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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눈길 ①] 유보라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9.08|조회수1,248 목록 댓글 0

[눈길 ①] 유보라












1. 얼음 강 / 새벽 (과거)
 찬 공기가 느껴지는 푸르스름한 첫새벽.
 발소리, 헉헉거리는 숨소리.
 종분(10대), 정신없이 뛰고 있다. 
 거친 숨에 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얼음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미끄러워 기우뚱기우뚱, 몸이 맘 같지 않아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종분. 
 그때, 캉캉캉- 소리 들린다.
 
종분 영애야!!

 종분의 시선을 따라가면, 얼음 강 한 가운데로 돌을 던지는 영애(10대).
 영애, 깨지지 않는 부분까지 뛰어가더니 또 돌을 던진다.
 캉캉- 튕기던 돌이 퍽- 소리와 함께 얼음을 깨트리며 가라앉는다.
 그런데 영애,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깨진 얼음강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종분 (짜내는) 영애야!

 영애를 향해 뛰어가는 종분.
 삭막한 얼음강의 풍경 위로, ‘탕-’ 한 발의 총성 들린다.
 하얗게 질렸지만 도리어 담담한 영애, 놀라 돌아보는 종분.

종분 (절박하게) 영애야!!

2. 종분의 집, 내부 / 새벽
 종분(80대), 번쩍- 눈을 뜨고는 가픈 숨을 고른다.
 이런 악몽은 비일비재한 듯,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불을 갠다.
 낡은 솜이불, 솜이 눌렸는지 탁탁 두드려보다가, 손길 멈춘다.
 그러다 갑자기 확- 솜이불의 호청을 뜯어내는 종분.
 
 (시간경과, 아침)
 단출한 살림살이, 그러나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안.
 낡은 나무 창틀 사이로 항아리 몇 개가 놓인 장독대가 보인다.
 좁은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뜯어낸 호청을 빠는 종분.
 
 (cut to)
 로션을 바르고, 숱이 얼마 없는 머리를 몇 번이고 빗어 넘기고.
 
 (cut to)
 속이 답답한지 물 한 대접을 꿀꺽 마시고는.

 (cut to)
 솜이불 싸맨 보따리 든 종분,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려다 턱에 걸터앉는다.
 보면, 앞코가 벌어진 신발.
 손으로 꾹 눌러보지만 이내 다시 벌어지는 앞코.
 발로 들썩들썩 해보다가 그냥 신고 나가는 종분.

3. 종분의 집, 외부 / 아침
 반지층을 둔 다세대 주택의 1층, 종분의 셋집이다.
 종분, 낮은 계단을 내려오는데 계단 한쪽으로 장독대가 보인다.
 하늘을 보며 볕을 확인하고는 장독 뚜껑을 열어 놓는 종분. 
 끼이익- 반지하의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인상이 찌푸려져 돌아보면, 
 교복 차림의 은수(18세), 벽돌 몇 개를 문 앞에 끌어다 받쳐놓는다.
 종분, 추운 날씨에도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친 은수가 신경 쓰이는데,
 종분과 눈이 마주쳐도 쌩하니 인사 없이 나가버리는 은수.
 종분, 무심히 보고는 이내 눈길 돌려 우편물을 확인한다. 
 고지서가 대부분, 잘 보이지 않는 고지서를 멀리, 가까이 들여다보는 종분. 뭐가 이래 많이 나왔대 하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고지서 넘기다 발견한 봉투.
 수신인 ‘강영애’ 선명하게 박힌 봉투를 보자 굳어지는 종분의 표정 위로,
 달달- 솜틀 기계 돌아가는 소리.

4. 솜틀집, 내부 / 낮  
 목화솜 먼지로 가게 안이 희뿌옇고.

종분 그래도 겨울엔 이만한 게 없어.

 마스크를 쓴 주인, 기계 소음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하면,

종분 보일러를 안 틀어도 이것만 덮음 따숩다고.
주인 (딴 소리) 가셔요, 먼지 먹어요.
종분 응?
주인 낼 가지러 오시라고. 먼지 먼지!

 다시 작업에 열중하는 주인.
 여태 손에 들고 있던 봉투의 ‘수신인 강영애’에 눈길이 머물던 종분,
 고개 들어 솜틀기계에 걸러져 하얗게 나오는 목화솜을 보는 종분의 얼굴에서,

5. 영애의 집 밖, 담벼락 / 아침 (과거, 1940년대 초반)
 보따리 하나를 든 어린 종분(10대), 몸빼 바지에 저고리 차림인 제 옷이 맘에 안 들어 연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러다 담벼락 너머를 보면, 편안하고 풍요로운 풍경.
 너른 마당, 대청마루 위에서 말린 목화솜을 씨아틀에 넣고 씨를 빼면,
 한쪽에서 영애의 엄마가 대나무 막대로 솜을 두드리는 모습. (늦가을, 초겨울)

6. 영애의 집 안 / 아침  (과거) 
 종분, 쭈뼛거리며 들어가면, 영애 엄마가 ‘종분이 왔니?’ 반갑게 맞는다.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영주가 그 소리에 돌아보면 종분 어쩔 줄 모르고.
 재빨리 보따리를 내민다.
 영애 엄마, 보따리 풀러보면 새하얗게 풀을 먹인 이불 호청.

영애母 (살펴보며) 빳빳하니 잘 먹였네…. 종분이 니 엄마 솜씨 얌전한 건 따라갈 재간이 없어.
종분 (배시시- 웃으면)
영애母 저저 웃는 거 봐라. 이쁘게도 웃네. 잘 웃어서 시집도 잘 가겠네, 종분이는.
종분 (영주가 신경 쓰여 괜히 부끄러운데)

 그때, 방에서 나오는 영애, 깔끔하게 딴 머리, 남색 모직 코트 아래 찰랑이는 주름 스커트를 입고 마루에 걸터앉아 반짝이는 애나멜 구두를 신는다.
 영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종분.

영애母 영애야, 쌀 한 바가지 퍼 와라.

 영애, 귀찮다는 얼굴로 종분을 보고는 창고(혹은 뒤주)에서 쌀을 꺼낸다.
 쌀이 가득 든 뒤주를 빤히 보는 종분.
 영애 엄마가 가져온 쌀을 보따리에 잘 싸서 종분에게 주는 사이,
 영애는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차비를 하면 영주가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영주 타, 학교 데려다 줄게.

 종분,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다 영주가 가까이 서 있자 당황하며 뛰어나가면,
 영주,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종분을 보며 가볍게 웃고,
 영애는 그런 영주의 모습에 이것 봐라- 라는 얼굴로 도망가는 종분을 째리고.

7. 시골 종분의 집 / 낮 (과거)
 얼굴에 잔뜩 심통이 난 종분, 쌀통을 열어보면 빈 쌀통.
 영애네서 받아온 보자기에 든 쌀을 쌀통에 넣으며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엄마 (부엌에서 나오며) 안 된다믄 안 되는 줄 알아. 시집갈 나이에 뭔 놈의 학교. 어서 바람이 들어서는… 
종분 영애도 나랑 나이 같다 뭐!
엄마 그럼 그 집서 태어나지 왜 내 배를 탔냐.
종분 (쌀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며) 나도 그게 한이다, 뭐.

 퍽! 소쿠리 날아와 종분의 얼굴을 강타한다.

엄마 그래 만지작거리지 말랬지! (보따리 내밀며) 이거나 종길이 갖다 주고 와.
종분 (얼굴 퉁퉁 불어) 싫다! 학교 가지 말라매?!
엄마 저저- 쫄쫄 굶고 간 동생 불쌍치도 않아? 지금 이 집에 제사 모실 사람이 누가 남았냐, 종길이 밖에 더 있어? 글자는 배워야 지방이라도 쓸 거 아니여!

 움직일 생각 않는 종분에게 ‘퍼뜩 안 갖다 주고 뭐하냐!’ 또 호통 치는 엄마.
 보따리 안, 바구니에 든 포슬포슬한 감자 보인다.

엄마 올 때 땔감 두 묶음 가온나.

 대답 않고 보따리만 휙 챙겨서는 나가버리는 종분의 뒤로,

엄마 (E) 종분이 니, 또 종길이 감자 뺏아 먹지 마라!!

8. 시골길 / 낮 (과거)
 종분, 보란 듯이 감자 하나를 들고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우적우적, 목이 메어라 씹어 넘기는데, 멀리서 자전거 한 대가 다가온다.
 영주다.
 종분, 재빨리 손에 든 감자를 뒤로 숨긴다.
 영주, 자전거의 속도를 늦춘다.
 눈도 못 마주치고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서는 종분.
 
영주 어디 가니?
종분 학… 학교… (하다가 목이 메어 켁켁)
영주 (웃는) 태워줄까?
종분 (기겁하는) 아니요!

