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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대본

[나의 아내는 정숙하다] 이은상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04.12|조회수824 목록 댓글 0

[나의 아내는 정숙하다] 이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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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 지하철역. 화장실 (낮)

세면대 거울 앞.
단정한 정장차림의 미연, 화장을 고치고 있다.
미연, 화장도구를 핸드백에 넣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핀다.
미연, 나간다

S# 2 지하철역. 입구

미연, 지하철 계단을 올라온다.
미연, 카페를 올려다본다.

S# 3 카페.

미연, 청년과 어색한 분위기 속에 커피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아 있다.

미 연 (조용하지만 위엄 있는 말투로) 그만 찾아와 달라고 분명히 말씀드린 거
같은데요?
청 년 (고개만 떨구고)
미 연 관심 가져 준 건 고맙지만, 전 남편 말고는 다른 사람을 원한 적이 없어
요. 이쯤에서 그게 제 진심이라는 걸 믿어 주시면 안 될까요?
청 년 .......
미 연 그냥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하셨지만... 아시잖아요. 남녀간에 친구
란 표현이 얼마나 교묘한 위장술인지. 겉으론 담백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 충분히 긴장하고 설레고... 미안하지만 전 그런 관계가 어쩌면 더 나
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청 년 .......
미 연 이제 그만 찾아와 주세요. 주변에 더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도 많을 텐
데... 전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런 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그리고 힘들어
요. 이해하시겠어요?
청 년 (잠시 침묵, 하지만 곧 끄덕인다) 죄송합니다.
미 연 .......
청 년 사실은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미 연 (본다) 정말인가요?
청 년 네. 처음부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결혼하신 분한테...
근데... 자꾸 떠오르고 한 번 떠오르면 또 너무 보고 싶고...
미 연 ......
청 년 행복하게 사시라는 말씀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하시는 일도 다 잘 되시
고... 항상 즐거운 일만 생기시길... 그러시길 빌겠습니다. (미연을 본다)
미 연 진심이세요?
청 년 예. 진심입니다.
미 연 (잠시 보다가 미소) 그래요. 행복하게 살게요. 남편하고 같이...
청 년 (끄덕) 예. 같이요. (미소. 하지만 고개를 떨군다)

청년, 착잡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신다.
미연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타이틀... ” 나의 아내는 정숙하다 ”

S# 4 카페 앞 (밤)

미연과 청년,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작별하고 있다.
미연, 돌아서서 곧 떠나고.
청년, 아쉽게 바라본다.

S# 5 지하철 안

미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 채 역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있다.
서 있던 태수, 미연의 옆자리가 비자 미연 옆에 앉는다.
태수, 신문을 펼친다.

S# 6 지하철역 앞 거리

미연, 태수,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 길을 걷는다.
두 사람은 거의 나란히 걷고 있지만 서로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다.

S# 7 아파트 단지 안. 통행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통행로.
크게 자란 나무와 가로등 불빛으로 제법 운치가 있다.
미연, 앞 서 걷고
태수, 담배를 피우며 무심히 그 뒤를 따른다.

S# 8 미연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미연, 다가와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태수도 뒤따라와 미연 옆에 선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그저 정면만 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태수, 먼저 올라타 9층 버튼을 누른다.
미연도 올라타지만 층 버튼을 누르려다 웬일인지 다시 손을 거둔다.
미연, 태수를 힐끗 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 9 동. 엘리베이터 안

정면만 보고 나란히 서 있는 태수와 미연.
태수, 층 버튼을 누르지 않는 미연을 궁금한 눈길로 본다.
미연은 그저 정면만 향하고 있다.

태 수 저... (손으로 층 버튼을 가리키며) 9층사시나요?
미 연 예. 그런데요?
태 수 아 그럼 901호 사시는...
미 연 네.
태 수 아 그러시군요. (미소. 살짝 고개 숙여 인사) 이사왔습니다. 오늘.
미 연 아 예. (인사 받고 형식적으로) 이사는 잘 하셨어요?
태 수 예. 짐이 얼마 없어서...
미 연 식구가 적으신가 봐요?
태 수 예. 혼자 삽니다.
미 연 아 예.
태 수 ......
미 연 ......

S# 10 동. 9층 현관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미연 태수.

태 수 저 그럼. (인사한다)
미 연 (미소와 함께) 예. 들어가세요.

태수, 열쇠로 902호 현관문을 따고.
미연, 열쇠로 901호 현관문을 딴다.

S# 11 미연 아파트. 거실

미연, 현관문을 따고 들어선다.
정재, 소파에 앉아 케이블 TV로 낚시 방송을 보다가 일어나 맞는다.

정 재 음. 왔어? 왜 벨 누르지.
미 연 (미소) 미안해서.
정 재 뭐가?
미 연 (다가와 정재의 팔짱을 낀다) 당신 저녁 혼자 먹게 해서...
정 재 (미소) 어이구, 젊은 놈하고 데이트 한 거는 안 미안하고?
미 연 (웃는다) 그것도 쪼끔.
정 재 하하하.

정재, 미연을 데리고 소파에 앉는다.

정 재 그래. 잘 타일렀어? 말 들어?
미 연 음. 인제 안 찾아온대. 당신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래.
정 재 그래? 그래도 기본은 된 놈이네. 막무가내로 안 버티고.
미 연 음. 고마워 당신. 너그럽게 이해해 줘서.
정 재 고맙긴. 내 마누라 이뻐서 젊은 놈이 쫓아오는데. 못생긴 여자랑 사는 남
자들은 이런 재미없어.
미 연 (웃으며 정재의 볼에 키스하고) 사랑해.
정 재 (미소. 미연을 안아준다)
미 연 (일어선다) 과일 줄까?
정 재 옷부터 갈아입어.
미 연 괜찮아. 잠깐만 기다려. 갖다 줄 게. (주방으로 간다)
정 재 (미연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다. 다시 TV에 열중한다)

S# 12 동. 침실

미연, 정재의 팔을 베고 누워 있다.

미 연 옆집에 오늘 이사왔더라? 엘리베이터에서 봤어.
정 재 음 박태수씨?
미 연 박태수? 당신 사무실에서 소개했어?
정 재 음, 그럼. 명색이 복덕방 아저씨가 자기 앞 집두 못 챙기면 곤란하지.
미 연 (까르르 웃는다)
정 재 왜 웃어?
미 연 그냥 웃겨. 복덕방 아저씨라니까. 당신 이미지랑은 안 맞는 거 같애.
정 재 하하하. 그래? 내 이미지는 어떤데?
미 연 음. 글쎄... 털털하고... 박력 있고... 한 마디로 멋있어.
정 재 그래? 하하하. 이거 젊은 놈 만나고 오더니 갑자기 칭찬이 후하네?
미 연 아우 당신... (꼬집는다)
정 재 아야야... (웃는다)
미 연 근데 뭐하는 사람이래?
정 재 음. 그냥 뭐 사업이나 하나 할까 그러고 있는 모양이야. 언제 같이 저녁이
나 한 번 먹자. 새로 이웃됐는데...
미 연 (끄덕) 음. 그래. (정재의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정 재 (미연을 힐끗 보더니) 그냥 자게?
미 연 (대답 않고 혼자서 씨익 미소)
정 재 자?
미 연 (미소) 불부터 꺼.
정 재 (미소) 알았어. (스탠드를 끈다)

S# 13 동. 현관 앞 (아침)

미연,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태수, 역시 운동복 차림으로 902호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미연, 문 여는 소리에 돌아본다.

