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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동]안동 볼거리◑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 종가 `충효당`을 찾아서-안동 1박2일 여행코스 9편,경주 최부자집

작성자범털과개털(저상일월,미산고택)|작성시간15.07.24|조회수274 목록 댓글 0

 
안동 볼거리◑하회마을 충효당의 종손 류영하옹께서 이율곡선생의 '십만양병설'은 왜곡되었다고 말씀하신다.집권당에 의해서 역사가 왜곡된 것이 많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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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볼거리◑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 종가 '충효당'을 찾아서-안동 1박2일 여행코스 9편,경주 최부자집

 

 

 

 

 

여행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다

 

안동하회마을을 급하게 방문하였다.이순신장군을 천거하고 발탁한 서애 류성룡 선생 종가인 '충효당'을 방문할려는 목적이다.종손인 류영하님은 귀가 좀 안들리신다.그래서 종부인 최소희(마지막 경주 최부잣집 둘째따님)님께 전화를 드렸고 사전약속을 잡아서  급하게 다녀왔다.

 

안동 볼거리,안동 가볼만한곳,하회마을 충효당을추천한다.그러나 양진당과 충효당까지 들어가는 길목에 주점등이 벌써 점령하고 있어서 진을 빼기쉬운 모양이다.그래서 사람들이  안동 하회마을이 변했다고 한다.하회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양진당이나 충효당의 역사적인 의미,병산서원이나 화산서원,옥연정사와 겸암정사,주일재와 원지정사 등의 의미를 한번 새겨보고 가면 참좋고....볼거리도 많다....알아야 볼거리가 많은데....90프로 이상의 사람들이 한번 쉭~ 둘러보고....여기 볼거리가 없다...칸다...

(잘모르고 그냥 쉭~둘러볼것 같으면 하회마을 안가는게 좋다)

 

 

하회마을 들어가는 길이다.

 

 

하회마을 관광안내도이다.하회마을홈페이지들어가면 아래 지도가 잇다...비교해서 참고하시길...

 

 

 

충효당 행랑채 전경이다.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인 류상조(柳相祚)선생이 병조판서에 제수된직후 급히 병졸들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안동의 퇴계종택은 퇴계의 조부 이계양 선생부터 약 600년간 집안의 전통을 세워왔고...요즘  주변의 빼어난 경치와 자연환경때문에 호평받고 잇는 농암종택도 약 600년,풍산의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 선생가문도 그러하다.봉화의 쌍벽당도 약 600면...울진 평해에 있는 해월종택의 평해황씨는 약 2,000년의 누대를 이어왔고 영양과 안동,봉화 영주등지에 각기 분파가 자리잡았다 .

우리가 안동을 가야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다.선비정신이나 안동정신을 배운 기업가나 정치인들은 대대로 계승할것이나 그렇지못한 대다수의 기업들이나 정치가들은  100년도 못가서 망하리라고 단언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 방문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

 

 

 

충효당 사랑채.

안동 하회마을 효당편액은 미수허목이 썼다고한다.

 

 

 

 

양반은 '봉제사접빈객'을 잘해야 양반이다-라는 말이 있다.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의 접빈객의 정갈한 다과상.

 

외람되게 제가 드린 자료를 보고 계시는 종손 류영하옹.우측은 종부인 최소희여사.최소희여사는 마지막 경주최부잣집의  최준선생의 둘째따님이시다.

 

'ㅁ'자 형태인 충효당 안채의 모습.2층다락형태가 예사롭지않다.

 

 

 

사랑채에서....외부전경

 

 

위는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의 행랑채 모습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겸암 유운룡의 6대손인 유영(柳泳:1687∼1761)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양진당  '입암고택'편액은  한석봉의 글씨이다.입암고택은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인 류중영(관찰사역임)의 구택이란 뜻이다.
 
