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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절의 고장, 경남 진주

작성자서커스낭자|작성시간09.05.15|조회수453 목록 댓글 0

충절의 고장, 경남 진주


진주(晉州)는 진주(珍珠)와 발음이 같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도시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렸을 때와는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도시이지요.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시죠?

 

 

 

<경남 진주 위치>


진주는 임진왜란 때 두 번이나 큰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에요.

 1차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 의 하나로 평가를 받고, 2차 전투는 비록 패했지만

조선인의 당당함을 보여준 전투랍니다.

1차 전투가 3대첩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왜군 약 2만 명의 공격에

진주목사 김시민이 지휘한 3,800명의 관군과

 곽재우가 지휘하는 의병의 활약으로 격퇴를 시켰기 때문이어요.

 

 비록 김시민 장군은 승리 직전 전사하셨지만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왜군은

육로를 통해서도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으로 진출을 못하게 되죠.

바다를 통한 길은 이순신 장군이 막았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참고로 김시민 장군은 전사 직전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답니다.

 

 

 

<김시민 장군 영정>

 

제1차 싸움에서 참패로 위신이 손상된 왜군은 1년 후, 3만 7000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진주성에는 관군과 의병을 합쳐 3,400명의 병력과 6∼7만 명의 일반민이 있을 뿐이었죠.

 8일 동안의 격렬한 전투 끝에 진주성은 함락됐고,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성안에 남은 6만 명을 창고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학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축도 모두 도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죠.

 

 

 

<진주성 전경>

 

이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 고려시대 촉석성으로 불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답니다.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던 고려 말에 새로이 석축했고,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

성의 높이는 세 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남아 있다고 해요.

 

 

<진주성>

 

 

 

<호국사>

 

 

 

<진주성 야외분수>

 

촉성루는 남강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있고,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으로 알려져 있죠.

고려 중기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로서 장원루라고도 불려요.

전쟁 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 시에는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6.25때 불탄 것을 안타까워한 시민들이 힘을 모아 1960년에 복원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요,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고 하니 확인을 해봐야겠어요. ^_^

 

 

<촉석루>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는 기생이 있었다는 전설은 어렴풋이라도 기억들 하고 계시죠?

의기사는 2차 진주성 전투 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에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때에 경상우병사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증건했고,

정면 3칸, 측면2칸, 맛배 지붕의 기와집 구조인 지금의 건물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라고 해요.

 논개가 왜장을 강가 바위까지 유인해서 껴안고 물에 뛰어든 바위는 바로 의암으로

글씨가 새겨져있는 것을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지수문이라는 정문을 갖추고 있는 논개사당에는 다산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매천 황현의 시판과

 기생 산홍의 시판이 걸려 있어 한층 뜻이 깊다고 할 수 있어요.

 

 

 

<논개영정>

 

 

 

<의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요즘, 오

히려 자신을 위해 나라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

혹은 나라는 생각지 않고 자신과 자신 가족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이 많은 요즘.

장수로서 목숨을 바쳐 진주성을 구해낸 김시민 장군과 당시 무시를 당하던 여자로서

무엇이 옳고 그름은 알고 행동한 논개의 충절을 생각해 보게 되는 진주랍니다.

 

 

 

[경남 진주의 가볼만한 곳]


진주시 음악분수대


촉석루

 

진주성


호국사

 

의기사와 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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