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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도들이 핍박 가운데 전도하며 기뻐함 2023-1-6,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1.05|조회수138 목록 댓글 0

사도행전5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도들이 핍박 가운데 전도하며 기뻐함

(찬송212장)

2023-1-6,

맥락과 의미

5장은 사탄이 어떻게 교회를 공격했고,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로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을 통해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성령님은 사도의 손을 통해 심판하여 교회를 성결하게 했습니다(내부적 공격).

둘째, 사도를 잡아 옥에 가두었지만, 그들은 기적으로 풀려나 복음 전합니다. 매맞고 풀려 났지만, 기쁘게 생각하며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외부적 공격).

 두 사건의 사이에 있는 기록(12~16절)은 교회의 거룩함과 성장에 대해 요약해 줍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내부적 외부적 공격 속에서도 교회는 튼튼히 서 갔습니다(샌드위치 구조).

 

1. 사단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을 통해 교회를 공격 (1-11절)

2. 구약의 제사는 죄인과 병든 자를 바쳐 치유하는 것으로 계속 (12-16절)

3. 사도들을 감옥에 가둠: 예수님의 고난의 계속 (17-32절)

4. 매맞고 풀려 나면서 사도들은 기뻐함 (33-42절)

 

1. 사단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을 통해 교회를 공격 (1-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 중 얼마를 감추고 헌금했습니다. 그러고는 전부를 바친 것처럼 거짓말했습니다. 4장 36절의 바나바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바나바처럼 헌신하고 칭찬받고 싶지만, 그런 희생은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4절, 임의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권한, 자유의지로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건 판 것의 전체를 바치는 것도, 일부를 바치는 것도 그들의 자유와 권한 아래 있습니다. 어떤 경우건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말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양심을 속이고 성령을 속였습니다.  “사단이 가득하다”(3절). 베드로의 입을 통해 성령님이 내리신 영적 진단입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핍박 가운데도 복을 전합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물질을 나눕니다. 이런 선한 일이 일어납니다(2:3, 4;31).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상당한 헌금을 하는 사람이 사단으로 충만하게 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항상 사단의 시험이 일어납니다. 그 때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주신 만큼 감사함으로 헌신합시다. 우리가 실제 하고 있는 섬김 이상으로 위선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교회는 우리의 형제 자매입니다.  하나님도 교회도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지금 헌신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 사랑 안에 머뭅시다. 사단의 도전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합시다.

그의 아내 삽비라도 베드로의 질문에 거짓으로 대답합니다 (8절). 베드로는 그녀가 주의 영을 시험한다(9절)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성령님이 죽였습니다. 성령님은 계속 교회 안에서 권징을 시행합니다. 교회 안에는 위선자들이 생겨 납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와 같이 오늘날 목사와 당회도 이러한 위선을 찾아내서 권징합니다.  말로서 권면합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교인은 더 크게 권징합니다. 출교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라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산을 감춘 것(3절)은 구약 교회에서도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감추었습니다 (여호수아 7:1).”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새 땅에서 첫 승리가 여리고 정복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냥 성을 돌기만 했지만,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모든 물건을 다 태워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우상숭배와 음행과 폭력의 도시를 태워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조금도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업을 받는 바로 그 순간 아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털 옷을 감추었습니다.

신약교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구약의 가나안 땅보다 더 좋게 발전합니다. 성도의 공동체, 삶 전체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도 아나니아 삽비라는 하나님의 것을 훔쳤습니다. “우리는 재산의 전부를 바친다.”고 하면서 일부를 감춘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신약 교회에서 성령님은 돌을 사용하지도 않고 말씀전파자의 말을 통해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교회를 더럽히고자 하는 사탄의 공격을 구약교회와 신약 교회에 동일한 것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도 구약 교회와 신약교회에 계속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두 사람을 싸 메어 나간 것과 같은 일이 구약 교회에도 이미 일어났습니다. 레위기 10장에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불로 분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소로부터 불을 보내서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그들을 성소 앞으로부터 백성이 사는 진의 바깥으로 싸서 내어갔습니다(레 10:4).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 바깥으로, 성도들의 공동체 바깥으로 운반되었습니다.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는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하나의 보편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엄한 심판이 교회 안에서 계속됩니다. 초대 교회에 눈에 보이는 능력을 보여주신 것은 이후의 모든 교회에 일어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어느 시대에나 성령님이 보편 교회와 능력으로 함께 있을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보편교회에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합니다. 동시에 끝까지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심판도 충만합니다.

