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7장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구약을 통해 복음 전하고 순교
(찬송 6장)
2023-1-9, 월
맥락과 의미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이스라엘의 국회)에서 심문받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심문받았던 기관입니다. 스데반의 죄목은 성전과 율법을 부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심문을 받으며 변호하는 것을 복음전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스데반의 말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전을 자랑하는 너희 조상과 너희들은 그곳에서 우상을 섬겼다. 율법을 자랑하는 너희 조상들은 모세에게 불순종했고 그 의인(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선지자들을 죽였다. 너희는 그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하나님은 성전 건물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성전 없이 예배 드리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왔다.”
이 진리를 증거하다가 스데반은 순교 당했습니다.
1. 스데반의 설교: 성전과 율법의 본질(1-53절)
2. 스데반의 순교(54-60절)
1. 스데반의 설교: 성전과 율법의 본질(1-53절)
산헤드린 공회에서 스데반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과 계시의 역사를 요약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1)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으면서 번성함(1-8절)
2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한 장소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직 자녀가 없을 때 그 땅을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씨가 외국 땅에서 400년간 나그네 되고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해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예배하고 섬긴다’는 뜻입니다.
8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언약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여 언약 백성과 기업의 특권을 전수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을 지켜서 백성을 번성하게 하십니다.
2)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가서, 야곱 가족이 애굽에 내려감(9-16절)
9-10절: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습니다. 이 말을 통해 스데반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말합니다. 제사장들도 조상처럼 예수님을 시기하여 이방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죽였습니다(마 27:28). 그들은 사도들을 시기하여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있습니다(행 5:17).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했습니다. “은총”(은혜)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 스데반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과 구제를 담당하던 7명의 직분자에게도 “성령,” “지혜,” “믿음”(6:3,5,10)을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통치자로 세웠”(10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스리는 자”(마 2:5)로 세운 것과 비슷합니다.
3) 이집트에서의 번성과 출애굽- 율법의 불순종(17-43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왔을 때, 이집트에서 그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17절). 신약의 그리스도의 교회도 고난 가운데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습니다(6:7에서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인도자로 세웠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인생을 40년 단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이집트 왕궁에서 40년(20-28절): 모세는 나일 강가에 버려졌다가 바로의 딸에게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버려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자가 되신 것과 비슷합니다. 24절, 모세는 “원통한 일”을 당한 형제를 보호하려고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선한 의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27절) 라고 따졌습니다. 그리고 직분자 모세를 거부했습니다. 스데반이 설교하던 그때도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2) 광야에서 목자로서 40년(29절)
(3)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광야에서 인도하는 40년(30-43절)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생활한 후 하나님께서 가시 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곳은 “거룩한 땅”(33절)이니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땅”, 혹은 ‘장소’라는 단어는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행 6:13). 하나님이 백성과 만나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광야도 포함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시내산에 나타나셨습니다. 애굽에도 나타나셨습니다 (34절).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이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35절,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 세웠습니다. 이 표현은 “너희가”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2:23,24)와 비슷한 표현입니다. 모세를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5:31)는 것과 비슷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무지해서 모세를 거절했듯이, 당시 대제사장을 비롯한 백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38절, 모세는 “광야 교회에서” 생명의 도를 받아 조상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광야도 하나님이 백성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 한 곳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37절, 신명기 18:15)고 말했습니다. 그 선지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행 3:22).
42절, 스데반은 아모스 5장(5:25-27)을 인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우상 숭배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성막을 받았지만, 오히려 우상 숭배했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과 지도자들은 율법과 성전을 자랑하지만 계속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고 암시합니다.
4) 성전에 대한 바른 가르침(44-50절)
44-46절: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천막으로 만든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 성막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왔습니다.
47-50절: 다윗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48절)고 단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사야 66:1)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이라는 장소에 얽매여 그곳을 우상 숭배하고 있습니다(51절).
