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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

누가복음 23장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받으시며 몸을 제물로 드린 그리스도 2022-12-30,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12.29|조회수70 목록 댓글 0

누가복음 23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받으시며 몸을 제물로 드린 그리스도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말씀을 의지하자

(찬송149장)

2022-12-30,

맥락과 의미

누가복음 23장 말씀은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있는 바로 오늘 금요일에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재판과 사형선고,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심과 묻히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사람들의 죄악성이 드러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그리스도에게 쏟아 놓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1. 예수께서 빌라도와 헤롯에게 심문 당하심(1-25절)

2.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세 가지 말씀 (26-49절)

3. 그리스도 몸의 묻히심(50-56절)

 

1. 예수께서 빌라도와 헤롯에게 심문당하심(1-25절)

1) 빌라도의 법정(1-7절)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자치 국회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사형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집행권이 없기 때문에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갑니다. “자기를 유대인의 왕이라 합니다. 로마에 반역하도록 선동합니다.”  빌라도는 심문하면서 세 번이나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형시킬 죄와 혐의가 없다”(23절).

 

2) 헤롯의 법정에서 고소(8-12절)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인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냅니다. 헤롯은 원래 북쪽 갈릴리 지역에 있으면서 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집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루살렘에 있는 집에 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기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헤롯이 여러 가지 말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헤롯 앞에서도 예수님을 고소했습니다. 예수님은 침묵했습니다. 헤롯은 다시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했습니다.

우리는 혹시 하나님 앞에 기적 신앙만 라고 나아가지 않습니까? 뭔가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많이 물어도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된 은혜를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죄용서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어린 양께 나아갑시다. 우리 삶을 성령으로 계속 다스려 주시기를 간구하며 왕 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나아갑시다.

그 날 이후 빌라도와 헤롯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모든 우정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악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가 누리는 친구 관계, 우정, 하나되는 느낌을 잘 분별합시다.

 

3) 다시 빌라도의 법정(13-25절)

헤롯은 예수님께 왕들이 입는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다시 보냅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을 조롱하기 위해서입니다.  빌라도는 다시 심문합니다. 세 번이나 자신의 판단을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형시킬 죄와 혐의가 없다”(4, 15,23절). 세 번이나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냥 때리고 놓아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의 소리가 더 커서 빌라도를 이겼다고 합니다(5, 23절). 사실이 아니라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군중들이 23절에는 ‘큰 소리로 재촉했다.’ 재촉했다는 말은 누가복음에 두 번 나옵니다. 5장 1절에서는 무리가 예수님을 옹위했다고 합니다. 그때에는 무리가 예수님을 둘러싸서 밀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무리가 밀치듯이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서 배우던 그들이 이제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흔들립니다. 이렇게 배반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맹목적으로 따르면 이렇게 어리석게 됩니다. 악하게 됩니다. 빌라도 또한 대중의 뜻에 따라서 애매한 자를 죽입니다. 비겁한 정치가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을 다할 때 진리 안에서 굳게 섭시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진리를 굽히지 맙시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자들이 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맙시다. 사람들의 반대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 사형선고 받는 것은 하늘의 법정에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고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담대히 나갑시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갑시다.

 

2.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네 가지 말씀 (26-49절)

이제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십니다. 누가와 성령님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누가와 성령님도 십자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대신 고난 받으면서 네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1) 여인들의 통곡과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6-31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군중들 중에서 믿음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그리스도를 따라갔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절). 누가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배반하여 죽입니다. 그들이 당할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깊은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 주십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당하는 고난을 아파하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오는 심판을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동정하듯이 마음으로 슬퍼하지 맙시다. 주일에 성찬을 받을 때도 그리스도의 아픔을 동정하면서 감상적으로 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인 우리가 받아야 될 심판을 보고서 두려워합시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일어날 때, 즉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죄용서를 기억합시다. 기억합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읍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 때문에 통곡하는 우리는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도 고난당할 때, 또 권징을 집행해야 할 위치에 있을 때,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읍시다. 정의감에서 나오는 분노 보다 사랑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합시다.

 

2) 사람들의 조롱, “아버지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32-45절).

