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영주/안동/문경

[스크랩] [안동]해방정국과 좌우대립:안동 예안 부포마을의 경우

작성자범털과개털(저상일월,미산고택)|작성시간15.12.14|조회수42 목록 댓글 0

해방정국과 좌우대립:안동 예안 부포마을의 경우

 

우리가 광복을 맞아 일제의 식민지로 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전국의 어느 향촌마을이라도  사상의 논쟁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보통 어른들이 이야기를 잘 안해주고...그냥 약간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7살 꼬마가 부모한테 어디서 태어났냐고 질문하면 제대로 ,사실대로 말해줄 부모는 잘 없을 것이다.그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대한'을 쓰자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용하자는 것인데...이것이 보수일까?혁신일까?

'조선(朝鮮)'은?단군이래의 조선을 뜻함일텐데...........이것이 봉건회귀일까?민족을 생각한 것일까?

 

현재도 일부의 부류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매도하고 있다.정통성이 없다는 뜻인데...이승만 대통령하의 정부에도 독립투사,애국지사들이 많이 참여를 했었다.

 

책자료는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안동 부포마을'이란 책이다.유교문화권 전통마을 9권째로 펴낸 책이다.이 부분을 집필한 사람은 안동 독립기념관의 강윤정 학예연구팀장이다.

^^^^^^^^^^^^^^^^^^^^^^^^^^^^^^^^^^^^^^^^^^^^^^^^^^^^^^^^^^^^^^^^^^^^^^^^^^^^^^^

신구대립일까?사상의 대립일까?보수와 혁신의 대립일까?

 

하나 웃기는 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보수와 혁신의 대립,신구대립은 동학란때도...경술국치때도...더 올라가서 임진왜란때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할때의 경복궁이 불탈 때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광복이후 북한정권이 들어선 후,자칭 토지개혁을 했을 때도 있었다.신의주반공학생의거도 어느 정부가 들어선후 기념일도 없에버렷고 역사책에서도 사라졌다.역사를 지우고 왜곡하는 것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역사논쟁과 보혁갈등의 결과는 역사가 말해줄 수 있겠지만..

 

또하나  웃기는 것은 심산 김창숙의 파리장서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공산 송준필' 선생의 자료(유림단독립운동실기=심중일기瀋中日記,p100)를 읽어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이것은 보혁갈등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성주 백세각에서 '공산 송준필'선생이  심산과 협조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고,많은 도움을 주었다.파리장서  작성과정에 깊이 관여한 주모자 중 한사람이 바로 공산 송준필 선생인 것이다.

 

그리고  족친인 '송규선'을 심산이 면우 곽종석 선생을 방문할 때도 같이 동행시켯고,심산이  상해로 가기위해 서울로 향할 때인 성주 초전의 백세각에 들렀을 때  송회근(宋晦根.공산 송준필의 조카,충숙공 야계 송희규의 17대 종손)이 그 경비로 1천원을 전달하였고,또 복명동의 여보회呂輔會로부터 2천원을 희사받은 일이 있는데,이러한 공산 송준필 가문과 유림단 지사들의 전폭적인 지원활동과 경비부담에 대한 내용이  심산유고,김창숙문존,김창숙평전에 빠진 것이다.심산이 기록을 안한 것이다.

 

그런데...그 이유(공산 송준필에 대한 자료가 빠진)를  살펴보니...성주 한개마을 출신의 대계 이승희(한주 이진상의 아들) 선생의 장례때 명정銘旌의 신주神主를 쓸 때의 갈등때문인 것 같다.보혁의 갈등...언제 없어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