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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그가 간이역에서 내렸다] 김민주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6.12.12|조회수607 목록 댓글 0

[그가 간이역에서 내렸다] 김민주








  
1.    전경 (D)
    푸른 바다 전경.
    멀리서 기적소리 들려온다.
    천천히 카메라 턴하면.. 바닷가를 길게 돌아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 먼 풍경처럼 보여지고.

2.    간이역사 앞 (D)
    나무 한그루 서 있는 작고 한적한 간이역사.
    낡은 나무벤치 하나 놓여있고.
    역사 바로 앞에 '역전식당' 씌여진 허름한 식당 보인다.
    한가롭고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역사 앞 공터를 빙그르.. 돌고 있는 정인의 자전거.
    식당 옆에 세워져있는 우체통 앞에 멈춰선다.
    주머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우체통에 밀어 넣으려다.. 그만 두어버리는 정인.
    쓸쓸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편지를 넣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3.    간이역사 플랫홈 (D)
    수신호 깃발을 높이 드는 역무원. 저만치 기차가 들어온다.

4.    역사앞 (D)
    자전거를 탄 채 역사 앞을 빙그르..빙그르.. 하릴없이 돌고 있는 정인.
    어느 순간, 자전거를 멈추고 한발을 내려선다.
    고개 돌려 역사 쪽을 바라보는..

5.    역사 플랫홈 (D)
    기차 서고. 문 열린다.
    짐가방을 안고 역으로 내려서는 껄렁한 가죽점퍼 차림의 윤태.
    그 뒤로, 검은 양복을 걸친 민호 보인다.
    노타이로 헐렁하게 걸쳐입은 모습.. 멋스러운 듯 하지만, 어딘지 건달냄새가 난다.
    플랫홈에 내려 역사를 바라보는 민호..

6.     역사앞 (D)
    대합실옆 담에 기대 서 있는 정인.. 손에 남자코트를 하나 걸쳐들고 있다.
    막 기차에서 내린 듯한 두어명의 사람들이, 대합실문 옆 개찰구에서 나와 총총히  사라져간다.
    나오는 윤태와 민호. 더 이상 내린 사람이 없어 보인다.
    정인, 실망한 듯 가만히 고개 숙이는 위로.

정인    (na) 또 한 대의 기차가 도착했다. 그는,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숙인 정인 앞을 지나쳐 나무벤치로 걸어가는 민호.
    쓸쓸히 고개 들다가 민호를 보는 정인.
    두 사람 모습 한 화면에 잡히며.. fade-out.

    어두운 화면 위에 하모니카소리 아련하고 낮게 깔린다.
    하모니카소리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타이틀.

타이틀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

7.     역사앞 (D)
    민호, 짐가방 옆에 놓은채 나무벤치에 앉아있다.
    오래된 습관인 듯 낡은 하모니카를 한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
    정인, 맞은편 식당 앞에 조르르 놓여진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물을 주다말고 민호 쪽을 흘낏 보는 정인.
    걸쳐입은 검은 양복이 낡은 역사분위기와는 전혀 안어울려 보인다.
    왠지 피식.. 웃음이 나오는데, 무심히 시선 돌리던 민호와 눈이 마주친다.
    민호 향해 말갛게 웃어 보이는 정인.

정인    서울서.. 오셨나봐요? (하는데)
    바지 추키며 껄렁껄렁 화장실에서 나오는 윤태.

윤태    으, 추워. 형, 여기서 배 좀 채우구 움직이자. 배고파 죽겠어.
민호    (대꾸없이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간다) 
윤태    형! 그냥 가게? 어이 밥부터 좀 먹자! 혀엉! (얼른 가방 들고 쫒아가는)

    걸어가는 두 사람을 고개 돌려 보는 정인. 물조리개 놓고 들어가려는데,
    문득, 민호가 앉아있던 나무벤치 위에 뭔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보는 정인. 낡은 하모니카다.

8.     마을길 (D)
    좁고 길게 난 마을길을 자전거로 달려가는 정인. (부감 느낌으로)

9.     철길 건널목 (D)
    땡땡땡 소리를 내며,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온다.
    서있는 민호와 윤태. 윤태, 짐가방을 들고 투덜거리고 있다.

윤태    어, 배고파 돌겠네 씨. (흘낏 민호 눈치본다) 이 동넨 어떻게 지나가는 버스두 없어, 젠장. 오자마자 생고생이구만.
        (아무렇게나 침 퉤 뱉는다) 어우, 재수두 드럽게 없지. 짱구형이 이번엔 큰일 좀 맡겨주나 했더니, 겨우 돈떼먹구
        도망간 새끼 잡으러 이런 시골구석에나 내려보내구. (하는데)
정인    (e) 잠깐만요!

    달려온 정인의 자전거, 윤태와 민호 옆에 와서 끼익, 선다.

민호    (본다)
정인    (가쁜 숨 쉬며, 낡은 하모니카 내미는) 이거. 그쪽 거 맞죠? (웃는다)

    민호, 말간 정인의 얼굴을 본다.
    건널목에 나란히 서 있는 세 사람 앞으로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기차 소리 잦아들며..

민호    (na)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본 것은 그녀의 웃음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F.O

10.    역전식당 앞 (D)
    서툰 글씨로 씌여진 역전식당 입간판, 그 앞에 놓여진 화분들 보인다.
    식당 앞에 서 있는 민호와 윤태.
    윤태, 담배 꼬나물고 <어, 추워. 드럽게 춥네> 발 구르고 있다.

윤태    잠깐이면 된다드니 왜 이렇게 안나와. (입간판 툭 찬다) 참, 형네 아부지 만나보구 갈거지? 형 유품은 전해야 할 거 아냐.
민호    (건조한) 배도식이 문제나 해결할 생각해.
윤태    걱정 노셔. 돈떼먹구 도망간 놈 잡는 게 내 전공인거 몰라. 아, 춰 죽겠는데 되게 안 나오네 씨.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붙이는 민호.

민호    (na) 내가 이곳에 온건 죽은 형의 유품을 전해기 위해서였다. 배다른 형의 갑작스런 죽음도 그랬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
 도 내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엄마> 식당문 열리며 정인 나온다.

정인모    (쫒아나오며) 싱싱한 걸루 골라와. 아무거나 주는대루 받아오지 말구. (반찬보따리 내민다, 퉁명) 밑반찬 좀 쌌어. 그 고집불퉁 영감탱
 이 갖다 주든지 말든지.
정인      (본다.. 고맙다. 웃는) 고마워요 엄마.
정인모   씨알머리 없는 것.. 동네소문 다 나서 너 시집두 못가게 생겼어, 이것아. 민석이 서울간 뒤로 언제 편지답장 한번 쓰대? 원 어디서 죽었
 는지 살았는지,
정인     (웃으며 말 끊는) 다녀올게요. (민호 쪽 돌아보며) 오래 기다렸죠? (웃는다)

11.    길 (D)
    덜컹거리며 눈쌓인 길을 달려가는 트럭.
12.    달리는 트럭 위 (D)
    트럭 뒤에 타고있는 민호와 윤태. 그리고 정인.
    윤태, 영 추운지 점퍼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쭈그리고 앉았다.

정인    항에 나가는 버스는 하루 네 번밖에 없어요. 시간도 일정치 않구. (민호본다) 근데..하모니카 잘 불어요?
민호    (흘낏 본다)
정인    (웃는) 오래 갖구다닌 물건 같아서요.
민호    (툭하니 대뜸 반말) 불어본 적 없어.
정인    네에.. (머쓱) 항엔 무슨 일 때문에 가세요?
민호    (성가시다. 건성) 사람 찾으러.
정인    아..
윤태   (뒤집어쓴 점퍼에서 얼굴만 내밀고)이왕 신세진거 싸구 존 방있음 하나 소개시켜줘요. 어차피 며칠 묵어야 되니까.(다시 점퍼 뒤집어쓴다)
정인    잘됐다. 방두 따뜻하구, 방값두 아주 싼집을 하나 아는데..(하고는 민호 본다. 얇은 양복차림이 추워 보인다. 픽..웃는) 안추워요? 되게
        추워 보이는데.
민호    (흘낏 본다. 대꾸없이 시선돌리는데)
정인    (오두마니 무릎세우고 앉아 민호의 얼굴을 가만 바라본다)
민호    (? 퉁명) 뭘봐?
정인    (보는채로, 배싯.. 웃는다) 내가 아는 사람하구 참 닮아서요. 아까 역에서 나오는데 꼭 그 사람인줄 알았지 뭐예요..
민호    (보는데)

    정인, 아..참. 품안에서 손수건으로 곱게 싼 걸 꺼내 민호앞으로 내민다.
    손수건 펼치면, 찐 감자다.

