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8장
헌금과 물질 나눔의 은사: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성도를 섬겨서,
열매(성도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를 맺음
(찬송 1장)
2021-9-25, 토
맥락과 의미
고린도 후서 전체는 직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들이 어떻게 교회와 성도를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1-7장, 10-13장은 사도의 직분을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목사의 직분이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8-9장은 구제 헌금에 대해 가르칩니다. 사도나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것과,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은, 다 동등한 직분입니다. 둘 다 은혜와 은사이고, 직분으로 섬김이며, 성도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열매를 맺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방언 등의 은사가 많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질로 섬기는 일에서는 인색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헌금과 물질 섬김을 자세히 가르칩니다.
1. 가난한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물질의 은사로 섬기는 좋은 모범 (1-6절)
그리스 남부 지역의 고린도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부유한 성도들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역에 있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교회에 주신 은혜를 알게 합니다.’(1절)
하나님이 주신 은혜란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 때문에 풍성하게 연보했습니다(2절). 연보는 ‘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은혜(카리스)를 주시고 기쁨(카라)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그 은혜와 기쁨에 힘입어 물질로 나누었습니다. 힘에 부치도록 나누는 거기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가 일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많아서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많아서 많은 헌금을 합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는 성도를 섬기는 일(직분)에 참여(코이노이아) 하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4절). ‘간절히 구한다’는 ‘위로하다, 권면하다, 간청하다’는 뜻입니다. 사도가 고난 가운데 받았던 위로(1:4, 7:5-6)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위로를 다른 성도와 교회들과 나누기를 열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편지를 디도에게 주어 그를 고린도로 다시 보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구제 헌금하는 은혜를 성취하라고 권합니다(6절). 이미 고린도 교회에서 구제 헌금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디도가 다시 격려하여 그 일을 끝까지 이루라고 보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니 감사합시다. 감사 가운데서 교회와 다른 성도의 필요를 위해 헌금합시다. 헌금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성도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2. 물질의 은혜로 성도들을 풍요롭게 하라고 고린도교회를 격려 (7-15절)
고린도 교회는 ‘믿음, 말, 지식, 모든 간절함, 사도를 사랑하는 일에 넘친다’고 자타가 공인합니다. 사도는 물질을 나누는 은혜에도 풍성하라고 권고합니다(7절).
1) 강제적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자원하여 순종하는 것으로서의 헌금 (8-12절)
구제 헌금은 강제적 명령이 아닙니다. 자원하여 기쁨과 감사로 하는 행동입니다. ‘명령’(8절)이 아니라 ‘뜻’으로 말했습니다(10절). 명령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분명한 명령을 말합니다. ‘뜻’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성도가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조언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 시대의 헌금과 구제는 구약의 십일조처럼 구체적 액수가 정해져 있는 명령이 아닙니다. 사도는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성도가 자원하여 헌신하도록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뜻’이 명령이 아니지만, 그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가 스며 있습니다(고전 7:40). 우리도 성령님의 인도로 헌금에 대해 잘 배웁시다.
구제 헌금을 자원하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교회 안에 흘러 넘치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풍성함을 누리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습니다. 자발적으로 자기의 가진 것을 다른 성도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합니다. 헌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의 삶에서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일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고린도 성도에게 하나님은 이미 ‘원함’(11절)과 ‘할 마음’(12절)을 주셨습니다. ‘할 마음’은 구약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제물을 드렸던 ‘자원의 제사’(자원제, 감사제로도 표현. 이것은 화목제의 한 종류)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제의 제사는 우리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속죄 제사를 자원해서 기쁘게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로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된 다음에는, 우리 가진 것으로 자원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물질로 성도를 구제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원하는 심정으로 기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감사로 자원하여 헌금하게 함으로써 헌금하는 사람이 ‘유익’(10절)을 얻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섬김의 은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갑니다.
2) 평등케 하는 것으로서의 헌금과 나눔 (13-15절)
헌금의 두 번째 유익은 교회를 평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성도에게 유익을 줍니다(13-15절). 또 도움을 받은 성도와 교회는 다시 그들을 도와준 성도를 도와줍니다.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은혜)가 교회 안에 흘러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헌금을 통해 결국 교회 전체가 유익을 받습니다(14절). 고린도 교회의 구제 헌금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고린도 교회를 돕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영적 은사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평등입니다. 평등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말씀, 물질)를 받은 성도가 자기보다 적게 받은 성도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잘 압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진 것을 나눕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탐욕으로 자기 것을 가지고 있지만 맙시다. 성도들과 나누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몸의 평등을 이룹시다. 말씀을 먼저 받은 목사도 설교와 개인적 권면으로 말씀의 은사를 평등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성도가 말씀에서 풍요롭고 기쁨 가운데서 물질을 나누도록 도와야 합니다.
