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목회
(찬송 360장)
2023-1-23, 월
맥락과 의미
바울은 2차 개척여행(49-52년)에서 에베소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3차 개척여행(53-57년) 기간의 절반 이상을 에베소에서 목회했습니다. 2년 반 동안(53-55년)입니다.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의 수도로서 복음을 전파하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예언과 방언의 표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방언으로 시작하신 예루살렘 교회와 에베소 교회는 동일한 보편교회라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우상숭배자가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우상숭배에 빠진 전 도시가 사도 바울을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동안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55년).
1. 성령 충만의 역사(1-7절)
2. 눈에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8-20절)
3. 데메드리오와 우상 숭배자들의 방해(21~42절)
1. 성령 충만의 역사(1-7절)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서 바울의 뒤를 이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순방한 다음에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1-2절,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요한의 제자’라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하니 “요한의 세례”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님으로 세례를 줄 것입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시켰습니다. 에베소에 있던 사람들도 전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듣고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그리스도를 믿은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요한이 예언한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의 일을 마치고 하늘에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에베소 신자들의 지식과 믿음은 그분을 기다리는 세례 요한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복음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믿음이 미숙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풍성히 전했습니다.
5절,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로 받으리니.”(2:38) 이 말씀대로 그들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6절).
성령 충만의 외적인 표시로서 은사(방언과 예언)를 받았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과 같은 성령이 에베소 교회에도 오셨습니다. 고넬료에게 왔던 성령님이 방언으로 오셨습니다. 지역적으로 확장되는 교회가 한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은 한 교회 됨의 표시로서 왔기 때문에 모든 교회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에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12명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세워 갈 12명의 직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복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도를 통해 풍요로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고 다시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방언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특별한 상황에서 방언을 통한 확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구원 역사가 더 발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때 성령도 받습니다. 말씀을 계속 배우는 중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교회를 섬길 성령님의 은사를 계속 주십니다.
2. 눈에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8-20절)
8절,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했”습니다. 차근차근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9-10절, 회당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그리스도의 길을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지역민이 모이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원의 소유주인 두란노가 바울에게 건물을 임대해준 듯합니다.
그 이전까지 바울은 각 지역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2차 교회개척 여행 때 고린도에서 처음에는 회당에서 가르치다가 반발이 일어나 회당 근처의 개인 집에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3차 교회개척 여행에서도 에베소에서 처음에는 회당에서 전도하다가 아예 독립적인 건물을 임대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에베소에서 2년 3개월 동안 목회했습니다. 햇수로는 3년입니다(20:31).
11-12절,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사람에게 얹을”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손수건에 힘이 있는 것처럼 미신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수건을 사용하여 기적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사람들이 베드로의 그림자에 닿기만 하면 병 고침을 받을 것을 기대했고, 실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현상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었습니다. 표적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원래의 것인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보여주는 수단입니다. 예루살렘의 베드로와 이방 지역의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동일한 기적을 일으킴으로써 두 지역의 교회가 한 분 하나님에 의해 인도받는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병 고침은 지금도 기도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러나 주로 일상적인 방법(병원, 약)을 통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의학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의료 기술을 사용하여 우리를 치료하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너머서도 치료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3-16절,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악귀”에 의해 제압당했습니다. 전에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는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면서 성전에 들어가 예배했습니다(3:8). 그러나 악한 자가 망령되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는 마귀가 일어나 뛰면서 그 악한 자를 공격하여 상처를 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고 믿음으로 부를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그분을 부르며 참 신앙 가운데 거합시다.
17-19절, 스게와의 아들 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죄를 고백하면서 마술책(무당이 쓰는 점치는 책)을 불살랐습니다. 은 5만개의 값이 나가는 책이었습니다. 은 하나는 한 사람의 하루 일당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그때 점치는 책의 가격은 50억원이나 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고백하며 삶을 고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생육하고: 자라서) 세력을 얻었”습니다(20절). 이 모든 일은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일어난 일입니다.
3. 데메드리오와 우상 숭배자들의 방해(21-42절)
바울의 전도로 많은 에베소 시민이 우상숭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결과, “은장색”들의 우상상품 판매사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은장색은 “아데미(비너스)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람입니다. 그 중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사람이 동업자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은 “연극장”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바울이 그 극장에 들어가려 하자, 성도들이 극구 말렸습니다.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사람도 만류했습니다. 아시아 관리는 로마 황제 숭배를 주관하는 지역의 유지입니다. 바울은 극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시민들은 2시간 동안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들 안에 사단이 강하게 움직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적대하는 세력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깁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한 사단의 영향으로 우리를 핍박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회개하며 살아 갈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단과 그 하수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의 역사도 사람들의 활동 가운데 있고, 성령님의 역사도 경건한 교회의 활동 가운데 있습니다. 오직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합시다.
에베소의 “서기장” (도시의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의 설득으로 폭동은 가라앉았습니다. 에베소의 악한 군중들의 모임을 ‘교회’(32절-“모인,” 39절-“민회,” 41절–“모임”)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은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교회는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극장에 모였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비너스) 신을 “크다”(27,28,35절)고 외쳤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큰 일을 찬양하지만(2:11, 10:46) 세상은 우상을 찬양합니다. 세상은 그 도시의 물질적 번영을 우상과 연결하여 우상을 위대하다고 찬양합니다. 그들은 집회를 극장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드라마와 극장, 수많은 동영상 속에 우상숭배가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잘 분별합시다. 교회는 세상의 흐름과는 달리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새로운 공동체로서 모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지금도 어떤 교인들은 에베소 교인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듣고 믿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구원에 대해 지식적으로 모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배우고 서로 복음을 나눕시다.
우리는 사단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거세게 나가는 세상에 대해 분별력을 가집시다. 말씀과 기도로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깁시다.
우리 시대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으로 일하십니다. 교회 안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받고 회개하여 새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 각자는 세상 가운데서 집과 직장을 갖고 세상과 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질을 신으로 섬기는 이 시대 사람의 거센 흐름, 그 생각에 밀려 가지 맙시다. 말씀으로 분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나라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갑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믿음 안에서 자라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 안에 거하며 세상을 분별하며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