민호    ? (보면)    
정인    아직 따뜻해요. 밥 안먹었죠?

    민호, 정인보다가.. 머쓱히 감자를 받는다.
    점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윤태를 툭 치는 민호. 감자를 건네는.
    윤태, 정인쪽을 흘끔 보고는 제일 큰 감자하나를 집어서 먹기 시작한다.
    정인도 감자를 하나 집어서 베어물며 웃는다. 꾸밈없는 정인을 바라보는 민호.

민호    (na) 어쩌면, 동해에 머무를 생각을 하게 된 건 그녀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자에게선, 바다 냄새가 났다.

    트럭 뒤에 앉은 세사람 모습 멀어지고.

13.    항 (D)
    작은 고깃배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단촐한 항.
    배들이 막 도착했는지, 오징어가 그득 든 어물박스를 옮기는 사내들,
    막 잡아온 생선을 그 자리에서 다듬는 아낙들 활기차고.
    그 가운데 비닐옷을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영철 보인다.
    뱃전에 서서, 누런 어물박스를 부두로 옮겨놓고 있는 영철. 굵은 주름, 꾹 다문 입매가 고집스러 보인다.

사내    (e) 어이, 영철이! 영철이!
영철    (옮기던 박스 부두에 올려놓고서야, 고개를 들어본다)
사내    아, 자네 메느리 왔는데 뭐해? 정인이 목빠지겄네!

    둘러선 뱃사내들, <아, 며느리여?><몰랐어? 민석이 예비색시잖어!>와르르 웃는다.
    저만치 <아저씨!> 손흔들며 웃는 정인.

14.    영철의 집 (D)
    들어서는 영철과 정인.

영철    방 손님은 왜 자꾸 데려와. 나도 신경쓰이고, 손님들두 영 마뜩찮을텐데. (안고 온 생선박스들 털썩 내려놓는다)
정인    (웃는) 따뜻하구 방값 싼 데 알려 달라잖아요. 또 그 중 한사람이..(하다가는 말 돌리는, 반찬보따리 마루턱에 내려놓고) 서울 손님인데,
 남자 둘이예요. 내 또래 쯤 됐나?
영철    (널린 오징어 툭툭 걷으며) 젊은 사람들이 정동이나 경포를 가지 여긴 뭐하러 왔누.
정인    사람 찾으러 왔대요.
영철    ...
정인    글세, 하모니카를 들구 다니는거 있죠?
영철    (순간, 오징어 걷다 멈칫..)
정인    (웃는) 아저씨 생각이 나드라구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두 옛날에 하모니카 잘 부셨다면서요.
영철   쓸데없는 소리(오징어 툭툭 걷으며) 버스시간 늦기전에 어여 일어나. 니 엄마 또 항까지 쫒아나올라.(피하듯 뚜벅뚜벅 부엌으로 걸어간다)
정인    연이 언니네 생선 제가 갖다주고 갈까요?
영철    그러든지.

15.    부엌 (D, 마당과 이어진, 어두침침한)
    들어서는 영철. 묵묵히 앉아 꼬챙이에 오징어를 꿰기 시작한다.
    그 위로.. 혜순의 애잔한 목소리..

혜순    (e) 이상하게.. 저는 하모니카 소리가 좋대요. 풍금소리보다, 파도소리보다.. 그 소리가 좋대요..

    아픈 기억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묵묵히 오징어만 꿰는 영철 보여지며..

16.    소읍내 거리 (저녁)
    앉아있는 민호. 손에 든 하모니카 보는.
    바지춤에 쓱 닦아서는, 한번 후- 불어본다. 몇번 후후- 불어보는데,
    한 식당에서 껄렁껄렁 나오는 윤태.

윤태    배도식이 이름을 바꾼거 같애 형.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침 퉤)

17.    항구 마을길 (해진 뒤)
    영철의 집 쪽을 향해 걷고 있는 민호와 윤태.

윤태    낼은 여기 똘마니들한테 사진 좀 돌려봐야겠어. 코딱지만한데서 한 이틀 뒤지면 잡히겠지. (민호본다) 참, 형네 아부지 이름이 김영철 맞
        지? 이 근처 사는거 맞나봐. 사진 보여주니까 대충 알아보든데?
민호    (멈칫, 선다. 보는) 사진을 니멋대로 돌렸단 말야?
윤태    (찔끔) 그, 그게. (하다가는) 아, 어차피 찾을거잖아. 아들네미 죽은것두 안 알려줄 거야?
민호    신경끄고 배도식이나 찾으랬잖아!
윤태    왜 화를 내구 그래? 막말루 배다른 형에다, 얼굴 한번두 못 본 아부지땜에 뭘 그렇게 신경쓰냐? 그냥 찾아가서, 당신 아들이 빚에 쫒겨다
        니다 청량리 역사에서 죽었답니다- 전 후밴데요, 글세 주머니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제 전화번호가 달랑 나와 재수없게 엮였지 뭡니까,
        이건 당신 아들 유품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구나와. 간단한 걸 갖구.
민호    (보다가, 대꾸 없이 뚜벅뚜벅 걸어간다)
윤태    형. 아 혀엉! 화났어?

    입 굳게 다물고 걷는 민호의 굳은 얼굴.. 성큼성큼 걷는데,

영철    (e) 거기 혹시.. 서울서 왔다는 손님이신가?
민호    (걷다, 멈칫. 본다.) ...

    저만치.. 허름한 집 앞. 희미한 불빛아래 영철이 이쪽을 보고 서 있다.
    민호,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는.

윤태    (형! 뒤쫒아오다가 영철본다. 역시 알아보고 뚝 굳는) 어..
영철    방 찾는거라면 여기 이 집이요. 날두 춘데 어여들 들어와요. (들어간다)

    윤태, 놀라 후다닥 뛰어온다. <형 혹시.. 맞지? 그지? 사진하구 똑같잖아>

민호    (못박은 듯 굳어 서 있다가는, 그냥 뚜벅뚜벅 걸어간다)
윤태    (본다) 형. 형 어쩌려구? (소리죽여) 형. 혀엉! (쫒아가는)

    굳어서 걸어가는 민호 위로.

민호    (na) 뭘 어쩌려는 게 아니었다. 다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버진.. 날 알아보지 못했다.

18.    방안 (N)
    껌벅거리다 켜지는 형광등.    
영철    방이 누추해놔서. 젊은이들이 편할지 모르겠네. (한쪽에 얹혀진 이불을 들어 내리는)
윤태    제, 제가- (민호 눈치보며 얼른 이불을 받아내린다)
영철    고맙수. 불을 일찌감치 너놔서 방은 따술거요. (잠시 민호에게 눈길줬다가 시선돌리는) 그럼 편히들 쉬어요. (나간다)

    복잡한 얼굴로 옷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툭 던지고 앉는 민호.

윤태    (흘끔 눈치보다, 에라 모르겠다 이불 깔며) 에우 잘됐어. 찾는 수고는 덜었네 뭐. 편하게 생각해. 엉? 눈치봐서 노인네한테 말하구 떠버
        리믄 되잖아.
민호    (대꾸없이 재떨이 끌어다 놓고 담배를 찾아문다)
윤태    으아- 피곤하다. (이불위에 활개펴고 털썩 눕는다. 민호 흘끔보더니 불쑥) 형. 아까 그 여자 말야.
민호    (보는)
윤태    그 식당집 여자. 시골여자치군 쌈쌈하지 않아? 내가 한번 꼬셔보까?
민호    입 다물고 잠이나 자. (벽에 기대 눈감아버린다)
윤태    헤헤. (이불속 파고들며) 어으~ 뜨뜻하다.

