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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6번 마네킨, 영희] 문은아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11.18|조회수1,110 목록 댓글 1

[6번 마네킨, 영희] 문은아







       
씬 1 중환자실 앞(밤)
   
중환자실 앞 팻말 󰡐관계자외 출입금지󰡑가 큼직히      써 있고, 교복을 입고 초초하게 앉아있는 영희.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불어있다.
영희    ...
복도 끝을 돌아오는 장민자.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
영희    (문득한 느낌에 돌아본다)
장민자    (멈추는, 그리고 잠시)너였니, 전화한 아이가?    
영희    (갈라지는) 네.
장민자    왜?
영희    (의외) 네?
침묵. 영희 장민자를 곁눈질로 살펴본다.
장민자    (사이) ... 계속 그렇게 앉아서 얘기할 셈이냐?
영희    ! (일어서는) 죄송해요.
    엄마가 많이 찾으셨어요. 자꾸 이모를 불러 달라구 하셔서.
장민자    ...이모? (중환자실 안을 들여다보는)
영희    부탁이에요. 꼭 하실 말씀이      있으시댔어요.
장민자    ...(흔들리는)
장민자, 영희를 잠시 바라보다 걸음을 돌린다.
떨리는 손으로 중환자실     문을 여는데,
영희    저기요.
장민자    (멈춰서서 돌아보는)
영희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이모때문에 매일밤 많이 괴로와 하셨어요.
장민자    ...(들어가는)
영희    ...
그 모습을 보며 꼼짝 않는 영희
영희    (E) 아버지의 아내를 처음 본 것이 그날이었다. 엄만 그저 나한텐 이모라고 했지만 난 담박에 알아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엄마 마저 따라가시던 작년 그날 밤. 난 아버지의 아내를 처음 본 것이다.

       
씬 2 화장터(낮)
   
화장로의 불길이 확 올라오고, 천천히 들어가는 관.   
그것을 보고 있는 영희.     손에 들린 엄마의 영정.      환히 웃는.
영희    (울고 있고)
장민자는 무표정한 얼굴이다.
몇없는 조문객 사이에서 마치 남처럼 저 뒤에 서 있다.
영희    (E) 그녀는 처음부터 화장을 원했다. 아니, 끝까지 고집했다. 아버지 옆에 우리 엄마를 묻는 걸 반대했다.
불길 속에 타들어가는 관

       
씬 3 국도(낮)
   
한갓진 국도를 달리는 고급 승용차
영희    (E) 돌아가신 엄마와는 자매라고 했지만 그녀는 단 한방울도 눈물    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듯 차분했고 또 냉정했다.    

       
씬 4 달리는 차안(낮)
   
운전하는 장민자.
조수석의 영희는 유골단지를 들고 있다.
장민자    (냉랭히) 그건 저쪽 강가 쯤에서 뿌리는게 어떠냐?
영희    ... (외면한 채 창밖만 보는)
장민자    윤정이, (사이) 니 에미가 보험금 수령인을 나로 해놨더구나.
영희    (E) 그녀는 나의 엄마 이름조차 징그러운 벌레처럼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불렀다.
영희    (그제서야) 보험이요?
장민자    몰랐니? 꽤 큰 돈이던데.
영희    ...
장민자    당분간은 내가 보관하마. 어른이 되면 돌려주기로 하고, 어떠냐?
영희    ...네에.
장민자    (문득) 돈 때문에 널 키운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나도 있을 만큼 있으니까.
영희    (보는)

       
씬 5 국도(낮)
   
달려 멀어지는 승용차.
저기 원경의 산과 강
디졸브

       
씬 6 도시 전경(낮)
   
희뿌연 서울의 하늘
그 도심의 하늘위로 카메라가 주욱 훑어가면
고층빌딩의 숲과 사람들의 물결이 인상적이다.
그 위에 뜨는 타이틀 󰡐6번 마네킨,영희󰡑

       
씬 7 패션몰 앞 거리(낮)
   
천천히 카메라 내려와서    보면 패션몰.
패션몰 윈도우 안의 마네킨들.
그 앞을 무심히 스쳐 가는 사람들.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여자 아이, 무심히 쇼윈도 앞을 지난다.
엄마, 옆 매장의 노천 옷매장의 옷을 살피는 동안, 아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예의 그 윈도우     앞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윈도에 찰싹 달라붙어 안을 본다.
엄마    얘! 거기서 뭐해?...멀리 가지마
아이    응.(하면서 윈도 안을 들여다본다)
마네킨처럼 굳어 있는 영희
영희    (꼼짝도 않는다)
아이    ?
영희    (아이에게 윙크를 한다)
아이    (놀라서) 엄마!
아이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가고, 영희, 입가에 살짝 미소가 머문다.
아이가 놀란 김에 떨어트린 바비돌 인형.
영희가 볼 사이도 없이 지나가는 퀵 서비스 오토바이.
부우웅
영희    ...
오토바이 바퀴에 짓눌려     지는 인형.


       
씬 8 학교전경/운동장(낮)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운동장을 뛰고 있는 학생들.
선생    (E) 이 달이 파랗게 차오를 때가 있는데, 그러니까 한달 중 두번째 보름달이 뜰 때 사람들 눈엔 파랗게 보인다는 거야.

       
씬 9 교실 안(낮)
   
칠판에 달의 확대 사진이 걸려 있고.
선생    (E) 그럴 때면 살인에 대한 충동이나 성욕 같은 욕구들이 증대된다고 하기도 하고, 또 그래서 사랑의 세레나데나 프로포즈도 이런 날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들 해. 달이 생명체에 미치는 밝혀지지 않은 파장 탓이 아닐까?
선생의 이야기 소리와 달리, 공책에 만화를 그리는 여학생. 졸고 있는 학생.
짝과 연습장에 빙고게임을 하는 학생들.
다른 분단 친구들에게 종이쪽지를 던지고 눈치를 살피는 학생.
창가 저쪽에 보면,
영희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채 먼 하늘을 본다)
너무나 푸르고 맑은 하늘. 그래서 어지럼증이 날 만큼 기분이 나쁜.
누군가 옆구리를 툭 치면,
영희    !
통통한 체격의 세림, 반으로 쪼개진 초컬릿을 손바닥에 올려놓은채 내민다.
영희    (물끄러미 보면)
세림    (목소리 낮춰) 괜찮아, 대학가면 저절루 다 빠진대.
영희    (낼름 집어 먹는다. 오물 오물)
세림    (찡끗하고는 선생 눈치를 본다)
선생    자, 이제 시험 범위를 말해주겠다.
모든 동작을 멈추고 필기구를 쥐는 학생들. 시선을 선생에게 박고.
선생    삼단원 전체, 태양계에서 은하와 우주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부르는 페이지는 아주 중요하니가 아예 외우는게 좋아. 126쪽, 128,130,131. 그리고 행성의 공전주기 부분.
또각또각소리를 내며 열심히 받아적는 학생들, 영희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의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
그 위로 길게 날아가는 새.