 영주, 그래- 하며 가려다가 생각난 듯, 가방에서 손이 탄 책 한 권을 꺼낸다.

영주 이거 너 가져라. … 영애는 벌써 읽었다니까.

 종분, 책을 받아들고 멍하다.

영주 조선어는 읽을 줄 알지?
종분 (절대 글자를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단호하게 끄덕끄덕)

 영주, 종분의 얼굴에 묻은 감자 부스러기를 떼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얼굴 빨개지는 종분.

9. 학교 입구 / 낮 (과거)
 멈칫,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던 종분, 누구에게 들킬까 뛰어가고.

10. 고등 보통학교 복도 / 낮 (과거)
 복도를 기웃거리다 부러운 눈으로 교실 창문 너머 학생들을 보는 종분.
 칠판에 “관동지방의 구역과 지세”란 일본어 적혀 있고.

교사 (日) 관동지방(간토지호)은 동북에서 서남까지 1,200리의 일본 열도의 각 중심지이다. 우리나라(일본)의 중심에서 우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발전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 교원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라고 했던 거 기억하나?
학생들 (日) 예!
교사 (日) 관동지방은 1도 6현으로 되어 있다. 말해 봐라. (영애 가리키면)
영애 (日) 네! (일어서서) 도쿄도,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사이타바, 치바, 가나가와 현입니다!

 일본어로 유창하게 대답하는 영애의 모습이 보인다.
 종분, 자신감에 찬 영애를 홀린 듯 보는데, 자리에 앉던 영애가 종분을 발견한다. 영애가 종분에게 시선 보내자 교사가 창밖을 보고는 ‘뭐야-’ 소리친다.
 허둥지둥 도망가는 종분, 계단을 내려갔다- 여기가 아니네, 다시 올라와 달려가고. 그러다 복도 쪽 창 밖 보면, 체조를 하고 있는 사내아이들.
  
11. 보통학교 운동장 / 낮 (과거)
 열세 살 남짓한 아이들, 삑삑-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체조를 하고 황국신민선서를 하는데,

학생들 (日) 하나!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하나!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하나! 우리들은 인고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
 종길은 중간 중간 못 외워서 호되게 맞는다.
 선서가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는 학생들, 종분이 종길아- 부르면,
 종길이 선생의 눈치를 보다 쪼르르 달려와 날름 보따리를 빼앗아 든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퍽 밀치고는, 메롱- 의기양양 다시 뛰어가는 종길. 
 괘씸한 종분, 저걸 확- 하지만 도리 없다.

12. 학교 인근 / 낮 (과거)
 장작을 한 묶음씩 모아 늘여놓고 팔고 있는 사내.
 그 옆으로 곰방대를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할아버지.
 종분,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영주가 준 책을 보고 있다.
 ‘小公女’라고 적힌 책 표지, 후루룩 넘겨보지만 알 리 없다.
 종분, 곰방대 할아버지에게 책을 보여준다.
 할아버지, 쳐다만 볼 뿐 대답 않고 곰방대만 바닥에 탕탕 쳐낸다.

종분 할배요, (글자 가리키며) 이거… 이것 좀 읽어주세요.

 쓱 한 번 보고 마는, 반응 없이 곰방대에 담배만 채워 넣는 할아버지.
 그때, 학교가 끝나고 나오는 여학생 무리들 뒤로 영애가 보인다.

종분 (반가워) 영애야-

 종분이 부르자 돌아보는 영애, 그러나 아는 척 없이 지나쳐버린다.
 친구들과 깔깔- 거리는 영애, 소녀들의 웃음소리.
 그런 영애를 바라보는 종분과, 그런 종분을 물끄러미 보는 할아버지.
 종분, 영주에게 받은 책을 덮어 품안에 챙겨 넣고는 땔감용 나무를 노끈으로 묶어 머리에 인다.
 일어나다 균형을 잃고 땔감을 놓쳐 버리고 마는 종분.
   땔감을 주워 담다가 괜히 서러워 영애를 돌아보는 종분의 얼굴 위로,  

윤옥 (E, 사무적으로) 호적하고 제적등본을 여기서 떼셔가지구요, 보훈처로 가시면 돼요.

13. 민원실 / 낮
 종분,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종분 … 그게 아니라, 이게 갑자기 왜 왔냐는 거예요.

 윤옥(3,40대)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종분이 준 통지서를 다시 보여준다.

윤옥 할머니 아버님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서 나라에서 상을 준다잖아요.
종분 (무덤덤하게 보면)
윤옥 좋은 일이에요. (옷 밑으로 손을 넣어 긁적이고, 연고나 크림을 바르며) 여기선 가족 확인하는 서류만 발급하는데, 떼드려요?
종분 ……
윤옥 (서류를 꺼내 쓸 곳을 체크해 주며) 여기 표시된 거 작성하세요.

 건넨 볼펜을 들고 머뭇거리는 종분을 윤옥이 재촉하면,
 삐뚤삐뚤 이름을 적는데, ‘최종분’ 썼다가, 이런- 하는 표정으로 당황한다.

종분 (‘최종분’ 이름을 찍찍 그어 버리고는) 이거… 이거 한 장만 다시 줘요.
윤옥 (답답한) 그냥 제가 써드릴게요. 신분증 주세요.
종분 (머뭇거리다, 꺼내면)
윤옥 (신분증의 이름 확인하며, 서류에 쓰는) 강영애- 할머니. 맞으시죠?
종분 (움찔- 그러나 생각하다) 오빠가 있어요. 강영주, … 영주 오빠가 알믄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 강영주라고 한번 두들겨 봐요.
윤옥 (난감한) 여긴 사람 찾는 데가 아니에요.   
종분 (컴퓨터 보며) 그걸로 보믄 어디 사는지 나오지 않아요? 응?

 그때, 민원실 뒤쪽 사회복지과가 소란스럽다.
 보면,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나오는 은수를 잡는 복지사.

은수 엄마가 돈 버는 거랑 내가 지원 못 받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복지사 법이 그래, 법이. 그러니까 엄마를 찾아가서… (하는데)
은수 엄마 얼굴도 모른다구요!
복지사 할머니 모시고 와, 할머니랑 상의해서…
은수 됐어요, 안 받아! (사람들 시선에) 얼마 준다고 치사하게…

 은수, 복지사 물리치고 얼굴 시뻘개져서 나가다가 종분과 마주친다.
 서로 알아보는 종분과 은수, 그러나 이번에도 쌩하니 지나쳐 버리는 은수.

윤옥 (E) 할머니. … 할머니!
종분 (그제야 보면)
윤옥 (증명서 나온 것 챙겨주며) 할머니, 이거 가지고 보훈처로 가시라구요. 어딘지 모르세요? 나가서 바로 보이는 정류장 있잖아요. 거기서 156번 타시면 돼요.

 윤옥의 말에도 주민센터 빠져나가는 은수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종분.
 
14. 버스 정류장 / 낮
 한적한 정류장, 종분과 은수,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리를 달달 떠는 은수, 종분의 반대쪽을 본다.
  
종분 … 학교 안 가니?
은수 (귀찮은, 시선 마주치지 않은 채로) 지금 가잖아요.

 156번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추면, 올라타는 은수.
 버스 지나가면, 홀로 앉아 있는 종분, 손에 윤옥이 준 서류 들려 있고.
 생각하다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 종분의 뒷모습 위로, 팡팡! 방망이 소리. 

15. 개울가 / 낮 (과거)
 까르르 웃음소리에 돌아보는 종분의 시선에 하교 중인 영애와 친구들 보인다.
 부럽게 보다가 시선 돌리며, 앞 개울가에서 썰매를 지치며 노는 종길과 또래들 보이고. 다시 팡팡! 빨래를 치는 종분, 손은 시리고, 서럽다.

16. 개울가, 도로 / 낮 (과거)
  어느새 영주가 합류해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앞서가면, 친구들, 수줍어하며 저희들끼리 쳐다보고 웃고, 영애는 도도한 표정이다. 
 앞서가던 영주, 문득 아래 개울가를 돌아보면, 

17. 개울가 / 낮 (과거)  
 빨래가 가득담긴 소쿠리, 그 위에 진흙이 엉겨 굳은 남자 아이용 천 운동화.
 종분, 손이 시려 몇 번 헹구다 말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데우다가 발갛게 곱은 손을 호호 불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퍼뜩 성질이 나 소쿠리를 발로 쾅 차버리면 빨랫감 흐트러지며 운동화가 개울로 떠내려간다.
 엄마야- 하며 운동화를 주우려던 종분, 언 돌에 발을 헛디뎌 기우뚱 하는데,
 어느새 다가와 종분을 잡아주는 영주.
 영주를 올려다보는 종분, 울상이다.

종분 저짝은 언 줄 알고… 내 일부러 그런게 아닌데… 저거 저거… 우리 종길이 신발… (하는데)

 영주, 첨벙첨벙- 차가운 개울가로 지체 없이 들어간다.
 놀라 보는 종분.
 멀리까지 간 영주, 허리를 굽히더니-

영주 찾았다-.

