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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곡비] 허지영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12.11|조회수721 목록 댓글 2

[곡비] 허지영












S#1. 오프닝
화면 가득, 웃고 있는 어린 연심의 얼굴(6). 카메라 빠지면, 상갓집 마당이다. 곡비들의 울음소리가 크다. 한쪽에 상주와 종친이 얘기한다. 상주가 웃자 빙그레 저도 웃는 연심.

상주   안 그래도 선산과 평야는 내 알아서 나눠준다고 하잖는가. 금궤야 어차피 나한  테 남기신 거니,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야 하고.  (설핏 웃다가 자길 보며 웃는   연심을 보는. 흠칫! 꿀밤을 먹인다) 예끼! 이 놈. 어디 상갓집에서 웃어 웃길!

연심, 시무룩해서 곡비들에게 간다. 곡하는 단금의 옆에 앉더니 말갛게 본다. 서럽게 곡하지만, 눈은 건조한 단금. 이젠 어미의 우는 얼굴을 따라하는 연심.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우는 표정. 단금, 저리 가라는 듯 눈을 부라린다. 고걸 또 따라하는 연심. 이때, 요령잡이가 단금에게 와서 귓속말 한다. 단금, 곡소리가 멈춘다.

- 할매의 집. 싸늘하게 식은 단금어미(50대). 연심, 할매의 얼굴을 매만진다.

연심   할매.. 얼렁 일어나봐.. 연심이야.. 응. (옆으로 가서 눕더니 끌어안는) 연심이 안아         줘.. 할매.. (반응없는 할매, 자기 손으로 할매의 팔을 가져가는데 뚝- 떨어진다.          다시 잡아서 자기를 안도록 한다. 또 뚝- 떨어진다)
단금   .......

- 작고 초라한 봉분. 그 앞에 탁주를 마시는 단금. 휙휙- 남은 걸 산소에 뿌린다. 
   순간, 날리는 하얀 함박눈. 연심, 눈송이를 잡겠다고 까르르- 뛰어다닌다.

연심 NA  할매가 떠난 날. 하늘에서 거위털 같은 눈이 내렸다.

단금  (눈을 먹먹히 보는, 장조 가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연심  (멈춰서는, 의아한) 엄니.. 소리하네. 맨날 산소에서 울었는데.. 오늘은 왜 안 울어?
단금  (눈물 그렁하지만 덤덤한 얼굴)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리.
연심  (갸웃한다) 왜 안 우냐고?!

연심 NA 그 날. 엄니는 소리를 했다. 내가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소리였다.  
  
                    타이틀.  곡비 (哭婢, 울어주는 자)

S# 2. 저자 (낮)
안 서~! 이 년아~! 잽싸게 저자 거리를 내빼는 연심(16). 뒤로 단금(36)이 쫓아간다. 연심, 요리조리 날쌔게 도망치는데, 어느 틈엔가 달려와 뒷덜미를 잡아채는 단금.
단금  (가차없이 잡아끌며) 안 울면 뭘 하고 살 건디. 지랄 말고 따라와!
연심    (발버둥치는) 안 간다니까! 싫다고! (기어이 다시 도망치는)

S# 3. 양반집 마당 (낮)
한쪽에 대기하고 있는 화려한 꽃상여와 십여 명의 상두꾼들. 여종들이 분주히 노제(路祭, 상여나 운구차로 운구하다가 가는 도중에 길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 나갈 과일과 술을 준비한다. 질질- 끌려오는 연심. 단금, 확- 연심을 밀친다. 연심, 땅바닥으로 넘어진다.

단금    (숨이 차는) 열여섯이면 니 년도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녀.
        잔말 말고 곡이나 배워 가. 
연심    (벌떡 일어나) 안 해! (차갑게 가는)
단금    안혀? 뭐.. 그려. 그럼, 니 동상 곱단이라도 데려올까? 그럴려?
연심    (멈춰선다. 어미를 쏘아보는)
단금    (숨이 차다) 지랄도 엔강히 해싸. 팔자 도망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순간, 댕댕댕~~ 요령소리. 움찔하는 연심.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일어선다. 노상 있는 듯 곡비자리에 서는 곡비들. 단금, 연심을 잡아끌어 곡비 자리에 선다. 도망 못 가게 팔을 꽉 쥐는데. 똘망한 눈으로 도망갈 곳만 살피는 연심.

S# 4. 장지 가는 길 (낮)
긴 상여 행렬. 장대에 꽂힌 만장(輓章, 죽은 이를 애도하며 지은 글, 깃발)이 흔들린다.
행렬의 앞에서부터, 영여(靈輿, 장사를 지낸 뒤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와 12명의 상여를 멘 상두꾼(상여꾼)들, 상여 위에 타고 요령을 흔들며 소리를 하는 요령잡이(60대/선소리꾼). 그 뒤로, 곡비들(哭婢, 곡하는 여노비). 50대 곡비가 맨 앞에 서고 그 뒤로 나머지 곡비가 간다. 이를 앙다물고 가는 연심. 다음으로 삼베상복을 차려입은 자손들과 조객들이 따른다. 곡비들의 소리 구슬프다. 하지만 눈물은 없다. 뒤를 따르는 아낙들, 곡소리에 눈물을 찍어내느라 바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어 어허야/ 꽃은 펴서 절로 지고 어허어 어허야
잎은 피어서 만발할제 어허어 어허야/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허어 어허야
해당화야 해당화야 어허어 어허야/ 이내진다 설워말게 어허어 어허야

단금  (흘기며) 어여 못혀! 입이 들러붙었냐!
연심     (입술을 꾹 다문다)
단금     어디 니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등짝을 후려친다. 연심, 더욱 앙 다문다. 또 다시 후려친다. 이를 무는 연심.
S# 5. 계곡 (낮)
날씨가 따스하다. 경치 좋은 계곡 가에 차려진 화려한 잔칫상. 광대와 풍악대가 동원된 제법 큰 규모다. 종친 몇과 총부(冢婦, 남편이 죽고 없는 맏며느리)오씨(40), 적장자 경필(19)이 있다. 광대가 우스운 몸짓으로 웃기자, 박장대소하는 사람들. 경필도 슬몃 미소 짓는다. 얼굴에 병색이 있다. 무표정하게 보는 윤수(17). 전혀 감흥이 없는 얼굴이다.

오씨 (윤수에게) 너는 웃기지 않느냐? 어째 표정이 그래.
윤수    .... 소인,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가는)
경필    (윤수의 팔을 잡는다, 따뜻이) 좀 더 있다 가. 니가 있어야 흥이 난다. 어?
오씨    그래. 더 있다 가거라. 어차피 예까지 온 거. 
윤수    (웬일인가 싶어 본다)

S# 6. 기방 마당 (낮)
화려하게 성장한 화주(21)와 기녀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쪽에서 고심하는 얼굴의 도화.

청지기  (초조한, 도화에게) 이 사람아. 벌써 한 식경이나 지났네! 안 갈 건가?

S# 7. 계곡 (낮)
기생들과 도화가 온다. 순간 윤수, 오씨를 본다. 이거였구나! 윤수, 도화를 차게 보다 외면하고. 도화, 윤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흠칫, 시선 돌린다. 오씨, 조소가 흐르는.

도화    (예를 갖춰) 감축 드리옵니다. 큰 도련님께서 진사가 되셨다 들었습니다.
경필    (민망하다) 자네가 예까지 올 건 없었는데. (윤수 의식한다)
오씨    우리 가문의 경사인 만큼 자네의 소리가 빠질 수 없으니, 창 한 자락 뽑아보게나.
도화    (멈칫한다, 이내 기생들에게) 화주야.
화주    예.. (하더니, 기생들에게 눈짓하자 기생들 소리를 시작하는데)
오씨    그만! (도화에게) 자네가 직접 부르게.
윤수    (오씨를 보는 시선)
도화    (난감한) 소인, 이제 소리를 하지 않은 지 오랩니다.
오씨    흰소리는 됐고, 어서 하게!

S# 8. 계곡 일각 (낮)
푸른 하늘. 상여가 멈춰섰다. 노제가 벌어져 탁주를 마시는 요령잡이와 상두꾼들.

요령잡이  (쭉 들이킨다) 호상이라 그런지 술이 술술 넘어가네. 그려.

한쪽에서 단금과 얘기하는 상주. 외따로 선 연심을 본다.
상주   (마뜩찮은) 쟌 곡값 못 주네. 어디 입이라도 뗐어야 주지.
단금   곡이라도 갈치려고 데려온 건디.. 송구하구만요.
상주   (영 못마땅하다. 쯧!) 목도 축였으니 출발들 하세.

다시 상여를 메는 상두꾼들. 단금, 연심의 소매를 끌어 곡비 중 맨 앞줄에 세우려 한다.

단금   니도 사람 죽는 게 먼 줄은 알거여. 가는 사람 울어주는 거에 인색하면 안뎌.
연심   (버티다, 기막히다는 듯 본다)
단금   왜? 이 년아.
연심   (차다) 안 울었잖아. 엄닌.
단금   ?
연심   인색했잖어. 할매한텐! 
단금   (휙, 연심을 본다)
연심   근데 남들한텐 잘 울어주네? 
단금   (순간 흔들리지만) 지랄 말고. 곡이나 혀! (소매를 거칠게 잡아끈다)
연심   (확 뿌리치며) 내가 왜 남들 가는데 곡해야 하는데! 내가 왜!
단금   (쏘아보는) 뭐여!

이때, 상여가 출발한다. 순간 연심, 상여를 앞질러 대열에서 빠진다.
무너지는 기분으로 보는 단금. 상주, 기막혀 저.. 저 년이! 손가락질 하다, 단금에게.

상주  뭐하는가! 당장 데려오지 않고! 망자보다 먼저 길을 잡는 경운 없네!

S# 9. 계곡 (낮)
난감한 도화, 윤수를 의식한다. 윤수, 시선 비껴 서 있다. 

