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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 07 - 갈림길 (上)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8.11.18|조회수382 목록 댓글 0

[유리구두] 07 - 갈림길 (上)











1. S# 제하그룹 로비.


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선우. 마음 급하게 원서 접수처로 간다.

다가서면서 가방을 열고 원서를 찾다가 멈칫.. 가방 안에 있어야 할 입사원서가 없다.


선우 : 어? 어디 갔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옷 안이며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멈칫..)


flash-back> 아까 소매치기랑 부딪히면서 넘어지는 장면.

선우, 사색이 된 얼굴로 돌아본다. 그러더니 얼른 접수원 앞으로 다가가서.


선우 : 마감이 몇 시 까지죠?

접수원 : 여섯시까집니다. (시계 보며) 삼십분 남았네요. 접수하실 겁니까?

선우 : 네. 접수할거예요. 접수할 건데요, 저기.. 몇 십 분만 더 기다려주실 수 없을까요?

         오는 길에 소매치기랑 부딪혔는데.. 그 때 서류를 떨어뜨렸나 봐요. 그거 찾아올 때 까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금방 찾아가지고 올께요. 네? (간절하게 보면)

접수원 : (무표정하게) 접수마감은 여섯시까집니다.

선우 : (본다. 절박한 시선에서)



2. S# 현관앞.


멈춰서는 차. 바퀴에서 틸-업하면 재혁, 내려선다. 손에 들고 있는 선우의 입사원서 봉투.

재혁, 로비로 걸어 들어간다.



3. S# 로비 안.


입사원서를 접수하는 창구, 서서히 철수를 시작하는 분위기.

두 세 사람의 지원자들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접수하는 뒤로 들어서는 재혁, 접수창구 쪽을 본다. 선우가 없다.

로비 안을 휘 둘러본다. 역시 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선우의 입사원서를 내려다보는 재혁의 얼굴. 어쩐다..? 쳐다보는 시선에서.



4. S# 거리일각. (6부에서 소매치기를 잡다 넘어졌던 바로 그 장소)


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선우. 그만 갑자기 나오는 차 때문에 넘어질 뻔한다.

겨우 균형을 잡고 다시 달려와 소매치기와 넘어졌던 바로 그 앞에서 멈춰서는 자전거.

선우, 자전거를 세워두고 여기저기 둘러본다. 혹시나 싶어 땅에 고개를 박고 차 밑까지 샅샅히 뒤져보지만

떨어진 입사원서는 보이지 않고. 그 뒤로 보이는 시계탑의 시계바늘은 점점 6시를 향해가고 있다.

점점 절망어린 표정으로 돌아보는 시선에서. 디졸브.



5. S# 제하그룹 전경. (밤)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나타나는 선우. 지친 표정으로 빌딩을 보면 현관문 앞으로 셔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선우 온통 땀투성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푹 꺼지는 한숨. 아쉬움으로 내려지는 셔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재혁 : 늦었군요.

선우 : (멈칫.. 돌아본다)


선우 옆으로 프레임-인 되는 재혁. 들고 있던 입사원서봉투를 내민다.


선우 : (멈칫.. 이게 왜? 하는 표정으로 재혁을 보면)

재혁 : 아까 소매치기랑 부딪힐 때 떨어진 거 같아서..그래서 주워왔어요.

선우 : (천천히 받아들면)

재혁 : 내내 기다려도 안 나타나서 포기한줄 알았어요. 대신 접수해줄까 했었는데.. 본인이 아니면 안 되다 그러더군요.

선우 : (글썽.. 가슴이 미어져 원서봉투를 내려다본다)

재혁 : (본다. 별 감정 없이 돌아서는데)

선우 : (순간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재혁 : (? 돌아보면)

선우 : (눈물이 글썽거리는 얼굴로 헤.. 웃더니) 이렇게 일부러 찾아 다주시구.. 기다려까지 주시구..

         보답으루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사 드려야는데.. 어쩌죠? 보시다시피 방금 취직자릴 잃었거든요.

재혁 : (본다. 보더니) 괜찮아요?

선우 : 그럼요. 괜찮아요. 뭐.. 어차피 시간 맞춰 접수했어두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을 거예요.

         야간대학 출신으론 어림두 없는 데니까..

재혁 : (보면)

선우 : 그래두.. 조금은 희망을 걸구 있었나 봐요.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혹시 나한테도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구요.

         근데 입사원서두 못 내게 됐네요. (슬쩍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다시 헤.. 웃음.) 주제파악하라구 하나님이 벌주신 거죠 뭐.

재혁 : (보면)

선우 : 어쨌든 고맙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꾸뻑하더니 돌아선다. 돌아서는데)

재혁 : 왜죠?

선우 : 네?

재혁 : 왜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거냐구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선우 : (본다. 보더니) 제 꿈이니까요.

재혁 : ...! (꿈? 보면)


씁쓸한 웃음을 남기고 돌아서는 선우. 얼마쯤 가다가 문득 휴지통 옆을 지나면서 잠시 멈춰 선다.

자신의 입사원서를 내려다보며 아쉬운 한숨을 내쉬는.. 그러더니 원서를 휴지통에 버린다.

버리고 자전거에 올라탄 뒤 멀어지는 선우.

왠지 쉽게 눈길이 안 떨어져 바라보던 재혁, 입사원서가 버려진 휴지통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보는데서.



6. S# 국밥집 근처 일각. N


모퉁이에서 빠꼼히 나오는 철웅의 얼굴. 국밥집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

문이 열린 국밥집 안으로 계산대에 앉아있는 오산댁.

그 때 쨍그랑! 뭔가 들러 엎는 소리. 철웅, 멈칫해서 보면.



7. S# 국밥집안. N


쟁반 채 들러 엎은 국밥그릇. 그 앞에서 발등을 덴 듯 호들갑을 떠는 승희, 팔짝팔짝 뛰면서.


승희 : 앗 뜨거뜨거..! 내 발등! 어우 내 발등 다 뎄어! 어떡해 엄마!!

오산댁 : 아이구 저 방정. 아이구 저 호들갑. 그러게 조심해서 날러야지이, 조심해서!

승희 : 그러니까 나한테 이런 거 시키지 말라구. 난 근본적으루 국밥 나르는 체질이 아니란 말야!

오산댁 : 이년아! 누군 태날 때부터 국밥체질이라 평생 이 장사 해 먹구 사는 줄 알어?

            먹구 살래면 어쩔 거야. 국밥 아니라 떡밥이래두 날라야지.

승희 : 엄마. 난 지금 실연 중이라구. 실연의 상처 때문에 정신 못 차리게 슬프단 말야.

         근데 엄마까지 날 이렇게 꼭 비참하게 만들어야겠어?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냐구!

오산댁 : 꼴값 떤다. 꼴값 떨어. 이년아. 실연당한 것두 자랑이냐? 남자 뺏긴 게 자랑이야?

            오죽 못났으면 선우 같은 년한테 남잘 다 뺏길까.

승희 : 엄마! 지금 말 다했어? (노려보면)

오산댁 : (비아냥) 어이구 겁나라. 잘하면 이젠 엄마두 치겄다?

승희 : (분하다) 두고 봐. 선우 기집애 절대 그냥 안 둬. 내가 당한 거 두 배, 세 배로 갚아줄 거야.

         철웅 오빠도 다시 찾아올 거야! 내가 못할 거 같아?

오산댁 : 됐어. 입 다물구 가서 빗자루나 가져와. 언능!

승희 : (흘낏 보더니 홱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오산댁 : 그나저나 선우 이 기집애는 왜 아직 안 들어와? 이거 아주 나간 거 아냐? 어?

            (하면서 왠지 걱정스럽게 바깥쪽을 보는데)


안쪽에서 또 들러 엎는 소리. 와장창!


오산댁 : 승희야!! (소리 지르는데서)



8. S# 모퉁이. N


국밥집 쪽을 바라보던 철웅, 나즉히 한숨.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돌아선다. 프레임-아웃되면.



