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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 01 - 눈이 오던 날 (上)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04.13|조회수1,034 목록 댓글 2

[유리구두] 01 - 눈이 오던 날 (上)











1. S# 눈길.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눈 속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는 현호(30세).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온 몸에 눈이 묻은 채로 다시 일어나 달리고 또 달린다.

헉헉.. 숨소리에서.



2. S# 산부인과 복도.


어린 태희(4살), 창가로 다가와 쏟아지는 눈을 바라본다. 그 위로.


선우E : 으아아악!


어린 태희, 흠짓 놀라서 돌아보면.



3. S# 분만실 안.


안간힘을 쓰는 선우. 의사와 간호사들도 애를 먹고 있다.


의사 : (진찰하다가) 아이가 돌질 않아!

선우 : (순간 턱! 맥이 풀어진다)

간호사1 : 산모가 의식을 잃고 있습니다.

간호사2 : 출혈도 멈추지 않습니다. 혈압 맥박 다 떨어지고 호흡도 불안정합니다.

선우 : (꺼져가는 정신. 흐릿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 위로)

의사 : 수술준비 해! 닥터 김 불러와!



4. S# 분만실 앞 복도.


쿵! 문을 박차듯 분만실 밖으로 뛰어나오는 간호사.

태희, 벽에 바싹 붙은 채 다급하게 뛰어가 버리는 간호사를 본다. 시선에서.



5. S# 다시 눈길.


현호,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지친 걸음걸이. 그래도 계속해서 한발 한발 걸음을 딛고 있다.

그러다 미끌! 완전히 굴러 넘어지면



6. S# 분만실 안.


의식을 잃어가는 선우의 얼굴.

후두경으로 입을 벌리고 튜브를 집어넣고 엠부로 호흡을 돕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사들의 움직임.

꺼져가는 아내의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


닥터김 : 선생님. 태아와 산모 둘 다 위험합니다. 둘 중에 하난 포기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의사 : 보호자는?

간호사 :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

의사 : 일단 산모부터 살리고 봐야지. (하는데)


갑자기 의사의 가운을 꽉 잡는 선우의 손.

의사, ? 해서 돌아보면


선우 : 안 돼요 선생님. 안 돼요..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쏟아 마지막으로) 내 아기.. 살려주셔야 해요... 내 아기..

         (하더니 그대로 머리를 떨어뜨리며 의식을 잃는다)

의사 : (본다. 시선에서)



7. S# 시골 산부인과 병원 전경 (밤)


눈이 내리는 평화로운 병원 위로

E. 응애에---!!!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



8. S# 산부인과 안.


동시에 쿵! 문이 열리면서 비틀.. 들어서는 현호.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눈으로 꽁꽁 얼어붙은 채 급하게 두리번거리다 한쪽에 앉아있는 태희를 본다.


태희 : (돌아보더니) 아빠!

현호 : 태희야! (재빨리 다가와) 태희야. 엄마는? 엄마는 어딨어?


하는데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밖으로 나오는 의사들. 그 뒤로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나오는 게 보인다.

현호, 반가운 표정으로 그 아기를 쳐다보면


의사 : 이선우 씨 보호자십니까?

현호 : (돌아보며) 네.

의사 : 딸입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현호 : (다행이라는 웃음 짓고) 아내는 좀 어떻습니까?

의사 : (일순 스치는 어두운 표정)

현호 : (? 본다. 순간 불길한 느낌으로 안쪽을 돌아보면)



9. S# 수술실 안.


태희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현호.

깨끗이 정돈된 수술실 안에 흰 천으로 덮인 선우의 시신만 덩그라니 남겨져 있다.

안에 남아있던 간호사, 흰 천을 내려 선우의 얼굴을 보여준다.

순간 현호, 믿어지지 않는 듯 바라보더니


현호 : 여보..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선우야..


순간 가득 고인 눈물이 툭.. 떨어진다. 그대로 아내를 꼭 끌어안는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어깨.. 화면 하얘지면서.



10. S# 산.


눈이 내리는 하늘에서 틸- 다운하면

흰 눈이 뒤덮인 무덤위로 하얀색 카라를 몇 송이 올려놓는 현호.

허름한 코드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잠시 내려다본다. 보더니.


현호 : 걱정 마. 나 잘 할께. (짐짓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위로)

태희E : 아빠! 아빠아!!!

현호 : (돌아보면)



11. S# 초등학교 앞.


<자막 십년 후.>

중학생 교복을 입은 태희(14살), 교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저편에서부터 허겁지겁 뛰어와 멈춰서는 현호. (40대 초반)


현호 : (숨이 차서)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지?

태희 : 벌써 시작했겠어요. 빨리요! (서둘러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현호 : (태희를 잡아 세우며) 잠깐 태희야. 아빠 넥타이 좀 봐봐.

태희 : (돌아본다. 얼른 비뚤어진 걸 잡아주고) 사진기는?

현호 : (얼른 가방을 뒤적이더니) 있어. 가져왔어.


현호와 태희, 학교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가는 뒷모습에서.



12. S# 학교 소강당 안.


소강당 가득 학부모들이 앉아 있고 무대에선 초등학생 아이들이 연극을 하고 있다.


남아1 : (유리구두를 높이 들어 올리며 어설픈 연극 톤으로) 왕자님께선 이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아

          그 분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분장한 여자아이들, 좋아서 서로 신어보려고 하는 가운데.

뒤쪽 문으로 살며시 들어서는 현호와 태희.


현호 : (무대 쪽을 살펴보며) 윤희 나왔니? 어딨어?

태희 : (한눈에 쭉 훑어보고) 아직 안 나왔나 봐요.

현호 : (후유 한숨 돌리면서 보면)

남아1 : 이런, 이런. 안타깝게도 유리 구두가 맞는 분이 안 계시는 군요. 혹시 이 댁에 다른 여자 분은 안사십니까?

태희 : (작게) 이제 윤희가 나올 차례예요.

현호 : 그래? (목을 길게 빼고 보는데)

태희 : 아빠 사진기.

현호 : 아참. (얼른 사진기를 빼들고 보면)


무대 한쪽에서 걸어 나오는 어린 윤희(10세)

현호,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사진기를 들이댄다.


남아1 : 신데렐라 아가씨. 이 유리 구두를 한번 신어보십쇼. (윤희 발 앞으로 유리 구두를 대준다)

윤희 : (신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내려다본다)

남아1 : (? 올려다보면)

윤희 : 싫어. 안 신을래.


술렁이는 객석.

현호와 태희, 순간 쟤가 또 왜 저러나 불안한 표정으로 보면.

무대한쪽에서 감독을 하고 있던 여선생님 윤희의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며 얼른 유리 구두를 신으라는 손짓.


남아1 : (선생님의 싸인을 받고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신데렐라 아가씨. 이 유리 구두를 신어보십쇼.

윤희 : 싫다니까. 나 그거 안신을 거야.

남아1 : (울상으로 선생님 쪽을 돌아보며) 선생님.. 얘가 안 신는대요.


순간 좌중에 터지는 웃음.

어이없이 쳐다보는 태희, 그 옆으로 난감하게 이마를 긁적이는 현호의 표정에서. fade-out.

블랙화면 위로 타이틀, 유리구두 <제 1 부>


태희E : 바보.



13. S# 중국집.


윤희 : (입주위에 잔뜩 자장면을 묻힌 채 홱 돌아보며) 내가 왜 바보야?

태희 : 신데렐라면 유리 구두를 신어야지. 그래야 왕자님이랑 결혼도 하구 행복하게 살 거 아냐.

윤희 : 그 신발 불편하단 말야. 연습할 때 몇 번이나 신어봤는데 딱딱하구, 발두 아프구.. 또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데.

태희 : 연극이잖아.

윤희 : 그래두 싫은 건 싫은 거다 뭐. 그치 아빠? (동의를 구하면)

현호 : 그래 맞다. 싫은 건 싫은 거지. 우리 윤흰 유리 구두 같은 거 없어도 이다음에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 될 텐데 뭐.

         공부도 잘하고 아빠말두 잘 듣구. 그치?

윤희 : (보란 듯) 거 봐.

태희 : 하여튼 똑같애, 똑같애. 아빠가 그렇게 다 받아주니까 자꾸 윤희 버릇만 나빠지잖아요.

         이젠 내가 하는 말은 하나두 안 듣는다니까요.

현호 : (윤희 보며) 그랬니?

윤희 : (자장면을 입에 문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니.

현호 : (태희 보며) 아니라는데?

태희 : 아무튼 우리 집에서 내 편은 한 사람두 없으니깐.


윤희와 현호, 서로 눈을 찡끗하며 빙긋 웃는다. 그 때


주인 : 군만두 나왔습니다. (하고 군만두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면)

현호, 윤희 : (동시에) 군만두다!


현호와 윤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젓가락을 날려 만두를 하나씩 들고 먹는다.


태희 : 간장 안 흘리게 잘 드세요. 빨래할 때 잘 안 지워진단 말예요.