이 시대 교회도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성도를 권면합니다. 징벌도 선언합니다. 교회의 정당한 선언과 함께 하나님이 일하셔서 징벌하십니다. 이 사건 때문에, 두려움이 온 교회 위에, 그리고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11절). 우리도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갑시다(빌 2:12). 우리 자신과 교회가 순결하게 성장하도록 기도합시다.

 

2. 구약의 제사는 죄인과 병든 자를 바쳐 지유하는 것으로 계속 (12-16절)

앞에 나온 교회 안의 죄악들, 뒤에 나오는 교회 바깥에서 오는 핍박들.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교회를 통해 계속 나타납니다. 교회는 성전의 한 곳인 솔로몬의 누각에 모였습니다. 성전 건물과 제사가 교회의 모임으로 대체되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계속 전했습니다. 교인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14절)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 “더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더하셨습니다. 수적인 성장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교회가 할 일은 계속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병자를 예수님께 메고 와서 치료받게 했습니다 (15절). 전에 이 땅에 몸으로 계시던 예수님께 병자를 메어 오고 (눅 5:18, 막 9:17,29,2), 주님이 치유하던 하던 일이 사도들을 통해 계속됩니다. 메고 온다는 구약 성전에 제물을 “가져온다”는 데 사용한 말입니다. 성전에 들어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방해를 받는 병자와 장애인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병든 자와 죄인을 치유하여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구약 제사를 성취했습니다.  이제 사도들이 이 일을 계속 수행합니다.

이런 기적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던 사도 시대는 지나 갔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기적이 일반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성령님이 일으키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들이 없이도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우리는 전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 계속 일하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듣고 믿는 교회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통해 계속 영적으로 치유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공로와 성령님의 거룩하게 만드시는 능력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삶 전체를 즐거운 제물로 받으십니다.

병든 몸, 죄악된 몸, 그리고 물질을 제물로 바치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신구약 교회는 계속 이어 갑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겸손히 나옵시다. 주께서 주신 은사 대로, 기쁘게 그리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합시다.

 

 3. 사도들을 감옥에 가둠: 예수님의 고난의 계속 (17-32절)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은 더 많은 능력을 행하고 풍성히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19절). 죽이려고 했습니다(33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명예심 때문에 사단이 가득했고, 산헤드린 공회에는 시기심이 가득합니다.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도 사실은 사단이 충만합니다. 기억합시다. 교회가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할 수록 교회 안과 밖에서 사단의 충만함도 함께 일어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전에 예수님을 시기(마 27:18, 막 15:10)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빌라도에게 다시 고소하여, 그분을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며 핍박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천사가 감옥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습니다(21절).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주간에 아침 일찍이 성전에서 가르쳤습니다 (눅 21:38, 24:1, 22).

이 날 아침 공회가 다시 모였습니다.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감옥 문은 잠겨 있는데,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도들을 공회로 잡아들였습니다. 사단과 시기심이 가득한 자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을 보고도 이렇게 눈이 어둡습니다. 사도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피를 자신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28절).

29절,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29절).” 베드로는 복음을 전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구주로 삼으셨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성령님도 그러하다” (32절).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다른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분노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사도들은 전에 예수님께서 예언으로 약속한 대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잡은 이와 권세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가르치리라”(눅 12:11-12).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명할 수 없는 구재(말재주, 말솜씨)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 21:12-15).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핍박을 받을 때 우리가 해야 할 말입니다.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아가면 오히려 악한 사람들의 협박을 받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 때, 우리도 말합시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으로 증거하고 삶으로 증거합시다.  성령님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증거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고백합시다(32절). 사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 안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말대로 말하고 살아갑시다.

복음을 “생명의 말씀”(20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그냥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을 사용하여 성령님이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은혜, 중생의 성령, 양자됨의 굳은 확신을 주십니다. 복음을 성령 안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받읍시다.