도화   재기가 예전만치 못합니다. 귀를 더럽힐 것입니다. 마님. 
오씨   (조소가 스친다) 그래? 그럼 대체 예까지 온 이유가 뭔가? 소리도 못한다며.
도화   (움찔)
오씨   왜 예까지 온 거야 대체. (끝내 외면한 윤수를 보는 시선)

이때, 댕댕댕 ~~ 상여 소리. 순간, 도망쳐 오는 상복을 입은 연심.
뒤이어 단금이 쫓아온다. 연심아! 이 년아!  일동들, 놀라 휘둥그레진다.

오씨   (상복의 출현에) 뭐.. 뭐냐.. 저것은!

뒤이어 상여가 나타난다. 기막힌 듯 보는 일행들. 컷.
계곡을 사이에 두고 기생과 풍악대가 다른 쪽에 상여행렬이 대치한 상황. 기싸움 하듯 선 오씨와 상주. 중간에 어중간하게 낀 연심,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빠져나갈 곳을 찾지만, 앞뒤로 막힌 상황.

상주    보아하니, 인륜을 모르시진 않으실 테고 비켜주시지요.
오씨    보시다시피, 집안의 큰 경사이니 상을 물릴 수가 없습니다.
        (도화에게) 어서 소리를 하거라. 잔치는 이제부터다.
도화    .......
오씨    어서 하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
도화    ... 망자께서 가시는 길, 창으로 길을 막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상주    (히죽-) 이미 잔치는 파한 거 같습니다. 길을 내주시지요.
오씨    (날캄해지는 눈매로 도화 보다 윤수에게) 너라면 어찌할 거 같으냐.
윤수    (무슨 소린가)
오씨    이 년 말대로 길을 내주는 게 도리냐, 아님 계속 잔치를 하는 것이 도리냐.
경필    (보다 못해 나서며) 어머님.. (하는데)
윤수    (흔들리다, 부러 독하게) 어찌 기생 따위의 말에 무게를 두겠습니까.
        (도화에게) 어서 부르게!
도화    (하얗게 질리는) !
오씨    (미소)
윤수    어서 부르라지 않는가!

이때 단금이 보다못해 연심을 쫓아와 잡아끌려 하자, 도망쳐 계곡을 건너는 연심.
주변 아랑곳 않고 후다닥- 잔칫상을 지나 윤수의 옆을 스친다.

윤수    (옆을 스치는 연심을 꽂힌 듯이 보는) !
오씨    (기함하는) !
청지기  (손가락질) 저... 저 곡비 년이! 내 저 년을 당장! (잡을 듯 쫓아간다)
연심    (청지기의 손에 잡힐 찰나, 길로 냅다 빠져나간다)

멈춘 것 같은 화면. 멍해서 이를 보던 상주와 일행들. 순간 상주, 허겁지겁- 따라간다.

상주    (이때다 싶다) 어서들 가게! 어서! 

순간, 상주의 재촉에 급히 출발하는 상여행렬. 계곡을 건너 상여가 올라가자 허둥지둥 자리를 내주는 광대들과 기생들. 급히 잔칫상을 치우지만 상이 엎어지고 난리법석.
오씨, 부들부들 참다 매섭게 도화의 뺨을 친다. 충격으로 굳는 도화.

오씨   (보란듯이 윤수에게) 천한 년이 방자하지 않느냐.
윤수   (도화를 굳어져 본다)

S# 10. 산 일각 (낮)
냅다 도망치는 연심. 뒤로 상여가 올라오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뺀다.

S# 11. 산 다른 일각 (낮)
장지로 향하는 상여. 곡비들의 울음소리가 크다.

상주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고년 참. 울진 않아도 쓸모가 다 있네.

순간, 단금의 소리가 끊어질듯 하다 뚝, 멎는다. 곡비들, 무슨 일인가 본다.
단금, 울컥- 입에서 피를 토하는. 상복을 물들이는 붉은 선혈.

S# 12. 연심의 집, 부엌 (낮)
아궁이 불이 활활-. 벗은 상복을 아궁이에 던지는 연심. 곱단(7), 옆에 앉아 불길을 본다.

곱단     (시무룩, 걱정되어) 엄니한테 혼날텐디..
연심     (타는 상복만 본다)

이때, 단금과 요령잡이가 들어오는 소리. 곱단, 흠칫 놀란다. 언니..

단금     뭐하는 겨? (순간 안을 보다 상복 타는 걸 봤다. 놀라서 불쏘시개로 상복을
         끄집어내는데. 다 탔다)  이 년이 단단히 미쳤구만! (불쏘시개로 마구 때린다)
연심     (막다가 휙, 밀치고는 요령잡이 옆을 스쳐 가버린다)
단금     (휘청-) 저... 저 년은 내가 죽어도 울지도 않을 년이여!
 
S# 13. 연심의 집, 마당 (해질녁)
낙조에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 곱단은 마당에서 흙 가지고 논다. 가만 곱단을 보는 단금.

요령잡이  (툇마루에 앉은) 괜찮은가? 어째 피를 다 토하고.
단금      (남 얘기 하듯) 얼격(噎膈,식도암)이라네요.. 길어야 한 달이라는디.
요령잡이  (놀란다)
연심      (싸리문 밖에 저만치 있다 다가온다. 안을 기웃하는)
단금      (곱단을 물끄러미 본다) 내일 사람 보내주셔여. 그짝이나 이짝이나
          어차피 사는 형편은 다 아는 거고. 할배 아들이면 속이야 착할 거고.
연심    (쿵) !
요령잡이   연심이가 우리 아들보다는 한참 어린데.. 괜찮겠나.
단금       곡비년 데려갈 사내가 상두꾼 말고 세상 팔도에 또 있는 것도 아니고.
           두 내우 상갓집 다니면 배는 안 곯을 테니..그거면 됐지여. (한숨이 깊다)

S# 14. 연심의 집, 방 안 (밤- 아침)
밤.   곤하게 자고 있는 단금과 곱단. 연심, 눈을 뜨고 천장만 본다.
      생각이 많은 얼굴.. 그러다 결심이 선 듯 눈을 감는다.
아침. 식은땀을 흘리며 뒤척이는 단금. 악몽을 꾸는지 신음소리. 그러다 번쩍 눈을 뜬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농에서 옷가지들이 흩어져 있는. 쿵하듯 보는 단금.

S# 15. 저자 (낮)
터벅터벅- 보퉁이 들고 오는 연심. 어디로 갈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
우두커니 우울한 얼굴로 섰다. 이때 저편에서 열 대여섯의 계집애들, 우르르 몰려간다.

S# 16. 저자 일각 (낮)
벽에 공고가 붙어 있다. 청루각에서 동기를 구한다는 벽보. 계집애들, 보고 흥분해서 있는데 터벅터벅 오는 연심. 계집애들, 연심 보고는 인상 찡그리곤 피한다. 연심, 글을 몰라 봐도 모르겠다. 뚫어져라 본다. 이때, 지나는 노인. 연심 보고는.

노인    뭐길래 그리 보냐. 니가 봐서 뭘 알어? (벽보 본다. 눈이 침침하다)
        어....  거 기생년을 다 구하는구만..
연심    기생이요?
노인    (안 듣고 벽보만 본다) 열 둘에서 열 여섯까지 동기가 될 계집이라.
연심    (기대감)
노인    용모단정이면 좋고, 재주까지 있음 더 좋고.. 어이구... 이거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다네.. 근데 예가 어딘가? (자기가 더 궁금한) 
연심    (반짝)
노인    어디서냐.. 어디 (눈이 침침하다) 그게.. 
연심    (침 꼴깍)
노인    청... (하다가 모르는 글자다) 이게 뭔 자냐.. 청..
연심    청.. 뭐요..(얼굴 더 들이민다) 

순간, 벽보를 확- 뜯는 손. 윤수다. 윤수, 반으로 벽보를 쭈욱- 찢는다.  
연심, 놀란다. 노인,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은 표정.

윤수   천한 기생 따위 뽑는 게 뭐라고 벽보씩이나. (벽보 들고 간다)
연심   어디서 뽑는대요?
윤수   (무시하고 가버린다)
연심   어디래요? 예?

S# 17. 저자, 다른 일각 (낮)
윤수, 벽고 들고 온다. 따라오던 연심, 윤수의 앞을 막아선다.

윤수   (종이를 박박 찢어서 휙 버린다)
연심   (놀라는) !
윤수   (차가운) 너 기생이 되려고?
연심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네.
윤수   허옇게 얼굴에 분칠하고 웃음이나 파는 천한 기생 따윌 하겠다고?
연심   네. 천한 기생 따위 할 건데요.
윤수   (기막힌) 그게 뭔지는 알아? (조소로) 어느 날은 사내의 술잔이 되고, 어느 날은          사내의 노리개가 되고, 또 어느 날은 이불이 되었다.. 결국 내처지는 거다.
        그 천한 걸 하겠다는 거고. 넌!
연심   술잔이 되면 좀 어떻고, 노리개가 되면 어떤데요.. 그게 뭐요? 
윤수   (어이없다) 뭐?
연심   (반발하듯)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해코지 하는 것도 아닌데.
       좀 천하면 어떤데요!
윤수   (기가 차다) 하.. 그래? ... 그럼 어디 해 보거라. 그리 하고 싶음! 해봐.
       허나 (비웃음) 곡비인 널 받아주진 않을 거다.
연심   (입술 물고 쏘아보는)
윤수   천한 것들이 자기보다 천한 걸 더 싫어하거든. (조소로 가버린다)
연심   (노려보는)

S# 18. 기방 마당 (낮)
‘어머, 쟤 곡비 아냐. 근데 쟤가 여긴 왠일이래’‘기생하려나봐, 미친 거 아니니’
쑥덕이는 계집애들. 연심, 기대감으로 한 쪽에 있다. 화주, 그런 연심 보고는.