태 수 (미연을 보더니 미소와 함께 말없이 살짝 고개 숙여 인사)
미 연 (말없이 받고)

태수, 현관문을 잠그고 미연 옆에 선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태수, 미연, 올라탄다.

S# 14 동. 엘리베이터 안

말없이 각자 앞을 바라보고 서 있는 태수와 미연.

태 수 운동 가시나 보죠?
미 연 예. 운동하러 가세요?
태 수 예. 한 동안 안 했더니 몸이 좀 굳는 거 같애서.
미 연 예에.

두 사람, 다시 말 없이 앞을 본다.
미연, 어색함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거울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 거울 속에서 태수, 미연을 보고 있다.

미 연 .......

S# 15 실내 수영장.

미연, 물 속을 헤엄치다 몸을 일으킨다.
미연, 숨을 고르며 둘러보면.
태수, 풀 밖에 놓인 의자에 앉아 미연을 보고 있다.
미연,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미연, 태수의 시선을 느끼며 호흡을 고른다.

S# 16 동. 프론트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미연, 직원으로 보이는 수영여와 이야기하고 있다.

수영여 환불이요?
미 연 예. 사정이 생겨서 수영장을 좀 옮기려고요. 이번 달 회비 내고 며칠 안
지났는데... 안 되나요?
수영여 그건 좀... 저 근데 왜 옮기시게요? 저희 수영장 서비스에 무슨 부족한 점
이라도...
미 연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요. 사실은... 이웃에 사는 남자 분이 있어서 같이
수영하기가 좀 민망해서요. (미소)
수영여 아 예. (공감하는 미소) 글쎄요. 그래도 안 되는데... 어떡하죠?
미 연 .......

S# 17 카센터

미연, 정비공으로 보이는 센터남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센터남 혹시 다시 이상이 있으시면 가져 오십시요. 무료로 봐 드릴 테니까...
미 연 예. 그럼, 수고하세요. (인사하고 차에 오른다)
센터남 (인사 받으며) 예. 가세요.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다)

미연,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시킨다.
센터남, 다시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미연, 미소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 받으며 카센터를 빠져나간다.

S# 18 거리 / 차 안

미연, 운전하며 핸즈프리로 통화하고 있다.

미 연 낚시? 당신 정말. (애교) 계속 그렇게 낚시만 좋아하면 나 진짜 바람 나?
정 재 E 하하하. 미안. 새로 개장했는데 워낙 입질이 좋다구 그래서...
미 연 맨날 그 소리... 옷 따뜻하게 입고 모기약 꼭 챙겨 가. 그래. (끊고 미소)

S# 19 상가 건설 현장

시멘트 구조물만 완성된 소규모 상가 건물.
미연, 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상가 건물에서 빠져 나온다.
인부들이 그들 곁을 지나는 미연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미연, 정장엔 어울리지 않던 안전모를 벗어 들고 한 손으로 머리를 매만진
다.

소 장 (얼른 안전모를 받아 든다) 이리 주쇼.
미 연 예. 고맙습니다. 후-- 근데 양생이 왜 이렇게 늦죠?
소0 장 날이 웬만큼 습해야죠. 여긴 또 저 아파트 단지가 딱 막아서 바람두 어지
간해선 안 들어오고. 일정은 차질 없을 거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미 연 (끄덕이고) 제가 자꾸 찾아오니까 귀찮으시죠?
소 장 예? 아이구 원 별 말씀을... 아 이렇게 미인이 방문하시는데 누가 귀찮답
니까? 영광이지. 하하하.
미 연 (웃으며) 귀찮아도 귀엽게 좀 봐주세요. 워낙 손바닥만한 설계회사라 이게
지금 제일 큰 건이거든요. 저는 솔직히 자다가도 한 번 와보고 싶다니까
요? (미소)
소 장 하하하하. 한 번 오슈. 나 저 콘테이너서 자니까 소주나 한 잔 하게.
미 연 예. 남편한테 허락 맡아 볼 게요. (미소 짓고) 근데 그런데서 주무셔서 어
떻게 해요? 몸 상하실 텐데...
소 장 자는 거야 뭐. 마누라만 안 보이면 난 어디든지 편한 사람이라... 헤헤헤.
미 연 (웃어주고)
소 장 근데 저 사람도 그 쪽 직원이요? 아까부터 계속 저러구 보구 있는데...

미연, 보면.
태수, 일각에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보고 있다.
태수, 고개를 돌리다 미연을 발견한다.
태수,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다.

미 연 ........

S# 20 거리

나란히 걷고 있는 태수와 미연.

태 수 그냥 지나다가 구경 좀 했습니다.
미 연 뭘요?
태 수 그냥... 이것저것. 건물도 보고. 미연씨도 보고.
미 연 네? (경계의 눈길로 본다)
태 수 (담담하게 마주 본다)
미 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이름은 어떻게... 남편이 얘기하던가요?
태 수 (미소) 한 가지씩만 물어보시죠.
미 연 .......

S# 21 스카이 라운지 (밤)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태수와 미연.