9. S# 의상실 앞. N


건들건들 걸어오는 철웅. 흥얼흥얼 노래에 갖은 폼 다 잡으며 걸어오는데

저만치 의상실 앞에 자전거를 세운 채 의상실 쪽을 바라보는 선우.


철웅 : 어? 이선우!

선우 : (? 돌아본다)

철웅 : (반갑게 씩 웃는데)

선우 : (모르는 사람처럼 시선을 돌리더니 자전거를 끌고 걸음을 옮긴다)

철웅 : (? 보면)



10. S# 시장통 길.


앞만 보며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는 선우. 그 옆으로 프레임-인 되며 보조를 맞추며 걷는 철웅.


철웅 : 어디 갔다 오냐? 아까부터 기다렸잖아.

선우 : (무시. 계속 쭉 걸어오면)

철웅 : 저녁은?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선우 : 배 안고파.

철웅 : 그럼 커피마실까?

선우 : 커피 싫어해.

철웅 : (? 보더니) 그럼 계속 걷지 뭐.

선우 :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더니) 그냥 가줄래? 나 피곤해.

철웅 : 내가 집까지 태워다줄까?

선우 : 됐어. 그냥 가라구.

철웅 : 너 오늘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었구나.

선우 : 몰라두 돼. (가려는데)

철웅 : (자전거 잡으며) 말해봐. 무슨 일인데?

선우 : (본다. 빤히 보더니) 너. 귀찮게 왜 자꾸 이래? 통성명 한번 한 걸루 뭔가 단단히 착각하나본데.

         헛 다리 짚지 마. 나 너한테 관심 한 개두 없는 사람이야. 알아?

철웅 : 상관없어. 그 관심 내 쪽에서 많으니까.

선우 : 부담스러워. 거절할래. (그러더니 다시 자전거 끌고 이동하는 선우)

철웅 : (따라오며) 피곤하다며. 천천히 걸어.

선우 : 빨리 걷든 천천히 걷든 내 자유야. 참견하지 마.

철웅 : 참견 아니야. 걱정하는 거야.

선우 : (다시 멈춰 서서 홱 돌아보더니) 글쎄 니가 내 걱정을 왜 하냐구! 니가 나한테 뭔데? 아무것도 아니잖아.

         근데 주제넘게 내 걱정은 왜 해? 니가 날 그렇게 잘 알아? 대체! 뭘! 얼마나 아는데!

철웅 : (멀뚱하니 보다가) 얼굴 알구 이름 알구.. 그럼 된 거 아냐?

선우 : 뭐? (어이없다)

철웅 :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데 느낌만 있으면 됐지 뭘 더 꼬치꼬치 알아야 하는데? 얼굴말구 이름말구.. 뭐가 더 필요한데?

선우 : (뭔가 말하려는데)

철웅 : 그냥 니가 좋아. 왜 좋아졌는지, 뭣 땜에 좋아하는지 그런 건 묻지 마. 쟁반으로 얻어맞을 때 머리가 돌았나 부지 뭐.

         암튼 나도 몰라. 그냥 좋아진 거야.

선우 : 박철웅.

철웅 : 누굴, 이렇게, 갑자기..그리고 한꺼번에 좋아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꿈도 안 꿨던 일이야. 근데 내가 지금 그래.

         미친놈처럼 너만 생각나구 죽고 싶도록 니가 보구 싶어. 누굴 좋아하는 게 이런 건 줄.. 나도 처음 알았어.

선우 : (본다. 잠시 멍하게 보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고) 나는 너 같은 건달자식은 딱 질색이야. 보기만 해두 걷어 차주고 싶다구.

철웅 : 좋아지게 될 거야. 괜찮은 놈이니까.

선우 : 꿈 깨. 그런 일 없어.

철웅 : 좋아하게 만들 자신 있어.

선우 : 상대를 잘못 짚었다구 글쎄. 널 좋아하는 건 우승희지 내가 아니야.

철웅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야. 그럼 얘긴 끝난 거 아냐?

선우 : 그럼 우리 얘기두 끝난 거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니가 아니니까. 그렇지? (일점을 찍듯 말로 찍어 누른 뒤 보면)

철웅 : (멀뚱멀뚱.. 말이 그렇게 되나? 생각하는데)

선우 : (미치겠다. 그대로 철웅을 남겨두고 홱! 가버리면)

철웅 : (어? 해서 보더니) 야! 그냥 가면 어떡해! 나 아직 대답 안했어! 야! 이선우!!

선우 : (들은 척도 안하고 가면)

철웅 : (계속 큰소리로) 그래 그럼. 오늘은 발 닦구 푹 자라! 낼 다시 얘기하자! 어?

선우 : (쭉 걸어오면서)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혼자 속으로 뇌이며 프레임-아웃 되면)


웃는 얼굴로 끝가지 선우의 뒷모습을 본다. 시선에서.



11. S# 국밥집 안. N


드르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선우.

오산댁, 한쪽에 앉아서 흘겨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황국도가 스포츠 신문을 보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황국도 : 선우 왔냐? 워째 이렇게 늦은 겨? 이?

오산댁 : 자알 헌다. 자알 해.

선우 : (보면)

오산댁 : 남한테 가게 맡겨 놓구 나간지가 언젠데 이제야 꾸물꾸물 기어 들어오는 거야 너?

            니가 지금 정신이 있는 년이야 없는 년이야?

황국도 : 그만혀. 들어 왔응께 되았어. (선우 보며 친절하게) 아야 저녁은 챙겨 먹었다냐?

오산댁 : 내쫒아두 시원찮을 판에 지금 저녁 챙기게 생겼어?

황국도 : (어물쩡.. 입을 다물면)

선우 : 죄송해요 아줌마. 아줌마가 너무 늦게 오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오산댁 : 뭐가 어째? 어쩔 수가 없어?

선우 : ...

오산댁 : 그래. 내가 몸이 안 좋아 뜨거운데다 좀 지지느라구 늦었다. 그렇다구 그래, 고샐 못 참아 가겔 넘한테 맡기구 토껴?

            이년아. 그깟 입사원서 하나 내러가는데 이 난리면 취직하는 날에는 아예 들러 엎구 나가겄다?

선우 : 걱정 마세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오산댁 : 뭐?

선우 : 입사원서 못 냈어요. 그러니까 그만 하시라 구요.

오산댁 : (순간 표정 바뀌며 본다)

황국도 : 아니 왜애? 워째 뭇 냈는디?

선우 : 그냥.. 그냥 그렇게 됐어요. 들어가 볼께요. (그대로 주방 쪽으로 들어가면)

오산댁 : 글쎄 그럴 거면서 멀쩡헌 가겐 왜 비우구 돌아 다니냐구! 왜!

            그 시간에 일을 했어봐. 대체 오늘 하루 손해가 얼마야 손해가!

황국도 : 어따! 거 자박지 깨지는 소리 좀 그만혀! 귀 따거 죽겄네!

오산댁 : (입 다물고 흘끗 보면)

황국도 : (신문 펴들며 선우 들어간 쪽을 슬그머니 훔쳐본다)

오산댁 : (그런 황국도를 ?해서 본다)



12. S# 주방안. N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서는 선우, 동시에 얼굴에 와서 탁! 부딪히며 떨어지는 고무장갑.

선우, 멈칫.. 고개 들어 보면.


승희 : 어디서 무슨 짓 하다 들어오는 거야 너! 너 또 철웅 오빠 만났지? 그렇지? 만나서 뭐했니? 또 꼬리쳤니?

선우 : (무시. 떨어진 고무장갑 주워들고 설겆이대 앞으로 간다)

승희 : 니 주제에 감히 누굴 넘봐? 넘본다구 철웅 오빠가 너한테 넘어갈 거 같애?

선우 : (설겆이 시작하며) 나 오늘 너랑 말싸움 할 기운 없어. 안 도와줄 거면 올라가. 가서 잠을 자든가 만화책을 보든가.