화주   너 이리와. (연심을 데리고 대문께로 가서 밖으로 확- 민다)
연심   누구든 기생이 될 수 있다면서요?!
화주   니가 누구든이니? 곡비가 누구든이야? (대문을 닫는데)
연심   (급히 대문을 잡는)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한 번만 시켜주세요!
화주   (연심의 손가락을 떼고는, 웃으며) 잘 가~~. (대문을 딱- 닫는)
연심   (닫힌 문을 우울하게 본다)

S# 19. 영상댁 마당 (낮)
무거운 얼굴로 들어오는 윤수. 마당에는 경필의 약탕기가 끓고 있다.
경필의 방을 지나는데, 안에서 들리는 오씨와 경필의 목소리.

경필 (E) 왜 그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도화 그 사람까지 부르셔서.
윤수      (멈칫 선다)
오씨 (E) 지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어디를 감히 올려다봐선 안 되는지
         그걸 가르쳐 준 거 뿐이다. 아랫것들 다루는 데는 수치심만한 게 없지.
경필 (E) 어머니..
윤수     (모멸감)

S# 20. 윤수의 방 (낮)
들어오는 윤수. 쾅! 문을 거칠게 닫는다. 분노와 모멸감, 수치로 굳는.

S# 21. 기방 밖 (해질녁)
연심,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담장 안을 기웃거린다. 동기들이 비단옷을 입고
화주에게 춤사위를 배운다. 부러운 듯 보다 추위에 보퉁이를 꼭 끌어안는데.
이때, 사내들이 연심을 힐끗거리며 기방 안으로 들어간다.

S# 22. 기방 대문 앞 (밤)
사내를 배웅하며 나오는 화주. 사내의 팔짱을 끼며 연신 웃는다.

사내   (팔을 뿌리치며) 저리 치워. 한양에서 너같이 못난 년은 처음이다.
       이건 보는 맛이 있나, 품는 맛이 있나.. 에이, 돈만 날렸구만.
화주   (연신 웃는다) 왜 그러우. 곡주 잘 드셔놓고선.
사내   웃지마. 술 깨. (침을 퉤 뱉고는 가버린다)
화주   또 오셔요~~. (돌아선다. 순간 웃던 얼굴에서 후두둑- 눈물)

S# 23. 기방, 담장 (밤)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화주. 저편에서 보다 다가오는 연심.  

화주    (앙칼지다) 가! 재수 없는 곡비 년아! 안 가!
연심    (옆으로 슬금슬금- 와 서는)
화주    가라니까! (흙을 뿌린다)
연심    (두 걸음 정도 떨어져 앉는다, 보다가) 코 나왔어요.
화주    (흠칫, 콧물 닦는다)
연심    거기 아니고 (다가와 슥슥- 닦아준다, 눈물로 엉망이 된 화주를 물끄러미 본다)
화주 (민망해서 자기가 닦으며) 뭘 봐!
연심 (위로하듯) 그래도.. 언니는 눈물이 나네요.
화주    야, 눈물 안 나는 사람도 있니!
연심    눈물.. 안 나더라구요.
화주    (무슨 소린가)
연심    할매 죽었는데도 눈물도 안 나요. 우리 엄닌.
화주    거야 곡비니까 그러지. 곡빈 소리로 우는 거잖아.
연심    (허탈한 미소) ..나도 그럴까요?
화주    (보는)
연심    ... 우리 엄니 죽음, 눈물도 안 날까요?
화주    (그제야 심각히 본다)
연심    .. 한 번도 엄니가 웃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웃고 살고 싶어요. 
화주    (흔들리는 눈)
연심    기생이 되면.. 안 울어도 될 거 같아서.  
화주    (멍하니 보다 시선 돌리고)  운다고. 어디 그게 다 울음이고.
        웃는다고. 어디 그게 다 웃음이니.
연심    ?
화주    사는 게 아닌 척. 괜찮은 척. 다 그렇게 적당히 쓸어담고 사는 거지.
연심    (멍하니 보는)
화주    (일어나 대문께로 가더니) 안 들어와?

S# 24. 기방, 방 안(밤)
연심, 긴장한 채 섰다. 연심의 얼굴이며 몸의 자태를 살피는 도화.

화주     어떠우? 땟국물 좀 벗기면 물건이 될 거 같수?
도화     얼굴에 도화살이 없으니 사내들의 눈길을 잡지 못할 것이고, 몸도
         실팍하지 못하니, 손길 역시 잡지 못할 것이야. 또한.
연심     (긴장해 본다)
도화     사내들의 마음을 잡을 재주 또한 없으니, 장사는 어찌 하지? (차게) 가봐.
연심     (실망한. 미련이 남아 나가지 않고 섰다)
도화     어서 가봐.
화주  (자기가 실망한) 야~ 가야겠다.

S# 25. 기방 대문 앞 (아침, 다음날)
화주, 추위에 옷을 여미며 종종거리고 나온다. 대문을 여는데. 

화주 어휴~ 얼릉 추위가 가야지. 이거 원. (하다가)
한쪽에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는 연심을 본다. 화들짝 놀라 다가와선.

화주 (기겁하는) 너 집에 안 갔니? 얘가 진짜 어쩌려고. 가아, 쫌~~!
연심 (고집스런 얼굴로 보퉁이만 꼭 끌어안는)
화주    (발 동동 구르며) 아후, 증말. 미쳐~!

S# 26. 기방, 별채 (낮)
아이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도화. 탁탁, 부채로 동기들의 어깨를 친다. 답답한 얼굴.
이때 한쪽에서 보던 화주. 도화 옆으로 쓰윽- 오더니.

화주   이번엔 어째 가기(歌妓)가 없나보우. 애들이 영. (하더니, 도화 눈치 살피는)
       언니~ 어제 걔 말이우. (하는데)
도화   (차게 간다)
화주   (따라 붙으며) 어차피 쓸 만한 애도 없는데. 춤이든 소리든 뭐라도 시키면 되잖수.
도화   (대꾸 없이 간다)

이때, 담장 밖에서 들리는 소리. 태평가다. 도화, 보면. 담장에 기대앉아 떨면서도 소리를 흥얼거리는 연심. 화주, 안쓰럽게 보는. 

화주    쇠심줄 같은 기집애. (은근히) 그래도 저것들 보단 훨 낫네~. 그니까 언니~.
도화    (O.L 단호하다) 기생될 아이가 아니다. 돌려보내.

S# 27. 영상댁. 마당 (낮)
종회(宗會)에 참석하는 원로들. 종들 한쪽에 서 예를 갖춘다. 다가와 늙은 여종 옆에 서는 윤수. 이때 경필, 기침을 심하게 하며 창백한 얼굴로 온다.

원로1 그 몸으로 어딜. 들어가 쉬거라.
경필    (힘겨운) 어르신. 오늘 윤수가 제 대신 종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는데)  
원로1   무슨 소리냐?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윤수     !
경필    어르신.
원로1   찬바람 쐬지 말고. 들어가. (윤수가 보이지 않는 듯 지나친다)
윤수    (허리 깊이 숙여) 들어가십시오. 도련님. (그 눈에 서리는 분노)

S# 28.  저자, 주막 (저녁)
윤수, 참혹함에 술잔을 들이킨다. 쾅, 술잔을 내려놓는다. 일렁이는 눈.

S# 29. 기방 일각 (저녁)
홍등을 뜯어 바닥으로 팽개치는 윤수. 술이 많이 취한 얼굴이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대문을 쏘아보는데, 차마 들어가진 못한다. 이때, 담장 안에서 보이는 도화.

화주   영상댁 잔칫일 때문에 그러우?
도화   (쓸쓸한 얼굴) 아니다. 
화주   (한숨. 속상하다) 아니긴요. 솔직히 너무 했수. 도련님이.
도화   ... 그 아이도, 애쓰고 있는 거다.

윤수. 눈빛이 흔들린다. 하지만 애써 독하게 간다. 휘청- 비틀거린다. 넘어지는 순간 잡아주는 손길, 연심이다. 왜, 하필 이 아이를 또 여기서.

윤수  놔라. (차게 뿌리친다. 다시 휘청)
연심  (다시 잡는다) 술 드실 거면 들어가시지 예서 뭐해요?
윤수  놓으라니까!! (뿌리치고는 가다 풀썩- 담장으로 넘어진다)

연심, 한숨이 나온다. 보퉁이 안고는 한쪽에 가서 앉는다. 추워 보퉁이 꼭 끌어안는데. 윤수, 담장에 쓰러진 채 연심을 본다. 왠지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윤수  (몽롱한 눈으로, 조소) 거봐라. 곡비라고 안 받아주지?
연심  (귀찮다. 춥다. 배고프다)
윤수  원래 천한 것들이 더한 법이다.. 왠줄 아냐? 천한 게 천한 걸 보면 화가 나니까.
      싫으니까.. 그냥 그게 싫으니까!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다)
연심  (짜증나는) 나한테 왜 이래요?  나 도련님 처음 보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건데요?
윤수  (거의 주정) 거슬려서!  니가 계곡에서 상여 끌고 산으로 도망간 것도
      거슬리고.. 여기서 기생이 되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도.. 다 거슬려서!
연심  (그제야 기억나는) 그럼.. 그때 산에서. (하는데)
윤수  (O.L) 가! 예서 알짱거리지 말고. 가라!
연심  (기막히다) 그짝이나 가요. 남에 일 상관 말고!

이때, 문이 열리고 나오는 도화. 대화를 다 들었다. 윤수, 도화를 쏘듯 본다.

도화  (윤수 설핏 본, 연심에게) 들어와라.
연심  (놀란다)
도화  들어와.
윤수  (분노한 눈)
도화  (들어가다 멈칫. 걱정되는. 윤수 보지 않고) 날이 찹니다.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윤수  (오기로 일어나 기어이 휘청휘청- 가는)
도화  (안도하는 얼굴, 안으로 드는) 
윤수  (순간 풀썩- 쓰러지는)

S# 30. 기방 방 안 (저녁)
들어오는 연심과 도화.

