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건강의 약함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통해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
회개의 필요성
(찬송 96장)
2023-4-22, 토
맥락과 의미
고린도 교회는 자기를 자랑하는 거짓된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사도 바울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를 보낼 때는 그들이 바울을 사도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회복했습니다(7장).
바울은 11-12장에서 자신의 사도로서 갖는 권위를 더 굳세게 할 필요를 느낀 듯합니다. 거짓된 사도들의 헛된 자랑에 의해 고린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자신을 높였습니다(11:5,13), 참 사도됨의 증거는 그들처럼 유창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하는 것입니다(11:6).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과 그의 고난이 참 사도 됨의 증거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리석은”(11:16) 일이지만 자기에게도 자랑할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 자랑은 자신의 약함과 고난 가운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첫째,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유대인임을 자랑하지만 자신도 유대인임을 자랑합니다.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고난을 자랑합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11:31)을 높였습니다.
둘째, 1-10절에서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하면서 자신의 신비한 영적 체험을 말합니다(1절). 그것 역시 자신의 질병이라는 약함을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11-19절에서는 다른 참된 사도들(베드로 요한 등)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자랑합니다(11절). 역시 또 그가 사례를 받지 않은 것을 자랑합니다.
20-21절은 고린도 교인의 상태를 지적하며, 바울은 자신이 앞으로 방문하기 전에 회개하라고 다시 권고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헛된 자랑을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 받는 것을 자랑하며 매일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하기 바랍니다.
1. 사도 바울은 신비 체험보다 자신의 연약을 자랑함(1-10절)
2.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회개를 권함(11-21절)
1. 사도 바울은 신비 체험보다 자신의 연약을 자랑함(1-10절)
1-4절: 바울은 또 다른 자랑을 합니다. 이 자랑 자체는 유익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온 거짓 교사들이 자신의 영적 신비 체험을 자랑한 듯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득불” 자랑처럼 들리는 말을 합니다.
그들이 “억지로 시킨 것”(11절)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가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1절에, “너희에게 칭찬(추천서)을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말을 한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약간 비난하는 뉘앙스로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실은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이 열매가 이미 자격을 증명합니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 다른 자격을 문제 삼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자기 추천서를 쓰듯이 자랑을 합니다.
주님의 “환상과 계시”, 천국 낙원을 체험한 것을 간증합니다(1절). 내가 한 사람을 안다고(3절) 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듯이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자기 자랑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다”는 앞에 나온 “양심”(1:12, 4:2, 5:11)과 연결됩니다. 양심은 ‘함께-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나 자신이 함께 아는 것입니다.
5-10절: 환상을 말하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높일까 두려워서 그만둡니다(6절). 그 대신 자신의 약함, 특히 질병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7절).
사도 바울은 고통스러운 병이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내(그리스도 자신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9절)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바울은 지극히 큰 계시를 보았기 때문에 교만해질 수도 있었는데 그를 겸손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질병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7절).
그래서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크게 기뻐합니다. “족하다”에서 자족이라는 말이 왔습니다. 자족하며 기뻐합니다. 사도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은 더 강합니다(9절).
고린도 교인에 대한 사도의 자기 변호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볼 때 나는 약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약함이 나의 강함이다.” 사도는 약함을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다.”(9절) 사도됨의 참 표적은 자신의 약함입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약하고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유럽 복음화의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아니라 그의 능력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질병뿐 아닙니다. 사도는 궁핍과 핍박도 기뻐합니다(10절). 하나님께서 건강이 약한데도 능력으로 감당하게 하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가난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가집니다. 핍박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사람의 자연적 연약함은 복음의 일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게 되는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가 됩니다.
사도가 경험한 십자가의 낮아짐 가운데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은혜를 체험하기 바랍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신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이나 물질의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니다. 네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이 좋다” 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 가운데서, 어려움에 처한 우리를 쓰셔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기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력이 있습니다.
유창한 말솜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환상과 계시를 보는 기적적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질병과 가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참 사도의 증거입니다.
2.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회개를 권함(11-21절)
1) 세 번째 억지로 한 어리석은 자랑: 기적을 행하는 사도, 그러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음(11-13절)
11:1에서 시작한 어리석은 자랑의 마지막 세 번째 자랑입니다. 그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다”(11절)고 말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아니라 베드로 등 참된 사도들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1:6에서는 말솜씨는 부족하더라도 복음 지식에서는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도의 표시는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됨의 더 큰 표시는 “폐를 끼치지 아니한”(13절) 것입니다. 사도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폐를 끼치지 않은 것입니다.
2)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을 것(14-19절)
이제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준비를 시킵니다. 13:1에서도 세 번째 준비를 말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바울은 그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14절)를 구합니다. 즉 그들의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서 갑니다.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서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허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 중에 바울이 물질에서 깨끗함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변호합니다. “내가 교묘하게 너희들을 조작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가?” 하고 반문합니다(16-17절).
바울이 겉으로는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돈을 요구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파송한 디도나 다른 형제도 고린도 교인들을 경제적으로 속여 빼앗은 적이 없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19절: 고린도 교인들은 이 편지 성경을 읽으면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다는 인상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편지에서 말한 것은 모두 그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냥 ‘세운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 전체, 그리고 그 안의 성도 각자가 성령님의 집으로서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렇게 부르면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시합니다.
2) 바울이 방문하기 전에 회개해야 함(20-22절, 13:1-4)
바울을 문제 삼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교회 전체가 새롭게 변하도록 권면합니다. 다툼과 분쟁을 그치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예배 가운데 무질서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더러움과 음란, 호색을 회개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속히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번에 방문해서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합니다(13:1-4).
믿고 복종할 일
이 말씀에서 참된 목자상을 배웁시다. 참된 목사는 많은 영적 체험을 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면서 사람들을 모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면서 고난 가운데서 복음을 전합니다. 재정적 이익을 교회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부양할 정도로 만족합니다.
우리 성도는 목사에 대한 태도를 배웁시다. 가볍게 비난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활한 자가 되어 속임수로 취하였다.” 위대한 사도 바울을 이렇게 모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함이 많은 목사들에 대해 비난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성도는 직분자를 평가하기 전에 항상 먼저 자기를 돌아봅시다. “우리 교회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하고 교만하지 맙시다. 각자에게 죄가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목사와 교회 직분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일어날 때 휩쓸리지 않도록 합시다. 직분자의 권위가 흔들리면 복음의 권위가 흔들립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우리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풀어 주시기를 기도하지만, 때로는 그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하실 때가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자족하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 인격을 겸손하게, 그리스도처럼 만들어 가시는 은혜에 감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어떤 연약함이 있습니까? 내가 연약함 가운데서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게 해 달라고, 나의 연약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2절, “안다”(오이다), “양심”(순-오이다)
“안다”(오이다, 2절)는 앞에 나온 “양심”(순-에디에시스, 순-오이다, 1:12, 4:2, 5:11)과 연결됩니다. 양심은 ‘함께-안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가 양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앎’과 함께, 그것을 평가하는 ‘앎’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악함을 압니다.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고 괴로워합니다.
양심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죄악성을 볼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의지의 방향을 정합니다. 자연적으로 사람은 ‘악한 양심’으로 악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양심을 새롭게 하시고 선한 의지를 주실 때 그 양심을 “선한 양심”이라고 합니다(디모데전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