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충성되게 일하며 재림을 준비하라,
나귀 타고 오시는 왕
(찬송550장)
2022-12-26, 월
맥락과 의미
누가복음 19장은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 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때 땅에서 행하셨듯이,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왕께서는 우리를 왕으로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그 나라를 가르치십니다. 재림 때에는 온 세상을 완전히 다스리는 왕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으로 순종하여서 충성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삭개오의 집에 거하신 예수님: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심(1-10절)
2. 므나의 비유: 주신 은사로 충성되게 일해야 (11-27절)
3.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과 제자들의 찬양, 대제사장의 반대 (28-48절)
1. 삭개오의 집에 거하신 예수님: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심(1-10절)
1절에서 10절은 삭개오라는 사람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미 믿음의 씨를 주셨던 것입니다. 이미 그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급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거하여야) 하겠다”(5절). 그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집에 거했습니다. “거한다”는 요한복음 15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많아 맺으리라” (요 15:4,5). 삭개오의 집에 머물렀던 분께서 지금도 영으로 우리와 같이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삭개오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회개했다는 표시로 자기 가진 것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뺏은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을 훔치면 양 하나에 양 넷을 갚으라는 율법(출 22:1)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회개하고 변화되는 이 복을 받읍시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 대해 선언하십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았다.”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구원입니다.
지금도 예수 이름 부르는 우리들과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다음에 예수님을 따라서 그분께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합시다. 율법의 말씀에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불평했습니다(7절). 죄인들의 집에 들어간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10절). 15:2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에게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잃었다가 얻은것”을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잃은 아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즐거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흐름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중에 하신 일을, 이제 여행의 마지막에 다시 반복하여 말하십니다.
죄로 인해 잃어버려졌고 멸망하고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의로운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은혜만을 의지합시다. 또한 우리 주위에 믿는 성도들에게 우리도 은혜롭게 대합시다. 우리 가족도 죄인들 입니다. 죄인인 나 자신을 아들 딸로 입양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래서 주님이 다른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을 주님의 백성으로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2. 므나의 비유: 주신 은사로 충성되게 일해야 (11-27절)
11절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님 자신을 비유로 말합니다. 그분은 승천하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늘에서 왕위를 받으실 것입니다. 이 땅에 다시 왕으로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의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재림하실 그 날까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은사를 맡겨 주시고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이 돌아올 때까지 관리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도시의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왕됨을 배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지 않거나, 배반한 위선자들입니다.
한 므나를 받은 한 종은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재림의 날, 결산의 날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게 열 개의 도시를 맡기리라.” 작은 일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대통령이거나 재벌이 된 그리스도인이라도 사실은 천국의 큰 것에 비해 작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충성한 성도에게는 천국에서 더 큰 일을 하도록 맡겨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냥 노는 곳이 아닙니다. 기쁘게 일하는 곳입니다.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다섯 고을을 맡겨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한 므나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있는 사람에게 주어라.” 주님 재림하실 때, 그 동안 주신 은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뺏으실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에게 맡겨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있는 것을 빼앗길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한 므나를 받은 사람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엄한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잘못에 대해서 벌을 내리는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선하게 살려고 하다가 실수하면, 실수에 대해서만 문제만 삼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아시고 용서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되게 일하지만, 부족하더라도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움은 사탄이 준 것입니다. 사탄은 한편으로는 탐심을 보내서 우리가 엉뚱한 일에 인생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보내서,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을 알고도 덮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죄와 부족을 알고서도 은혜로써 우리를 의롭다 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 습니다. 구원 안에 들어온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서 선한 일을 하다가 넘어지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직분을 감당하도록 합시다. 기쁨으로 직분을 다하도록 합시다. 목사라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열매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로서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쳐서 자녀들을 바로 세우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죄와 부족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리지 맙시다. 계속되는 죄책감은 사탄이 사용하는 멸망시키는 수단입니다. 주님은 은혜의 수단/방편을 사용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죄책감을 일으키신 다음에 곧 바로 회개로 초대하십니다. 죄책감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을 디딤돌 삼아 은혜를 향해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회개하며 나오는 우리의 잘못과 죄를 곧바로 덮어 주십니다. 하루에 7번 회개해도 다시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항상 용기를 주고 격려하십니다.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 의지하여 나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맡겨 주신 직분이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 두려워하고 도망하기도 합니다. 힘들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직분의 자리에 신실하게 머물러 있읍시다. 순종하여 행합시다. 그런 약한 우리를 사용하여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힘껏 일하도록 합시다.