도화  아침에 가거라. (나가다 멈칫)
연심  (소매를 잡았다) 어떻게 해야 받아주실 건데요? 어떻게 해야 기생이 될 수
      있는데요?
도화  (연심의 손을 뗀다, 나가는)
연심  (다시 잡는다, 절박한)  가르쳐 주세요. 하라는 대로 뭐든지 할게요.

S# 31. 저자 (저녁)
가지색으로 하늘이 물들었다. 쿨럭쿨럭- 기침을 심하게 하며 연심을 찾는 단금. 사람들, 모두 피하거나 못 봤다고 한다. 단금, 힘든 지 한쪽에 앉는다. 식은 땀. 이때 지나는 노인.

노인  자네가 찾는 애가 그 곡비 앤가?
단금  (놀라 본다)
화주  (E) 손님상에 올리라뇨!

S# 32. 기방 방 안 (저녁)
화장을 하는 동기들과 구석에 혼자 앉은 연심. 동기들, 싫은 얼굴이다.

화주  (놀란다) 기생될 그릇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수? 근데 갑자기 왜?
도화  (연심을 본다) 기생이 되고 싶다잖니. 
화주  언니..

S# 33. 기방 마당 (저녁)
비단옷에 화장까지 한 연심, 동기들과 함께 화주를 따라 간다.

화주  (연심에게) 대체 너 언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연심   .......
화주   아,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거. 매도 빨리 맞음 좋지 뭐.

이때, 대문 안으로 드는 단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저편으로 가는 연심.

단금  연심아! 연심아!
연심  (그 목소리에 굳는다, 단금인 걸 안다. 돌아보지 않는)
화주  (급히 가서 단금을 막는다) 나가요! 어딜 맘대로 들어오고!
단금  저 년 연심인데.. 우리 애 연심인데.. (들어가려는데 밀쳐지며 쓰러진다)
화주  미쳤수! 우리가 곡빌 기생으로 들이게. 장사 망치지 말고 어서 가라니까요!
단금  (힘겹게 일어나 연심을 쫓으며) 이 년아! 예서 뭘 하는 거여! 분 바르는 것들,
      사는 게 을마나 팍팍한디..(가슴이 무너진다) 연심아!

화주, 단금을 밖으로 밀쳐낸다. 쫓겨나면서도 연심을 눈으로 쫓는 단금. 외면한 연심.

S# 34. 기방 밖 (저녁)
문이 쾅- 닫힌다. 단금, 문을 열려하지만 그대로 주저앉는다. 식은땀과 가쁜 호흡.

S# 35. 기방, 손님방 (저녁)
동기 두 명과 연심, 장돌뱅이들 앞에 섰다. 장돌뱅이들, 쓰윽- 훑어보더니 냉큼 손목부터 채서 옆에 앉힌다. 저고리와 치마 속으로 들어가는 손. 자지러지며 놀라는 동기들. 연심도 놀라 굳어진다. 비릿한 웃음으로 연심의 어깨를 감싸는 장돌뱅이. 화주, 문 닫고 나간다. 

S# 36. 기방, 손님방 밖 (저녁)
동기들, 울고 불고 뛰쳐나온다. 도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

화주  (팔짱끼고 안쪽을 흘낏) 아니, 얘는 왜 안 나와? 나올 때가 됐는데.

이때, 안에서 들리는 소리. 도화, 열려진 방문 안을 본다. 연심이 소리를 하고 있다.

연심  (장조가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리..  

연심, 울음을 삼키며 사내들 앞에서 웃음을 띠고 소리를 한다. 물끄러미 보는 도화.
 
S# 37. 기방, 방 안 (저녁)
연심과 도화가 앉았다. 눈가 붉은 연심을 지그시 보는 도화.

도화   (이상한 아이다)  왜 울지 않니?  슬프지 않니?
연심   .......

S# 38. 기방. 담장 밖(저녁)
화주, 장돌뱅이들에게 돈을 준다. 화주의 손목을 슬쩍- 잡는 장돌뱅이.

장돌뱅이   (눈 찡끗-) 우리 술 좀 더 먹고 가면 안 되나.
화주    (손목 확- 빼며) 아, 정말. 소금 뿌린다~!
장돌뱅이   에이, 그르지 말고. 어차피 차린 술상. 목이나 더 축이게.
화주    (찌릿- 흘기며) 내년에! 애들 또 들어오면! (사라지라는 손짓)

장돌뱅이들, 쩝-. 아쉬운 듯 간다. 화주, 잡힌 손목을 툭툭, 털고는 들어가려다 담장 한쪽에 쓰러져 있는 윤수를 본다. 화들짝.

화주     도련님! (흔드는) 정신 좀 차려봐요!

S# 39. 기방, 방 안 (저녁)
도화   (연심을 본다) 첫 손님상에 든 아이치고 울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동기들 태반이
       우는 걸 배우면서 기생이 되지. 우는 걸 알아야, 웃을 줄도 알거든.
       근데 너 같은 애는 처음이다.
연심   .......
도화   웃는 애는 처음 봤어.
연심   (눈물 억지로 꿀꺽 삼키는)
도화   왜 기생이 되려 한 거니?
연심   (입술을 문다)..... 울기 싫어서요. (이를 물고) 웃고 살려고요.
도화   (물끄러미 본다) 기생이 되니, 웃음이 나니?
연심   .......

이때, 윤수가 화주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다. 창호에 비치는 윤수. 도화, 눈가 흔들린다.

S# 40. 기방, 다른 방 안 (저녁)
쓰러질 듯 앉는 윤수. 등을 댄 뒤에 도화가 있다. 창호 사이로 양쪽 소리가 들리는 구조.

화주    아니 무슨 술을 이렇게나.. (하더니) 물이라도 (나가려는)
윤수    ... 넌 왜 기생이 된 거냐.. (멈칫 서는 화주) 너두 그래.. 그 철없는 기집애처럼
        천한 것도 상관없고.. 마냥 그게 좋아 보여 기생이 된 거냐.
 
인서트> 도화가 듣고 있다. 연심도 윤수의 목소릴 들었다. 내 얘기구나.

화주    (빤히 보다 털썩 앉는다) 천한 것도 이미 알았고,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았수.
        그냥 난. 입에 풀칠하려고 기생 됐수. 먹고 살려고.
윤수    그래서 이젠 살만하냐?
화주    (피식) 살만하지 않을 건 또 뭐 있수? 징글징글하게 살만하우.
        그러는 도련님은 반쪽 양반 살만하오?
윤수    네 보기엔 어떠냐?
화주    뭐, 적어도 우리보단 살만 하지 않겠수. 그래도 양반인데.
윤수    (자조적인 웃음이 스친다)

S# 41. 기방. 방 안 (저녁)
도화   (쓸쓸한 빛이 스친다) 맞아... 여기 온 것들.. 기생이 좋아서 기생된 년들은
       없지.  웃고 싶어서 웃는 년도 없고, 웃어야 살 수 있으니 웃는 거다.    
       (자조적이다) 웃음을 파는 거야. 기생은.
윤수   (도화의 소리 듣는, 술기운이 싹 가시는 느낌) !
연심   (반박하고 싶다) 그래도.. 울진 않아도 되잖아요. 남을 위해 울지 않아도.
도화   맞아. 울진 않아도 되지. 하지만, 울고 싶어도 울어선 안 돼. 기생은.
연심   (본다)
윤수   !
도화   기생은 항상 웃어야 해. 그래야 사내가 찾고, 그래야 장사를 하지.
윤수   .......
연심   .......
도화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그러다 소리를 한다. 단조가락의 구슬픈 태평가)

S# 42. 기방. 다른 방 안 (저녁)
윤수, 그 창 소리가 싫다. 휙- 도화의 그림자를 노려본다.

S# 43. 기방. 방 안 (저녁)
눈물이 그렁그렁한 연심. 꾹- 참고 있다. 그 고집스런 얼굴을 지그시 보는 도화.

도화   (따뜻이 보다) 실은 웃고 싶은 게 아니라.. 울고 싶었던 거지?
연심   (마음 들킨 기분) 
도화   울고 싶어서.. 내내 참았던 거지?
연심   !
도화   어미를 버리고 오니.. 웃음이 나니?
연심   !
도화   (가슴이 저민다).. 나도 버렸었다. 너처럼.
윤수   (흠칫 뒤를 돌아본다)
도화   (담담하려 애쓴다) 가난한 게 싫어서 기생이 됐다. 나도.
       비단 옷 입고, 소리 하고 살면.. 좀 더 살만할 거 같아서.
윤수   (흔들리는 눈)
도화   근데 나도 너처럼 울 수가 없더구나.

인서트> 몸을 푼 도화, 막 태어난 아기 윤수를 품에 안으며 미소가 지어지지만,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울지 못한다. 

도화   (먹먹하다) 내 손으로 그 아이를 버리고.. 울음이 나지 않더구나.
윤수   (더 흔들린다) 
도화   매일 밤, 그 애 울음소리가 떠오르는데. (아픈 미소) 버린 어미는 울 자격도 없지.
       어떻게 울어? 그래서 소리를 했다.. 하지만 네 어민, 널 버리지 않았잖니.
연심   (울컥하지만 이를 문다)  
도화   돌아가.. 넌 기생이 될 아이가 아니다. 도망갈 곳이 필요했을 뿐이야.
연심   (애써 독하게) 아뇨! 버렸으면 좋겠어요. 엄니가 날 버림, 남들 위해서
       곡하며 살진 않잖아요. 차라리 날 버렸음 좋겠어요!
도화   (그 마음을 안다. 아프게 본다. 윤수에게 하듯) ... 애쓰지 마라.
       ...억지로 그리 애쓰지 마. 웃으면 그저 웃어지구. 울면 그저 울어져.
연심   .......

