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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정보방]

[[기 사]] 승준이 오빠와의 인터뷰내용이래요_。

작성자ε♡зĿØvЁ승준|작성시간03.01.26|조회수1,348 목록 댓글 1
미국LA 2박 3일 현지 인터뷰

*유승준*

"언제 한번 저에게 말할 기회를 주셨나요?"
가족을 털어놓는 파문의 원인과 요즘 심경


왜 "군대에 가겠다"고 공언했나

유승준의 아버지 유정대씨를 어렵게 만났다. 지난 2월 9일이었다.유승준의 미국시민권 취득이후 온갖 비난 속에 법무부의 입국 거부하는 충격파를 당한 탓인지 그는 상당히 지치고 위축된 모습이었다.유승준의 가족은 입국 거부 소동이 일어난 2월 2일 이후 칩거에 들어간 상태였다.그날밤 유승준은 도쿄를 경유해 LA로 돌아와 이장희씨가 경영하는 라디오 코리아와 짤막한 전화 인터뷰 이후 일절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정말 어렵사리 만난 유정대씨는 "승준이가 시민권 선서식 전날까지도 군대에 가겠다고 고집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필자가 왜 그런말을 진작에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언제 말할 기뢰가 있었으냐"며 힘없이 웃었다. 유승준과 인터뷰를 계획하게 된 것은 한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유승준에 대한 비난은 그의 공개적인 약속때문이었다.그런일이 없었다면 시민권 취득을 놓고 이렇게 심한 비난이 쏟아졌을리 없다. 머잖아 드러날 일을 왜 거짓말 했을까.뭔가 속사정이 있는게 아닐까. 시민권 취득 사실이 알려진 1월말 유승준은 LA에서 MBC-TV PD수첩". 스포츠 서울 문상열 LA특파원과 각각 인터뷰를 했지만 왜 약속을 어겼는지 그 배경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약속을 못지켜서 죄송하다 , 반성한다"는 얘기뿐이었다. 또 한가지 엄청난 파문에 놀란 유승준을 만나 얘기를 풀다보면 "시민권을 반납하고 군대에 가겠다"는 충격선언을 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기대도 있었다 사실 두차례 인터뷰 때는 사태를 다소 안이하게 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입국봉쇄라는 전대미문의 조치에 거의 살인적?인 국내 여론을 확인한 이상 마음이 바뀔수도 있을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했다.


시간이 없다. 유승준을 찾아라!.

어쨋든 이모두가 유승준을 만나야 해결되는데 문제는 이들 가족을 어떻게 만나며 어떻게 설득하느냐였다 LA에 돌아온 이후
유승준을 봤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필자가 LA에 들른 것은 지난 7일. 사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유승준을 찾아야만 했다.
유승준의 집 위치는 물론이고 아무런 연락처도 없는 상태였다.한가지 믿는 구석이 있다면스포츠 서울의 문상열 특파원이었다.
인터뷰를 했으니 연락처를 알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락처가 없다는 문 특파원의 대답에 맥이 풀렸다.수소문한 끝에
라디오 코리아의 한 직원을 통해 아버지 유정대씨의 휴대폰 전화 번호를 알아낼수 있었다.
1차과제 해결 ,전화를 걸었따 5번을 걸어도 받을 기색이 없었다.
매스컴과 모든 연락을 끊은것 같았다.메세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올리 만무했다.난감했다.결과적으로 인터뷰에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유정대씨가 실수로 딱 한번 전화를 받은 덕분이었다. 그는 정중한 목소리였지만 완강히 인터뷰를 사양했다 .
"그저 자숙하고 반성할뿐 다른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 인터뷰를 않해도 좋으니한번만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가족이 솔직히 밝히는 유승준에 대한 진실?