미 연 제가 일하는 방식을 봤다구요?
태 수 예. 얼마나 꼼꼼한지, 얼마나 열성적인지. 그래서 거기 갔던 겁니다. 그런
사람한테 꼭 맡기는 싶은 일이 있어서요.
미 연 ....?
태 수 쇼핑몰을 하나 세울 계획입니다. 지하 3층 지상 10층 규모의 여성전용 쇼
핑몰. 그 설계를 미연씨 회사에 맡기고 싶습니다.
미 연 저희 회사에요?
태 수 예. 정확히 말하면 미연씨한테요.
미 연 .......
태 수 적당한 설계회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좀 뒤져봤습니다. 그러다가 미연씨
회사의 홈페이지도 들어가 봤고. 이름도 거기서 봤습니다. 사진하고 같이
실려 있는 걸. 아무튼 규모는 작지만 이제까지 설계했던 건물들은 아주 훌
륭하더군요. 뭐랄까요... 건물의 구조와 인테리어가 일관된 테마로 연결되
어 있는 느낌. 아마 미연씨가 설계뿐 아니라 인테리어도 겸하고 있어서 그
런 10거1 같던데... 아닌가요?
미 연 맞긴 맞습니다. 제가, 아니 저희 회사가 설계와 인테리어를 겸하고 있어
서. 하지만 그 정도 건물이면 더 큰 설계회사에 맡기시는 게 어울릴 텐
데요?
태 수 규모는 상관없습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건물에 제대로만
표현해 줄 수 있으면 됩니다.
미 연 이미지요? 어떤 이미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태 수 그건 같이 일하게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실무적인 얘기니까.
미 연 (끄덕인다)
태 수 맡아 주시겠습니까?
미 연 글쎄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솔직히 저희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횝
니다만 큰 공사는 경험이 없어서... (고민하는데)
태 수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
게 되면 공과 사를 항상 확실히 구분해 주십시요.
미 연 ......?
태 수 저는 미연씨랑 두 가지 일을 추진할 겁니다. 공적으로는 쇼핑몰을 건설할
것이고. 사적으로는 다른 일을 할 겁니다. 두 가지 일이 서로 영향을 미치
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 연 ......
태 수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적인 일이란 게 미연씨한테 해가 될 일은 아
닙니다. 그냥 아직 말 할 단계가 아니라서... 괜찮겠죠?
미 연 (표정 굳고) 죄송하지만 그런 조건이 붙는 일이라면 사양해야 되겠는데요.
전...
태 수 사업가답게 판단하십시오. 직원들을 거느린 오너로서. 이건 미연씨만이 아
니라 직원들에게도 좋은 기횝니다. 나중에 직장을 옮기거나 독립하게 되면
좋은 이력이 될 일이죠.
미 연 ........
태 수 다시 말씀드리지만 미연씨한테 해가 될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절대로.
미 연 .......
태 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면 내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일어서며) 그만 일
어 날까요?
미 연 .......

S# 22 도로 (밤) / 차 안

미연, 생각에 잠겨 운전하고 있다.

S# 23 실내 수영장 (낮)

이른 아침시간.
미연, 전날과는 다른 수영복을 입고 풀을 향해 걸어온다.
수영복을 입은 미연의 몸매는 주변 남자들의 눈길을 끈다.
미연, 그런 시선에는 무신경한 듯이 보인다.

정 재 E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미 연 (본다)
정 재 (풀 안에서 웃고 있다)
미 연 네. 좀 늦게 자서...
정 재 (끄덕이고) 결정은 하셨습니까?
미 연 ....예. 말씀하신 대로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일단은...
정 재 잘 됐군요. (미소) 들어오세요. (헤엄쳐 간다)
미 연 .......

미연,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간다.
미연, 수영을 하기 시작한다.
태수, 앞서 나가고.
미연, 그 뒤를 쫓아 헤엄쳐 가는 모습이다.

S# 24 미연 사무실

미연, 상기된 얼굴의 남직원1,2,3에게 둘러싸여 있다.

남직원1 정말이요?
미 연 네. 확실히 큰 건이죠?
남직원2 와... 규모는요?
미 연 지하3층, 지상 10층. 시공업자도 우리가 선정하고 인테리어도 몽땅 우리가
할 거에요.

환호하는 남직원들.
미연, 뿌듯하다.

남직원1 근데 건축주는 어떤 사람이에요?
미 연 건축주? 글쎄... 그냥 테마를 중요시하는 재력가?
그러고 보니 나도 별로 아는 건 없네? (태수를 떠올린다)

S# 25 도심. 쇼핑몰 예정 부지.

태수의 안내를 받으며 미연, 걸어온다.

태 수 어려서부터 전 굉장히 걱정스런 존재였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면서
노는 것도 싫어하고. 항상 뚫어지게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는 게 제가 잘
하는 유일한 거였죠.
미 연 뭘 그렇게 열심히 보셨죠?
태 수 그냥 이것저것 다요. 진달래, 개나리, 풀숲에 개구리, 마을로 새로 시집온
새댁아줌마. 그때부터 부모님은 땅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힘들어 보이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제 미래를
보장해 주려는 의도였죠. 덕분에 저는 취직이란 걸 해 본적이 없습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막 면접 보러 다니는데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죠. 그
러더니 처음 보는 변호사가 찾아 와서 저한테 엄청난 땅이 상속됐다고 알
려주더군요.
미 연 다른 형제는 없었나요?
태 수 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미 연 ......
태 수 여깁니다.

이미 주변에 지어진 아파트와 상가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넓은 공터가 펼쳐
져 있다.
한 눈에 노른자 땅임이 느껴지는 커다란 풀밭이다.
미연, 감탄하듯 본다.

태 수 근데 참, 아침에 보니까 수영복을 바꾸셨더군요?
미 연 네? 아 네... 산 지 오래 된 거라...(부끄럽다)
태 수 아 예. (미소) 그 디자인이 훨씬 좋아 보이더군요. 그게 더 맘에 듭니다.
저는... (미연을 빤히 본다)
미 연 (태수를 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풀밭으로 고개를 돌린다)

E 핸드폰이 울린다

태 수 네. 아 김사장님. 낚시요? (미연을 본다)
미 연 ......
태 수 예. 그러죠. 하하하 아닙니다. 예 그럼. (끊고) 남편 분이 낚시를 정말 좋
아하시는군요.
미 연 .......

S# 26 낚시터 (낮)

나란히 자리를 잡고 낚시를 준비하고 있는 태수, 정재.
태수, 의자에 앉아 서툰 솜씨로 낚싯대에 미끼를 달고 있고.
정재, 일어서서 낚싯줄을 던질 자세를 잡고 태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 재 다 됐어요?
태 수 예. (낚싯대를 들고 일어선다)
정 재 음. 던질 땐 팔에 힘을 빼야 되요. 뭐라고 하면 될까... 음. 새 있죠? 새
를 한 마리 날린다는 생각으로 부드럽게. 이렇게요. (낚싯줄을 수면으로
던져 시범을 보인다) 알았죠? 박형도 한 번 해보세요.
태 수 (따라서 낚싯줄을 수면으로 던진다)
정 재 하하하. 잘 하시네. (앉는다)
태 수 (쑥스럽게 웃으며 앉는다)
정 재 인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됩니다. 찌릿, 하고 느낌이 올 때까지...
태 수 (끄덕인다)

태수, 정재, 말없이 수면을 응시한다.