현호 : (듣는 둥 마는 둥 덥썩 한 개를 더 집어먹으면)

윤희 : (경쟁하듯 먹던 걸 입에 쑤셔 넣고 또 하나를 집어 든다. 그러자)

현호 : 맛있다. 우리, 군만두 하나 더 시켜먹을까?

윤희 : 응! (하는데)

태희 : 안 돼! (아빠 보며) 안돼요!

현호 : 그래두 오랜만에 외식인데.

윤희 : 맞어. 하나만 더 시켜먹자 응? 응, 언니? (태희를 보면)

태희 : 원래는 자장면만 먹기루 하고 들어온 거잖아. 군만두 하나 더 시켰으면 됐어. (아빠 보며) 절대 안 돼요 아빠.

         오늘 전기세랑 수도세두 내야 해요. 집세두 벌써 두 달 치나 밀렸는데 자꾸 이렇게 돈 쓰면 어떡해요.

현호 : 어어.. 맞다. 그렇지 참. (어색하게 웃으면)

윤희 : 노랭이. 언니는 노랭이 구두쇠야. 알어?

태희 : 빨갱이 공산당이래두 할 수 없어. 안 돼.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장실 갔다올께요. (가면)

윤희 : (태희가 사라지는 걸 확인하더니 현호에게만 들리게) 아빠, 언니 꼭 팥쥐 엄마 같지? 그렇지 응?

현호 : (같이 작게) 그러게. 좀 잔소리가 심하지?

윤희 : (심각하게 고개를 끄떡끄떡)


그러다가 같이 픽! 웃더니 동시에 만두를 집어먹는다.



14. S#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태희, 흘끗 바깥쪽을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어본다.

얼마 들어있지 않은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


태희 : 누군 군만두 안 먹구 싶어 이러나 뭐.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지갑을 도로 넣고 손을 닦는다. 그 때)

인수E : 야 이 새꺄! 너 죽을래?


그러더니 곧이어 퍽퍽! 둔탁하게 맞는 소리.

태희, 손을 닦다말고 놀라서 돌아보면.



15. S# 중국집 뒷골목 일각.


무심코 고개를 내밀고 보던 태희, 순간 놀라서 쏙 들어갔다가 이번엔 빠꼼히 반쯤 얼굴을 내밀고 보면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동네 깡패들에게 둘러싸인 채 퍽! 퍽! 얻어맞고 있는 재혁(16세).


인수 : 너 내가 미리 일러뒀지. 일주일에 한 번씩 수금 돌 테니까 알아서 상납하라구.

         정선 바닥에서 배달통하고 싶으면 꼬박꼬박 입금 잘 하라구. 근데 개겨? 이 새끼 너 목숨 몇 개야? 어?

재혁 : (대답 없다. 표정도 없다)

인수 : 너 목숨 몇 개냐구 묻잖아! 이 새꺄!! (퍽! 발로 배를 걷어찬다)


쿵! 벽에 부딪히는 재혁, 그 위로 퍽퍽! 두어 번의 발길질이 쏟아지면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만다.

재혁, 숨 쉬기 조차 힘들 정도의 고통으로 씩씩거리면

그 옆으로 깡통,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깡통 : 아야, 니 그러다 맞아 뒤질라. 그만 개폼잡고 퍼뜩 돈이나 내 놓그라. 마 그라믄 다음 주까진 조용히 사라져 주께.

재혁 : 없어.

깡통 : 뭐라꼬?

재혁 : (오기 있게 고개를 들어 본다) 너희들한테 줄 돈 없어.

깡통 : 근데 짜슥이! 참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나?

재혁 : 죽이고 싶으면 죽여. 그래도 돈은 못준다.

깡통 : (허! 기막혀 인수를 올려다보면)

인수 : (픽 웃는다. 그러더니 고개 짓을 까딱! 하면)


동시에 재혁 앞으로 다가서는 똘마니들, 죽일 듯이 재혁을 두드려 패기 시작한다.

숨어서 지켜보던 태희, 안절부절 못하다가 안 되겠는지 갑자기 사방에 대고 고래고래


태희 : 사람 살려! 사람 살려어! 아무도 없어요? 사람 살려어!!!


동시에 돌아보는 깡패들.

깡패들에 둘러싸여 얻어맞던 재혁도 고개를 들어 태희를 보면.



16. S# 중국집 안.


종업원, 시끄럽게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춰보느라 밖에서 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현호 : 천천히 먹어. (윤희 얼굴에 묻은 자장들을 휴지로 닦아주다가) 근데 화장실 간 녀석은 왜 이렇게 안와?

윤희 : 빠졌나 봐. (픽 웃으면)

현호 : (웃음. 그러면서 화장실 쪽을 돌아본다. 시선에서)



17. S# 중국집 뒷골목.


주춤 뒤로 물러서는 태희.

그 앞으로 다가서는 깡통과 똘마니들.


깡통 : 가시나. 니 누꼬?

태희 : (무섭지만 내색 안하려고 애쓰며 겨우) 기.. 김태흰데요.

깡통 : 누가 이름 알고 싶댔나? 뭐하는 가시나냐 말이다. 어이? 대체 니가 먼데 오빠들 하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고 지랄이고!

태희 : (재혁을 한번 본다)

재혁 : (잔뜩 깨진 얼굴로 태희를 쳐다보면)

태희 : (용기를 내어 깡통에게) 돈을 뺏는 건 나쁜 짓이잖아요. 사람을 때리는 건.. 더 나쁜 짓이구요.

깡통 : 그래서.

태희 : 곤경에 처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구 그랬어요.

깡통 : 누가?

태희 : 우리.. 우리 아버지가요.

깡통 : 아부지? (어이없이 픽 웃더니 일순 표정 살벌해지며) 그래 니 유식한 아부지 있어 좋겠다.

         내는 아부지도 어무이도 없어가 암 것도 몬 배워 이래 삥만 뜯어 묵고 산다. 우짤래?

         (손가락으로 태희의 머리를 툭툭 밀어가며) 우짤기가 말이다. 이 싸가지 없는 노무 가시나야! 어이?


순간 턱! 깡통의 팔목을 나꿔 채는 현호의 손.

깡통 ? 돌아본다. 깡패들도 일제히 현호를 돌아보면


현호 : 내 딸한테 지금 무슨 짓이야 너.

태희 : 아빠! (반가워 보면)

윤희 : (현호 뒤에서) 아빠 쟤네들 깡패들인 가봐! 혼내줘!

깡통 : (열 받은 듯 칫! 침을 뱉더니 삐딱하게 현호를 보며) 이 손 치우소 마.

현호 : 내 딸한테 먼저 사과해.

깡통 : 안 치울 랍니까.

현호 : 사과부터 해!

깡통 : 치우라카이!!


동시에 퍽! 다른 주먹으로 현호의 턱을 날려버리는 깡통.

정통으로 맞고 쿵 주저앉는 현호.


태희, 윤희 : (놀라서 동시에) 아빠!!! (내려다보면)


충격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현호, 다시 고개를 들고 본다.

오기 있게 다시 일어서서 깡패들을 휘 둘러보더니 갑자기 옆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집어 들고는 휘둘러대기 시작한다.

(싸움을 전혀 못하는 그,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폼도 어설프다)

깽패들 접근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서는 가운데 어느 새 뒤로 온 깡통에게 팔이 잡히는 현호.

아버지가 위기에 처하자 윤희 그대로 냅다 달려가 깡통의 팔목을 물어버린다.

아야! 비명을 지르며 현호를 놓치는 깡통, 확 밀쳐버리면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윤희.

“윤희야!” 태희, 재빨리 달려가 윤희를 보호하듯 끌어안으면 그 위로 쏟아지는 깡통의 발길질.

순간 현호, 야아!!! 고함소리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깡통의 얼굴을 힘껏 날려버린다.

퍽! 소리와 함께 잠시 몽롱하게 쳐다보는 깡통, 그대로 기절.

태희, 윤희 돌아본다.

깡패들, 일순 긴장해서 현호를 보면.


현호 : (기세를 몰아 쓰레기통을 고쳐 잡으며) 누구든지 내 딸들한테 손끝 하나만 건드려봐!

         그 땐 전부 다 재미없을 줄 알어 늬들!

깡패들 : (그러자 서로 눈짓을 교환하면서 현호한테 다가선다. 순간)

인수 : 됐다! 그만해.


소리에 현호와 태희, 윤희, 그리고 똘마니들 멈춤 동작으로 돌아본다.

인수,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새 주변에 하나 둘 몰려드는 사람들.

귀찮은 표정으로 보더니 재혁에게.


인수 : 내일 보자.


그러면서 재혁의 손을 일부러 꾹 밟고 지나가면서 현호를 본다.

현호, 쓰레기통을 든 채 노려보면 픽 무시하는 웃음으로 지나가버린다.

그러자 다른 똘마니들도 기절한 깡통을 질질 끌고 뒤따라 사라진다.

순간 현호,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쓰레기통을 내려놓으며 그대로 주저앉는다.