       
씬 10 학교전경(낮)
   
끝 종소리가 길게~   

       
씬 11 계단(낮)
   
가방을 든 채 우르르 내려가는 여학생들의 발걸음. 늘씬한 종아리들.

       
씬 12 교실(낮)
   
영희, 가방을 싸서 나가려는데, 급우1을 비롯한 세명이 다가온다
세림, 얼른 눈치를 보고     빠져나간다.
세림    (황급히) 나 먼저 갈께. 영희아.
영희    !
급우1    (보고는) 생각해봤어?
영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뭘?    (하고 아이들 지나쳐 가려하면)
급우1    (잡으며) 너 계속 모른 척 할꺼야?
영희    이거 놔.
급우2    (이죽이며) 야, 너 뭘 그래? 그냥 얘기만 하자는건데.
영희    (앙칼지게) 놓으라니깐.
급우2    잠깐 얘기 좀 해.
아이들, 영희를 묵직한 자리 쪽으로 밀고 간다.
그 의자엔 묵직한 방석이 깔려 있다.   
영희    그럼 놓구 얘기 해.
급우2    일단 일루와 앉아, (톤 높여)    앉아 봐. (툭민다)
영희, 방석 위에 털썩 안는다.
급우2    우린 다른 게 아니구 너 전학 와서 친구두 없구 그렇잖어.    그래서 좀 즐겁게, 같이 친하게 지내자구.
영희    (보다가 시선 돌리며 )
    그게 다야?
급우2    응 (영희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는) 그리구 주말 잘 보내.
영희    ?
영희,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영희 돌아서면, 급우1 준비했던 쪽지를 영희의 등위에 턱 붙인다.
영희    또 뭐야?
급우1    (웃으며) 뭐긴...(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짓) 주말 잘 보내라구.
영희    ...
영희, 별 의심 없이 나간다.
아이들, 영희의 뒷 모습을 보며 킥킥 거린다.
급우1, 방석을 집어들며     우쭐해 한다.

       
씬 13 복도/계단(낮)
   
영희, 교실에서 나오면, 영희의 치마 엉덩이 쪽에는 붉은 피 같은 것이 번져있고 등 뒤에는 쪽지.
󰡐그날이에요󰡑

       
씬 14 학교 정문 앞(낮)
   
학생들의 하교전경.     학원의 봉고차들이 줄지어 있다.
그 사이를 무심히 빠져나오는 영희.
사람들 영희를 흘끔흘끔     본다.
등뒤의 󰡐그날이에요󰡑 여전히 붙어 있고.

       
씬 15 지하철 플렛트 폼(낮)
   
전동차가 굉음을 내고 달려온다.

       
씬 16 동 역사 화장실(낮)
   
커다란 스포츠 백 옆에 예쁜 하이힐이 놓여진다.
영희의 몸에서 떨어지는 교복치마.
새로 미니스커트가 입혀진다.
영희, 브라만 한 채 웃도리를 차곡차곡 접다가 쪽지를 본다.
󰡐그날이에요󰡑
그리고 치마를 들어 보면,
치마에 묻은 빨간 물감도.
치마를 거울에 확 던진다.
철퍼덕- 거울에 붙었다     떨어지는 치마.
거울에는 붉은 물감.
영희    (씁쓸히 웃는다) 십팔년.     (입모양으로만)

       
씬 17 화장실 세면대(낮)
   
영희, 치마를 빤다.     붉게 번져나가는 물.
남들이 보든 안보든 개의치 않는 영희, 여전히 브라만 한채 열심히 빤다.
한쪽 구석에 보면 예쁜     모양의 웃도리가 옷걸이에 얌전히 걸려 있다.

       
씬 18 지하철 보관함(낮)
   
화장을 한 영희. 스포츠백을 보관함 안에 쑤셔 놓는다.
교복을 벗어선지 성숙해     보이는 영희.
귀걸이를 귀에 조심스레    매단다.
영희    (E) 언제나 똑같은 기분이다. 이 시간이면 항상 후회하면서... (내뱉듯) 모르겠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학교뱃지.
잠시 멈칫 보더니 주워들어 그대로 라커함 안에 쑤셔박는 영희

       
씬 19 쇼핑몰 거리(낮)
   
완전히 학생의 티를 벗은 영희가 성큼성큼 걷는다.
윈도 안을 들여다 보면, 지석이 마네킨 모습으로 굳어져 있다.
영희    (E) 저 남자, 애인을 찾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저러다 보면 언젠가 떠나간 애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유리창 위로 비추는 하늘. 유리창을 가르듯 지나가는 새.
영희, 안으로 들어간다.

       
씬 20 쇼핑몰 내 펫 샵 (밤)
   
화려한 색깔의 새들, 영희 새들 쪽으로 가다가 돌아본다.
영희    혼자 있는 여자한테 좋은 거    없어요?
주인    (웃는) 혼자 있는 여자?
영희    친구도 없구 글 쓰는 사람인데..하두 취미도 없이 사는 거 같아서 뭐라두 키워보면 어떨까 해서요. 강아지보단 새가 낫겠죠, 아저씨?
주인    그렇지, 아무래도 강아진 손이 가니까.. 그럼 잘 우는 놈으로 할까?
영희    시끄러운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주인    어렵네.
영희    쉬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시계 보며) 어머 늦었다. 저기 1층으로 갖다 주실래요, 아시죠?

