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SBS대본

[유리구두] 03 - 서로 다른 길 (上)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8.11.18|조회수669 목록 댓글 0

[유리구두] 03 - 서로 다른 길 (上)











1. S# 식당 안.


뛰어나오는 오산댁과 황국도, 방문 앞에 서서 스위치를 올린다.

그 뒤로 쪼르르 뛰어나와서 얼굴을 내미는 승희,

환하게 켜진 식당 안을 살피던 오산댁과 황국도, 그만 깜짝 놀라서 한 쪽을 쳐다보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치우지 않고 남은 음식들을 한입 가득 퍼먹던 윤희, 놀란 얼굴로 그들을 본다.


오산댁 : 어머나! 쟤 좀 봐.. 어머어머.

승희 : (윤희의 몰골이 우스운 듯 픽! 웃는다)

윤희 : (낯선 듯 그들을 보면)

오산댁 : (황국도를 툭 치며) 뭐해. 가서 말 좀 시켜봐 자기가.

황국도 : (본다.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천천히 다가선다) 아가야. 너 괜찮냐?

윤희 : (? 보면)

황국도 : 여기.. 머리 다친디 말여. 안 아프냐고?

윤희 : (고개를 가로젓는다)

황국도 : 신중히 잘 생각하고 대답을 혀. 참말로 아픈가 안 아픈가, 워디 쑤시는 데는 있는가 없는가, 이? (보면)

윤희 :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면)

황국도 : (안심과 다행의 표정으로 오산댁을 본다) 멀쩡한 거는 같은디?

오산댁 : 어디 사는 누구냐고 좀 물어봐.

황국도 : 아가. 너 집이 워디냐? 이름은? 이름은 뭐다냐?

윤희 : (빤히 본다. 보다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몰라요.

황국도 : 몰라?

오산댁 : 아니 이름을 왜 몰라? 엄마 아빠가 너 부르는 이름 있잖어 왜. 순자, 영자, 미희, 말자, 하는 이름. 그게 뭐냐구? 어?

윤희 : 모르겠는데요.

승희 : 엄마 쟤 바본 가봐. 지 이름두 모른대.

황국도 : (순간 당황. 얼른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이며) 아가. 너 이게 몇 개로 보이냐? 이?

윤희 : 두 개.

황국도 : (네 개를 펴 보이며) 이거는 몇 개?

윤희 : 네 개.

황국도 : 그럼 니 이름은. 니 이름은 뭐지?

윤희 : (본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황국도 : 살던 디두 모르겄냐? 아부지 이름은? 엄니 이름은? 기억나는 거 있으믄 암거나 얘기혀 봐. 이?

윤희 : 몰라요. 모르겠어요. 암 것두 기억이 안나요.

황국도 : (순간 털썩 주저앉으며) 어메. 휴즈가 완전히 나가 부렀네.

오산댁 : 휴즈가 나가다니..무슨 소리야?

황국도 : 머리가 완전히 깜깜 먹통이 되아분졌다 그 말여.

오산댁 : 글쎄 왜 깜깜 먹통이냐구 왜애?

황국도 : 아 이편 네야 왜긴 왜여! 트럭에다 머릴 받쳤응께 그렇지!

            머릴 다쳐서 시방 지 이름 석자도 모르고, 엄니도 모르고, 워디 살었는 지도 암 것도 기억을 못한다잖여.

오산댁 : 머..머..머, 뭐야? 기억을 못해? 그럼 뭐야. 얘가 그.. 기억상실증인가 뭔가 지금 그거 됐단 말야? 우리 트럭에 받쳐서?

황국도 : 어따 참말로 일이 아주 못쓰게 되아분 졌네. (한숨 쉬면)

오산댁 : (충격으로 턱 맥이 빠지며) 엄마야..

윤희 : (껌뻑껌뻑하며 황국도와 오산댁을 번갈아 본다. 시선에서)



2. S# 오산댁 국밥집 전경 (밤)


(인써트/짧은시간경과)



3. S# 국밥집 안.


후! 착찹 하게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내뿜는 황국도.

그 옆에서 코가 쑥 빠진 채 앉아 있는 오산댁, 따라서 한숨을 푹 내쉬면.



4. S# 방안.


윤희 앞으로 쑥 프레임-인 되는 승희 얼굴.


윤희 : (? 보면)

승희 : 야. 너 바보지? 그러니까 자기 이름도 모르지. 그렇지? 너 바보 맞지?

윤희 : 나 바보 아니야!

승희 : 그럼 니 이름 대봐? 어디 사는지 대봐?

윤희 : 기억 안나.

승희 : 것 봐 모르면서.

윤희 : 모르는 게 아니라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승희 : 모르는 거나 기억 안 나는 거나 똑같은 거야 바보야. 나두 산수시간에 기억 안 나서 문제 못 풀면,

         우리 선생님이 그건 모르는 거나 똑같다구 맨날 손바닥 때린단 말야. 바보야.

윤희 : 아냐! 나 바보 아니라니깐! (째려보면)

승희 : 이게 근데 어따 소리치구 꼬나 보구 지랄이야?

윤희 : (계속 째려보자)

승희 : 아쭈? 고개 저리 안돌려? 확 찔러버린다. (손가락 두개로 두 눈을 찌를 듯 위협하면)

윤희 : (마지못해 고개 돌리면)

승희 : 바보 같은 년.

윤희 : (시선 돌린 채 일단 참는다)

승희 :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약 올리듯) 겁쟁이. 쪼다.. (순간)

윤희 : 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승희한테 덥치는 윤희. 두 아이 함께 엉켜 방바닥에 나뒹군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얼굴을 감싸 안는 승희. “엄마! 엄마!” 소릴 지르면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들여다보던 오산댁 놀라서.


오산댁 : 어머! 야! 야!


오산댁, 얼른 방안으로 뛰어들어와 승희 위에 올라타고 있는 윤희를 확 잡아당긴다.

그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는 윤희,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고 쳐다보면.


오산댁 : 야! 너 뭐하는 짓이야 이게!

윤희 : 내가 잘못한 거 아니예요! 쟤가 먼저 나한테 욕했단 말이예요!

승희 : (울면서) 아니야! 저 년이 거짓말이야. 저게 먼저 달려들어서 꼬집었단 말야!

오산댁 : (윤희를 홱 째려보더니) 여기가 늬 집 안방이냐? 늬 집 안방이야?

            어디서 재수딱지 없는 게 걸려 들어와 남의 집을 죄다 들쑤셔 놓구 지랄이야. 지랄이!

            눈치가 없으면 코치래두 있어야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구 어디서 찍구 까불구 난리야! 어?

윤희 : (억울한 심정으로 보면)

승희 : (징징거리며) 엄마 아퍼어..

오산댁 : 아이구 너두 시끄러! 그만 울고 자빠져 자기나 해. 그러게 누가 저런 거 건드리랬어?

승희 : 저게 먼저 덤볐다니깐.

오산댁 : 뚝 그쳐! 그치구 언능 엎어져 자! (그러면서 승희 위로 이불을 덮어준다)

윤희 : (보면)

오산댁 : 재수 없는 년은 넘어져두 시궁창에 코를 박는다드니.. 어이구 지지리 복두 없는 팔자야.


일어서서 나가다가 아무래도 심통 사나운지 윤희 앞으로 와 머리를 콱! 쥐어박는다.


윤희 : 아야!

오산댁 : 아프긴 뭐가 아퍼 기집애야! 남의 집 귀한 딸래미 죄다 꼬집어 놓구선. 어이그! 어이그!

            (두어 번 더 쥐어박더니 나가버린다)


쿵! 방문이 닫히면. 이불속에 들어갔던 승희, 빠꼼히 얼굴을 내밀고 보더니 메롱! 혀를 내밀고 약 올린다.

윤희, 입을 꾹 다문 채 분해서 쳐다본다. 시선에서.