 운동화 한 짝을 들어 보이며 웃는 영주.
 다시 첨벙첨벙, 뛰어와 종분에게 건넨다.
 추워서 발갛게 부르튼 손이 부끄러운 종분, 재빨리 내린다.
 제 것은 다 헤져버린 종분의 신발을 보는 영주, 진흙이 묻은 종분의 고무신을 물로 닦아주고 손으로 쓱쓱 훑어준다.
 종분, 당황하다가 수줍게 웃는데,

영애 오빠 뭐해?!

 어느새 다가온 영애가 부르면 돌아서는 영주.
 영주가 다시 가자며 먼저 돌아서면, 그대로 서서 종분을 노려보는 영애.

영애 웃지 마.
종분 어?
영애 우리 오빠보고 웃지 말라고. 그거 되게 헤퍼 보여.

 쏘아붙이는 영애의 말에 얼음처럼 굳는 종분.
 ‘영애야!’ 부르는 영주의 소리에 쌩하니 돌아서는 영애.
 종길의 운동화를 꼭 붙든 어린 종분의 손.
 속상한 종분, 고개 떨구면 영주가 닦아줬지만 여전히 허름한 제 신발 보이고.

18. 란 뜨개방 / 낮
 난로에 젖고 헤진 신발을 벗어 말리고 있는 종분.
 눈길에 젖어 더 벌어진 신발 앞코를 붙여보지만 소용없다.
 아주머니 두 명(편의상 줌1, 줌2), 뜨개방 주인 깜씨가 수다 삼매경이고.

줌1 (종분의 고지서 보며) 혼자 얼마나 쓴다고 이래 나온댜? 누전 된 거 아니야? 차단기 확인해 보셨어?
종분 쓴 만큼 나왔겠지, 공으로 가져갔을까.

 종분이 마감한 니트를 깜씨에게 넘기면, 깜씨가 꼼꼼히 살피는 사이,

줌2 아이구 형님, 한전가서 따져요. 아님 호구로 본다구.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 나는 집이 얼마나 많은데 바락바락 올리기만 하구.
줌1 그래, 따져야 돼. 그냥 넘어가면 얼씨구나 하지. 돈만 내라내라 하지 말고 잘못됐을 때도 먼저 해주면 얼마나 좋아. 이러니까 모르는 사람만 당한다고.

 깜씨, 만족한 얼굴로 공인비 5만원을 꺼내 종분에게 건넨다.

깜씨 역시 형님처럼 손이 잰 분이 없어. 형님 실력은 알아줘야 된다니까.
종분 그럼 만원만 더 줘. 이건 품이 많이 들었어.
깜씨 아유 형님, 실 값 빼고 공인비 빼고, 얼마 남도 않고 파는데…
종분 더 줘. 내 어디 늦는 거 봤어? 밤새 하믄 허리고 어깨고 남아나질 않아.

 종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음 뜨개질거리를 챙긴다.

종분 이번 건 7만원은 챙겨줘, 응?
 
 배낭에 손가방에, 주섬주섬 들고 나가는 종분을 보며 뜨악해하는 깜씨.

깜씨 지독해 지독해.
줌1 저 나이에 가족도 없이 빌어먹지 않고 살기가 어디 쉬어?
줌2 그러게, 자식 얘기도 않는 거 보면 사연이 있긴 있는데.
깜씨 도통 자기 얘긴 안하니까 알 수가 있나….

19. 학교, 교실 / 낮
 점심시간 종을 알리는 소리와 동시에 우르르 빠져나가는 학생들.
 오늘 반찬 뭐래? 진짜? 뛰어- 급식실로 달려가며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들.
 썰물 빠지듯 빈 교실 안, 은수만 홀로 책상에 엎드려 있다.
 학생들의 소음도 멀어지면, 가만히 눈을 뜨는 은수.
 은수의 시점 샷, 교실 창밖으로 눈부시게 푸른 하늘 보인다.
 달달- 다리를 떨며 창밖을 보다 다시 눈을 감는데, ‘장은수!’ 부르는 소리.

20. 학교, 교무실 / 낮
 시선 다른 데 두고 선생의 말은 듣지 않는 은수.

선생 오늘도 점심시간 돼서야 나오셨어? 너 계속 이럴 거면 보호자 모셔 오라 그랬지? … 뻑하면 무단결석에, 내키면 잠깐 들르는 데가 학교야?
은수 ……
선생 너 가출한 애들 집에 데려다 재우고 돈 받는다며? 그게 학생이 할 짓이니? 걸리면 너 퇴학이야, 알아? (이해 못하겠는) 도대체 왜 그러니? 
은수 돈이요… 돈이 없으니까 그러죠.
선생 (어이없는) 은수야, 너 착각하지 마. 아직 고등학교 의무교육 아니야. 다니기 싫음 나가. 너 말고도 신경 써야 될 애 많다, 어?
은수 그럼 신경 끄세요. 전 졸업만 하면 되니까.
선생 (하-) 너 진짜… 니 할머니가 너 이러는 거 알아? 미안하지도 않아? 사정이 그럴수록 니가 똑바로 살아야 될 거 아니야. 
은수 (피식-)
선생 웃어? 너 지금 웃었니?
은수 그럼 울어요? … 울까요?

 어이없는, 서랍 뒤져 자퇴서류를 꺼내 은수의 얼굴에 들이대는 선생.

선생 너 이거 써 놓고 나가. 나한테 걸리면 바로 내보낼 테니까… (하는데)

 은수, 서류를 구기며 받고는 쾅! 교무실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간다.
 
21. 학교, 교실 / 낮
 아직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은 빈 교실.
 은수, 제 가방을 챙기다가, 사물함이며 가방 등을 마구 뒤져 쓸 만한 물건을 쓸어 담는다.
 먹다 남은 우유팩을 들어 칠판에 확 던져버린다.
 은수의 책상 위에 구겨진 자퇴서 놓여 있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은수의 뒷모습.

22. 다리 밑, 또는 지하도 / 낮
 어딘가에 걸터앉아, 다리를 연신 떨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은수.
 훔쳐온 잡동사니 가득한 가방 뒤적이더니 크림빵 하나를 꺼낸다.
 우걱우걱- 목이 메어 힘겹게 넘긴다.
 멀리서 오토바이 엔진음이 들리면 남은 빵을 어거지로 입에 구겨 넣는 은수.
 또래 소녀들이 꽁무니에 올라탄 오토바이 보이는 곳으로 뛰어간다.

23. 솜틀집 앞 / 낮
 새로 튼 솜이불을 보자기에 싸 들고 솜틀집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 종분.
 신호 바뀌는가 싶은데, 횡단보도 앞에 급정거하는 오토바이 무리들.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올라탄 은수 보인다.
 헬멧도 없이, 맨 다리를 드러낸 은수, 위태로워 보인다.
 종분이 보자 반대로 고개를 돌리는 은수.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부앙- 요란하게 떠나는 오토바이.

24. 종분의 집, 부엌 / 저녁
 상 앞에 홀로 앉아 식사를 하는 종분.
 몇 수저 뜨는가 싶더니, 결국 밥에 물을 말아 후루룩 마시고 청량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반찬 대신 먹는다.
 
영애 (E) 종분아, 그렇게 먹음 속 베려.
 
 종분, 수저질을 멈추고 앞을 보면, 새침한 표정으로 마주보는 영애(15세).

영애 내가 몇 번 말해, 니 속 버리지 내 속 버리니?
 며칠 굶다 급하게 먹음 얼마 먹도 못하고 다 뱉어낸다니? -> 이것도 좋구요.. 며칠 굶는 다는 말에 호기심?

 종분, 놀라지도 않고 다시 물에 만 밥을 후루룩 마시면,

영애 내 말 듣니? … 나중에 속 아프다고 끙끙대기만 해? … 미련해 진짜.
종분 (물에 만 밥도 목에 넘기기 힘든, 꾸욱- 삼키면)
영애 (보다가) 무슨 일 있어?
종분 ……
영애 야, 내가 널 몰라? 너 할 말 있을 때 입 딱 다물잖아. 뭔데?
종분 …… 영애야… 너 아직도 니 아부지가 밉나?  
 
 대답없는 영애에게 독립유공자 포상 서류를 가져와 내미는 종분.

종분 니 아부지한테 훈장을 준다는데… 내가 어쩔까.
영애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놓인 서류를 보는)
종분 영애야…
영애 (서류 보며) 우리 아빠가 나라를 구했다네. (시니컬한) 웃겨…. 그럼 뭐해, 식구들은 다 지옥에 보내놓고…
 
 종분, 영애에게서 시선을 떼고 괜히 고추씨만 털어낸다.
 다시 고개를 들면 영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5. 종분의 집, 방 / 밤
 어둠 속에 켜 놓은 TV 브라운관의 불빛이 보인다.
 모로 누워 있던 종분, 몇 번이고 뒤척이다 안 되겠는지 일어난다. 
 사이다를 가져와 마신다. 
 답답한지 꺼억- 끄윽- 트림을 해보고, 가슴을 두드린다.
 창문을 열면, 겨울바람 소리 스산하게 들리는데, 여전히 답답하다.
  