       
씬 21 동 쇼핑 몰 탈의실/
동 복도(저녁)
   
영희의 동료들 옷을 갈아입고 있다.     훌렁훌렁 옷을 벗어제끼는 여자 모델들.
영희, 탈의실에서 나와 윈도우로 들어가려고 나서는데, 지석 한 쪽에 놓여진 새장을 들여다 보고있다.
영희    예쁘죠?
지석    네.
영희    (가려는데) ...
지석    저기요, 영희씨, 내일 시간 되요?
영희    네?
지석    실장님이 이번엔 영희씨 꼭 와야 된대요. 그래두 한달 넘긴 기념인데, 주인공 빠지면 안된담서요.
영희     (머뭇) 어떻하죠...못 갈꺼 같은데.
지석    (실망스러운) 또요?
영희    예...시험두 있고..
동료(여)    (둘 사이를 지나가며) 요새 대학생이 무슨 시험을 걱정해? 첫 월급 술 값으로 다 날릴까봐 그래?
지석    (보는)
영희    죄송해요.
지석    죄송은요...그럼 내가 실장님껜 그렇게 말씀드릴께요. (사이) 걱정말아요 잘 말할테니까.
영희    고마와요.
영희 복도로 나와 몇걸음 걷는데, 순간 헛구역질!
영희    ?
       
씬 22 화장실(낮)
   
뛰어들어오는 영희
게워 내려 해도 나오는     것이 없다.
영희    !!!

       
씬 23 쇼핑몰 윈도우
(저녁)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결.
윈도 안에 굳은 듯 멈춰서 있는 영희와 지석.
중학생 세명이 윈도 앞에 멈춰 선다.
남학생 1    (유리 가까이 얼굴을 갖다대고 신기하듯) 사람이야. (친구를 끌어당기며) 봐, 사람이잖어.
남학생2    뭐가?
남학생1    저거, 잘 봐 봐...숨도 쉬잖어.
남학생2    진짜네?   
남학생2, 허리를 굽혀 영희의 스커트 밑을 들여다     보려고 애를 쓴다.
남학생1    뭐해, 임마?
남학생2    잘 보면 저 기집애 빤스 보인다 야,
남학생1    (몸 굽혀보며) 증말...까만색이야..히히
남학생3    야 눈뼛냐? 잘 봐봐. 저년 노펜티야. 노펜티.
히히덕 대는 남학생들.     굳은 듯 있는 영희

       
씬 24 주택가/적산가옥
단지 (밤)
   
단지 입구를 걸어 들어오는 교복 차림의 영희.
지친 듯.
영희, 고갤 들어 집을 올려다보면 환히 켜져 있는 불빛.
영희 손에 들린 새 장을 본다. 두 마리..


       
씬 25 집 앞 현관(밤)
   
깔끔한 적산가옥
집 앞 나무대문 앞에 다가와 교복 주머니를 뒤지는 영희
가방을 벗어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난감한 표정이 되는데.
영희    어? 아까 빨다 빠졌나?..(입술을 깨물며) 에이 씨.
영희, 주저하다가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자 몇 번을 누르면,
민자    (E) 누구요?
영희    저에요, 영희이.
민자    (E) 열쇠는?
영희    죄송해요, 잃어버렸어요.
도어벨 소리.
영희, 들어간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는. 쾅.

       
씬 26 거실(밤)
   
장민자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대담 프로. 진행자가 나와 뭐라고 한참 떠들고 있다.
진행자    만약에 댁의 남편이 당신 친구와 외도를 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    니까?
젊은 여성인 패널1-
패널1    (지적인체 하는 투) 물론 기분 좋을리 없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이해 못할 건 아니라고 봐요. 어차피 중요한 건 정신이지 육체가 아니잖아요?
민자    (입속말) 미친 년..(들릴듯 말듯)
영희    (보는, 그리고 움직인다)
하는데, 새 짹짹 거리는 소리.
민자    (돌아보는) 웬거니?
영희    십자매에요. 이쁘죠? (베란다로 나가며) 여기에 놓을테니까 한번 취미 삼아 키워 보세요.
민자    나보고 키우라구?
영희    네.
민자    난 키울 줄 몰라. 새두 그렇구 사람두 그렇구. (들어가 버린다)
영희    ...
민자, TV를 끈다.     안방으로 걸어들어간다.

       
씬 27 동네전경(아침)
   
전경

       
씬 28 거실(아침)
   
민자는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영희 방에서 나온다.
영희    나 학교 가요.
민자    ...어제 청평에 다녀왔다.
영희    (신을 신다가 문득) !!
민자    니가 정 내키지 않아 하는 거 같길래 니 엄마 유골함은 내가 알아    서 처리했다. 어릴때부터 바다, 강 이런델 좋아했으니까 니 엄마 넋두 기뻐했을거야.
영희    내 방에 들어왔었어요?
민자    집에다 그런 거 오래 두면 흉해. 여기가 납골당두 아니구.

영희    (E) 믿을 수 없이 차분한 말투, 마치 방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버린 듯한 어조. 엄마가 저 여자의 동생이었다는 게 정말 맞을까? 오기가 일었다.
영희    왜요?
민자    왜라니? 그런 걸 집에 두는 애가 어딨어?
영희,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영희    나 그냥 나가 줄 수 있어요.      그렇게 해드려요?
민자    ...그런 말 한 적 없다.
영희    혹시 엄마 보험금 때문이라면 걱정마세요. 조카 돈 띠어 먹었다구 남들 손가락질 안 받게 조용히 있을테니까.
민자    (멈칫, 신경질적으로 재를 턴다)
커피 찻잔 받침위에. 흩날리는 재.
푸드덕 거리는 새장 속의 새.
영희    ...접시에 재 털지 마세요. 냄새 나요.
이때 호들갑스럽게 들어오는 잡자사 여지자와 사진기자.
여기자    (호들갑) 어머 장 선생님, 저희가 많이 늦었죠. 근데 문이 열려있데요(...)
여기자 서먹한 두사람을 본다.
영희, 나간다.
민자, 묵묵부답
여기자    따님 계신단 건 몰랐는데요? (돌아보며) 근데 선생님 많이 닮았네요. 생김새도 그렇구, 또 분위기두,
민자    조카야. 딸이 아니구,
사진기자 얼굴을 들면,
인우    ...!!