그렇게 설득하는데 전화가 툭 끊겼다.다시 걸었지만 또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결국 몸으로 부딪히기로 했다.일단 전화통화를 했으니 직접 보면 설득할수 있을것 같았다.
교민m씨
와 l씨가 동행했다. 유승준의 집은 LA동쪽 외곽 플러톤 지역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밤 9시경 .티파니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언덕길 중간쯤에 위치한
유승준의집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문앞에 "경은교회"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유승준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 같았다.
벨을 너댓차례 누르자 한눈에도 유승준과 닮아 보이는 청년이 나왔다.형 유승환씨였다.부모님은 교회에 가셨다고 한다.
집에서 기다리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아버지 허락이 없으면 안된다"는 대답이다.별수없이 인근 패스트 푸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10시경 다시갔다.여전히 같은 상황 . 아무래도 무리였다.명함을 주고 아버지 오시면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고 발길을 돌렸다.
남은 시간은 하루밖에 없는데 아무해도 인터뷰를 피하는 것 같았다.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지금 무슨말을 해도 격앙된 고국 여론을 자극할것이 뻔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자숙하겠다는 아버지 입장을 이해하며 술잔을 기울였다.그런데 밤 12시가 지나 전화벨이 울렸다. 유정대씨였다.
밤늦게 돌아온 그는 필자가 두번이나 다녀갔다는 큰 아들의 얘기에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한것이었다.
이때다 싶은 필자는 한번 만나기나 하자며 열심히 설득했다.결국 유씨는 내일 전화 하겠다며 반 승락을 했다.
유승준의 집을 찾아 간것은 이튿날 11시경이었다. 전날 과는 달리 유정대씨는 문을 활짝 열어 주며 환영했다.반백에 작지만 다부진 체구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부인 노경자씨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집안 분위기는 양탄자부터 벽지까지 흰색으로 처리해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보통의 미국 주택처럼 1층은 거실과 부엌이 있고 2층에는 침실3개가 있었다.응접세트와 피아노가 오른쪽에 있었고
맞은편에 6인용 식탁이 놓여져 있었다.오른편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시선을 끈다.
"이곳에 언제 이사 오셨나요?"
"4년쯤 됐습니다"
그런데 유승준씨는 보이지 않았다.사흘전부터 아는 사람과 모처에서 기도하며 머리를 식
히고 있다는 말이었다.
삼고초려 끝에 얼굴을 못보나 했는데 유정대씨는 "내일 교회에 가야하니 오늘 밤 집에 올겁니다."한다.
결국 아버지와 1차 인터뷰를 하고 유승준과의 인터뷰는 뒤로 미뤘다.


유승준은 시민권 취득 선서를 거부 했었다.

유정대씨의 고향은 부산 중동 붐이 불던 1970년 대 현대건설에 재직하면서사우디에서 수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유씨의 가족관은 이때 혼자 떨어져 살던 경험 때문이었다.
"두 아이의고사리 손을 잡고 이민온 게 1987년이었지요."유정대씨는"그저 반성하고 자숙한다는 말만 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렵게잡은 기회를 그냥 놓칠수가 없었다.이왕 온 이상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일을 비롯해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지난 몇년간 우리 가족들 마음고생이 보통 심한게 아니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가장 궁금한 것은 유승준이 TV등에서 군대를 가겠다고 공언한 일들이었다."승준이가 군대를 가겠다고 한것은 맹세코 사실입니다.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그러더니 귀가 번쩍 뜨일만한 얘기를 한다.
"사실은 작년11월 승준이 앞으로 시민권 취득을 위한 선서식 통지서가 나왓어요.한국에
전화를 해서 들어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승준이가 못온다는 거예요.군대에 가겠다고국민들과 약속을 한것을 지켜야 한다면서요.아무리 사정을 해도 듣지를 않더군요.
그럼 이게 궁금할 겁니다.시민권을 신청했냐구요. 시민권을 신청한 건 2년 좀더 됐습니다.어차피 우리는 여기 살러 온 사람들입니다.
지금처럼 군대 얘기가 불거질 때도 아니고 온 가족이 예정대로 시민권 신청을 한 거죠..
그런데 우리도 언제 나올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권 선서식 통지가 온것입니다."
어머니 노경자씨가 거든다."승준이가 끝내 오지 않아서 다 틀렸구나 포기 했어요.이미 공
익근무요원 영장이 나와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2차 통지가 그후 나온거예요. 1월 18일 선서식에 참여하라구요."


군대 갔다와서도 영주권 얻을수 있다면 보냈다!