19.    영철 집 외경 (N) 
    널려있는 오징어, 그물들. 스산해 보이고.
    영철, 안방문 열고 나온다. 잠시 건너방을 보더니 구부정 마당으로 내려선다.

20.    방 (N) + 마당 (N) 
    어둔 방. 윤태, 널부러져 자고 있고.
    민호, 잠 못 들고 방문 옆에 기댄 채 앉아있다. 손에 든 하모니카..
    밖에서 성긴 영철의 기침소리 들린다.
    민호, 문을 열어 마당을 보면..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영철의 구부정한 뒷모습.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고단하고 추레해 보인다.
    지켜보는 민호..

    -비전-
    방안. 누워있는 혜순. 걱정스럽게 앉아있는 어린 민호.

혜순  (기침쿨럭이다 잦아들자 애잔히 웃는) 니 아부진 어부였다 민호야..평생을 바다 에서 살었어.(민호 손등 쓰다듬으며)우리 민혼..뭐가 될래?

    영철, 그물만지던 손을 놓고.. 기침 쿨럭이며 부시럭 담배를 찾아문다.
    그 추레한 모습에 기어이 외면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민호.
    화가 치미는 듯 문을 탁 닫고는, 아무렇게나 털썩 누워 한팔로 얼굴을 덮는다.

민호    (na) 나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21.    영철집 마당 (새벽)
    민호, 수건을 목에 건 채로 방에서 나오다 멈칫.. 선다.
    부엌에서 김오르는 뜨거운 물을 한바가지 들고 나와 세수대야에 쏟아주는 영철.

영철    (찬물 섞어 주며) 여긴 따순 물이 나오질 않아서.. 찬물에 씻다간 감기걸리기 쉽지. 얼른와 씻어요. 딱 좋은데..(민호본다) 아, 얼른.

    영철 보다가.. 뚜벅뚜벅 걸어가 그 물에 묵묵히 세수를 하는 민호.

민호    (na) 정말 난..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fade-out)

22.    읍내 거리 (D)
    서 있는 민호.
    구멍가게 안에서 주인에게 뭔갈 묻고 있는 윤태 보인다.
    가게에서 껄렁 나오는 윤태, 민호에게 담배 한 갑을 툭 던져준다.

윤태    모른대. 가자 형! 읍내부터 돌아보지 뭐.

23.    소읍내 당구장 (D)
    담배연기. 동네 똘마니들 몇 명 당구치고 있다.
    껄렁 들어서는 윤태와 민호. 윤태, 발로 탁 문을 닫는다.
    쓱 안을 둘러보는. 찾는 얼굴이 없다. 민호, 가자, 눈짓하는.
    윤태 쩝- <에우씨, 더럽게 꼭꼭 숨었나부네> 막 문을 나서려는데,
    윤태를 툭 치며 당구장으로 들어서는 똘마1.
   
윤태    에이씨.. (인상 쓴다) 야. 눈 똑바루 뜨구 다녀 엉?
똘마1    (흘낏 보더니 참내- 웃고 들어선다)
윤태    (나가려다 멈춘다. 뒤도는) 야. (사내 탁 잡는) 너 지금 웃었냐?
똘마1    (본다, 훑어보는) 이 자식, 왜 이래?
윤태    너 왜 웃어 새끼야. 내가 우스워보여? 엉? (툭 치는데)
똘마1    아, 이 새끼가 진짜. 너 어서 굴러온 새끼야? 어? (윤태 퍽 친다)
윤태    (휘청하는, 열받아) 어, 이게 진짜- (달려들려는데)

    똘마니들 몇 명 <뭐야?> 인상쓰며 온다.
    성가신 표정되는 민호, <나와, 임마> 윤태 잡아끌고 나간다.

윤태    아, 형. 놔봐. 저 새끼들이 나 무시하잖아. 야, 덤벼! 덤벼!
민호    (대꾸없이 질질 끌고 나가는)

24.    당구장 앞 거리 (D)
    당구장서 윤태 끌고 나오는 민호.
   
윤태    에이씨, 진짜 재수없을라니까. 별게 다 신경을 건들구 난리네.
민호    (머리 툭 친다) 시끄럽게 사고치지마 자식아.
윤태    (한꺼풀 꺾여) 알았어- (아무렇게나 침 찍 뱉는다)

    사람들 민호와 윤태를 흘끔 보며 지나가면, 윤태 <뭘봐?> 인상쓰며 걸어가는.
    그때, 생선박스를 실은 정인의 자전거.. 두 사람을 앞을 스치듯 지나쳐 온다.
    달려오다 문득 어떤 느낌에 자전거를 멈추는 정인.. 뒤를 돌아다보면.
    저만치 멀어지는 두 사람.. 민호와 윤태다. 보는..

25.    항구마을 전화박스앞 (D)
    민호, 전화박스 옆에 서 있다.
    서울로 전화하는 윤태의 목소리 밖에까지 들리는.

윤태    (큰소리치는) 아 걱정마시라니까요. 저랑 민호형이 실수하는 거 보셨어요? 깨끗하게 끝내구 올라 갈테니까, 담번엔 큰 껀이나 맡겨주세
        요, 형님-

    민호, 건조한 얼굴로 담배를 찾아 무는데,
   
정인    (e) 이봐요! 이봐요, 좀 도와줄래요?

    민호, 보면.. 저만치 생선박스를 잔뜩 안고 걸어오는 정인. 민호, 금새 성가신 표정 되는데,
    걸어오던 정인, 무거운지 <어어어-> 중심을 잃고 민호 쪽으로 비틀한다.
    민호, 놀라서 엉겹결에 손뻗는데, <어어어-> 하다가 기어이 생선박스를 와장창 민호 옷에 엎어버리는.
    민호의 양복.. 오징어며 생선으로 엉망이 된다.

민호    (황당하게 정인 보면)
정인    (역시 당황스럽게 보다가는, 어이없이 풋- 웃음을 터트린다) 어떡해-
민호    (기가 막힌다) 지금 웃음이 나와?
정인    (여전히 웃으며) 미안해요, 어쩌죠?
민호    (어이없이 본다)

26.    읍내 세탁소 앞 (D)
    정인, 세탁소에서 빌린 듯한 옷을 들고 나온다. 꽤 두툼한 점퍼와 바지다.

27.    읍내 식당 (D)
    놓여있는 생선박스 보이고. 밥을 먹고 있는 민호, 정인, 윤태
    민호, 빌린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정인    (밥먹으며) 그냥 장난 좀 치려고 했던건데, 너무 무거워서 엎어져 버린거 있죠. 미안해서 어떡해요?
민호    (대꾸없이 밥 먹는다)
정인    (웃으며 민호보는) 근데 솔직히 아까 그 옷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뭐. 안그래요? (윤태 본다)
윤태    (흘끔 보더니 킥 웃는) 뭐 그러네. 그러구 있으니까 범생이 같다 형.
민호    조용해 자식아. (퉁명스레) 옷 언제 찾을 수 있대?
정인    한.. 두세시간 후쯤? (민호 보며 웃는다) 그거 기다릴 동안 조금 심심할텐데.. 내가 안심심하게 해줄테니까 인심 한번 안 쓸래요?
민호    (보는데)
정인    (배싯 웃는) ..저 생선박스 되게 무겁거든요. 나 같으면 도와주겠다.
민호    (어이없이 본다)

28.    식당 앞 (D)
    정인 나오고, 뒤따라 윤태와 팔에 생선박스를 안은 민호 나온다.
   
윤태    (농담) 잘 어울린다 형. (침 찍 뱉고) 형은 좋겠수, 여자랑 데이트두 하구-
민호    (아주 성가시게 됐다는 표정) 입 다물구, 사진이나 잘 돌려.
윤태    가께. 잘해봐. (껄렁 뒤돌아서 간다)

    정인, 민호를 돌아보는.