       
씬 29 적산가옥 앞(아침)
   
영희, 거칠게 문을 열고
나온다.
세워진 잡지사 자동차
(차창위의 스티커)
영희    (일견하고는 간다)

       
씬 30 거리 (낮)
   
영희가 교복차림으로 걷는, 길가의 손끝으로 스쳐 가다가
코스모스를 죽 뜯어 날린다. 거칠다.
땅위에 날리는 꽃잎

       
씬 31 오피스텔(밤)
   
창가에 비가 주르르 내린다.
인우의 오피스텔 안엔 사진기와 포스터들이 잔뜩이다.
안을 들여다 보면, 영희, 헤드폰을 쓴 채 음악을
듣고 있다.
인우    생일이라며 여기서 계속 그러고만 있을꺼야?
영희    (들은척도) ...
인우    너네 이몬 집에서 파티 같은 거 안해 줘? 니가 그렇게 밉대?     자기들이 잘못해놓구 왜 너한테 그런대냐?
영희    (딴소리) 음악 좋네.
인우    ...
영희    ...
인우    (헤드폰 벗기며)
영희    왜?
인우    음악 좋다며? 그럼 가져.
영희    응? 뭐얼?
인우    이거...다...생일선물로 너     줄께. (사이) 참..잠깐만..
영희    선물로 준다며?
인우    뺏는 거 아냐. 그래두 선물인데... (책상 어귀에서 종이를 꺼내 둘둘 싼다) 자... 이제 선물 같지?
영희    그럼 케익은? 이왕 축하하는     거 케익두 줘야될 꺼 아냐?
인우    야, 그런 게 갑자기 어디서 나냐?
영희    (풀이 죽어)
인우, 불 끈다.
영희    오빠, 불 켜.
라이타 불이 확 당겨지면 밝아진다.
인우    이게 생일 촛불이라구 생각하구 어서 꺼봐.
영희    (그제야 웃으며) 오빠, 엉터리.
인우    어서,뜨거워 그리구 이거 맛이 가서 한번 켜기 디게 어려워.
영희    (보고 피식 웃더니) 훅!
어둡다.
인우    소원두 빌어봐.
영희    소원 없어.
인우    ...
영희, 인우에게 기댄다.
영희    난 소원 같은 거 없어.
    갖구 싶지두 않구,
인우    (사이)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래?
영희    갑자기 웬 내기?
인우    언젠가 소설에서 한번 본 건데, 라이타 열번 켜서 전부 불 안     켜지면 소원 들어주기.
영희    왜? 오빤 무슨 소원있어?
인우    으응...(머뭇)너 여기서 자구      가기.
영희    (한참 멍하니 보다가 피식)      웃겨, 증말.

       
씬 32 교실(낮)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고,
영희는 턱을 괴고 창 밖만. 시야에 날아가는 새.
영희     (확 엎드린다.)
교사 그 소리에 영희를 보고.
세림은 자기가 더 놀란다.
세림    (작게) 야! 야!
하지만 영희는 안 일어난다.

       
씬 33 오피스텔(밤)
   
라이타를 켜는 영희,
라이타 돌이 헛돈다.
영희의 긴장한 얼굴.
인우    한번.
영희    (다시 켠다)
불똥만 튄다.
인우    두번, 세번..네번...다섯번...
영희    (잠시 쉰다.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억지로 장난스런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다시 켠다. 켜지지 않는다.

인우    여섯번...일곱번..여덟번...
영희    열번에 한번은 켜진다구 했잖아? 이거 아예 망가진거 아냐?
인우    줘 봐...(라이타 받아서 켜본다)
켜진다.
인우    어때? (다시 라이타 준다)
영희    ...(다시 켜 본다)
인우    아홉번.
영희 이마에 땀을 닦는다. 손을 치마춤에 문질러 닦는다.
영희    ...
라이타를 켜 본다.
탁 들어오는 불꽃.
영희    (밝게 웃는데) 봐라, 켯다.

인우, 다가와 라이타의 불을 후욱 불어 끈다.
영희    !!
암전(暗轉).

       
씬 34 지하철 역(낮)
   
굉음을 울리며 들어오는
전동차.

       
씬 35 역사 화장실(낮)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영희.
미니스커트의 다소 야한
차림.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다. 변기로 달려가는 영희.
게워내려 하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힘에 겨워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댄다.
영희    (눈물기. 곧 훔쳐내며) 씨발    (입모양) 근데 난 이게 모야.

       
씬 36 쇼핑몰 윈도우(밤)
   
󰡐쉘부르의 우산󰡑의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노타이의 검은 옷(? 쉘부르 우산에 맞는 옷)을 입은
마네킨 지석.
그 옆에 핑크 빛 바바리를 입은 마네킨 영희.
창가에 빗물이 주르르
흐른다.
영희    (굳은 듯) ...

       
씬 37 적산가옥단지 (밤)
   
비가 내리는.
차가 스르르 멈춰선다.
와이퍼가 스르르 빗물을
밀어낼 때마다 보이는
인우와 영희.

인우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는다.
인우    (무심히) 아깐 집에서 그렇게      찾았는데, (콘돔 들어보이며)    근데 이게 차에는 있네.
영희    오빠!
인우    (계속 닦으며) 응?
영희    (문득) 오빤 나 사랑해?
렌즈를 닦던 손이 멈칫 한다. 다시금 아무렇지 않은 듯 닦는다.
안경을 되쓰며,
인우    걱정마, 별 일 없을 거야.     (영희의 목덜미께에 입을 맞추려 몸을 숙이려는데)
영희    교복이 너무 구겨졌어. (피하며 내린다) 가. 나 들어갈래.
인우    혹시나 싶으면 전화해.
    내 번호 알지?
영희    (보는)
영희의 어깨에 우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그대로 떠나버리는 인우의 자동차.
흠뻑 젖은 채로 그를 보는 영희. 천천히 젖어가는 교복.

       
씬 38 윈도우 안(밤)
   
쏴아~ 보도바닥에 장대
같이 내리는 비.
이미 거리에 사람이 없다.
창문에 흐르는 빗물이 마치 영희의 눈에 흐르는 눈물 같다.
영희    비 내리는 소리가 너무 시원해요. (혼잣말 하듯이) 이대루 그냥     나가버려두 되겠어.
지석    ...(꼼짝않는)
영희    7번 마네킨님, (툭 치며)
    보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지석    (그제서야 동작을 푸는)
    그렇군요. 6번.
영희    6번? 이름 불러요.
    6번이니 모니 그러지 말구.
지석    (웃기만)
장대같이 내리는 비
영희    왜 마네킨이 됐어요?
지석    알면서 왜 물어요?
영희    (아, 그렇지 하는 웃음, 그리고는) 그럼 정말 이 앞을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지석    그럼요. 그 여잔 이 앞을 지나갈 겁니다. 그리고 날 볼거에요, 꼭.
영희    어떻게 그걸 알아요?
지석    거기가 바루 여기였거든요.
영희    네?
지석    처음으로 그 여자랑 손잡은 게 바루 여기에요, 물론 밤에.
영희    (뭐?) 손 잡은거요?
지석    (어색히) 실은 입두 맞췄어요.
영희    (그제서야 알겠다) 아하.
지석    기다릴만하죠?
영희    지석씬, 이 일 한지 얼마나      됐어요?
지석    한 일 년, 아니 일년 반?
영희    봤어요?
지석    (힘없이 웃는) 아직...
영희    떠나간 여잘 인형처럼 무작정      기다리는 남자라. (사이)      그치만 그런 사랑 얘길 믿는      사람이 요새 어디 있어요?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린다.