참고로 류성룡선생 종손인 류영하님과 저는 몇촌인가 따져봅시다.길안면 묵계서원의 묵계 김계행공의 첫부인에게서 따님 두분이 계시다.첫딸은 예천 금당실마을 '박눌'(저의 16대조)에게 출가시켰고 오자(五子)를 낳앗는데  다섯아들 모두 과거급제했다.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부른다.,둘째따님은 하회마을 류자온님에게 출가시켯는데 손자인 류중영은 관찰사를 하였고,아뿔사 증손자가 류성룡인데   태어나는 것을 못보고 돌아가셨다.(저의 16대조모와 류성룡 선생의 증조모가 자매지간이고 형제는 2촌이며 ,류영하님은 류성룡선생의 14대종손이니까 36촌이 됩니다.류성룡선생과 저는 22촌이되죠.
 
이 글을 읽는 분들 집에가서 족보한번 뒤져보세요...우리집(어느 가문)으로 시집온  고조모와 5대조 이상되는 왠만한 분들은 누구의 딸(누구의 女)라고 표시돼있고..누구의 손녀 혹은 누구의 증손녀라고 표시돼있으며 누구의 외손녀(외외가)라고 표시가 돼있는 것이다.그리고 약포후(약포정탁) 혹은 서애후(서애후손)라는 표시가 기재돼있다.이글을 보시는 분들-'외외가'...'진외가'를 검색해서 공부해보기 바랍니다.ㅎ(진외가는 아버지의 외가를 뜻한다)
 
앞으로 30년만 더지나면 삼촌,백부,숙부도 모르고,이모도,외삼촌도  모르게 될겁니다.전부  한사람씩만 놓으면...많이 놓는 사람이 '애국자'죠.참고로 저는 세자녀의 아비죠.

 

 

 

 

 

 

양진당의 마구간의 여물통.

 

 

 

위 젊은이들은 입암고택을  그냥 '힐끗' 쳐다보고 나오길레 안동정신과 류성룡선생과 이순신장군,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살려준 약포 정탁대감과 백의종군에 얽힌 이야기등을 해줬다.안동은 역사를 조금 알고 오면  많이 보인다....아니면 안동이나 하회마을 와봤자...기와집과 초가집 밖에 안보인다....'안동을 볼거 없다'라는 사람들이 있는데...자기 무식한 것은 절대 모른다.

 

아래내용은 원본은 요기를 참고하세요....제블로그 글을 그냥 붙여넣기 하니까 이상하군요...

http://blog.naver.com/gaetuel/20073556459

 

 

여행팁3;이순신 장군을 발탁사람은?=안동하회 서애 류성룡선생

             이순신 장군을 죽이려사람은?=원균은 모함을 햇고 선조왕이 죽일려 했지요.

             이순신 장군을 살려준 사람은 ?예천 약포 정탁대감(약포 정탁--검색)자료는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왈' 나를 천거하신 분은 '유성룡'재상이시나  '나'를 살려주신 분은  '약포'대감이시다) =자료는 '난중일기'

전쟁중에 서슬이 퍼렇고   음울한분위기인데= 두번째 국문을 당하여 죽을위기가 닥치자 ,류성룡 재상마저  나서지 못했을때 예천 출신 약포 '정탁'선생이 감히 상소문을 를 올려서 이순신장군을 구합니다.   

여행팁;임진란 1년전에 류성룡대감은, 전라도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장군을 일약 전라 좌수사로 발탁하였답니다....3계급이나 승진시켯던것입니다(아무나 함부로 못하죠)...그리고 난중일기에 보면 '류성룡영감'이 중국에서 구한 병서,군선만드는 병법에 관한책들을 보내주엇다'라고 기술해놨습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말합니다....이순신도 작전에 귀재고 대단한 인물이지만 ,초야에 있던 그인물을 발탁햇던 서애 류성룡이야 말로 진실로 대단한 사람이고......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혓을때 류성룡 재상도 감히 어쩌지 못햇을때,감히 상소문을 올려 이순신의 목숨을 구해준 '약포 정탁'대감이야 말로 진실로 대장부라고~~예천출신 약포 정탁대감이 진수성대첩의 '김덕령장군'과 '이순신장군'의목숨을 상소를 통해서 살려줍니다.그러나 아쉽게도 김덕령장군은 '장독'으로  곧 돌아가셧습니다.