5. S# 국밥집 안.


다시 황국도 앞에 와서 털썩 앉는 오산댁.


오산댁 : 저 애 어쩔 거야. 저대루 계속 두고 보기만 할 거야? (버럭) 아, 이대로 죽치구 앉어 밤 샐 거냐구?

황국도 : 날더러 어쩌라고? 죽이라고 살리라고?

오산댁 : 죽이든 살리든 무슨 대책을 세워 얄 거 아냐. 대책을.

황국도 : 글씨. 자네가 안 그래두 시방 골패서 돌아 가시겄응께 자꾸 옆에서 신경 건들지 말드라고. 이?

            (그러면서 후.. 담배연기를 날리는데)

오산댁 :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나즉히) 그러지 말구 저 애.. 갖다 버립시다.

황국도 : (본다) 뭐?

오산댁 : 날 밝기 전에 갖다 버리자구 그냥.

황국도 : 갖다 어따 버리자고?

오산댁 : 시장 통에다. 마침 장날이잖어 오늘. 장터에서 애 잃어버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우?

            거긴 북적대는 사람들 많아서 슬그머니 갖다 버리면 아무도 의심 안 해. 그렇게 합시다. 응? 그렇게 하자구.

황국도 : 이 여편네가 돌았나. 그러다 덜미 잡히믄? 저 기집애 우리 얼굴까지 봐버렸는디 잘못했다 경찰헌티 덜미 잡히믄

            그 땐 어쩔 겨? 그 땐 자네가 책임 질겨? 어이구 난 못혀.

오산댁 : 못하면 어쩔 거야? 자기가 저 기집애 평생 멕이구 키우구 데리구 살래? 자기 그럴 자신 있어? 어?

황국도 : (그건 아니지만...)

오산댁 : 내가 시키는 대루 해 그냥. 지 이름 석자두 기억 못하는 년이 우리가 저를 트럭으로 쳤는지 받았는지 알게 뭐야.

            그냥 갖다 버립시다. 알았지? (대답 없자) 알아 들었냐구!

황국도 : (귀찮은 듯) 아우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서도 내심 거림칙한 듯 시선 돌리면)



6. S# 방안.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윤희.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안개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

불안한 듯 자기도 모르게 목에 걸린 반지를 만지작거린다.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fade-out.



7. S# 중국집 뒷골목. (아침)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멈춰서는 재혁. 자전거 뒤에 실려 있는 야채바구니를 집어 들어 안으로 들어간다.



8. S# 주방안.


음식준비로 분주한 주방 안. 그 안으로 야채바구니를 들여가는 재혁.


주방장 : 빨리 옷 갈아 입구 감자랑 양파부터 까놔. 오늘 장날이라 손님 몰린다. 빨리 준비해.

재혁 : 네.

주방장 : 그리구 옷 갈아 입구 나올 때 거 밀가루 좀 더 내와라.

재혁 : 네.


그러더니 야채바구니 속에서 병 우유를 하나 꺼내 표 안 나게 잠바 속에 감춘 뒤 나간다.



9. S# 골방안.


안으로 들어오는 재혁, 우유를 꺼내들며 들어서다가 멈칫.. 태희가 보이질 않는다.

한쪽에 깔끔하게 개어져 있는 이불과 베개. 그 위에 쪽지가 하나 올려 져 있다.

재혁, 쪽지를 들어 보면 <고맙다 장재혁. 신세 잊지 않을게. - 김태희- >

재혁, 순간 표정 굳어지며 종이를 꾸깃 접는다. 이게 아닌데.. 돌아보는 시선에서.



10. S# 주방안.


재혁, 잠바를 걸치며 급하게 주방을 지나쳐 간다.

주방 안쪽에서 재혁을 발견한 주방장.


주방장 : 어? (보면)

재혁 : (대답 없이 지나친다)

주방장 : (쫒아 나오며) 야 임마! 밀가루 가져오랬더니 어디가는거야! 야! 야아아아!!!! (보면)



11. S# 중국집 뒷골목.


밖으로 나온 재혁, 골목 안을 둘러보더니 자전거에 올라탄다. 급하게 패달을 밟고 가면.



12. S# 터미널 근처.


가게 앞으로 프레임-인 되는 태희.


태희 : 아줌마. 혹시 어제 여기서 길 잃어버린 애 못 보셨어요? 키는 이만하구요, 나이는 아홉 살이예요.

         연두색 모자달린 옷을 입었는데.. 못 보셨어요?

상인1 : 못 봤는데.

태희 : 네에.. (인사를 한 뒤 그 다음 가게 앞으로 가서 상인2에게) 저기요. 혹시 어제 여기서 길 잃어버린 애 못 보셨어요?



13. S# 터미널 근처.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재혁. 여기저기 태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14. S# 경찰서 앞. 일각.


프레임-인 되는 재혁의 자전거 바퀴.

재혁, 경찰서쪽을 살피는데 그 때 경찰서 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박귀중과 양순경.


양순경 : 너무 걱정 마십쇼. 읍내에 있는 파출소는 물론이구요, 터미널하고 역에다두 태희 양을 수배해놨으니까

            곧 좋은 연락이 있을 겁니다.

박귀중 :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어르신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양순경 : 아이구 여부가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재혁, 태희를 아직 못 찾았다는 걸 알고 자전거를 돌려 한쪽으로 프레임-아웃.



15. S# 거리.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뭔가 물어보며 걸어오는 태희. 사람들마다 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

그러다 저만치 윤희처럼 보이는 아이의 뒷모습 발견.


태희 : (놀라서) 윤희야!


얼른 뛰어가 아이를 돌이켜 보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다.

아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가버리면 태희, 힘이 빠진다. 점점 자신을 잃어 가는데

그 뒤로 지나가는 재혁의 자전거.

재혁, 무심히 지나쳤다가 멈칫.. 다시 후진해서 보면 어깨를 늘어뜨린 태희를 본다. 시선에서.



16. S# 분식점 안.


라면에 김밥을 먹고 있는 태희.

맞은편에서 그런 태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재혁.


재혁 : 왜 말도 없이 가버렸니?

태희 : 주인아저씨한테 들키면 니가 곤란해질까 봐. 그래서 잠깨자마자 그냥 나왔어.

         근데 넌 일 안 하구 어떻게 나왔어? 이렇게 시간 비우면 주인아저씨한테 혼나는 거 아냐?


재혁,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테이블위에 놓더니 태희 앞으로 쭉 민다.

태희, 멈칫해서 지갑을 보면.


재혁 : 돈만 꺼내 쓰구 다른 건 안 건드렸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봐.

태희 : 어떻게 찾아온 거야? 이 지갑 찾기 어려울 거라며? 설마 너.. 걔네들하구 싸운 거니? 싸워서 찾아온 거야? 어디 봐.

         (그러더니 멍든데 없나 재혁의 얼굴을 살피면)

재혁 : 돈으로 샀어.

태희 : 뭐?

재혁 : 내가 가진 돈 전부랑 바꿔 왔다구. 덕분에 한 대두 안 맞구 찾아왔어. (대수롭지 않은 듯 후루룩 앞에 있는 라면을 먹는다)

태희 : (멍하니 보면)

재혁 : 뭐해? 어서 먹어. 라면 불겠다. 김밥 하나 더 시켜줄까?

태희 : 이유가 뭐야?

재혁 : ?

태희 :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냐구. 그 돈.. 그렇게 얻어 맞으면서두 안내놓던 돈이잖아.

         그런 녀석들한테 주느니 차라리 하수구에 버리겠다며.

재혁 : 맞아 그랬어.

태희 : 근데 왜..

재혁 : (말 자르며) 그 지갑 없으면 안 된다며? 그 안에 들어있는 가족사진이랑 할아버지 사진..

         무슨 일이 있어두 찾아야 한다 그랬잖아 니가.