지석    그러는 영희씬 왜 마네킨을      해요?
영희    나요? 난 ... 그냥...구경하는 게 좋아서요. 차구경. 건물 구경, 사람 구경...여기선 다 맘 껏    볼 수 있잖아요. 눈치 안 보구.
영희, 쇼윈도 앞으로 나아가 창에 호호 입김을 분다.
하옇게 김이 서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운데
손가락으로 자기의 이름울 써본다.
영희    (깊은 한숨) 아녀요 틀렸어요. 사람들이 날 보는 거에요.     유리창 안에 있음 다 나만 쳐다봐 주니까. 모두 나보구 웃으니까... 적어두 싫어하진 않으니까요.
지석    ...
영희    가끔은 정말 사는 게 싫어요.    정말 진짜 마네킨이였으면 좋겠어. ...여기서 나가는 게 싫어.
지석    (보는)
지석의 보는 모습이 차창에 반사된다.
영희 지석의 시선을 희미
하게 느낀다.
영희    (E) 이 남자 눈빛,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 하는 느낌이다.     나 스스로도 뭔지 모르는 건데... 아니 알면서도 억지로 모른 척    하는 건데.
영희, 천천히 손바닥을
유리창에 대본다.
그 위로 흐르는 빗물.

       
씬 39 민자의 집 거실(밤)
   
미닫이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영희.
빗물이 툭툭 떨어지는
가방.
젖은 머리를 툭툭 턴다.
주방 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영희, 머뭇거린다.

베란다의 새장 속의 새가 푸드덕!
보면 물통이 다 말라
한 방울도 없다.
영희    !
(E)     삐이익

       
씬 40 주방(밤)
   
물이 다 끓었는지 삐이익 울리는 주전자 소리.
탁자에서 차분이 앉아 원고지를 메꾸던 민자.
영희, 가스렌지의 불을 끈다.

민자    (안경 넘어 흘끗 보고는 다시    글을 쓴다)
영희    새장에 물이 다 말랐어요.      저러다 죽겠어요.
민자    (무덤덤) 나 좋으라구 사 온거면 도루 갖다줘. 솔직이 성가시기만해. 깃털 날리구 푸드덕대고,      신경 사나와. (문득, 툭)
    옷이 많이 구겨졌구나.
영희    !... (보다가) 찻물 더 따라      드려요?   
주전자를 가지러 가는
영희.

       
씬 41 베란다(밤)
   
새장의 물통에 물이 채워진다.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주는 영희

       
씬 42 주방(밤)
   
찻잔에 물이 채워져 간다. 찻잔에 물이 다 채워졌지만,
민자의 글쓰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찻받침에 비벼끄는
담배꽁초.
영희    재 날려요.
민자    (들은 척 않는)
영희, 자기 잔에 물을 붇는다. 차분히.
민자와 영희 서먹하게 앉아 있다.
영희    (E) 다른 사람들이라면 차 두 잔을 마실 동안 한 마디도 안한다는 건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웃기는 건 우린 이러고 있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영희 일어선다.
영희    잘께요.
민자    ...
영희 가방을 식탁에 올려놓는데,
삐죽이 새어나오는 디스크 플레이어.
함께 굴러가는 CD.
민자    왠거야?
영희    생일 선물 받았어요.
민자    ... (잊었다 생각난 듯)          아, 그랬지?
영희    이모가 내 생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 알아요. (하더니 장난스럽게) 아무려면 어때요. 어차피 선물은 없는 거 아녀요?
민자    많이 비싸 보이는데.(싸늘하게 웃으며 담배 재를 접시에 턴다)
영자    근데 왜 웃으세요?
민자    (다시 글을 쓰며) ...아무렴    새우는 대대로 곱사등이지.     지 에미가 남의 거 훔치는데 도가 텄는데 누구 자식인데 니가.
영희    !!!   
민자, 담배재를 찻잔 접시에 턴다. 떨어지는 담배재.
식탁위를 더럽힌다.
영희의 시선이 왠지 이에 머문다.
영희    엄마가 훔친게 뭔데요?
민자    ...
영희    그런 말 하면 재밌나봐요.     다시 생각해서 즐거울 것도     없을텐데.
민자    !!!
민자, 그저 대답 대신 담배를 다시 털기만. 신경질적.
원고지의 빈칸 위에 담배재가 투르르 굴러들어온다.
영희    이거 훔친 거 아녀요.
    엄마두 훔친 거 암 것두 없구요. 그리구 음식접시엔 제발 재 떨지 마세요. 씻어두 냄새 나요.     재떨이 갖다드릴께요.
민자    ...
영희, 개수대에서 잘 씻어진 재떨이를 접시 대신
내민다.
찻잔 접시를 씻으며,
영희    (무심히) 아빤 행복하셨대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구요.
민자    !! (사이, 그리고는 피식 웃는) 사랑? 그런 건 없어.
영희, CD와 디스크 플레이어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그 위로,
영희    (E) 얼마나 더 서로에게 상처를 내야 끝이 보일까?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싸움에 난 점점 지쳐갔다.

       
씬 43 영희의 방(밤)
   
영희 방에 들어와 젖은 교복 브라우스와 치마를 옷걸이에 얌전히 건다.
드르륵 안방의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영희    !!
영희    (E)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내게 남은 하나뿐인 혈육이었고 의지처였다. 그리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영희, 가방에서 CD 플레이어를 꺼낸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데,
이모의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
영희    !

잘 들어보면, 빗물이 화초에 부딪히는 소리. 바람소리.
마치 이모의 흐느낌 소리 같다.
영희 CD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인다.
영희    (E) 아마 그건 바람소리일 거    라고 라고 나는 믿었다.
영희, 볼륨을 놓이고 음악에 빠져든다.