 그때, 밖에서 끼이이이익- 소리 들린다.
 창문 너머로 보면, 은수와 또래들이 반지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 보인다.

또래 아 씨발 추워!! 야, 불 안 켜져?

 투덜거리는 또래들한테 ‘닥치고 들어가-’ 하며 밀어 넣는 은수.
 다시 끼이익- 문 닫히면,
 종분의 시점샷,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적막한 골목 풍경이 과거 학교 인근 거리와 오버랩되며, 타박타박 걸어오는 어린 종분의 모습.

26. 학교 인근 / 낮 (과거)
 종분, 땔감 장수가 보이지 않자 난감하다.
 예의 곰방대 할아버지만 자리에 나와 멍하니 앉아 있다.
 길바닥에 마른 나뭇가지 몇 개 줍고, 기운 빠져 앉는 종분.

종분 오늘은 땔감 아저씨 안 나왔대요?
할배 (여전히 대답 없는)
 
 종분, 풀썩 주저앉는데, 허리춤에 영주에게 받은 책이 꽂혀 있는 게 보인다. 
 
할배 (슬쩍 보더니) 소공녀.
종분 네?
할배 (곰방대로 책을 가리킬 뿐, 말은 않는)
종분 (책 꺼내 보다가) … 소공… 그게 뭐에요?
할배 … 공주… 이쁜 공주.

 할아버지의 말에, 헤에- 바보같이 웃는 종분.  
 할아버지, 거친 손으로 종분의 머리 한 번 쓸어주고는 다시 뻑뻑- 곰방대만 연신 빨며 씁쓸한 표정이다.
 그때, 아직 끝날 시간도 아닌데 학교에서 나와 뛰어가는 영애.
 뭐지? 하고 보다가, 괜히 또 무시당할까 싶어 그냥 고개 돌리는 종분.

27. 시골 종분의 집, 마당 / 낮 (과거)
 종분, 들어오다 보면 종분의 엄마가 마당 한 쪽 땅을 파 그릇을 묻고 있다. 
 멀뚱히 서 있는 종길의 손에도 이미 보따리가 한 가득이다.
 종분을 보자 다짜고짜 끌고 가는 종분 母.

28. 시골 종분의 집, 뒤뜰 / 낮 (과거)
 뒤뜰에 파 놓은 음식 저장용 굴속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종길.

종길 싫다고, 답답하다고!

 그런 종길의 사정을 볼 것도 없이 밀어 넣는 종분 母.
 엄마, 종분에게도 말린 옥수수와 곡식, 그릇 몇 개를 들린다.
 종분은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오려는 종길에게 쉿! 하며 들어가는 종분.
 엄마, 그 위에 급히 거적을 덮고, 짚을 들어다 쌓고, 허겁지겁 눈을 손으로 긁어모아 흩뿌린다.
 
29. 굴 안 / 낮 (과거)
 낮이지만 어둠 속.
 퀴퀴한 냄새에 좁은 굴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종분과 종길.
 못 참겠는지 나가려는 종길을 붙들어 앉히는 종분, 그때 발자국 소리 들린다.
 웅얼거리는 소리, 쿵쿵- 울리는 소리, 쨍그랑 깨지는 소리. 
 종분, 종길을 끌어안고 불안을 견딘다.

30. 시골 종분의 집 / 낮 (과거)
 굴속에서 지푸라기를 헤집고 나와 지저분한 종분.
 종길은 뒤에서 오줌을 갈기고. 
 부서지고 망가진 살람살이만 나뒹구는 집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종분 엄마! 엄마!! 엄마아-

 종분이 엄마를 부르자 덩달아 불안한지 바지춤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뛰어와 같이 ‘엄마! 엄마!’ 부르는 종길.
 다행히 종분 엄마, 헝클어진 모습으로 집안으로 들어선다.
 종길, 엄마아- 하며 뛰어가 다리에 들러붙는다.
 맞고 끌려 다닌 모습 역력한데, 종분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
 깨진 장독을 어떻게든 해보려, 걱정이 한 가득인 엄마.

엄마 지들 필요하면 뺏으러 오고, 수틀리믄 족치러 오고… 어째 갈수록 더 그악시러. 공출로 죄 가져가면, 우덜은 뭘 먹고 살라고….

 종분, 잉- 엄마한테 가 안긴다.

엄마 다 큰 년이…
종분 엄마-.
엄마 종분이 너 잘 들어. 전매서기댁 양반이 일본놈들 돈 빼돌려 만주로 어디로 독립 운동하라구 줬다잖아. 지금 난리도 아니야. 괜히 바람 들어 나댕기지 말어. 그 집 아들도 잡히가는 마당에… 아부지 돌아올 때까지는 꼭 집에 붙어 있어야 할 거 아니여.

 종분, 엄마에게 떨어져 뭐? 라는 얼굴이다.

종분 전매서면, 영애네 집이잖어.
엄마 그 집도 참… 큰 아들 보낸 지 얼마 됐다구….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을 뛰쳐나가는 종분.

31. 시골길 / 낮 (과거)
 쉴 새 없이 달리는 종분,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달린다.

32. 영애의 집 앞 / 낮 (과거)
 영애의 집 앞에 마을 사람들 모여 웅성거리고, 트럭(짚차) 세워져 있다.
 헌병들이 왔다갔다- 집안을 뒤지고, 세간들이 거칠게 밖으로 끄집어내진다.
 새로 한 깨끗한 목화솜 이불이 군홧발에 밟힌다.
 담 너머 영애의 엄마를 부축하고 있는 영주와 하얗게 질린 영애도 보인다.
 종분, 마을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가 보면,
 영주가 군속들에게 끌려나온다.
 영주 엄마, 이미 실신해 쓰러져 있고, 영애는 엄마를 돌보느라 제 오빠가 끌려가는지도 모른다.

영주 영애야, 영애야!

 영애, 엄마만 보느라 정신이 나가 영주를 보지 못하는데,

영주 금방 올 테니까, 니가 어머니 잘 모시고 있어. 들었니?

 영애야, 또 부르려는데 퍽- 총부리로 영주를 때리는 군속.
 영주, 맞다가 종분과 눈이 마주친다.
 놀란 종분을 도리어 진정시키며 고개 끄덕이는 영주.
 영주, 밀려서 트럭(짚차)에 올라타는데,
 두려워 피하고만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할배 야 이놈들아! 젊은 것을 죄다 잡아가믄 농산 누가 짓냐! 이 육시럴 놈들아!

 평소 멍하던 할아버지, 곰방대를 휘두르며 소리치면, 헌병이 사정없이 할아버지를 밀친다.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날 잡아가라, 이놈들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를 향한 가차 없는 발길질.
 그제야 영주가 끌려가는 걸 알아챈 영애, 그러나 이미 늦었다.
 군속들에게 채이고 밀려 넘어진 영애, 오빠를 부르지도 못하고 인사도 못했는데 철컹- 칸막이 올라가며 가로막는 군인들.
 시동이 걸린 트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영주, 
 종분, 악착같이 파고들어 영주에게 손짓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영주.
 종분, 넘어진 채 멍하니 있는 영애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는 뛰기 시작한다.

33. 산등성이 / 낮 (과거)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숨이 찬 영애, 종분의 손을 내치며 원망스레 보는데, 도로 위로 트럭 보인다.
 종분, 팔이 떨어져나가라 손을 흔든다.
 트럭 사이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미는 실루엣이 보인다.

영애 (그제야 눈이 휘둥그레) 오빠! 오빠!

 종분은 뒤에서 더 열심히, 이번엔 두 팔을 흔든다.
 트럭이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면 영애는 주저앉는데,
 종분은 두 손으로 양쪽 눈물을 연신 훔치면서도 손을 계속 흔든다.
 잠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일어나는 영애.
 
영애 우리 오빠 내년에 은행 들어가기로 돼있었다. 괜찮아. 1년만 있다 돌아온댔어.
종분 (보면)
영애 니 괜히 헛꿈 꾸지 마라.

 영애, 종분에게 쏘아붙이고는 먼저 언덕을 내려간다.
 따라가지 못하고 멀뚱히 서서, 헤진 제 신발만 내려다보는 종분.

(E) 짝- 뺨 때리는 소리.

34. 고등보통학교, 교무실 / 낮 (과거)  
 젖혀졌던 고개를 바로 하는 영애.

교사 (日) 니 아버지 이름이 뭐야?
영애 (日) 칸노 미츠하라입니다.