태희 : 그래서 니 전 재산을 털었단 말야?

재혁 : (본다. 보더니) 나두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계셨어. 사업 부도나면서 할아버진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구,

         아버진 빚 독촉에 못 이겨 자살하셨지. 남겨진 건.. 두 분하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었어.

         지금 나한텐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 됐지.

태희 : (보면)

재혁 : (보며) 너두.. 같은 심정일 거라구 생각했어. 그만큼 절박하고 소중한 물건이라 생각해서.. 그래서 찾아주고 싶었어.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남자는 쓸 땐 쓸 줄 알아야 멋진 사람이랬거든. (그러더니 다시 라면을 후루룩 먹는다)


태희, 두 손으로 아버지의 지갑을 꼭 쥐며 맞은편에 있는 재혁을 바라본다. 감동한 시선에서.



17. S# 거리.


분식집에서 나오는 재혁과 태희.


태희 : 잘 먹었어.

재혁 : 어디루 갈거니?

태희 : 동생 찾아야지.

재혁 : 자꾸 이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구 할아버지부터 찾는 게 어때? 내 생각엔 할아버지부터 찾는 편이 더 빠를 거 같은데.

태희 : 동생 찾는 게 먼저야. 우리 윤희 찾기 전에 아무데도 안가.

재혁 : 그러다 경찰한테 붙잡혀 보육에 끌려가면 어쩔려구. 그럼 동생 찾는 일두 할아버지두 찾는 일두 둘 다 어려워 질수 있잖아.

태희 : 알아. 그래두 동생 찾는 게 먼저야. 우리 윤희 내가 꼭 찾아낼 거야. 찾아낼 수 있어.

재혁 : 하지만..

태희 : 괜찮아. 걱정 안 해 줘두 돼.

재혁 : (보면)

태희 : (돌아서서 간다. 얼마쯤 가는데)

재혁 : (뒷모습 보다가 갑자기 뛰어와 태희를 돌이켜 세운다) 김태희.

태희 : (? 돌아보면)

재혁 : 언제든 좋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날 찾아와.

태희 : (순간 고마움의 미소.. 따뜻하게 웃어주며) 고마워. (본다. 다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간다)

재혁 : (표정 없이 본다. 의미를 알 수 있는 깊은 시선에서)



18. S# 국밥집 앞.


밖으로 나오는 윤희, 그 뒤로 황국도가 외출차림으로 따라 나온다.


윤희 : 아저씨.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황국도 : 그냥 갈 데가 쬐께 있응께. 잠자코 따라 와봐.

오산댁 : 조심해서 갖다와. 일.. 잘 처리하구. 알았지?

황국도 : 알었어.


황국도, 윤희를 번쩍 안아 트럭에 태운 뒤 운전석에 올라탄다.

윤희, 창밖으로 오산댁의 국밥집을 돌아본다. 오산댁, 윤희랑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탁!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시동 걸리고 차 출발할 때까지 국밥집 쪽을 쳐다보는 윤희.

트럭 그 자리를 떠나 멀어지면.



19. S# 시장통.


장이 들어서서 북적거리는 시장터.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윤희의 손을 잡고 걸어 오는 황국도. 괜히 뒷꼭지가 땡기는 듯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손을 잡은 윤희는 신기한 구경에 정신을 빼앗긴 표정.

그 때 한쪽에서 약장사가 원숭이를 쇼를 하는 게 보인다.

윤희, 그 쪽에 정신이 팔리자 황국도 잘됐다 싶다.


황국도 : 이야! 저 원숭이 쑈 재밌겄다. 그자?

윤희 : 네에. (그러면서 그 쪽을 쳐다본다)

황국도 : 워메. 원숭이가 참말로 별 재줄 다 피우는 고마이.


그러면서 슬금슬금 뒤로 빠진다. 힐끔 누가 보는 사람 없나 둘러보는데 갑자기.


윤희 : 아저씨!

황국도 : (깜짝 놀라서 보면)

윤희 : 아저씨 저것 좀 봐요. 원숭이가 과자도 먹어요. 와아.. (보면)

황국도 : (얼른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보며) 이? 이이. 이야.. 진짜 신기하네.

윤희 : 정말 재밌죠? 그쵸?

황국도 : 이이. 재밌다. 재밌어 죽겄다, 아주.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슬쩍 윤희 귀에 대고) 근디 아가.

            아저씨가 저 짝 가서 뭣 좀 사와야 쓰겄는디.. 너 혼자 여그서 쬐까 구경 좀 하고 있을텨?

윤희 : 나 혼자요?

황국도 : 금방 올 겨. 오 분도 안 걸릴 텐디 뭐. 저거 구경함서 기둘릴 수 있지?

윤희 : (간격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면)

황국도 : 그려. 그래야 착한 어린이지. 꼼짝 말구 기둘리구 있어라 이? 아저씨 후딱 갖다올 텐께.

윤희 : 네.


동시에 구경꾼들 와아! 하면서 웃는다.

윤희, 얼른 그 쪽으로 시선 뺏기면 황국도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누구 보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윤희, 호기심에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앞으로 들어간다.



20. S# 일각.


황급히 걸어오는 황국도, 계속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오다가 재빨리 한쪽으로 숨는다.

살며서 고개를 내밀고 살피다가 안도의 한숨.

윤희를 완전히 떨어뜨렸다는 확신에 자못 여유 있는 표정으로 유유히 한쪽으로 걸어가면.

그 반대편에서 황국도를 스쳐지나오는 태희. 조금은 지친 표정으로 가방을 맨 채 여기저기 돌아보고 있다.

군데 군데 윤희 또래의 아이들이 눈에 띌 때마다 일일히 확인하는데.

그 때 와-아! 하는 사람들의 소리.

태희, 돌아보면.



21. S# 시장통.


맨 앞에 사람들 틈에 같이 앉아 원숭이 쇼를 보고 있는 윤희. 신기한 듯 완전히 정신이 팔려서 구경하고 있다.

원경으로 프레임-인 되는 태희. 사람들이 몰려있는 쪽을 기웃거리며 혹시나 윤희가 있을까 찾아본다.

박수치며 좋아라 구경하는 윤희의 얼굴.

기웃기웃 동생을 찾아 고개를 이리 디밀고 저리 디미는 태희.

두 아이의 간격.. 점점 좁아져 오고. 몇 사람만 지나면 윤희를 발견할 수 있는 거리로 다가서는데 바로 그 때.

태희, 멈칫..한다. 반대편에서 경찰제복을 입은 순경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

당황하는 태희, 얼른 순경들을 피해 사람들 뒤로 모습을 감춘다.

순경들, 걸음을 멈추고 원숭이 쇼를 본다.

태희, 사람들 사이로 보다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난다.

와하하 터지는 구경꾼들의 웃음소리.

태희, 가면서 한번 돌아보면,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어대는 윤희의 얼굴에서.



22. S# 일각1.


구경꾼들이 몰린 자리에서 벗어나는 태희, 그 때 마침 저쪽으로 인수와 깡통패거리들이 오는 게 보인다.

지나가는 행인1을 툭 치며 걸어오는 인수. 어느새 손에 지갑이 들려져 있다.

돈만 꺼내고 지갑은 깡통에게 넘기면서 쭉 걸어오다가 멈칫.. 자기들을 보고 서 있는 태희와 마주친다.

태희, 쏘아보면.


깡통 : 어이 니 또 보네? 참, 지갑은 잘 돌려받았나?

태희 : 나쁜 자식들. 소매치기. 도둑놈!

깡통 : 떽! 가시나가 그래 험한 말 입에 달고 댕기면 몬 쓴다.

         근데.. 니 그 배달통하고 우떤 사이고? (새끼손가락 까닥거리며) 니 이거가?