태 수 근데 부인이 참 미인이시더군요.
정 재 하하 그래요?
태 수 예. 어디서 그런 미인을 만나셨습니까?
정 재 하하하. 미인은 뭐... 그냥 좀 빠지진 않는 편이지. 하하하. 대학 때 만났
어요. 말하자면 과 커플이지. 한 1년은 쫓아다녔지.솔직히 말해서 전 우리
와이프 같은 여자랑 결혼한 걸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팔불출 같이 들리시
겠지만 사실 제일 큰 자랑거리죠. 이뻐서 자랑이 아니라 믿음이 가서요.
거 왜 남자들 흔히 그런 말하지 않습니까. 너무 이쁜 마누라 데리고 살면
불안하다고.
태 수 (미소)
정 재 사실은 나도 첨엔 좌불안석이었죠. 원래 소문난 미인이라 좋아하는 사람들
이 한 둘 이여야죠. 와이프가 나랑 사귄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나서니까
어쩌지는 못하는데, 거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래도 이유 없이 더 친절
하고 공적인 일 핑계로 자꾸 불러내고. 같은 남자 눈에는 다 보이죠.
태 수 (공감하는 웃음)
정 재 그래서 생각 끝에 군대를 가 버렸죠.
태 수 그 상황에 군대를요?
정 재 예. 시험을 해 본 거죠. 결과는... 지금 보시면 아시겠고.
태 수 (끄덕인다)
정 재 나중에 들어보니 저 군에 있을 때 우리와이프 찍접대다가 따귀 맞은 사람
들이 열은 되더군요.
태 수 (웃는다)
정 재 그 때 그런 거 느꼈습니다. 타고난 천성이란 게 있다. 제비족들 사이에 던
져 놓아도 아무 일 없는 여자도 있고, 골방에 가둬 놓아도 바람 피우는 여
자가 있다. (태수를 보고 씩 웃는다) 제 표현이 너무 그런 가요?
태 수 (웃고 만다)
정 재 아무튼 그 때 이후로 전 아내를 의심해 본 적이 업습니다. 또 와이프가 절
실망시킨 적도 없고.
태 수 (끄덕인다)
정 재 엇! (잽싸게 낚싯대를 일으킨다. 빈 낚싯바늘만 흔들거리며 올라온다 ) 아
이런... (태수를 향해 껄껄 웃는다)
태 수 (미소)

S# 27 미연 사무실 (낮)

미연, 여기자와 차를 마시며 인터뷰 중이다.
사진기자, 옆에서 미연을 촬영하고.
남직원1,2,3, 흐뭇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다.

미 연 아무래도 여성전용 쇼핑몰이니까 최대한 여성의 입장에서 설계해야죠.
음 그러니까... 여성이 새로운 악세서리를 구입하고 새 옷을 구입하는 궁
극적인 이유에 대해서 명확한 만족을 주는 쇼핑몰이요. 이 쇼핑몰에서 쇼
핑을 하고 나설 때면, 고객들이 자신이 좀 더 아름다워졌다는 만족감을 느
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여기자 (끄덕이고)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요?
미 연 우선은 지금 설계에 전력을 다 하고요. 그 담으로는 이제 그만 아기를 가
졌으면 해요. (부끄러운 웃음)
여기자 아 네... 이렇게 한 참 사업이 번창하는데, 의외의 계획이시네요?
미 연 글쎄요. 아무래도 전 사업적인 성공보다는 자꾸 여자로서의 성공에 더 욕
심이 나는데요? (웃는다)
여기자 (미소) 예. 수고하셨습니다. (일어선다)
미 연 (일어서며) 수고하셨어요.
여기자 (이것저것 챙기며) 근데 남편 분하고 같이 있는 사진이 좀 있었으면 좋겠
는데... 끝까지 비밀로 하고 싶으세요?
미 연 (미안한 웃음) 네. 나중에 기사 나오면 깜짝 놀래주고 싶은데. 꼭 필요한
가요?
여기자 아니요. 그냥 찍어 놨다가 그림이 좋으면 나중에 실을까 하고요. 뭐 위에
서 정 필요하다고 하면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럼.
미 연 예. 안녕히 가세요.

여기자와 사진기자 인사하며 나가고.
미연, 직원들과 함께 배웅하고는 서로 뿌듯한 미소를 교환한다.

E 미연의 핸드폰이 울린다

미 연 네.
태 수 E 인터뷰 잘 끝났습니까?
미 연 아 예. 방금...
태 수 E 그래요? 그럼 좀 볼까요?

S# 28 사교클럽. 건물 앞

강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교외.
상류층의 사교 모임 장으로 쓰이는 고급스런 한 건물.
정원을 가로지르는 긴 산책로를 태수와 미연 걷고 있다.

태 수 건축이나 인테리어와 관련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교클럽입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미 연 아 예...

S# 29 동. 칵테일 파티장

4인조 정도의 실내악단이 경쾌한 톤의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다.
잘 차려 입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녀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담소
중이다.
그들은 모두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매력을 즐기는 분위
기다.
태수, 미연을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시키고 있다.

태 수 (미연을 가리키며) 여긴 이번에 쇼핑몰 설계를 맡은 이미연씨. 이 친구는
국내 실내 조명분야에서 일인자로 통하는 김형택이라는 친굽니다.
사교남1 반갑습니다. 형광등 김이라고 불러주십시요.
미 연 (웃으며) 처음 뵙겠습니다. 이미연이에요.
태 수 그리고 여긴 수족관 인테리어 전문인 김인숙씨. 자칭 수중건축설계사라고
하는데 우린 그냥 어항 아가씨라고 부릅니다.
사교여1 반갑습니다. 아유 미인이시네요.
미 연 미인은요... 반가워요.
사교여1 (미소. 태수에게) 근데 박사장님은 얼굴이 더 좋아지신 거 같아요?
태 수 그래요? 머리는 더 나빠졌습니다.

일동 웃는다.
태수, 다시 미연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며 홀 안을 움직인다.
태수를 따라가며 사람들을 소개받는 미연의 얼굴이 즐겁다.

S# 30 동. 2층 난간

태수, 미연, 칵테일 잔을 들고 1층 홀에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
고 있다.
미연의 얼굴은 술 탓인지 붉게 상기되고 조금 들떠 보인다.

태 수 어때요?
미 연 아 네. 좋아요. 배우는 것도 많고... 도움이 많이 되요.
태 수 (미소지으며 끄덕이고 홀 아래를 본다) 전망 좋죠? 여기가 제가 이 파티장
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립니다.
미 연 아 예...
태 수 여기서 이렇게 밑을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길 좋아하죠. 특히 그들
의 시선을요...
미 연 시선이요?
태 수 (끄덕이고) 이리 가까이 와 보세요.
미 연 (다가간다)
태 수 저기 저 여자들 보이시죠?
미 연 (그 곳을 본다)

사교여2,3, 단 둘이 칵테일을 마시며 얘기하고 있다.
두 여자는 뭔가 불쾌한 얼굴빛이다.