승희 : 너 땜에 하루 종일 나만 죽도록 고생했단 말야! 국밥 나르구, 설겆이하구, 거기다 뜨거운 국물에 발등까지 뎄어!

선우 : 그런 걸루 안 죽어. 걱정 마. 아프면 된장 갖다 발러. 그럼 괜찮아지니까.

승희 : (순간 바가지 물을 선우한테 확! 끼얹어버린다)

선우 : ! (멈칫.. 완전히 젖은 채로 돌아보면)

승희 : 오늘 하루 종일 나 고생시킨 벌이야.


그러더니 돌아서서 나간다. 나다가 다시 돌아와 선반 안에 있던 선우의 유리병을 꺼내 바닥에 탁! 깨드린다.


선우 : !! (놀라서 보면)

승희 : 이건 철웅 오빠한테 꼬리친 벌이구.

선우 : (노려보면)

승희 : (다가와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경고해 두겠는데. 좋은 말루 할 때 철웅 오빠 도로 제자리에 돌려놔.

         철웅 오빠 내꺼야. 내가 먼저 찍었어. 이대루 너한테 안 뺏겨. 알아?

선우 : 억지 부리지 마 우승희. 나.. 너한테서 뺏은 거 아무것도 없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어.

승희 : 뺏은 게 없어? 단 한 번도 없다구? 정말 그럴까?

선우 : (보면)

승희 : 하긴. 넌 항상 그래왔지. 착한 척, 피해자인척, 못 가진 척, 불쌍한 척... 그래서 난 항상 너만 보면 토할 것같이 메스꺼워.

         니가 너무 가증스러워 비위가 상한단 말야. 알아?

선우 : (기막혀 보면)

승희 : 조심해 너. 함부로 까불다 정말 다치는 수가 있어. (살벌한 시선으로 훑더니 쓱 나가버린다)


선우, 허탈한 표정으로 보다가 깨진 유리병과 동전을 내려다본다.

천천히 그 앞에 구부려 앉아 동전을 줍는 선우. 그러다 기운 빠진 듯 한쪽에 털썩 주저앉는다. 너무 힘들다. 울고 싶다..

반지를 꺼내 쳐다보는 선우.


선우 : 이상하지? 안 좋은 일은 왜 꼭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순간 글썽해지는 눈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재혁E : 동생 이름이 윤희라 그랬나?



13. S# 고급 노바다야끼. N


태희 : (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응. 윤희..

재혁 : 그 뒤로 계속 아무 진전 없는 거니?

태희 : 없어. 찾았다 그래서 가보면 딴 사람이구.. 찾았다 그래서 가보면 돈 노리구 사기 치는 사람이구..

         이젠 윤희 찾았단 전화가 오면 의심부터 돼. 이번엔 또 무슨 거짓말일까 하구..

재혁 : (말없이 빈 잔을 채워주면)

태희 : (잠시 재혁을 응시하다가) 너.. 그거 모르지? 니가 옆에 있어줘서 내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의지 되구 마음 든든한 지. 모르지?

재혁 : (짐짓 웃음. 일부러) 글쎄. 모르겠는데.

태희 : 그래. 모를 줄 알았어. 넌 좀.. 무딘 편이니까.

재혁 : (웃는다)

태희 : (웃고) 참.. 이번 주말에 집에 안 올래? 할아버지 생신이신데 조촐하게 가족들끼리 식사하기루 했어. 안 올래?

재혁 : 회장님이 나도 오라시니?

태희 : 아니. 할아버지가 아니구 내가 초대하는 거야.

재혁 : (그럼 그렇지.) 안 가는 게 좋겠다.

태희 : 왜?

재혁 : 그러는 게 좋아.

태희 : (본다. 보더니) 할아버지하구 너.. 둘 다 좀 이상해.

재혁 : 뭐가?

태희 : 할아버진 아직까지 니 얘긴 한 마디두 없으셔. 너 불러들여 일까지 맡기셨으면서.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피하시는 거 같어.

         근데 너두 그래. 내가 할아버지 얘기만 하면 불편해 하잖아. 왜 그런 거야? 할아버지하구 무슨 일 있었니?

재혁 : (잔 내려놓으며) 그만 가자. 늦었어.

태희 : 말해. 말 할 때까지 안 일어날 거야. 할아버지하구 무슨 일이야 너?

재혁 : 회장님하구는 아무 일 없어. 니가 문제지.

태희 : 내가? (의외다) 내가 왜?

재혁 : (본다. 잠시 태희를 응시하더니) 너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여전히 솔직하고 총명하구.. 그리고 예뻐.

         누가 봐도 탐나는 여자야.

태희 : (어이없이 웃으며) 너 취했니?

재혁 : 술 몇 잔에 헛소리 하는 바보 아니야 나.

태희 : (웃음) 알았어. 칭찬으로 들을게. 계속해 봐.

재혁 : 회장님은 태희 널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셔. 사실은.. 그래서 더 겁내고 계신거야.

         너의 아버지처럼 너도 누군가한테 뺏겨 버릴까봐.

태희 : (멈칫.. 본다. 보면)

재혁 : 그래서 나두 경계하시는 거야. 너한테 접근하지 말라는 금지명령까지 내리신 거구.

태희 : 몰랐어. 그런 일 있었는 줄. 할아버지한테 많이 불쾌했겠다, 너.

재혁 : 옳은 조치라구 생각해.

태희 : ?

재혁 : 회장님. 현명하신 분이야. 나에 대해서두 너보다 더 많은걸 꿰뚫고 계실 걸.

         어쩌면.. 그래서 더 떼놓구 싶으신지도 모르지.

태희 : 무슨 뜻이야?

재혁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놈이야. 널 만나기 전까진 중국집에서 배달통이나 하던 보잘 것 없는 놈이었다구.

         아직두 모르겠니?

태희 : (표정 굳는다) 몰라. 모르겠어. (시선 돌리며) 알고 싶지두 않아.

재혁 : 회장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나는.. 너한텐 안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몰라.

태희 : (본다) 왜 그렇게 나한테 자신이 없니? 넌 나를 지켜줬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때

         내 옆에서 날 지켜준 유일한 사람이었어. 자신을 가져.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 너.

재혁 : 정말 그럴까?

태희 : 뭐?

재혁 : 아직 그걸 모르겠어. 내가 정말.. 김태희한테 자격 있는 사람인지.

태희 : (본다. 그런 재혁이 왠지 불안해져서 바라보면)



14. S# 평창동 집 전경. N



15. S# 거실. N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현자. 안으로 들어오는 태희.


태희 : (현자를 보더니) 다녀왔어요.

현자 : (대답 없이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린다)

태희 : 할아버진요?

현자 : (그러자 tv를 툭 꺼버리더니) 아줌마. 시원한 냉수 좀 가져와요.

예산댁 : (안에서) 네.

현자 : (잡지를 펼쳐들면)

태희 : (그대로 서재 쪽으로 돌아서는데)

현자 : 할아버지 회사에 입사원서 냈다며?

태희 : (돌아본다) 네. 앞으로 할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현자 : 아주 계획된 수순대로 잘 밟아가고 있구나.

태희 : (본다)

예산댁 : (물을 가져다주면)

현자 : (마시다 말고) 뭘 그렇게 보구 서있어?

태희 : (본다. 보다가 돌아서서 서재 쪽으로 가서 노크한다) 할아버지. 태희예요.

김회장E : 들어와라.

태희 : (문 열고 들어가면)

현자 : (여유 있는 표정 싹 가신 채 본다. 시선에서)



16. S# 서재 안. N


김필중 : (돋보기 내려놓고 책상에서 일어서며) 요즘 자주 늦는구나. 그래. 입사원서는 갖다 냈니?

태희 : 네.

김필중 : 앉어. 나하구 차 한 잔 하자. 예산댁 좀 불러라. (티 테이블에 앉는데)

태희 : 그 전에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할아버지.

