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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글 게시판

아들네 집이 내 집보다 불편해여.

작성자말소리|작성시간24.03.08|조회수14 목록 댓글 0

아들네 집이 내 집보다 불편해여.


아이고 우짼 일이라.
뭐 하러 온기라.

아지맨 언제 오셨니껴?

나는 요 며칠 전 아들네 집에 왔다가 이제 집에 가는 길이구먼.

저는 시어머님 배웅하러 여까지
나왔심더.

며느리인 듯싶은 여인은 어머님 걱정하지 마이소.

아까 용돈 드린 거 꼬장중우에 깊이 넣어가시소.
잘 못 하면 쓰리 당합니더.

이 이야긴 내 어릴 적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사랑하고 존경했던 어르신께서 천국길에 들었다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고향행 버스에 올랐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지매요 아들네 집에 와서 잘 얻어
자싯니껴?
먹긴 잘 얻어먹었지.

그런데 잠자리가 불편해여.
침대에 자라케도 방바닥에 요대기 깔고 잔 내 집만 못해여.

그카지 마소 며느리 들으면
서운해합니다.

사신인걸 우예여.

아지매도 잘 가시소.

그래 자네도 건강하게.

이 정담이 오가는 중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차창 너머 봄을 알리려는 지 겨울 건너온 봄바람이 싱긋싱긋 웃고
다가옵니다.

멋쟁이 아저씨 어딜 가시려고
그렇게 야한 머플러를 하시고
봄 새싹 같은 넥타이를 매셨소?

봄바람 연인이여!
내 가슴 저린 말 좀 들어주오!

내 어릴 적 고추 달고 나온 모습부터
칠순이 넘은 지금 모습까지 다 보고
계셨던 분이 하늘나라 가신다고
전갈이 와서 울며불며 가는 길이라오.

이제 저승가시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는지요?

이 분이 말이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준 분이었다오.

우리 부모님께 야단맞아 쫓겨나서
담장 밑에 울고 있을 때 당신 집으로
데려가 꼭 안고 재워준 분이랍니다.

50년 전 내가 군대 갈 때 막걸리 받아놓고 북 치고 장구 치며 잘 다녀오라고 축하해 준 분이라오.

내가 중매가 한창 들어올 무렵
너 우리 딸과 결혼하거라.
너를 내 사위로 삼고 싶다.

나이가 열두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해이요.

이런 정담을 나눈 분이라오.

살아생전에 고향 가서 용돈 드리면
실긍위의 곶감을 싸서 내게 건넨 분이라오.

인생살이 하면서 이렇게 정주고 받은 분도 드문데 어찌 하늘가신다는데 아니 가겠소.

그런데 멋쟁이 아저씨 문상 가는 양반이 복장이 좀 야한 거 아니요?

아니요 나도 생각이 있다오.

행여 봄바람 당신 만나면 분위기
맞추고, 하늘가시는 분 92세 시니까 예쁘게 보여서 웃고 가시라고 연출하는 것이라오.

평소에 전화드리면 우리 서울 멋쟁이 잘 있나.
우리 서울 한량 사랑한대이.

내 걱정 말거라.
내는 지금 어디가 아픈 질 모르겠다.
구십이 넘으니 사방팔방이 아픈 기라.

서울 한량 보고 죽는 기 소원이라고
하셨던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왜 이렇게 가슴저리고 아픈지 모르겠소.

정신을 차려보니 봄바람님이 하늘하늘 들판을 날아다니며
봄기운을 불러일으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고인의 추모
화한이 가득합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객지생활하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 해 죄송합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상주들도 사정을 잘 아는 터이라
눈물 흘리는 이유를 안답니다.

식사자리로 이동해 과거 있었던
이야길 꺼내 숙연해진 분위기에
한 잔 마신 소주잔이 한 잔 가지곤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운해서 한 잔
아쉬움에 두 잔
허전함에 세 잔
고향까마귀들의 권주에
한 병 반.

고인의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길에 취해서 가슴에 피멍이 들고
마음에 허탈한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서울행 버스를 탔는데 고향까마귀 아지매가 전화로 야단을 합니다.

아재요 오면 온다 가면 간다 하고 가야지 소리 없이 왔다가 벼락같이
가시면 아재 보러 나가는 사람은 어떡하란 말이요.

아이고 참 모처럼 왔는데 나도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가는 마음이 아리고 쓰리다오.

웃기시네 모처럼 고향 왔다가 하룻밤도 못 자고 간단 말이요.

그 돈 다 벌어 어따 쓸라고 그라이요.

하늘 갈 때 돈 가져가는 것 봤니껴?

원망스러운 말 정겨운 투정이 섬찟섬찟 달려드는 걸 느끼면서
아쉬움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칠순을 걷고 있는 할아버지의
두 볼에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사랑했던 분이시여!
존경했던 분이시여!

먼 후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내 사위하자고 청하셨던 그 약속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날까지 천년유택에서 영면하시옵소서.

가슴이 지금도 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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