태 수 저 여자들은 파티가 즐겁지 않은가 보군요. 그렇죠?
미 연 (끄덕인다)
태 수 왜 그럴까요? 음식이 맛이 없어서? 음악이 맘에 안 들어서?
미 연 ......
태 수 이번엔 저 쪽을 보세요.

젊고 매력적인 모습의 사교여4, 사교남2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다.
남자들 몇 몇이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며 사교여4를 둘러싸고 있다.

태 수 어때요? 즐거워 보이죠?
미 연 네.
태 수 왜 일까요? 같은 음식에 같은 음악을 듣고 있는데? 게다가 지금 앞에서 떠
들어대는 저 친구는 재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서로 전공한 분야
도 달라서 대화가 통하기도 힘들테고. (미연을 본다)
미 연 ......
태 수 아시겠어요? 그 차이?
미 연 ........
태 수 바로 시선 때문이죠. 자신에게 집중된 남자들의 시선. 자신의 얼굴과 매
끈한 피부를 감탄하며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저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도 즐거운 거고, 칵테일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거죠. 타인의 시선.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최고의 악세서리.
미 연 (태수를 본다) 무슨 말씀이신지...
태 수 테마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쇼핑몰에 그려야 할 이미지.
미 연 이미지요?
태 수 (끄덕) 오페라 좋아하세요?
미 연 오페라요?
태 수 예. 가시죠. (걸어간다)
미 연 지금 무슨 공연이...
태 수 (대답 없이 이미 저 만큼 걸어갔다)
미 연 .......

S# 31 오페라 하우스. 공연장 (밤)

텅 빈 공연장에 불이 밝혀져 있다.
태수, 무대 중앙에서 빈 객석을 음미하듯 바라보고 서 있다.
미연, 무대 가장자리에서 그런 태수를 보고 있다.
태수, 미연을 향해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미연, 다가간다. 미연의 발소리가 텅 빈 공연장을 울린다.
태수, 미연이 다가오자 미연의 두 어깨를 잡아 객석을 향해 서도록 한다. 미연, 객석을 바라보며 선다.
태수,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뒤에 선다.

태 수 바로 이겁니다. 이 느낌. 느껴보세요. 당신에게 집중된 수천의 시선들...

미연, 객석을 본다.
수천석의 빈 의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 1층을 메우고 다시 2층... 3
층...

태 수 이게 최종적인 우리들의 테맙니다. 온통 나에게로만 쏠려 있는 시선... 쇼
핑몰을 들어서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게 하는 겁니다. 수많은 남성의 시선
들... 기둥마다 숨어서 훔쳐보는 남자 마네킹을 설치할 겁니다. 벽엔 여성
고객들을 직시하는 매력적인 남성 모델의 사진이 도열할 거고. 고객들이
거울을 볼 때면, 거울 속에서 자신을 훔쳐보는 시선과 함께 그 시선을 받
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보게 될 겁니다. 타인의 시선을 애타게 그
리워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모든 남자를 자신의 아름다움 앞에 굴
복시키고 싶은 뜨거운 욕망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미 연 .......
태 수 이 느낌... 이 느낌을 당신이 표현해 줘야 합니다.

미연, 태수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있다.
미연, 긴장과 흥분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보는 수 천 개의 객석들을 둘러본
다.
수 천 개의 객석... 수 천 개의 시선...
미연, 그러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몸이 긴장된다.
미연,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태수의 얼굴의 가까이 와 있다.
미연, 움찔하지만 그 순간 태수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다.
미연, 연약한 팔로 태수를 밀치지만 꿈쩍도 않는다.
긴 키스가 이어진다.
태수, 맘먹은 만큼 충분히 즐긴 후에야 스스로 키스를 멈추고 미연과 떨어
진다.
미연,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않은 채 완전히 탈진한 듯 힘없이 겨우 서 있
다.
미연, 태수의 시선을 피하며 침을 삼킨다.
미연, 조용히 자신을 추스른다. 그리고 곧 독한 눈으로 태수를 노려본다.
태수, 응시하고.
미연, 세차게 태수의 뺨을 때린다.
텅 빈 홀에 그 소리가 커다랗게 메아리친다.
태수,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음미하듯 가만히 서 있다.
미연, 커다란 발소리를 남기며 무대를 빠져 나간다.
태수, 짧고 씁쓸한 미소.

정 재 E (핸드폰 울리고) 나요 박형. 오늘 시간 어때요?

S# 32 저수지 (밤)

물가에 텐트 하나가 쳐 있다.
수면을 향해 몇 개의 낚싯대가 뻗쳐 있고.
태수, 여행용 도마와 칼로 붕어를 다듬고 있다.
정재, 옆에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정 재 하하하. 잘 하시네? 난 잡을 줄만 알았지 한 번도 매운탕 끓일 생각은 안
해봐서...
태 수 (미소) 혼자 살다보면 괜히 이런 재주가 생깁니다.
정 재 하하하. 그래요?

태수, 지느러미를 칼로 도려내고 비늘을 꼬리에서 머리 쪽으로 쓰윽쓰윽
벗겨가기 시작한다.

정 재 아하... 그 비늘을 그렇게 벗겨내는고만?
태 수 예. 결대로 벗기면 미끌거리기만 하지 절대로 안 됩니다. 아래에서 위로,
비늘이 난 반대방향으로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는 거죠. 그래야 단단하게
박혀있던 비늘이 와르르 한 번에 무너지는 겁니다.
정 재 (끄덕끄덕) 음.... 하하하. 내가 바람피울 때 쓰는 방법이랑 비슷하고만?
하하하. 가끔은 여자의 뜻을 거슬러야 연애에 성공할 수가 있죠.
태 수 그렇게 미인이신 부인을 두고도 바람을 피우십니까? (미소)
정 재 하하하. 박형두 참. 그렇게 말 하니까 박형은 꼭 남자 아닌 거 같수?
태 수 (웃고 만다)
정 재 거 뭐 맨날 같은 음식만 먹으면 식상하다, 뭐 이런 표현은 좀 그렇고. 음.
아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산에 올라가서 집을 짓고 산다고 합시다.
근데 어느 날 둘러봤더니 저 건너에두 산이 있고, 뒤에도 산이 있는 거요.
그럼 어떻겠소? 그 산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은 거지. 하하하. 말해놓고
보니까 이 표현두 좀 그러네. 아 난 참, 거 무슨 말을 할 때 좀 문학적인
표현이 영 안돼. 하하하.
태 수 .......

(사 이)

끓인 찌개를 놓고 소주를 곁들이는 태수와 정재.