김필중 : 앉어. 앉어서 얘기해.

태희 : 저.. 지금까지 장재혁하고 같이 있었어요.

김필중 : (놀라는 기색 없이 가만히 태희를 본다)

태희 : 그 사람 이번 할아버지 생신 때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허락해주셨음 해서요.

김필중 : 그 녀석이 너한테 내 허락 받아오라 그러든?

태희 : 그런 거 아니예요. 제 생각이예요. (보며) 초대해두 되죠?

김필중 : 안 된다.

태희 : 할아버지..

김필중 : 밖에서 만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 다들 나이 먹은 성인들이니 그것까지 간섭할 순 없겠지.

            회사에서 얼굴 마주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치자. 어차피 한 직장에서 일해야 할 테니까. 허지만 집은 안 돼.

태희 : 왜요 할아버지?

김필중 : 글쎄 할애비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게야.

태희 : 왜 그렇게 재혁 씰 싫어하세요?

김필중 : 그 녀석이 싫은 게 아니다. 널 위해서 그래.

태희 : 절 위하신다면 그 사람도 위해주세요.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예요.

김필중 : (단호하게) 얘기 그만 끝내자. 피곤하구나.

태희 : 할아버지.

김필중 : 그만 올라가 쉬어. (일어나 침실 쪽으로 간다)

태희 : (본다.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 시선에서)



17. S# 이층. N


힘없이 천천히 올라오는 태희, 자기 방 쪽으로 가다가 문득 서준의 방을 돌아본다. 들리는 음악소리.



18. S# 서준의 방. N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한참 전화통화중이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서준 : 야야, 전화 끊어야겠다. 우리 엄마 또 불시습격이야. 그래. 나두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이번 주말 여행 꼭 같이 가는 거다. (다시 똑똑똑 하는 소리) 야. 진짜루 끊는다.

         (하더니 쪽 수화기에 대고 뽀뽀한 뒤 끊고는 얼른 책을 펴들며)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얼굴을 반쯤 들이미는 태희.


서준 : (흘낏 보다가) 어? 누나였구나. (침대에서 일어서면)

태희 : 왠일루 일찍 들어와 있니?

서준 : 요즘 우리 어마마마 기분이 영 저기압이거든. 오랜만에 효도나 한번 해 볼까 하구

         오늘은 아예 초저녁부터 들어와 있는 중이야.

태희 : (웃음) 기특하구나.

서준 : 참, 할아버지 회사 나가기루 했다면서요?

태희 : 음. (안으로 들어오면)

서준 : 직책이 뭐야?

태희 : 일반 사원.

서준 : 일반 사원? 그냥 일반 평사원?

태희 : (cd를 고르며) 왜? 이상해?

서준 : 하긴 뭐.. 누난 뭐든 쉽게 얻어지는 건 싫어하니까. 경쟁하구 쟁취하구.. 그 편이 훨씬 누나답긴 하지.

태희 : (웃음. 그러다 보며) 내가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 고모하구 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해질 거야. 그래서.. (하는데)

서준 : 알아요, 누나. 무슨 말인지.

태희 : (보면)

서준 : 걱정할거 없어요. 난 신경 안 쓸 거니까. 엄마하구 누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젠.. 어디까지나 두 사람 일이잖아.

         난 죽는 날까지 중립이예요. 영세중립. (웃음)

태희 : (짐짓 웃더니)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원하게 한잔만 할까?

서준 : 누나 술 마시고 싶어요?

태희 : 어. 좀 취하구 싶네, 오늘은.

서준 : 알겠습니다. 냉큼 대령합죠. (하면서 밖으로 나가면)



19. S# 거실.


이층에서 내려오는 서준.


현자 : 왜 내려와?

서준 : 누나가 술 한 잔 하자 그래서요.

현자 : 술? (보더니) 마시구 싶으면 지가 내려올 것이지. 이젠 너한테 별 심부름을 다 시키는구나.

서준 : 저두 한잔 하고 싶었던 참이었어요.

현자 : (흘끗 보더니) 아줌마한테 안주거리 좀 내달라 그래. 안주 없이 술만 마시면 속 버려.

서준 : 알았어요. (들어가면)

현자 : 들어올 때부터 술 냄새 풍풍 풍기구 들어오더니 끝내 술이구나.

         집안에 어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구 버르장머리 없이. (못마땅하면)



20. S# 침실 안.


김필중, 문 쪽을 돌아본다. 태희가.. 술을 찾는다구? 보는 시선에서.



21. S# 서준의 방안.


태희, cd를 넣고 플레이를 누른다. 나즈막히 흘러나오는 보사노바풍의 째즈 음악.

태희, 한숨을 내쉬며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외로운 시선에서 디졸브.



22. S# 재혁의 오피스텔 안. N


계속 같은 음악 연결되면서 화면, 한쪽으로 이동하면.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재혁의 얼굴. 시선을 움직여 테이블위에 있는 오래된 일기장을 내려다본다.

펼쳐진 일기장 위로 빛바랜 낡은 신문기사들이 보이고.

재혁, 표정 없이 잠시 바라보다가 일기장을 덮는다. 한 쪽에 놓고 일어서다가 툭..! 서류가방을 건드려 떨어뜨린다.

그 바람에 비죽이 나오는 원서봉투.

재혁, 구부려 그 원서봉투를 줍다가 안의 내용물을 꺼내본다. 원서 한쪽에 붙은 이상하게 찍힌 선우의 사진..

재혁, 바라보는 시선에서.


flash-back>

소매치기와 함께 구르는 선우/

소매치기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선우/

구멍 난 옷을 가리는 선우/

눈물 반 웃음 반으로 헤 웃는 선우의 얼굴에서/


재혁, 힘없이 픽 웃음.. 그러더니 서류를 한쪽에 던져놓고 맥주를 가지러 간다.

던져진 선우의 입사원서 사진에서.. 화면 하얘지면.



23. S# 회사앞. D


한쪽에 세워진 김필중의 차.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책을 읽고 있는 박귀중의 모습이 보인다.

그 때 한쪽으로 들어와 멈춰서는 재혁의 차. 운전석에서 내려서는 오한영과 그 옆에서 내려서는 재혁.

(반듯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오한영과 대조적으로 재혁, 편한 차림이다.)

박귀중, 책을 읽다 고개 들어 보면 앞장서는 오한영을 따라 걸어가는 재혁의 모습..

박귀중, ? 본다. 시선에서.



24. S# 회의실.


간부들 모인자리에서 김필중, 재혁을 소개하는 모습.

재혁, 간부들에게 인사를 한다.

한쪽에 서 있는 진상만, 어딘지 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재혁을 본다. 흠..

그러면서 무심코 시선 돌리다가 멈칫.. 옆에서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오한영과 시선 마주친다.

진상만 순간 썰렁해져서 무마용 웃음을 지어보이면 오한영,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향한다.

기분 나쁜 녀석.. 날 지켜보고 있다 그거지? 진상만, 순간 표정 굳어서 보면.



25. S# 복도.


걸어오는 김필중과 재혁. 그 뒤로 따라오는 진상만과 오한영.


김필중 : 오른편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앉은 사람들이 제하통신을 책임지고 있는 사장, 부사장이야.

            나중에 따로 자릴 마련해서 사업개혁안 따로 브리핑 해.

재혁 : 그러겠습니다.

김필중 : 왼쪽으로 첫 번째 앉은 사람은 나하구 같이 제하초창기 때부터 함께 일 해온 전자 쪽 박사장이야.

재혁 : ... (할아버지의 회사였다. 시선 앞으로 고정한 채 걷는 위로)

김필중 :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 자리에 앉아있지만 그 양반 챙기는 것도 잊지 말구.

재혁 : 명심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오한영과 진상만 동시에 버튼으로 손이 간다. 진상만이 빨랐다.

진상만, 짐짓 미소로 오한영을 물리치고 자신이 버튼을 누른다. 오한영, 표정 없이 다시 꼿꼿이 서면.


