집도 있었다. 그렇게 많던 친구들과 어울려 자치기, 쥐불놀이, 깡통차기, 기차놀이하고, 겨울이면 호롱불 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놀이를 즐기던 기억이 새롭다. ″아이엔 그라운드 나무 이름 대기. 뽕나무도 짝짝~ 밤나무도 짝짝~″ 명절 때면 수십 명씩 어울려 동네 어른들께 세배하러 다니고 검정고무신 신고, 돼지 오줌통으로 공차기하던 친구들이 그립다.

 

 그런데 요즘은 고향에 아이들이 없다.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하나 둘 고향을 떠나더니 150호가 넘던 가구 수가 이제는 고작 3~40여 호나 될까? 그마저도 노인들 홀로 살고있는 집이다. 600명이 훨씬 넘던 학생 수는 고작 10여 명을 넘지 않는다. 농촌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1년의 기간을 정해 도시에서 전학 온 학생이 포함된 숫자다.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 끊어진지 오래다. 몇 년 동안 고향에는 출생신고가 한 건도 없고 오직 사망신고만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초등학교 졸업생이 세 명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서글픈 고향의 현실이다.

 마을회관은 대부분 8~90의 노인들 차지다. 얼마나 젊은 사람이 없으면 나이 60은 젖병 물고 다니고, 70살은 청년회에 가입하여 동네 심부름한다는 소리가 있을까? 회갑잔치가 사라진지 오래다. 몇 해 전만 해도 명절에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소꿉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나 요즘은 그마저도 점점 줄어든다. 모친이 돌아가셨으니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고향에 오던 이 친구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대부분 부모님 없으면 고향에도 자주 오지 않고 명절 차례도 도시로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 친구 모친의 부고를 받고 나니 가슴이 아려온다. 아련한 내 추억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기분이다. 주변의 친구 부모님 중 많은 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계신 분들도 대부분 연세가 많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유년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그립다. 오늘 친구 모친의 부고를 받고 허전한 마음에 하늘을 우러러 본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리려나 보다. 하늘은 검은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아! 내 고향에는 또다시 빈집이 하나 생기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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