태희, 윤희 : (동시에 달려들며) 아빠아!!

재혁 : (흘끗 쳐다본다)

태희 : 아빠 괜찮아요? 안 다쳤어? 응?

현호 : 괜찮아. 아무렇지두 않아.

윤희 : (순간 와락 아빠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현호 : (윤희와 태희를 다독인다)


툭툭 털고 일어나 찌그러진 배달통과 흩어진 그릇들을 주섬주섬 담는 재혁, 고개를 돌려 태희 부녀를 본다. 시선에서.



18. S# 달리는 버스 안.


맨 뒷좌석에 잠이 들어있는 현호, 영광의 상처를 얼굴에 남긴 채 꾸벅꾸벅 졸고 있고.

그 양 옆에 기대앉은 태희와 윤희.

윤희, 손에서 가지고 놀던 귤 하나를 떨어뜨린다. 얼른 주우려고 의자 밑으로 내려오다가 문득 아버지의 신발을 본다.

밑창이 떨어져 너덜너덜한 신발. 그 사이로 구멍 난 양말에 삐죽이 나와 있는 엄지발가락.

윤희, 보다가 장난기가 발동 간질간질 거린다. 꼼지락거리는 현호의 발가락.

윤희, 킥킥 웃으면


태희 : (아빠 깰까봐 작게) 뭐해 너?

윤희 : 이것 봐. 아빠 발가락 나왔어. 아까 깡패들이랑 싸울 때 뜯어졌나봐.

태희 : (신발을 본다. 순간 찡해지는 마음.. 시선을 들어 보면)


세상모르고 잠이 든 아빠.. 현호의 얼굴에서.



19. S# 중국집 전경. (밤)


영업이 끝나고 불이 꺼진다.



20. S# 골방 안. (밤)


녹초가 되서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오는 재혁, 천정에 매달린 백열등 스위치를 켠다.

밀가루 푸대 같은 게 잔뜩 쌓여있는 조악한 방 한쪽에 책상하나와 낡은 이불 한 채가 덜렁 놓여 있다.

재혁, 책상 앞에 앉더니 밑에서 작은 나무상자하나를 꺼낸다. 열어보면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천 원짜리와 종이돈들.

재혁,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상자 안에 넣는다.

그러다 상자 밑바닥에 있는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본다.

재혁, 일기장을 펴들면 오래 전에 오려놓은 신문기사들과 함께 빛바랜 가족사진이 들어 있다.

(서너 살 된 재혁과, 할아버지, 아버지..)

재혁, 표정 없이 사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fade-out.



21. S# 김현호의 집 전경. (이른 아침)



22. S# 부엌.


현호,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면서 안쪽에 대고


현호 : 얘들아! 어서 준비해! 학교 늦는다!


현호, 밥을 푸는데 한쪽에선 국이 넘치고, 후라이팬의 달걀은 타들어가고,

현호, 정신없이 국 냄비뚜껑 열다가 뜨거워 놓친다.

교복을 입고 들어서던 태희, 부엌안의 사태를 보더니 한심 한다는 듯.

침착하게 우선 달걀부터 뒤집고 국은 맛을 본 다음 불을 줄인 뒤 소금을 조금 더 넣고 파를 썰어 집어넣는다.


현호 : 아빠가 해두 되는데..

태희 : 도시락은 제가 쌀 테니까 어서 출근 준비 하세요. 서둘지 않으면 아빠두 지각이예요. (하는데)

윤희 : (뒤에서 나타나며) 아빠! 나 머리!

현호 : (얼른 돌아보며) 어! 그래, 그래!



23. S# 마루.


윤희의 머리를 묶어주는 현호, 제법 솜씨가 능숙하다.

다 묶고 나자 윤희, 돌아서서 발을 내밀면


현호 : (양말을 신겨주며) 이젠 삼학년인데 양말은 혼자 신어야지.

윤희 : 혼자 신을 줄 알어 나.

현호 : 근데?

윤희 : 아빠가 신겨주는 게 기분 좋아. (헤 웃더니) 참.. 아빠 잠깐만.. (하면서 아빠 발에 자기 발을 대본다)

현호 : 왜?

윤희 : 아니야. 암것두.

현호 : 요 녀석. 또 무슨 장난 칠려구 그래 아침부터. (엉덩이를 턱 쳐주며) 빨리 들어가 책가방 갖구 나와.

윤희 : 네에! (씩씩하게 대답하고 방안으로 쪼르르 뛰어 들어간다)

현호 : (흐뭇하게 바라보면)



24. S# 방안.


책가방에 책을 집어넣던 윤희, 마지막으로 한쪽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집어든다.

빙긋 웃더니 책가방 안에 쑥 집어넣고 가방을 닫는다. 그 위로.


집주인E : 집에 계시나?



25. S# 마루.


태희, 밥상을 가지고 나오다가 보면 마루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집주인과 현호의 모습.

윤희도 방문을 열고 나와 보면.


현호 : 오셨어요? 아주머니도 안녕하시죠?

집주인 : (퉁명) 아, 태희 아빠가 집세를 줘야 안녕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현호 : 아.. (무안함으로 시선 돌리면)

집주인 : 어떻게 된 거여. 이번 달두 그냥 꿩 궈 먹는 겨?

현호 :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잖아두 저녁때 들릴려구 했습니다. 오늘 월급 나오는 날이거든요.

집주인 : 그려? 그럼 밀린 두 달 치두 같이 주는 건감?

현호 : 아이구 드려야죠. 회사에서 월급이 밀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오늘 다 나오니까 걱정 마십쇼.

집주인 : (조금 수그러져서 보며) 같은 동네 사는 사람끼리 야박하게 군다 생각하지 말어 태희 아빠.

            거 가차울수록 지킬 건 지키면서 살아야 허는 겨.

현호 : 그럼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하..

집주인 : 암튼 그럼. 그런 줄 알고 나 가요. 이? (허험! 괜히 헛기침 한번 하고 가는 뒤로)

현호 : 안녕히 가십쇼. 이따 저녁때 뵙겠습니다. (웃는 얼굴, 이내 씁쓸하게 바뀌며 돌아서면)


서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태희와 윤희.

현호, 썰렁해져서 두 아이를 번갈아 보더니 괜히 시계를 보며.


현호 :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지각이다. 지각! (그러면서 필요이상으로 허둥거리며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태희 : (돌아본다. 시선에서)



26. S# 버스 정류장.


바쁘게 뛰어오는 현호와 태희, 윤희.

현호, 숨을 몰아쉬며 시계를 들여다보면


태희 : 많이 늦었어요?

현호 : 아니 아직 괜찮아. 참, 늬들 오늘 학교 끝나면 다들 일찍 들어와. 아까 들었지? 아빠 오늘 월급날인거.

         오랜만에 우리 삼겹살 구워먹자. 좋지?

윤희 : 삼겹살! 예에! (신나하면)

태희 : 집세부터 내야하니까 괜히 이것저것 사들고 오지 마세요. 이번 달엔 연탄두 더 들여놔야 하구 쌀두 사야해요.

현호 : 알았습니다. 김태희 양. (웃는다)


그 때 와서 멈춰서는 버스.


윤희 : 아빠 버스! 버스!

현호 : 어 그래. 아빠 갔다 올게.

태희, 윤희 : (동시에) 다녀오세요!

현호 : (웃으면서 버스 쪽으로 뛰어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부딪힌다) 아야!


똑같이 움찔하는 태희와 윤희.

아파서 깨금발 질 하면서도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뒤 버스에 올라타는 현호.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계속 손을 흔든다.


태희 : 덜렁이.

윤희 : 그래두 난 아빠가 최고로 멋있어.

태희 : (그건 그렇다. 한숨 내쉬고) 가자.

윤희 : 응. (하면서 돌아서서 걸어간다)


찰랑찰랑. 윤희의 가방 안에서 흔들리는 돈 소리.


태희 : (돌아보며) 근데 너 아까부터 그거 무슨 소리야?

윤희 : 암 것두 아니야.


걸어가는 두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27. S# 버스 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현호, 그 때 툭..툭.. 코피가 떨어진다.

현호, 재빨리 고개를 젖히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는다.

그러더니 얼른 안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두 세알 정도를 입안에 집어넣고 삼키는.

그러면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슬쩍 창밖을 내다본다.



28. S# 공사 현장.


더 이상 코피가 안 나는 걸 확인하며 쭉 걸어 들어오는 현호, 이만치 걸어오는데

공사인부들이 떼를 지어 소리를 지르고 집단으로 항의하며 난리가 났다.

현호, ? 해서 다가서서 보다가.


현호 : 무슨 일입니까?

인부1 : 아 글쎄, 시공업체가 부도가 났대요. 임금두 벌써 두 달 치나 못 받았는데 다 떼먹게 생겼네. 이거.

현호 : ! (멈칫해서 사무실 쪽을 본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



29. S# 공사현장 사무실안.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현호.

벌써 사무실 안은 공황상태. 임금을 못 받게 된 인부들이 집기들을 뒤집어엎고 부수는 가운데 엉망이 되어있다.