김필중 : 우리 태희를 만났다지?

재혁 : (멈칫.. 김필중을 본다. 보다가) 네.

김필중 : (엘리베이터 문에 시선 고정한 채) 자네 지금 한가하게 노닥거릴 때 아니잖아.

            할일이 산처럼 쌓였는데 여자 만나구 다닐 시간이 어딨어.

재혁 : (보면)

김필중 : 게다가 난.. 아직도 자네를 검토 중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재혁 : ...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 열리면 김필중, 안에 올라탄다. 진상만 따라 올라타면 재혁 가볍게 목례한다.

오한영 따라서 목례하면 김필중과 진상만 앞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고개를 드는 재혁, 가볍게 한숨..


오한영 : 이 회사에서는 사적인 생활까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재혁 : 상대가 회장님 손녀딸이야. 통제대상이 되는 게 당연하지.

오한영 : 재미없는 상대를 고르셨군요, 선배.

재혁 : (픽 웃더니) 가자구. 해야 할 일이 많아. (돌아서서 가면)

오한영 : (따라간다)



26. S# 엘리베이터 안.


진상만 : (흘끗 본다,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는데)

김필중 : 뭐야. 말해봐.

진상만 : 장재혁 씨, 말입니다. 그 사람만 보면 영 기분이 찜찜해서요, 회장님.

김필중 : 왜.

진상만 :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암튼 회장님을 쳐다보는 시선부터 마음에 들질 않습니다.

            뒤에 뭔가 딴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아서 말입니다.

김필중 : ...

진상만 : 거기다 미국에서 같이 온 그 오한영이란 친구도 아주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김필중 : 됐어. 그만해.

진상만 : 회장님. 충심으로 말씀 드리 건데 장재혁 그 사람을 경계하시는 게..

김필중 : 됐다구 했어.

진상만 : (멈칫.. 본다. 숙이며 얼른) 네. 회장님. (흘끗 눈치를 보면)


김필중 표정 굳는다. 사실.. 장재혁을 처음 볼 때부터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서.



27. S# 핼스장.


문을 열고 수건으로 땀 닦으려 걸어 나오는 태희.


태희 : 그래서. 첫 신고식은 잘했어? 간부들은? 깐깐하게 나오지 않구?



28. S# 재혁의 사무실.


재혁,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책상위에 쌓인 서류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재혁 : 아니. 다들 위엄 세우느라 점잖만 떨구 앉았드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어주면 좋겠든데.



29. S# 핼스장 탈의실.


들어와 옷장 앞으로 걸어오며.


태희 : 꿈두 야무지다. 거기 그렇게 앉아있는 사람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구

         권위의식 내세워 아랫사람 깔아뭉개는 게 취미야. 그것 때문에 월급 받구 있는 건데 입 다물고 가만있겠니?



30. S# 재혁의 사무실.


재혁 : (웃음) 나 지금 바빠. 할 일이 산더미야. 말 그대루 산더미.

         회장님. 벌써 나한테 경고 들어왔어. 너하구 한가하게 노닥거리지 말라신다.



31. S# 핼스장 탈의실.


태희 : (멈칫.. 그러나 이내 위트 있게 넘기며) 그래서 이제 나하구 안 놀거니?

재혁 : (insert>) 글쎄. 생각중이야.

태희 : (웃음) 용기 꺽이지 말구 계속 만나주라. 너 없는 십육 년 동안 내내 혼자서만 놀았단 말야.

         이제 와서 또 모른척하면 나 정말 삐진다.



32. S# 재혁의 사무실.


재혁 : (웃는다) 끊자. 정말루 일 해야 해. 나중에 전화 할게. (수화기 내려놓으면)

오한영 : (한쪽에 서류더미를 쿵 내려놓는다) 오늘 안으로 읽으셔야 할 서륩니다.

재혁 : (본다. 손가락 운동을 가볍게 하며) 시작해볼까? (집어드는데서)



33. S# 탈의실.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태희. 재혁에겐 웃으면서 통화했지만 할아버지 그러는 게 왠지 신경 쓰인다. 낮게 한숨에서.



34. S# 극장 앞. D.


휘 둘러보는 황국도. 대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표정으로 보다가 여자들이 줄을 서 있는 뒤에 선다. 차례가 오자.


황국도 : 여그.. 저녁 시간으루다 두 장만 줘 보슈. (돈을 주고 표를 받는 모습에서)



35. S# 방안. D


방바닥에 쓱 내밀어지는 극장표 두 장.

오산댁 집어 들면서 희한한 물건 구경하듯 쳐다본다.


오산댁 : 이게.. 뭐래?

황국도 : 뭐긴 뭐여. 극장표지. 극장 표두 몰러?

오산댁 : 이게 어디서 났는데?

황국도 : (옷을 갈아입으며) 워디서 나긴 내가 돈 주고 샀지.

오산댁 : (놀라서 보면)

황국도 : 허구 헌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징징대는 꼴 보기 싫어서 사온 겨.

            꽃 귀경 대신이니께 승희랑 같이, 두 모녀 사이좋게 극장귀경이나 하구 와.

오산댁 : (감동했다) 자기야아..! (그러더니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황국도 : 어따 이 여편네가 넘사시럽게.. (뿌리치면)

오산댁 : (그래도 좋다고 다시 딱 달라붙는다)

황국도 : (떨떠름하게 흘낏 돌아보는 시선에서)



36. S# 국밥집 안.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선우. 황국도, 신문너머로 흘끔흘끔 선우를 훔쳐본다.

선우,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행주질 하는데 방문 열리며 나타나는 오산댁과 승희, 잔뜩 차려입고 나온다.

황국도, 얼른 다시 신문 보는척하면.


선우 : 어디 가세요?

오산댁 : 느이 아저씨가 바람 쐬고 오라구 극장표를 다 사오셨지 뭐냐. (좋아죽으면)

승희 : 유치해. 겨우 극장표 한 장 받은 거 갖구 좋아하긴.

오산댁 : 좋지 그럼. 너는 이런 거라두 갖다 주는 남자 있냐?

승희 : 나는 극장표가 아니라 극장 채 사서 안겨주는 남자 만날 거야 왜 이래. 사람이 스케일이 있지 어디서 극장표 한 장 갖구..

오산댁 : 어이구 제발 그렇게만 되라.

승희 : 그래 두고 보셔. 그렇게 되나 안 되나.

선우 : 근데.. 그거 무슨 영화예요?

승희 : 니가 알아서 뭐하게? 그리구 무슨 영환지 말해주면. 니가 알기나 해?

선우 : ... (보면)

오산댁 : 자기야. 올 때 뭐 사갖구 올까? 뭐 먹구 싶은 거 얘기해 봐. 응?

황국도 : 아이구 난 됐응께 여그는 신경 딱 끄고, 나감김에 아주 저녁까지 해결하구 들어와. 워디 맛난 디 가서 칼질도 좀 허고.

오산댁 : 알았어. 갔다 올게. (기분 좋게 웃으며 나서려다가 선우를 보더니) 너 가게 잘 보구 있어. 또 농땡이 피지 말구. 알았어?

선우 : 네에. (씁쓸하게 웃으면)

황국도 : 어따 망건 쓰다 장파허겄네. 시방 영화 다 끝난 담이 갈참이여?

오산댁 : 알았어, 알았어. 나 그럼 진짜루 가요? (나가면)

승희 : (비웃듯 선우에게 웃음을 남긴 뒤 따라 나간다)


오산댁과 승희가 나가고 나자 다시 조용해지는 가게안.

선우, 부러움으로 잠시 바라보면 황국도, 흘끗 선우를 보더니 신문을 접고 일어서며.


황국도 : 어따. 손님도 없고.. 나는 들어가서 쬐게 누워있어야 쓰겄다. (들어가면서 흘끔 선우를 돌아보면)


선우 다시 테이블을 닦기 시작한다. 닦다가 툭.. 행주를 던진다. 그러다 한숨.. 행주가 무슨 죄야. 다시 닦으면.