 ★류성룡집터=서울중구 인현동 1가 40번지. 남산 한옥마을로 가는 왼편 큰 길에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서있다 .류성룡선생이 파직당한 날이 1598.11.19 인데,공교롭게도  류성룡 자신이 천거-발탁한 이순신장군이 남해 관음포에서 전사한 날이다.

 

★영정조의 탕평책과 갈암 이현일, 약봉 서성 :대다수 영남의 남인선비들은 출세에 지장을 받고 과거시험도 통과 못하고....과거에 합격해도 정승이나오질 못했다...약 200년간(노론이  정권을 잡은 기간)....소설가 이문열선생의 14대조가 유명한 정부인장씨의 남편인 석계이시명선생이고 아들이 영의정에 추증된 갈암 이현일인데....갈암의 6형제에서  조카항렬(족친)이 30여명되지만 한사람도 문과급제를 못 했다.그러나 율곡선생의 제자인 약봉 서성선생이 80세 생신때 족친들중 과거급제자가 13명이었고...현직에 9명이나 있었다(기호학파,서인의 지배계급화)...200년간 산림에 은거하며 벼슬을 못한,또는 안한 선비들(영남 남인들)이 제사때 바로 조상님들을 '처사(處士)**부군신위'하며 지문을 쓰고 위패를 모시는데 바로 이런 이유다...처사란 산림(향리)에 은거한 사람을 일컫는다...퇴계이황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남명조식선생은 묘비명에 '처사라고 써달라'고 했죠.정조때 탕평책으로 실시한 도산별과에서 1만명의 선비가 운집하여 7천명이 응시해서 겨우 4명이 진사시에 합격했다.그 기념비가 도산서원앞의 '시사단'이다.(영남차별비=개털기사)

 

★종갓집이란?;종갓집은 위대한 인물이 있고 문집이 있으며 시호를 받고(불천위)...그래서 사당이 있어야하고 , 종손종부가 있으며 이를 도와 전 문중이 향사를 받드는 집을 종갓집이라고 한다.경상북도 북부 안동권 지역에 있는 종갓집이 약 65집 정도 된다.고택은 뺀숫자이다.경상도 전체는 약 100여호 정도 있다.전라도는 단 4집만 (해남의 고산종택,광주의 제봉종택 등)의 종갓집이 있고...경기도의 이율곡 선생종택은 없다...종손이 서울의 아파트에 가서 산다.

 ★문중이란?;안동땅에 성재 금란수선생이 있다.아름다운 정자 '고산정'의 주인이다.도산서원에서 현재의 농암종택을 거쳐 고산정을 가는 길이 바로 퇴계선생 '예던길'이다. 임진왜란때  안동수성장을 하신 분이고 퇴계 이황의 애제자이다.

 그 종택이 6.25때 협조를 안해준다는 이유로 '정체모를 산사람'들의  방화로 불탔다.한마을 10여호가 잿더미가 되었다.종택이 재력이 있어서나 든든한 주인이 있엇던 것은 아니지만 봉화금씨들은 사변직후 종택을 복원했다. 이른 봄이 되자 영양,봉화 등지에 살던 자손들이 서너명씩 짝을 지어 이불과 식량을 짊어지고 꾸역꾸역 부포리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모여서 이 집, 저 집 방한칸씩을 얻어서 솥을 걸고 밥을 해먹어 가며 나무도 깎고 기와도 구운것이다 .그렇게 수십명이  종가를 복원하는 대 역사를  일 년이 넘도록 계속했다.놀라운 응집력이다.그게 안동이고 ,안동양반이고 안동의 선비들이다.그것이 문중문화이고 종택문화다.
 [출전=농암종택 이현보선생  종손 이성원님이 쓴 책'천년의 선비를 찾아]

 이자료를 스마트폰으로 보는 방법=네이버에 '개털기사'검색-블로그중 아무거나 클릭-스마트폰 제일 밑에 하단으로 가서 pc양식으로 보기클릭-제일위에 차사진밑에 보면 빨간색줄이 보입니다.거기 바로밑에 공지가 5개 보이는데 5번째 공지를 클릭하시면 이글의 원문이 보입니다.

