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장
말씀과 기도, 성찬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과 성도의 하나 됨이 나타나게 하라
(찬송 220장)
2023-3-10, 금
맥락과 의미
11-14장은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11장은 말씀과 기도, 성찬, 그리고 성찬 때 몸단장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12-14장은 예배에서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성령님은 사도를 통해 예배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전하여 준”(“전통”, 2,23절) 대로 말씀과 기도, 찬양과 성찬을 해야 합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가 사도 자신이 전해준 방법대로 예배드리는 것을 칭찬했습니다(2절). 그대로 하지 않을 때 칭찬하지 않았습니다(17절). 17-34절은 성찬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도가 전해준 대로 예배드려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읍시다.
1. 예배: 여자는 머리를 가림, 예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2-16절)
2. 성찬: 그리스도께서 한 몸을 이룬 교회가 하나 됨(17-34절)
1. 예배: 여자는 머리를 가림, 예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2-16절)
1) 예배 때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덮음(2-6절)
바울은 자신이 전해준 방법대로 예배할 때 고린도 교회를 칭찬합니다(2절).
기도나 예언을 할 여자는 머리를 덮어야 합니다.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라기보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뒤에서 성찬에 대해 말할 때 성찬 인도자가 아니라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도는 감사와 찬양하는 것은 예배를 말합니다.
사도는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여자는 머리에 쓰고 예배드리도록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관습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나타난 영적인 원리는 모든 시대 교회가 지켜야 합니다.
그 원리는 남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여자/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에 만약 남자가 그 머리에 수건을 쓰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므로 부끄럽습니다(4절). 여자/아내가 머리나 혹은 얼굴을 덮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 남자/남편이 그녀를 덮는 것을 벗어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습니다(5-6절).
2) 성경적 근거: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 여자는 남자의 영광(7-11절)
예배에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게 한 것은 중요한 것을 표시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7절).
창세기 1:26-27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다고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반복합니다. 남자와 여자 각각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일에, 남자/남편이 여자/아내의 머리입니다(2절). 남자는 여자를 하나님 앞에서 대표합니다. 그래서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각각 있습니다. 다시 여자는 “남자의 영광”(7절)이라고 합니다. 남자/남편은 여자/아내를 통해 영광을 나타냅니다. 남자 자신 안에 무슨 영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광을 아내에게 전달합니다.
이 이유를 8절이 설명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로부터)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로부터) 났다.” 창세기 2:23에서 “이것은 남자에게서 (로부터)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한 것을 인용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인 아담으로부터 지었습니다. 남자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이 여자 안에도 나타납니다.
9절도 원래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 창세기 2:20에서 하나님이 여자를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기 때문에 남자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듯이, 남편은 아내 안에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살고 남편을 돕는 것은 남편과 아내로 이루어지는 가정 공동체의 대표가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만드신 남녀 관계가 예배에서 잘 나타납니다. 남자는 덮지 않은 머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표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여자에게 전달합니다. 여자는 머리에 덮은 수건을 통해 남자의 권한 밑에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합니다.
그런데 10절을 직역하면 “이 때문에 여자는 권세/권한을 그 머리 위에 두어야(가져야) 한다.” 남자가 하나님께 받은 영광을 여자에게 나타내고 여자는 남자를 도우면서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권세/권한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두어야 합니다.
10절의 “여자/아내,” “권세/권한,” “가진다,” “해야 한다,” 이 네 가지 단어가 고린도전서 7:2-4에 나옵니다. “남자는 아내를 두어야/가져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두어야/가져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자기 몸에 대한 권세/권한을 남편에게 주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부부가 침실에서 서로 섬기며 하나 되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11장의 예배에 적용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부부는 한 몸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11-12절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의존함을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함께, 서로를 통해 존재합니다. 인간으로서 동등하고 서로에게 복종하는 관계입니다(엡 5:21). 그리고 동등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권한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남편을 위해 바칩니다. 동시에 남편 또한 자신의 권한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으로 아내를 섬깁니다.
아내는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남편은 덮지 않는 모습은 부부가 조화롭게 하나 되는 것을 표시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권한을 서로에게 주면서 하나가 됩니다.
예배는 남녀가 개인으로만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공동체 안에 오신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표시로 나타내려고 여자의 머리 위에 수건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 상징은 나아가 예배는 한 가정이 함께 드리는 것이며 온 교회 성도가 함께 드리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복장을 하고 그런 고백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예배 가운데서 그 영광을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예배드리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고 온 성도가 연합하여 예배드리는 공동체성을 부정합니다. 그런 복장은 부적절합니다(13절).
3) 사람의 본성이 증거: 여성의 긴 머리는 그녀의 영광(14-16절)
14-16절은 사람의 본성이 가르치는 것을 통해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자의 긴 머리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아름다움과 영광됨을 느낍니다.
그 긴 머리는 “쓰는 것”(15절)을 대신한 것입니다. 쓰는 것은 “두른다”는 뜻이고 옷이라는 뜻도 됩니다. 옷은 몸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릴 뿐 아니라 멋있고 영광스럽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의 부끄러움을 덮어서 영광스럽게 합니다(룻 2:12, 3:19).
예배 의식에 나타난 남자(남편)와 여자(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눈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교회를 초청하십니다. “흰 옷(가리는 것)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계 3:18). 남편이 아내를 덮어주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부끄러움을 덮으십니다. 그것을 바로 예배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행하십니다.
