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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賀政男

엔카시조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선린상고 출신

작성자柳 덕인|작성시간11.03.24|조회수274 목록 댓글 1

엔카시조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선린상고 출신

일본의 남여 엔카 가수들이 음악프로 TV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여배우가 애잔한 곡조의 일본 엔카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 노래는 일본 엔카의 간판스타로 불리는 한국계 여가수 미야코 하루미가 발표해 크게 인기를 모은 기타노 야도카라(北の宿から)라는 곡이었다. 그 후 이 장면은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때는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전면 개방조치가 내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 논쟁은 엔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었다.

  엔카는 한마디로 일본인의 고유한 정서를 담아 부르는 신식 가요형식을 일컫는다. 일본에 서양악이 처음 소개된 것은 카톨릭의 보급과 함께 찬송가와 서양민요에 가사를 만든 노래가 불려지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이미 554년경에 백제의 음악이 일본에 전해져 생활 속에 영향을 미쳤었다. 이 백제의 음악을 일본사람들은 "구다라가꾸(久太良樂)"라고 불렀다. 엔카(演歌)"가 생겨나던 1920년경, 일본은 영, 미. 프랑스 등 세계열강의 음악과 맞닿아 있었으나 지리적인 접근성 등의 이유로 이미 한반도 음악의 영향도 받고 있었다.

   초기의 엔카의 형식은 서양 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한 곡이거나, 일본의 민요인 부시(節) 형식의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레코드가 아직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10년경 노래 가사만 인쇄해서 거리로 돌아다니며 팔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엔카시(艶歌師)라고 불렀다. 오늘날 엔카(演歌)라는 용어가 원래는 염(艶)자를 사용하다가 연(演)자로 바뀐 것이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체제아래 언론탄압과 시국을 비판하는 대중연설이 금지되자 해학적이고 사회풍자적이고 민속적인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악사를 자유 엔카시(自由演歌師)라고 불렀다.


일본 현대 엔카의 시조로 불리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동상.

  이들은 재래적인 속요에다 노랫말만 바꿔 인쇄한 가사집을 1전씩에 팔았다. 이때 그들 특유의 악기 샤미셍의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러 시선을 끌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개창운동 같은 것이었는데 의식가요, 저항가요, 같은 것이 잘 팔렸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대학가에서는 엔카조의 노래가 자생적으로 불리는 일종의 캠퍼스송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청일전쟁이 발발면서 일본의 창가는 군가조로 바뀌었으며 연이어 노일전쟁이 터졌고 엔카풍의 군가가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 후 일본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그때까지 반체제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엔카를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노래의 가사내용도 패배의식, 이별, 눈물, 미련, 원망, 등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현대 엔카의 시조로 불리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라는 작곡가가 있었다. 도쿄 요요기에 있는 그의 기념 음악박물관에는 일본 엔카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그 박물관의 주인공인 작곡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그의 향기는 그곳에 살아있다. 정기적으로 엔카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해설과 함께 고가 마사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또 그의 고향인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시에는 생가를 복원하여 기념관을 개설하고 있기도 하다.


고가 마사오의 기념관과 생가를 소개하는 안내장.

  이처럼 일본 최고의 대중가요 작곡가로써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1930년대 한국의 인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자랐다. 이때 우리의 경기창, 남도창, 그리고 서도창이나 민간 속요들을 상당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한국의 민요적인 요소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가수들의 창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새로운 형식의 노래를 선보임으로서 대중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 엔카의 기본형을 확립했었다. 늘 자신의 음악이 한국에서 온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는 작곡가 전수린, 손목인, 박시춘과 상당한 교우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엔카 가수들 중에는 일본 가요계를 평정한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비롯한 많은 한국계 출신들이 엔카의 부흥에 기여했었다. 현재 일본의 엔카는 가요시장에 일정한 점유율을 유지하며 연말 가요홍백전 선발에도 해마다 엔카 가수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한류 붐을 타고 우리의 젊은 가수들도 일본무대를 누비며 일본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순국 편집위원 tokyo@msnet.co.kr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고가 마사오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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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 후 | 작성시간 16.04.27 일본 국가 "君代요" 도 이 분의 작곡 아닌가요? 유명작곡가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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