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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소식

다함께 생각해보는 삶 이야기

작성자박철우|작성시간23.05.28|조회수19 목록 댓글 0

 



1. 심금을 울리는 어느 분의 감동적 삶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 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와 손이 귀까지 닿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게 낫다라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 '지선아 사랑해' 中에서 옮겨온 글 -




2. '석두스님'故이찬형(1888~1966)님의 기구한 운명적 삶
 
 '판사에서 엿장수로 다음에는 중'으로 변신하시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신 故 이찬형님의 아주 특별하시면서도 기구한 운명을 소개해 올립니다.
 
 
평안남도 수안이씨(遂安李氏집안에서 신동(神童)이 태어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뛰어넘어어렵다는 사서삼경(四書三經부터 가르쳤다.
 
열세 살 되던 해인절미가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정수리에 쑥뜸을 놓았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집안이 온통 울음바다였다.
 
할아버지는 금지옥엽 하던 손주를 죽였다고 자책하며깡 소주를 마시고 그길로 황천객이 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지줄초상이라니!
 
집안 권속들이 모여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었다,
 
삼촌뻘 되는 아저씨가 그 아이를 이불에 말아 병풍 뒤로 옮겨놓았다.
 
마지막으로 조카를 보겠다고 이불을 들치니귀신이 곡할 노릇죽은 지 스무 시간이 넘은 아이에게서 맥박이 뛰었다.
 
쑥을 뜬 흉터가 성년이 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이어일본의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사법고시에 합격해서, 1914년 조선인 최초로 함흥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10년이 되던 해였다불가피하게 조선인(獨立鬪士)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일이 마음에 걸려 법관 생활을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나와 고생 고생을 하다가급기야는 생계를 위해 입고 있던 옷까지 팔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위를 든 엿장수가 되었다.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그래서 금강산 신계사 조실석두(石頭스님을 찾아갔다.
 
중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따졌다중이 되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합니까?
 
나이가 마흔 가까이라지?”
 
서른아홉입니다.
 
그 나이에 기어이 중이 되겠다고?”
 
!
 
석두스님은 근처 논으로 갔다.
 
바늘을 던질 것이니 눈을 감으시게!”
 
-!
 
이제 눈을 뜨고 바늘을 찾아보게!”
 
아니이렇게 넓은 논바닥에서 어떻게 찾으란 말이요?
 
바늘을 찾으면 자네 소원대로 해주겠다!
 
그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논으로 들어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달포 만에 바늘이 발바닥을 찔렀다.
 
스님스님어디 계십니까바늘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엿장수가 출가의 뜻을 이루었다.
 
석두 스님은 1962년 한국 불교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그가 바로 효봉 스님이다.
 
같이 근무하던 판사가 스님을 알아보고 세상에 알린 것이다.
 
제자로는 구산스님법정스님 그리고 중구난방 고은시인
 
영화빨간 마후라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이 가야산에 숨어들었다.
 
절에는 식량과 땔감이 있어서 겨울을 날 수가 있다그래서 해인사로 몰려든 것이다.
 
석두스님
 
절에서 기르던 소를 두고 어찌 떠난단 말이냐?
 
아무도 위협하지 않고
코뚜레에 끌려다니는
순한 너
짐을 끌고 쟁기질하고
수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인에게 복종하다가
죽어서도 주인에게
모든 걸 바치는 너
슬픈 눈망울 끔벅이며
되새김질하는 너는
어리석은 것이냐어진 것이냐?
 
인간이 가장 위해야 할 축생(畜生)이 소라는 것이다.
 
아니스님사람 목숨이 소보다 못합니까?
 
어떤 분이 네 자신을 알라라고 했는데이는 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다.
 
그러니 니나 잘 하세요!
 
저희들은 그리 못합니다어서 떠나시지요.
 
니나 잘 하라니까니들이나 떠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여배우 이영애의 니나 잘 하세요” 어원(語源)이 되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
 
가야산(伽倻山)에는 세 가지 재앙이 비보(裨補)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사가(史家)에서는 이것을 약탈 전화 보물로 보고 있다.
 
첫째약탈
 
왜구로부터 해인사를 지켜낸 것은곽재우(郭再祐)를 비롯한 소암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이었다.
 
두 번째전화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내려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일 때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낙오된 패잔병 약 900명이 가야산에 숨어들었다.
 
토벌을 진행하던 육군이해인사 주변을 폭격해 달라고공군에게 공중 지원을 요청했다.
 
김영환 대령은 폭격 중지를 명령하고기수를 돌려 몇 바퀴 선회하다가능선 뒤에 숨어 있는 인민군에게 기총소사만 하고 돌아갔다.
 
윌슨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의하자대통령은 크게 분노하여총살이 아닌 포살(砲殺)할 것이다!
 
배석한 공군참모총장 김신 장군은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을 역설하여 겨우 무마했다.
 
세 번째보물
 
팔만대장경은 총 8만 1,258한 줄로 쌓으면 백두산보다 500미터 이상 높다
 
가로로 나열하면 56,880m. 글자 수는 523십만 자총 무게는 280
 
당시 2.5톤 트럭으로 100대 분이다그래서 왜구들은 자기들 나라로 옮길 계획을 포기했다.
 
김영환 대령은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이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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