37. S# 방안.


안으로 들어온 황국도. 잠바 주머니에서 약봉지 하나를 꺼내든다. 그 안에서 꺼내는 박카스 한 개와 수면제 한 알.

황국도 음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데서.



38. S# 보일러 가게 앞 일각.


오산댁과 승희, 서로 팔짱끼고 기분 좋게 걸어오는데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며 바싹 들이 붙는 경트럭.

오산댁과 승희, 한쪽으로 비켜서면.


연웅 : (창문으로 얼굴 내밀고) 거 한쪽으로 좀 걸어 다닙시다. 예?

         (그러더니 거칠게 붕! 차를 몰고 앞으로 나가 가게 앞에 세운다)

오산댁 : 아니 저거 저.. 머리에 피두 안 마른 게.. (하는데)

승희 : (연웅을 알아보고 얼른) 엄마 잠깐만. 잠깐만 여깄어. (쪼르르 세워진 트럭 쪽으로 뛰어간다)

오산댁 : (? 보면)


연웅, 트럭에서 내려서서 툭툭 털고 들어서려는데 그 뒤로 다가서는 승희.


승희 : 연웅 씨?

연웅 : (돌아본다) 누구세요?

승희 : 나야. 얼마 전 철웅 오빠랑 같이 만났지? 요 앞에서.

연웅 : (시치미 딱 떼고) 잘 모르겠는데요.

승희 : 왜애.. 그 때 나 이선운줄 알구 서루 인사까지 했었잖아. 정말루 기억 안나?

연웅 : 기억 안나요. 나는요. 나랑 상관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각 즉각 지워버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면서 돌아서는데)

승희 : 나 우승희야.

연웅 : (귀찮다. 앞머리 훅! 불어제끼고 돌아본다) 그래서요?

승희 : 연웅 씨 나보다 나이 어리지? 앞으로 나한테 그냥 승희 언니라구 불러.

         나한테 잘 보이면 맛있는 것두 많이 사주구 나이트두 빵빵한데 많이 데려가 줄게.

연웅 : (어이없는 웃음.. 픽 웃고 다시 보면)

승희 : 연웅 씨 남자친구는 있니? 없으면 내가 소개시켜줄까? 나이트에서 젤 나가는 웨이터 오빤데

         춤두 끝내주게 추구 여자들한테 인기도 캡 많어. 어때? 생각 있어?

연웅 : 야!

승희 : ? (보면)

연웅 : 그렇게 인기 캡이면 너나 가져.

승희 : 연웅 씨..!

연웅 :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이게 언제 봤다구..

승희 : (허! 보면)

연웅 : 나 바쁘니까 말시키지 말구 당장 꺼져. 알았어? (그러더니 목을 한번 탁 꺽어 주며 안으로 들어간다)

승희 : (모욕이다. 어쩔 줄 몰라보면)

오산댁 : (뒤로 다가서서 쿡 찌르며) 야. 쟤 누구냐? 너 저런 친구도 있었어?

승희 : (노려보더니) 몰라! (홱 돌아서서 가버린다)

오산댁 : (발끈) 근데 저년이.. (하다가) 야! 승희야! 같이 가야지이! (쫒아간다)


두 모녀 사라지자. 슬며시 가게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보는 연웅, 픽 웃으며 보는데.

E 울리는 핸드폰 전화벨.


연웅 : 여보세요. (하다가) 어! 오빠! (하다가) 뭐? 돈? (놀라서 보는데서)



39. S# 의상실 앞.


프레임-인 되서 멈춰서는 연웅의 보일러 경트럭.

기다리던 철웅과 수탁 다가서면 차에서 내려서는 연웅.


연웅 : 오빠.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돈은 가져오래? 오빠 또 사고 쳤어?

수탁 : 친 게 아니라 치실 예정이죠.

연웅 : 무슨 소리야?

철웅 : 돈 가져온 거나 내 놔봐.

연웅 : (주머니에서 꺼내서 주면)

철웅 : (세 본다. 만족한 듯) 이거면 되겠다. (하더니 도로 연웅의 손에 턱! 쥐어준다)

연웅 : (? 보면)

철웅 : 연웅아. 저 옷가게 들어가서 옷 좀 사와라.

연웅 : 뭐? 뭘 사가지구 와?

수탁 : 저 옷을 사서 선물하시겠대요. 이선우 양한테.

연웅 : (에에? 황당한 얼굴로 철웅을 보더니)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시켜? 오빠 여자 친구 옷 선물이면 오빠가 직접 사지.

철웅 : 사내자식이 어떻게 여자 옷가겔 들어 가냐? 체면 구겨지게.

수탁 : 그리구 돈두 없구요.

연웅 : 그럼 돈두 안들구 체면도 안 구겨지는 걸루 사다줘. 그럼 되겠네.

철웅 : 글쎄 저 옷이 아니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연웅 : (기막혀 보더니) 대체 이선우가 누군데 이렇게 맛이 간 거야? 어?

수탁 : 철웅이 형.. 인생의 목표 아닙니까. 이선우양이.

연웅 : 기막혀 말두 안 나와 증말.

수탁 : 한마디로 유구무언이죠.

철웅 : (듣다 듣다) 근데 이 자식들이.. 늬들 왜 이렇게 태도불량이야? 오랫만에 엎드려뻗쳐 한번 해볼까? 어?

연웅/수탁 : (동시에 입을 다물면)

철웅 : (두 사람을 눈으로 한번 제압하더니) 한수탁. 넌 앞으로 한 시간 동안 한 마디두 하지 마.

         박연웅. 넌 일분내로 들어가 옷사온다. 실시.

수탁 : (입 꼭 다물고)

연웅 : (할 수 없이 옷가게 쪽으로 돌아서는데)

철웅 : 옷가방에 넣지 말구 신문지에 싸 달라 그래. 여자 옷가방 들구 다니면 괜히 스타일 구겨진다. 알았지?

연웅 : (잠시 멈춤... 앞머리 훅! 날리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철웅 : (그제야 씩 웃는 얼굴에서)



40. S# 상가안.


다 먹은 그릇을 수거하는 선우. 자전거에 올라타고 출발한다.



41. S# 국밥집 앞 모퉁이.


철웅, 칼국수 집을 괜히 흘끗 거리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손엔 둘둘 신문지로 만 옷 뭉치가 들려져 있다.

철웅, 돌아보면. 끽 서는 자전거 소리와 함께 국밥집 앞에 도착하는 선우.

선우, 자전거에서 내려 뒤에 매달린 그릇 통을 집어 드는데 그 앞으로 프레임-인 되는 철웅.


철웅 : 어이. 오랜만이다.

선우 : (무시. 그릇 통을 내리려는데)

철웅 : (그 그릇 통을 못 내리도록 붙잡는다) 얘기 좀 하자.

선우 : 바빠. 그럴 시간 없어.

철웅 : 오 분도 안 걸려. 잠깐만 보자.

선우 : (본다. 보더니) 여기서 해. 무슨 얘긴데?

철웅 : 여기서?

선우 : 그래. 해 봐.

철웅 : (사람 많은데서 어떻게 선물을.. 두리번거리면)

선우 : 못하겠어? 그럼 그냥 들어가구.

철웅 : 아니 그게.. 저.. (주춤하더니 겨우 용기내서) 저기 말야. (하는데)

길여옥 : 얘! 철웅아!


동시에 돌아보는 선우와 철웅.


선우/철웅 : (동시에) 할머니!

길여옥 : (철웅 보며) 니가 여긴 왠일이냐? 생전 할미 가게 근처엔 코빼기두 안 뵈던 녀석이?

선우 : 할머니.. 이 사람 아세요?

길여옥 : 잘 알지 그럼. 내 손주놈이잖어.

선우 : (놀란다, 철웅을 보며) 정말? 할머니 손주가.. 너야?