 

4. 매맞고 풀려 나면서 사도들은 기뻐함 (33-42절)

사도들이 죽임을 당할 그 시점에 하나님은 섭리로 구출해 주십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 가말리엘이 일어서서 말합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사도들에게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전에 일어난 사건과 연결하며 설명합니다.  전에 드다와 유다가 민중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가들이 죽은 후 그 무리들은 자연적으로 흩어졌습니다. 가마리엘은 이 전례를 말하면서 산헤드린 공회에 권고합니다. 사도들에게 사람들이 몰리는 일이 “사람에게 났으면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났으면 무너뜨릴 수 없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38-39절).

우리도 진리대로 살 때 재판을 받기도 하고 궁지에 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들어서 우리를 변호해 주기도 하십니다.

40절, 산헤드린 공회는 가마리엘의 말에 설득되었습니다. 사도들을 죽이지는 않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40절) 협박하고 내보냅니다.  41-42절, 사도들은 이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불명예스럽게 되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매를 맞고도 날마다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위해 고난 받고 핍박받는 것을 즐거워합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진리의 길을 걸어갑시다.  열심히 가정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진리로 가정을 세웁시다. 말씀대로 직장에서 살아갑시다. 기회 있는 대로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 때문에 손해 본다면, 슬퍼하지 맙시다. 즐거워합시다.

 

믿고 복종할 일

교회와 성도인 우리 자신을 사단은 계속 유혹합니다. 명예욕이나 시기심의 유혹에 빠지지 맙시다. 사단이 우리 마음에 던지는 유혹을 그냥 내버려 주면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마귀가 우리 마음을 점점 채웁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항상 깨어 기도합시다. 회개합시다.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시다.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악과 바깥에서 오는 고난도 하나님이 섭리가운데 하시는 일입니다. 그 분은 유혹과 고난을 통해서, 그 분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교회를 정화하십니다. 우리 각자를 더 거룩하게 만듭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복잡하게 계산하지 맙시다. 너무 고민하지 맙시다. 일단 단순하게 말씀에 복종합시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을 받아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으면서 점점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를 고난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고난을 받도록 특별대우를 해 주시는 것에 감사합시다. 유혹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사단과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의 거짓된 협박 앞에 얼어붙지 맙시다. 매 순간 성령님을 의지하여 사명과 직분에 집중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복음대로 살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서 내가 당하는 유혹이나 협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단순하게 말씀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재산을 감춘 것(노스피조, 3절)= 아간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감춤(노스피조 여호수아 7:1)”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교회가 성장할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과 감춤(노스피조)은 구약 여호수아 때의 아간의 행동과 같습니다(수 7:1).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아간 자신이 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고 말하면서 감추었습니다.

 

<참고> 페로: 병자를 메어 옴(5:15절)= 헌금을 사도의 발 앞에 둠(4:34,37, 5:2)=시체를 메고 나감(엑-페로, 5:6,10절)

그런데 사람들이 병자를 예수님께 메고 와서 (페로) 치료받게 했습니다(15절). 전에 이 땅에 몸으로 계시던 예수님께 병자를 메어 왔습니다 (페로, 눅 5:18, 막 9:17,29,2). 메고 온다는 구약 성전에 제물을 “가져온다”는 데사용한 말입니다.

성도들과 바나바가 재산을 팔아서 가지고 와서 사도의 발 앞에 두는 것도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페로, 4:34,37).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재산을 판 것을 가져다가 사도들에게 두었습니다(5:2). 구약 성도들이 성전에 제물을 바친 것을 신약교회는 헌금을 통해 바칩니다. 헌금과 함께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칩니다. 병과 죄악을 제물처럼 가지고 올 때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 계속 치유하십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헌금을 하면서도 성령을 속인 두 사람은 죽어서 교회 바깥으로 가져가 졌습니다(에크-페로, 메고 나간다, 바깥으로 가져간다, 6,10절).

병든 몸, 죄악된 몸, 그리고 물질을 제물을 바치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신구약 교회는 계속 이어 갑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겸손히 나옵시다. 주께서 주신 은사 대로, 기쁘게 그리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합시다.

 

<참고> 21절, 새벽에(트로노스)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침(21절)=예수님, 아침 일찍이(트로노스) 성전에서 가르침 (눅 21:38, 24:1, 22).

사도들은 새벽에(트로노스)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습니다(21절).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주간에 아침 일찍이(트로노스) 성전에서 가르쳤습니다(눅 21:38, 24: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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