5) 율법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죽인 그들의 죄를 지적함(51-53절)
52, 53절, 유대인과 산헤드린 공회는 율법을 자랑하지만,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스데반은 지적합니다. 그들의 조상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율법을 자랑하지만,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겼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은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무시한다고 고소했습니다 (6장). 이제 산헤드린 공회는 그 문제로 재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렇게 잘 변호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건물 자체에 매이는 분이 아님을 잘 말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회개하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계속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여기서 끊깁니다.
2. 스데반의 순교(54-60절)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들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분노하며 이를 갈았습니다. 55절,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성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스데반, 네가 땅의 법정에서 나를 위해 혼자 서서 복음을 변호하며 핍박을 당하고 있구나. 내가 하늘 법정에서 너를 위해 서서 변호하고 있다. 네가 쓰러질 때 나는 하늘에 서서 너를 환영한다’. 그리스도께서 스데반을 변호하고 인정하는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56절, 순교의 길을 가면서 스데반은 말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다고 복음을 증거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특별한 힘을 주십니다.
그들은 “일제히”(한 마음으로)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성도들은 성령님이 오시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1:14, 4:24).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도를 죽이는 일에 한마음으로 힘을 합쳤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하면서 두 마디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신 그 두 마디 말을 스데반이 반복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 눅 23:46)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 눅 23:34)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서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있는 스데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셨습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옷을 맡은 청년 사울이 등장합니다(58절).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옷을 맡습니다. 스데반이 순교의 피를 흘리도록 만드는 데 앞장선 이 청년이 곧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예루살렘 성전은 그냥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그 성전 건물 자체에 하나님의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예배당 건물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당은 그냥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의 공동체, 그들의 모임과 예배를 말합니다.
스데반은 성경의 내용이 모두 그 머리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율법서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선지서를 잘 인용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와 계시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우리도 스데반처럼 성경을 많이 읽고 배웁시다. 우리 머리에, 우리 마음에 말씀이 풍성하기 바랍니다.
우리도 스데반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우리 삶을 통해 능력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여러 고난이 오고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맙시다. 극심한 고난이 오더라도 그 순간에 믿음으로 의지할 때, 지금도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갑시다.
만약 스데반처럼 죽음과 같은 극심한 고난이 온다면,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생존에 대한 위협의 순간에서도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위협을 보기보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평안과 용기를 누리는 믿음이 나에게 있습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9절, “여러 조상(‘페트리-아르케’)이 요셉을 시기함(‘젤로오’)” -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시기함(마 27:18), 사도들을 시기함(행 5:17, ‘젤로스’)
조상들(‘페트리-아르케’)이 요셉을 시기하여(‘젤로오’) 애굽에 팔았습니다. 그처럼 대제사장(‘아르크-히에루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프토노스’) 이방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죽였습니다(마 27:18).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이 사도들을 시기하여(행 5:17, ‘젤로스’) 감옥에 가두고 때린 다음에 석방했습니다.
<참고>“통치자”(헤게오마이, 10절) 요셉 = “다스리는 자”(헤게오마이, 마 2:6) 예수 그리스도
바로가 요셉을 “통치자”(헤게오마이, 10절)로 세웠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스리는 자”(헤게오마이, 마 2:5)로 세우셨습니다.
<참고> 33절, “곳”(장소, ‘마콤’)=성전(6:13)
“곳”(‘토포스’-헬라어, ‘마콤’-히브리어)은 구약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사도행전 6:13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참고> 35절,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카타-히스테미) - “관리(아르콘)와 속량하는 자(뤼트로테스)”
35절,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카타-히스테미)라는 표현은 2:23,24 “너희가”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아나-히스테미)와 비슷한 표현입니다.
“관리(아르콘)와 속량하는 자(뤼트로테스)” (35절)는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임금(아르케고스)과 구주(소테로스)” (5:31)로 세웠다고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스데반은 이런 말을 통해서 모세가 한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