인수 : (픽 웃는다)

태희 : (째려보더니 갑자기 저만치 가는 행인1을 향해) 아저씨! 아저씨이!!


사람들 돌아본다. 행인1도 돌아보면.


태희 : 소매치기예요! 소매치기! 아저씨 지갑 얘네들이 훔쳤어요!!!!

인수 : ! (순간 태희를 노려보면)

행인1 : (얼른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어? 내 지갑? (보더니 뛰어오며) 야 이눔들아! 거기서! 소매치기야!! 소매치기 잡아라!!!


순간 인수와 깡통패거리들 이런 씨.. 소리와 함께 튀는데

태희, 옆에 있던 리어카 버팀목을 발로 차버린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리어카. 그 바람에 걸려 넘어지는 인수와 깡통.

동시에 소동이 일어난다. “아이구 내 리어카!!” “소매치기 잡아라!!”등등의 고함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 버리는 그 곳.

저쪽에서 원숭이 쇼를 구경하던 사람들 일제히 이쪽을 돌아본다.

구경하던 경찰들도 소란이 일어난걸 보고 이쪽으로 뛰어온다.

경찰이 다가오는 걸 본 태희, 얼른 뒷쪽으로 빠진다. 빠지면서 돌아보면

넘어진 인수, 태희를 노려보고 있다.

태희, 쌤통이다. 씩 웃는 얼굴에서.



23. S# 일각2


사람들을 비집고 나오는 윤희, 무슨 소란인가 해서 보면 넘어진 인수와 깡통패거리들을 붙잡는 행인1.

인수와 깡통, 행인1을 뿌리치더니 경찰을 피해 후다닥 도망친다.

윤희, 문득 고개를 돌려 한쪽을 돌아보면 구경하느라 몰려든 사람 뒤로 빠져나가는 태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태희, 가면서 인수패거리들 쪽을 흘끗 돌아보는 얼굴.

윤희,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 그러나 기억 저편으로 잃어버린 얼굴이다. 알아보지 못하고..

태희 윤희를 못본 채 그대로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빤히 쳐다보는 윤희의 시선에서. dis.



24. S# 시장통 전경.


원숭이 쇼도 끝나고 약장사 자리를 접고 있다.

그 한쪽에 서 있는 윤희,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습관적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윤희의 손)

그러나 돌아올 리 없는 황국도.

윤희, 계속 포기하지 않고 황국도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dis.

저녁.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하나 둘 장사치 들고 자리를 접기 시작하고 한산해진 장터.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 쓰고 있는.

그 때 리어커를 끌고 지나가며 “비켜라 비켜!” 소리 지르는 아저씨.

윤희 벌떡 일어나 비켜서며 머리를 긁적긁적 거린다. 표정에서.



25. S# 시장통 일각. (밤)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는 윤희, 머리가 가려운지 계속 긁적거리며 두리번두리번.

얼굴은 먼지로 거뭇거뭇 얼룩이 지고, 머리는 흩어져 내리고. 영락없이 거지꼴이다.

윤희, 그렇게 걸어오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쪽을 본다.

호떡이며 순대며 떡볶이며 팔고 있는 포장마차.

그 옆으로 프레임-인 되는 윤희, 침을 꼴깍 삼키며 아이1이 먹는 걸 바라본다. 보다가.


윤희 : 아줌마 호떡 얼마예요?

아줌마 : (흘끗 보더니) 오십 원.

윤희 : (떡볶이 가리키며) 저거는요?

아줌마 : 일인분에 이백 원.

윤희 : (순대 가리키며) 이거는요?

아줌마 : 일인분에 오백 원. 줄까?

윤희 : 아뇨. (그러더니 맛있게 먹는 아이를 돌아본다. 침이 꼴깍..)

아이1 : 엄마, 쟤 거진 가봐.

아이엄마 : 쳐다보지 마.

윤희 : (아랑 곳 없이 아이 먹는 것만 뚫어져라 보는데)

아이엄마 : (윤희가 신경 쓰이는 듯) 다 먹었으면 그만 가자.

아줌마 : 아니 왜 좀 더 드시지 않구..

아이엄마 : 됐어요. (아이1을 잡아당기며) 가자 얼른. (가면)

아줌마 : 야! 너 안 사먹을 거면 저리 가. 아줌마 장사하는데 방해하지 말구.

윤희 : 그냥 쳐다보는 것두 안돼요?

아줌마 : 너 땜에 손님들이 그냥 가잖어. 빨리 절루 비켜. (그러면서 손님들이 떡볶이 먹은 그릇을 치우려는데)

윤희 : 아줌마. 그거 제가 치워드릴까요? 치워 드릴께요. 대신 호떡 하나만 주실래요? 네?

아줌마 : 뭐어? (기가 막혀 보더니) 근데 얘가 성가시게 왜 이래? 빨리 절루 안가? 자꾸 귀찮게 굴면 경찰 아저씨 부른다. 어?

윤희 : (보는데)


그 때 뒤에서 진짜로 나타나는 경찰1.


경찰1 : 아줌마. 오뎅 하나 먹읍시다.

아줌마 : 아이구 마침 잘 왔네. 저 녀석 좀 혼내줘요 순경아저씨. 아주 장사 방해 돼서 죽겠네, 그냥.

경찰1 : (윤희를 본다)

윤희 :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보면)

경찰1 : 너 캄캄해졌는데 왜 아직 집에 안 들어 가구 있어? 길 잃어버렸니?

윤희 : 아저씨가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랬어요. 잠깐 뭐 사가지구 온다구요. 꼼짝 말구 기다리랬는데 아직두 안와요.

경찰1 : 그래? 너 집이 어딘데?

윤희 : 왜요?

경찰1 : 아저씨가 데려다줄라 그러지. 집이 어디니? 너 사는 집 말야. 어딘지 알지?

윤희 :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



26. S# 오산댁의 국밥집 안.


손님도 없는 한산한 가게 안.

푹 삶은 닭고기를 그릇에 담는 오산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황국도가 승희가 앉아있는 테이블위에 놓는다.

승희, 얼른 손을 뻗어 닭다리를 잡는데.


오산댁 : (손등을 탁! 치며) 어디서! 으른두 손을 안 댔는데 쬐끄만 게.. (그러더니 닭다리를 하나 뜯어 황국도 밥그릇에 놔주며)

            먹어봐 자기야. 병아리라 그래서 사온거야. 어때 맛있지? 연하지?

황국도 : (소금 푹 찍어 먹더니 시큰둥) 연하고 마.

오산댁 : 많이 먹어 자기야.

승희 : (삐쭉거리며 쳐다보면)

오산댁 : 뭘 그렇게 삐쭉거려? (그러면서 퍽퍽한 가슴살 쪽을 떼서 승희한테 놔주며) 너두 이년아. 엄마가 이렇게 잘 쳐멕여 주면

            공부를 잘해서 보답 좀 해봐. 니가 무슨 양가집 딸래미라구 통지표마다 순 양가양가..

승희 : 엄마 닮아서 그렇지 뭐.

오산댁 : 이년 말 싸가지 좀 봐? 엄말 닮았는데 왜 공불 못해? 너 엄마가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알어?

            조용필이니 김추자니 하는 사람들 노래 죄다 한번씩 밖에 안 듣그두 다 따라 부른 사람이야 내가. 알어?

승희 : 근데 중학교엔 왜 못 들어갔어?

오산댁 : 내가 공불 못해 못 들어간 줄 알어 이년아?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거 뭐냐.. 그래 월사금.

            월사금이 낼 돈이 없어서 안 들어간 거지.

황국도 : 왕년에 떵떵거리면 살던 사람은 워디갔댜?

오산댁 : 뭐?

황국도 : 아, 자네 나 첨이 꼬실 적이 그랬잖여. 소실 적이는 열 두 칸짜리 기와집 무남독녀로 태나

            손끝에 물 하나 안 대구 곱게 컸다구. 그런 으리버리한 집에서 어째 월사금 낼 돈이 읎었을까나? 안 그냐 승희야?