 짝!

교사 (日) 이름이 뭐라고?
영애 (日) 칸노…
교사 (日) 소시카이메이(創氏改名) 시나이 쿠세니! 강희원, 니 아버지 맞아?
영애 ……
교사 (日) 고노 우소쯔키! 애비한테 그리 배웠냐?! 니 애비는 도로보다, 도로보! 말해, 니 애비는 뭐라고?

 영애, 입 꾹 다물고 차마 대답하지 못하면, 또 다시 짝!
 이번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영애.
 영애, 눈물 쓱 닦고는 다시 일어나 교사 앞에 똑바로 선다.
 교사, 질렸다는 얼굴로 영애를 보고.

35. 학교 인근 / 낮 (과거)
 종분, 이제는 땔감 장수도 할아버지도 없는 거리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있다.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빈자리를 보는 종분.
 기운이 빠져 눈 내리깔고 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애나멜 구두.
 고개 들어보면 영애가 종분의 앞에 서 있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가리려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영애.
 종분이 어색하게 올려다보는데,

영애 뭐하니?
종분 … 추워서 … 햇빛 받을라구.
영애 (대뜸 옆에 앉는) …… 난 이제 여기 학교 안 다닌다.
종분 (보면)
영애 나도 일본 갈 거야. 그럼 상급학교도 보내주고 집도 준단다.
종분 일본으루? … 무섭지 않아?
영애 우리 오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영애, 말은 세게 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은 감추지 못한다.

종분 … 그래, 맞네. 일본가믄 오빠도 만나고… 잘 됐네.
영애 (묻지도 않는데 괜히) 학교 졸업하면… 돌아와서 선생님 할 거야.
종분 … 그래…. 

 나란히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는 두 사람.
 종분의 낡은 신발과 반짝이는 영애의 애나멜 신발이 비교된다.
 그러다 퍼뜩, 내가 왜 얘랑 앉아있지, 하는 얼굴로 일어나 가버리는 영애.
 또각또각 걸어가는 영애를 보며 몸을 웅크리는 종분. 

36. 종분의 집, 뒤편 / 아침
 은수, 한 손에 멀티탭을 들고 종분의 집 창에 매달려 바둥거린다.
 한 두 번이 아닌 솜씨로 익숙하게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코드를 꽂는다.
 탁탁 손을 털고 나오다가 멈칫하는 은수.
 보면, 삶아서 하얗게 된 깨끗한 이불 호청을 빨랫줄에 널고 있는 종분. 
 종분이 인기척에 돌아보면, 후다닥 들어가는 은수.
 그때, 집으로 들어서는 집주인, 부동산 업자와 함께다.

37. 은수의 집, 내부 / 아침
 멀티 탭에 가득 꽂힌 전원들.
 휴대폰 충전기, 깨진 전기포트에 물이 끓고 있고, 컵라면 보이고.
 이불을 두르고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며 핸드폰을 확인하는 은수.
 그때,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

주인 (E) 문은 고칠 거고… 도배, 장판 싹 다시 하고…
업자 (E) 싱크대는요?
주인 (E) 싱크댄 아직 쓸만하지!
 
 은수, 총알처럼 일어나 튀어나간다.
 
은수 여기 사람 살거든요?!

 은수, 당황스러워하는 부동산 중개인과 주인을 몰아낸다.

38. 은수의 집, 외부 / 아침
 은수, 날을 세우고 소리를 지른다.

은수 왜 함부로 들어오고 지랄이야, 아침부터!!
주인 보증금 다 까먹어 내보낸 게 언젠데… 무단점거잖아, 이거!

 주인, 은수를 끌어내려는데 들어오려는 주인을 발로 차고 난리인 은수. 
 소란에 내려온 종분.
 주인이 종분을 보며 잠깐 방심한 찰나, 끼이익- 쾅!! 문을 닫아버리는 은수.
 야! 너 안 나와! 하며 문을 열어보다 안 되겠는지 창가 쪽으로 가는 주인.

39. 은수의 집, 내부 / 아침
 고장 난 문손잡이를 노끈으로 둘둘 말아 벽에 박힌 못에 단단히 묶는 은수.
 더는 열리지 않게 문고리를 꽉 잡고 있는 은수, 힘겹게 버틴다.

40. 은수의 집, 외부 / 아침
 주인, 창문 쇠창살 사이로 손을 넣더니 전선을 뜯어내 돌아온다.

주인 (멀티탭 들고 돌아오는) 내 이럴 줄 알았어. 할머니!! 이것 봐요. 얘가 할머니 집에서 전기까지 끌어다 쓴 거 보라고. (부동산 업자에게) 열쇠 하는 집 어디에요? 자물쇠부터 갈아야지, 진짜!
종분 … 그래도 이 겨울에…
주인 그런 말 마세요. 내가 자선사업해요? 꼴랑 이 집 네 가구 세 받아 먹고 사는데…. 이래서 주인이 같이  살아야 되는데… 자주 오는 게 쉬어요, 어디?

 주인, 업자에게 전화번호 받아, ‘거기 열쇠집이죠?’ 전화하며 나가면,
 종분, 금이 가 테잎을 붙여 놓은 반투명 유리 너머로 문고리를 붙들고 있는 은수의 그림자를 안쓰럽게 본다.

종분 얘, 다 갔어. …… 갔다니까? … 괜찮니?
은수 (E) 냅두라고! …… 아 쫌!!!
 
 종분, 내지르는 은수의 말에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놓고 돌아선다.
 가다가, 신경 쓰여 돌아보면 털썩 주저앉는 은수의 그림자.
 주인이 건넨 코드가 빠진 멀티탭을 손에 들고 보는 종분.

(E) 은수네요?

41. 란 뜨개방 / 낮
 종분과 깜씨, 줌2가 미나리며 실파를 다듬고 있다.

종분 낮에는 통 빈 집이구… 어째 만날 애만 혼자야.
깜씨 그 집 아빠가 케이블 달고 다녔지?
줌2 에이, 그 이 죽었어요, 꽤 됐지. 케이블 달다가 죽었다구.
깜씨 아이구, 맞다 맞아. 감전 당했던가, 그랬지? 엄마는 없든가?
줌2 저녁에 없었지. … 그래두 애 혼잔 아닐 텐데? 왜 정신 오락가락해도 할머니가 있잖아.
깜씨 아이구, 없는 집에 그런 노친네까지? 빨리 돌아가시는 게 도와주는 거지.
종분 (한숨) 요즘도 사는 건 다 힘들어. … 좋아졌다고 해도 힘든 사람은 여전히 힘들어.

 종분, 생각에 잠기는 얼굴인데, 가게 문 거칠게 열리며 줌1이 들어온다.

줌1 형님, 나 말리지 마요. 내 오늘 노래방 년 잡아 족칠 거야.
깜씨 니 서방이 밖으로 도는 걸 왜 남 탓을 해. 오입질한 서방을 먼저 잡아야지.

 줌1, 팽! 깜씨가 말던 실을 잡아채 집어 내던지고는,

줌 형님 그러는 거 아니에요, 형님도 혼자라고 노래방 편 들어주는 거 아니야. 둘이서 춤 배우러 다니고… 나이 들어 추잡스레 목욕탕서 철퍼덕 철퍼덕 마사지에…
깜씨 추잡? 그래, 자네 말대로 혼자라 내 맘대로 하겠는데, 그게 뭐? 지금 서방 있다고 유세떠는 거야? 

 줌2, 왜들 그래요- 하며 말리지만 드잡이를 할 기세까지 가는 깜씨와 줌1.

종분 (미나리 다듬다가 버럭) 못났다, 못났어. 저들끼리 싸우면 뭘 어쩌자고!

42. 종분의 집, 내부 / 저녁
 보지도 않으면서 틀어놓은 TV 소리 들리고.
 종분, 이불을 꺼내 호청을 씌우고 대바늘로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밖에서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는 종분.

43. 은수의 집, 내부 / 저녁
 또래들을 들여보내고 마지막으로 들어와 오며 고장 난 문손잡이를 노끈으로 둘둘 말아 벽에 박힌 못에 단단히 묶는 은수.
 어둠 속에서 물 트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꺄악! 비명소리 들린다.

또래1 씨발, 뭐야. 니네 집 뜨건 물 안 나와?!
또래2 어두워, 야 불도 안 켜지냐?
은수 (휴대폰 전등을 켜는) 나중에 씻고 그냥 자.
또래1 (전원 연결하는가 싶더니, 딸칵-) 뭐야, 불은 켜지네.

 은수, 아닐 텐데? 하는 얼굴로 가보면 다시 창밖으로 연결되어 있는 멀티탭.
 전선 따라 쇠창살 쳐진 창 위를 올려보는 은수.
 