S# 44.  기방. 방 안 (저녁)
윤수, 흔들리지만 애써 독하게. 도화에게 하듯.

윤수    내 어민 날 버리고 울 수 없어 소리를 했다는구나. (허탈하고 아픈 표정)
연심 !
윤수  (그러다 독기로) 그럼 소리도 하지 말았어야지.. 웃지도 말았어야지. (울 듯한 얼 굴이나 독하게) 죽지 못해.. 죽은 것처럼 살고! 죽은 듯이..죽을 것처럼 그리
 살았어야지! 버렸음.. 그 얼굴마저 비치지 말았어야지! (확, 일어나 나가는)
화주 도련님! (따라 나간다)

S# 45. 기방. 복도 (저녁)
윤수, 방에서 나온다. 옆방에서 연심이 나온다.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열린 방문 새, 도화가 앉아 있다. 모자의 눈이 마주친다. 윤수, 차게 간다. 도화의 시선, 흔들린다.

화주   언니! 무슨 사고라도 칠 거 같수.
연심   (도화를 본다)
도화   (흔들리는)... 청 하나만 들어줄래?

S# 46. 저자 (밤)
윤수, 복잡한 심정으로 간다. 몇 발자국 뒤를 따라가는 연심.
 
S# 47. 돌다리 (밤)
윤수, 온다. 따라오는 연심. 돌다리가 중간에 뚝, 끊겼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윤수. 자신의 처지 같다. 무거운 얼굴로 선 윤수를 보는 연심. 
윤수  (끊긴 돌다리 보는) 왜 쫓아 온 게냐?
연심  .......
윤수  (아픈 조소) 쫓아가라고 청이라도 하든?
연심  (멈칫, 그러다 물속으로 들어가 돌을 가지고 와선 윤수 앞에 놓는다)
윤수  (놓인 돌을 보는 시선) ... 그리하라 했구나.
연심  (다시 가서 돌을 줍는다)
윤수  (순간 저벅저벅- 물속으로 들어가 연심의 손에 든 돌을 뺏는)
      다리도 놓아주라고 하든?! (확- 던져 버린다)
연심  !
윤수  또 뭘 해주라고 하든?! (연심의 어깨를 거칠게 잡는) 불쌍하고 안 됐으니
      양반 놀이라도 해주라고 하든?! (분노로 꽉 쥐는데)
연심  (뿌리치려는) 왜 이래요!
윤수  (더 아프게 쥐는, 참혹하다) 얼자 서출이라고 하니 불쌍해 보이냐!!
연심  놔요!! (버둥거리는데)

      윤수, 확- 거칠게 밀치듯 놓는. 그 기세에 휘청하며 풍덩- 빠지는 연심.

윤수  (차갑게 보는 시선)
연심  (물속에서 일어나는. 굳어진 얼굴. 아프게 자조적으로 웃는다)
윤수  (봤다, 욱) 웃어?! 천한 곡비 년이 감히 웃어?!
      곡이나 팔러 다니는 것이 영상댁 둘째 아들인 날 비웃어?! (입술 비틀리는)
연심  (터지는) 네. 비웃는 거에요!
윤수  너! 지금!!! (무섭게 칠 듯 다가오는)
연심  (비명 같은) 웃는 거 말고 뭘 더 할 수 있는데요!
윤수  ..!
연심  웃지 않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요!
윤수  (멈칫 서는)
연심  반쪽 양반이 그렇게 창피해요? 그래서 웃는 게 비웃는 걸로만 보여요? 
윤수  닥치거라! 니 까짓 게 뭘 안다고!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는)
연심  몰라요! 내가 아는 건! 도련님은 사람들에게 버러지라고 손가락질
      안 받아도 되는 거! 나처럼 귀신 붙은 년이라고 욕지거릴 안 받아도 되는 거!
윤수  .......
연심  (입술을 무는) 나처럼.. 엄니를 버리고도.. 기생도 되지 못하는.
      천한 곡비는 아니라는 거!
연심  그건 알아요! 그건 안다구요!
윤수  (흔들린다)

S# 48. 돌다리, 일각 (밤- 동틀녘)
우두커니 선 윤수, 한기가 돈다. 몸을 떠는데. 능숙하게 모닥불을 지피는 연심.

연심   (궁시렁) 따라 오는 게 아니었어. 술만 마실 줄 알지. 불도 못 피우고.
윤수   (머쓱하다) 내가 한다니까.
연심   (입바람 후- 불면, 불이 확- 붙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양반님들은. (절래)
윤수   (멋쩍은. 그러다 슬쩍- 불 옆으로 오는)
연심   (쓰윽- 본다. 기막힌)

(시간경과) 활활- 타는 모닥불. 옷을 말리는. 불 앞에 앉은 두 사람.

윤수   (불을 가만 본다) 왜 그렇게 우는 게 싫으냐?
연심   (역시 불 보는) 왜 도련님은 웃는 게 싫은데요?
윤수   네 어머니가 생각나서냐?
연심   도련님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윤수   .......
연심   .......
윤수   집에 돌아가. 어머니가 걱정할 거다.
연심   .......
윤수   (여동생에게 하듯) 돌아가.. 곡을 안 하더라도.. 돌아가서.. 하지 마.
연심   (불을 보다 그제서야 윤수를 보는)
윤수   (순간 푹- 고개 떨구는. 잠이 든 모습)
연심   (이 양반님은 정말.. 그러다 그 모습 가만 보는)
 
S# 49. 들길 (동틀녁, 다음 날)
새벽 동이 튼다. 윤수가 앞서가고 연심이 뒤로 몇 발짝 처져 간다. 순간, 윤수가 연심 옆으로 간다. 연심, 움찔하다 조금씩 같은 보폭, 같은 위치에서 나란히 걷는다.

윤수   왜? 싫으냐?
연심   사람들은 옆에 안 오려고 해서.
윤수   (안쓰럽게 본다) 그냥 낯선 거겠지. 두렵기도 하고.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불편해 하니까. 난 두렵지 않지만.
연심   (멍하니 보다 슬몃 웃는다)
윤수   (물끄러미 본다)
연심   (그 시선이 낯설고) 왜..요.
윤수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난.. 웃는 법을 까먹었다.
연심   .. 울면 곡비년이 운다고 하니까. 울지 않으려고.
윤수   (짠한)
연심   도련님도.. 웃어봐요.
윤수   (움찔)
연심   (빙그레 미소 짓는)
윤수   (그 웃음이 가슴에 전해진다)
연심   해봐요. 어서.
윤수   (미소 짓는다, 어색한)
연심   이렇게 (미소 짓는데 조금 우스꽝스럽다)
윤수   풋!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연심   거봐요. 웃었잖아요.
윤수   ..니가 부럽구나. 이렇게 웃을 줄도 알고. 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
연심   (무거운 얼굴) 모르겠어요. 이제. 
윤수   (보는)
연심   (옅은 한숨) 우는 거 말고..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요.  
윤수   (물끄러미 보다) 나도.. 그렇다.
연심   (보는)
윤수    나도 너처럼 뭘 하고 싶은 지.. 뭘 원하는 지 모르겠다.
연심    (무슨 소린가)
윤수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 무엇도 되어선 안 된다. 그게.. 내가 반쪽짜리 양반으로  사는 대가였다. 니 말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양반.. 그게 나다.
연심    (보는)
윤수    그래서 널 보는 게 화가 났다. 난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걸, 넌 열심이었으니까.  (따뜻이) 넌 찾을 거다. 니 길을. 지금은 모르겠지만, 언젠간 찾을 거다. (가는)
연심    (물끄러미 뒷모습 본다) 도련님!
윤수    (돌아보는)
연심    도련님도. 찾으실 거에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도련님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실 거예요.
윤수    (흔들리는 눈)

S# 50. 영상댁, 대문 밖 (아침)
윤수, 가는데 저도 모르게 슬몃 미소가 저진다. 자신도 놀라 다시 무표정 되는.
이때, 청지기가 대문에서 경황없이 뛰쳐나온다. 윤수와 부딪히는 청지기.

청지기  대체 어디 계셨습니까요! 

S# 51. 영상댁, 경필의 방 (아침)
싸늘하게 굳은 경필. 오씨, 사색이 되어 쓰러지듯 앉았다. 윤수, 충격으로 굳어져 보는!

S# 52. 연심의 집, 마당 (아침)
들어와 문이 열려진 방을 보는 연심. 이부자리가 어지럽고, 끌려간 흔적이다. 놀라는데!

S# 53. 영상댁, 대문 밖 (아침)
조등이 걸려 있다. 종들, 상치를 준비를 한다. 이때, 청지기의 부축을 받으며 오는 단금. 곱단이 쫓아오다 대문 앞에서 쫓겨난다.

S# 54. 영상댁, 안 방 (아침)
경필, 눈과 입에 창호지가 붙어있다. 문중 원로와 오씨가 있다. 굳은 얼굴로 선 윤수.

원로1   미령한 아이가 이리 갔으니 제사는 오일장, 대곡제로 최고의 곡비를 쓰게.
오씨    예.. 어르신.
원로1   오늘부터 아무도 눈물 같은 건 보여선 안 되네! 삼백 년 이어온 가문의 영달이
        걸린 일일세! 제대로 울어 천도라고 시켜야 하지 않겠나!
윤수    (굳어 본다)
원로1  그리고 너. (윤수 보며) 넌. 이제 이 집의 상주다.
윤수   !
오씨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로1  이제 네 형의 자릴 네 놈이 채우거라.
윤수   !!
오씨   하지만 이 아인!
원로1  긴 소리 하지 말게!
윤수   (놀라는 얼굴 그러다 점점 기대감이 번지는)

S# 55. 영상댁, 사당 (아침)
원로1과 오씨가 있다.