3.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과 제자들의 찬양, 대제사장의 반대 (28-48절)
28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나귀를 풀어서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나귀 주인 에게는 “이 나귀의 주인이 쓰시겠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나귀를 기쁘게 보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쓰시기 위해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그 분이 필요로 하시는 대로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어디 어디에 있는 것을 네가 가져와 나를 위해 사용하라.”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나갑시다. 물러서지 마십시오. 주님 이름으로 그것을 취하십시오. 교회를 세우십시오. 가정을 이룰 남편과 아내를 취하십시오. 가정과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직장을 취하십시오. 사명에 도전하십시오.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주님의 나라 일을 위해서 사용하십시오. 주님께서 사용하려 하실 때에 우리 가진 것을 기꺼이 드립시다. 아까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입성했습니다. 왕들이 전쟁하기 위해 타고 나가는 힘있는 말 대신에 나귀를 타셨습니다.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낮아 지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휘황찬란한 장식품 대신에 제자들의 옷을 나귀 위에 깔았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영광 중에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여전히 초라한 모습입니다. 하늘의 왕의 땅에 있는 몸인 교회와 성도의 모습은 여전히 초라해 보입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런 연약한 교회와 성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위대한 나라를 이루십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중심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을 하나님 나라의 공무원으로 임명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과 사람들은 그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능하신 일로 인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37절).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예수 메시아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3년간 그 분이 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감사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찬양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정치적 해방과 현세적 복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부족한 믿음도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시편 118편 26절로 찬양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과 평화!”시편 144편 1절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고, 지금도 하늘에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영광 중에 더 크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를 통해서 평화를 이루시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오시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매일 오시고 있습니다. 감추인 중에 영광은 성장하고 있고 재림 때에 육체를 가진 분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도 찬송합시다. 찬송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입니다. 그때 찬송하는 제자들을 막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찬양하는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 은혜를 찬양할 때, 찬양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 속에 꾸짖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너는 이렇게 초라하고 부족한데 뭘 찬양하느냐?” 때로는 사람들이,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찬양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지어 우리의 찬양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찬양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위한 충성됨이 부족해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는 그분께 우리도 기뻐하며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41-44절). “평화에 관한 일이 너희에게 숨겨졌다.” 지금 찬양하는 무리들이 며칠 후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동조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도시 전체는 평화이신 예수님을 거부할 것입니다. 평화를 가지고 오시는 평화의 왕을 도시 바깥으로 쫓아낼 것입니다. 거기서 죽일 것입니다. 들어온 평화를 발로 차 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실제 주후 70년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온 세계에 방황하는 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가운데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바울, 빌립, 스테반, 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의 약속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 때문에 결국 그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합시다.
그리스도는 성전에 사고 팔던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성전을 기도하는 곳으로 새롭게 회복하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 바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 주간에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성전 교회를 온 세상에 세우실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있습니다. 은혜를 공급하고 계십니다. 삭개오처럼 계속하여 회개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읍시다. 구원 안에 들어온 우리들이 말씀을 거역하고 순종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주님은 오늘도 매를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덮으시고 새롭게 시작하게 하기 위해 회개하도록 초대합시다. 주님 은혜를 감사합시다.
우리가 이 땅에 열매 맺도록 여러 은사와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신 은사를 묻어 두지 맙시다. 게으르게 낭비하지 맙시다. 두려워하면서 주저하지 맙시다. 부지런히 일하여 열매를 맺읍시다. 나 자신이 돈을 벌고, 안락을 누리는 것은 열매가 아닙니다. 생존입니다. 생존하는 이유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으로 자녀를 잘 양육하는 열매를 맺읍시다. 기업을 통해, 직업을 통해, 그 일하는 가운데 사랑의 열매를 맺읍시다. 우리의 수고의 결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과 나누고, 선교를 지원합시다. 오늘도 우리의 직분에 충성하여, 주님 오실 때 이렇게 칭찬받읍시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이 세상의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큰 일을 맡아라.”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나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고 천국의 일을 맡기시려면 나는 지금 어떤 일에서 더 충성해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7절: “그가 죄인의 집에 유하려(카타루오) 들어갔도다.”
예수님은 “내가 유하여야 (메노)”하겠다 (5절) 하셨습니다. 은혜로 삭개오의 집에 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여리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불평하면서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유하려(카타-루오)”(7절) 예수님이 한 말과 다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카타루오”는 신약에 17번, 누가복음에 3번 나옵니다. 대부분, “멸망시킨다/당한다”(눅 21:6)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두 번 “거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오늘 19장과, 9장입니다. 9:12에서 예수님이 비유에 나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여(카타-루오)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빈 들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후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카타루오”는 그냥 먹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어떤 집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비난합니다. “당신, 먹기 위해, 재산이 탐이 나서 세리 죄인 집에 들어갔다.” 사실, 예수님은 삭개오 집에 영원한 구원을 주기 위해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사람들은 그분이 먹을 것을 탐내서 숙박한다고 비난합니다. 참으로 눈이 어두운 자들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조금 맛보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을 보고, “마귀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한 바리새인들입니다(11:19). 그들을 잠깐 떠났던 귀신이 더 악한 귀신을 많이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집에 들어가(에이스-에르코마이) 유하고(카타-오이케오) 그래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11:26) 될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 소문난 삭개오는 회개했고 예수 하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에이스-에르코마이) 집에 거주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가 가득한 자들은 사단을 자기 집에 들여와서 유하게 할 것입니다.
<참고> 7절 불평, 10절, 잃어버린 자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불평했습니다(디아공기조, 7절-공기가 들어가 교만해서!). 죄인들의 집에 들어간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잃어버린 자(아폴리미)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10절).
이 일화는 15장에서 탕자의 비유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5:2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원망했습니다(디아-공기조).” 그들에게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잃었다가(아폴리미) 얻은 것(15:24)”을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하나님은 실제로 예수님을 통해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