유씨 부부가 아들에게 그토록 시민권 취득을 권고한 것은 역시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승준이가 군대를 가면 영주권이 자동 소멸됩니다.
승준이처럼 시민권 취득을 앞둔 사람이 선서식을 거부하면 나중에 다시 신청하고 싶어도 미국 정부가 시민권은 물론이고
영주권 조차 내주질 않습니다. 그럼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태평양을 사이에 두
고 떨어져 사는 거예요.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고 생이별 하는 겁니다.노경자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공익을 갔다온 후라도 승준이가 영주권을 얻을수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군대 가라고 했을꺼예요." 시민권을 얻을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생겼지만 유승준은 계속 군대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정적인 반전은 1월 14일 유승준의 일본 공연건으로 이루어졌다. 공연후 뉴욕으로 건너가 팬 사인회를 가진 유승준은 LA에
며칠 휴식을 취했는데 이떄 집중적인 설득을 받은것."승준이는 일본 공연 이후 파김치가 됐어요.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있었죠.
모르는 사람들은 승준이가 오락 프로에서 펄펄 나는데 허리가 아프다는 등 엄살을 피우냐고 하지만요 . 몸이 정말 엉망입니다.
마취주사 맞고 나간게 한두번이 아니예요.요즘엔 허리디스크 퇴행성 증상까지 있구요.왼손등은 두번 부러져 철심을 박아서
일본 공연때 장갑을 끼고 했어요.일본에서도 하루 두번이나 온 열정을 다해서 무대에 오른거예요..
LA올때 보니까 그렇게 강하던 애가 허깨비처럼 푹 주저 앉더라구요."심신이 극도로 지친데다가 부모의 거듭된 설득에 유승준은 흔들린 모양이다.
미국생활 이후 줄곧 다니던 경은교회 목사님과 면담을 가졌다 시민권 선서식 바로 전날이었다.
"목사님이 그러셨대요.
승준이 네가 언제 어디에 있건 조국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을꺼라구요.우리로선 2차 통지가 온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지요.
승준이가 그날밤 아빠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어요. 솔직히 고맙더라구요."여론도 안좋은데 부득이 2월2일 귀국을 강행한 것이 궁금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보증인 3명을 세우고 2월 4일까지 귀국한다고 병무청과 약속을 했어요 시민권은 취득했지만
귀국 약속을 지켜야겠기에 들어간겁니다.인터뷰를 통해 마음을 번복한 사정을 설명하고 용서를 빈다음 바로 돌아올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취업 비자를 받아서 은근히 눌러 않으려고 한다고 비난하더군요."
유정대씨는 솔직히 파문이 이렇게 커질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실 저는 승준이가 가수가 되겠다고 할때 무척 반대했어요.그런데 가출까지 하는데 어
쩔수가 없더라구요.
승준이가 하고 싶은 가수 하면서 인기와 돈도 충분히 얻었구요.솔직히 저는 우리 가족이 모여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국민들이 실망하고 파문이 커지는 것을 보니 내가 너무 가족의 입장만 생각했구나 회희가 들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노경자씨는 최근에 팬들이 보내준 위로의 선물들을 보여 주었다.
홈바는 유승준의 포스터와 팬들이 보내준 선물등으로 치장해 작은 팬클럽 창고와도 같았다.
구석엔 집에서 쉴때 가끔 즐긴다는 스노보드가 놓여 있었다.
"격려해준 팬들이 없었다면 승준이는 아마 쓰러졌을꺼예요."


사고초려? 끝에 만난 유승준

결국 유승준을 만난것은 그날밤 10시가 넘어서였다.마음고생을 말해주듯 표정은 어두웠다.
한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고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TV에서 봤던
활기차고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간데 없었다.흡사 석고대죄하는 죄인 같다는 느낌이었다.그간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에 "산에 가서 기도하고 반성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시종 국민들께 한 약속을 못지켜서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이렇게 파문이 근데 지금이라도 시민권을 반납하고
군대에 갈 의사가 없는지 묻자 눈빛은 갈등의 기색이 역력했다.아마 필자와 단둘이 있었다면 "그러고 싶다."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유승준이 잠시 망설이자 유정대씨는 "죄송합니다. 지금 그런 말씀을 드려봐야 국민들께 도리가 아닌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좀 잔인한 질문을 했다."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앞으로 다시는 가수활동을 못할지도 모른다. 무슨 계획이 있는지.."
감정이 북받치는듯 한동안 머뭇대던 유승준은 "제가 잘못했는데 누굴 원망하겠습니까.....무조
건 반성하고 자숙하고 있겠습니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다만 제가 군대에 가겠다고 말한 것은 진실이었고 지금 제 마음도 진실입니다.정말 죄송합니다."하고 말했다.
다양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만 들어가라 했지만 우리가 집을 나서 차를 타고 떠날때까지 유승준은 몇번씩 인사를 하며 배웅했다.


에필로그.

아름다운 청년 이라느 찬사를 받다가 하루 아침에 비겁한 젊은이의 전형으로 추락한 유승준.
어렵게 성공한 인터뷰였지만 귀국 비행기를 다는 필자의 마음은 서글픈 동화를 읽은 것처럼 애잔했다.
군대 간다는 약속을 지키기만 했던들 여전히 그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남았을것이다.
사실 기사를 쓰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여전히 유승준에 대한 국민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유승준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비록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다 하더라도 약속을 저버린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최소한 변명을 할 기회도 주지 않은 해 대역 죄인마냥 비난일색으로 흐르는 것은 온당치않다는 생각이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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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사:*: | 작성시간 03.12.19 에필로그 딱 내가 하고싶은말-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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