순간 심한 현기증으로 비틀하는 현호, 벽을 짚고 선다.

바닥이 춤을 추듯 아래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순간 다시 툭.. 툭.. 떨어지기 시작하는 코피.

현호, 얼른 손으로 코를 막는다. 날라 오는 집기를 피하며 돌아서는 순간 그만 쿵! 바닥에 나뒹구라지는 현호.

순간 아수라장이던 실내가 조용해지며 일제히 현호를 돌아본다.

바닥에 쓰러진 현호,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가는 표정에서.



30. S# 병원 앞 일각.


배달통을 싣고 막 부동산(?)같은 가게 안에서 나오는 재혁, 자전거에 배달통을 싣고 막 출발하려는데

저쪽 횡단보도에서 교복차림으로 황급하게 달려오는 태희, 급하게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재혁, 보면.



31. S# 병원복도.


태희, 간호사 데스크에 물어보면 간호사, 한쪽을 가리킨다.

가리킨 쪽으로 급하게 걸어오는 태희, 병실 문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쭉 걸어오면서 지나오다가

다시 되돌아가 병실 문 앞에 선다. 비스듬히 열린 문.

태희, 얼른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노의사E : 상태가 아주 안 좋아요.

태희 : ? (문고리를 잡다 말고 멈칫.. 비스듬이 열린 문안으로 들여다보면)



32. S# 병실 안.


창백한 표정으로 수혈을 받고 있는 현호. 그 옆에서 상태를 체크하는 노의사와 간호사.


노의사 : 빨리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아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현호 : 그런다고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잖습니까.

태희 : (insert> 무슨 소리지? 쳐다보는 시선에서)

노의사 :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백혈병도 치료만 잘하면 5년까지 버티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다 급성으로 전환되면 한 달도 장담 못해요.

태희 : ! (놀라서 본다. 백혈병...?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노의사 : 아이들 생각을 하셔야죠. 이러다 아이들 앞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땐 정말 어쩔 겁니까.

현호 : ...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암담한 기분인데)

간호사 : (문을 열고 나가다) 어머!

노의사 : (? 해서 돌아본다)

현호 : (돌아보다가 멈칫.. 보면)


문 앞에 서 있는 태희, 충격 받은 표정으로 현호를 보고 있다.


현호 : 태희야...!

태희 : (뭐라고 말도 못한 채 서 있더니 그대로 뛰어가 버린다)

현호 : 태희야!


벌떡 일어나더니 얼른 수혈 받던 링거주사를 떼어 낸다. 침대에서 내려서다가 휘청!


노의사 : 김선생!

현호 : (그러나 끝내 물리치고 태희 뒤를 따라간다)



33. S# 병원일각.


뛰어나오는 태희. 그 뒤로 따라오는 현호.


현호 : 태희야! 태희야!

태희 : (멈추지 않고 달려온다)

현호 : (달려와 가까스로 태희의 어깨를 잡아 돌이켜 세운다) 태희야 잠깐만..

태희 : (숨을 몰아쉬며 본다. 두 눈 가득 고여 있는 눈물)

현호 : 태희야 아빠랑 얘기 좀 해. 응?

태희 : 정말이야?

현호 : (멈칫.. 보면)

태희 : 아빠 정말.. 백혈병이야? 어?

현호 : (본다. 보다가) ..그래.

태희 : 근데 왜 말 안했어? 왜 나한테 숨겼어? 아빠하고 우린 서로 비밀 없기로 했잖아. 근데 왜 말 안했어? 왜?

현호 : 미안해 태희야..

태희 : (순간 툭 떨어지는 눈물.. 간격을 두고 바라보더니) 이제 아빠 어떻게 되는 거야?

         아빠...(믿어지지 않지만)...죽는 거야? 어?

현호 : (그저 대답을 못한 채 본다. 보면)

태희 : (순간 와락 현호를 끌어안더니) 싫어! 죽지 마! 우리 남겨두고 죽으면 안 돼!

         아빠 죽으면 태희가 가만 안 둘 거야! 가만 안 둘 거라구! 알았어? 알았냐구우! 대답해. 아빠 빨리 대답해애!

         (하더니 결국 아빠아...!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현호 : (가슴이 아파 꼭 끌어 안아준다. 말도 못한 채 꼭 안아주는 표정에서)



34. S# 일각.


훌쩍.. 아직 울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태희, 벤치에 앉아있고

그 옆으로 앉으며 우유를 내미는 현호의 손.


현호 : 마셔.

태희 : (고개를 가로젓는다)

현호 : 자꾸 이럴래? 이럼 아빠 진짜 속상하잖아.

태희 : (한숨. 할 수 없이 우유를 받아들면)

현호 : 아빠 괜찮아. 아직 멀쩡하구 그리구 또..

태희 : 또 뭐?

현호 : (본다. 보며) 늬들 두고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걱정 마.

태희 : (또 다시 글썽해져서) 치료도 안 받으면서..

현호 : 그건 차차 받으면 돼.

태희 : 우린 돈두 없잖아.

현호 : (그 말에 잠시 대답을 못하고 보더니 태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빠 믿어. 태희만 믿어주면 아빠 뭐든 다 이겨낼 수 있어.

         절대로 너희들만 남겨두고 어떻게 되지 않아.

태희 : (본다. 보더니 아빠를 꼭 안아준다) 나.. 아빠 믿어.


현호, 다정하게 태희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러면서 어두운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면.



35. S# 달리는 버스 안.


화면위로 올라오는 현호와 선우의 사진. (지갑 속에 사진을 넣어두는 곳에 꽂혀져 있다)

결혼직후의 모습인 듯, 다정해 보인다.

그 뒤로 넘기면 나타나는 김필중의 사진. 대학졸업 때 사각모를 쓰고 김필중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현호, 그 위로.


김필중E : 안 돼!



36. S# 사장실. (회상 - 회색 모노톤으로)


현호 : 아버지.

김필중 : 안된다고 했다. (현호 옆에 앉아있는 선우를 보며) 난 절대 허락 못하니까 아가씨도 그렇게 알고 돌아가요.

선우 : (시선 떨구면)

현호 : 전 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김필중 : 정신 차린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현호 : 이 사람을 사랑한다구요 아버지.

김필중 : (무시하듯 서류를 펼쳐들어 들여다보면)

현호 :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 뜻 어긴 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학교, 원하는 인생에 맞춰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이 회사 물려받는 것두 아버지 뜻이기 때문에

         참고 따른 겁니다. 이번만큼만 아버지가 양보하고 받아주세요. 제 인생에서 딱 한번뿐입니다 아버지.

김필중 : 쓸개 빠진 놈. 세상에 그렇게두 여자가 없드냐?

현호 : 네. 세상에서 저한텐 이 여자뿐입니다.

김필중 : (싸늘한 표정으로 본다)

현호 : 허락 안 해 주신대두 어쩔 수 없습니다. 저.. 선우랑 결혼합니다.

김필중 : 지금 그 말 진심이냐?

현호 : 네.

김필중 : 그렇다면 얘긴 끝났구나. 가서 결혼을 하든 인생을 망치든 니 마음대로 해.

            단, 저 여자와 결혼하는 그 날로 부자지간의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해라.

현호 : (본다)

김필중 :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마주보면)

현호 : (오기어린 표정으로 일어서며) 일어나요.

선우 : 현호 씨!

현호 : 아버지 하시는 말씀 들었잖아요. 얘기 다 끝났어요. 일어나요.

선우 : (김필중을 본다)

김필중 :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다시 서류를 내려다본다)


현호, 선우의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마지막으로 김필중을 돌아본다.

김필중, 끝내 쳐다보지 않는다.

현호, 그대로 선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쿵 문이 닫히면.



37. S# 달리는 버스 안. (다시 현실)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현호, 나즉하게 한숨을 내쉬며 옆에 기대어 잠이 든 태희를 내려다본다. 시선에서.



38. S# 구두가게.


비누칠이 되어있는 진열장 밖에서 구두주인, 비눗물을 쓱 닦아내면

그 앞으로 프레임-인 되는 윤희의 얼굴. 진열장안의 구두를 유심히 바라보면


구두주인 : (? 해서 돌아보며) 뭐냐?

윤희 : (돌아보며) 저 구두 주세요. (그러면서 돼지저금통을 힘껏 내민다)

구두주인 : (? 유리창을 청소하다 말고 보면)


<시간경과>

카운터 위에 열개씩 쭉 쌓여있는 동전.


구두주인 : 사만 이천 팔백 원, 사만 이천 구백 원.. 사만 삼천 원.. 십 원짜리가 모두해서 (손가락으로 세더니) 칠백사십 원.

               전부해서 사만 삼천 칠백 사십 원이네.

윤희 : 네. 저 구두 빨리 주세요.

구두주인 : 인석아, 저 구두는 칠만 원짜리야. 어떻게 칠만 원짜릴 삼만 원이나 뚝 잘라 팔어?