       
씬 44 쇼윈도 안/밖(밤)
   
비가 내린다.
영희의 눈에 언뜻 눈에
물기가 어린다.
지석    울어요?
영희    (억지로 웃으며) 마네킨이 우는 거 봤어요?
지석    하긴.
영희 문득 저 쪽을 본다.
한개의 조그만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연인.
둘 다 비를 맞아 흠뻑 젖었는 데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덕 거리며 지나가는 모습.
영희    (문득) 나하고 연애하는 거      어때요?
지석    (쳐다보면)
영희    나하고 연애해요, 우리.
지석    (피식 웃어버리는)
영희    진짜루!
지석    ...
영희    (뚫어져라 본다)
비는 계속 내린다.

       
씬 45 민자의 집 전경(아침)
   
전경
처마에 방울 방울 맺히는 빗방울.
투욱 떨어진다.


       
씬 46 민자집 베란다(아침)
   
지저귀는 새 한쌍, 한마리가 푸드득 날면,
민자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다.
한마리는 병이 들었는지, 눈빛이 가물가물하다.
민자    ...
민자 새장 그물을 손가락으로 따라 가본다.
민자    ...
민자, 들고 있던 분무기를 돌려 새장에 물을 따른다.

       
씬 47 민자 집 화장실(아침)
   
영희 세수한다.
인기척을 느끼면 민자가
열려진 미닫이 문 틈 사이로 멀찍이서 보고 있다.
영희    왜요. 할 말 있으세요?
민자 저멀리 거실에서 묵묵히 보다가,
민자    너 요새 어떻게 지내냐?
영희    왜요?
민자    연애하니?
영희    !...연애는요, 무슨. 그냥 학교 다니죠. 뭐
민자    어제 많이 늦었길래.
영희    저 기다리셨어요?
민자    ...(가는)
영희 어딘지 좋은 듯,

       
씬 48 학교 교실 안(낮)
   
우당탕 들어오는 아이들.
영희 땀에 절은 체육복을 갈아 입는다.
아주 밝은 기색이다.
세림    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      데이트?
영희    내가? 아니..(또 웃는)
세림    어어? 또오?
       
씬 49 장민자의 집 안방(낮)
   
안경을 쓴 채 글을 쓰고
있는 민자.
전화벨이 울린다.
민자    여보세요?
동료(e)    (소리) 장선생, 나야 .
민자    어 웬일이야?
동료(e)    여성세계하구 인터뷰했어?
민자    저번에 왔다 가더니 벌써 기사 나왔나부지 뭐.
동료(e)    빨리 읽어봐. 난 아직두 가슴이 뛰어.
민자    그게 무슨 소리야? 왜 ?


       
씬 50 쇼핑 몰 유리창 안(저녁)
   
지석과 영희 마네킨처럼     굳어져 서 있다.
여전히 쉘부르의 우산.
사람들이 뜸해지면,
영희    안 더워요?
지석    쉿!
영희    웃기잖아요. 밖엔 쨍쨍인데 우리만 우산 쓰구 비 옷 입구.     난 속에 땀나.
지석    끝나구 약속 있어요?
영희    네?
지석    (머뭇) ...집에 데려다 줄려구요. 맨날 너무 늦으니까.
영희    ?... (웃는)
영희, 뭐가 좋은지 마네킨 모델임을 잊은듯, 입에 손을 대고 깔깔댄다.
지석    앗...저기 사람 와요.
영희와 지석 꼼짝 않고     멈춘다. 유리 창 앞으로      민자가 지나간다.
무심한 표정의 민자,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마네킨      쇼 윈도우 앞에 문득 멈춘다.
민자    ...
영희    (꼼짝 않는다)
민자, 약간의 흥미만 내보인채 지나친다.   
영희, 역시 눈동자 하나 굴리지 않는다. 보지 못한다.
서로 엇갈리는 두사람.

       
씬 49 쇼핑 몰 內 서점(낮)
   
민자 이리저리 신간을 골라 본다.
문득 한 여성 잡지에 눈이 간다.

작가와 삶- 장민자
민자 그 여성지를 골라 든다.
여성지를 펴 들고 자신의 기사를 찾는다.
굵게 박힌 여성지 표제 기사
- 여류 소설가 장민자의     비밀과 거짓말 -
서브 타이틀
- 이유있는 문학적 모티프, 친자매간에 벌어진 빗나간 애증 고리 -
그리고 장민자가 화단을 돌보는 큼직한 사진.
민자     !!!


       
씬 43 굴다리 밑(밤)
   
전철이 광음을 내며 다리 위를 지나간다.
부우웅! 그 위로 푸른 빛을 내는 달.
텅빈 밤거리. 달빛에 촉촉이 젖어 있는 보도.
영희 우산을 지팡이 삼아 폴짝폴짝 뛴다.
영희    그래요. 그렇다고 쳐요. 언젠가 지나갈 거라구 해두죠 뭐. 지석씬 바보처럼 유리창 안에 서 있고, 그 여잔 지나가구... 아마 눈동자도 꼼짝 못하니까 지나간 줄도 모를꺼야.
영희, 비웃듯 깔깔 대고     웃는다.
영희    벌써 지나가버렸는지도 모르잖아요?
지석    안봐두 느낌으로 알아요, 사랑은.
영희    그래두 이미 그냥 지나쳐버렸다면?
지석    정말 사랑 얘길 안 믿는군요?
영희        안 믿는게 아니라 못 믿는거에요. 도대체 뭘 가지고 사랑이라는 거에요?
지석     (웃는) 없다는 사람이 왜 물어요?
영희    그냥~
지석    ...(뒤쳐져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영희를 본다)
영희    (돌아서며) 뭘 그렇게 봐요?   
지석    그렇게 웃는 거 첨봐요.   
영희    네?
지석    영희씨 웃는 거요. 그냥 첨인거 같아서, 느낌이.
후두둑 듣는 빗방울.
영희    (놀래서) 어! 비 와요.