오씨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총부인 제 소관입니다. 어르신.
 문중의 법도대로라면 상주에 얼자는 설 수 없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원로1   물론 알지.. 알아.
오씨 가문의 근간을 흔들 순 없는 일입니다.
원로1   (의미심장하게) 내 말 잘 듣게. 자네.

S# 56. 영상댁, 안 방 (낮)
경건한 분위기. 상주 자리에 선 윤수. 염습(殮襲, 죽은 이의 몸을 씻긴 후에 수의를 입히고 묶는 일)을 끝낸 경필의 입에 수저로 쌀을 넣어준다. 윤수,"천 석이요.. 이천 석이요.. 삼천 석이요”세 번 쌀을 입에 넣어준다. 엽전을 다시 그 입에 “천 냥이요. 이천 냥이요. 삼천 냥이요”하며 넣어주는.  드디어, 경필이 입관(入棺, 시신을 관에 넣음)되는.

S# 57. 영상댁, 안방 밖 (낮)
힘겹게 곡을 하는 단금. 토혈이 자꾸 난다. 싸늘하게 보는 오씨.

오씨    (청지기에게) 다른 곡비는 없는가.
청지기  그나마 저 년 하나 남은 겁니다요. 이집 저집 상이 터져서.
오씨    (답답한) 그럼, 딸년이라도 있을 거 아닌가.   

S# 58.영상댁, 대문 밖 (낮) 
곱단이 밖에서 단금을 기다린다. 저편에서 급히 오는 연심.

연심   곱단아! 
곱단   (훌쩍인다) 엄니.. 곡하러 갔어. 엄니.. 아픈디.
연심   (안쪽을 들여다보는, 이때 상복을 입고 지나가는 윤수) !
윤수   (연심을 봤다. 역시 놀라는데 저편에서 오는 청지기를 본) 
연심 도련님! 저희 엄니가 (하는 순간)
윤수    (청지기를 의식, 못들은 척 그대로 지나간다)
연심    (안타깝게) 도련님!
윤수    (청지기와 스치는. 청지기의 인사를 받고 사라지는)
청지기  (다가와 연심을 알아보는) 너.. 단금이 딸년이 아니냐?

S# 59. 영상댁, 여종 방 (낮)
청지기의 손에 방으로 밀쳐지는 연심. 한쪽에서 탁주 마시는 늙은 여종.

청지기     (늙은 여종에게) 자네가 알아서 입히게! (간다)
연심       (멍한.. 어찌된 건지 모르겠다)
늙은여종   (술 마시는) 니 애미가 피를 토해서 못 우니..니 년이라도 대신 울어야지.
연심       (쿵) 저 곡비 아니예요!
늙은여종   (김치 쭈욱- 찢어 입에 넣고) 탁주 한 사발 주까?
S# 60. 영상댁, 안 방 (낮)
원로들이 양쪽으로 쭈욱- 앉아 있다. 권문세가의 권위. 젊은 여종이 곡을 한다. 눈물 없이 건조하게 아이고 아이고-. 영 마뜩찮은 얼굴들.

원로1   곡비는 아직인 겐가?
오씨    곧 들 것입니다. 어르신.

이때 상복을 입고 끌려오는 연심. 오씨의 눈짓에 후다닥- 자리를 뜨는 젊은 여종.
연심, 곡비 자리에 앉혀지는데. 순간, 방으로 들어오는 윤수. 상주 자리로 가 앉는. 두 사람, 눈빛 마주친다. 놀라 보는 윤수!

오씨   곡비 딸년이니 곡비겠지.. 울거라.

눈이 흔들리는 윤수. 순간, 마주친 시선을 차갑게 돌린다. 연심, 하얗게 굳어지는!

오씨   어서 하지 못하겠느냐!
연심   (윤수를 보는)
윤수   (연심 외면하는)
오씨   곡을 하거라, 어서!
연심   (치맛자락을 꾸욱- 쥐는)

S# 61. 영상댁. 마당 (낮)
복잡한 얼굴로 나오는 윤수. 시종들이 윤수에게 인사하며 자리를 내어준다. 상주로서 대접을 제대로 하는. 조객들이 오자, 인사하며 그들을 맞는 윤수.

S# 62. 영상댁, 광 안 (낮)
연심을 끌고와 확- 밀치는 젊은 여종.

젊은 여종   야. 치도곤 당하기 전에 빨리 울어! 곡비년이 어디서! (쏘아보곤
      나간다. 옆의 여종에게) 너, 작은 도련님 상주 자리에 앉는 거 봤니?
연심        (충격으로 스르르- 주저앉는)

S# 63. 영상댁, 광 밖 (낮)
젊은 여종, 여종들에게 얘기한다. 이때 오는 윤수. 멈칫 선다. 

젊은여종   이제 얼자 소리 안 듣고, 이 댁 종손이 됐다니까. 그래.
늙은여종   (오다가) 이 년아! 이 집 마님이 누군데. 종손 자릴 그리 순순히 넘겨?
S# 64. 영상댁, 광 안 (낮)
연심, 주저앉은 채 굳어지는 얼굴.

젊은여종  (E) 어디 상만 끝나봐요. 작은 도련님이 어떻게 나오는지.

S# 65. 영상댁, 광 밖 (낮)
굳어져 듣는 윤수. 신나서 떠드는 젊은 여종.

젊은 여종  아마 이 집 재산 다 손에 쥐고 떵떵거리며. 양반 노릇 제대로 할 걸요!    
           솔직히 못할 건 또 뭐야! 기생 어미래두 씨앗은 대감마님 씬데!!
윤수    .......

S# 66. 영상댁, 안 방 (밤)
여종들, 한쪽에서 아이고 아이고 눈치 보며 곡한다. 불만스런 얼굴들. 원로들과 오씨, 침통하고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있는데. 상주 자리에 앉은 윤수.

원로2   어디서 저런 걸 데려와 가지고는. 쯧쯧. (혀 찬다)
윤수    다른 곡비를 쓰시지요. 아직 울 줄도 모르는 듯 한데.
오씨    (차가운) 이 동네만 상이 세 군데다.  그나마 남은 것이 저 아이야.
원로2   (여종들 짜증나게 보며) 제대로 우는 곡비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안을 지켜보는 눈들이 얼만데요.
윤수    .......
원로1   상이 끝날 때 까지 모든 일은, 상주 네 놈의 몫이다. 니가 울게 해라!
윤수    !
원로1   (윤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300년 이어온 종택의 종손이 가는 길.    
        네 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울게 해야 한다 (꾸욱- 어깨를 쥐는 손)
윤수    (그 손길 느낀다) !

S# 67. 영상댁, 광 안 (밤)
연심, 참담한 심정으로 있다. 이때,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그림자, 윤수.

연심   (차가운) 보내주세요. 난 곡비가 아니에요.
윤수    .......
연심   (일어나 문 앞으로 간다)
윤수   (턱- 팔을 잡는)
연심   (돌아보는)
윤수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연심   ?
윤수   이곳에서.. 이 가문에서.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어. 귀신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연심   .......
윤수   헌데.. 이제 내가 보이는가 보다. 내가.. 그들 눈에 보이고. 필요하다는 구나.
       (토하듯) .. 한 번만.. 울어다오.
연심   (무슨 소린가 휙- 보는)
윤수   한 번만 울어주면 된다! 그럼, 풀어줄 것이다. 내가 상주로서!
연심   도련님!!
윤수   이리 수모를 당할 바에야. 그게 너도 편하고 나 역시.
연심   (O.L) 달라지신 거예요?!
윤수   (흠칫)
연심   이제 진짜 양반이 되니. 상주가 되니. 진짜 양반놀이가 하고 싶은 거에요?!
윤수   (절박한) 연심아! 한 번이면 된다! 반드시 풀어주겠다! 내가 널 반드시!
연심   싫어요! 못해요!! (문으로 가는)
윤수   (포기가 안 되는) 울면 끝날 일이다! 제발 연심아!
연심   (쏘아보는, 눈물 어리는) 거짓부렁이었어요.
윤수   (멈칫)
연심   (실망과 분노) 다 거짓부렁이었어요! 뭘 해야 할 지 모른다고요?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고요? 아뇨.. 도련님은 알고 있었어요!
윤수   ........
연심   처음부터 도련님은 형님처럼 되고 싶었던 거예요! 양반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남들이 떠받들어주는.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는 그런 진짜 양반이요!
윤수   !
연심   (거의 비명) 그게 안 되니까 화가 났던 거예요! 진짜 양반이 못돼서 어머니가
       미웠던 거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원하지 않은 척
       거짓부렁을 한 거에요. 그렇게라도 해서 반쪽 양반이라도 살려고요!
윤수   (얼어붙는)
연심   (눈물 그렁) .. 곡하지 말라고요? 웃을 수 있어 부럽다고요? 이럴 거면서..
       이럴 거면서.. 왜 날 속였어요? 왜 내가 도련님을 믿게 했어요!
윤수   (충격으로 멍한)      

S# 68. 영상댁, 광 밖 (밤)
윤수, 가려다 멈춰선다. 광 앞에 비껴 선. 무너질 거 같은 얼굴. 

윤수 (자괴감이 드는) 그래.. 양반이 못 돼 화가 났다.. 그래서 형님을 질투했다. 
 기생 어미가 미웠고. 창피했다.. 그래서 모른 척 했다. 근데.. 그게 잘못이냐. 
연심    (눈물이 어린)
윤수 양반이 되고 싶은 욕심을 품은 게.. 그게 그리 큰 잘못이냐. (무겁게 가는)

S# 69. 영상댁. 마당 (낮, 다음 날)
상두꾼들과 요령잡이가 요기를 한다. 늙은 여종이 음식을 내놓는.

상두꾼    (늙은 여종에게) 이 댁은 곡비를 안 썼나? 어찌 곡소리가 안 들리네.
늙은여종  그게 실은 (소곤거리는) 어린 거 하나 잡아왔는데 안 울겠다고
   떼를 써서 광에 잡아놨네. 고집이 어찌나 쇠심줄인지.
요령잡이   어린 거? 