윤희 : 우리 아빠 생일선물 할라 그래요. 주세요.

구두주인 : 암만 그래도 이 가격엔 못줘. 다른데 가봐. (카운터위의 동전을 찢어진 돼지저금통 안에 촤르르 쓸어 담는다)



39. S# 구두가게 문 앞.


문이 열리고 툭 내밀리는 윤희.

책가방을 맨 채 돼지저금통을 품안에 들고 돌아보는 윤희, 다시 쪼르르 구두 가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면서 툭 내밀리는 윤희.

똑같은 자세로 서 있다가 다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는 윤희.

다시 구두 가게 주인한테 내밀리며 밖으로 나오는 윤희.

다시 돌아서서 들어가려는데 확 문이 열리면서


구두가게 : 이 녀석아! 가라니까 왜 자꾸 귀찮게 굴어? 저 구두 너한테 못 판대두 그래.

윤희 : 그래두 사고 싶은데요?

구두가게 : 글쎄 돈이 모자란다구. 돈이. 알았어? 너어. 한번만 더 들어오면 그 땐 진짜 혼날 줄 알어!


구두가게 주인 엄하게 노려본 뒤 문안으로 사라진다.

빤히 바라보는 윤희, 진열장안의 구두를 빤히 쳐다본다. 시선에서.



40. S# 구두 가게 안.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던 구두주인, 갑자기 바깥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 해서 돌아보면 윤희, 밖에서 아까 구두주인이 닦다 만 쇼윈도를 닦고 있는 게 보인다.



41. S# 구두 가게 앞.


구두주인 : (밖으로 나오며) 야 이 녀석아 뭐하는 거야 너?

윤희 : 걱정 마세요. 깨끗하게 닦아 놀께요.

구두주인 : 야 임마, 누가 너한테 이런 거 하랬어? 비켜, 비켜. (유리창 닦는 걸 빼앗으려는데)

윤희 : (얼른 유리창 닦는 걸 양동이에 담그며) 물 다시 담아올께요. (그러더니 양동이를 들고 졸래졸래 안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돌아보며) 유리창 다 닦으면 다른 것두 시키세요. 아저씨가 하라는 청소 다 해드릴 테니까

         대신 저 구두 주셔야 해요. 아셨죠?

구두주인 : 야, 이 녀석아 누구 맘대루, 야.. (하는데)

윤희 : (듣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구두주인 : (허..! 어이없어 보는데)

윤희 : (다시 문을 열고 고개만 쏙 내밀더니) 아저씨 거기 제 책가방하구 돼지저금통 좀 잘 지켜주세요. 그거 잃어버리면 클나요.

         (그러더니 다시 쏙 들어간다)


어이없이 보던 구두주인, 할 수 없이 윤희의 책가방과 돼지저금통을 집어 들고 어정쩡하게 다시 돌아보는 시선에서.



42. S# 집주인의 집앞. (저녁)


태희, 저쪽 담에 기대서서 이쪽을 돌아보면.

집주인의 집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현호와 맞은편에서 기세등등하게 바라보는 집주인의 모습.


집주인 : 아니. 부도라니.. 그러면 집세는? 집세는 어쩌구?

현호 : 죄송합니다. 한 달만 더 봐주시면 빨리 다른 자리 알아봐서 갚아 드리겠습니다.

집주인 : 이것 봐 태희 아빠. 우리도 살아야지. 우리도. 겨울철에 돈 나올 데라곤 태희네 월세뿐인데

            벌써 두 달씩이나 까먹구두 또 한 달을 봐달라면 어떡해? 우린 뭐 손가락만 빨구 사나? 어?

현호 : (조아리며) 정말 죄송합니다.

집주인 : 죄송하단 소리 그만해. 이젠 듣기 싫어 것두.

현호 : ... (시선 떨군다)

태희 : (그런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위로)

집주인 : 원 사람 사는 게 왜 그 모냥이여? 변변히 회사 하나 가려 댕기지 못하구.. 칠칠치 못 허게.

            태희 아빠 사람 좋아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이러면 민폐여 민폐. 알어? (하는데)

태희 : 아저씨! 말 다했어요?


동시에 집주인과 현호, 돌아본다.


태희 : 아저씨야 말루 우리 아빠한테 민폐예요. 알아요?

집주인 : 뭐야?

태희 : 아저씨네 큰 아들 고등학교에 떨어졌을 때 공짜로 과외 시켜준 게 누군데요?

         아저씨네 농사철마다 돈 한 푼 안 받구 논에 나가 모 심어주고, 풀 뽑아준 게 누구냐구요? 우리 아빠잖아요! 아니예요?

         필요할 땐 맘대로 부려 먹구 고마운 줄두 모르구!

         솔직히 월세 두 달 봐준 거 말구 아저씨가 봐준 게 뭐가 있는데요? 말해 봐요!

집주인 : 어허! 근데 어디서 어른들 얘기하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현호 : 죄송합니다. 어르신. (태희 보며) 태희야 그만해.

태희 : 이사 가요 아빠. 우리 이사 가면 되잖아!

집주인 : 그래 가라 가! 어이구 참. 에미 없이 자란 것들이라 불쌍하다 오냐오냐 해줬드니만 영 싸가지가 글러 먹었구만 그래!

현호 : (멈칫.. 그 말에 기분상해 집주인을 보면)

집주인 : 태희 아빠, 거 애들 교육 잘 시켜. 어디 가서 욕 얻어먹기 딱 십상이야. 알어?

            그리고 집 문제도 가부당간 이번 주 안으로 결정을 지라고. 밀린 월세를 내놓든가 이사를 가든가. 나 원..

            (그러더니 쿵!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현호 : ... (본다)

태희 : (씩씩거리며 본다. 시선에서)



43. S# 김현호의 집 마루. (저녁)


나란히 걸터앉은 현호와 태희.


태희 : (흘끗) 아빠.. 죄송해요.

현호 : (본다. 보더니 씩 웃으며) 아니야. 오히려 속 시원하게 잘 말했어.

태희 : (보면)

현호 : 걱정 마.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더니 분위기 바꿔) 그나저나 윤희 이 녀석은 어디 가서 이렇게 안 들어오지?

         태희야. 나가서 윤희 좀 찾아올래? 아빠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 놓을게. 음? (그러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태희 : ... (돌아본다. 한숨 내쉬는 시선에서)



44. S# 구두 가게 앞. (밤 - 이하 밤)


구두 가게 안의 불이 환하게 켜진 전경에서.

그 안으로 마대 질을 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윤희의 모습.



45. S# 구두 가게 안.


신문 보는 척하면서 윤희를 흘끔 보는 구두 가게 주인, 보면.

윤희, 마른 수건으로 가게 안에 있는 구두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그러다 하품 한번.. 눈을 비벼가며 열심히 구두의 먼지를 닦는다.

구두 가게 주인, 그런 윤희의 모습에 픽 웃고 만다. 시선에서.

(경과)

카운터위로 턱! 하니 올라오는 새 구두.

윤희, 그 앞에 서서 보면


구두주인 : 내가 졌다.

윤희 : (본다. 밝게 씩 웃는 얼굴에서)



46. S# 김현호의 집.


부엌 쪽에서 나오는 현호,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시계를 본다.

시계, 밤 여덟시를 넘어서고 있다.

그 때 태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태희 : 아빠, 윤희가 없어요.

현호 : 뭐?

태희 : 놀만 한 덴 다 찾아봤는데.. 아무데도 없어요.

현호 : (본다. 보더니 얼른 앞치마를 풀고 뛰쳐나간다)

태희 : (그 뒤를 따라가면)



47. S# 동네 일각. (밤)


“윤희야! 윤희야!” 윤희를 찾는 현호의 모습.

학교 앞 가게에 들려 물어보지만 다들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 동네주민들.

현호, 조금씩 걱정스러워서 걸음이 빨라진다.


현호 : 윤희야! 윤희야아!!!



48. S# 버스 안.


책가방은 메고, 구두가방은 꼭 끌어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윤희, 버스가 멈춰서는 바람에 짐짓 눈을 뜬다.

입가에 고여 있는 침을 쓱 문질러 닦으며 창밖을 내다보다가 멈칫..


윤희 : (어? 여기가 어디지? 돌아보다가 얼른 운전사 쪽으로 다가와) 아저씨 남면 갈려면 한참 멀었어요?

운전사 : 남면? 거긴 아까 지났는데?

윤희 : 네? (놀라서 보더니) 클났다! 아저씨 세워주세요! 빨리요!!!



49. S# 길. (밤)


멈춰서는 버스에서 내려서는 윤희.

버스, 다시 출발하자 윤희,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온통 어둠뿐.

윤희, 두려움을 꾹 누른 채 얼른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50. S# 동네 일각.


윤희를 찾지 못한 채 허겁지겁 뛰어오는 현호. 콜록콜록, 심상치 않은 기침을 두어 번 하며 멈춰 선다. 현기증..

그 때 다른 쪽에서 뛰어오는 태희.