정인    무겁죠? 근데 어쩌죠? 시장두 들러야 하는데.. (배싯 웃는다)
민호    (갈수록 태산이다. 보다가 할 수 없는지, 퉁명스레) 시장이 어느 쪽이야? (한다)
정인    저어쪽.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웃는)

29.    몽타즈 느낌 (D)

    -읍내 시장-
    민호, 생선박스 든 채 멀거니 서 있고.
    두툼하고 따뜻해 보이는 남자털신을 하나 골라드는 정인. <어때요?> 돌아보며 웃는다.
    -세탁소앞-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민호.
    정인, 털신 달랑 들고 서 있다가 아무래도 웃긴다는 듯 피식.. 웃는다.
    민호, 참내.. 보는.
    -배씨 실내 포장마차(?)앞-
    민호, 좁고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 앞에 담배 꼬나물고 서 있다.
    낡은 미닫이 유리문 안으로, 배씨 처에게 생선박스 하나를 건네주는 정인 보인다.
    민호, 슬쩍 돌아보면, 배씨 처 유리문 안에서 민호 쪽 보고 순박하게 꾸벅 인사하는.
    민호, 엉거주춤 맞인사하고 정인보면.. 웃는 정인.

30.    시골 버스정류장 (D)
    의자 서너개가 덩그라니 놓여있는 시골 정류장.
    정인과 민호,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

정인    (하품..) 아.. 아침부터 돌아다녔더니 졸립네. (하더니 민호 흘끔 본다) 안추워요?
민호    (흘끔) 어..
정인    (우습다는 듯 픽 웃는다) 어쩌면 그런 옷을 입었어요? 건달처럼.
민호    (본다. 헐렁한 바지차림의 정인 훑어보더니) 너두 만만치 않어. 치마같은 거 없냐. 식당집 딸인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구 옷이 그게 뭐야?
정인    뭐요? (어이없이 보더니) 근데, 왜 나한테 계속 반말이예요?
민호    (보다가) 나이가 많으니까.
정인    몇살인데요?
민호    (태연히) 너보다 한 살 많어.
정인    (어이없다) 내가 몇살인데요?
민호    나보다 한 살 적겠지.
정인    (보다가, 고개 돌리며 어이없이 피식.. 웃는다) 순 깡패잖아.
민호    (태연히) 나 깡패 맞어.
정인    (잠깐 보다가, 기막힌 듯 픽 웃는)
민호    (자신도 픽.. 웃는다)
    서로 어이없는 듯 웃는 두 사람 모습 보여지며..

31.    달리는 버스안 (D)
    민호와 정인, 뒷좌석에 앉아있다.
    어느 순간 민호 어깨에 툭 떨어지는 잠든 정인의 고개.
    민호, 머쓱. 정인의 고개 밀쳐내 똑바로 해준다. 그러나 다시 툭 떨어지는 고개.
    민호, 다시 밀쳐내려다 성가신 듯 그냥 둬버리고 마는.
    머쓱히 잠시 정인 내려다보다가, 창밖으로 고개 돌린다.
    민호의 어깨에 고개를 떨구고 잠든 정인의 모습 보여지며..

민호    (na)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여자에게서 하모니카 소리를 들은 것은. 잠든 여자에게선, 어릴 적 엄마의 노래소리 같은 나즉한 하모
        니카 소리가 났다.

    잠든 정인, 몸을 뒤척이며 고개를 바로 한다.
    잠시 정인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정인의 고개를 다시 자신의 어깨위에 내려놓는 민호.
    그런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이 믿기지 않는 듯 어이없이 피식..웃으며 창밖 본다.
    그렇게 가는 두 사람.. 따뜻한 느낌의 풍경같다.

32.    눈 쌓인 길을 달리는 버스, 멀어지며. (D)

33.    역전식당 (D)
    야채 다듬고 있는 정인모.
    문소리에 반갑게 <어서오..> 하다 보면, 영철 꿴 생오징어 들고 들어선다. (Jump)
    마주 앉아있는 정인모와 영철.
    영철, 착잡한 얼굴로, 보던 편지 한 통을 접는다.

정인모  이러니 내가 정인이 땜에 속이 안썩겠수? 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들어오구 혼담이 들어오면 뭐하냐구요 당최 여기서 뜰 생각을 안하는데..
영철      (어렵사리 입연다) 그애가 그러는게..
정인모    몰라 물어요? 민석이 때문이지. (속상한) 그래두 첨엔 편지도 주고받고, 전화도 오는거 같더니만.. 요즘은 통 연락두 없는거 같구..
          (영철 본다) 민석 아부지가 정인이 한테 알아듣게 얘기 좀 해줘요. 내 말을 통 들어먹어야지 그 기집애가..
영철      (묵묵히 듣다가는) ..내 말해보지. (일어나려는데)
정인모    참.. 민석 아부지. (하다가) 에유, 아녜요.
영철      싱겁기는.. (일어서려는데)
정인모    (잠시..) 혹시 혜순이 소식.. 못들었수?
영철      (멈칫 본다)
정인모    (손 내저으며) 아우 그냥. 얼핏 들은 얘긴데, ..수원 어디쯤서 아들 하나 데리구 살구 있다구두 하구, 죽었다구두 하구 그럽디다.
영철      (묵묵 고개 숙이고 듣는다)
정인모    (한숨) 에휴.. 어디서 죽었는지 살었는지. 팔자두 기구하지..댁네 형님이 첨 마을에 데려왔을 때 얼마나 고왔수.
          식두 올리기 전에 형님 그렇게 먼저 가구, 그나마 민석 아부지가 안돌봤으면 딱 죽을 목숨이었는데..(영철 본다)
          하긴. 그거 땜에 민석 엄마가 속은 에지간히 썩었지. 안그러우?
영철     (대꾸 없이 일어선다) 잘 쉬다가네. (걸어나간다)

34.    역전식당 앞 (D)
    나오는 영철.. 나와서긴 했지만, 잠시 걸음을 못뗀다.

    -비전-
혜순    (고개 숙인채)내가 여기 남아있는 건..죽은 당신형님 때문이 아녜요..갈데가 없어서두 아니예요. 바루 당신 때문이예요..(눈물 맺힌 눈
        들어 영철보는)

    목석처럼 서있던 영철의 눈자위 붉게 젖어든다..
    감정 추스리고 어렵사리 걸음 막 떼려는데, 저만치 다정하게 걸어오는 정인과 민호.
    영철, 멈칫.. 웃으며 얘기하는 두 사람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먼저 영철을 발견하고 뚝 걸음을 멈춰서는 민호. 정인 역시 멈칫.. 선다.

영철    (황황히 시선 피하며) 정인이, 나랑 잠깐 얘기 좀 허자. (걸어간다)

35.    마을 일각 (D)
    망연하게 앉아있는 정인과 영철.
정인    (아까 일이 맘에 걸려 먼저 입 떼는) 아저씨. 아까 그 사람은.. (하는데)
영철    (묵묵히 입 연다) 일자리가 났었다면서.
정인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겠다.. 고개 숙이는)
영철    니 엄마가 걱정이 많드라. 혼담이 나면 선도 보고, 일자리가 나면 가기도 하고, 맘에 드는 사람 나타나면 만나기도 하
        고 그래라. 내 눈치 볼거 읎어.
정인    (잠시 말을 못 떼고 있다가..) 아저씨. 전요. 아저씰 아버지루 생각해요.. (눈물 맺힌다)
영철    (맘 아프다. 보는)
정인   (고개 숙인채)그래서 민석씨 기다리는 것두 힘든 거 몰라요..다른 사람은 몰라두 아저씬 그런 말씀..안하셨음 좋겠어요(눈물 뚝 떨어진다)
영철    (눈시울 붉어지는, 뭐라 할말이 없다)

36.    간이역사 앞 나무벤치 (저녁) 
    생선박스와 털신 앞에 놓은채 묵묵히 앉아있는 민호.
    담배 찾아물고 라이터 켜는데 켜지지 않는. 계속 탁탁 불붙이는데,
    누군가 걸어와 앞에 선다. 정인이다.

