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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작성자송 운|작성시간16.06.10|조회수1,161,793 목록 댓글 7



하룻밤


하룻밤을 산정호수에서 자기로 했다
고등학교 동창들 30년만에 만나
호변을 걷고 별도 바라보았다

시간이 할퀸 자국을
공평하게 나눠 가졌으니
화장으로 가릴 필요도 없이
모두들 기억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우리는 다시 수학여행 온 계집애들
잔잔하지만 미궁을 감춘 호수의 밤은
깊어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냥 깔깔거렸다

그 중에 어쩌다 실명을 한 친구 하나가
'이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년'
이라며 계속 유머를 터뜨렸지만
앞이 안 보이는 것은 그녀뿐이 아니었다

아니, 앞이 훤히 보여 허우적이며
딸과 사위 자랑을 조금 해보기도 했다
밤이 깊도록
허리가 휘도록 웃다가 몰래 눈물을 닦다가
친구들은 하나둘 잠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아기들, 이 착한 계집애들아
벌써 할머니들아
나는 검은 출석부를 들고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벼이 또 30년이 흐른 후
이 산정호수에 와서 함께 잘 사람
손들어봐라
하루가 고단했는지 아무도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다.

-현대시학 2003.10-


▶ 글(詩) : 문정희
▶ 음악 : 스카브로우의 추억
ㅡㅡㅡ Scarbrough Fair-
ㅡㅡㅡ ㅡ Simon & Garfunkel
▶ 편집 : 송 운(松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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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어진할매 | 작성시간 17.08.24 아주 깨가 쏟아지는 친구들의 만남~
    이 글 보는동안 나도 그 자리에 함께 누워있는 느낌이었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다 잘될꺼야 | 작성시간 17.09.03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썬파워 | 작성시간 18.05.05 너무너무 감사 합니다
  • 작성자썬파워 | 작성시간 18.05.12 오늘도 그냥 지나칠수 없는 카페에 들려 좋은 글담아 갑니다
  • 작성자유일심 | 작성시간 18.10.06 앞이 안보이는 친구의 말에 무척 공감이 갑니다
    장애를 뛰어넘어 유머로
    승화 시키기 까지 힘들었던 마음이 전해져서요
    가슴 훈훈해지는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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