철웅 : (뭔가 불안한 조짐.. 이게 아닌데. 시선 돌리면)

선우 : 그랬구나. 그 동안 할머니한테 니 얘기 진짜 많이 들었는데. 너 그렇게 유명했다며?

철웅 : (? 본다. 불안하게) 내가..? 뭘?

선우 : 너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오줌도 못 가리구 이불에다 쌌대며.

철웅 : ! (쿵! 돌덩이)

선우 : 열세 살 때 여자애한테 딱지 맞구 깡 소주 마시다 기절해서 응급실까지 실려가구.

철웅 : !! (쿵! 바윗돌)

선우 : 그리구 중학교 땐가..? (할머니 보며) 할머니 이소룡 만난다구 집 나간 게 중학교 때 맞죠?

         미국 가겠다구 밀항한다는 게 울릉도 가는 배였다면 서요.

길여서 : 맞어. 그게 중2땐가 중3땐 가. 울릉도 경찰서에서 애 찾아가라구 전화 와서 아범이 고생 많이 했지.

            그 때만 해두 교통편이 없어서 찾아오는 데만 사흘 걸렸으니까 암튼.

철웅 : !!! (와르르! 산 째 무너져 내린다)

선우 : 참. 나한테 할 얘기 있댔지? 뭐야? 무슨 얘기였어?

철웅 : (겨우 숨 내쉬며) 미안하다. 잊어.. 버렸다.

길여옥 : 칠칠치 못 한긴. 젊은것이 저렇게 정신이 없어, 저렇게.

철웅 : (사정없이 무너지는 체면과 자존심)

선우 : (안됐다는 듯 어깨를 툭툭 쳐주며) 그럼 다음에 보자. 할머니 저 들어갈께요. (그릇 통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면)

길여옥 : (가게 앞에 끓고 있는 국물을 살피는데)

철웅 : (겨우) 할머니.

길여옥 : 왜?

철웅 : 선우한테 내 얘기.. 어디까지 한 거야?

길여옥 : 글쎄다. 하두 많이 얘기해서 나두 잘 모르겠다.

철웅 : (비틀..! 인생이 끝난 느낌으로 절망하는데)

길여옥 : (철웅의 손에 든 신문뭉치를 보더니) 근데 손에 든 건 뭐냐? 고기냐?


순간 대답 없이 비참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철웅. 그대로 터벅터벅 프레임-아웃 되면

그 뒤에서 보던 길여옥 참았던 웃음을 픽.. 터뜨린다.



42. S# 대포집.


탁! 둥그런 탁자위에 놓이는 소주잔.

수탁, 흘끗 눈치 보다가 한잔 따르면 철웅, 꿀떡 마신다. 또 탁! 내려놓으면 수탁, 다시 눈치 보더니.


수탁 : 형. 이번이 다섯 잔째예요.

철웅 : 따러.

수탁 : (두말 않고 따른다)

철웅 : (마시고 카아! 그러더니 잔을 탁! 내려놓는다)

수탁 : 형. 안주도 좀 드세요.

철웅 : 따러 임마.

수탁 : (따른다)

철웅 : (꿀꺽 마신다. 다시 잔을 탁! 내려놓더니 불쑥) 야. 한수탁.

수탁 : (마른안주 씹다) 네?

철웅 : 너 대답해봐. 어린 남자애가 오줌 좀 늦게 가린다구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수탁 : 잘못 아니죠.

철웅 : 철없을 때 짝사랑 한번 해보는 게 그게 그렇게 큰 죄야?

수탁 : 큰 죄 아니죠.

철웅 : 사내자식이 큰 뜻 품고 가출한번 했다 그래. 것두 그렇게 나쁜 짓이냐?

수탁 : 나쁜 짓 아닙니다. 큰 뜻까지 품었는데.

철웅 : 정말 그러냐?

수탁 : 정말 그렇죠.

철웅 : 근데 수탁아. 왜 자꾸 난.. 그 얘기만 나오면 쪽팔린 거냐?

수탁 : (빙긋 웃더니) 그야 다 철없던 시절 얘기니까요.

철웅 : 그런가?

수탁 : 그럼요.

철웅 : (끄덕이더니) 따러라.

수탁 : (따르면)

철웅 : (마신다. 카아! 쓴 얼굴로 고개 들더니) 선우야. (시선에서)



43. S# 국밥집 안. N


카운터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선우.

한쪽 구석에서 국밥을 먹은 손님(흥신소직원), 선우를 흘끔흘끔 보며 냅킨으로 대충 입을 닦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온다.


선우 : 맛있게 드셨어요?

흥신소 : 네. 얼마죠?

선우 : 삼천오백원입니다 손님.

흥신소 : (지갑을 꺼내 돈을 주며 지나가는 투로) 그런데 아가씨.. 혹시 정선에서 산 적 없었어요?

선우 : 어? 어떻게 아셨어요?

흥신소 : (그렇군) 실례지만 아가씨, 나이가 지금 몇이죠?

선우 : 스물다섯인데요.

흥신소 : (나이도 같다) 그럼 혹시 이름이.. 김윤희 씨 되시나요?

선우 : 아뇨. 아닌데요.

흥신소 : (실망하는 빛) 그럼 그런 이름 들어본 적 혹시 없습니까?

선우 : 없어요. (빤히 보며) 왜 그러시는데요?

흥신소 : 아뇨. 아닙니다. 내가 뭔가 잘못 알아나 보네요. 잘 먹었어요 아가씨. (그러면서 선우를 한 번 더 본 뒤 밖으로 나가면)

선우 :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보면)



44. S# 국밥집 앞. N


밖으로 나온 흥신소직원, 왠지 미심쩍은 표정으로 돌아본다. 시선에서.



45. S# 국밥집 안. N


방문 열고 밖으로 나오는 황국도.


황국도 : 손님들 다 갔냐?

선우 : (흥신소직원이 먹은 그릇을 치우며) 네 아저씨.

황국도 : (보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테이블위에 박카스 한 병을 올려놓는다)

선우 : (? 보면)

황국도 : 피곤헐 텐디 마시구 혀. 니 아줌마 있었으면 어림두 없는 건디.. 나가구 없응께 이런 때라두 챙겨줘야지. 언능 마셔.

선우 : (빙긋 웃음 집어 들고 보더니) 감사합니다, 아저씨. (의심도 없이 마시기 시작한다)

황국도 : (은근히 바라보는 시선에서)



46. S# 극장앞. N


안에서 나오는 관객들. 그 가운데로 오산댁과 승희의 모습도 보인다.


승희 : 진짜 끝내준다. 엄마 엄마, 여자 주인공 봤어? 영화 시작되면서 끝날 때까지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는지 알아?

오산댁 : (길게 하품.. 별로 재미가 없었던 듯)

승희 :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하구 키스할 때.. 그 다이아 목걸이하구 팔찌 봤어? 진짜 멋지지 않어? 응?

오산댁 : 난 뭐가 뭔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것드라. 죄다 미국 놈들만 나와서 영어루 쏼라쏼라대니 어디 정신이 있어야지.

승희 : 자막 나오잖아. 그거 읽으면 돼지.

오산댁 : 그림 봐야지, 글씨 읽어야지, 거기다 글씨는 또 왜 이렇게 빠르게 넘어가 그냥.

            한 두 글짜 읽으면 후딱 넘어 가구, 한두 글짜 읽으면 또 후딱 넘어 가구.

            아까는 내가 돈 아까워 표 값 물를라 그랬어, 아주.

승희 : 그렇게 표 값 아까운 사람이 영화는 안 보구 중간에 코 골구 주무셨어?

오산댁 : 지겨워 죽겠는데 어떡해, 그럼. 쏟아지는 잠 막을 장사 있어?

승희 : 하여튼 엄마랑은 문화생활이 안 되니깐.

오산댁 : 어이구 시끄러. 말 그만 시켜. 배고파 죽겄어.

승희 : 어디 돈까스나 먹으러 갈까?