또래2 야, 어떻게 집이 밖보다 더 추워. 이 봐-
 
 ‘하아-’ 하면서 입김을 보이는 또래. 
 밖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얼어 죽겠다- 하며 옷을 챙겨 입는 또래들.
 
은수 (말리는) 이불 덮고 자면 돼! 밖에 보다 훨 낫거든?
 
44. 종분의 집, 내부 / 밤
 한쪽 이불 아래, 봉긋이 올라온 부분.
 영애가 이불 안에 다리를 집어넣고 앉아 있다.

영애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따뜻하니 참 좋다.

 종분, 눈이 침침해 연신 눈을 비비고,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게 힘들다.

영애 (보다가) 너 참 늙었다.
종분 산 세월이 얼만데… 늙지 안 늙어….
영애 난 나이 드는 거 싫어. (빤히 보는) 하긴 넌 지금이 낫다. 주름이 많아서 옛날처럼 못생겨 보이진 않아. 그냥 늙어 보여.
종분 그 말투는 … 어째 변하질 않어.
영애 오래 살아 다행이다, 이 말이야.

 표정이며 말투가 소녀답지 않게 회한에 찬 영애를 보는 종분.

종분 영애야 … 니 오빠가 살아있을까? 
영애 …….
종분 하긴, 왜정 때 징용가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 죽었을 거야… 우리 목숨이야 벌거지만도 못했으니까… 그래… 한참 전에 죽었을 거야.
영애 ……
종분 내가 미련하게 살아남은 거지….

 아무 말 없는 두 사람의 모습 위로, TV 소리만 크게 들리는데,
 TV에선 신년을 맞아 일본 총리가 내각 각료와 함께 신사 참배를 한다는 뉴스, 우리 정부의 판이한 대응이 나온다.

종분 (채널 바꾸는) 나랏일 하는 양반들도 그놈이 다 그 놈이야. 어째 저래. 

 그때, 끼이이익- 은수 집 문이 열리며 또다시 불쾌한 소리.
 결국 은수 친구들이 나가는지 연속적으로 들리면,
 영애가 귀를 막고 한껏 인상을 찌푸린다.

영애 나 저 소리 싫어. 끔찍하게 싫어. 시끄러, 시끄러!!

 괴로워하는 영애를 보며 서늘해지는 종분의 표정 위로,

엄마 (E) 또,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45. 시골 종분의 집 / 낮 (과거)
 입술이 바짝 마른 종분의 엄마, 마당 한 쪽의 흙을 호미로 판다.
 
종분 뭐가 쓸데없는데? 일본가믄 학교도 가고, 집도 준다 안 해?!
엄마 이 화상아, 저 잡것들이 퍽이나 그러겠다. 나이를 얼루 먹어서 이래 맹탕이래?   

 엄마, 마당을 파내고 보자기에 싼 놋그릇을 꺼낸다.
 흙먼지 묻은 그릇을 손으로, 치맛자락으로 쓱쓱 닦아보는 엄마.

엄마 니 할머니가 … 밤새 잿물로 닦아내면 반짝반짝하니… 참 …

 한숨을 쉬는 엄마의 서글픈 표정에 더는 퉁퉁거리지 못하고 보는 종분.

46. 시골길 / 낮 (과거)
 그릇을 다시 싸매고 가는 엄마, 따라오는 종분은 매몰차게 내친다.

종분 왜? 나도 따라 갈란다!
엄마  어딜 따라와? 니까지 가믄, 종길인 혼자 둬?
종분 만날 만날 종길이 종길이!! 나는 종길이 보라고 낳나? 이럴 거 왜 낳나?!

 으이구! 하며 종주먹을 들이대는 엄마를 피해 잔뜩 부어 돌아서는 종분.
 
엄마 종분이 니 어데 나돌아 다니지 말고 꼭 집에 붙어있어!! (대답 없자) 종분아!! 그릇 팔아 밥 든든히 해줄거니께, 종길이 데리고 들어가 꼼짝 말고 집에서 기다려?! 야, 종분아!

 종분, 엄마가 부르건 말건, 귀를 막고는 털퍽털퍽 걸어가면,
 저걸 저… 하고 가다가도 안쓰러워 돌아보는 엄마.

47. 학교 운동장 / 낮 (과거)
 근로정신대 출범식을 위해 삼열 종대로 쭉 늘어선 소녀들.
 하얀 셔츠에 작업복 멜빵바지를 입고, 두건을 쓴 영애, 긴장한 채로 서 있다.
 깃발을 든 소녀와 그 옆에 어깨띠를 두른 소녀가 영애 옆에 서 있고.
 교사의 ‘앞으로 전진!’ 호령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영애.
 ‘성전의 승리를 위해 신심을 다해 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선서하는 영애.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 종길도 보이고, 다가오는 종분.
 영애를 부럽게 보다가 일어를 알아듣지 못해 같이 구경하는 종길에게 묻는다.

종분 뭐라는 거야? 응? 뭐래?
종길 몰라.
종분 니는 학교서 일본말 배우잖어, 영애가 지금 뭐라는데?
종길 (천진한) 몰라.

 ‘이걸 그냥-’ 하며 보는데, 선서를 마친 영애,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한다. 

48. 학교 인근 / 낮 (과거)
 종분, 괜히 섭섭하고 기운이 빠진다.
 놀러가겠다는 종길을 억지로 끌고 가며,

종분 저건 일본말을 잘해야지만 가는 거지?
종길 응.
종분 저기 가면 상급학교도 보내주고 그런다지?
종길 몰라.
종분 … 영애는 좋겠네. 돈두 벌고 선생도 하고.
종길 (불쑥) 누나, 나 석구네 갈란다.
종분 안 돼. 뛰다니고 놀믄 금세 배 꺼져서 안 돼. 집에 가 가만히 누워있어.

 종길, 뾰루퉁- 확! 종분의 손을 놓고 뛰어가면,
 야! 종길아!!! 부르지만 잡지는 않는 종분.
 그때, 차가 멈춰서며 창문 열리고 종분에게 말을 거는 사내.

사내 너도 가고 싶으냐?
종분 (경계하는) 네?
사내 너 배 타봤어?
종분 (고개 젓는)
사내 배 타고 싶지?
종분 (끄덕)
사내 일본서 중학교도 가고, 돈 벌어서 이밥도 양껏 먹고 싶지?
종분 (끄덕하는)
사내 그럼 일본 가자. 아무나 못 가는데, 지금 가면 쟤들 따라 갈 수 있지.
종분 …… 엄마가 아부지 돌아오실 때까진 암 데도 가지 말랬는데….
사내 몰래 도망 나오면 되지.
종분 (보면) 아저씨 누구세요?
사내 (웃으며) 어때, 나 따라 갈 테냐?

 종분, 갈등하는 눈빛으로 사내를 보다가 대뜸 고개를 젓는다.
 뒤로 주춤하더니 뛰어 가버리는 종분을 음흉하게 보는 사내.

49. 시골집, 부엌 / 낮 (과거)
 재래식 부엌, 불이 사그라지는 아궁이.
 며칠 굶어 파리한 얼굴로 쌀독이며 항아리를 열어보는 종분.
 빈 통에 한숨만 나오는 종분.
 그때, 종길이가 뛰어와 가마솥을 여는데, 물뿐이자 왕- 울음을 터트린다.

종길 나 배고파 죽는다! 배고파!!
종분 시끄럽다! 그러게 뛰다니지 말랬지!
 
 종분, 말은 걸지만 퀭한 종길의 얼굴이 안쓰럽다.
 벽에 걸어둔 마른 나물을 뜯어내 가마솥 물에 불린다.
 나무 주걱으로 나물을 끓이는 종분의 옆에 쪼그리고 앉는 종길.
 더러운 얼굴에 눈물 자국만 하얀, 꾀죄죄한 모습이다.
 종분, 낡은 행주에 물을 묻혀 종길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준다.  

50. 시골집, 방안 / 밤 (과거)
 이불 안, 종분을 꼭 끌어안고 있는 종길.
 짐승 우는 소리, 나무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만 을씨년스럽게 들린다.
 
종길 엄마 언제 오는데?
종분 서천에 그릇 팔러 간 댔잖아. 이제 하룻밤만 자면 돼.
종길 진짜?
종분 응.

 그때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 종분 뭐지 싶어 고개를 드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벌컥 방문이 열린다. 
 어두운 방안을 휘익- 둘러보는 후레쉬.
 종길이 무서운지 누나- 하며 팔을 붙든다.
 후레쉬 불빛, 놀란 종분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면 눈을 찌푸리는 종분.
 어둠 속에서 눈부신 후레쉬를 들고 서 있는 검은 형체가 무섭게 보인다. 

종분 (두려움에, 종길을 안으며) 누구세요?

 후레쉬 불빛,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종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 간다. 급작스런 사태에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는 종분.
 종길, ‘누나- 누나-’ 하는데, 퍽- 종길을 발로 차는 사내.
 