       
씬 51 적산가옥 단지(밤)
   
걸어오는 지석과 영희.
영희, 멈춰 서며,

영희    여기에요.
지석    (가방 내려놓으며) 생각보다 많이 가깝네요.
영희    어? 그래서 다행이란 말투네?
지석    (웃는) 들어가요.
영희    (생각) 아니 그지 말구, 담배      한대만 피고 가면 안돼요?
지석    ?
영희    담배 못 펴요?
지석    (웃으며 담배 꺼낸다)
지석 라이터를 켜는데,     불이 안 켜진다.
영희    그건 열 번 하면 몇 번 켜져요?
지석    응?
영희    (씁쓸히) 아녀요 암 것두.
지석, 연거퍼 라이타질을 해보지만 안된다.
영희    그냥 가란 얘긴가봐.
지석    (담배 집어넣으며) 그런가부죠? (사이) 그럼 내일 다시 봐.
영희    ...(물끄러미 보다가) 데려다      줘서 고마와요.
지석이 등을 돌려 가는 것을 보고-
영희 호기롭게 가방을 양손에 든다.
휘청~
영희 가까스로 가방을 문 앞에 내려놓고, 키를 찾는다.
핸드백을 뒤져도 없다. 쏟아지는 립스틱과 화장품들.
바닥에 꿇어 앉아 찾아도 없다.
갑자기 ? 하고 올라오는 헛구역질.
영희    ?!
뭔가 게워 내려 하지만 나오는 게 없다.
영희    (조그맣게) 씨팔. (입모양)
영희 추스리고 일어서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세 번 세차게 누른다.
민자    (E) 누구세요.
영희    (E) 저에요 영희.
민자    (E) 열쇠 없니?
영희    (E) 없어요. 어서 열어줘요.
도어벨소리.
영희    (머리를 쓰다듬으며) 푸후~
영희 문 옆 쓰레기통에 삐죽 나온 새의 발을 본다.
신문지에 쌓인 한마리의     주검.
영희    ....
영희 멈춘 듯 그 자리에 꼼작 않는다.
문이 열린다.
영희    오늘 또 물 안줬어요?
민자    (대답대신 영희의 차림을 보고) !!
민자, 영희의 모습을 아래 위로 훑어보다 영희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영희 따라서 보면, 손을 흔드는 지석의 모습이 보인다.
영희    !!
민자    (다시 영희를 일견하고는 들어가버린다)
영희    ...

영희    (E) 병원에서 우리 엄마를 마지막 봤을 때, 지금 날 봤던 바로 저런 눈빛이었을까?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 ?!

       
씬 52 거실(밤)
   
거실, 스텐드만 켜진.
소파에 앉은 민자. 오른 편의 영희, 스포츠 가방이 옆에 놓인 채.
영희    화 나셨어요?
민자    니가 나한테 화난 것 같구나. (사이)
영희    ...
민자    ...
영희    남은 한 마리가 잘 살지 모르겠네요, 아마 따라 죽을 거에요. 주무세요.
영희 일어서는데,
민자    많이 생각해봤는데, 이제 내    집에서 나가줬음 좋겠구나.
영희    ! (사이) 제가 뭘 많이 잘못했나요?
민자    ...
영희    내가 이러고 다니는게 맘에 안드셨다면... ...그랬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말썽 같은거 부린     적은 없어요.
민자    옷을 뭘 입던 화장을 하던 그건 네 문제고, 내가 상관할 바 아니        야. 오히려 니가 더 날 불편해 하는 거 같애서 그래. 그러니까 우리 따로 사는게 서로한테 좋을꺼야.
영희    전 안 나가요.
민자    나가는 게 소원 아니었나? 니 엄마 보험금 다시 내주마. 너 하나 살긴 괜찮을꺼다.
영희    그 돈 받아서 나갈 생각이었으면 첨부터 여기 와서 안 살았어요.
민자    난 이제 니가 신경쓰여서 그래.
영희    저한테 신경 쓴 적은 있구요? (사이) 놀랍네요. 이모가 저한테 신경이 쓰이신다니.
민자    나 농담 아니야.
영희    저두 농담 아녀요, 이모.
민자    자꾸 이모라구 하는것두 이젠      솔직이 듣기 불편해. 너한테 이모노릇 한 것도 없고. 또 너랑 이모 조카 사이 할 만큼 우리      사이가 정상적인 것두 아니구.
영희    (끊으며) 그럼 큰 엄마라고      해드려요?
민자    ...!!
영희    ...죄송해요.
민자    집부터 구해. 관리하기 힘들면 방을 하나 얻던지 돈은 필요한만큼     나눠서 줄테니까.
영희    아직도 아빠 때문인가요? 아니면 엄마 때문이에요?
민자    ...!!
영희    죽은 사람들 그렇게 미워할 필요 없잖아요, 이제 그만 용서해 줄 수 없어요? 그래두 이모 동생 아녜요? (사이) 엄마두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민자    (흔들리는) ...
영희    (흐느끼는)...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돼요? 왜 절 그렇게 미워하세요?
민자    널 미워한적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냥..아무 관계 맺고 싶지    않을 뿐이야. (사이) 널 보면 자꾸 과거가 떠올라, 그래서 힘들어. 날 위해서 내 인생에서 그만 좀 피해줄 수도 있는     거잖니?
영희    (우는) 아직 미워하는군요.

민자    너도 여자니까... 날 이해할 수 있을거다. (사이) 그리구 당장 나가라는 거 아니야.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가져도 돼.
영희    ...(절망)
민자    ...미안하구나.
민자,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혼자 남은 영희, 흐느낀다. 어깨가 심하게 들썩이는.
영희    (E) 이젠 정말 끝이란 느낌이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고통을 이제서야 알 것만 같다는 느낌도 함께 왔다. 그 증오와 고통의 깊이가 남편과      동생의 죽음으로도 메꾸지 못할 만큼 깊다는 걸.

       
씬 53 안방(밤)
   
의자에 깊에 누워 생각에 잠기는 민자.
잘한 일인지 아직도 판단이 안서는.
담배를 찾아 입에 문다.
문이 열린다.
영희    저 지금 나가요.
민자    !
영희    나머지 짐은 나중에 실어갈께요. (사이) 만약 내가 잘못되면 다 이모 책임이에요.
민자    ...
영희    담배 많이 피우지 마세요.
영희 문을 닫고 나간다.
민자    ...
뭔가 생각하더니, 재떨이에 담배를 끈다.

       
씬 54 베란다 앞(밤)
   
영희, 베란다 한켠에 걸린 새장을 들어낸다.
새장안의 새가 푸드덕 댄다. 한마리.

