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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면 소식

수필 : 비가 오네요.

작성자松谷(송곡)|작성시간23.05.04|조회수49 목록 댓글 0

 

비가 오네요.

                                                                         松谷. .
 
 계절은 바야흐로 봄이다온 산천은 형형색색 화려한 꽃으로 수를 놓았다지난겨울에는 중국에서 날아온 달갑지 않은 황사, 미세 먼지와 함께 코로나까지 기승을 부려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기도 전에 봄이 오니 이제는 사방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 앞으로 마스크는 평생 쓰고 살아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계절의 여왕이요, 장미의 계절이며 결혼의 계절이다. 봄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이다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와 함께 사방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이 남녀의 사랑을 불러오나 보다. 청춘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아득한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대부분 자식 혼사를 치르느라 바쁘다. 문자나 카톡에는 수시로 모바일 청첩장이 날아든다하늘이 맺어준 꽃다운 인연으로 한 가정을 꾸리는 자식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벌써 우리의 나이가 이렇게 먹었는가 하는 생각에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조금씩 한가하고 편안해지는 게 인생살이 아니던가? 어찌 된 일인지 빠끔한 날이 없을 정도로 삶이 더 바쁘다특히 요즘에는 주말이나 휴일에 각종 행사나 지인들 결혼식이 빠지지 않고 있다나도 몇 년 전 하나뿐인 딸아이의 혼사를 치르면서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이제는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도움을 받았던 지인들의 애경사를 빠트리지 않을까 많은 신경을 쓰며 수시로 애경사가 있는지 꼼꼼히 챙겨본다. 실수하지 않기 위함이다.
 
퇴근해서 귀가했더니 청첩장이 와있다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다고향에 가면 수시로 만나고 모임도 같이하는 친구이며 며칠 전에도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자식 결혼시킨다는 소식도 이미 알고 있다굳이 청첩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내 이름 석 자를 자필로 또박또박 정성 들여 썼다봉투 글씨만 봐도 친구임을 금방 알아본다요즘 모바일 청첩장이 난무하고 심지어 간단한 문자 한 줄로 결혼을 알리는 시대에 정성스레 청첩장을 보낸 것은 나름대로 예<>를 다함이 아니겠는가
 
  이 친구가 결혼한 지도 벌써 35년이 넘게 흘렀나 보다내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을 무렵 친구의 결혼이 있었다조금 늦은 결혼이다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인지라 결혼식 참석은 당연하다. 결혼 당일에는 내가 사회를 보기로 하고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결혼 소식을 알렸다. 10여 명의 친구들도 직접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연락이다당시에는 도로 사정도 안 좋고 자가용도 귀한 시절이다. 교통편이 문제다상의 끝에 각자 버스로 가느니 승합차를 빌리기로 했다함께 모여서 가면 지루하지도 않고 버스 시간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교통비를 계산해도 이득이다.
 
 드디어 결혼식이다거리도 멀지만 대부분 고향에는 부모님과 친지들이 계시니 부모님도 찾아뵙고 미리 축하도 해주고 하루 일찍 가기로 했다축하를 핑계로 고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으리라. 들뜬 마음에 좀 빠르게 달렸나 보다. 교통경찰관에게 딱 걸렸다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바짝 따라붙는다. 그때 한 친구가 딱지가 끊기면 벌점도 나오고 범칙금도 나오니까 차라리 교통경찰관에게 돈을 주고 해결하자고 한다지금같이 맑고 투명한 세상에서 생각해 보면 크게 경을 칠만한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그런 것이 통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사회에는 부조리가 만연하고 각종 비리도 상습화되어 있었다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교통경찰 1년이면 기와집을 한 채 산다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시절이다각종 인허가를 받는데 급행료를 주지 않으면 아예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다.  당시 교통 법규 위반에 적발되면 즉석에서 승용차는 3천 원 승합차는 5천 원을 주고 해결한다누구도 딱히 금액을 정한 적은 없지만암묵적 사회적으로 통하는 전국적인 공공연한 룰이요, 법칙이다이제는 세상이 맑아졌다공직 사회도 청렴하고 투명해졌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다모두가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한 번 봐달라고 사정을 하며 5천 원을 슬그머니 손에 쥐여 주었다소금 먹은 말이 물을 쓴다고 했던가? 역시나 효과가 빠르다. 뒷말이 필요 없다. 직속상관에게 하듯이 깍듯하게 경례하더니
조심해서 가세요.” 
정중하게 인사까지 한다그때 조수석에 앉았던 내가 한마디 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앞에 가다가 또다시 적발되면 어쩌지요?”
아마도 자기들끼리 암호가 있나 보다. 또다시 적발되거든
비가 오네요. 라고, 이야기하세요.” 
그러나 다행히 내려가는 동안 별일이 없었다.
 
 다음날이다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반대쪽 차선에서 또다시 단속에 걸렸다가만히 보니 어제의 근무자가 아니다. 면허증을 달란다금방이라도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할 태세다이때 옆에서 내가 씩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비가 오네요.” 
그런데 암호가 매일 바뀌나 보다. 경찰관이 한심하다는 듯 한참이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가자미 실눈을 뜨면서 하는 말
에이~그건 어제 거고~” 여기에 내가 질세라 어제도 세금을 냈는데 그놈의 세금은 날마다 내는가요?” 친구들은 우습다고 옆에서 배꼽을 잡는다경찰관도 약간은 멋쩍은 듯 한참을 웃더니 범칙금 발부를 포기한다

벌써 35년이 넘게 흘러버린 세월이다. 아직도 그때의 암호가 통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번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다가 혹여나 교통 법규 위반에 단속되면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해볼까?
비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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