종분 (끌려가는 와중에도) 종길아, 따라오지 마. 들어가!

 넘어져, 어안이 벙벙해 울먹이며 누나, 누나-, 종분을 애타게 보는 종길.
  종분이 끌려가며 보이는 흔들리는 후레쉬 불빛 위로,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소리, 증기가 빠지는 소리.

51. 기차 안 / 낮 (과거)
 덜컹이는 기차 안, 소녀 종분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다.
 화물칸을 빼곡하게 채운 종분 또래의 소녀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
 서서히 기차가 속도를 줄이면 고개를 드는 종분의 얼굴에 생채기가 선명하다. 
 곧 기차가 멈추면, 웅성거리는 소녀들, 두려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철컹! 화물칸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끼이이이익- 차디찬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육중한 문.
 일본군들에게 떠밀려 다른 소녀들이 올라탄다.
 좁은 틈에 짐짝처럼 떠밀리는 소녀들, 꺄아악 비명소리.
 그 소녀들 사이, 영애도 있다.
 놀란 종분, 영애야- 하며 소녀들을 헤치고 다가온다.

종분 영애야, 영애야!
영애 (종분을 보자 놀란)
종분 니가 왜 여깄어, 어?
영애 (표정 굳는)
종분 이거 일본 가는 거야? 넌 진즉에 일본에 공부하러 갔잖아, 응?
영애 아니야!!! (벌떡 일어나 소녀들 비집고 나가며) 난 아니에요! 나는 근로단이에요! 잘못 왔어요! 보세요!!

 영애, 근로정신대 출범식 때 둘렀던 팔띠를 흔들어 보이며 악착같이 입구로 나가 일본군을 잡고 늘어진다.

영애 (日) 우리 아빠가 전매서기에요. 아빠한테 연락 좀 해주세요. 충청남도 강경이요, 면사무소 옆에 우리 집이 있어요. 아빠 이름이 강희… 칸노 마츠하라(하는데) 

 뻥-! 일본군 발에 채여 뒤로 사정없이 넘어지는 영애. 
 아픔보다 이런 처분에 놀라 넋이 나간다.
 쓰러진 영애를 일으키는 종분, 괜찮아? 묻는데, 종분의 손을 쳐내는 영애.
 그때, 옆에 있던 소녀(아야코)가 끼어든다.

아야코 야야, 니도 잘못 왔나? 내도 심부름 가다 잘못 왔다… (울상) 큰일 났다.
종분 (애써, 아야코에게) 잘못된 거 맞아요. 영애는 일본으루 뽑혀 간 거예요. 학교서 일등해서… (하는데 영애의 차가운 시선에 말을 흐리는)
아야코 맞나? 그럼 이게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종분 (덜컥, 무서운) … 참말로 큰일이네… 나도 우리 종길이 혼자 두고 와서… 얼른 가봐야 되는데… (억울한) 나도 온다 한 적 없어.
영애 (싸늘한) 여기 오고 싶어 온 사람이 어딨니?
종분 그니까 잘못 왔다 말하믄…
영애 (답답한) 다들 잘못 왔다는데,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건데?

 영애의 말에 두려워하는 기색 감추지 못하는 종분과 아야코.
  종분, 눈물이 얼룩져 거뭇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면, 
 화물칸 입구의 좁은 틈으로 드넓은 눈밭과 눈부시게 새파란 하늘이 보인다.

종분 … 영애야 저기 봐봐… 산도 없이 어째 저래 넓대?
영애 ……
종분 영애 니는 기차 타봤지? 그지? 참 끝도 없이 간다, 봐라.… 어데까지 갈라나.

 영애, 더는 독하게 말 못하고, 종분이 보는 풍경을 같이 바라본다.
 어느새 소녀들, 기차칸 좁은 틈으로 머리를 디밀고 풍경을 본다.

종분 (울먹이는) 엄마가 기다리랬는데… 말도 못하고 와서 날 찾을 건데…

52. 시골 종분의 집 / 낮 (과거)
 지친 기색 역력해 집으로 들어서는 종분의 엄마, 보따리 들고 있다.
 적막한 기운에 집안을 둘러보는데, 마당 한 쪽에 버려진 종분의 신발.
 낡은 종분의 신발을 보다가 보따리를 놓치는 엄마.
 투둑- 감자며 옥수수며 바닥에 떨어지고.
 방안으로 뛰어가는 엄마, 그러나 헝클어진 빈 방.

종분 (E) 엄마가 찾을 건데… 나를 한참을 찾을 건데…

 엄마, 다 떨어져가는 종분의 신발을 들어 손에 꼭 붙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엄마 종분아! 종길아! … (중얼) 내 새끼들이 어딨을까 … (쥐어 짜내는) 종분아, 종길아! … 밥 먹자!!

 휘청휘청, 넋을 놓고 뛰다가 멈춰서 둘러보다가 걷다가 하는 엄마.
 
53. 위안소 전경 / 낮 (과거)
 군용차 줄줄이 서고 소녀들 내린다.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오는 소녀들.

54. 위안소 복도 / 낮 (과거)
  좁은 복도에 다닥다닥 붙은 방문위로 나무로 된 번호표가 달려있다.
 끼익- 끼익- 문 열리며 한 명씩 처넣어지는 소녀들 사이 종분, 영애.
 방안에서 엄마야- 하며 되돌아 나오면 사정없이 맞고.

55. 위안소 방안 / 낮 (과거)
 종분, 이게 다 뭐야, 라는 얼굴로 좁은 방안을 둘러보다가,
 창문에 고개를 빼고 내다보면, 삭막한 막사의 풍경.
 그때, 끼이익- 방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종분의 순박한 얼굴에서,  

56. 종분의 집, 내부 / 밤
 종분, 무와 미나리, 실파 등이 들어간 김치통에 고춧가루 푼 물을 넣는다.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고는 흡족한 표정의 종분.

종분 무가 실하니, 이번엔 물김치 맛있게 담가지겠네. 고생이래두 경동시장서 사야 물건이 싸고 좋아.

 종분의 말에 대답 없는, 적막한 집 안.
 종분, 집안을 둘러보며 ‘영애야-’ 불러보지만 역시나 대답 없다.

종분 전번에 내가 니 오빠 얘기했다고 삐졌어? 어?

 여전히 영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불안한 표정의 종분.
 영애야- 한 번 더 불러보고는, 기운이 빠진 듯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시간 경과)
 종분, 뜨개질 바늘을 손에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비몽사몽간에 캉캉- 철문을 발로 차는 소리 들린다.
 종분, 정신을 차리고 뭔 소린가 싶은데,
 낮은 욕지거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캉! 소리 들린다.
 
57. 종분의 집 앞 / 밤
 은수,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걸 알면서도 거칠게 잡아당기다가, 
 캉! 발로 현관문을 차고도 성질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캉캉! 차버린다.
 종분, 집에서 나와 은수를 말린다.
 
종분 얘얘, 지금이 몇 신데 이래.

 하다가 보면, 누구한테 맞았는지 상처투성이인 은수.
 은수, 종분을 무시하고 창문 쪽으로 가보지만 방범창이라 쇠창살이 단단하다.

은수 (혼잣말) 씨발- 짐도 못 빼게….
종분 얼굴이 왜 그래? 맞았어? (다시 보다가) 맞았네!
은수 (얼굴 돌리면)
종분 어디 봐봐.
은수 됐어요.
종분 젊다고 몸이 무쇤지 알아? 약이라도 발라야…
은수 (짜증) 괜찮다구요.
종분 괜찮긴? 내가 숱하게 맞아봐서 알고 하는 소리야. 지금은 괜찮아도 그게 다 몸에 남아. 나이 들면 골병들어 고생해.
은수 (보면)
종분 … 아침에 집주인이 달고 갔는데… 몰랐니?
은수 ……
종분 니 할머니 계시담서? 집에 안 계셔? 이 집에 니 혼자여?
은수 할머니 없는데요?
종분 응?
은수 죽었는데….

 종분, 당황해 암 말 못 하면, 괜히 참견 말라는 표정으로 보는 은수.
 독한, 그러나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은수.
 은수, 종분을 밀치고는 얇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골목으로 나선다.

58. 골목 / 밤
 종분, 은수를 잡는다.

종분 어디 갈 데가 있어?
은수 없는데요.
종분 이 밤에 혼자 어쩌려고? 내 집서 밤은 보내고…
은수 싫은데요? … 불쌍하면 3만원만 줘요. 모텔이라도 가게.
종분 (당황스러워 보면)
은수 (거보란 듯) 줄 것도 아니면서 참견은… 

 종분이 잡은 손을 차갑게 내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가는 은수.
 얇은 옷차림, 잔뜩 움츠린 은수의 뒷모습을 망연히 보는 종분.
 휑한 골목, 바람 소리.
 어어, 안 되는데- 쫓아가는 종분의 뒷모습에서,

59. 병참소(兵站所) / 아침 (과거)
 소녀들, 지치고 기운 없는 얼굴로 쭉 줄을 서 있다.
 마마상이 무섭게 다그치면 주춤하다가도 삿쿠와 소독약을 받는 소녀들.
 그 사이, 종분과 영애도 보인다. 
 종분, 제 몫을 받고는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면,
 그런 종분을 싸늘하게 보는 영애, 입술은 터지고, 엉망인 몰골이다.