오산댁 : 가긴 어딜 가. 집에 들어가 삽겹살이나 구워 먹구 말어 그냥.

승희 : 아저씨가 외식하구 들어오랬잖아.

오산댁 : 이년아. 말이 그렇지 말이. 외식하랬다구 진짜루 우리들끼리만 쏙 쳐 먹구 들어 가냐? 양심두 없어 기집애가.

승희 : (기분 상했다) 그래서 정말 그냥 들어 간다구?

오산댁 : 외식은 다음에 아저씨랑 같이 하구 오늘은 그냥 들어가. 그나저나 지하철역이 어느 쪽이야? (두리번거리면)

승희 : (어이없다. 기막혀 쳐다보는 얼굴에서)



47. S# 국밥집 안. N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고개를 내미는 황국도. 국밥집 안을 살펴보면 선우가 보이질 않는다.

소리 안 나게 살며시 방에서 나오면.



48. S# 주방안. N


설겆이 하다 말고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선우. 그 뒤로 황국도, 반쯤 얼굴을 내밀고 살펴보면.

선우, 졸다가 고개를 뚝 떨어뜨린다. 그러다 놀라서 번쩍 눈을 뜨는. 흘리지도 않은 침을 쓱 닦아내며 괜히 주위를 둘러본다.

황국도 얼른 쏙 숨는.

선우, 안 되겠다 손을 씻은 뒤 주방을 빠져나오면.



49. S# 국밥집 안. N


재빨리 방으로 쏙 뛰어 들어가 문을 닫는 황국도.

간격을 두고 주방 쪽에서 나오는 선우.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8시 조금 넘어서는 시간..

다시 길게 하품하는 선우. 왜 이렇게 졸립지? 안되겠다. 몸을 움직이자.

괜히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잠을 깨보려고 하는 모습에서.



50. S# 시장통 어귀. N


삼겹살을 사고 있는 오산댁. 그 옆으로 잔뜩 부은 채 서 있는 승희.

오산댁, 돈을 치루고 고기봉지를 받아든 뒤 가면 승희, 흘낏 본 잔뜩 골난 채 따라간다.



51. S# 국밥집 안. N


살그머니 방문이 열리고 눈만 내놓고 살피는 황국도.

선우,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괸 채 꾸뻑.. 꾸뻑.. 졸고 있다.

혹시라도 깰까봐 소리 안 나게 방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황국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문을 연 뒤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러다 뭔가 건드려 큰 소리가 나고.

황국도 놀라서 얼른 보면 선우, 여전히 정신없이 졸고 있다. 황국도 안도의 한숨..

천천히 방에서 나오는 황국도의 발..신발소리 날까봐 신지도 않고 맨발인 채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선우, 턱을 괸 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모습.


황국도 : 워째.. 이렇게 자는 것까지 이쁘댜. (그러면서 혼자 꿀꺽 침을 삼키더니)


황국도, 일단 뽀뽀를 해보려는 듯 어설프게 입을 쭉 내밀고 선우 얼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순간 꾸뻑.. 고개를 툭 떨어뜨리는 선우. 짐짓 눈을 뜬다. 그러다 황국도와 정면으로 시선 마주치는 선우.

입술 쭉 내민 채 ?해서 쳐다보는 황국도. 순간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는 선우.

그렇게 빤히 서로를 마주본 채 흐르는 수초간의 정적..


선우 : (정적을 깨고) 아저씨.. 뭐하세요?


황국도 썰렁해져서 내밀었던 입술 천천히 도로 집어넣으며 시선을 이리저리. 이 상황 어떻게 수습하나..

순간 이상한 기분에 선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어질...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재빨리 선우를 부축하는 황국도. 그 순간 다시 시선 마주치는 황국도와 선우..

선우, 황국도의 시선에 기분 나빠 팔을 확 뿌리친다. 빠져나오려는데 다시 붙잡아 돌이켜 세우는 황국도.


선우 : 왜 이러세요, 아저씨!

황국도 : 미안하다! 나두 어쩔 수가 읎는 일이랑께. 너만 보면 내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걸 워쩌냐.

선우 : 이러지 마세요. 이거 놔요! (다시 확 뿌리치려는데)

황국도 :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다. 완전히 마음 굳혔다) 나는 책임 읎다. 니가 이쁜 탓이지 내 죄가 아니여.

            긍께 딱 한번만.. 이? 딱 한번만.. (하면서 침을 한번 꿀떡 삼키더니) 눈 딱 감구 인생 공부한다 생각 혀. 이?

선우 : (? 보는데)

황국도 : (그대로 덮친다)

선우 : (비명!)



52. S# 국밥집이 보이는 모퉁이. N


모퉁이 뒤에서 나타나는 철웅. (한손엔 여전히 신문으로 둘둘 만 옷 뭉치가 들려져 있고)

얼큰히 취한 듯, 벽에 기대서서 선우의 국밥집을 바라본다.

불이 켜진 국밥집...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꿈에도 모른 채 철웅, 나즈막히 한숨을 내쉬는데..



53. S# 국밥집 안. N


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황국도.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놀라서 쳐다보면 남방 단추가 다 풀어 헤쳐진채 메리야스가 드러나 버린 선우, 필사적으로 문 쪽으로 기어가는데

약기운에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황국도 재빨리 붙잡는다.

반항하는 선우. 몸싸움에 순간 선우의 목에서 떨어지는 ‘반지 목걸이’

선우, 알아채지 못한 채 뎦쳐 오는 황국도의 팔목을 꽉 깨물어버린다.


황국도 : 워메!!!



54. S# 국밥집이 보이는 모퉁이 N


물끄러미 선우네 국밥집을 바라보는 철웅. 순간 뭔가 결심한 듯 그 앞으로 두어 걸음 나서는데 그 때 들리는 목소리.


승희 : 암튼 내가 엄마랑 또 어딜 다니면 사람이 아냐. 사람이.

오산댁 : 같이 댕기기 싫음 말어 이년아. 누가 무섭냐?

철웅 : (재빨리 좀 전에 있던 모퉁이 뒤로 몸을 숨기면)

승희 : 그래애. 엄만 맨날 아저씨랑 앉아서 화투나 치구 삽겹살이나 구워 먹구 살어.

오산댁 : 삽겹살은 너두 잘 쳐먹잖어.

승희 : 내가 언제? 나 그런 거 안 먹어 안 먹어.

오산댁 : 망할 기집애. 삽겹살 구울 때 달려들기만 해봐 그냥.


두 여자 지나가면 철웅 후..! 한숨. 정말 안 도와주는군. 씁쓸하게 쳐다보더니 그대로 돌아선다. 돌아서면.



55. S# 국밥집 안.


선우와 황국도의 혈전 2라운드.

남방까지 찢겨나가고 메리야스 차림으로 황국도를 밀어내는 선우.

황국도, 완전히 약이 바싹 올랐다. 끝까지 놓치지 않겠다고 선우를 나꿔채서 넘어뜨리면

선우, 기운이 많이 빠져있다. 일어서려는데 황국도 선우의 두 팔을 잡고 누른 채 꼼짝 못하게 해 버린다.

선우,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다.

황국도 승리의 미소.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막 선우 얼굴에 뽀뽀하려고 한다.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리는 선우.

바로 그 때. 드르륵! 열리는 문. 번쩍 고개 들어 쳐다보는 황국도와 올려다보는 선우.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오산 댁과 승희도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순간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삽겹살 봉지.


오산댁 :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른 채) 뭐야..!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승희 : (옆에서 기막혀 입을 딱 벌린 채 보면)

황국도 : (썰렁해져서 슬그머니 일어난다)


황국도가 물러서자 재빨리 일어나며 뒤로 물러서는 선우, 찢어진 남방으로 최대한 몸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 몸짓 안타깝고 서글픈..글썽..! 눈물고인 시선으로 오산댁을 쳐다보는 선우의 얼굴에서.

<7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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