정인    안가구 있었네요. (말갛게 웃는다)
민호    ...
정인    (민호 옆에 앉는다) 잘됐다. 아저씨 털신 못드렸는데.. 이따 갈 때 갖다드려요.
민호    그 사람. (했다가는) 그 아저씨랑은 어떻게 아는 거야? 그냥 동네 아저씨같진 않던데.
정인    (본다. 시선 돌린다. 잠시 막막히 있더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민호    (멈칫 본다)
정인    그 사람, 아버지예요.

    민호, 순간 숨이 멈출 것 같은 느낌.. 라이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인    (고개 숙인 채, 짐짓 밝게) 지금은 서울에 있어요. 작은 사업을 하나 하는데, 꽤 바쁜가 봐요. 바쁘면, 연락같은거 자주 하기 힘드니까..
        아마도 그럴테니까..(말 끊고는 그저 발끝으로 땅만 문지르다가.. 고개 들어 민호 보는) 민호씨랑 그 사람..참 많이 닮았어요. 가끔 깜짝
        깜짝 놀랄 만큼요.. (웃는데, 눈물 맺혀있다) 저 우습죠..?
민호    (시선 피한다. 이 앙다무는) ...
민호    (na) 여자는,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짜가 지난 기차표를 쥔 채 청량리역사에서 발견된, 죽은 형을..기다리고 있었다

37.    바닷가 (저녁)
    파도가 높은 바닷가.
    민호 목석처럼 서서 파도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바다를 향해 '으아!'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민호.
    또다시 '으아!' 제길, 화풀이하듯 밀려오는 파도를 발로 퍽 차버린다. (DIS)
    거센 파도. 바람.
    흠뻑 젖은채로, 겨울바닷가에 막막히 앉아있는 민호의 뒷모습 길게 보여지며.

38.    영철의 집 (N)
    영철, 그물이며 장화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온다.
    방으로 올라가려다 순간 멈칫.. 보는 영철.
    방문 앞에 털신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다.
    혹시.. 작은 방 쪽을 돌아보는 영철. 놓여져 있는 민호의 신발이 보인다.

39.    방안 (N)
    어둔 방.  아무렇게나 던져진 양복 윗도리 보이고.
    민호, 맨바닥에 이불을 들쓴 채로 누워있다. 땀 흘리며 떨고 있는.

영철    (e) 젊은이. 젊은이 안에 있는가? (기척없자 문 열어본다) 이보게. 젊은이,(하다가 떨고있는 민호 본다. 놀라) 이런..
   
    (dis) 놓여있는 약봉지.
    민호, 이불 속에 누워 잠들어있다.
    영철, 물주전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와 민호 머리맡에 놔주고 나가려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민호의 윗도리를 집어든다.
    순간 주머니에서 툭, 굴러 떨어지는 낡은 하모니카. 영철, 흠칫.. 하모니카를 본다.
    자신이 혜순에게 준 그 하모니카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던 영철, 떨리는 손으로 하모니카를 가만히 주워드는데,   
    어느새 눈을 떠 하모니카를 거칠게 확 나꿔채는 민호.

영철    (깜짝, 보는)
민호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요. (힘겨운지 다시 이불 위에 털썩 눕는다)
영철    (얼른 감정 추스리고) 미, 미안하네. 열은 한잠 푹 자고나면 내릴 걸세. (옷 걸어주고 황황히 나간다)
민호    (그제야 눈을 뜬다.. 이불과 머리맡의 약봉지가 보인다) 젠장..

40.    방 앞 (N)
    황망히 나와서는 영철.. 차오르는 숨을 애써 감춘다.
    가슴에서 뭔가가 치받히는 듯, 천천히 걸어나와 마루 끝에 망연 걸터앉는 영철..

     -비전-
혜순    (조용히 사진 내미는) 당신..아들이예요. 이름을 민호라구 지었어요. 민호예요. 김민호..(어린 민호를 안고 찍은 혜순의 사진..)

    꾹 다문 영철의 입술이 실룩이는 듯 싶더니, 눈자위 천천히 붉어지고..

41.    방안 (N) 
    하모니카 들고 벽에 기대 앉아있는 민호.
    손에 든 하모니카 내려다본다..

혜순    (e) 니 아부지가 자주 부시던 거야.. 얼마나 잘 부셨간..

    기대앉은 민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온다. 눈 감는다..

민호    (na) 난.. 엄마가 죽었을때 울지 않았다. 엄만, 오지 않을 아버지를 평생 기다리다 죽었다. 사랑은 그런 거였다.
        그렇게 쓸쓸한 거였다. 나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사랑 따위, 나는 필요치 않다.

    입 앙 다문채 눈물 참아내는 민호의 얼굴에서. (fade-out)

42.    영철집 마당 (아침)
    영철, 부엌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나온다.
    마루턱에 앉아 굳은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민호.
    영철을 흘낏 보더니, 피우던 담배를 탁 내던지고 뚜벅뚜벅 나가버린다.
    바가지 든 채, 그대로 서 있는 영철..

43.    당구장 (D)
    당구장 문, 발로 쾅 열고 들어서는 민호. 건조한 얼굴빛.. (씬23과는 사뭇 다르다)
    윤태, 뒤따라 껄렁 들어선다. 당구치던 똘마니들 흘끔거리며 민호 본다.
    씬23의 똘마1, <아, 저 자식들 또 왔네 저거-> 빈정거리는.
    민호,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똘마1의 멱살을 붙잡아 당구대에 거칠게 밀어부친다.
   
똘마1    (놀라 켁켁)
민호     (똘마1의 눈앞에 배씨 사진을 들이민다, 차가운) 이 자식 알어? (대답없자) 알아, 몰라!
똘마1    (겁먹은 채로 고개 절레절레)
민호     (당구대에 사진 툭 던지며) 보면 즉시 달려와. 알았어?
똘마1    (끄덕끄덕)

    민호, 멱살 탁 놓고 나간다. 목잡고 큭큭거리는 똘마1.
    윤태, 똘마니들에게 <니들두 다- 알았어?> 큰소리치고 얼른 민호 쫒아나가는.

44.    식당 (D)
    낄낄거리며 국밥을 훌훌 먹는 윤태.
    민호, 표정없이 밥만 먹는다.

윤태    아, 진짜. 십년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거 같네. (웃으며) 형, 시장통 쪽은 오늘 나혼자 돌아보께. 형은 그냥 있어.
        아, 빨리 일이나 끝내구 떴음 좋겠다 씨. 똘마니들하구 밤새 당구치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국물 후르륵 마시는)
민호    (말없이 국밥만)
윤태    아참, 형. 그 식당집 여자 얘기 들었어?
민호    (본다)
윤태    (목소리 낮춰) 글세 그 여자가 형네 형 애인이래. 동네사람들 다 알두만.
민호    밥이나 먹어. (밥 먹는다)
윤태    그때 서울 경찰서서 만났던 여자두 형 애인이라구 안했어? 참내. 형네 아부지나, 형네 형이나 여자꼬시는덴 일가견 있나봐. 아주 두 명은
        기본, (하는데)
민호    (밥 먹던 숟가락 거칠게 탁! 집어던진다)
사람들  (놀라서 흘끔 쳐다보고)
윤태    (겁먹어 눈똥그래져 보는) 혀,형..
민호    (주머니에서 돈 꺼내 툭 던지며) 먹구 나와. (나가버린다)

45.    바닷가 거리 (D)
    바닷가가 보이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는 정인.
    문득 누군가를 발견한 듯, 환하게 웃는다.
    보면, 맞은 편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민호.
    정인, 민호 앞에 자전거를 끼익, 세우고 내려선다.

