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7장
2차 교회개척 여행(49-52년):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
(찬송 150장)
2023-1-20, 금
맥락과 의미
17장에서는 2차 교회개척 여행(49-52년)을 계속합니다. 그리스 북부 지역(마케도니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세 도시, 데살로니가, 베뢰아, 그 후에 남부 지역으로 내려가 아테네에서 예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핍박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할 때 어려움이 생기지만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전파됩니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고 성도는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합니다.
1. 데살로니가 전도와 교회개척(1-9절)
2. 베뢰아 전도와 교회개척(10-15절)
3. 아테네 지역(그리스 남쪽) 전도와 교회개척(16-34절)
1. 데살로니가 전도와 교회개척(1-9절)
바울은 빌립보에서 서쪽으로 160km를 걸어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있었습니다. 1절, 유대인 회당에서 전도한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알고 있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특별계시)을 통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아테네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구약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자연의 창조세계(일반계시)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3절, 성경의 “뜻을 풀어” 열어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열어주면서, 그들의 마음의 눈을 여셨습니다(눅 24:31,32,45). 사도 바울이 성경의 “뜻을 풀” 때에 예수님의 영이 그들의 마음을 열었을 것입니다. “증언”했습니다(3절). 이 말은 모세가 백성 앞에 “법규”를 ‘세웠다’(출 21:1)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주셨다’와 같은 말입니다(마 13:24,31). 이제 사도 바울은 그 구약의 말씀을 회당의 사람들에게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직분자(목사)의 사명은 성경 말씀의 뜻을 열어서 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올 때는 닫혀 있던 성경이 열려서 그 안에 있는 진리가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라는 컵에 담아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에 이미 있는 뜻을 더 자세히 풀어줄 때,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성령님이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복음의 내용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인정된다는 것과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믿을 때, 삼위일체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4절, “경건한 헬라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개종한 이방인을 말합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회당 예배에 참여하던 사람입니다. 그들과 상류층 여성들이 복음을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기업을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5절,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저자(‘아고라’, 라틴어로는 ‘포럼’)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성을 소동하게 하였”습니다. 저자는 우리 말로 시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물건만 사고 파는 것만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모여서 여러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복음서에서 유대 지도자들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시기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빌라도에게 고소할 때도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세력이라고 모함했습니다(눅23:2). 복음을 전할 때 주위의 엉뚱한 시기가 일어납니다. 거짓을 통해 핍박합니다.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알고 인내합시다.
6-9절, 야손과 형제들(성도)을 읍장, 즉 행정 최고 책임자에게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석금을 주고 풀려났습니다.
2. 베뢰아 전도와 교회개척(10-15절)
베뢰아에서도 주로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1절, 베뢰아 회당의 사람들은 “너그러웠”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고상하게 바울을 대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과연 구약 성경의 계시와 일치하는지를 자세히 살피면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배우는 자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회당에 모이던 유대인과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베뢰아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처럼,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습니다(12절).
13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와 “무리를 움직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14-15절,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 두고 바울은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갔습니다. 복음을 믿은 형제들이 바울을 다른 지역으로 보냈습니다(10,14절). 보내는 것에는 선교 여행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3. 아테네 지역(그리스 남쪽) 전도와 교회개척(16-34절)
바울은 아테네에서는 디모데와 실라를 기다리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6절, 바울이 아테네의 온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도 학벌, 재산, 쾌락, 건강 등이 종교처럼 우상처럼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삶의 방식(이기적, 교활함, 물질만능)에 대해 분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분함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에 대한 바른 지식에 기초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진리에 배치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에 대해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다.
‘분하다’는 말은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나타났던 다툼(15:39) 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진리의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서로에게 감정적인 충돌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테네에서 전체 도시가 진리에 배치되게 사는 것을 보고 진리 안에서 거룩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강렬한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인해 우리 도시에 대해 분한 마음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17절, “경건한 사람”은 이방인 중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이방인 개종자들)과 또 장터(‘포럼’)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묻고 대답하며 대화(‘다이어로그’)를 했습니다. 2절의 “강론”과 같은 말입니다. 복음은 선포지만, 묻고 대답하며 가슴을 파고 드는 설득이기도 합니다.