승희 : 맞어. (픽 웃으면)

오산댁 : (심통 사납게 황국도를 째려보더니) 먹지 마! (황국도가 먹던 닭다리를 가져와 먹으면서) 닭고기 아무도 손대지마!

            내가 다 먹을 거야! (하면서 그릇에 있는 닭고기도 뜯어서 입에 쑤셔 넣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경찰1E : 실례합니다.

오산댁 : (입에 가득 든 채) 오늘 장사 안 해요! 끝났어요! (하다가 멈칫.. 놀라서 보면)


황국도와 승희도 멈칫.. 문 쪽을 보면 들어서는 경찰1.

순간 놀라는 황국도와 오산댁. 오산댁 너무 놀라 입 안 가득 있는 닭고기를 꿀꺽 삼킨다.


황국도 :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께서 우리 집까지?

오산댁 : (애매하게) 그러게에? 무슨 일이신가?

경찰1 : 이선우라고 이 집 아이 맞습니까?

오산댁 : 네? 선우..요?

황국도 : (선우가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오산댁과 시선 마주치는데)

승희 : 엄마! 쟤 좀 봐! 쟤 또 왔어!


소리에 오산댁과 황국도 보면 경찰1의 뒤에 서 있는 윤희.

오산댁과 황국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보면.


경찰1 : 장에서 길을 잃은 모양입니다. 집이 여기라고 해서 일단 데려왔는데..

           근데 두 분은 이 아이하곤 어떻게 되십니(까? 채 끝나기도 전에)

오산댁 : 아이구. 선우야!! 그래 맞어 너 선우. (달려들어 얼른 윤희를 안아 올리며) 아이구 이것아! 대체 어디 갔었냐?

            아저씨랑 아줌마가 얼마나 걱정 했는 줄 알어?

황국도 : (본다)

경찰1 : (? 보면)

오산댁 : 얘가요, 먼 친척 되는 사람이 집안형편 어렵다구 잠깐 맡긴 애걸랑요.

            근데 즈의 집 찾아 간다구 툭하면 나가구 툭하면 나가구.. 거기다 정신두 좀 오락가락 해서요.

황국도 : 맞습니다. 어쩔 땐 지 이름두 기억 못하구 그럽니가 쟤가. 하하하.

경찰1 : (왠지 이상하다) 네에..

오산댁 : 세상에 얼굴에 이 때 꼬장물 좀 봐아. 아이구 얼른 들어가 씻어야겠네. 씻구 얼른 밥 먹자. 아줌마가 닭고기 삶아놨거든?

            자, 경찰아저씨 안녕히 가세요오? 해야지?

윤희 : 안녕히 가세요.

오산댁 : 그럼.. (일별하고 윤희를 안은 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면)

황국도 : 이거 나랏일 하시느라 바쁘실 거인디 별 것두 아닌 일루 폐를 끼쳐 어쩐대요.

경찰1 : 아닙니다. 그럼.. (안쪽에다 대고) 선우야 아저씨 간다.

선우 : (돌아보는 순간)


오산댁 방안으로 들어가 쿵! 문을 닫는다.



27. S# 오산댁 국밥집앞. (밤)


밖으로 나오는 경찰1, 왠지 찜찜한 기분으로 돌아본 뒤 다시 가던 길을 간다.



28. S# 국밥집 안.


방문이 열리며 고개를 내미는 오산댁. 다시 쪼르르 뛰어나와 문틈으로 내다보는 황국도 옆에 바싹 붙어서며.


오산댁 : (작게) 갔어?

황국도 : 갔어갔어.

오산댁 :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구.. 간 떨려. 십년감수 했네 그냥.

황국도 : 그러게 내 뭐랬어! 경찰한테 덜미 잡힐지 모른다, 위험하다,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이젠 어쩔 껴! 경찰까지 우리 얼굴 봐 부렀는디!

오산댁 : 아우 소리 좀 치지 말어. 안 그래두 머리 밑이 저릿저릿한 게 어지러 죽겠구만.

황국도 : 어따, 환장하겄네. 환장해서 펄쩍뛰고 돌아가시겄다고오!

오산댁 : (기죽어 흘낏 보는데)

승희 : 야! 너 뭐해?


소리에 오산댁, 황국도, 돌아보면.

윤희, 오산댁이 먹던 닭다리를 맛있게 뜯어먹고 있다.

오산댁, 황국도 황당해서 윤희를 보면

윤희, 그 두 사람을 돌아보며 한입 가득 닭고기를 문 채 악의 없이 씩 웃는다. 표정에서.

(시간경과)

치우지 않은 그릇들. (닭 뼈만 남아있다)

그 옆에서 다시 멍하니 담배연기를 내뿜는 황국도. 다시 맥없이 앉아 연달아 한숨을 푹 내쉬는 오산댁. (씬3과 동일한 분위기로)



29. S# 방안.


긁적긁적.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는 윤희.

승희, 흘끗 보더니 드럽다는 표정으로 숙제하던 밥상을 한쪽으로 밀며 떨어진다.

윤희, 이번엔 목을 긁적긁적.


승희 : 야! 그만 긁어! 너 긁는 소리 땜에 숙젤 못 하겠잖아. 오늘두 숙제 못 해가면 나 내일 손바닥 열대에 토끼뜀 열 바퀴야.

         내가 맞으면 니가 책임질 거야?

윤희 : (본다)

승희 : (다시 집중하려는데)

윤희 : (긁적긁적. 그러면서 슬그머니 무슨 숙젠가 본다. 보다가) 야. 그거 답 틀렸어. 그거 오십팔이야.

승희 : 뭐?

윤희 : 이십구 더하기 이십구면 오십팔이지 어떻게 사십구니?

승희 : (자신 없다. 흘끗 보더니) 확실해? 너 틀리면 죽어. (그러더니 쓱쓱 지우며 답을 고쳐 쓰더니 슬쩍) 너 곱셈두 할 줄 알어?

윤희 : 응. 왜?

승희 : (밥상을 쓱 내밀며) 그럼 이거 풀어봐.

윤희 : (본다. 보더니 긁적이며 쓱쓱 풀기 시작한다)

승희 : (옆에서 보더니) 지 이름은 모르면서 산수는 잘하네?

윤희 : (그 말에 보며) 나 이제 이름 알어.

승희 : 뭐?

윤희 : 나 이름 있다구. 선우야. 이선우. 이제부터 선우라구 불러. 알았지?

승희 : 웃기지마. 그거 니 맘대로 지은 거잖아.

윤희 : 아니야. (그러더니 옷 속에서 실에 묶인 반지를 꺼낸다) 봐. 여기 분명히 써 있지? 이선우라구. 봐봐.

승희 : (순간 눈이 반짝해서) 와. 그거 진짜 금반지야?

윤희 : 여기 이름 써 있잖아, 이선우. 보이지?

승희 : 이쁘다. (일순 비굴해져서) 야, 나 한번만 껴보자. 응? 한번만.

윤희 : 안 돼.

승희 : 딱 한번마안. 다시는 바보라고 안 할게 응? 응?

윤희 : 안 돼애 싫어. (도로 집어넣으면)

승희 : (일순 표정 변하며) 나쁜 년! 치사빤쓰! 유치뽕이다! 흥!

윤희 : 그래? 그럼 이 숙제 니가 해.

승희 : 뭐어? 너 진짜 치사하게 나올 거야? (씩씩거리며 노려보면)

윤희 : (무시)

승희 : 야!

윤희 : (긁적긁적.. 무시)

승희 : 나 내일까지 이거 안 해가면 맞는다니깐? 진짜야. 대자루 손바닥 맞는다. 그랬어, 선생님이.

         (반응이 없자 한풀 꺽여) 진짜.. 안 해줄 거야?

