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장 예루살렘에서 구약 율법의 정결례로 형제 그리스도인의 오해를 풀었으나 ... 천부장에 의해 구출됨 2024-7-24, 수
작성자축제작성시간24.07.23조회수66 목록 댓글 0사도행전 21장
예루살렘에서 구약 율법의 정결례로 형제 그리스도인의 오해를 풀었으나
불신 유대인에 의해 맞아 죽다가 천부장에 의해 구출됨
(찬송 452장)
2024-7-24, 수
맥락과 의미
21-28장에서 바울은 3차 개척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핍박을 당하고 죄수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습니다. 바다에서의 고난과 로마에 도착하여 시위대에 감금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성령님께서 그의 목숨을 지켜 주시고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핍박당하는 과정에서 왕과 백성, 산헤드린 공회와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의 끝 부분에서는 로마의 황제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을 암시합니다.
2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6절,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길입니다. 계속하여 성령님은 형제들을 통해 바울이 받을 고난을 예언하며 준비시키십니다.
17-40절,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율법의 의식들을 지켰으나, 유대인의 폭동으로 맞아 죽다가 천부장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성령님이 바울의 고난을 계속 예언(1-16절)
2. 유대인 그리스도인 위해 의식법을 지킴, 다른 유대인의 공격(17-40)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성령님이 바울의 고난을 계속 예언(1-16절)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성령님은 그가 당할 고난을 반복하여 예언하십니다.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명을 향해 나갑니다.
앞에서 바울은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에서 온 장로(목사)들과 작별했습니다. 바울은 배를 타고 고스à로도à바다라로 갔습니다(1절). 터키 서남쪽의 항구들입니다. 순풍으로 빠른 시간에 갔습니다.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바울의 소원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있습니다.
바다라에서 이스라엘 북부의 베니게(페니키아)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탔습니다(2절). 구브로(사이프로스) 섬 남쪽을 지나 지중해 동쪽으로 항해했습니다. 수리아 지역의 두로에 상륙했습니다.
두로에서 짐을 풀고(3절), 제자들(그곳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 7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성도들이 성령으로 감동되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성도들은 성령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아끼는 마음으로 말렸습니다.
바울에게도 고난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예언과 형제들의 만류는 오히려 바울이 두려움을 이기는 훈련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기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두로에서 제자(성도)들과 작별합니다(6절). 성도들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성문 밖 해안까지 와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전송합니다(5절). 성도의 교제와 사랑의 격려가 아름답습니다.
두로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도중에 돌레마이에 내려 그곳 교회의 형제들을 격려했습니다(7절). 하루 동안 있다가 가이사랴로 내려갑니다. 거기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8절).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제를 맡았던 일곱 명 집사 중 한 명입니다. 빌립은 15-20년 전에 사마리아에 전도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8장). 이제는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복음 전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딸 넷이 있는데 다 예언자였습니다(9절).
바울이 빌립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아가보라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10절)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아가보는 11:27-30에서 바울이 안디옥에서 목회할 때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적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이는 이방인 지역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품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아가보가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 발을 잡아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11절) 말합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넘겨주리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준 것에 쓴 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우리”(누가를 포함한 교회 개척팀과 가이사랴 교회의 성도들)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 권했습니다(12절).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니다”(14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 두고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마 26:39-42).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성도)는 바울이 고난을 당한다는 성령님의 예언이 있었지만, 그 고난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바울도 사람이므로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을 향해 나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여줍니다. 기도하며 그런 두려움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그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길은 십자가의 길임을 알면서도 바울에게 고난을 피하도록 간청한 것은 깊은 형제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책망합니다(13절). 책망하면서도 형제 사랑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분자가 고난을 감당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교회는 성장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가이사랴의 몇 제자와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갔습니다(16절). 이제 바울과 함께 가는 팀이 12명 정도 되었다고 짐작됩니다(15-16절). 예수님의 12제자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전반부에서 최초의 이방 지역 선교가 구브로 등의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11:19). 나손은 그때 복음을 들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 초기 선교가 구브로 지역에서 열매를 맺고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2. 유대인 그리스도인 위해 의식법을 지킴, 다른 유대인의 공격(17-40절)
1) 예루살렘 성도들과의 교제와 그들 위해 율법 의식을 지킴(17-26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나 문안했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은 사도와 목사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자신을 장로 중 한 사람으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벧전 5:1).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는 사도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봉사(종으로 섬김)를 통해 하나님이 이방 가운데 일한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했습니다.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교회가 개척되고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종에 불과하고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7-20절).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을 말해줍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믿는 형제, 20절) 수만 명은 계속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켰습니다(20절). 여기서 율법은 구약의 정결례, 성전예배, 할례 등 ‘의식법’(ceremonial law)을 말합니다.