성도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공적인 집회에 참여합니다.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와 찬양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경험합니다. 예배는 성도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게 합니다.
예배드리는 여성의 머리 위에 있는 덮개는 교회 공동체를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상징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모든 남녀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표시합니다.
부부가 남편의 권위 하에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엡 5:22-27).
남편의 머리 됨과 영광은 아버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머리 됨에서 시작되었습니다(3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머리로 모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부 성자와 함께 하는 그 영광에 우리를 참여시키시기 위해 머리 됨-복종이라는 질서를 시작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예배 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교회에 있다는 것을 남편이 나타냅니다. 아내는 머리에 쓰는 것을 통해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함을 통해 은혜받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성찬과 같은 성례가 아닙니다. 초대 교회 한 시대에 주신 상징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여성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예배 드립니다. 그렇지만 오늘날도 아내는 영적으로는 머리를 덮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가족에게 말씀과 기도, 삶의 모범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직분을 받은 자임을 의식하고 그 직분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배 중에 부부의 하나 됨과 가정의 하나 됨 가운데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온 가족이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받은 사실을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예배에서 함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자라갑니다.
2. 성찬: 그리스도께서 한 몸을 이룬 교회가 하나 됨(17-34절)
1) 성찬에서 부자들만 먹음으로써 교회가 분열됨(17-22절)
성찬은 그리스도의 모든 성도가 하나라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성도의 하나 됨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후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는 교회는 따로 건물이 없이 가정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찬은 예배와 식사를 겸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사의 앞부분에 축복하면 성찬이 되었습니다.
이때 부자들은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었습니다. 노예나 가난한 사람은 음식을 가져오지 못해서 먹지도 못했습니다. 성찬을 통해 하나됨을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되었습니다.
2)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한 몸과 한 언약에 참여하는 것(23-26절)
성찬은 먹고 마시며 육체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찬 현장에 영적으로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참여합니다. 나아가 미래에 승리하며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성찬 의식을 통해 전파합니다(26절).
3) 성찬에서 분열과 죄를 판단하고 연단하며, 서로 환영하라(27-34)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서 몸을 분별합시다(29절). 먼저 성찬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심을 바로 압시다. 또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하나의 몸으로 연합되어 교회 공동체가 됨을 바로 압시다. 죄와 분쟁과 시기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을 살핍시다(28절). 살피는 것은 연단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연단하기 위해 각자는 먼저 “주의 몸”을 분별해야 합니다(29절). 공동체로서 “우리”, 곧 “주의 몸” 된 교회를 살펴야 합니다(31절). ‘몸을 살핀다’는 것은 ‘머리인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는 “몸”인 교회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때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교회 공동체를 바로 알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연단되어 갑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관계 속에서 한 몸 됨을 해치는 것이 있는지를 살피고, 회개하며 변화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분별하는 것은 6:5에서 “형제 간 일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하나인 몸을 경험하기 위해 목사와 당회, 혹은 교회 전체는 부지런히 판단합니다. 권징을 통해 성도의 거룩과 하나 됨을 지켜가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자기를 판단하며 회개하는 것은 마지막 날 주님께 받을 심판을 피하는 길입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분의 몸 된 교회로서 모든 성도가 하나 됨을 드러냅니다. 따로 먹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집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교회 모임에 배를 채우려고 오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기다리고 환영하며 함께 먹으라고 합니다(35절). 성찬에서 함께 먹는 행동은 그 동안에 있었던 갈등과 분열을 회개하고 화해하라는 뜻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예배는 말씀과 기도, 성찬으로 이루어집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복종하는 하나 됨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또 성찬에서도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도의 하나 됨을 알고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했습니다. 성도가 분열을 넘어 하나 됨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성찬 자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가 바로 교회 안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서로에게 복종하여 하나의 공동체로서 예배드립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가운데 성경이 가르치는 남녀 간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녀 모두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가정과 교회를 세워 가도록 기도하고 실천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이 때문에 여자는 권세/권한을 그 머리 위에 두어야 합니다”=고전 7:2-4
10절의 “여자/아내”, “권세/권한”, “가진다”, “해야 한다”, 이 네가지 단어가 고린도전서 7:2-4에 나옵니다.
“2 남자/남편마다 자기 아내/여자를 두며(가지고) 여자/아내마다 자기 남편/남자를 두라(가지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해야만 하는 것)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
4 아내/여자는 자기 몸을 주장(권한/권세)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권한/권세)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것을 볼 때 고린도전서 7장과 11장이 비슷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7장에서 말하는, 부부가 서로에게 서로를 주며 하나 되는 것을 11장의 예배에서도 나타내야 합니다. 11장에서 여자가 머리에 권세를 두는 것은 여성이 남편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남자의 머리 됨을 중심으로 서로 의존하고 하나 되면서 예배드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참고> 28-31절에 ‘판단한다(크리노)’와 관련된 단어들이 쓰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각자는 “주의 몸”을 분별해야 합니다(29절, 디아-크리노). 공동체적으로 “우리”, 곧 “주의 몸” 된 교회를 살폈으면(디아-크리노) 판단(크리노)을 받지 않습니다(31절). 우리가 판단을 받으면(크리노)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므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카타-크리노)을 받지 않습니다(32절).
성찬을 준비하면서 자기 죄, 특히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해친 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즉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판단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