윤희 : 두 가지만 약속해.

승희 : 뭐?

윤희 : 나한테 욕하지 않는다. 나한테 까불지 않는다. 두 가지만 약속하면 앞으로 계속 니 숙제 해줄 수도 있어.

승희 : (흘겨본다)

윤희 : 싫어? 싫음 관둬. (돌아서려는데)

승희 : 알았어. 약속해. 약속하면 되잖아.

윤희 : 좋아. (승리의 미소. 다시 밥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해준다)


승희, 입이 댓발은 나와 윤희를 보면

윤희, 어느새 오산댁이 부르던 뽕짝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쓱쓱 숙제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계속 머리를 긁적긁적..



30. S# 시골 성당앞 일각. (밤)


지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오다가 한쪽에 쭈그리고 앉는 태희.

춥기도 하고 배고프고. 무엇보다 윤희를 찾지 못한 허탈감에 힘이 든다.

문득 고개를 돌려 보면 교회가 보인다.



31. S# 성당안.


안으로 들어오는 태희. 혹시 혼나는 게 아닐까 싶어 한번 둘러보다가 한쪽에 있는 글씨를 본다.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태희, 잠시 그 성경글귀를 보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십자가를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아빠의 지갑을 꺼내 안에 들어있는 사진을 본다.


태희E : 아빠.. 나 아직도 윤희 못 찾았어요. 이대루 영영 못 찾으면 어떡하지? 윤희.. 지금 혼자서 많이 무서울 텐데..

           아빠. 우리 윤희 좀 찾게 아빠가 도와줘요. 응? 아빠아...


순간 눈물이 툭.. 떨어진다.

그 뒤로 조용히 프레임-인 되는 재혁 태희를 본다. 바라보는 시선에서.



32. S# 창고 일각. (밤)


인수와 깡통 패거리들, 시끄럽게 돌아오고 있다. 창고 쪽으로 쭉 걸어오는데

창고 앞에 자전거를 기대둔 채 서 있는 재혁.

깡통이 먼저 알아보고 대장을 툭툭 친다.


깡통 : 어? 대장아.

인수 : (? 해서 보면)

재혁 : (두어 걸음 걸어 나오며 인수를 본다)

인수 : 오늘 여러가지루 일진이 더럽더니..너까지 또 보는구나. 무슨 일이야?

재혁 : 할 말이 있어 왔어.

인수 : (보면)



33. S# 창고 안 일각.


깡통, 궁금한 듯 한쪽에서 빠꼼히 고개 내밀고 보면 저쪽에 떨어져 얘길 나누는 인수와 재혁의 모습.


인수 : 그래. 할 말이란 게 뭐냐?

재혁 : 너한테 부탁할게 있어.

인수 : 부탁이라.. 뭐야. 그거 들어주면 또 돈 상자라두 들고 오는 거냐? 아직두 남아있는 돈이 있었니?

재혁 : 아니. 이제 돈은 없어.

인수 : 그래? 돈이 없다면 이번엔 뭘 조건으로 내세울 건데?

재혁 : (본다. 보더니) 날 도와줘. 그럼 내가 니 뒤를 봐줄게.

인수 : (순간 어이없이 픽 웃음으로 보더니) 됐다. 그만 까불고 가라. (돌아서는데)

재혁 : 사내자식이 되서 넌 꿈도 없고 야망도 없니?

인수 : (멈칫.. 돌아보면)

재혁 : 평생 이런 시골구석에서 남의 푼돈이나 뜯어먹는 건달로 늙어 죽을 생각이냐구.

         그렇게 불쌍한 사람 등쳐먹으며 기생충처럼 사는 거..비참하구 구질구질하지 않니?

인수 : (동시에 재혁의 멱살을 확! 휘어잡으며) 이 새끼! 너 함부로 입 놀리다 죽는 수가 있어.

재혁 : (전혀 기세에 눌리지 않은 채) 건달을 하려면 제대로 해봐! 좀 더 큰 세상에서 크게 뜯어먹으란 말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 너만 날 도와준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

인수 : 너..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재혁 : (똑바로 보며) 난 크게 될 거야. 크게 되서 꼭 빚을 갚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걸 위해서라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지금보다 더 미친놈이 될 수도 있어. 영혼을 팔라면.. 팔수도 있어.

인수 : (질린 듯 보면)

재혁 : 기회는 한번뿐이야. 어떡할래?


압도당한 듯 천천히 멱살을 풀어주며 뒤로 물러서는 인수.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잠시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다시 재혁을 돌아보더니 간격을 두고.


인수 : 원하는 게 뭐야?

재혁 : 김태희.

인수 : ?

재혁 : 그 애가 날 찾아오게만 만들어. 그럼 돼.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시선으로 보면)



34. S# 교회 안.


의자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는 태희. 순간 누군가 톡톡 건드려 깨운다.

태희, 짐짓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본다. 순간 멈칫.. 태희를 둘러싸고 서 있는 깡통과 패거리들.


깡통 : 잘 잤나?

태희 : (두려운 시선으로 보면)



35. S# 창고 안.


꺄악!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나 뒹구라지는 태희. 저만치 떨어진 가방을 향해 기어가더니 꼭 끌어안으며 돌아본다.

둘러 싼 깡통과 깡패 패거들. 그 뒤로 나타나는 인수.

인수, 잠시 태희를 보더니.


인수 : 일으켜.

깡패1 : (태희를 붙잡아 일으켜 인수 앞에 댄다)

인수 : (태희를 보면) 아까 낮엔 대단하드라. 덕분에 오랜만에 달리기 연습 좀 했다.

태희 : (덜덜 떨면서도 고집스럽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이런다구 내가 늬들 무서워할 거 같애? 천만에.

         두고 봐. 다음번엔 늬들 모두 철장에 들어가게 만들어줄 테니까. 두고 봐. 내가 그렇게 하는지 안하는지. (노려보면)

인수 : (가만히 보더니) 너.. 눈이 아주 이쁘구나.

태희 : (멈칫.. 보면)

인수 : (아깝다. 손등으로 태희 턱을 쓱 문지르는데)


순간 짝! 인수의 뺨을 날리는 태희.

인수, 멈칫.. 보면.


태희 : 나한테 함부로 손대지마.

인수 : (본다. 픽 웃는가 싶더니)


짝! 태희의 뺨을 날려버리는 인수.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바닥으로 쿵 넘어진다.


인수 : 일으켜.

깡패들 : (다시 태희를 일으키면)

인수 : (다시 한 번 힘차게 태희의 뺨을 때린다)

태희 : (넘어진다)

인수 : 일으켜.

깡패들 : (다시 태희를 일으키면)

인수 : (또 때린다)


바닥에 나뒹구는 태희. 입술이 터져 피가 고인다.

잠시 고개숙인채로 있다가 천천히 고개 들어 인수를 보는 위로.


인수 : 일으켜!!



36. S# 창고전경 위로.


계속 이어지는 맞는 소리와 “일으켜!”. 그리고 이어지는 태희의 비명소리에서.



37. S# 재혁의 골방안.


어두운 방안에 혼자 앉아 있는 재혁. 차가운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다. 조용한 시선에서.



38. S# 창고 안.


바닥에 쿵! 부딪히며 넘어지는 태희. 입술이 터지고 얼굴 여기저기 피멍이 맺혀있다.

내려다보는 인수도 상당히 지친 듯 얼굴이 땀투성이다.

태희, 고집스럽게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면.


인수 : (숨을 몰아쉬며) 귀찮고 성가신 건 딱 질색이야. 날 엿 먹이겠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기집애는 더 질색이구.

태희 : (덜덜 떨리는 것을 이를 꽉 문채 누른다. 보면)


인수, 잠시 태희를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나간다. 깡패들, 조용해져서 양쪽으로 쭉 갈라진다.