정 재 한 번은 (한 잔 먹고) 크... 좋네. 거 뭐야 남편은 미국서 사업하고 한국
서 혼자 사는 유부녀를 사귀었는데, 아 이 여자가 글쎄 몇 달 지나더니 덜
컥 남편하고 이혼하겠다는 거지 뭐요? 나보구도 이혼하라구 하면서.
태 수 그래서요?
정 재 그래서 아니다, 우리 가정을 지키자. 그렇게 살살 달랬는데 막무가낸 거
야. 킥킥킥. 결국 핸드폰 번호 싹 바꾸고 도망다니고... 그래두 집 앞까지
찾아오구 그러더니 자기두 단념했는지 소식이 끊기더만. 아유 그 여자두
참... 그래서 여자가 바람나면 진짜 무섭지.
태 수 .....
정 재 근데 박형. 박형은 결혼을 안 한 겁니까?
태 수 결혼이요?
정 재 예. 분위기로 봐선 완전 총각 같지는 않은데... 하긴 했었죠?
태 수 (씁쓸한 미소. 그리고 끄덕인다) 예. 사실은... (한숨) 근데 아내가 죽었
습니다. 몇 해 전에...
정 재 .......

S# 33 미연 아파트. 거실 (아침)

미연, 생각에 잠겨 소파에 웅크리고 있다.

E 현관 벨소리

미연, 열쇠를 집어넣으며 현관을 향해 걸어간다.

미 연 당신?
정 재 E 음.
미 연 (문 열며) 잘 갔다 왔...

미연, 놀라서 멈칫한다.
낚시 가방을 든 정재 뒤로 태수, 같이 서 있다.

미 연 .......
태 수 .......
정 재 그냥 헤어지기 뭐 해서 간단히 해장이나 하려고. 괜찮지?
미 연 그... 그래. (태수에게) 들어... 오세요.
정 재 올라오슈 박형.
태 수 예. (거실로 올라서며 미연을 본다)
미 연 ....... (시선을 내리깐다)

S# 34 동. 간이 바.

거실 한 쪽에 마련된 작은 바.
정재, 태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마른안주를 곁들여 맥주를 먹고 있다.
미연, 긴장된 얼굴로 테이블 구석에 앉아 과일을 깍고 있고.
태수, 맥주를 마시는 사이사이 미연을 응시하고 있다.

정 재 결국 허탕치구 다시 옮겼는데 거기두 영 안 잡히는 겁니다. 그래서 전화를
해 봤더니 다른 데가 또 포인트라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배를 불렀는
데... (배를 만진다) 아유 이거 맥주는 이래서... (미소) 잠깐 화장실 좀.

정재,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미연, 일어서는 정재를 당혹스런 눈길로 바라본다.
태수, 그런 미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없이 바라본다.
혼자 남은 미연, 태수의 시선에 더욱 긴장한다.
미연, 사과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사각사각.... 과일 깍는 소리만 정적을 깬다.
태수, 맥주 잔을 들어 천천히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다 마신 맥주 잔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러면서도 미연을 바라보
는 시선은 거두지 않는다.
미연, 살며시 마른침을 삼킨다.
태수, 계속 응시한다.
미연, 다시 나지막한 한숨으로 호흡을 조절한다.
여전히 바라보는 태수의 눈길.
덜커덕! 급작스럽게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미연, 화들짝 놀라며 과도에 손가락을 벤다.

태 수 ......!

미연,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움켜쥐고 급히 일어선다.
정재, 화장실 문을 닫으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정 재 아유 이래서 비싸두 양주가 나은데... 어? 다쳤어?
미 연 아냐 괜찮아. 좀 벴어. (미소) 술 마셔. (침실로 급히 들어간다)
정 재 어유 조심하지... (앉으며 침실을 향해) 소독약 두 번째 서랍에 있다.
미 연 (방에서 대답 없다)
태 수 과도가 잘 안 드나 봅니다.
정 재 그런가? (과도를 만져본다) 쯧쯧쯧. (침실을 향해) 괜찮아?
미 연 E 음. 괜찮아.
태 수 (미안한) 괜히 제가 찾아와서...
정 재 아유 아니에요. 제가 오자구 한 걸. 이웃끼리 이 정도는 하구 살아야지.
근데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태 수 아 예. 다시 배를 불러서 자리 옮기셨다고.
정 재 맞어 맞어. 하하하. 그래서 옮겼는데 거긴 또 수온이 너무 높은 거에요.
결국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감성돔은 구경도 못하고 놀래미만 몇 마리
건져 갖구 오는데... 이틀 밤새서 눈을 벌게가지구. 하하하. 언제 한 번
같이 갑시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낚시는 바다낚시요. 바다낚시.

S# 35 동. 침실

화장대 위엔 소독약과 밴드 하나가 놓여 있다.
미연, 화장대 앞에 앉아 다친 손가락을 입술로 물고 피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다.

태 수 E 하하. 예. 꼭 한 번 데려가 주십시요. 저도 한 번 해 보고 싶네요.
정 재 E 하하. 그래요? 이제 박형도 아주 꾼이 다 되셨고만? 하하하.
미 연 ......

S# 36 동. (심야)

정재, 혼자 잠들어 있다.

S# 37 동. 주방

미연, 잠옷 차림으로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신다.
미연, 밴드가 감긴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미 연 ........

E 세차게 뺨을 때리는 소리.

S# 38 태수 오피스텔 (낮)

사무용 테이블 위엔 설계도면 몇 장이 펼쳐져 있다.
태수, 뺨을 얻어맞은 모습이고.
미연, 궁지에 몰리듯 벽에 붙어 서서 머리와 옷매무새가 헝클어져 있다.
미연, 옷매무새를 만지며 노려보고.
태수, 빤히 바라본다.
미연의 한 손가락엔 여전히 밴드가 감겨 있다.

태 수 아직도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군요.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할 거면 여긴
왜 왔죠? 내가 사무실에 가서 도면을 보자니까? 깨름직해도 어쩔 수 없는
사업이니까?
미 연 (노려 볼 뿐 말이 없다)
태 수 좋아요. 다른 걸 묻죠. 당신은 왜 여태까지 나랑 일하는 걸 남편한테 비밀
로 한 겁니까? 나중에 깜짝 놀래주려고? 그럼 스스로 인터뷰를 청해서 자
신을 쇼핑몰에 옭아맨 이유는요?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서? 좋아요. 그럼
내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아침마다 수영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난 이유
는 뭐죠? 아, 그건 환불이 안 돼서? 그렇죠? 모든 게 완벽하군요.
미 연 ....... (노려보던 시선을 획 돌린다. 곤혹스러운 얼굴)
태 수 이제 그렇게 힘든 짜 맞추기는 그만 둬요.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만큼
당신도 날 원해. 당신은 날 처음 봤을 때부터... 내 시선을 느꼈을 때부
터... 뭔가를 직감하고 기대했어. 그래서 그랬던 거지.
미 연 (뭐라고 말을 하려 한다)
태 수 아주 옛날부터! 당신은 나 같은 사람을 기다려 왔어. 고작 따귀 몇 대 맞
고 순순히 물러나는 게 아니라 아주 거칠게 당신의 성벽을 부셔버릴 남자.
당신한테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만들어 주면서, 당신의 감춰진 본성에
자유를 안겨 줄 남자.
미 연 (확 나가려 한다)
태 수 (거칠게 팔을 잡아 세운다) 하지만 난... 그런 당신이 좋아. 그래서 당신
에게, 당신을 위한 건물을 선물하고 싶어. 그게... 내가 당신하고 하려던
사적인 일입니다.
미 연 (태수의 팔을 확 뿌리친다)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뚫어지게 여자들을 훔
쳐보면서 더러운 상상이나 해대는 정신병자야. 길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당
신한테 반했다고 믿는 변태야! 다 그만 두겠어. 저질스런 쇼핑몰은 당신
혼자서 지어. (간다)
태 수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미 연 (멈춘다)
태 수 난 마지막 문 하나 까진 때려부수진 않겠소. 또 다시 나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마지막 용기는 당신이 내요. 당신이.
미 연 (망설이다 나간다)
태 수 .......