60. 위안소 일각 / 아침 (과거)
 영애, 병참소에서 나오는데 종분이 기다리고 있다가 쪼르르 다가온다.

영애 너 바보니?
종분 응?
영애 (앙칼지게) 고개는 왜 숙여? 좋니?
종분 (당황스런) 아니… 그게 아닌데…
영애 (확- 삿쿠며 소독약 내동댕이치며) 너 다 가져, 이딴 거 너나 해!!

 영애, 종분을 밀치고는 위안소로 빠르게 걸어가면 억울한 종분.
 영애를 노려보다가도, 이내 영애가 버리고 간 삿쿠와 소독약을 챙긴다.
 그러다 다시 억울한, 지만 힘들어?! 하는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는 영애를 올려보는 종분.  
   
61. 위안소, 복도 / 낮 (과거)
 긴 복도, 줄지어 있는 쪽방 문.
 군인들이 오가며 끼익- 끼익- 문소리만 요란하다.
 마마상, 입구에 앉아 군인들에게 돈을 받고 군표 한 장씩을 나눠주고 있다.

62. 위안소, 종분의 방 / 저녁 (과거)
 군화발로 모포를 짓밟으며 밖으로 나가는 군인, 끼이익- 문소리.
 한쪽에 웅크리고 있던 종분, 그제야 끄응- 하며 일어난다.
 발길에 채였는지, 허리를 잡고 끙끙 거린다.
 작은 창문을 내다보면, 군인들 한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종분, 모포를 탈탈 털어 개고, 무릎을 꿇고 앉아 제 방에 걸레질을 한다.
 더러운 것을 씻어내겠다는 듯이 악착같이 닦는다.
 눈물이 나면 쓰윽- 손 등으로 닦아내고 다시 걸레질이다.
 걸레질이 끝나면 하얀 소독약 가루를 모포에 뿌려 손으로 탁탁탁 두드리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온 마마상, 종분에게 나오라며 손짓을 한다.

63. 위안소, 영애의 방 / 밤 (과거)
 종분, 갈색 약병을 들고 잔뜩 쫄아 서있다.
 마마상,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영애의 양 볼을 누르며 입을 벌리려 한다.

마마 안 먹음 너만 다쳐.

 억지로 먹이려는 마마상의 손길을 기어이 물리치는 영애.

마마 뭔 고집이래. … 야, 지금 죽이나 낳고 죽이나 똑같아. 벌려.

 입을 벌리지 않고 버티며 고개를 흔든다.
 혀를 깨물었는지 입술에 핏물이 맺힌다.   
 마마상, 종분에게 눈짓한다.
 
종분 영애야… (사정조로) 배부르면 어디 델구가 쏴죽인대, 그냥 먹자, 응? 영애야.

 종분을 밀치는 영애.
 마마상, 다시 한 번 영애의 입을 벌리려고 옥신각신하다 혀를 내두른다.

마마 죽고 싶어 이러나 본데, 너 잘 들어. 여기선 니 맘대론 못 죽어.
 
 차갑고 담담하게 말하다 갑자기 화가 치미는지 퍽! 영애의 머리를 가차 없이 때리는 마마상.

마마 니 뱃속에 씨도 모르는 애 새끼는 어떻게든 죽을 거고. (밖을 향해, (日)) 여기!! 이년 좀 잡아!

 마마, 소리치면 군인 두어 명, 들어온다.
 겁에 질린 종분, 뒤로 주춤하고,
 ‘입 벌려!(日)’ 마마의 지시에 영애의 입을 어거지로 벌리는 군인들.
 피와 함께 갈색 물약이 영애의 입으로 들어간다.
 퉤퉤- 하지만, 반쯤은 먹은 것 같고.

마마 (종분에게) 넌 오늘 여기서 얘 지켜라. 저 년이 밤사이 죽겠다고 목이라도 매면 너도 같이 죽어. 알아들어?

 종분, 반쯤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끄덕.
 마마상, 군인들과 같이 나가면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영애.
 종분, 쓰러진 영애를 일으켜 앉힌다.
 흐른 피를 닦아 주는 종분을 경멸스럽게 보는 영애.

영애 죽을까봐 무섭니?
종분 영애야….
영애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지….
종분 그래두 살아 돌아가야… (하는데)

 영애, 종분의 손을 거칠게 밀어버린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종분, 울컥해 영애를 보면,

영애 가, 너는 굽신거리면서 그렇게 살아.
종분 안 가! 니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잖아!
영애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영애, 분을 참지 못하고 종분의 머리를 퍽! 때린다.
 그대로 맞고 있나 싶은데, 갑자기 일어나 영애의 머리를 퍽! 때리는 종분.

영애 (놀라 보면)
종분 너 착각하지 마라, 니가 아직도 잘난 그 강영앤줄 알아? 니나 나나 똑같애. 
영애 (분해서 나오는 눈물 참으며, 씩씩거리며 보면)
종분 죽을거믄 너 혼자 죽어, 난 싫다! 난 살아서 돌아갈 거야!
 
 종분, 영애가 나가지 못하게 문 앞에 벌렁 드러눕는다.
 
영애 그래… 너나 나나… (체념조로) 누가 우릴 신경이나 쓰겠니…

 영애, 벽에 기대 쪼그리고 앉는다.
 그러다 스르르 무너지듯 벽을 향해 돌아눕는 영애.
 그런 영애를 불안하게 보는 종분.

64. 위안소 전경 / 새벽 (과거)
 푸르스름한 새벽, 위안소의 전경은 삭막하기만 하다.

65. 위안소, 영애의 방 / 새벽 (과거)
 벽에 기대 졸고 있는 종분.
 작은 창문으로 새벽 햇살 한 점이 들어온다.
 으스스한 추위에 몸을 떨며 눈을 뜨는 종분. 
 어라? 모포를 들춰보지만 영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66. 겨울 숲길 / 새벽 (과거)
 쭉쭉 뻗은 나무들, 마른 가지들, 창살처럼 보인다.
 몸에 생채기를 내며 가지들을 손으로 쳐내며 정신없이 걷는 영애.

67. 강가 / 새벽 (과거)
 눈앞에 펼쳐지는 얼음강, 차가운 풍경. 
 영애, 거친 호흡을 잠시 고르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얼음강을 바라본다.

68. 얼음강 / 낮 (과거)
 캉캉- 영애가 던진 돌덩이가 얼음 위를 튕긴다.
 영애, 그대로 돌이 있는 곳 까지 걸어가 다시 강 한가운데를 향해 던진다.
 차갑게 얼어붙은 강 표면에 내던져지는 돌. 캉! 캉!
 
종분 (E) 영애야! 영애야!

 돌아보면, 종분이 영애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뛰어오는 종분.
 영애, 다시 한 번 돌을 던지는데 이번엔 캉캉- 튕기던 돌이 퍽- 소리와 함께 얼음을 깨트리며 가라앉는다.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깨진 얼음강을 향해 발을 내딛는 영애.
 어느새 다가온 종분이 그런 영애를 잡는다. 

영애 놔! 나 좀 냅 둬! 놔! 내 놔!

 독기를 품고 종분을 보는 영애.
 종분, 힘껏 돌을 멀리 던져 버린다.

종분 안 돼, 영애야, 죽는 건 안 돼.
영애 살고 싶음 너나 짐승같이 살아, 나는 싫어!
종분 죽는 게 제일 쉽다, 너. 살아서 돌아가야 안 해?
 
 영애, 종분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영애, 종분을 밀친다.
 더 멀리, 얼음이 얕은 곳으로 가려는 영애와 말리는 종분.
 서로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위로, 탕! 총소리.
 보면, 강가로 뛰어오는 일본군 보인다.

영애 니가 데려왔니? 니가 데려왔어?

 종분, 섣불리 아니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벌떡 일어나는 영애, 총구를 들이댄 군인을 향해 당당히 선다.
 나를 당장 쏘라는 듯이, 죽여 달라는 듯이 군인을 노려보는 영애.

종분 (당황해) 아니에요! 가요! 저희 가요!!

 영애, 더 대담하게 한 발을 내딛는데, 쩌어억- 금이 가는 얼음강.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이 위태로운 얼음강을 보는 종분.
 영애,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발을 옮기는데, 푹- 발이 빠지며 고꾸라진다. 
 ‘영애야!’ 그런 영애를 뒤에서 당기며 끌어안는 종분의 얼굴위로,

- 1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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