 

류시원은 서애류성룡선생의 종손이 아닙니다.=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때 유성룡선생종가나 겸암선생(류성룡선생의 형님)종택의 마당이 생신상차리기가 마땅찮아서(촬영기자만 수백명) 근처에 있던 집을 대체활용한 것이지 종손이라서 참여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서애류성룡선생의 현종손의 함자는 류영하(풍산류씨라고합니다..풍산유씨가 아니고..)님이시고 부인은 마지막 경주최부잣집의 둘째따님이신 최소희님이시죠.(언니는 충신으로 유명한 거창의 동계 정온선생댁 종부이시며 유명한 요리연구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터넷에 보면 잘못된 사진이나 보도자료,정보때문에 현재 이혼소송중인 유시원씨가 이집종손으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류영하님의 선친의 휘(諱=꺼릴 휘,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높여서 '휘'라고 부른다)가 柳時泳(류시영)입니다...그러니까 '시'자돌림인데 아버지와 항렬이 같은 방계이죠...이글을 읽는 분은 주변에 널리 알려서  착오나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안동종갓집고택체험==4대 독립운동에 빛나는 향산고택,경당장흥효선생종택(011-538--5599),임청각(3대가 독립유공훈장 9개,상해임정 초대 국무령인 석주이상룡 선생댁=광주 고경명의병장의 사돈집입니다),열화재(퇴계선생 손자집),농암종택,군자정,금포고택,하회마을 북촌댁,가일마을의 수곡고택,원주변씨 간재고택(010--4596--6050),치암고택,금포고택,학암고택, 

목재고택(이육사 선생 따님이 기거하고 계십니다.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안동 동암종택 수졸당(퇴계손자이영도종택 )054-856-3307,010-6575-3307

http://www.sujoldang.com/

 (만휴정을 세운  묵계김계행선생의 종택-고택체험은 054-841-2433)

 

  

 

★화합과 단합이란 말이 있습니다.카이스트가서 성적 떨어졌다고 비관해서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안해본 게 있을겁니다.시냇가에 가서 친구나 사촌간에 고기잡아서 매운탕한번 안끓여먹어 봤을 겁니다.고기는 혼자 잡지는 못하죠.서너명이 협동,그리고 부모앞서 간다는것은 안동양반들로서는 상상도 못합니다.어디 부모앞서가고...부모가슴에 못질을 합니까??인성교육-안동양반고택체험 한번씩 해보세요...부모가 알아야 자녀를 가르치는거죠..

 

경주 최부잣집-9대 진사 12대 만석꾼 배출한 재력가 -가훈은 요기 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182740442

 

 

안동 길안면의 묵계서원 근처 만휴당과 원림(명승 82호)

 

 

★경상도 양반이란;전라도에선 동학이 대단하지만...130년전 동학은 안동을 치기위해(동학의 기치=무릇 갓쓰고 도포입은 자들은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이다...쳐라~!!햇죠)  예천까지 들어왔습니다...그때 안동과 예천  선비들과 향민들은 동학폭도들을 진압햇죠(6代일기인 보물 제 1004호인 저상일월 참고).만약 130년전 안동에 동학이 진입했다면 ,10년뒤 항일 의병전쟁때 퇴계종택과 안동시내를 일본군이 불사르기전에 동학도가 불살랐을겁니다.어쩌면 유명한 하회마을도 ....
 
안동에 가셔서 하회탈춤 보시면 백정,주모,스님들이 양반을 희롱하죠==경상도나 안동양반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잘해줬습니다..인간대접을 해줬죠.(경주최부자집가훈=가물거나 춘궁기에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사람 없도록하라~!!)
 
저는 책을 좋아하고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을 '애국자'라고 부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는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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