정인    (웃는) 잘만났네요. 지금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민호    (건조하게 자전거본다)
정인    아..(배싯 웃으며)실은 어제두 자전거 갖구 왔었는데, 민호씨 땜에 친구집에 맡겨놨드랬어요. 고생시켰다구 화내는 거 아니죠? (웃는다)
        참, 저녁때 생선받으러 항에 갈건데, 같이 안갈래요?
민호    (본다, 차갑게) 너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정인    ? (본다, 조금 당황한..)화났어요? 어..화났나부네. (웃는다)화풀어요. 선물가져 왔는데. (자전거에 매달린 종이가방 내민다)코트..예요.
        예전에 사놨던 건데, 민호씨한    테두 잘 어울릴거 같아서.. (보며 웃는다) 입어요.
민호    (본다. 화가 치민다, 거칠게 가방 탁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누가 이런거 달래? 어떤놈 주려고 사놨던걸 나한테 던지는거야? 너 내가
        그지새끼루 보여? 어?
정인    (놀란) 민호씨.. 왜 이래요. 진짜 화난 거예요?
민호    정신차려 이 기집애야. 조금 잘해줬다구 괜히 헛꿈꾸지 말구. 알았어? (정인의 자전거 거칠게 발로 쾅 차버린다)
정인    (악- 작게 비명지르며 놀라서 본다)
민호    너, 앞으로 내 눈앞에 얼씬도 하지마. 재수없으니까. 알았어?
정인    (놀란 얼굴로 멍..하니 굳은채 서 있는)

    입 꾹 다문채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민호 얼굴 위로.

민호    (na) 왜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걸 끝마치고 싶을 뿐이었다. 아버지에게서, 형에게서, 여자에게
        서.. 벗어나고 싶었다.

46.    항 (D)
    오징어배들 서 있고. 뱃시간이 아닌지 조금 스산한 모습.
    영철, 묵묵한 얼굴로 어물박스를 나르고 있다.
    성긴 기침이 나는지, 들던 어물박스를 내려놓고 쿨럭쿨럭. 한 숨 돌리는데,
    그 앞에 와서 우뚝 서는 민호. 영철, 본다.

47.    영철방 안 (저녁)
    목석처럼 하옇게 굳어서 앞에 놓인 상자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영철.
    상자 안에는 죽은 민석의 유품들이 보인다.
    입었던 옷가지며, 시계며, 신발..
    민호, 그 앞에 표정없이 앉아있다.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영철와 민호 위로

민호    (na) 형의 죽음을 알렸을 때, 아버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래도록 형의 유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민호, 그 자리가 숨막히는 듯, 벌떡 일어나 방문 열고 나가려는데,

영철    (떨리는 목소리로) 민호.. 민호..맞지.
민호    (멈칫..섰다가, 영철을 돌아본다)
영철    (붉어진 눈을 들어 민호를 보고 있다) ...
민호    (외면해 버린다. 방문열고 나가버리는. 문 거칠게 쾅 닫는다)
    꼼짝없이 앉아있는 영철..

48.    바닷가 (저녁)
    거친 파도. 민호, 터질거 같은 심정으로 바다를 보고 섰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화도 나고, 왠지 눈물이 날 듯도 싶다.
    거칠게 발길질 탁 하는데, 저만치 민호를 부르며 달려오는 윤태.

윤태    형! 형, 찾았어! (달려와 헉헉) 배도식 그 자식, 읍내서 포장마차 하구 있더라구. 어쩌지?
민호    (흘끔 윤태봤다가 바다쪽으로 시선돌린다. 묵묵히 바다 바라보는)
윤태    형. 어떡해- 지금 때려 엎을까? 어? 아씨- 사람 진빠지게 한 거 생각하면 그냥 확 뒤집어두 시원찮은데- 어쩔까?
민호    ...앞장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49.    항 (저녁)
    배들이 들어와 있는 항.
    정인의 자전거 세워져 있고. 정인, 멍한 채로 생선박스를 자전거 뒤에 묶고 있다.
    민호에게 받은 충격이 아직 덜 가신 얼굴..
    잠시.. 손잡이에 매달린 종이가방을 본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눈물 참고, 자전거에 올라타는 정인. 달려가는.

50.    영철의 집 (저녁)
    마루턱에 나란히 앉아있는 영철과 정인.
    영철 앞에 코트가 든 종이가방이 놓여있다. 영철, 가방 묵묵히 보고 있는.

정인    직접 주려구 했는데, 받질 않네요. 화가 많이 났어요...왠지 저 때문에 화가 난거 같아서..(웃는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
        이 들어서요, 아저씨.
영철    ...
정인    (잠시.. 어렵게) 민석씨.. 연락없었죠..?
영철    (본다. 차마 말 못하는데)
정인    (고개 숙인다) 아저씨 저요..아저씨한테 거짓말 했어요. 저.. 민석씨 기다리는 거, 사실은 많이 힘들어요. 민석씨한테 연락끊긴지..오래
        됐거든요. (눈물 맺힌다)
영철    (눈시울 붉어진다)
정인    죄송해요. 이 옷.. 아저씨가 저대신 좀 전해주세요.
영철    (조용히) ...그러마.
정인    (눈물 참고 웃는, 기운내서 일어난다) 저 그만 가볼게요 아저씨. 연이 언니네 생선, 제가 갖다주고 갈게요.

    정인, 영철 향해 웃고 마당에 세워진 자전거 끌고 나간다.
    영철, 마음이 아프고.

51.    배씨 포장마차 안 (저녁)
    작고 허름한 실내포장마차.
    배씨, 배씨처 일손바쁘게 일하고 있다.
    드르륵 문 열고 들어서는 민호와 윤태.

배씨    어서오세요.
배씨처  (민호 알아보고 웃으며) 어우, 오셨네요. 앉으세요. (하는데)
윤태    (무시한 채 배씨에게 걸어가 어깨에 손 턱 올리는) 배도식. 오랜만이다?
배씨    (얼굴 딱 굳는)
배씨처  (놀란 얼굴로 윤태와 민호 본다)
윤태    너 찾느라고 무지 힘들었다. 이름까지 바꾸고 여기 숨어있었냐 엉? (의자 퍽 발로 차는데)
배씨    (후닥 옆에 세워진 마대자루(?)를 집어든다) 누,누구야 니들! 누가 보냈어?
윤태    아.. 이게 정말. (짜증, 의자집어 퍽 내던지며) 그걸 알아서 뭐해, 자식아!
배씨    (마대자루 거칠게 휘둘러대며) 나가! 안나가? 나가! (소리치는)

    입구 쪽에 서있던 민호, 돌아본다.
    윤태, <어유 이걸 그냥-> 확 달려들다가, 배씨가 휘두르는 마대에 맞고 나가 떨어지는.
    악쓰면서 마대를 마구 휘두르는 배씨. 윤태, 엎어져 맞으며 형! 형! 한다.
    주먹에 꾹 힘주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민호.
    겁에 질린 배씨처를 가게 밖으로 밀어내 버린 다음, 배씨가 휘두르는 마대를 턱 잡고 그대로 주먹 날린다.
    와장창 쓰러지는 배씨.
    민호, 배씨를 다시 잡아 일으켜 또 한 대 날린다. 코피 터지고.
    배씨를 다시 잡아 또 주먹을 날리는 민호..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배씨를 때려간다.
    눈치 보며 물건을 집어던지던 윤태, 눈 둥그렇게 뜨는
    <형!, 아 형!, 왜이래? 형!> 놀라서 민호를 잡아 말린다.

윤태    형 미쳤어? 사람 죽일 셈이야? 왜 이래 형! (마구 잡아 떼어놓는)
민호    (그제서야, 주먹질 멈추고 정신을 차려보면, 배씨 피흘린 채 늘어져있다. 그 모습 헉헉거리며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는데..)

    열린 가게 유리문 밖. 생선박스를 든 채,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 있는 정인..

민호    ...(젠장. 눈 감아버린다)

52.    항구 일각 (N)
    바다 쪽 보며 막막히 서 있는 정인.. 뒤돌아 민호 본다. 차갑게 굳은 얼굴.
   