18절,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 곧 당시 일반 철학의 양대 조류의 사람들과도 논쟁했습니다. 우리도 일반 사상과 지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더 굳게 하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상을 잘 알아야 우리가 믿는 복음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19절, 아테네 시민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시장(‘아고라’) 북쪽 코너에 있는 장소입니다. 사상과 종교에 대해 토론하고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는 기관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에게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그들의 우상숭배와 종교심을 이용하여 복음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곳에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는 지혜를 배웁시다.
23절, 바울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만든 제단 중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이 있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25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있습니다(28절, 기원전 6세기의 시인 에피메디네스의 시를 인용). 이것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함입니다(29절).
28-29절,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그들의 시(기원전 3,4세기의 아라투스와 클레안테스)를 인용합니다. 그 하나님을 금과 은과 돌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심판자로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31절). 온 인류에게 삶을 살아갈 시간과 공간을 정하신(26절)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그들의 우상숭배를 “공의로 심판할” 사람을 정하셨습니다(31절). 그 심판자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상숭배 속에 있는 자연적인 신 관념(자연적 신지식, 자연적 종교심)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선한 것입니다. 이 선한 것을 사람이 잘못하여 우상숭배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생각을 마귀를 섬기는 데 사용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자연적 관념에서 출발하여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관념이 도달할 수 없는 계시의 진리를 전달합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사람의 생각과 표현 방식에서 출발하는 지혜와, 동시에 담대히 복음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용기 두 가지를 동시에 구비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수용하지만, 복음으로 도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를 복음을 나눌 때 뿐만 아니라 살아갈 때에도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32-34절, 어떤 사람은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 했습니다. 그 중에 “아레오바고 관리”와 “여자”들이 믿었습니다. 이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은 믿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 교만한 아테네 지역에서 논쟁을 주관하는 아레오바고 관리를 굴복시키는 성령님의 능력을 보십시오! 우리의 믿는 바를 굳게 붙잡고 살아갈 때 변화(믿는 자가 생김)가 생깁니다. 우리의 상황이 막혀 있어 힘들지라도 복음을 전하며 살 때 변화가 생깁니다.
믿고 복종할 일
바울은 때로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때로는 자연 현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지혜롭게 복음을 전합시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이 이미 자리잡고 있습니다. 삶으로 나타냅시다. 기회 있는 대로, 우리의 신앙을 나눕시다.
그리고 복음을 순수하게 말하고 살아갈 때 항상 핍박이 있음을 압시다. 핍박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복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의 수를 많게 하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숙시킴을 감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이 세상의 문화에 그대로 순응하여 따라가지는 않습니까?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세상 문화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하고 때로는 분노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고민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19절, 아레오바고 법정
아레오바고는 ‘아레스(전쟁의 신)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아테네의 건물이 밀집된 지역인 아크로폴리스의 남서쪽에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여기서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권위 있게 결정했습니다. 주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성장하면서 아레오바고 법정의 권위는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 시대에는 아레오바고의 권위가 더 올라갔습니다. 그때 아레오바고는 아고라 북쪽 코너에 있는 ‘왕의 누각’(stoa basileios)에서 모였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자신의 사상을 검증받거나 정식 강사로서 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 앞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참고> 3절, “증언하고”(‘파라-띠테미’)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임을 “증언”했습니다(3절, ‘파라-띠테미’). 모세가 백성 앞에 율법을 ‘세웠듯이’(히브리어 ‘숨’, 헬라어 ‘파라-띠테미’)에 사용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주셨다’에 사용된 말입니다(마 13;24,31).
<참고> 17절, “변론”(‘디아-로게오’)
17절,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디아로게오’). 묻고 대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어의 다이어로그(dialogue)라는 말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