S# 39 미연 아파트. 침실 (밤)

정재, 혼자 잠들어 있다.

S# 40 동. 거실

미연,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몸을 말고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

S# 41 실내 수영장. (낮)

미연, 수영복을 입고 들어선다.
태수, 풀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 곁에서 미연을 보고 있다.
미연, 눈을 내리깐 채 걸어온다.
미연, 태수의 곁을 지나쳐 물 속으로 들어간다.
미연, 천천히 헤엄쳐 나가고.
태수, 묵묵히 그 모습을 응시한다.

( 사 이 )

미연, 수영을 하다 몸을 일으킨다.
태수, 수영장을 걸어나가고 있다.

미 연 ......

S# 42 동. 프론트

미연, 수영을 마친 평상복 차림으로 걸어나온다.
수영여, 부른다.

수영여 저 손님.
미 연 네? (프론트로 다가온다)
수영여 이거...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넨다) 같이 다니시는 남자분이 전해 달라고
맡기셨어요.
미 연 .......

미연, 봉투를 연다. 작은 메모지가 들어있다.
미연, 메모를 읽기 위해 메모지를 꺼내는데 열쇠고리에 매달린 열쇠 하나
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미 연 .......

S# 43 미연 사무실

회의용 테이블에 둘러앉은 미연과 직원들.
남직원1,2,3, 도면을 펼쳐 놓고 토론 중이다.
미연, 생각에 잠겨 있다.

남직원1 동선 고려가 잘 안 된 것 같은데? (연필로 가리키며) 여기 말야. 이 복
도. 폭이 너무 좁지 않아. 2층에서 올라오는 손님들하고 3층에서 내려오는
손님들하고... 여기 굉장히 복잡한 데잖아.
남직원2 그런가? 사장님 보시기엔 어떠세요?
미 연 ......
남직원2 사장님?
미 연 음? 어... 그래요. 좀 넓히는 게 좋겠어.
남직원2 예. 그럼 이쪽은 어떡하지?
남직원1 어디? (도면을 본다)
미 연 (다시 생각에 잠긴다)
태 수 E 오늘밤입니다. 기회는 단 한 번이요.
미 연 (낮은 한숨. 심각해진다)

S# 44 미연 아파트. 9층 엘리베이터 앞 (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
빨간색 숫자가 1..2..3... 하나씩 변화하다 9라는 숫자에서 멈춘다.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벨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린다.
미연, 혼자서 내린다.
미연,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미 연 .......

S# 45 미연 아파트. 거실

스르르 문이 열리며 미연 들어선다.
미연,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서 있는다.
정재, 다가온다.

정 재 음 왔어?

미연, 고개 들어 정재를 본다.

S# 46 실내 수영장 (낮)

수영을 하던 미연, 몸을 일으킨다.
미연, 둘러보지만 태수는 보이지 않는다.

S# 47 미연 사무실 남직원들 각자 일하고 있고.
미연, 자리에서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가만히 보고 있다.
미연,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잡으려고 한다.
미연, 하지만 포기하고 손을 거둔다.
미연, 그러다가 다시 핸드폰을 잡는다.`++

미연, 버튼을 누른다.

태 수 E (신호음 들리다가) 예.
미 연 (잠시 숨 고르고) 아 네... 저 설계 중에 문의 할 게 있어서... 저 전면
유리창...
태 수 E 설계는 그쪽에 일임할 테니까 알아서 하십시요. 그럼. (끊는다)
미 연 .......

S# 48 거리 (밤)

미연, 거리를 걷는다.
미연의 표정은 황폐하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S# 49 미연 아파트. 9층 현관

미연, 엘리베이터에서 황폐한 표정으로 내린다.
미연, 902호를 본다.
미연, 움켜쥐고 있던 한 손을 편다. 태수의 열쇠가 손바닥 위에 있다.
미연, 열쇠를 들고 902호로 다가간다.
미연, 망설이다 열쇠를 902호 현관문에 천천히 꽂는다.

S# 50 레스토랑 (낮)

태수, 미연, 스테이크 종류를 먹고 있다.
미연, 부끄러움에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고기를 집어먹으며 앉아 있다.
미연의 모습은 마치 신혼 첫날밤을 치른 새색시의 모습과 같다.
태수의 모습은 미연에 비해 조금은 여유로와 보인다.
태수, 미연을 보고 미소짓는다.
미연, 태수의 미소를 보더니 행복하게 미소짓는다.
태수, 포크로 고기를 하나 집어 미연에게 내민다.
미연, 부끄러워 하다가 받아먹고는 활짝 미소짓는다.

S# 51 호텔

태수, 미연, 알몸으로 한 이불을 덮고 있다.
미연은 태수의 가슴 위에 얼굴을 포개고 있다.
미연, 손가락으로 태수의 가슴과 팔을 쓰다듬는다.
미연, 그러면서 계속 키득거린다.

태 수 왜?
미 연 그냥... 큭큭큭... 웃겨서.
태 수 뭐가?
미 연 태수씨하고 나... 한바탕 쇼를 한 거 같애. (웃는다)
태 수 (따라서 웃는다)
미 연 태수씨 그거 알어? 내가 태수씨한테 언제 반했는지.
태 수 언젠데?
미 연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았을 때... 고상한 척 앉아서 사실은 태수씨 훔쳐 봤
어. 맞은 편 유리로.
태 수 (미소)
미 연 근데 태수씨가 지하철에서 내려서 날 계속 따라 오더라? 그래서 심장이 막
뛰었어.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그러면 어쩌나...
태 수 그러다 실망했겠네?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사람이라?
미 연 잠깐 동안만. 금방 다시 좋아졌어. 태수씨가 혼자 산다고 말해서.
태 수 (미소)
미 연 태수씨두 다 알구 있었지? 내가 그러는 거?
태 수 (미소만)
미 연 (미소. 태수에게 얼굴을 향한다) 사랑해 태수씨. (태수를 부서뜨릴 듯 꼬
옥 끌어안는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태 수 (미소. 미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S# 52 미연 회사. 1층 로비

경비, 자리에 앉아 있다.
정재, 도시락 몇 개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기분 좋아 들어선다.