태희 : 아빠! (허겁지겁 뛰어와 붙잡으며) 아빠 왜 그래요? 괜찮아요?

현호 : (손으로 괜찮다는 듯.. 잠시 있더니) 어떻게 됐니? 윤희 학교친구한텐 알아봤어?

태희 : 아까 학교에서 청소도 안 하구 도망쳤대요. 오늘 읍내에 나가야 된다면서..

현호 : 읍내? 읍내엔 왜?

태희 : 모르겠어요. 암튼 갈수록 제멋대로니깐.

현호 : (조금은 화가 난 듯 돌아보며) 이 녀석..



51. S# 길.


구두봉지를 꼭 쥔 채 달려오는 윤희, 갈림길 앞까지 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쿵! 넘어지고 마는.

그러나 아프단 소리 하나 없이 벌떡 일어나 툭툭 털고는 떨어진 구두가방을 집어 든다.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바람소리뿐. (으시시함)

갈림길에서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 하다가 멈춰 서서 손바닥에 침을 퉤! 뱉은 다음 툭! 친다. 저쪽이다.

다시 뛰어서 저쪽으로 막 가려는데 반대편에서.


태희 : 윤희야! 윤희 맞지?

윤희 : (돌아본다. 순간 표정 확 밝아지며) ..언니이!!!

태희 : 윤희야아!! (달려온다)

윤희 : 언니이!!!


너무나 반갑게 달려가 태희를 꼭 끌어안는다.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아 그대로 꼭 끌어안은 채로 있는데.


태희 : 어떻게 된 거야 너?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어?

         대체 읍내엔 뭐 하러 혼자 나간거야? 그러다 길이라두 잃어버리면 어쩔려구 그랬어? 어?

윤희 : (고개 들어 보며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씩 웃더니) 진짜루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 오줌까지 쌀 뻔 했어 나.

태희 : 바보. (하면서 꽁 꿀밤을 먹이는데)

현호 : 김윤희!

윤희 : (태희 뒷쪽을 보면)

현호 : (무섭게 쳐다보고 있다)

윤희 : 아빠아!!! (반갑게 달려가더니) 아빠두 나 찾아러 나온 거야? 응? (하는데)


갑자기 철썩! 윤희의 뺨을 때리는 현호.

갑작스런 뺨 세례에 충격을 받은 듯 우뚝 멈춰 서서 올려다보는 윤희.

태희도 너무 놀라서 현호를 올려다본다.


태희 : 아빠아...

윤희 :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면)

현호 : 너 이 녀석. 오냐오냐 받아주니까 아주 제멋대로야. 학교 끝났으면 일찍일찍 집에 들어와야지.

         이 시간까지 위험하게 어딜 돌아다닌 거야? 어?

윤희 : (말도 못한 채 울먹울먹 쳐다보면)

현호 : 아빠랑 언니랑 너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윤희 너 자꾸 그렇게 말 안 듣구 니 멋대로 굴면 아빠..

         (보더니) 아빠 다시는 윤희 안 볼 거야! 알았어? (그러더니 홱 돌아서서 가버린다)

윤희 : (본다. 보더니 순간 우-앙!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현호 : (돌아보지 않은 채 성큼성큼 가버리면)

태희 : (아빠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보다가 윤희 옆으로 온다) 뚝해 어서. (그러더니 윤희 손을 잡고 아빠 뒤를 따라간다)


한손엔 구두봉지를 든 채 다른 한손은 언니한테 잡힌 채 이끌려가며 윤희, 더 크게 엉엉 소리 내어 운다. 길게.



52. S# 마당.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물에 동생을 씻어주는 태희. 계속 훌쩍훌쩍 울음 우는 윤희 목에 수건을 걸쳐놓고 닦아준다.


태희 : 그만 뚝 하라니까.

윤희 : 아빠가 윤희 다시는 안 본 댔잖아. 진짜루 아빠가 나 다시 안보면 어떡해? (훌쩍)

태희 : 바보. 누가 진짜루 안 본대? 니가 말 안 들으면 그런다는 거지. (손을 윤희 코에 대고) 흥!

윤희 : (시키는 대로 킁! 풀면)

태희 : (물로 헹궈낸 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며) 아빠가 지금 많이 아파. 그러니까 자꾸 아빠 속상하게 하지 마. 알았어?

윤희 : 어디 아픈데?

태희 : 그냥.. 그냥 좀 아프셔.

윤희 : (빤히 보면)

태희 : (보더니) 들어가자. (윤희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간다)



53. S# 김현호의 방안.


윤희의 뺨을 때린 손을 내려다보던 현호, 자책하는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 방 쪽으로 시선 돌리면.



54. S# 태희, 윤희의 방.


내복차림으로 잠들어 있는 윤희, 자면서도 아직 훌쩍거림이 남아 있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현호.


현호 : 윤희.. 자니?

태희 :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돌아보며) 네.

현호 : 저녁은?

태희 : 먹였어요.

현호 : (잠이 든 윤희를 잠시 내려다본다. 때렸던 뺨을 어루만져주면)

태희 : 저기.. 아빠 이거.


현호, 태희가 내민 봉투를 열어본다. 순간 멈칫..

안에서 나오는 구두를 현호, 멍하니 쳐다보면


태희 : 윤희가 돼지 저금통 털었나 봐요. 아빠 구두 사줄려구..

현호 : (순간 눈물이 핑그르.. 목이 메어 윤희를 내려다본다. 보더니) 아빤.. 정말 바보다. 그치 태희야?

태희 : (본다. 보면)

현호 : (말없이 윤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이 든 윤희의 얼굴에서.

(시간경과)

윤희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누운 현호와 태희.

현호, 잠을 못 이룬 채 두 딸을 가만히 내려 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빠가 밖으로 나가자 태희, 눈을 뜨고 본다.



55. S# 마당.


밖으로 나와 한쪽에 숨겨뒀던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 후.. 길게 내뿜는데

그 담배를 빼앗는 태희의 손.


현호 : (? 보면)

태희 : 이제부턴 담배 안돼요. (발로 꺼버리더니 아빠 옆에 앉아 팔짱을 낀다)

현호 : (픽 웃으며) 왜 안자고 나왔어?

태희 : 그냥 잠이 안와서. 아빠는?

현호 : (잠시 간격을 두더니) 엄마 생각이 나서.

태희 :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본다, 보면)

현호 : 엄마한테 우리 태희하고 윤희.. 잘 키우겠다구 약속했거든.

         근데.. 아빠가 그 약속을 잘 못 지키고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태희 : 걱정 말아요. 아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니까.

현호 : (웃음. 그러더니) 참, 아빠 내일 서울 갈 거야.

태희 : 서울엔 왜요?

현호 : 할아버지 만나러.

태희 : (멈칫..본다) 엄마랑 아빠 미워하는 그 할아버지?

현호 : 미워하는 거 아니야.

태희 : 하지만 아빠 얼굴 다신 안보겠다 그랬다면서? 그건 미워하는 거잖아요.

현호 : 태희야. 사람은 때론 말야. 너무 사랑해서 너무 미워지기도 해. 할아버지도 아빠한테 그런 거야.

태희 : (이해할 순 없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갑자기 그 할아버진 왜 만나러 가는데요?

현호 : 우리 태희하구 윤희.. 이 세상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뿐이니까.

태희 : (그 말에 본다. 보면)

현호 : 태희 너. 아빠랑 약속 하나만 할래? 만약에.. 이건 그냥 만약인데.. 만약 이 세상에 아빠가 없으면

         그 땐 태희가 윤희를 잘 보살펴 주겠다구. (보며) 약속할 수 있지?

태희 : 그런 말 하지 마. 싫어.

현호 :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어때. 약속할 수 있지?

태희 : (본다.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호 : 그래. 우리 태희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니까. 아빤 태희 믿어. (그러면서 태희의 어깨를 감싸주며 하늘을 본다)

태희 : (아빠를 본다. 시선에서)



56. S# 제하그룹 전경. (아침)


건물 앞으로 다가와 멈춰서는 고급승용차. 수행원에서부터 경비에 이르기까지 긴장하며 다가선다.

박귀중(40대 중반) 재빨리 차에서 내려 김필중이 앉은 쪽 차문을 열어주면

차안에서 내리는 작업복 점퍼차림의 김필중(60대 초반).

박귀중, 반쯤 고개 숙여 인사하면.



57. S# 로비.


안으로 들어서는 김필중 걸음이 기운차고 빠르다. 그 뒤로 따르는 진상만(40대 중반)과 수행원들.


진상만 : 쿠웨이트 건설 사업부 2팀이 9시부터 미팅준비중입니다. 예산보다 공사비가 초과된 부분에 대해 설명이 있을 예정이구요,

            11시에 사장단 회의가 있습니다. 올 2/4분기 사업계획전반에 관한 보고가 있을 겁니다.

김필중 : 전자 쪽 박사장도 오겠군.

진상만 : 네.

김필중 : 따로 할 얘기 있다고 전해.

진상만 : 점심식사 때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가는 김필중과 진상만. 다른 수행원들까지 올라탄 다음 문이 닫힌다.