정인    민호씨,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예요? 여기 왜 왔어요?
민호    (대답 못한다) ...
정인    여기 왜 왔냐구요! 지금껏 그런 일 하며 산거예요? 착한 사람들 상처주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민호    (본다)
정인    나같으면 아무리 힘들어두, 설사 날 죽인대두 당신같은 일을 하면서 살진 않을 거예요. 당신, 가슴은 있는 사람이예요?
민호    (치미는) 니가 나를 얼마나 안다구 말 함부로 해! 열두살 때 혼자되서 가본데라곤 고아원하구 감화원 밖에 없는 놈이 나야. 그런 내가 뭘
        할 수 있었을 거 같애!
정인    그렇다구 전부 당신같은 일을 하며 살진 않아요!
민호    잘난척 하지마! 세상엔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가 더 많아. 세상은 절대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고, 만만하지 않아. 버림
        받은 사람 투성이고, 거짓말 투성이라구! 알아?
정인    (본다) ...
민호    날보구 여기 왜 왔냐구 했지? 나하고 우리 엄말 버린 아버질 만나러 왔어. 형이 죽었다길래, 유품까지 싹 정리해서 내려왔지. 내 형이 누
        군지 말해줄까? 바로 니 애인이야. 니가 기다린다는 그 사람!
정인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본다) ...
민호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얘기해 줄까? 빚에 쫒겨다 청량리역사에서 죽었어. 서울에 너말고 다른 여자두 있었지. 이래도 세상이 행복하
        고, 만만해? 너나 나나 똑같애. 똑같이 버림받은 인간들이야. 너 알기나 해?
정인    (충격으로 멍한 얼굴에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온다)
민호    (그런 정인을 아프게 보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버린다)
정인    (꼼짝하지 못한채, 그대로 서 있는..)

53.    마을길 (N)
    치받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걸어오는 민호.
    차마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아무 벽에나 기대서고 만다.
    터질 것 처럼 마음이 아프다.. 눈물 맺힌.. 팔꿈치로 벽을 한번 탁 친다.
    그렇게 기대선 민호.. 보여지며..

54.    영철의 집 (N)
    들어서는 민호. 한 손에 반쯤 빈 소주병 하나를 들었다.
    보면, 굳은 듯 앉아있는 아버지 영철의 그림자가 방문에 비쳐 보인다.
    그걸보자 울컥, 가슴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민호..

민호    (아버지 영철의 그림자에 대고) 당신.. 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게 뭔줄 알아? 바로 사람 아픈 거야. 우리 엄마, 약도 제대로 못쓰고
        나 열두살 때 죽었어. 평생, 당신만 기다리다 그렇게 죽었다구! 똑똑히 들어...난 당신이 죽어도 용서가 안돼. 죽어도 용서 못한다구!
        (소주병 퍽 던지고,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55.    방안 (N)
    민석의 유품상자와 정인의 종이가방을 앞에 둔 채 굳은 듯 앉아있는 영철..
    눈시울에 눈물이 천천히 맺혀온다.. 터질 듯 마음 아프고.

56.    항구 (N)
    오징어선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두리번두리번 민호를 찾는 윤태의 모습. 저만치.. 하모니카 만지작 거리며 망연 앉아있는 민호의 뒷모습이 보인다.
    쭈삣.. 다가서는 윤태. 소주병 하나를 들고는 민호옆에 앉는다.

윤태    (툭 치며 소주병 내민다) ..마실래 형?
민호    (불빛만 보는) ...
윤태    (자기가 한입 마신다) 에씨, 뭐 사는게 이렇게 엿같냐? 일 끝냈는데두 기분 무지 찝찝하구 씨...병원에 옮겨놓구 왔어. 생각보다 심하진
        않으니까 걱정마.
민호    (잠시..묵묵히 있다가) 윤태야. 우리, 이 일 그만둘까..?
윤태    (본다, 그맘 알겠다) 에우씨. 누군 그만둘 줄 몰라서 못그만두나? 관두면 뭐해먹구 살건데? 양아치짓 말구는 할 줄 아는 거 암것두 없잖
        어.. 안그래?
민호    그래. 그렇지.. (불빛 보더니) 낼 서울 가자.
윤태    (어쩐지 착잡하다, 소주 마시는) 어.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 길게 보여지며.. (fade-out)

57.    마을 어귀 (새벽녘)
    뿌연 안개 속을 걸어 나오는 민호와 윤태. 윤태, 올 때처럼 짐가방 하나를 안고 있다.
    윤태, 하품 계속하며 투덜거리는.

윤태    아씨. 버스시간이 왜 이렇게 이른거야 씨- 잠두 없나 들. 졸려죽겠네..

    민호, 걷다가 문득 선다.
    저만치.. 어두컴컴한 새벽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영철.
    민호를 보더니 천천히 일어선다.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 민호, 본다.

58.    바닷가 (D)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있는 민호와 영철.

영철    (잠시 묵묵히 있더니)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민호    (본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자 시선 돌린다)
영철    12살까지 니 엄마랑 살았었다구..
민호    (조금 퉁명) ..네.
영철    (마음이 아픈. 말을 못잇는다)..니 엄말 만난 건..민석이가 2살 나던 해였다..아주 고왔었지.(잠시..)나한텐 형수가 될뻔한 여자였었다..
민호    (그 말에 영철을 본다)
영철    (눈물 맺혀온다) 나 때문에 마음 고생 많이 했다.. 사는 게 고단했을 거야..어느해 겨울인가.. 니 엄마가 문득 떠난다구 하더구나..

    회상에 젖어드는 영철의 얼굴.

59.    바닷가 (회상, 해질녘)

혜순    (눈 못맞추는. 눈물 맺혀있다) ..저 낼 첫차루 가요.
영철    (그저 바다만 묵묵히 보는)
혜순    민석엄마한테.. 당신 형님한테.. 너무 죄가 많네요.. (고개 숙인다. 기어이 눈물흐르고)
영철    (눈시울 붉어지는)

60.    간이역사 (회상, 새벽, 컴컴한)
    텅빈 대합실..
    짐가방 하나 덜렁 안은 채로 망연 앉아있는 혜순.
    손에 낡은 하모니카를 들고 있다..

61.    영철집 (회상, 새벽, 컴컴한)
    새벽 달빛.
    묵묵히 마당에 널린 그물코를 꿰고 앉아있는 영철.

62.    간이역사 (회상, 새벽, 컴컴한)
    대합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앉아있다가.. 조용히 일어서는 혜순.
    쓸쓸하고 애잔한 얼굴로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역사로 나간다.
63.    영철집 (회상, 새벽, 컴컴한)
    그저 그물코만 꿰는 영철의 눈물맺힌 얼굴..

64.    바닷가 (현재, D)
    눈물이 맺혀있는 영철..

영철    ..난. 차마 잡지 못했다. 따라나설 용기도 나한텐 없었어..
민호    (눈물 맺혀있다) ...
영철    아부진.. 니가, 아부지처럼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는 일생에 한번, 망설이지 않아야 할 때가 있는 거다.
민호    (본다)
영철    (조용히 옆에 놓여진 종이가방을 준다)
민호    (보다가, 받아드는) ..
영철    좋은 애야. 힘들게 하지 말아라.
민호    ...(본다)
영철    믿지 않겠지만, 널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난 여기 있을테니까,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와라. 언제든 와두 돼. 여기 있으마..
민호    (보는..)
민호    (na) 그때, 왜였을까. 아버지의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일인지 나는 몰랐다.

65.    트럭 위 (D)
    달려가고 있는 트럭. 놓여있는 짐가방과 종이가방 보이고.
    민호와 윤태 앉아있다.
    올 때처럼 점퍼 뒤집어쓴 채 앉아있는 윤태. <으- 추워>
    민호, 말없이 지나가는 풍경만 보고 있다.