S# 70. 광 밖 (낮)
여종들, 연심을 바닥으로 밀쳐서는 멍석을 만다. 가차없이 발로 차고 밟는다. 

젊은여종  (발로 차며) 기집애야. 곡비면 울어야 할 거 아냐! 왜 안 울어!
연심      (버둥거린다) 난 곡비 아니라니까요! 난 아니라고요!
젊은여종  너 하나만 울면 끝날 것을. 너 때매 우리가 울어야 하잖아!        
연심      풀어줘요. 제발. 풀어주세요!
여종1     곡이나 하고 꺼지면 될 껄! 왜  이렇게 힘들게 해! 우리가 곡비니!
요령잡이  (지나다 놀라서 여종들을 밀친다) 지금 뭣들 하는 건가!

S# 71. 영상댁, 사당 (낮)
윤수, 위패를 보다 향을 사른다. 한쪽에 모인 원로들과 오씨. 윤수가 있는 줄 모른다.

원로2   다들 말은 안 해도, 상주를 두고 쑥덕이는 눈칩니다. 어르신.
원로1   뭐라 하건, 상이 끝날 때까진 모자란 놈이라도 자릴 지켜야 하네.
오씨    (내키지 않는) 상이 끝나면, 어찌 하실 것입니까?
원로1   일단 상여만 나가면 내 종친들을 소집해 종손에 앉힐 마땅한
        아일 양자로 들일 거네.. 그때까지 자넨, 경필이를 천도시키는 일만 생각하게.
윤수    (그거 였구나) !

이때, 나가려는 원로들. 순간 윤수를 보고 흠칫. 원로1, 허허- 하고는 꼿꼿이 나간다. 오씨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는. 그들이 나가자, 헛웃음 소리. 윤수, 속에서 헛웃음이 새나온다. 자괴감, 허탈감이 번진다. 그러다 웃음기 사라지며 굳어지는.

S# 72. 영상댁, 광 안 (밤)
몰골이 말이 아닌 연심. 안쓰럽게 보는 요령잡이.
요령잡이  옛다, 이것들아 한 번 울어준다! 이럼 편할 걸. 이게 무슨 고생이냐?
연심      (입술 문다)
요령잡이  (깊은 한숨) 한 번 울면. 평생을 남을 위해 울어야 할 거 같아
          무섭다고. 귀신이 들러붙어서 안 떨어질 거 같다고 하더만.
연심      (무슨 소린가 본다)
요령잡이  똑 판박이구만. 누가 단금이 딸년 아니랄까봐. (쓸쓸한 웃음)

S# 73. 영상댁. 안방 (밤)
원로들과 오씨, 윤수를 본다. 윤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객을 맞는.

S# 74. 영상댁. 광 안 (밤)
요령잡이   니 애미가 왜 곡비가 된 줄 아냐?
연심       할매가 곡비니까.
요령잡이   (아프게 본다) 니 때문이다. 다 니 때매.
연심       (무슨 소린가)

S# 75. 연심의 집, 방 안(밤)
단금,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다. 힘겹게 눈을 뜬다. 한쪽에 곱단이 졸고 있다.

인서트 > - 16세의 단금이 어미의 손에 끌려간다. 안 가겠다고 바득바득- 울며
          발버둥치는 단금. 어미 손에 상갓집 앞까지 끌려가는데. 상여가 있다.
요령잡이 (E)  죽어도 곡비는 안 한다고. 아득바득 고집을 피웠지. 너보다 더 했다.

-단금, 울지 않겠다는 얼굴로 버틴다. 뺨을 치는 단금어미. 이래도 안 울어!
 울지 않는 단금. 더 세게 뺨을 친다. 단금, 어미를 무섭게 노려본다.

요령잡이 (E)   곡비 운명을 던져준 니 할미를 원망했지..
               그래 겨우겨우 지 팔자 도망친 게 기방이었는디.

- 기방. 사내들 앞에서 소리를 하는 단금. 술에 취한 사내, 단금을 겁탈하듯
   드러눕히는데. 놀라 밀쳐내는 단금. 그래도 끈덕지게 단금을 덥치는 사내.

요령잡이 (E)   거기라고 별 수 있겠냐. 어차피 웃음 팔고, 소리 파는 덴데...
              사는 게 지긋지긋 했겠지.. 그래서 니 애비를 따라 나선 거고.

누워있는 단금, 입가에 잔잔히 아픈 미소가 스친다. 그때가 떠오른 듯.

단금   (힘겹게) 곱단아.
곱단   (깨서 놀라) 엄니! 이제 정신이 들어?  
단금   엄니가 하는 말. 잘 들어.
곱단   (귀를 단금의 입가에 가져다 댄다)
 
S# 76. 영상댁, 광 안 (밤)
요령잡이 근데 니 애비 죽고 나서야 니가 떡하니 배꼽에 자릴 잡은 걸 알았는데.
         엉덩이라도 붙이고 아를 낳아 길러야 할 거 아니냐..

- 상갓집. 단금, 만삭인 몸으로 첫 곡을 부른다.

요령잡이 (E)손에 쥔 거라곤 목청뿐인데. 니 곡기 끊길까 싶어. 곡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  곡하는 단금을 깐깐히 보는 단금어미. 못마땅한 표정.

단금어미  사람이 죽으면.. 쉽게 이승의 연을 끊지 못혀. 그때 울음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것이 곡비여. 눈은 웃지만, 소리는 우는 거. 그게 진짜 우는 거여.

요령잡이 니만 안 들어섰음, 니 애미 곡 팔러 안 다녔다.
연심     (턱 막히는) !
요령잡이 그래도 세월이 가르치는 게 있는 가 보다. 언제 그러더라.. 기생집에 남았다면   사내에게 웃음이나 팔았을 텐데. 곡비가 되니. 지는 웃지 못해도. 가는 사람, 웃  으며 이승 떠날 수 있게 해서 좋다고. 차라리 다행이라고.. 울지 못하는 사람,
  대신 울어줘서 그래도 좋다고. (서글픈 미소)       
연심      !
요령잡이 니는 것도 몰랐제?  (피식-) 원래 딸년들은 지 애미 속 모른다.

S# 77. 연심의 집, 방 안 (밤)
단금, 힘겹게 손 뻗어 자고 있는 곱단의 손을 잡는. 고사리 손을 자신의 얼굴에 댄다.

단금    꼭 엄니가 이르는 대로 해야 헌다.

S# 78. 영상댁, 광 안 (밤)
눈물이 차오르는 연심. 이때 광문이 벌컥- 열린다.

S# 79. 영상댁, 마당 일각 (밤)
젊은 여종의 손에 끌려가는 연심. 이때, 외진 장소에 요령잡이와 상두꾼들이 모여 있다. 대뜨리(출상 전날 밤, 상여를 가지고 하는 예행연습)를 하는 것. 상두꾼들, 상여틀에 연춧대(상여를 멜 때 좌우로 걸치는 묵직한 나무 각목)를 올려 어깨에 메고, 발을 하나로 맞춰 어깨까지 덩실거린다. 노랫가락처럼 상여 소리를 넣는 요령잡이. 멈춰서는 연심.

'천년만년 살 거라고' '어~허~어~허~' / '먹고픈 것 아니 먹고' '어~허~어~허~''가고픈 곳 아니 가고' '어~허~어~허~' /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어~허~어~허~''쓰고픈 것 아니 쓰며' '어~허~어~허~' / '동전 한 닢 아껴가며' '어~허~어~허~' '아등바등 살았건만' '어~허~어~허~' / '인생이란 일장춘몽' '어~허~어~허~''공수래에 공수거라' '어~허~어~허'

흥겨운 소리에 맞춰 군무를 추는 듯한 모습. 놀란 눈으로 보는 연심. 순간.

요령잡이  (호통으로) 야 이 잡것들아! 그리 방정맞게 발을 움직이면 시신이 움직인다
   안 혀! 가는 사람 잠이라도 깨우겠다는 거여 뭐여?!  똑바로 못혀!!
상두꾼들  (찍소리 못하고)
요령잡이  기꺼운 마음으로..망자의 길동무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혀!
          여 귀신밥이나 얻어 처먹으러 온 거냐! 어! (눈 부라리자)

상두꾼들, 다시 군무처럼 한 몸으로 진중한 발놀림과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드는.
소리에 맞춰 기녀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모습 같다. 연심, 못 박힌 듯 본다.
 
S# 80. 영상댁. 안방 (밤)
원로들, 연심이 울길 바라며 입만 본다. 윤수, 연심을 본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길. 연심, 윤수 보다 시선 돌려 병풍을 본다. 그 뒤 경필을 보듯.

원로1   어서 하지 못하겠느냐! 어서!
연심    (가라앉은 눈)
원로2   니가 안 울면 당장 네 애미를 끌고 올 것이다.
연심    ..슬프긴 하신 거예요?
윤수     !
연심    참으로 이상해요.. 양반님네들은. 우는 게 뭐라고. 그깟 것도 못하고.
오씨    (매섭게 보는)
연심    (진심) 불쌍하네요.. 아무도 진심으로 울어주지 않으시니.
원로1   저. 저 년이! 뭐라는 겐가!
연심    저기 저 분. (병풍 뒤 경필을 보듯) 아무도 진정으로 울어주지 않는
        저 분을 위해 우는 거예요. 아들을 잃고도. 장손을 잃고도 진심으로
        울 줄 모르는 (좌중을 둘러보는) 당신들이 불쌍해서 우는 거예요.
원로들  (차게 보는)
연심    그리고.. (윤수 보며) 그 분을 위해 우는 거예요. 아무도 자길 알아봐주지  않는 다고.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보이는 거 같다던, 그 분을 위해서..
윤수    !

드디어, 아이고~ 아이고~ 연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곡소리. 굳는 윤수.

