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구약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 바울이 2차 교회 개척 여행 떠남 2017-5-3, 수
작성자축제작성시간17.05.03조회수671 목록 댓글 0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구약의 율법은 이방인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
바울이 2차 교회 개척 여행 떠남
2017-5-3, 수
맥락과 의미
15장은 1차 교회 개척여행(13-14장: 46-48년)과 2차 교회개척 여행(16-18장: 49-52년) 사이에 있습니다. 앞 뒤를 연결합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인 형제들이 안디옥에 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가르치던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이 질문을 했습니다. 교회의 공의회를 통해 성령께서 공동체적으로 선명한 인도를 내려 주십니다.
구약 율법 중에는 의식법(제사, 음식정결례, 할례 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특히 바리새파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구약 의식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11-12장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 중에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일상이나 제사에서 먹지 못하도록 금한 음식을 정결하다고 계시하셨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고넬료의 집의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친 내용입니다.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을 받고 형제들이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500년 동안 그 율법을 지켜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잘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1. 안디옥 교회에서의 변론 (1-3절)
1절,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였습니다. 유대로부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내려와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 2절, 그들과 바울/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분열)과 변론(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정적인 대립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열의 골은 깊었습니다. 신앙과 구원에 대해 의견의 차이가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의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작정’은 교회의 결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를 통해 그 분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3절, 5명 정도가 교회의 전송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베니게(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갑니다. 그 곳에 있던 교회들에게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온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들(교회)을 기쁘게 했습니다. 우리도 힘껏 수고하여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합시다. 이 일을 통해 주님의 여러 교회들을 기쁘게 합시다.
2.구약의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한 예루살렘 공회 (4-29절)
1) 안디옥에서 온 사람들의 의견 제출 (4-5절)
4절, 안디옥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런데, 5절, 바리새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장했습니다. “이방인에게 할례를 지키게 하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공의회(요즘으로 치면 교회 총회)로 모였습니다. 교리의 중요한 사안은 모든 교인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 결정하기 위해 말씀을 맡은 직분자들이 결정합니다. 6절, ‘이 일(로고스)을 의논하러(이데이, 본다)’ 모였습니다. 교회의 결정은 사람들의 의견을 합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보고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7절, ‘변론’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입니다. 교단이나 교회의 교리적인 문제는 신학자들, 목사들, 교인들이 허심탄하게 토론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토론 끝에 교회는 이방인에게 구약의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결정을 합니다.
2) 베드로의 증언: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그 확증 (7-11절)
먼저, 베드로가 증거합니다.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시려고 나를 택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같이 성령을 주셨습니다(8절, 고넬료 집의 일). 9절, 하나님께서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디아크리노, 차별하다) 않으십니다. 이방인이 할례를 받기 전에도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동일하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다 멜수 없는 멍에(율법 준수)를 이방인에게 지워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10절). 우리들도 이방인도 주 예수의 은혜로(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11절).“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차별없이 받으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말하고, 또 그것에 대한 증거를 말해 줍니다.
3)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 간증 (12절)
바나바와 바울이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모인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들었습니다. 잠잠했다(치가오)는 뜻입니다. 고전14장에도 같은 것을 명령합니다. 교회에서 한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예언의 말씀을 하려 할 때, 먼저 말하는 사람은 잠잠하고 (시가오) 있어야 합니다(고전 14:30). 잠잠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4) 야고보의 요약과 동의안 (13-21절)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격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 가지 백성을 택하신 것을 목격한 베드로의 증언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일치함을 말합니다.
16-17절, 이방인들의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일치하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그 중 아모스 9:11,12을 인용합니다. 그 예언의 뜻은 이렇습니다. ‘말세에 나 여호와가 돌아올 것이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 즉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이다.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들과 함께 이방인들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는 결의할 사항을 제안합니다. 19절, 이방인들에게 의식법을 지키라는 율법의 짐을 지우지 말자고 합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권고하자고 합니다.
공의회는 야고보의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이방인의 회심, 바울이 이방인 교회에 대한 간증, 구약의 예언의 말씀의 교훈 등이 근거가 되었습니다.