태희, 밖으로 나가는 인수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시선에서.



39. S# 창고 밖.


소주병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인수. 뚜껑을 입으로 따버리더니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그 뒤로 따라 나오는 깡통.


깡통 : 대장아. 괘않나?

인수 : ...

깡통 : 대체 무신일인지 내도 좀 알자? 대장답지 않게 왜 안하던 짓을 하는 긴데? 어이? 답답타 대장아. 말 좀 해도.

인수 : 더러워.

깡통 : ?

인수 : 기분이 아주 더럽다구. 그 자식. 처음 눈빛을 볼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았어. 결국 이렇게 더럽게 엮여버리는구나.

깡통 : (두 눈을 꿈뻑 꿈뻑 거리며 보면)

인수 : (남은 소주를 끝까지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40. S# 창고 안 일각.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태희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추스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불가에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 볼일을 보고 있는 깡패들.

태희, 한쪽에 떨어진 가방과 아빠의 지갑을 챙겨 들더니 조용히 빠져나간다.



41. S# 창고 앞.


뛰어나오는 깡패1, 인수와 깡통 쪽으로 달려오더니.


깡패1 : 대장. 여자애가 도망쳤는데요. 어떡할까요? 쫒아가서 잡아올까요?

인수 : (돌아본다. 표정 없는 시선에서)



42. S# 거리 일각.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고 있는 태희. 계속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러다 다리에 걸려 쿵!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달린다. 헉헉.. 몰아쉬는 숨소리에서.



43. S# 재혁의 골방안.


여전히 어둠속에 앉아 있는 재혁.

그 때 텅텅텅! 누군가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텅텅텅텅! 텅텅텅텅!

재혁,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돌아본다. 시선에서.



44. S# 중국집 앞.


텅텅텅! 문을 두드리는 태희, 절박하고 간절하게.


태희 : 문 좀 열어.. 제발 문 좀 열어줘.. 장재혁.. 문 좀 열어줘 제바알.. (그러면서 계속 뒤를 살피고 돌아본다. 계속 두드리며)

         제발 문 좀 열어 달라구. 문 좀... (그러다 흐느끼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재혁.

태희, 놀라서 본다. 보다가 그대로 와락 재혁에게 안기며.


태희 : 나 좀 숨겨줘.. 그 애들이 쫒아와. 날 죽일지도 몰라. 나 좀 숨겨줘. 응? 나 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르르 주저앉는다)

재혁 : (얼른 태희를 부축하며) 태희야.

태희 : (재혁를 꼭 붙잡은 채) 날 좀.. 어떻게 해줘.. (흐느낀다)

재혁 : (본다. 보다가 말없이 안아준다)


재혁, 태희를 안은 채 고개 들어 저쪽을 보면

건너편 건물 모퉁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인수, 재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돌아서서 간다. 뒷모습 사라지면.


재혁 : 됐어. 이젠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표정 없이 다독이는 시선위로)

E 빠-앙! (차 경적소리)



45. S# 도로. (새벽)


달리는 트럭. 짐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재혁과 태희.

태희, 입술이 터지고 여기저기 피멍이 든 얼굴로 재혁에게 기대어 잠이 들어있다.

추운 듯 재혁에게 파고들면 재혁, 그런 태희를 내려다본다. 왠지 안 된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준 뒤 두 팔로 꼭 안아준다.

두 아이의 모습.. 트럭과 함께 멀어진다. 부감에서.



46. S# 김현자의 빌라 전경. (아침)



47. S# 빌라 안.


김현자, 이제 막 잠에서 깬 차림으로 방에서 나오며.


김현자 :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 (부엌 쪽에서 뛰어나오며) 네.

김현자 : 여기 따뜻한 우유한잔.

아줌마 : 네. (안으로 들어간다)


김현자 나른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으며 신문을 펼쳐드는 사이 우유를 따라가지고 나오는 아줌마.


김현자 : (받아 마시면) 골프연습장 갈 거니까 김기사 준비하라 일러요.

아줌마 : 김기사 지금 서준이 데리러 갔는데요.

김현자 : 서준이? 벌써 무슨?

아줌마 : 오늘 토요일이예요, 사모님.

김현자 : (그런가? 하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아줌마 : 아이구. 마침 오는 모양이네요.

김현자 : (돌아보면)


밖에서 김기사와 함께 들어오는 서준.

서준, 엄마를 흘끗 보더니 그대로 자기 방 쪽으로 향한다.


김현자 : 얘! 엄마보고 인사도 안하니 너는?

서준 : 다녀왔습니다. (건성으로 인사하면)

김현자 : 인사가 그게 뭐야 인사가? 뻐꾸기 시계마냥 건성으루 고개만 꾸뻑꾸뻑.

            니가 그렇게 예의 없게 굴면 사람들이 다 엄마만 손가락질 해. 알아?

서준 : (무시.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면)

김현자 : 아우 지겨워. (지겨운 것도 고상하게) 내가 돌았어. 감당도 못할 애를 왜 맡는다구 우겼나 몰라.

            그냥 즈이 아버지가 키운다 그럴 때 그러마 할 걸. 아우아우.. (골치야)

E 그 때 울리는 전화벨.

김현자 : (한숨과 함께 가장 고상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네 청담동입니다. 아, 진실장님.

            (우유를 마시다 말고 멈칫) 네? 아버지가요?



48. S# 회사 로비.


안으로 들어서는 김현자. 정장차림에 모자까지, 한껏 멋을 낸 모습으로 들어선다.

경비들 현자의 모습을 알아보고 일제히 인사하면 그 가운데로 쭉 걸어온다.



49. S# 회장실 안.


책상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김필중. 안으로 들어서는 진실장.


진실장 : 회장님. 따님 오셨습니다.

김필중 : 들어오라구 해.

진실장 : (한쪽으로 비켜서면)

현자 : (최대한 우아한 모습으로 들어서며 반갑게) 아버지 저 왔어요.

         웬일인가, 무슨 일인가 오면서 내내 궁금해 죽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 웬만해선 저 회사로 부르시는 일 없잖아요.

김필중 : (보며) 쯧쯔쯔.. 옷꼴하구는.

현자 : 왜요? 맘에 안 드세요? 젤 화사하고 예쁜 걸로 골라 입었는데. 봄이잖아요.

김필중 : 니 오래비 장례치룬지 일주일도 안 지났어. 아무리 남의 이목 상관없이 사는 애라지만

            그래두 오래비야. 지킬 격식은 지켜야지.

현자 :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이혼한 뒤로 내내 아버지한테 찬밥신세였잖아요 저. 그런데 갑자기 찾으신다니 너무 들떴나 봐요.

김필중 : 앉아라.

현자 : (한쪽에 앉으며)

김필중 : (다가와 소파에 앉으며) 서준인.

현자 : 여전해요. 여전히 말 안듣구 저 무시하구. 그렇잖아두 주말에 서준이랑 평창동 들릴려구 했는데..

김필중 : (말 자르며) 들릴 필요 없다. 아예 들어와 지내.

현자 : (놀란다. 보면)

김필중 : 곧 현호 애들이 들어와 살게 될 거야. 할애비 혼자보단 고모라도 옆에 있어 주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싶을 것 같다.

현자 : 오빠.. 애들이요?

김필중 : 그래. 자매들이란다.

현자 : 아버지가 그 애들을 직접 맡아 키우신다 구요? 지금 그런 말씀이세요?

김필중 : 그 애들한텐 나 뿐이니 그럴 수밖에.

현자 : 괜찮으시겠어요?

김필중 : 괜찮냐니. 무슨 뜻이야?

현자 : 아버진 애들 싫어하시잖아요. 더구나 오빠랑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애들인데..

         (떠보듯) 보실 때마다 생각 안 나시겠어요?