윤태    아, 이놈의 데는 버스를 제대로 타고 가는 적이 없어요- 버스시간 맞춰서 나오면 뭐하냐구-
민호    (흘낏 본다. 피식.. 웃는)
윤태    에우. 어쨌든 형은 좋겠다 씨- 마중나와주는 아부지두 있구- (웃는다) 있잖아 형. 나두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엄마 아부지 한번 보구 싶
        은 거 있지? 나 낳자마자 버려서 고아새끼 만든 인간들, 콱 죽어버려라 했는데..그냥 어떻게 생겼나 얼굴이래두 보구싶드라. 웃기지..?
민호    (본다) ...
민호    (na) 녀석도.. 누군가 기다려주는 따뜻한 불빛이 그리울 것이다.
민호    ..언젠가 내가 여기 오게 되면, 같이 오자.
윤태    (민호본다.. 꽤 감동한 눈치) ..에씨. 눈물나게 하구 그래.. 씨. (픽 웃는)
민호    (피식 웃는다)
윤태    (보다가) 형, 그 식당집 여자 만나구 갈거지? 그지?
민호    ...
윤태    아씨- 나두 그런 여자랑 이런 시골에 푹 파묻혀 살았음 좋겠다-

    트럭.. 달려가고.

66.    역전 식당 앞 (D)
    정인, 쪼그리고 앉아 조르르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물을 다 주고 일어서는데, 서 있는 민호와 윤태.
    민호, 정인을 본다..
    정인, 조금 머쓱히 민호 보는..
   
67.    역사 한 곳 (D)
    조금 어색하게 앉아있는 정인과 민호.

민호    괜찮아?
정인    ..네. (민호본다) 안추워요..?
민호    (피식.. 웃는다) 조금 추워. (정인보는) 나 오늘 갈거야.
정인    ..알아요.
민호    (잠시..) 형이.. 날 찾아온 적이 있었어.
정인    (본다)
민호    어떻게 알았는지 얼굴도 모르는 날 찾아왔는데.. 난 아주 냉정하게 보냈어. 그리구 사흘뒤에 형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어.
정인    ...
민호    형 주머니안에 내 전화번호가 있었나봐. ..(사이, 어렵게) ..그날 형을 보내지 않았다면.. 형은 살 수 있었을까?
정인    ...(눈물 맺힌다)
민호    (고개 숙인다) ..미안해. 그 말 하려고 했어.
정인    ...(본다)
민호    (고개 들어 정인을 가만히 본다)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정말.. 형이랑 닮았니?
정인    (보다가.. 고개 흔든다) 아뇨. 처음엔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예요.
민호    (보다가..) 앞으론 좋은 사람 만나라. 형같은 사람 말고, 나같은 놈두 말구..
정인    (보는) ..

    정인의 눈물 맺힌 얼굴 위로..
   
정인    (na)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곳을 떠나갔다. 왠지.. 아주 슬픈 꿈을 오래도록 꾼 것 같았다.    (fade-out)

68.    검은 화면 위로, 정인의 나레이션 이어지는

정인    (na)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기다림을 시작했다.

69.    기차길 전경 (씬1과 같은, D)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천천히 카메라 턴하면..
    바닷가를 길게 돌아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 먼 풍경처럼 보여진다.

70.    간이역사 앞 (D)
    역사 앞 공터를 하릴없이 빙그르.. 돌고 있는 정인의 자전거.
    예전과는 달리 긴 플레어 치마차림의 정인, 단정하고 예쁘다.
    몇바퀴 돈 다음 식당앞에 멈춰서는 정인.
    자전거 체인을 채우고는 화분을 본다.

정인    아.. 다 말랐네. (하는데)
민호    (e) 뭐해?

    정인, 멈칫.. 뒤돌아본다.
    거짓말처럼, 종이가방 하나를 든 민호가 서있다.
    편한 바지에 정인이 준 모직코트차림이다.
    멍하니 보는 정인.. 민호, 머쓱하게 웃는다.

민호    (툭 던지듯) 이뻐졌다?
정인    (본다..웃는) 너두. ..안추워보이네?
민호    (픽 웃는. 이런상황 어색하다. 딴청하며 툭 내뱉듯) 뭐하고 있었어?
정인    (보다가) ..누구.. 기다렸어.
민호    어떤 자식?
정인    몰라두 돼.
민호    (보다가) 근데 왜 반말해?
정인    나보다 한 살 어리잖아. 가만 안두려고 했어. (웃는다)
민호    들켰네. (웃는. 들고있던 종이가방을 머쓱히 툭 내민다) 선물이야. 너 주려고 샀는데, 괜히 샀다야.
정인    (가방을 받아서 안에 들은 물건을 펴보면, 긴 치마다. 피식.. 웃는데, 눈물이 맺힌다. 민호 보는) 나두 선물 샀는데..
민호    뭔데?
정인    커다란 장갑.. 아주 커다래.
민호    (픽 웃고) 저기.. 항에 가려고 하는데 버스편을 잘 몰라서. 트럭같은 거 구할 수 없을까?
정인    (보다가.. 눈물 맺힌 채 웃고 만다)

    그렇게 조금 거리를 두고 따뜻하게 서 있는 두사람 모습.. 보여지며.

71.    항, 뱃전 위 
    영철, 구부정하게 뱃전에 앉은 채로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얼굴..
    더러운 고무장갑을 벗어들고, 품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보는 영철.
    오랜 세월 간직해온 듯 구겨지고, 금이가고, 다 닳아버린.. 흑백사진이다.
    사진 속. 어린 민호를 안은 혜순이 엷게 웃고 있다.
    그 사진 위로, 꿈결처럼 하모니카로 서툴게 부는 클레멘타인 나즉히 들려오며..

혜순    (e)난 그 노래가 좋던데.. 왜 있잖아요. (나즉히 노래하는)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사진을 든 영철의 눈자위가 붉어지는데..
    저만치 부두에서 문씨, 영철 향해,
    <영철이! 아, 잡은고기 다 썩힐판야! 얼른 옮겨야 값을 잘받지, 이 사람아!>
    그제서야 사진을 품에 넣고 일어서는 영철.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오징어가 가득 든 누런 어물박스를 묵묵히 부두 위로 옮기기 시작한다.
    한박스, 두박스 올려놓다가.. 문득 어떤 느낌에 고개들어 보면.
    부두에 머쓱히 서 있는 민호.
    영철.. 꿈인지. 박스를 놓는 것도 잊은 채로, 망연히 민호를 본다.
    이윽고 영철의 눈가가 흔들리며 눈자위 붉어지는데,
    민호, 코트를 벗어 툭 던져놓고는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영철이 들고 있는 어물박스를 받아서 힘차게 부두위로 올려놓고는 영철을 돌아본다.
    가슴에서 물컹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영철.
    애써 뜨거운 기운을 꿀꺽 삼키고, 그저 묵묵히 뱃전의 어물박스를 힘껏 들어 민호에게 건네준다.
    민호 역시, 그 박스를 묵묵히 받아 부두 위로 힘차게 올려놓는다.
    부두에 쌓여가는 누런 어물박스들..
    묵묵히 함께 일에 열중해가는 영철과 민호..
    기운차게 어물박스를 나르는 영철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스치는 듯도 싶다.
    그런 두 부자의 모습..
    부감으로 점차 멀어지며.

72.    항구일각 
    멀리, 일하는 민호와 영철을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인.
    미소지으며 조용히 돌아선다. 그 모습에서..      
    (천천히 fade-out)

(e)     어두운 화면 위로, 철썩이는 낮은 파도소리..

73.    에필로그 (해질무렵)
    화면 밝아지면, 해질 무렵의 바닷가 떠오른다.
    파도소리 들으며,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있는 혜순과 영철.
    혜순, 바람에 흐트러지는 머리를 바로하며 영철 본다.

혜순    난 그 노래가 좋던데.. 왜 있잖아요. (나즈막히 노래하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다.
        (배싯 웃는다) 그거 불어줄래요?
영철    ...

    혜순을 가만히 보다가, 하모니카를 바지춤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불기 시작한다.
    서툰 음색으로 나즈막히 클레멘타인 흘러나오고.
    그 하모니카 소리를 듣는 혜순..
    (천천히 dis되면)
    두 사람 뒷모습, 정인과 민호로 바뀐다.
    그 옛날 혜순과 영철처럼,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있는 정인과 민호.
    민호, 서툴게 클레멘타인 불고 있다.
    그 하모니카 소리를 듣는 정인..
    어색하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두 사람 뒷모습.. 멀어지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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