3. 헌금과 물질 나눔을 행정적으로 섬기는 직분자 (16-24절)
모든 성도가 물질을 나눌 때, 행정적으로 섬기는 공적인 직분자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헌금을 모으고 나누어 주는 일에 디도와 다른 형제 두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집사의 자격을 가르칩니다.
디도는 기쁘게 자원하는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로 가서 이 일을 맡았습니다(17절). 다른 한 형제는 복음으로 칭찬을 받고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18,19절). 나머지 한 형제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섬기려는 자발적이고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시험’(22절)하여 검증한 사람입니다. 이 ‘시험’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서 ‘시험’하여 검증받은 것(2절), 고린도 성도들이 헌금을 통해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8절)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교회의 헌금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은 믿음이 분명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에 의해 검증된 자들이 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해 사도는 ‘나의 동역자’, ‘교회의 사도’, ‘그리스도의 영광’(23절)이라고 요약합니다. 직분자는 그들의 성품과 사역을 통해서 사도와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교회 안에 나타내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고린도 성도들은 힘껏 물질로 섬기라고 권유합니다(24절).
검증된 사람들에게 구제의 행정을 맡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정 문제로 ‘훼방하지 못하도록’(20절), 즉 교회를 비난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재정을 집행합니다.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선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21절).
믿고 복종할 일
우리 교회와 성도가 헌금과 물질의 나눔에서 지금까지 풍성했던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데살로니가전서 4:1). 더 넉넉히 나누도록 힘씁시다. 우리 교회 집사들이 성도들이 바친 물질로 구제의 실무를 잘 한 것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사람들 앞에서 선하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교회가 물질의 나눔이 더 풍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적 은혜가 더 넘쳐야 합니다. 계속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복음이 교회에서 더 풍성히 선포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죄용서의 은혜와 기쁨, 성령 충만의 기쁨을 더 풍성히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가정과 직장에서 직분을 감당하면서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는 안식과 기쁨을 주시기 바랍니다. 죄용서와 헌신의 기쁨을 우리 안에 더 풍성히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주신 환난을 불평하지 맙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내하며 기쁨으로 받읍시다. 그 기쁨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자원하여 물질로 섬깁시다. 우리 위해 가난해지신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우리도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평등을 향해 나갑시다. 교회에서 평등을 훈련한 성도들이 사회에서도 평등을 이루는 모범적인 시민과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나눔을 위해 더 성실히 일하고, 검소하게 삽시다. 지금까지 잘 하셨습니다. 더 많은 은혜(물질, 기쁨, 영적인 풍성함)를 받고 더 많이 나눕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은혜(카리스1절), 기쁨(카라, 2절)
은혜와 기쁨은 비슷한 말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쁨에 비례하여 물질을 나누는 은혜도 넘칩니다.
<참고> 헌금에 대한 다양한 표현
8-9장은 헌금에 대해 말하면서 ‘돈’이나 ‘물질’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성도를 종으로 ‘섬김’, 일의 ‘열매’를 강조합니다.
첫째,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1,4,6,7,9,16,19절)를 성도에게 주는 것입니다(준다, 1,5,9,16절).
둘째, 은혜이므로 “후함”(연보의 원래 뜻, 2절, 9:13)입니다.
셋째, 헌금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섬기는’ 것입니다(섬기다, 디아코네오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4절 ‘섬기는 일’, 19,20절 ‘맡은’ ‘섬긴다’를 다른 말로 직분이라 표현합니다. “봉사”(9:12레이투르기아)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섬기는 일”의 직무입니다. 직분이라고 하면 보통 권위 있게 지시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과는 정 반대의 느낌입니다.
넷째, 은혜로 섬기는 직분은 열매를 냅니다. 열매는 23절에서 ‘동역자’라 할 때 ‘일한다’는 뜻입니다. 헌금의 열매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14절). 또 헌금하는 성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섬김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유익을 줍니다(10절). 가장 중요한 열매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19,23절).
다섯째, 헌금은 축복입니다. 9:5의 연보는 “축복” (유-로기아)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먼저 은혜와 후함으로 물질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서 다른 교회와 다른 성도들에게 후하게 은혜를 베풉니다. 자기를 자랑하며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종, 직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참고> ‘명령’(에피-타게, 8절)이 아니라 ‘뜻’(그노메, 10절).
사도가 헌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명령’(8절)이 아니라 ‘뜻’이라고 했습니다(10절). ‘뜻’(그노메)은 하나님의 명령을 성도가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조언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7장에서 사도는 혼인을 하거나 독신으로 살거나 하는 일을 조언하는 것을 ‘뜻(그노메)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능한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그노메)이요 명령(에피-타게)은 아니라”(고전 7:6). ‘허락(신-그노메, 7:6), 의견(그노메7:25), 뜻(그노메, 7:40). 사도 바울은 개일 성도가 혼인에 관한 결정을 돕기 위해 조언했습니다. 고전 7:40절은 바울 자신이 하는 그노메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일상적인 일도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말씀을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로 결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