       
씬 55 적산가옥 단지 앞(밤)
   
입구 쪽에서 나오는 영희.
손에 새장이 들려있다.
새장 문을 여는데,
영희    나가. 너두 이젠 자유야. 그러니까 나가서 니 맘대로 훨훨 날어.
새 나갈 생각않고 새장     안에서 푸드덕 댄다.
영희    (악을 쓰며) 병신아, 나가란 말야. 너 가구 싶은대루 얼른 가버리라는데 왜 안가구 지랄이야!
새장안에 손을 넣고 휘젖는다.
새 이리 저리 도망하다가 날아간다.
그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영희
영희    ...
영희, 새장을 저 쪽으로 던져 버린다.
굴러가는 새장.
영희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빙 둘러보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씬 56 횡단보도(밤)
   
아무도 없는 보도. 가끔씩 차만 쌩쌩.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영희.
신호 등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영희.
눈물이 흐르고 있다.

       
씬 57 지석의 집 입구
(새벽)
   
60대의 한 노인이 베낭에 물통을 매고 나온다.
아침스케치


       
씬 58 지석의 집 문앞 (새벽녁)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문을 여는 지석.
문 한 쪽에 스포츠백을 부둥켜 안은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영희를 발견하고.
지석    !

       
씬 59 지석의 집 안(아침)
   
지석 커피물 찻잔에 부어 침대 끝에 걸터 앉아 있는 영희에게 건네주면.
지석    여긴 어떻게 알구 왔어요?
영희    (고개만 흔단다)
지석    마셔요. 마시구 몸을 좀 녹혀요.
영희    ...
영희, 지석에게 머그잔을 받아 호호 불며 마신다.
지석, 영희의 옆에 조용히 쭈그려 앉는다.
영희    왜 쳐다봤어요?
지석    ?
영희    (시선은 주지 않은 채) 그냥 가지, 왜 돌아봐서...그래서 나 ?겨났잖아요.
지석    (당황)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희    ...
말없이 창틀로 새어들어오는 밝아져만 오는 햇볕을 쳐다본다.
빛의 일단이 영희의 눈가에 살며시 와서 닿는다.
영희, 눈이 부신 듯 약간 찡그린다.
지석, 위로하고 싶다.
지석    (어색히) 저녁 때까지 뭐하고     싶어요? (사이) 나 오늘 할것 두 없는데.
영희    (대답없다, 찻잔만 호호)
지석    영화 볼래요?
영희    ...

지석    싫으면 놀이동산은요?    바이킹도 타고, 청룡열차도 타고... (동작을 해보이면)
영희    (살짝 웃는) 내가 어린앤가?
지석    그럼 말해봐요.
영희    ...
지석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영희    ...날고 싶어.
지석    ...네?
영희    ...(다시 웅크린다.) 아녜요.      암것두.
지석    (생각) ...
영희    ...


       
씬 60 적산가옥/민자의 집 (낮)
   
외출하려는 장민자.
문을 열쇠로 잠그는데,
저 밑에서 들리는 푸드덕 소리.
민자    ?
내려다보면 떨어진 새장.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새.
새장 안에 쏟아진 모이를 주워 먹고 있다.


       
씬 61 놀이 공원 매표소(낮)
   
꽤 많이 붐비는 사람들.
길게 늘어선 줄.

       
씬 62 놀이 공원 안(낮)
   
여러 가지 놀이 기구를 타고 노는 영희와 지석.
몽타주로 보여주고.
영희 별반 감흥이 없다.
저기 멀리 보이는 번지 점프대만 시야에 들어온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사람들.
영희    ...
한참을 바라본다.
지석    뭘 봐요?
영희    (시선을 번지점프대에 꽂은채) 왜 날 돌아봤어요?
지석    그거 또 물어보는거에요?
영희    (고개 끄덕인다)
지석    그냥...집에 잘 들어가나 볼려구..
영희    그래서요?
지석    다에요. 그게.
영희    그게... 다?
지석    ?

영희, 번지점프대로 뛰어 간다.
지석    어디 가요?
영희    ...(돌아보며) 나 소원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겼어. 따라오지말아요!
영희 호로록 뛰어간다. 지석 보고 있다.

       
씬 63 번지 점프대 위(낮)
   
영희에게 장비를 착용시키는 교관.
영희, 아래를 쳐다보면...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저 밑에...

       
씬 64 번지 점프대 아래(낮)
   
여러 사람들에 섞여 영희를 바라보고 있는 지석.
강한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씬 65 번지 점프대 위(낮)
   
점프대 끝으로 바짝 다가서는 영희.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교관    (큰 소리로) 준비됐습니까?
영희    ....
교관    (다시)준비됐습니까?
영희    (갈라지는 목소리) 예.   
교관    하나, 둘, 셋 하면 󰡐번지󰡑하면서 뛰어내립니다. (큰 소리로) 하나!
교관    둘!
영희    ....(저기 아래만 쳐다본다)
아득해보인다.
갑자기 올라오는 헛구역질.
영희    ?!

       
씬 65 민자의 집 거실(낮)
   
민자, 새장을 베란다에 정성스레 건다.
모이와 물을 잔뜩 채워준다.
평안한 얼굴.
새가 푸드덕 거린다.
민자    (한참을 본다) ....

       
씬 66 번지 점프대(낮)
   
영희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눈치못채게 참는,
교관    괜찮아요?
영희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굿!
교관    안좋으면 그만 두셔도 되요.
영희    (활짝 웃는) 괜찮다니깐요.
교관    세엣!
영희    ...
영희 손을 움직여 자기를 묶고 있던 연결 고리를 풀어버린다.
저멀리 보면 시원하게 날아가는 새.
영희    ...
교관 다음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영희 양 팔을 벌려 위로 점프하면.
놀라는 군중들.


       
씬 66 번지점프대(낮) /공간
   
한없이 추락하는 영희
마치 새처럼.
영희    (눈을 감고 스치는 공기의 흐름을 즐긴다)
영희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천천히 보여지는 영희.
저기 날아가는 새. 날개를 퍼덕인다.


       
씬 67 구름 한 점 없이 무청처럼 새파란 하늘.
   
영희의 시야
다가오는 지면.
갑자기 빨라진다.

       
씬 68 쇼핑몰 앞(낮)
   
그대로 추락하면, 산산히 부서지는 인형의 팔 다리.
(E)     구급차 달려오는 싸이렌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
카메라 천천히 올라가면 마네킨처럼 굳어져 있는 지석의 모습.
그 앞을 지나가는 무심한 사람들.

더 원경으로 카메라 올라가면,
어느 순간 부서지는 쇼윈도우.
지석, 윈도우를 뛰쳐나와 누군가를 소리치면서 쫓아간다.
그 위로  스크롤 올라간다.
 






























첨부파일 6번마네킹영희-rivertrue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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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6.01.25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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