김필중 : 누구하구 사이에 태어났건 내 핏줄이야. 부모를 잃었으니 할애비가 맡아 키우는 게 당연하지.

            너두 여러 소리 말구 이번 주부터 들어와 살아.

현자 : 하지만 아버지..

김필중 : 내 얘긴 끝났다. (일어서면)

현자 : (본다. 조금은 못마땅한 시선에서)



50. S# 복도.


걸어 나오는 현자와 따라 나오는 진상만.

진상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면.


현자 : (볼멘소리로) 아버지 노망나셨어요?

진상만 : (? 본다)

현자 : 날더러 평창동으로 들어오라네요. 내 목소리만 들어두 두통 생긴다는 양반이 오빠 애들 온다구 날 들어와 살라니..

         (콧 웃음) 이젠 영낙없이 철장 없는 감옥신세네.

진상만 :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현자 :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진상만 : 함께 살면 답답하고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회장님 눈에 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겁니다.

현자 : 진실장, 우리 아버지 몰라요? 한번 가위표 친 사람은 영원한 가위표예요.

         영화배우하구 스캔들에, 동거, 거기다 이혼까지 난 자그만치 가위표가 세 개예요. 알아요?

진상만 : 서준이가 있잖습니까.

현자 : (그 말에 보면)

진상만 : 서준이의 장래를 염두에 두신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현자 : (그 말에 진상만을 빤히 보더니)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진실장은 과연 누구편일까.

진상만 : 저야 물론 영원히 회장님편입니다. 회장님을 위해서 존재하니까요.

현자 : (야유가 섞인 미소로 보면)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진상만 :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그럼 안녕히 가십쇼. (목례하면)

현자 : (도도히 걸어 들어가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진상만, 고개 들어 본다. 시선에서.



51. S# 회장실 안.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김필중, 잠시 손을 놓고 뭔가 생각하더니 버튼을 누른다.


여비서F : 네 회장님.

김필중 : 박기사한테선 아무 연락 없었나?

여비서F : 아뇨. 없었습니다. 연결 시켜드릴까요 회장님?

김필중 : 아니야. 됐어. (천천히 의자에 기대더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구만. (상념에 빠지는 표정에서)



52. S# 지하철 역.


수많은 인파들이 물밀듯이 오가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재혁, 가판대에서 일간지를 뒤적이고 있다. 이 신문 저 신문의 사회경제면을 뒤적이다가 하나를 고른다.

자기가 원하는 걸 확인한 표정에서.



53. S# 공중전화부스.


재혁 : 거기 제하물산이죠? 본사 위치 좀 알고 싶은데요. (신문지위에 받아 적기 시작한다)



54. S# 지하철역 일각.


피곤하고 지친 태희, 몸 상태가 안 좋은 듯.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멍한 시선을 두는데.

그 때 태희의 시선 앞으로 프레임-인 되는 신문기사. 사회면에 김필중이 누군가와 악수하는 모습이 나와 있다.


재혁 : 이것 봐. 니 할아버지 맞지?

태희 : (물끄러미 본다)

재혁 : (지갑속의 사진과 신문의 사진을 비교해보며) 잘 봐.

태희 : 난.. 잘 모르겠어.

재혁 : 틀림없어. 난 딱 알겠는데 뭐. 힘내. 이제 금방 할아버질 만날 수 있어.

태희 : (재혁을 본다)


빠-앙. 지하철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데서.



55. S# 회사 앞.


커다란 빌딩건물에서 틸-다운 하면 그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태희와 재혁.


재혁 : 들어가자. (들어가려는데)

태희 : (주춤한다)

재혁 : (돌아본다) 왜 그래?

태희 : 아무래도 잘못 안 거 같애. 할아버지가 이렇게 큰 빌딩 회장님 일리 없어. 우리 아버지도 한 번도 그런 말 해준 적 없었어.

재혁 : 만나보면 알겠지. 들어가자.

태희 : (여전히 그대로 서 있으면)

재혁 : 걱정 마. 내가 옆에 있잖아.


그러더니 태희의 손을 꼭 잡아준다.

태희, 보면 재혁 태희를 이끌어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다.



56. S# 회사 로비.


태희의 손을 잡은 채 안으로 들어서는 재혁.

태희, 왠지 몸이 덜덜 떨려오고 있다.

그 때 그 초라한 행색의 두 아이를 보고 앞을 가로막는 경비.


경비 : 늬들 뭐야?

재혁 : (본다. 당당하게) 회장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요.

경비 : 뭐?

재혁 : 김필중 회장님을 만나러 왔다구요. 그렇게 전해주시겠어요?

경비 : (순간 어이없는 웃음으로) 회장님은 아주 바쁘신 분이라 너희 같은 애들은 만나 주실 수가 없어.

         그러니까 조용히 나가라. 알았지?

재혁 : 회장실로 연락하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하실 거예요.

경비 : (귀찮아진다) 근데 이 녀석이. 너 혼나구 싶어? 어서 나가라니까!


재혁, 경비를 잠시 노려보더니 그대로 태희의 손을 잡고 경비를 지나쳐 간다.

순간 경비, 거칠게 재혁을 저지하며.


경비 : 이 녀석이 돌았나? 너 지금 어딜 들어가는 거야? 너 말루 했더니 안 되겠구나. 어?

         (그러더니 다른 경비들을 향해) 어이! 이 녀석들 끌어내.

재혁 : (돌아본다)

태희 : (정신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보면)


일각.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김필중과 진상만이 내려선다. 그 뒤로 수행원들 서넛이 뒤를 따른다.

김필중 일행, 로비를 가로질러 출구 쪽으로 가는데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재혁과 태희를 끌어내려는 경비들과 반항하는 재혁의 몸싸움.

출구 쪽으로 향하던 김필중, 멈칫..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진상만과 수행원들 같이 돌아보더니.


진상만 : 경비들이 알아서 처리할겁니다. 그만 가시죠, 회장님. 이장관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김필중 : (본다. 그대로 돌아서서 출구 쪽으로 다시 향한다)

재혁 : 이거 놔! 노란 말야! (뿌리친다)


그 중에 경비하나가 거칠게 태희의 뒷덜미를 끌어당기자 태희, 휘청하면서 넘어진다.


재혁 : 태희야! (얼른 넘어진 태희를 부축하면)


출구 쪽으로 향하던 김필중, 다시 멈칫..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진상만과 수행원들 같이 돌아보면.

재혁, 태희를 부축하며.


재혁 : 태희야 괜찮니?

태희 : 나.. 지금 머리가 너무 아퍼.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줘.

재혁 : (그런 태희를 본다. 보더니 경비들을 올려다보며 버럭) 당신들! 빨리 가서 회장실에 전해! 김태희가 왔다구!

         회장님 손녀딸이 왔다구 전하란 말야!!

경비 : 아 뭣들하구 있어! 빨리 끌어내!!


경비들, 거칠게 재혁과 태희를 끌어내려는데.


김필중 : 멈춰!


일갈에 일순 모든 동작이 멈춰진 상태로 모두의 시선 김필중을 향한다.

재혁, 숨을 몰아쉬며 김필중을 돌아본다.

김필중, 천천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서면 태희,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최대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다 조용해지자 천천히 팔을 내리며 얼굴을 든다. 헝클어진 머리, 상처로 가득한 얼굴, 경계심으로 가득한 시선..

김필중,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본다.

태희, 천천히 일어서며 김필중을 보면.


김필중 : 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니가 태희냐?

태희 : (멍하니 보면)


재혁 태희 웃옷에서 현호의 지갑을 꺼내 사진을 펼쳐 김필중 앞에 내민다.

김필중, 받아서 본다. 김필중과 현호가 같이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김필중, 그 사진을 내려다보더니 얼핏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손녀딸을 보면.

태희, 표정 없이 할아버지를 보는 얼굴에서 스틸. <3부 끝>























첨부파일 유리구두3.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