58. S# 엘리베이터 안.


김필중을 중심으로 서 있는 진상만과 수행원들.


김필중 : 어이 진실장.

진상만 : 네 회장님.

김필중 : 오늘이 멫칠이지?

진상만 : 네. 2월 8일입니다. (조심스럽게) 무슨.. 날이십니까?

김필중 : (표정 없이 시선을 돌리면)



59. S# 김현호의 방.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현호의 얼굴. 그 위로 갑자기 확 뿌려지는 색종이들과 함께.


태희, 윤희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태희 : (케잌 대신 초코파이에 꽂은 촛불을 앞으로 내밀며) 소원 비세요, 아빠!

현호 : (눈을 감고 짧게 빌더니 후! 촛불을 분다)


박수치는 아이들.

현호, 윤희를 보면 윤희, 어젯밤 일 때문에 태희 옆으로 붙으며 시선을 떨군다.

그러자 태희, 윤희를 툭툭 치면서 시선으로 현호의 발을 가리키면 윤희 현호의 발을 본다.

현호 발에 신고 있는 새 구두.

순간, 윤희 베식 웃으며 아빠를 본다. 현호, 팔을 벌리면 그대로 달려가 현호한테 안겨버리는 윤희.


현호 : (꼭 안으며) 선물 고맙다. 윤희야.

윤희 : (목을 끌어안고) 미안해 아빠. 앞으로 아빠 말 잘 들을게.

현호 : (시큰해져서 더 세차게 꼭 안아준다)

태희 : (빙긋 웃으며 보면)



60. S# 산. (엄마의 무덤)


흰 눈이 쌓인 무덤위에 카라를 한 송이씩 내려놓는 현호와 태희, 그리고 윤희. 말없이 묵념을 한다.

현호, 말없이 아내의 무덤을 내려다본다. 시선에서.



61. S# 버스 정류소 앞.


윤희의 코트 깃을 여며주는 현호.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분위기로.


현호 : 늦을지도 모르니까 문단속 잘하구 있어. 시간 맞춰 연탄 가는 거 잊지 말구. 알았지?

태희 : 네.

윤희 : 아빠 어디 가는데?

태희 : 할아버지한테.

윤희 : 할아버지? (놀라서) 서울에 사는 무서운 할아버지?

현호 : (웃음) 아빠 갔다 올게.

태희 :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현호 : 그래.

윤희 : 아빠 올 때 귤 사와. 응?

현호 : 알았어.

윤희 : 안 자구 기다린다.

현호 : 알았다니까. (웃으면)


도착하는 버스. 현호, 아이들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버스에 타려는데.


태희 : 아빠!

현호 : (돌아본다)

태희 :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은 안 나오고 그저 바라보면)


현호, 한번 웃어준 뒤 버스에 올라탄다. 출발하는 버스.

태희, 윤희 손을 잡은 채 멀어지는 버스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시선에서.



62. S# 제하그룹 일각.


차의 먼지를 먼지 털이 개로 닦아내고 있는 박귀중, 그러다 문득 한쪽으로 시선을 준다.

순간 멈칫하는 표정으로 보면.

이쪽 현관앞쪽에 서서 빌딩을 올려다보고 있는 김현호. 잠시 망설이는 표정.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박귀중 : 저기 혹시..

김현호 : (돌아보면)

박귀중 : 맞지요? 현호 도련님..

김현호 : (따뜻한 미소)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63. S# 회장실.


전화를 받고 있는 김필중.


김필중 : 네. 오늘 오후에 갑자기 일본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모임에 못나가게 됐어요.

            허허..그럼 그럽시다. 다음 주말에 뵙겠습니다.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E. 똑똑똑.

김필중 : 들어와.


빠꼼히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진상만. 잔뜩 긴장한 얼굴로 김필중의 눈치를 살핀다.


김필중 : 뭐야.

진상만 : 저기.. 그게..

김필중 : (서류를 펼치다 말고 신경 쓰이는 듯 흘끗 보면)


그 뒤로 들어서는 김현호, 시선을 들어 김필중을 본다.


김필중 : ...!



64. S# 복도. (엘리베이터 앞)


밖으로 나오는 박귀중, 엘리베티어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쏜살같이 뒤 쫒아 나오는 진상만.


진상만 : 이봐요 박기사! 나 좀 잠깐 봐요!

박귀중 : ? (돌아보면)

진상만 : 저기.. 좀 전에 회장실로 들어간 그 양반.. 정말로 회장님 아드님 맞습니까? 아 왜 수녀랑 눈 맞아서 결혼했다던...

박귀중 : 네. 맞습니다.

진상만 : 이야. 소문으로만 듣던 그 아드님을 이제야 보게 됐네.

            그나저나 고생을 많이 했나본데요? 얼굴이 영 말이 아니네.. (돌아보면)

박귀중 : (그 말에 회장실 쪽을 돌아본다. 시선에서)



65. S# 회장실.


조용히 앉아 있는 현호의 얼굴. 역시 말없이 마주앉아 있는 김필중.

무거운 침묵을 깨고 현호가 먼저,


현호 : 그간.. 무고 하셨습니까.

김필중 : 무고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니.

현호 : (보면)

김필중 : (무심하게 차를 마신다)


다시 어색한 침묵.

어렵지만 십오 년간의 벽을 깨야한다. 결심하고 일부러 씩씩하게.


현호 : 딸아이가 둘입니다. 큰 녀석은 이번에 중학생 됐구, 작은 놈은 국민학교 3학년 입니다.

         둘 다 성격도 좋구 공부도 곧 잘 합니다.

김필중 : 그래서. 갑자기 날 찾아온 이유가 뭐냐.

현호 : (멈칫.. 보면)

김필중 : 지난 십 수 년 동안 연락한번 없이 살아온 놈이야 너. 그런 녀석이 갑자기 발걸음 한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뭐냐. 사는 형편이 어려워진 게냐? 그 여자가 돈 좀 얻어오라고 너 등 떠밀든?

현호 : (본다. 잠시 보더니) 아내는.. 십년 전에 죽었습니다. 둘째 낳으면서요.

         그러니까 아내에 대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쇼.

김필중 : (본다. 보더니) 십년 전에 죽었든 이십년 전에 죽었든 나한곤 상관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 여잔 우리 집에서 널 뺏어갔구 널 망쳐놨어. 그런 여잘 어떻게 용서해. 절대 용서 못해.

현호 : 아버지.

김필중 : 그래 고작 이런 꼴로 날 찾아오려고 그 여잘 따라 갔던 거냐? 고작 이런 꼴로 살려고?

현호 : (화가 나서) 아버진..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김필중 : 형편없이 변해버린 너보단 낫겠지.

현호 : (! 보면)

김필중 : 넌.. 날 찾아오지 않는 게 좋았다. 어디서건 나보란 듯 잘 살았어야 했어. 그런 척이라두 했어야했어!

            평생 못 보더라도.. 차라리 그게 더 나을 뻔했다.

현호 : (본다. 무서우리만치 차분하게 화를 누르고) 아버지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필중 : (! 멈칫)

현호 :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자식들 보살펴줄 수 있는 분은 아버지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찾아 왔습니다. 근데..

         (보며) 제 생각이 틀린 것 같군요. (그러더니 벌떡 일어선다. 순간 강한 현기증으로 휘청..!)

김필중 : (움찔! 해서 보면)

현호 : (툭.. 떨어지는 코피)

김필중 : !

현호 :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막더니) 안녕히 계십쇼. 다시는 찾아오는 일 없을 겁니다. (그러더니 문 쪽으로 돌아선다)

김필중 : (짐짓.. 손을 움직여 보지만. 끝내 부르지 못하고)


현호, 나간다. 문이 닫히는 순간.. 김필중 무너지듯 힘없이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맞은편에 소파위로 떨어진 아들의 코피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66. S# 비서실.


밖으로 나오는 현호, 계속 어지러운 듯 잠시 벽을 짚고 선다.

눈치만 살피고 있던 진부장, 재빨리 다가서서.


진상만 :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하십니까?

현호 : (대답 없이 그대로 지나쳐간다)

진상만 : (보면)



67. S# 화장실 안.


뛰어 들어온 현호, 그대로 변기로 달려가 욱욱.. 구역질을 해댄다.

그러다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



68. S# 회장실 안.


멍하니 앉아 있는 김필중, 잠시 그 상태로 있더니.


김필중 : 못난 놈.. (눈시울이 붉어진듯하더니 이내 손으로 이마를 짚어 눈을 가린다)



69. S# 김현호의 집전경. (밤)


눈이 내리고 있다.



70. S# 김현호집 거실. (밤)


윤희 : (밖을 내다보다가) 어? 눈이다! 언니 눈이야!

태희 : (돌아본다. 같이 내다보며 걱정스러운 눈빛) 아빠가 많이 늦으실까? 눈 오면 길이 많이 미끄러울 텐데..