5)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사도들의 편지 (22-29절)
사도들이 내린 결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 중 십계명은 지켜야 함을 전제로 말합니다. 그러나, 음식 규정, 유월절 등 의식적인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두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첫째, “우상의 더러운 것을 피하라. 또 우상 숭배와 관련된 음행을 하지 말라.” 우상 신전에 가서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시장에서 사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신전에서 가서 먹지는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한 절차이고, 또 음행과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목매어 죽인 것이나 피를 멀리하라.” 음식에 관한 이런 규정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이 관습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음식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도 율법의 규정에서 점차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음식에 관한 이 결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역사가 흘러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공로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다른 성도들과 성도를 배려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에게 맞추어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불필요한 율법의 규칙에서 우리를 해방한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사바 유다과 실라의 편으로 이 결정사항을 통지했습니다. 유다는 가룟 유다 대신에 선택될 사도의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떨어진 분입니다(행 1:23). 그 편지는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이방인 형제에게 문안한다.’(23절) 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이 이방인 교회와 성도들에게 군림하지 않고 형제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 겸손합니다. “성령과 우리는”(28절)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뜻을 전달하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그 겸손 속에 성령님의 권위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과정은 지금까지도 교회의 모든 회의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의견(크리노, 19절)을 제출합니다. 교회가 ‘일치’ 즉 만장 일치로 가결(도케오, 22,26,28절)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 하나님이 이루신 일, 기존의 계시의 말씀(구약), 그리고 사람들의 느낌에 대한 실제적 지혜(목회적 고려) 등이 근거가 되었습니다. 의견의 차이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동의안을 내고 가결하는 그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서 교회가 풍요로워 집니다.
3. 안디옥 교회가 사도의 편지와 유다와 실라의 위로로 기뻐하고 견고해 짐 (30-35절)
이러한 결정을 편지로 써서 안디옥에 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일로 위로 받고 기뻐했습니다(31절). 유다와 실라는 예룩살렘 교회를 대표하여 여러 말로 권면하며 성도들을 굳게 했습니다. 교회의 결정은 권면이기도 하지만, 위로가 됩니다. 우리 교회의 공식 결정들이나 성도의 개인적 대화도 이렇게 되기 바랍니다. 서로가 살아가야 할 길을 권면하고 새로운 힘을 공급하는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4.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남 (36-41절)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 2차 교회 개척여행을 함께 계획합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 요한를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마가가1차 교회개척 여행에서 함께 갔다가 중간에 떠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13:5,13). 바울과 바나바는 “다투었습니다”(파라-옥쉬모스). 나중에 바울은 고전 13:5 에서“사랑은 성내지 (파라-옥쉬노) 아니하며”라 말합니다. 그 성냄/다툼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키프로스 섬으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육로로 전에 개척했던 교회를 방문합니다. 수리아는 안디옥 교회의 북쪽, 길리기아는 터기 동부입니다. 바나바는 자기 고향인 구브로(사이프로스) 섬으로 가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들도 연약했습니다.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움으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구원과 신앙의 기본적인 것에서는 교회는 만장 일치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와 교회 개척을 할 지 하는 것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서로를 인정했습니다. 각 사람이 양심대로 분리하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나바(고전 9:6) 마가와(골 4:10) 사랑을 회복하고 동역자로서 존중하며 함께 일했습니다.
사람(목사)마다 말씀에 대한 깨달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진지한 의논을 통해 깨달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성령의 사람들은 순종하고 하나님께 나옵니다.
믿고 복종할 일
교회는 의견의 차이와 논쟁 가운데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구원에 관한 기본 문제는 교회가 하나의 일치된 결정을 했습니다. 오직 믿음(은혜)으로 구원받는 복음을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형제들의 연약함을 위해서 이방인 교회는 “목매어 죽인 것, 피 채 먹는 것” 등을 절제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복음과 이방인 유대인들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이 결정을 통해, 교회는 하나된 교회로서 성장할 가르침을 기초를 놓았습니다.
교회는 또한 구체적 작은 문제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교회 설립활동을 했습니다. 이후 16장부터 이방인 지역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로 모든 결정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합시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겸손히 결정하는 것은 서로에게 큰 기쁨과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