두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입니다(34절). 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죽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 죄를 그리스도께 하나님 앞에 내어놓읍시다.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악하게 행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들이 우리에게 행한 악과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서서 구경하는 자들, 군인들, 또 지도자들,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혀있던 한 명의 강도까지 조롱합니다.  “네가 남은 구원하였으니 자기도 구원해라, 우리를 구원해보라” (25,39절). 예수님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비난입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금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저주의 죽음을 통하여서 그들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장 큰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닙니다. 버림받는 고통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으며 버림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버림받음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을 감사합시다. 속죄의 공로를 의지하여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3) 회개하는 한 명의 강도와 예수님,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던 한 명의 강도는 회개하며 말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사실은 그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습니다. 그가 알았는지 모르지만, ‘곧 하나님 나라에 가시니까 저를 기억하소서.’(42절)와 같은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받아 주십니다. “그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43절). 십자가에서 세 번째 말씀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에도 왕으로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셨습니다.

 

4) 온 땅에 어둠, 성전의 출입문 휘장이 찢어짐과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겨드립니다”(46-59절)

제 육시부터 구시까지(정오-오후 3시)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온 땅에 어두움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빛난 얼굴을 그리스도로부터 돌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은 아들이 당하신 그 어두움을 눈에 보이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모든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표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버림받으셨을 때, 마침내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성전에는 두 개의 휘장 즉 커튼이 있습니다. 성전 건물과 지성소의 출입문입니다. 성전 안으로 제사장이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튼,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성소를 통해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 커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찢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하늘 성소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찢어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성소의 출입문을 찢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도 하늘의 성소로 나갑니다. 그 휘장은 바로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히10:20).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도 이 땅의 여러 고난을 받습니다. 오해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죄용서를 의지하여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열린 이 문을 따라서 이 아침에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네 번째 말씀은 46절 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위탁하고 넘겨 드린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 그분의 몸을 사용하시도록 드렸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영혼을 받으시고, 몸도 부활하게 하셔서 영광가운데 들어가게 하실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그분의 몸인 교회를 이 땅에 세워 주시도록 하나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이미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와 제자들을 새롭게 합니다. 첫째로 십자가의 한 강도가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사형 집행하던 백부장이 고백합니다. ‘이 분은 참으로 의인이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셋째로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습니다. 18장 13절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던 세리 죄인의 모습처럼 회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숨겨진 제자 아리마대 요셉이 새로운 용기를 가집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의 묻히심(50-56절)

이스라엘의 국회인 산헤드린의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합니다. 장례를 치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형선고에 대해 반대하는 표를 던졌습니다. 그동안 제자됨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앞에 새로운 용기가 났습니다. 멸시당하는 예수님의 시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지고 갔습니다. 성령께서 특별한 담대함을 주신 것 같습니다. 세마포에 싸서 새 무덤에 넣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을 상징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섭리 가운데 이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는 “몸(소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몸으로 가르치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 몸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미 부활하여 그분의 몸이 하늘의 영광 중에 계십니다.

하지만 이 땅의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세상적으로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계속적인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당하는 그 순간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았습니다.  용기를 가졌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간 지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연합된 우리는 더 담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땅에서는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갑시다. 군중 심리에 이끌려서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맙시다. 사람들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나아가지 맙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이시니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말씀하시니까 말씀을 붙잡고 계속 나아갑시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과 제자들의 식사 시중을 들면서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여인들은 그 무덤까지 따라왔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면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계명을 따라 쉬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구약의 계명을 십자가로서 성취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는 죄용서 받았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구원은 세상의 눈에는 구원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그게 뭐 인생에 도움을 주냐?” 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바로 예배와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사 드리신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은혜를 의지하여서 우리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합시다.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대하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누가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면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소개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묻다, 요청하다(에로타오, 3절)과 (에피-에로타오, 6,9절). 달라(요청하다, 아이테오 52절)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3절). 빌라도가 대제사장에게 묻습니다. (6절). 헤롯이 예수님께 묻지만 대답하지 않습니다(9절).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구합니다 (52절).

 

<참고>보내다 (아나-펨프토, 7,11,15절)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님을 서로에게 보내면서, 전에 원수였던 관계에서 친구 관계로 변합니다(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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