요령잡이 (E)  언제 그러더라.. 기생집에 남았다면 사내에게 웃음이나 팔았을 텐데.
     
구슬픈 곡소리. 그 소리에 점점 원로들과 오씨. 놀라움이 번지는.

요령잡이  (E) 곡비가 되니.. 지는 웃지 못해도.
          가는 사람, 웃으며 이승 떠날 수 있게 해서 좋다고.

연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듯. 놀라는 윤수.

연심  (E) 엄니..... 엄니...

여종들과 조객들, 마당에서 숨죽이며 보는. 요령잡이와 상두꾼들, 숙연해지는 분위기.

S# 81. 영상댁, 마당 (밤)
쓰러질 듯 나오는 연심.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는다. 오씨, 젊은 여종에게 눈짓하면, 여종들이 연심을 붙들어 광으로 데려가는. 보는 윤수.

S# 82. 영상댁, 안 방 (밤)
원로들과 오씨, 웃는다. 흡족한 얼굴들. 윤수, 무거운 얼굴로 있는.

원로1    내일 나갈 상여는 준비가 됐는가? 최고로만 화려하게 꽃상여로 준비하게나.
오씨     이미 요령잡이와 상두꾼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원로2    (히죽) 고 년. 참 앙팡지게 우는 게. 내일 장지로 갈 땐 아주 제법이겠습니다.
윤수     (웃는 그들을 보는)

S# 83. 영상댁. 광 안 (밤)
연심, 눈물이 주욱- 흐른다.

S# 84. 영상댁. 안 방 (밤)
윤수, 경필의 관을 내려다본다. 서서히 결심이 선 얼굴.

S# 85. 영상댁. 광 안 (새벽, 다음 날)
힘없이 벽에 기댄 연심. 순간 문이 쩌억- 열린다. 윤수다.

S# 86. 영상댁, 마당 밖 (새벽)
쓰러질 듯 뛰어가는 연심. 뒤돌아본다. 저편에 선 윤수, 어서 가라는 듯 끄덕이는.
      
S# 87. 연심의 집. 마당 (새벽)
힘겹게 들어오는 연심. 엄니!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S# 88. 연심의 집, 방 안 (새벽)
곱단이 멍하니 있다. 연심,  잠든 단금 앞으로 간다. 미소가 지어진 입매.

연심    (울먹이는) 엄니. 나 왔어. 엄니..
단금    .......
연심    엄니!  일어나봐. 연심이가 왔어. (몸을 흔드는, 이상한 느낌)

S# 89. 기방, 도화의 방 밖 (새벽)
윤수, 창호에 비친 도화를 본다. 먹먹히 보다 가려는데, 열리는 창문. 도화가 윤수를 보는. 

S# 90. 연심의 집 , 방 안 (새벽)
연심    엄니.. 그만 자고. 눈 좀 떠 봐.
단금    .......
연심    (이상한. 곱단 보는) 곱단아.
곱단    (그제서야 훌쩍이는) 엄니가.. 말하지 말랬어.
연심    뭐?
곱단    (줄줄 울며) 언니.. 곡 한다고.
연심    그게 무슨 소리야?! (단심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는. 흠칫!)
곱단    엄니.. 죽어도 말하지 말랬어.. 언니 곡 시키면 안 된다고.
연심    ! (멍해서, 흔든다) 일어나봐. 그만 자고! 일어나봐. 엄니! 연심이가 왔어!
단금    .......
연심    엄니!!  엄니!!!!

S# 91. 기방, 도화의 방 안 (새벽)
윤수, 아픈 눈으로 방을 본다. 도화의 방은 처음이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부채.

도화   (무슨 일인가, 걱정스런) 어인 일이세요? 도련님.
윤수   (부채 보다) ...나 주게.
도화   (놀라 보는)
윤수   ...주게, 저거. 
도화   제가 쓰던 것입니다. 새로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윤수   아니. 저것이여야 하네. (부채를 손에 쥔다)
도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윤수   (부채 쥔 채, 보지 않고) 항상 이것을 손에 놓지 않았지. 자넨. 그 날도.

인서트> 눈이 내리는 영상댁 마당. 도화가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에 부채를
        꼬옥- 쥐고 있다. 동상처럼 꼿꼿한. 어린 윤수(6)가 울며 보고 있다.

윤수   날.. 그곳에 버려두고 간 그 날도.. 말이네. 
도화   .......
윤수   (담담하려 애쓰며) 기다렸지. 백 밤을 자면 온다 했는데. 왜 이곳에 날 두고 혼자          갔나.. 원망했네.. 백 밤을 세다 지쳐 보니 남들은 날.. 얼자 서출이라 하더군.
도화   .......
윤수   그 백 밤을 세며.. 소원은 한 가지였지. (그제야 도화 보는) 그저 자네와 함께 환         하게 웃는 것.. 자네를..자네를.. (아픈) 내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것.     
도화   (눈가 흔들리는)
윤수   이제야.. 기억이 났어.  내가 무얼 하고 싶었는지..
       자네를 기다리며 지샌 그 긴 백 밤 동안.. 내가 바랬던 것이 무엇인지.
도화   .......
윤수   버린 것이 아니었어.
도화   (애써 버티는)
윤수   자네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엔 없었던 거지.
도화   .......
윤수   이 부채. 어릴 적.. 장에서 사준 거였지.
도화   (훅, 무너지는)
윤수   (처음으로 환한 미소로) ........ 어머니께.. 제가 말입니다.

S# 92. 영상댁. 마당 (낮)
화려한 꽃상여가 준비돼 있다. 상두꾼들이 장지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S# 93. 영상댁. 광 안 (낮)
오씨와 원로들, 기막힌 얼굴이다. 연심이 없다. 이때, 젊은 여종이 급히 온다.

오씨      무슨 일이냐?
젊은여종  그... 그것이.
S# 94. 영상댁. 마당 (낮)
급히 오는 원로들과 오씨. 곡비 자리에 선 윤수를 보고 기함한다.

윤수     (차분한) 다들 오신 거 같으니 출발하게나.
요령잡이 (미덥지 않은 눈길) 진정 도련님께서 우실 겁니까요?   
         곡은 진심으로 슬픈 자가 울어주는 것입니다요.      
윤수     (힘 있는) 출발하게나. 늦었네.
원로1    (호통) 이.. 이.. 미친.. 지금 뭘 하고 선 게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원로2    어찌.. 양반 놈이 곡비를 하겠다고!! 저러니 상것은 역시!
         (하다 윤수의 눈빛에 입 다무는)
윤수     (요령잡이에게 하나 좌중을 향해 하듯) 진심으로 슬픈 자가
         울어주는 것이 곡이라 했는가? 그럼, 자네가 보기에 이 중에
         진심으로 곡을 해줄 이가 있다 보는가?
요령잡이 (둘러보는데 없다)
오씨     (악으로) 니가 기어이 우리 집안을 욕보이는구나!
         당장 저 아일 끌어 내십시요! 당장이요!
원로들   (끌어낼 태세)
윤수     (힘 있게, 진심으로) 마님. 형님을 위해 울어주시겠습니까!
오씨     (죽일 듯 노려본다)
윤수     어르신들. 우시겠습니까!
원로2   (당장이라도 칠 기세) 저 상것이!
윤수     가문을 위한다고요? 양반 체면에 말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울지 못하신다면
         대체 누가 형님을 위해 진심으로 울어준단 말입니까!
         적어도.. 적어도.. 그리 사랑했던 장자라면.. 믿었던 종손이라면.. 누구 하나
         진심으로 울어줄 자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곡비 자리에 선다)
요령잡이 (막아서며) 그럼, 도련님은 망잘 위해 우는 것이 무엇인 지 아십니까요? 
         (진심을 가늠하는 눈빛) 곡이 무언지 아십니까요?
윤수     얼자인 내가 질투하고 시기했던 ... 형님이었네... 적장자라는 그 자리가 갖고
         싶어. (목소리 흔들리는).. 돌아가신 망자에 대한 슬픔마저 느끼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 내가 그 형님을 위해 기꺼이 곡비가 되겠다는 거네!
         형님의 길동무가 되겠다는 걸세! 그래도 안 되겠는가!
요령잡이 (윤수의 간절한 눈빛을 보는, 요령을 흔든다)

댕댕댕 ~~ 그 소리에 상두꾼들 한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상여가 출발한다.

S# 95. 저자 (낮)
상두꾼, 단금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간다. 우는 곱단의 손을 끌고 가는 연심. 마른 얼굴.
S# 96. 들 일각 (낮)
화려한 꽃상여. 곡비로 우는 윤수. 한쪽에서 오는 연심과 지게. 대조적인 풍경. 윤수와 연심이 눈빛이 마주친다. 윤수의 모습에 놀라는 연심.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스친다.

S# 97. 산소 (낮)
초라한 작은 봉분. 단금 어미의 산소 옆이다. 곱단, 봉분의 흙으로 장난친다.
연심, 마른 얼굴로 아프게 보다, 가만 소리를 한다. 태평가다.

연심   (단조가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리..

연심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멈칫, 하늘을 보면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날린다. 그 눈을 아련히 보는 연심. 곱단, 눈송이를 잡겠다고 까르르- 뛰어다닌다.

연심 NA   할매가 떠난 그 날. 엄니는 울었던 걸까.
  
S# 98. 들길 (낮)
눈 덮인 하얀 길을 수놓는 꽃상여 행렬. 눈은 웃지만, 소리로 우는 윤수.

S# 99. 산소 (낮)
연심, 가만 손을 편다. 툭, 손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천천히, 쥔다.
연심, 눈가 붉어져 미소 짓는다. 환히, 웃는 그 얼굴에서.     
                        
연심 NA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 같다.             
 
                                                                    끝.    
                                                             




























첨부파일 곡비_-_KBS드라마스페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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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반향초 | 작성시간 16.01.25 고맙습니다.
  • 작성자긍정생각 | 작성시간 16.07.2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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