정 재 수고하십니다.
경 비 아 예. 어디 찾아 오셨어요?
정 재 예. 4층이요. (가려고)
경 비 거기 잠겼는데? 휴일이라 아무도 출근 안 했어요.
정 재 ......?

S# 53 동. 미연 사무실 밖

정재,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유리를 통해 텅 빈 미연의 사무실을 들여다보
고 있다.

미 연 E 음 회사. 지금 회의중이니까 이따 내가 할게?
정 재 그래. 수고해. (끊고)

정재, 멍한 얼굴로 텅 빈 미연의 사무실만 뚫어지게 본다.

S# 54 미연 아파트. 거실

정재, 여전히 낚시 TV를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있다.
하지만 정재 그냥 멍하게 앉아 있을 뿐이다.
미연, 현관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선다.

정 재 왔어?
미 연 음.
정 재 저녁은?
미 연 먹었어.
정 재 누구랑?
미 연 누구긴. 직원들하고 먹지.
정 재 그래? 그럼 과일이나 좀 줄까?
미 연 아냐. 생각 없어. 샤워부터 할래. 땀을 좀 흘렸더니... (침실로 들어간다)
정 재 ......

정재, 다시 소파에 앉아 조용히 TV를 본다.

S# 55 국도 / 차 안 (낮)

아름다운 가을 들녘을 달리고 있다.
정재, 운전하고 태수, 옆자리에.
정재의 얼굴은 왠지 넋이 나가 보이고, 차는 불안하게 고속으로 달리고 있
다.

정 재 박형. 오늘은 낚시하지 말고, 차타고 바람이나 쐽시다. 바람.
태 수 (본다)
정 재 난 말요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유부녀들하고 바람피울 때. 이 여자 남
편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 자기 마누라가 내 옆에 발가벗고 누워 있는 꼴
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얼마나 속이 뒤집힐까?
태 수 (정재를 본다)
정 재 근데... 근데 말이요. 내가 지금 아무래도 비슷한 일을 겪는 거 같소.
태 수 그게 무슨... 정말입니까?
정 재 예. 정말입니다. 정말. (갑자기 울컥해서 이를 악문다. 도로 가에 차를 확
세운다)
태 수 .......
정 재 (숨을 쌔근거린다)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빠졌다고 그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휴일에도 일한다고 나가는데 막상 전화하면 아무도 안 받
고... 그래서 찾아가 봤더니...
태 수 ......
정 재 박형.
태 수 (본다)
정 재 어떻게 해야 되죠?
태 수 .......
정 재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정말로...
태 수 .......

S# 56 미연 아파트. 거실 (밤)

정재, 술에 취해 들어온다.
미연, 부축한다.
미연, 외출할 차림이다.

미 연 아유 여보. 웬 술을... 아우 여보, 정신 차려.
정 재 음... 여보... 음... 야근한다더니...
미 연 가야 돼. 잠깐 다니러 왔어. 아유 술 냄새.

S# 57 동. 침실

미연, 정재를 겨우 부축해서 들어온다.
정재, 침대 위에 엎어진다.
미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재를 내려다본다.

S# 58 동. 거실

미연, 미소지으며 통화하고 있다.

미 연 지금? 알았어.

S# 59 동. 침실

침대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정재.

미 연 E 아니. 사실은 갈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음. 바로 갈게. 그래.

잠시 후 미연,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잠든 정재를 다시 확인한다.
미연, 조용히 나가며 문 닫고.
곧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정재, 눈을 뜬다.

S# 60 동. 9층 현관 (새벽)

미연, 902호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나온다.
미연, 옷매무새를 만지더니 901호 현관을 열쇠로 따고 들어간다.
10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구석에 정재, 웅크리고 있다.

S# 61 미연 아파트. 거실

정재, 굳은 얼굴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다.

E 정재의 핸드폰이 울린다

태 수 E 접니다. 김형.
정 재 ......
태 수 E 부인은 들어오셨나요?
정 재 예. 샤워중입니다. 회사에서 땀을 많이 흘렸다고.

S# 62 동. 욕실

미연, 조용히 눈을 감고 알몸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미연의 가늘고 하얀 팔 밑으로 붉은 핏줄기가 조금
씩 퍼지고 있다.

S# 63 아파트 단지. 통행로.

태수, 산책하듯 걸으며 핸드폰하고 있다.

태 수 아 그래요. 참 어제 제가 가르쳐 준 방법은 써 봤습니까?
정 재 E 예. 진짜로 전화 받더니 나가더군요.
태 수 음. 그럼 미행도 하셨나요?
정 재 E 예.
태 수 그래요? 그럼 제가 굉장히 보구 싶겠군요?
정 재 E 예. 그래서 좀 전에 찾아갔는데 안 계셔서...
태 수 아 그러셨군요? 왠지 부인을 먼저 만나실 것 같아서 그 틈에 전 나왔습니
다. 차라리 어젯밤에 찾아오시지. 그래도 끝까지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으셨나보군요?
정 재 E .......
태 수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혹시 피가 혈관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하고, 세
포 하나하나가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 재 E .......
태 수 (이가 갈린다) 부인께서 알몸으로 제 품에 안겨 있는 장면이 자꾸 아른거
려서 차라리 머리를 박살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더러운 광경을 목격한 두
눈을 맨손으로 파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S# 64 미연 아파트. 침실

전화 받고 있는 정재.
정재, 분노로 몸을 떨고 있다.

S# 65 아파트 단지. 통행로

태 수 한 번은 꼭 이 고통을 되돌려 주고 싶으시죠? 아주 똑같이. 하나도 틀리지
않게. 배신의 고통과 그 아내를 죽이는 처참함을 모조리!

S# 66 미연 아파트. 침실

정 재 그래요... 꼭... 그러고 싶소. 꼭.

S# 67 아파트 단지. 통행로.

태 수 (냉소적으로 피식 웃는다) 김형. (목이 멘다. 침을 삼킨다) 그래서 내가
온 거요.

S# 68 미연 아파트. 침실

정재,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정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태 수 E 미국에서...

S# 69 아파트 단지. 통행로.

태 수 E 행운을 빕니다. 김형. (끊는다)

태수, 걸음을 멈춘다.
태수,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숨을 쌔근거린다.
태수,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하고 걸어 나간다.
경찰 순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태수를 지나쳐 간다.

앤트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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