         (걱정스럽게 보는 눈빛에서)



71. S# 정선 터미널. (밤)


도착하는 서울 버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내려서는 현호, 한손에는 귤 봉지가 들려져있다.

현호, 곧장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는데 터미널 눈을 치우던 직원.


직원 : 어디 쪽으로 가십니까?

현호 : 남면 가는데요.

직원 : 어이구. 오늘 못가요 거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버스가 끊겼어요.

현호 : 집에 아이들밖에 없어서 꼭 가야 하는데..

직원 : 암만 그래두 오늘은 힘들어요. 걸어간다 해두 이 십리 길인데 어이구..

         그냥 오늘은 근처 여인숙에서 주무시고 내일 들어가세요.


그 말에 현호, 걱정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계속해서 펑펑 내리는 눈..



72. S# 김현호의 집.


난로위에서 물주전자가 끓고 있고. 그 위로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


태희 : (전화를 받는다) 아빠! 어디세요? 터미널? 으응..아빠는? 몸.. 괜찮아요?

현호 : (wiper in> 터미널 앞 공중전화부스) 어. 괜찮아. (콜록콜록..하는데)

윤희 : (수화기에 대고 크게) 아빠! 귤은? 귤 사왔어? 응?

현호 : 그래 샀다. 한 봉지 가득 샀어.

윤희 : (좋아서) 빨리 와 아빠! 빨리 빨리! 알았지?

현호 : (wiper in> 웃음) 그래 알았어. 아빠 금방 들어갈게.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며) 너무 늦어지면 기다리지 말구 먼저 자 태희야. 알았지?

태희 : 네. 아빠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수화기 내려놓으며 그래도 왠지 걱정스러운 표정)



73. S# 터미널 앞.


공중전화부스앞에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는 현호, 옷깃을 잔뜩 세우더니 귤 봉지를 단단히 들고 걷기 시작한다.

콜록콜록.. 기침소리에서.



74. S# 비행기 안.


일본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1등 칸에 앉아있는 김필중, 나즉히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본다. 시선에서.



75. S# 눈 길. (씬1과 거의 같은 상황)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눈 속을 힘겹게 걸어오고 있는 현호. 미끄러져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다.

점점 더 숨이 가빠오고 헉헉.. 계속해서 나오는 기침 콜록..콜록.. 새 구두가 눈 속에 푹푹 파묻힌다.

잠시 힘이 든 듯 눈 속에 멈춰서는 현호, 현기증을 느낀 채 주저앉는다.

그 때 하얀 눈 위로 툭툭 떨어지는 코피.

현호, 얼른 잠바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약을 꺼내든다. 몇 알을 입에 넣은 뒤 눈을 집어먹으며 같이 삼킨다.

손등으로 흐르는 코피를 막으며 혹시라도 지나가는 차가 없는지 둘러본다. 다른 한손엔 여전히 단단히 들고 있는 귤 봉지.

그 때 저쪽 끝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봉고차의 헤드라이트.

현호, 반가움에 얼른 도로 쪽으로 걸어간다. 눈 때문에 잘 걸어지지 않는..

겨우겨우 눈을 헤치고 걸어 나가 차 앞쪽으로 나간다.



76. S# 봉고차 안.


창밖으로 계속 부딪히는 눈을 와이퍼가 닦아내고 창문 안으로 계속 김이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운전자, 면장갑으로 앞 유리의 서린 김을 닦아낸다. 순간 저만치 차 앞으로 나타나는 사람의 모습.


운전자 : 어? 어어어어!! (브레이크를 콱! 밟는다)



77. S# 눈길.


현호, 멈칫해서 쳐다보면 얼굴 가득 비추는 봉고차의 헤드라이트.

바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서는가 싶더니 순간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휙! 회전을 하는 봉고차.

현호, 미처 비킬 틈도 없이 회전하는 봉고차의 뒷면에 쿵! 받힌다.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현호. 동시에 반대편 차선의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춰서는 봉고차.

빠------앙!!!! 운전자, 충격으로 기절하면서 클랙션을 누른 채 엎어져 버린다.

눈이 내리는 외곽도로위로 경적소리가 날카롭게 정적을 깨는 가운데 diss.

한쪽 눈 속에 널 부러져 있는 현호의 옆모습. (정부 감으로) 머리 쪽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천천히 흘러내려온다.

그 주위로 흩어져있는 노란 귤들..


현호E : 빨리 가야하는데.. 애들이 기다릴 텐데.. (간격을 두고 거친 숨소리만..) 태희야.. 윤희야.. 미안해..

           아빠.. 조금만 쉬었다 갈께.. 조금만.. (그러면서 거친 숨소리가 차차 잦아진다)


쓰러져 있는 현호위로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천천히 쌓인다.

화면 하얘지면서. 그 위로

E 쿵쿵쿵쿵! 쿵쿵쿵쿵! (대문 두드리는 소리)



78. S# 김현호의 집 마루. (아침)


번쩍 고개를 드는 태희.


태희 : 아빠? (돌아본다)


옆에서 쭈그리고 잠이 들어있는 윤희.

태희, 얼른 현호의 방으로 가본다. 비어있다. 안 오셨나? 왠지 불길한데

다시 쿵쿵쿵쿵!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태희 돌아본다.



79. S# 대문 앞.


문이 열리고 얼굴을 내미는 태희, 순간 멈칫.. 경찰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문 앞에 서 있다.


양순경 : 여기가 김현호 씨 댁 맞니?

태희 : 네. 우리 아버진데요. (순간 밀려오는 두려움으로 보면)



80. S# 병원복도.


양순경을 따라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서는 태희와 윤희.

윤희, 두려운 듯 병원 안을 둘러보며 태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윤희 : 언니. 아빠 많이 다쳤대? 얼마나 다쳤대?

태희 : (입을 꼭 다문 채 양순경의 뒤만 쳐다보며 걸어간다)

윤희 : (태희와 보조를 맞추느라 거의 뛰다시피 걸으며) 아빠 얼마나 다쳤냐니깐? 응?

태희 : 시끄러! 나두 몰라!

윤희 : (움찔.. 순간 시무룩해진다. 계속 따라가면)


양순경, 문득 걸음을 멈추고 두 아이를 돌아본다.

태희와 윤희도 걸음을 멈추고 보면, 영안실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멈칫..하는 태희.

윤희, 불안한 시선으로 태희와 경찰을 보면.


양순경 : 정말 괜찮겠니?

태희 : (입을 꼭 다문 채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윤희에게) 윤희 넌 여기서 기다려.

윤희 : 싫어! 나두 가서 아빠 볼래.

태희 : 말 들어 글쎄!

윤희 : (멈칫.. 왠지 태희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기가 죽어) 아빠.. 많이 다쳤어? 그런 거야?

태희 : 아직 몰라. 지금 언니가 들어가서 보고 올 거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아무데도 가지 말구. 알았지?

윤희 : (본다.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나와야 돼.


태희, 윤희를 한번 본 뒤 양순경을 향해 돌아서면 양순경 태희를 데리고 문안으로 들어간다.

혼자 남겨진 윤희, 닫혀 진 문을 보면.



81. S# 임시 보관실.


태희, 양순경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면 한쪽 침대위에 흰 천으로 덮혀 있는 시체가 보인다.

태희, 거리를 두고 쉽게 다가서지 못한 채 주춤한다.

양순경, 태희를 돌아본 뒤 흰 천을 들어 올려 확인을 시켜준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무는 태희,


양순경 : 아빠.. 맞니?


태희, 인정도 부정도 못한 채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물러서다가 문득 한쪽에 시선이 멈춘다.

덮어놓은 흰 천 밑으로 비죽이 나와 있는 새 구두..

태희,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뚫어져라 그 구두를 바라본다.

순간 글썽..! 태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다가가 천천히 그 구두를 만져본다. 그러더니.


태희 : 아빠.. 아빠야? (순간 툭.. 떨어지는 눈물) 정말 아빠야? 어어? (아빠의 다리를 흔들어보며) 아빠아! 아빠아아아!!!!


태희 그대로 울음을 터뜨린다.



82. S# 복도.


혼자서 벽에 기대 있던 윤희, 소리에 고개를 돌려 돌아본다.



83. S# 영안실 안.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윤희, 침대 옆에 서서 흐느껴 우는 태희를 본다.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서다가 아빠의 주검을 본다.


태희 : (멈칫. 울다가 돌아본다) 윤희야.

윤희 : (본다. 아빠의 시신을 돌아보더니) 아빠.. 뭐해? 지금 자는 거야?

태희 : (순간 으어엉! 윤희를 끌어안고 섪게 소리 내어 운다)


언니에게 안긴 채 멍하니 아빠를 돌아보는 윤희의 시선에서 스틸.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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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별빛천사 | 작성시간 18.11.18 ㅠㅠㅠ엄청 재밌게 본 드라마인데..감사해요
  • 작성자작가지망생작장인 | 작성시간 18.11.19 와... 대박 이 작품도 재밌게 봤었는데 검색해보니 강은경 작가님이 쓰셨던 작품이었군요 십몇년만에 알았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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