이미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토의한 결과,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선포했습니다(15장).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의식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경건함에서 성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식법을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도 할례를 금지하고 의식법을 지키지 말도록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21절). 물론 헛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저주받을 생각이라고 말했지만(갈1:8), 할례를 금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롭게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 대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오해는 교회의 평화를 해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바울에게 권합니다. 바울이 구약의 의식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4명이 나실인의 서원(23절)을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결례를 행할 것을 권유했습니다(24절).
나실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서약을 한 사람입니다. 서약한 기간 동안 포도주를 먹지 않고 머리를 길러야 합니다. 나실인의 서약이 끝나면 제물을 바칩니다(민 6:13-20). 그런데 이 서약을 한 사람을 위해 비용을 제공하는 것을 아주 존경받는 행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바울이 그들을 위해 비용을 제공해 줄 것을 제안합니다.
또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성전의 바깥 뜰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이 여행 중에 생긴 부정한 일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치러야 합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부정합니다. 시체를 만진 사람을 만진 사람도 부정합니다. 제물을 바쳐서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해야 합니다(민 19:12).
바울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다른 성도의 나실인 서약을 위해 비용을 제공했으며, 자신은 정결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전에 바울 자신도 나실인의 서약을 한 적이 있습니다(18:18).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오해를 풀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일을 했습니다.
사도들은 바울에게 정결례를 하도록 권하면서도 구원을 얻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25절). 사랑을 위한 희생과 겸손을 우리도 배웁시다.
2) 비 그리스도인 유대인의 폭동과 천부장을 통한 구출 (27-40절)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성도의 교제를 잘 유지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온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성안에 와 있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드로비모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전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에 아시아에서 유대 민족과 율법과 성전을 비난했는데, 이제는 성전까지 더럽혔다고 비난했습니다(28절). 사람들을 충동하여(27절) 바울을 죽이려(31절) 했습니다.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30절)습니다. 성 바깥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울에게 다가오고 있는 듯합니다. 스데반처럼 성 바깥에서 돌에 맞아 순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천부장(요즘의 대대장)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군사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로마 주둔군은 예루살렘 성전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루살렘 성벽 위에 ‘안토니 요새’라는 높은 망대에서 보초를 서며 성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들것에 태워서 병영 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32-36절).
바울은 천부장에게 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부러 헬라 말을 했습니다. 천부장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말할 기회를 천부장으로부터 허락받았습니다. 유대인에게는 히브리 방언, 곧 당시 일상어인 아람어로 말합니다. 성전에서 소동을 일으키던 유대인들이 조용해졌습니다.
바울은 성전과, 성전 뒤쪽의 요새를 연결하는 계단에서, 로마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군중을 내려다보며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21:37- 22장).
믿고 복종할 일
사도행전 전반부(1-12장)에서 예루살렘과 유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뒤를 따라 고난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후반부(13-28장)에서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임당하신 예루살렘에 바울이 오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재현되고 발전됩니다.
그리스도, 예루살렘의 사도들, 바울, 그들의 고난은 교회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 지역의 사역자 가운데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조화되며 울려 퍼집니다.
성령님은 사도 바울에게 고난을 막아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이 있음을 미리 말해주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미리 강하고 담대하게 훈련하며 준비시키십니다. 그가 이 땅에서 계속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을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직분자의 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을 때 담대히 나아갑시다. 우리도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을 다하기까지 위험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바울은 핍박이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과 위험이 효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상황의 어려움에 눌리지 맙시다. 끈기 있게 우리 직분을 다합시다. 현재의 안락함에 머무르지 않도록 기도로 깨어 있읍시다. 말씀대로 살며 당하는 고난을 믿음으로 잘 이겨냅시다. 고난 받는 성도를 진정으로 격려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바울이 이방인에게 넘겨짐(11절), 빌립(8절), 아가보(11절):
사도행전의 전반부(1-12장)와 후반부(13-28장)가 비슷함
바울은 사도행전 전반부(1-12장)에서 성도들을 감옥에 “넘겼습니다”(8:3). 헤롯은 베드로를 군인들에게 “맡겼습니다”(넘겨주다, 12:4). 죽일 계획이었지만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왔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의 사도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후반부(13-28장)에서 바울도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고난의 길을 갑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넘겨졌습니다”(21:11).
그리스도-유대인 교회-바울의 이방인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연속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 사건도 교회 안에서 계속됩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교회를 확장하는 주역이었는데(8장), 22장에서는 바울을 환영하는 역할을 합니다(21:8).
아가보는 첫 번째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물을 보내도록 다리를 놓은 사람입니다. 아가보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여행길에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21:12).
이러한 반복은 이후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와 예루살렘 교회를 따라 하나의 보편 교회로서 성장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